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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출발 좀…….”
혹여 그가 따라올까 급하게 택시에 오른 윤채가 억눌린 잇새로 힘들게 말했다. 그러자 그녀의 말을 이해한 것인지 택시 기사가 목적지도 없이 눈치껏 차를 출발했다.
“흐흑…….”
자꾸만 터져 나오는 울음에 택시 기사가 힐끗거리는 게 느껴졌지만 지금 그녀에겐 남의 시선을 신경 쓸 여유 따윈 없었다.
위이잉.
뒤늦게 울리는 휴대폰을 집어 전원도 꺼 버렸다. 그녀는 목적지도 없이 도로를 달리는 택시 안에서 아픈 눈물을 계속 쏟아 내고 있었다.
그렇게 그에게서 등을 지고 돌아오는 길, 윤채는 오늘이 주원과 연인으로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했다. 이별을 고했기에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재회는 없을 거라 여겼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생각을 비웃듯 삶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마치 과거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정윤채의 옆은 언제나 서주원의 자리라는 듯. 정말 끝일 거라 생각했던 서주원과 정윤채의 관계는 예상치 못한 일로 인해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1
주원과 헤어지고 일방적으로 연락을 피한 것도 벌써 이틀째가 되었다. 혹여 그가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제는 호텔에 묵으며 그와의 이별을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5년을 사귀는 동안에도 몇 번의 이별은 찾아왔었다. 그때마다 죽을 듯 아팠고, 세상이 끝날 것처럼 울었다. 그러나 결국엔 그녀를 찾아와 잡아 주는 주원에게 말없이 안기고 말았다. 사실 그때는 마음이 먼저 알고 있었다. 그와의 관계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우선 만나, 만나서 다시 얘기하자.]
[너 이러면 나 정말 화낸다.]
[윤채야, 오빠 전화 좀 받아 주라.]
동갑인데도 생일이 빠르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오빠라 칭하는 주원 때문에 가끔 헛웃음을 터트리곤 했었다. 회유와 협박, 이제는 꼬리까지 내려가며 그녀를 살살 달래고 있는 주원이었지만 윤채는 여전히 웃지 못했다. 아마 그도 이번 싸움이 평소와 다르다는 걸 느끼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 내가 더 이해하려고 노력할게. 동창회도 가고 싶으면 나랑 같이 가자.]
끝까지 혼자 가라고 하지는 않으면서도 한발 물러서며 같이 가자고 청하는 그의 말에 윤채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바보, 서주원 진짜 바보다.”
악순환이었다. 사귄 기간이 길어서인지,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없어서인지 그와의 싸움은 끝없이 반복되었다. 일반적으로 연인들이 잦게 싸우는 일정 시기를 보내고 나면 서로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어 더 돈독하고 평탄한 관계를 유지해 나간다고 하던데 그와 그녀의 경우에는 매번 같은 패턴의 싸움과 화해를 지속했다.
윤채는 엊그제 아침까지도 그와 함께 누웠던 침대를 쓸어내리며 혼자만의 공간에서 주원의 온기를 찾고 있었다.
[오늘 소주 어때?]
시련의 아픔에 잠겨 쓸쓸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때에 희주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좋아.]
그것을 확인한 윤채가 빠르게 답장을 보냈다.
동화 삽화 그리는 것을 주된 일로 하는 윤채는 작업이 없을 때면 종종 희주와 술잔을 기울이곤 했다. 다른 건 질색하면서도 희주와 마시는 술에 대해선 한없이 관대한 주원으로 인해 약속을 자주 만들었다. 희주와 강찬, 그와 그녀까지 고등학교 때부터 지겹도록 붙어 다니던 친구들이었기에 처음엔 희주와 둘이 마시다가도 퇴근한 주원과 강찬이 자연스레 자리를 채웠다. 이제는 오히려 둘보다 넷이 함께하는 자리가 더 익숙할 정도였다.
[오늘 서주원은 절대 부르지 마.]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윤채가 연이어 메시지를 보냈다.
[너희 또 싸웠지?]
싸우면 또 얼마나 싸운다고 불 보듯 뻔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희주의 메시지에 입을 삐죽이던 윤채가 금세 수긍하고 말았다. 주원과 문제가 생기면 늘 찾는 사람이 희주였으니 그렇게 느낄 만도 했다.
[헤어졌어.]
다시금 진지해진 윤채가 몇 번을 망설이던 끝에 완성한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작성한 메시지를 보며 가슴이 찌르르 아파 오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번에는 며칠짜린데?]
아직 그들의 상황을 모르는 희주가 이번에는 어느 정도의 싸움이냐며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이번엔 진짠데……. 만나서 얘기해. 그러는 게 좋겠어.]
위이잉.
“최희주, 빠르네.”
이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것인지 메시지가 아닌 전화를 건 희주를 보며 윤채가 씁쓸하게 웃었다.
“응.”
―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인데 이렇게 심각해?
“만나서 얘기하자니까…….”
―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려.
“지금 갈 건데 그 잠깐도 못 기다려?”
― 자꾸 딴소리하지 말고 얼른 말이나 해 봐.
성격 급한 희주의 독촉에 다른 말로 빙그르 돌리던 윤채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터진 거지 뭐. 엊그제 대학 동기 모임이 있었는데 거기로 주원이가 오는 바람에 나도 못 참고…….”
불과 이틀 전의 일인데 그때를 떠올리자 침이 꼴깍 넘어갔다. 어쩌자고 주원에게 앙칼지게 달려들며 제 할 말을 다 했는지 새삼 스스로도 놀라고 있었다.
― 못 참고 뭐?
“그동안 쌓아 둔 말 다 쏟아 냈어.”
― 네가 정말 그랬단 말이야? 서주원도 엄청 놀랐겠네?
“아니, 전혀. 눈 하나 깜짝 안 하던데. 오히려 헤어지자고, 나도 많이 지친다고 하니까 그제야 조금 놀라는 눈치였어.”
― 그런데 왜 나한테 연락 안 했어?
“그냥, 나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어. 그리고 네가 마침 연락했잖아.”
― 괜찮아? 아니다, 이런 걸 묻는 것도 웃기네. 이럴 때는 술이 최고지. 지금 바로 술집으로 와.
“아직 다섯 시도 안 됐는데?”
― 남들은 제 부모도 못 알아본다는 낮술도 하는데 뭐. 다섯 시면 낮술도 아니야. 잔말 말고 나와.
서두르는 희주 덕에 윤채의 마음도 덩달아 바빠졌다. 하기야 집에 있으면 청승맞게 그가 베던 베개나 끌어안고 있을 텐데 그러느니 희주를 만나는 편이 훨씬 나았다. 윤채는 팅팅 부운 눈을 가라앉힐 새도 없이 급하게 나갈 준비를 시작했다.
“여기야.”
평소 자주 찾던 곳으로 익숙하게 걸음을 옮기자 가장 안쪽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희주가 보였다.
“진짜긴 한 모양이네?”
마주 앉은 그녀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희주가 제법 진지해진 음성으로 말했다.
“응?”
“네 눈 보니까 사태의 심각성을 알겠다고.”
“아…….”
윤채가 멋쩍게 웃으며 붉게 물든 눈을 손으로 쓱쓱 비볐다.
“자, 받아.”
미리 얘기를 들어서인지 특별한 물음 없이 그녀의 잔을 채워 주던 희주가 맑은 술이 따라지기 무섭게 금세 비워 내는 그녀를 보곤 덤덤한 위로를 건넸다.
“우리도 이제 스물여덟인데 언제까지 연애만 할 수는 없잖아. 이젠 진짜 결혼할 상대를 찾아야지. 어차피 헤어질 거였다면 더 늦지 않은 게 다행일지도 몰라.”
“그런……가?”
“응, 그런 의미에서 난 지금의 네 선택이 옳았길 바라.”
주원과 헤어진다는 건 앞으로 그의 자리를 대신할 누군가가 나타날 수 있다는 걸 의미했다. 그건 비단 그녀만이 아닌 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분명 알고 있던 사실인데도 마음이 싸하게 아려 왔다.
희주의 말에 입술을 꾹 깨물던 윤채가 방금 들이켠 술을 핑계 삼아 입을 열었다.
“사실 여전히 주원이를 사랑하는데 반복되는 우리의 싸움은 끝날 기미가 안 보여. 앞으로도 그 싸움을 지속할 거라고 생각하니까 진짜 숨을 못 쉬겠더라고.”
“그래, 네가 충분히 지칠 만해.”
술잔을 채워 주며 그녀를 다독이는 희주의 말에 윤채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왜 웃어?”
“주원이도 네 친구잖아.”
“그렇지.”
“그럼 나한테 하듯이 주원이한테 가서도 편들어 줄 거야?”
윤채의 말에 희주도 덩달아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야 되지 않겠어? 그러니까 누가 친구끼리 사귀래?”
유치하게 편을 든다는 표현을 쓰며 맑게 웃는 윤채에게 희주가 너스레를 떨자 한껏 올라가 있던 그녀의 입꼬리가 끝을 모르고 하강했다.
“출발 좀…….”
혹여 그가 따라올까 급하게 택시에 오른 윤채가 억눌린 잇새로 힘들게 말했다. 그러자 그녀의 말을 이해한 것인지 택시 기사가 목적지도 없이 눈치껏 차를 출발했다.
“흐흑…….”
자꾸만 터져 나오는 울음에 택시 기사가 힐끗거리는 게 느껴졌지만 지금 그녀에겐 남의 시선을 신경 쓸 여유 따윈 없었다.
위이잉.
뒤늦게 울리는 휴대폰을 집어 전원도 꺼 버렸다. 그녀는 목적지도 없이 도로를 달리는 택시 안에서 아픈 눈물을 계속 쏟아 내고 있었다.
그렇게 그에게서 등을 지고 돌아오는 길, 윤채는 오늘이 주원과 연인으로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했다. 이별을 고했기에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재회는 없을 거라 여겼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생각을 비웃듯 삶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마치 과거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정윤채의 옆은 언제나 서주원의 자리라는 듯. 정말 끝일 거라 생각했던 서주원과 정윤채의 관계는 예상치 못한 일로 인해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1
주원과 헤어지고 일방적으로 연락을 피한 것도 벌써 이틀째가 되었다. 혹여 그가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제는 호텔에 묵으며 그와의 이별을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5년을 사귀는 동안에도 몇 번의 이별은 찾아왔었다. 그때마다 죽을 듯 아팠고, 세상이 끝날 것처럼 울었다. 그러나 결국엔 그녀를 찾아와 잡아 주는 주원에게 말없이 안기고 말았다. 사실 그때는 마음이 먼저 알고 있었다. 그와의 관계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우선 만나, 만나서 다시 얘기하자.]
[너 이러면 나 정말 화낸다.]
[윤채야, 오빠 전화 좀 받아 주라.]
동갑인데도 생일이 빠르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오빠라 칭하는 주원 때문에 가끔 헛웃음을 터트리곤 했었다. 회유와 협박, 이제는 꼬리까지 내려가며 그녀를 살살 달래고 있는 주원이었지만 윤채는 여전히 웃지 못했다. 아마 그도 이번 싸움이 평소와 다르다는 걸 느끼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 내가 더 이해하려고 노력할게. 동창회도 가고 싶으면 나랑 같이 가자.]
끝까지 혼자 가라고 하지는 않으면서도 한발 물러서며 같이 가자고 청하는 그의 말에 윤채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바보, 서주원 진짜 바보다.”
악순환이었다. 사귄 기간이 길어서인지,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없어서인지 그와의 싸움은 끝없이 반복되었다. 일반적으로 연인들이 잦게 싸우는 일정 시기를 보내고 나면 서로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어 더 돈독하고 평탄한 관계를 유지해 나간다고 하던데 그와 그녀의 경우에는 매번 같은 패턴의 싸움과 화해를 지속했다.
윤채는 엊그제 아침까지도 그와 함께 누웠던 침대를 쓸어내리며 혼자만의 공간에서 주원의 온기를 찾고 있었다.
[오늘 소주 어때?]
시련의 아픔에 잠겨 쓸쓸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때에 희주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좋아.]
그것을 확인한 윤채가 빠르게 답장을 보냈다.
동화 삽화 그리는 것을 주된 일로 하는 윤채는 작업이 없을 때면 종종 희주와 술잔을 기울이곤 했다. 다른 건 질색하면서도 희주와 마시는 술에 대해선 한없이 관대한 주원으로 인해 약속을 자주 만들었다. 희주와 강찬, 그와 그녀까지 고등학교 때부터 지겹도록 붙어 다니던 친구들이었기에 처음엔 희주와 둘이 마시다가도 퇴근한 주원과 강찬이 자연스레 자리를 채웠다. 이제는 오히려 둘보다 넷이 함께하는 자리가 더 익숙할 정도였다.
[오늘 서주원은 절대 부르지 마.]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윤채가 연이어 메시지를 보냈다.
[너희 또 싸웠지?]
싸우면 또 얼마나 싸운다고 불 보듯 뻔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희주의 메시지에 입을 삐죽이던 윤채가 금세 수긍하고 말았다. 주원과 문제가 생기면 늘 찾는 사람이 희주였으니 그렇게 느낄 만도 했다.
[헤어졌어.]
다시금 진지해진 윤채가 몇 번을 망설이던 끝에 완성한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작성한 메시지를 보며 가슴이 찌르르 아파 오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번에는 며칠짜린데?]
아직 그들의 상황을 모르는 희주가 이번에는 어느 정도의 싸움이냐며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이번엔 진짠데……. 만나서 얘기해. 그러는 게 좋겠어.]
위이잉.
“최희주, 빠르네.”
이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것인지 메시지가 아닌 전화를 건 희주를 보며 윤채가 씁쓸하게 웃었다.
“응.”
―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인데 이렇게 심각해?
“만나서 얘기하자니까…….”
―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려.
“지금 갈 건데 그 잠깐도 못 기다려?”
― 자꾸 딴소리하지 말고 얼른 말이나 해 봐.
성격 급한 희주의 독촉에 다른 말로 빙그르 돌리던 윤채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터진 거지 뭐. 엊그제 대학 동기 모임이 있었는데 거기로 주원이가 오는 바람에 나도 못 참고…….”
불과 이틀 전의 일인데 그때를 떠올리자 침이 꼴깍 넘어갔다. 어쩌자고 주원에게 앙칼지게 달려들며 제 할 말을 다 했는지 새삼 스스로도 놀라고 있었다.
― 못 참고 뭐?
“그동안 쌓아 둔 말 다 쏟아 냈어.”
― 네가 정말 그랬단 말이야? 서주원도 엄청 놀랐겠네?
“아니, 전혀. 눈 하나 깜짝 안 하던데. 오히려 헤어지자고, 나도 많이 지친다고 하니까 그제야 조금 놀라는 눈치였어.”
― 그런데 왜 나한테 연락 안 했어?
“그냥, 나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어. 그리고 네가 마침 연락했잖아.”
― 괜찮아? 아니다, 이런 걸 묻는 것도 웃기네. 이럴 때는 술이 최고지. 지금 바로 술집으로 와.
“아직 다섯 시도 안 됐는데?”
― 남들은 제 부모도 못 알아본다는 낮술도 하는데 뭐. 다섯 시면 낮술도 아니야. 잔말 말고 나와.
서두르는 희주 덕에 윤채의 마음도 덩달아 바빠졌다. 하기야 집에 있으면 청승맞게 그가 베던 베개나 끌어안고 있을 텐데 그러느니 희주를 만나는 편이 훨씬 나았다. 윤채는 팅팅 부운 눈을 가라앉힐 새도 없이 급하게 나갈 준비를 시작했다.
“여기야.”
평소 자주 찾던 곳으로 익숙하게 걸음을 옮기자 가장 안쪽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희주가 보였다.
“진짜긴 한 모양이네?”
마주 앉은 그녀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희주가 제법 진지해진 음성으로 말했다.
“응?”
“네 눈 보니까 사태의 심각성을 알겠다고.”
“아…….”
윤채가 멋쩍게 웃으며 붉게 물든 눈을 손으로 쓱쓱 비볐다.
“자, 받아.”
미리 얘기를 들어서인지 특별한 물음 없이 그녀의 잔을 채워 주던 희주가 맑은 술이 따라지기 무섭게 금세 비워 내는 그녀를 보곤 덤덤한 위로를 건넸다.
“우리도 이제 스물여덟인데 언제까지 연애만 할 수는 없잖아. 이젠 진짜 결혼할 상대를 찾아야지. 어차피 헤어질 거였다면 더 늦지 않은 게 다행일지도 몰라.”
“그런……가?”
“응, 그런 의미에서 난 지금의 네 선택이 옳았길 바라.”
주원과 헤어진다는 건 앞으로 그의 자리를 대신할 누군가가 나타날 수 있다는 걸 의미했다. 그건 비단 그녀만이 아닌 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분명 알고 있던 사실인데도 마음이 싸하게 아려 왔다.
희주의 말에 입술을 꾹 깨물던 윤채가 방금 들이켠 술을 핑계 삼아 입을 열었다.
“사실 여전히 주원이를 사랑하는데 반복되는 우리의 싸움은 끝날 기미가 안 보여. 앞으로도 그 싸움을 지속할 거라고 생각하니까 진짜 숨을 못 쉬겠더라고.”
“그래, 네가 충분히 지칠 만해.”
술잔을 채워 주며 그녀를 다독이는 희주의 말에 윤채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왜 웃어?”
“주원이도 네 친구잖아.”
“그렇지.”
“그럼 나한테 하듯이 주원이한테 가서도 편들어 줄 거야?”
윤채의 말에 희주도 덩달아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야 되지 않겠어? 그러니까 누가 친구끼리 사귀래?”
유치하게 편을 든다는 표현을 쓰며 맑게 웃는 윤채에게 희주가 너스레를 떨자 한껏 올라가 있던 그녀의 입꼬리가 끝을 모르고 하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