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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 지구에 내리다 3화


시원이 이야기한 회사에 도착한 것은 거의 오후 4시가 되었을 무렵이었다. 시원이에게 버스 안에서 본 남자의 이야기도 하고, 점심 얻어먹고 커피까지 얻어 마시고 어슬렁거리고 싶었지만 시원이는 단호하게 거부했다.
‘헛소리 말고 빨리 가.’
대체 그 녀석은 왜 내 마음을 몰라주는 걸까. 난 조금이라도 자기하고 같이 있고 싶은데. 매번 매정하게 그걸 뿌리치다니.
사실 시원이가 날 좀 많이 챙겨 주기는 한다. 그 녀석 아니면 누가 날 챙겨 주겠어. 아는 사람 하나 없이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시작할 때 제일 많이 도와준 것도 그 녀석이고, 내가 힘들 때마다 챙겨 주는 것도 그 녀석이고, 밥을 제일 많이 사 주는 것도 성시원이었다. 물론 학교 과제를 가장 많이 도와주는 것도 그 녀석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해 준 건 아무것도 없구나. 난 시원이가 없으면 안 되는 걸까. 갑자기 한숨이 나왔다. 그렇다고 지금 돌아갈 수는 없지만.
무거워진 마음을 끌고 지하철에서 나와 약도에 나와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회사는 지하철역과 연결된 건물에 있었다. 시원이가 가르쳐 준 대로 5층으로 올라가자 경비 업체 마크가 요란하게 붙어 있는, 대체 어떻게 열어야 될지 알 수 없는 유리문이 나왔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 보니 인터폰과 비슷하게 생긴 것이 있었다. 잠시 망설이다 용감하게 벨을 누르는 순간.
-네, 뱅크라인입니다. 누구십니까?
인터폰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기, 이무영이라고 합니다. 윤철호 씨 찾아왔는데요…….”
긴장한 탓인지 목이 살짝 잠겼다.
-윤철호 팀장님 말씀이세요?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징, 하는 전자음이 끊어지고 잠시 후 누군가 안에서 나오며 유리문이 열렸다. 안쪽에서 나온 남자는 조금 통통한 체격으로 나와 거의 눈높이가 같은, 웃는 인상의 남자였다.
“저 찾으셨다고요?”
“네, 성시원 소개로 온 이무영이라고 합니다. 아르바이트 때문에…….”
“음, 성시원……? 아, 이무영 씨!”
남자는 이미 나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시원이가 손 많이 가는 친구라 했던 그 친구군요.”
뭐어?! 성시원, 너 무슨 소리를 했기에 처음 보는 사람이 나한테 저런 소리를 하냐! 어이가 없어 나도 모르게 입을 쩍 벌리고 윤철호라는 사람을 쳐다보자 남자는 뭐가 재미있는지 어깨를 팡팡, 두들기며 웃었다.
“하하. 괜찮아요. 그 녀석한테는 세상 사람들이 다 한심하니까.”
“아, 네…….”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애매한 얼굴로 대답했다. 의외로 이 사람, 덩치에 비해 눈치가 빠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성시원의 본성을 아는 걸 보면.
“흠…….”
하지만 이렇게 아래위로 훑어볼 필요까지야 없잖아.
“뭐, 이 일은 덩치가 클 필요는 없으니까…….”
“……?”
무슨 뜻이지?
“밤새는 거 어때요?”
“……종종 합니다.”
사실은 자주 하지.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백수의 특기가 뭐겠어.
“체력은?”
“밥만 잘 먹여 주면 무한대지요.”
젊다는 것의 장점이 바로 그거지. 체력은 거의 강철 수준이라는 것. 뭐, 한 번씩 에너지가 바닥날 때는 있지만.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아니면 원래 그런 건지 윤철호라는 사람은 연신 웃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일 거라 예상되는 질문.
“게임 좋아해요?”
“네? 그야…….”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컴퓨터가 고장 나기 전까지만 해도 웬만한 온라인 게임은 나의 또 다른 세상이었다. 내가 즐기는 몇 안 되는 취미이기도 했다. 시원이도 그건 알고 있었고.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게임은 컴퓨터로 하는 게 제 맛이지.
자랑은 아니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나는 게임 센스는 나쁜 편이 아니었다. 웬만한 게임은 별 어려움 없이 몇 번만 하면 만렙까지 가는 편이었다.
“없어서 못 하죠.”
이제까지 중에서 가장 자신 있게 대답하자 윤철호라는 남자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 녀석이 추천한 거면 틀림없겠지요. 내일부터 일합시다. 정식 근무 시간은 9시부터 6시까지, 급료는 일이 끝나면 월급제로 나갑니다. 시급 7000원 정도 생각하고 계산하면 대충 맞을 겁니다. 자세한 건 그거 담당하는 놈이 있으니 들으면 될 거고. 가끔 야근을 할지도 모르는데 야근 수당 나갈 거니까 걱정 말고요.
점심, 간식 제공, 커피는 커피메이커에서 마음대로 먹으면 되고. 옷은 편한 거 입고 오고요. 기한은 현재로서는 4주 예상. 상황에 따라서 조금 늘거나 줄 수도 있지만, 중요한 건 기한 안에 완수하는 거죠. 우리 직원 둘과 함께 세 사람 정도 진행할 거야. 간단한 잡심부름도 함께해야 하지만 힘들지는 않을 거예요. 자세한 건 내일 일 시작하기 전에 다시 설명할 테고……. 빠진 거 없지?”
“…….”
……우와, 이건 대체 어디서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 건지. 넉넉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빠른 속도와 거침없는 말투로 설명을 마친 상대가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보는데, 무엇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멍하니 입만 벌린 채 바라보고 있었다.
“질문 있어요?”
“……아, 아니요. 그냥 편하게 말씀하세요.”
“그럴까? 그럼 내일부터 잘 부탁해.”
“네에. 그런데…….”
유리문 안으로 이끌려 들어가자마자 상대방의 손에 정신없이 흔들렸다. 일하기로 결정된 건 좋은데 결국 참지 못하고 처음 들어올 때부터 궁금했던 것을 묻고야 말았다.
“……여긴 뭐 하는 곳이죠?”
순간 윤철호라는 사람의 모든 동작이 딱 멈췄다. 얼굴에 은근히 머물러 있는 웃음기마저 가신, 한 마디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이 멍한 얼굴이었다.
“……모르고 왔어?”
세상에 이런 놈은 처음 본다는 듯이.
“네…….”
회사 이름이야 시원이가 스마트폰에 저장해 준 메모를 보고 알고 있었지만 이건 내가 상상하던 것과 좀 달랐다. 유리문 안으로 언뜻 보이던 사무실은 생각보다 넓었고 아마 한 층을 모두 사용하는 것 같았다. 몇 개의 룸으로 이루어진 안쪽은 사진으로만 보던 파티션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래도 몇몇의 책상은 함께 마주하고 있어 하나의 넓은 공간을 효율에 따라 몇 개로 나누어 놓은 느낌이었다.
“우리 회사 이름 알아?”
“네, 뱅크라인이라고…….”
“제대로 알고 있네. 그런데 우리 회사 이름 못 들었어? 제법 유명한데.”
“…….”
글쎄요, 제가 그걸 어떻게 알까요?
“게임 회사야. 못 들어 봤어? Plan―B라고 우리 프로젝트 팀 이름인데.”
“네?!”
말도 안 돼!
“대부 업체 아니었어요?!”
“대부 업체?! 풋, 푸하하하.”
나도 모르게 외치자, 갑자기 남자가 웃기 시작했다. 잠깐만, 이건 웃을 일이 아니야. 세상에, 내 수없이 많은 이름을 들어봤지만 ‘뱅크라인’이 어떻게 게임 회사 이름이냐고! 밖에 나가서 물어봐. 열에 아홉 명은 대부업이라고 대답할 거야.
“으하하. 이거, 이거, 강주원 같은 놈이 또 하나 있군.”
멍한 얼굴로 서 있는 내 어깨를 팡팡 소리가 날 정도로 치며 그는 웃어댔다. 마치 세상에 이것보다 더 재미있는 일은 없다는 듯.
“마음에 드는 친구네. 그래, 이왕이면 오래 일하자고. 크크크…… 난 윤철호. 개발팀 팀장이야. 팀장이라 불러도 좋고, 윤 팀장이라 불러도 좋고. 편한 대로 불러. 으흐흐, 대부 업체라…….”
정말이지……. 아저씨, 그렇게 신나게 웃으면 내가 무안해지잖아요. 그만 웃으라고요. 별로 웃긴 일도 아닌데……. 나는 그 뒤로도 그 사람, 아니 윤 팀장이 간신히 웃음을 참으며 앞으로 내가 일할 곳을 안내해 줄 때까지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서 있어야만 했다.

“그래서 내가 얼마나 황당했는지 알아?”
-…….
“처음부터 게임 회사라고 이야기했어야지!”
-내가 말 안 했어?
“안 했어!!”
-깜박했나 보네. 미안해.
깜박? 헐, 성시원. 네가 그런 거 실수할 놈이야? 너 일부러 그랬지? 나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그래서, 마음에 안 들어?
“그, 그건 아니지만…….”
-마음에 안 들면 당장이라도 다시 말씀드리지. 이무영이란 놈이 배부른 소리를 하며 거절하더라고.
“아니, 아니야! 나 정말 마음에 들어. 응, 아주 마음에 들어. 내가 잘하는 게 게임 빼면 뭐가 있겠냐. 하하, 성시원. 왜 이러시나, 다 알면서. 앞으로 잘할 수 있을 거 같아. 그럼, 물론이지.”
내가 말이지, 한 소신하거든. 소신 있게 간에 붙고 쓸개에 붙고. 인간 이무영, 소신 빼면 시체잖아? 그렇지?
-……. 어쨌든 열심히 다녀. 차비만 쓰면 밥도 해결할 수 있고. 적어도 그 조그만 편의점보다 나을 거야.
“당연하지. 고맙다.”
-잘 챙겨 먹고 다녀.
마지막 잔소리도 잊지 않고 시원이는 전화를 끊었다.
“하아…….”
……갑자기 주위가 조용해졌다. 조금 전까지 웃고 떠들던 것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지면과 맞닿아 있는 내 자취방에 누워 있으면 밖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린다. 방 한 칸에 욕실 하나. 운 좋게 갓 수리한 방을 얻게 된 것은 좋은데, 내려가거나 올라가는 것 없이 지표면과 딱 붙어 있는 내 방은 세상의 소리를 여과 없이 들려줬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하는 소리, 조급하게 뛰어가는 구두 소리, 땅이 울릴 정도의 굉음을 내뱉는 오토바이 소리.
생소할 정도로 생기 있는 사람들의 살아 있는 소리는 마치 내가 이곳에 있을 존재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란 존재는 지구 위에 내리지 못한, 아니, 내릴 수 없는 이생물(異生物)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느낌. 마음 한구석에 숨기고 있는 감정이 올라올 것만 같은 그런 느낌.
혼자 있는 건 이래서 싫어. 생각이 소용돌이쳐 날 잡아먹는다.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것을 불러일으켜 사람을 비참하게 만든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무력한 나.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