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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강 위에는 모래가 흐른다 1화
0. 사일러스
그날따라 가윈의 식사 시간이 유독 길었다. 사일러스는 문밖에 서서 한 시간 넘게 기다렸다. 명목상으로나마 주인의 배우자이니 괜찮으신가요, 의자라도 내올까요, 하는 빈말이라도 건넬 법한데 아무도 도움의 손길을 건네지 않았다.
저택의 고용인들은 사일러스를 유령처럼 대했다. 어느 쪽으로 보나 그것이 이득이었다. 거의 10년에 가깝도록 주인에게 지독히 미움받는 썩은 동아줄을 무심결에라도 쥐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지?’
‘어제 별채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고용인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을 분주히 교환했다. 별채 뒷방에서 두문불출하던 썩은 동아줄이 몇 년 만에 저택 한가운데에서 고개를 빳빳이 들고 주인을 기다리고 있으니 궁금증이 일지 않을 리가.
사일러스가 노골적으로 쏟아지는 시선을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모른 척 문 앞에 서서 얌전히 가윈의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늦은 오전, 화려하게 차려지는 평범한 상류층식 아침 식사와 달리 가윈은 좀 더 이른 시간에 아침을 드는 편이었다. 검소한 성품이라기보다는 오전 시간을 번잡하게 보내는 것을 질색해서였다. 허기만 가실 정도면 되는지라 식탁 위에 오른 음식은 몇 개 되지 않았다. 간단한 샐러드와 수프, 빵, 소시지 정도로 보통 길어 봐야 30분이면 식사를 끝냈다.
그러나 오늘 가윈은 평소답지 않은 변덕을 부렸다. 일반 귀족식 정찬을 내어 오라 명한 것이다. 주방에 손질된 재료가 많지 않은지라 결국 아침은 약식 정찬으로 제공되었으나, 식사를 준비하고 먹고 마무리하는 데는 거의 두 시간이나 걸렸다. 사일러스는 식당을 오가는 화려한 트레이를 힐끔거리며 문 앞에서 가윈이 답을 주기를 기다렸다.
가윈은 더부룩한 위장에 인상을 찌푸리며 입가심으로 내온 차를 마셨다.
“그는 아직도 있나?”
식사 시중을 들던 이가 바깥 하인과 속닥거리더니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계속 그 자리에서 서서 기다리는 것이, 꼭 주인님을 뵈어야 돌아갈 생각인 것 같다고…….”
“쯧.”
가윈은 짜증스럽게 혀를 찼다. 간밤에 있었던 해괴망측했던 사건이 떠오른 탓이다.
사일러스를 완전히 잊고 지내다가도 간혹 뱃속이 끓어오르는 분노가 일 때가 있었다. 지난밤이 그랬다. 가윈은 별채의 사일러스를 찾아 비겁한 화풀이를 저지르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어제의 사일러스는 평소와 사뭇 달랐다. 이전까지는 움츠러든 채 미안하다 웅얼거리는 게 다였던 오메가는 마치 정신이 나간 것처럼 가윈에게 달라붙었다. 그 꼴에 소름이 돋아 별채에서 황급히 벗어났던 것이 바로 어젯밤 일이었다. 무엇에라도 홀린 듯 이상한 밤이었다.
거기다 대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사일러스는 이른 아침나절부터 가윈을 보겠다며 야단이었다. 그야말로 이상한 일이었다. 사일러스는 가윈을 두려워할뿐더러 태생이 얌전하고 소심하여 어지간해서는 제 의사를 표하는 일이 없었다.
그를 찾지 않은 몇 달 사이 사람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 듯했다. 마치 독기라도 품은 것처럼.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어 그를 끈질기게 기다리는 것인지 궁금할 지경이다.
“들여보내.”
시중인이 나가 말을 전하자마자 곧장 문이 열렸다.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졌다. 맥없는 성격을 대변하기라도 하는 듯 사일러스는 발소리조차 희끄무레 조심스러웠다.
가윈은 차를 마시며 신문을 뒤적거렸다. 일단 들이기는 했으나, 막상 대화는커녕 꼴도 보기 싫다는 심중이 확연히 드러나는 모양새라 사일러스는 잠시간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저…….”
사일러스는 유독 가윈 앞에서 주눅이 들어 말을 더듬었다. 처음에는 이토록 심했던 것 같지는 않은데, 매번 강렬한 미움 섞인 페로몬을 받으니 언제부턴가 턱이 달달 떨리고 혀가 꼬였다.
“무슨 일이야? 시간 없으니 용건만 말하고 나가도록 해.”
“그……. 저, 정말 다른 사람도 괘, 괜찮은가요?”
“뭐?”
가윈은 고개를 들었다. 앞뒤 내용을 모두 생략하고 이야기하니, 도무지 사일러스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말하는 법도 잊었나? 대체 무슨 뜻이야?”
“어제, 어제 말씀하셨던…….”
“어제?”
“네, 네…….”
간밤의 기억이 떠오르자 눈썹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어제 네가 수치도 잊고 창기처럼 알몸으로 매달렸을 적을 말하는 것인지?”
수치심에 사일러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가윈은 간혹 사일러스를 찾아 관계를 맺었다. 애정 따위 바랄 수 없는,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 교합이었다. 성욕을 해결하고자 하는 행위는 아니었다. 닿기조차 싫어 사일러스를 엎어 둔 채 아래만 꺼내 거칠게 쑤석이는 것이 다였다. 가윈은 아픔에 덜덜 떠는 뒤통수를 싸늘히 내려다보며 씨물을 토해 냈다. 아이 또한 바라지 않았으므로, 체내에 사정하는 일 또한 없었다.
가윈이 이토록 미워하는 사일러스와 섹스하는 까닭은 사일러스가 고통스럽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불임 딱지를 붙여 배태할 수 없는 오메가라며 손가락질 받길 원했고…… 이 짐승보다도 못한 섹스에서 비참함과 죄책감을 느끼길 바랐다.
가윈은 사일러스의 고독을 조롱했다.
“어제처럼 구역질 나도록 옷이라도 벗고 박아 달라 애원하려고?”
“…….”
사일러스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폭언과 냉대에는 아주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으나, 가끔은 그도 아팠다. 사랑받기를 포기한 지는 오래다. 사랑을 포기하자 가윈의 잔인한 언사가 주는 아픔은 한결 덜했다. 밤마다 베갯잇을 눈물로 적시는 일도 사라졌다. 주는 대로 먹고, 어두워지면 침대에 몸을 뉘어 잠들었다. 어쩌면 이렇게 그대로, 조용히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여린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이는 것처럼 슬픔과 수치에도 담담해질 날이 올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아픔에 무던해지자 단단해진 살 위로 외로움이 차올랐다.
세상에 홀로 존재한다는 감각이 선연할 때면 따뜻한 체온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쳤다. 이제 그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사랑이나 희망 따위가 아니었다. 혼자라는 외로움이었다. 도무지 현실을 바로 서서 볼 수가 없었다. 숨 막히는 고독이 발목을 잡아 그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어제가 그런 날이었다.
사일러스는 사람의 체온이 그리웠다. 고용인들은 최소한의 시중만 들어 주는 것이 다였으니 온기를 나눠 줄 이는 우습게도 가윈뿐이었다. 어찌나 사람이 그리웠던지.
사일러스는 술에 취해 거칠게 아래를 벌리는 가윈에게 매달려 얼토당토않은 요구를 했다.
-이, 이렇게 뒤, 뒤로 하는 건 싫어요. 앞으로 하, 하고 시, 싶어요.
언제나 몸을 웅크린 채 숨만 죽이고 있던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가윈은 웃었다. 즐거움이나 기쁨에서 비롯된 웃음은 아니었다.
-이게 무슨 소린지.
-제, 제 얼굴이 보기 싫으시면 오, 옷이라도 벗어 주세요. 제발, 제발요.
바짓자락을 움켜쥐는 손길에 가윈은 구역질 난다는 듯 몸을 털어 냈다. 명백한 거절이었다.
-죄송해요. 당신이 저를 조,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과 이 관계에서 큰 기쁨을 못 느낀다는 것도 추, 충분히 알고 있지만…….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다. 사일러스는 옷을 벗어 던지며 애걸했다. 저도 오메가이니, 페로몬이라도 내어 매달리고 싶었다. 하지만 사일러스는 몇 년 전부터 페로몬을 한 방울도 낼 수 없어 그조차도 시도할 수 없었다.
-잘 알고 있다니 다행이야. 너와 하는 섹스는 내게 어떤 기쁨도 주지 못해. 무엇보다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사창가의 창기와 섹스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지. 교태 하나 제대로 부리지 못하고 제대로 된 페로몬도 못 내는 오메가라니, 당신의 고루한 표정을 보면 세우는 것조차 어려워 뒤로 삽입하는 건데, 이게 문제가 되나? 그래?
흠결 있는 오메가, 10년 가까이 들어온 말이라 사일러스에게는 상처조차 되지 못하는 단어였다.
-교태라도 부린다면 저를 견디고 안아 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제가, 제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부디 조금만 설명해 주신다면 노력할게요. 한 번만 안아 주시면 안 될까요? 맨살과 닿고 싶어요…….
가윈은 구역질이라도 할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입맛까지 떨어지는군.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 나는 당신이 원하는 것을 줄 생각이 없어.
여지조차 남기지 않는 거부에 사일러스는 올려 떴던 눈을 얌전히 내리깔았다. 가윈은 그 꼴을 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앞으로 한동안 당신을 찾는 일은 없을 거야. 발정 난 암캐처럼 구는 널 생각하니 오른 적도 없는 열이 다 식는 기분이군. 수치를 잊었어? 발정이 나 알파의 손길이 그립다면 다른 사람을 찾아봐. 불쾌하군.
가윈은 그대로 침실을 떠났다. 사일러스는 거칠게 닫히는 문을 속모를 눈으로 오랫동안 응시했다. 그리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밤새 가윈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던 탓이다.
“어제……. 어제 당신 말씀이, 발정이 났다면 다른 알파를 찾아보라고 하셨던…….”
가윈은 헛웃음 쳤다.
“허…….”
이걸 이야기하려고 아침나절 내내 본채로 와서 나를 기다렸다고?
“정말 발정이라도 난 거야? 말 그대로 발정이 났으면 암캐처럼 집이라도 나가 아무 수캐나 잡고 흘레붙으면 되는 것을 굳이 내게 묻는 연유가 무엇이지?”
“다, 당신께 허락은 받아야 하, 하니까.”
“너와 내가 무슨 관계인데? 허울뿐인 부부? 배우자? 이름뿐이라도 나는 너와 부부란 말로 엮이는 것조차 진저리가 나. 내가 너와 무슨 관계라도 되는 것처럼 묻지 마. 내 집안에 들어앉은 발정 난 암캐가 무엇과 굴러먹든 알 바 아니야. 그래, 네가 길거리를 헤매다 무슨 일을 당하건 내 알 바 아니지.”
사일러스는 말없이 가윈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의 말이 진실인지, 허락이라고 생각해도 되는지 고심하는 표정이었다.
“정신 나간 소리로 아침나절을 망칠 생각이었다면 성공했군. 꺼져.”
가윈은 그 같잖은 모양새가 눈에 거슬려 축객령을 내렸다. 사일러스는 감사하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몸을 돌려 나갔다.
0. 사일러스
그날따라 가윈의 식사 시간이 유독 길었다. 사일러스는 문밖에 서서 한 시간 넘게 기다렸다. 명목상으로나마 주인의 배우자이니 괜찮으신가요, 의자라도 내올까요, 하는 빈말이라도 건넬 법한데 아무도 도움의 손길을 건네지 않았다.
저택의 고용인들은 사일러스를 유령처럼 대했다. 어느 쪽으로 보나 그것이 이득이었다. 거의 10년에 가깝도록 주인에게 지독히 미움받는 썩은 동아줄을 무심결에라도 쥐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지?’
‘어제 별채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고용인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을 분주히 교환했다. 별채 뒷방에서 두문불출하던 썩은 동아줄이 몇 년 만에 저택 한가운데에서 고개를 빳빳이 들고 주인을 기다리고 있으니 궁금증이 일지 않을 리가.
사일러스가 노골적으로 쏟아지는 시선을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모른 척 문 앞에 서서 얌전히 가윈의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늦은 오전, 화려하게 차려지는 평범한 상류층식 아침 식사와 달리 가윈은 좀 더 이른 시간에 아침을 드는 편이었다. 검소한 성품이라기보다는 오전 시간을 번잡하게 보내는 것을 질색해서였다. 허기만 가실 정도면 되는지라 식탁 위에 오른 음식은 몇 개 되지 않았다. 간단한 샐러드와 수프, 빵, 소시지 정도로 보통 길어 봐야 30분이면 식사를 끝냈다.
그러나 오늘 가윈은 평소답지 않은 변덕을 부렸다. 일반 귀족식 정찬을 내어 오라 명한 것이다. 주방에 손질된 재료가 많지 않은지라 결국 아침은 약식 정찬으로 제공되었으나, 식사를 준비하고 먹고 마무리하는 데는 거의 두 시간이나 걸렸다. 사일러스는 식당을 오가는 화려한 트레이를 힐끔거리며 문 앞에서 가윈이 답을 주기를 기다렸다.
가윈은 더부룩한 위장에 인상을 찌푸리며 입가심으로 내온 차를 마셨다.
“그는 아직도 있나?”
식사 시중을 들던 이가 바깥 하인과 속닥거리더니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계속 그 자리에서 서서 기다리는 것이, 꼭 주인님을 뵈어야 돌아갈 생각인 것 같다고…….”
“쯧.”
가윈은 짜증스럽게 혀를 찼다. 간밤에 있었던 해괴망측했던 사건이 떠오른 탓이다.
사일러스를 완전히 잊고 지내다가도 간혹 뱃속이 끓어오르는 분노가 일 때가 있었다. 지난밤이 그랬다. 가윈은 별채의 사일러스를 찾아 비겁한 화풀이를 저지르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어제의 사일러스는 평소와 사뭇 달랐다. 이전까지는 움츠러든 채 미안하다 웅얼거리는 게 다였던 오메가는 마치 정신이 나간 것처럼 가윈에게 달라붙었다. 그 꼴에 소름이 돋아 별채에서 황급히 벗어났던 것이 바로 어젯밤 일이었다. 무엇에라도 홀린 듯 이상한 밤이었다.
거기다 대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사일러스는 이른 아침나절부터 가윈을 보겠다며 야단이었다. 그야말로 이상한 일이었다. 사일러스는 가윈을 두려워할뿐더러 태생이 얌전하고 소심하여 어지간해서는 제 의사를 표하는 일이 없었다.
그를 찾지 않은 몇 달 사이 사람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 듯했다. 마치 독기라도 품은 것처럼.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어 그를 끈질기게 기다리는 것인지 궁금할 지경이다.
“들여보내.”
시중인이 나가 말을 전하자마자 곧장 문이 열렸다.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졌다. 맥없는 성격을 대변하기라도 하는 듯 사일러스는 발소리조차 희끄무레 조심스러웠다.
가윈은 차를 마시며 신문을 뒤적거렸다. 일단 들이기는 했으나, 막상 대화는커녕 꼴도 보기 싫다는 심중이 확연히 드러나는 모양새라 사일러스는 잠시간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저…….”
사일러스는 유독 가윈 앞에서 주눅이 들어 말을 더듬었다. 처음에는 이토록 심했던 것 같지는 않은데, 매번 강렬한 미움 섞인 페로몬을 받으니 언제부턴가 턱이 달달 떨리고 혀가 꼬였다.
“무슨 일이야? 시간 없으니 용건만 말하고 나가도록 해.”
“그……. 저, 정말 다른 사람도 괘, 괜찮은가요?”
“뭐?”
가윈은 고개를 들었다. 앞뒤 내용을 모두 생략하고 이야기하니, 도무지 사일러스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말하는 법도 잊었나? 대체 무슨 뜻이야?”
“어제, 어제 말씀하셨던…….”
“어제?”
“네, 네…….”
간밤의 기억이 떠오르자 눈썹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어제 네가 수치도 잊고 창기처럼 알몸으로 매달렸을 적을 말하는 것인지?”
수치심에 사일러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가윈은 간혹 사일러스를 찾아 관계를 맺었다. 애정 따위 바랄 수 없는,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 교합이었다. 성욕을 해결하고자 하는 행위는 아니었다. 닿기조차 싫어 사일러스를 엎어 둔 채 아래만 꺼내 거칠게 쑤석이는 것이 다였다. 가윈은 아픔에 덜덜 떠는 뒤통수를 싸늘히 내려다보며 씨물을 토해 냈다. 아이 또한 바라지 않았으므로, 체내에 사정하는 일 또한 없었다.
가윈이 이토록 미워하는 사일러스와 섹스하는 까닭은 사일러스가 고통스럽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불임 딱지를 붙여 배태할 수 없는 오메가라며 손가락질 받길 원했고…… 이 짐승보다도 못한 섹스에서 비참함과 죄책감을 느끼길 바랐다.
가윈은 사일러스의 고독을 조롱했다.
“어제처럼 구역질 나도록 옷이라도 벗고 박아 달라 애원하려고?”
“…….”
사일러스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폭언과 냉대에는 아주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으나, 가끔은 그도 아팠다. 사랑받기를 포기한 지는 오래다. 사랑을 포기하자 가윈의 잔인한 언사가 주는 아픔은 한결 덜했다. 밤마다 베갯잇을 눈물로 적시는 일도 사라졌다. 주는 대로 먹고, 어두워지면 침대에 몸을 뉘어 잠들었다. 어쩌면 이렇게 그대로, 조용히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여린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이는 것처럼 슬픔과 수치에도 담담해질 날이 올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아픔에 무던해지자 단단해진 살 위로 외로움이 차올랐다.
세상에 홀로 존재한다는 감각이 선연할 때면 따뜻한 체온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쳤다. 이제 그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사랑이나 희망 따위가 아니었다. 혼자라는 외로움이었다. 도무지 현실을 바로 서서 볼 수가 없었다. 숨 막히는 고독이 발목을 잡아 그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어제가 그런 날이었다.
사일러스는 사람의 체온이 그리웠다. 고용인들은 최소한의 시중만 들어 주는 것이 다였으니 온기를 나눠 줄 이는 우습게도 가윈뿐이었다. 어찌나 사람이 그리웠던지.
사일러스는 술에 취해 거칠게 아래를 벌리는 가윈에게 매달려 얼토당토않은 요구를 했다.
-이, 이렇게 뒤, 뒤로 하는 건 싫어요. 앞으로 하, 하고 시, 싶어요.
언제나 몸을 웅크린 채 숨만 죽이고 있던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가윈은 웃었다. 즐거움이나 기쁨에서 비롯된 웃음은 아니었다.
-이게 무슨 소린지.
-제, 제 얼굴이 보기 싫으시면 오, 옷이라도 벗어 주세요. 제발, 제발요.
바짓자락을 움켜쥐는 손길에 가윈은 구역질 난다는 듯 몸을 털어 냈다. 명백한 거절이었다.
-죄송해요. 당신이 저를 조,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과 이 관계에서 큰 기쁨을 못 느낀다는 것도 추, 충분히 알고 있지만…….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다. 사일러스는 옷을 벗어 던지며 애걸했다. 저도 오메가이니, 페로몬이라도 내어 매달리고 싶었다. 하지만 사일러스는 몇 년 전부터 페로몬을 한 방울도 낼 수 없어 그조차도 시도할 수 없었다.
-잘 알고 있다니 다행이야. 너와 하는 섹스는 내게 어떤 기쁨도 주지 못해. 무엇보다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사창가의 창기와 섹스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지. 교태 하나 제대로 부리지 못하고 제대로 된 페로몬도 못 내는 오메가라니, 당신의 고루한 표정을 보면 세우는 것조차 어려워 뒤로 삽입하는 건데, 이게 문제가 되나? 그래?
흠결 있는 오메가, 10년 가까이 들어온 말이라 사일러스에게는 상처조차 되지 못하는 단어였다.
-교태라도 부린다면 저를 견디고 안아 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제가, 제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부디 조금만 설명해 주신다면 노력할게요. 한 번만 안아 주시면 안 될까요? 맨살과 닿고 싶어요…….
가윈은 구역질이라도 할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입맛까지 떨어지는군.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 나는 당신이 원하는 것을 줄 생각이 없어.
여지조차 남기지 않는 거부에 사일러스는 올려 떴던 눈을 얌전히 내리깔았다. 가윈은 그 꼴을 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앞으로 한동안 당신을 찾는 일은 없을 거야. 발정 난 암캐처럼 구는 널 생각하니 오른 적도 없는 열이 다 식는 기분이군. 수치를 잊었어? 발정이 나 알파의 손길이 그립다면 다른 사람을 찾아봐. 불쾌하군.
가윈은 그대로 침실을 떠났다. 사일러스는 거칠게 닫히는 문을 속모를 눈으로 오랫동안 응시했다. 그리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밤새 가윈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던 탓이다.
“어제……. 어제 당신 말씀이, 발정이 났다면 다른 알파를 찾아보라고 하셨던…….”
가윈은 헛웃음 쳤다.
“허…….”
이걸 이야기하려고 아침나절 내내 본채로 와서 나를 기다렸다고?
“정말 발정이라도 난 거야? 말 그대로 발정이 났으면 암캐처럼 집이라도 나가 아무 수캐나 잡고 흘레붙으면 되는 것을 굳이 내게 묻는 연유가 무엇이지?”
“다, 당신께 허락은 받아야 하, 하니까.”
“너와 내가 무슨 관계인데? 허울뿐인 부부? 배우자? 이름뿐이라도 나는 너와 부부란 말로 엮이는 것조차 진저리가 나. 내가 너와 무슨 관계라도 되는 것처럼 묻지 마. 내 집안에 들어앉은 발정 난 암캐가 무엇과 굴러먹든 알 바 아니야. 그래, 네가 길거리를 헤매다 무슨 일을 당하건 내 알 바 아니지.”
사일러스는 말없이 가윈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의 말이 진실인지, 허락이라고 생각해도 되는지 고심하는 표정이었다.
“정신 나간 소리로 아침나절을 망칠 생각이었다면 성공했군. 꺼져.”
가윈은 그 같잖은 모양새가 눈에 거슬려 축객령을 내렸다. 사일러스는 감사하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몸을 돌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