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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일찍 일어난 새가 먹이를 먼저 잡는다. 그것은 고래로부터 전해 내려온 불변의 진리다.
빈약한 몸매의 선우는 그런 불변의 진리를 매일 같이 실천하는 고달픈 인생을 살아왔다.
누구는 가만히 앉아 부모님이 떠먹여 주는 밥을 먹는데, 누구는 새벽같이 인력 시장에 나가 해가 질 때까지 추위에 떨며 일하고 있던 거다.
선우는 그 생활을 무려 2년이나 했다. 선우의 나이 이제 고작 스무 살에 불과한데도.
백 세 시대에서 스무 살. 아직 많이 어린 나이라 할 수 있는 선우가 이렇게 고달프게 살게 된 것에는 부모의 몫이 가장 컸다. 정확하게는 부모를 잘못 만난 죄 때문이었다.
선우의 아버지는 선우가 10살이 되던 해에 돌아가셨다. 아내의 잦은 외도와 가출. 그로 인해 매일 같이 마신 술, 그것이 원인이었다.
사고를 당한 그날도 아버지는 만취 상태였다. 비틀비틀 걷다가 그만 도로 쪽으로 넘어져 버렸고, 하필이면 그때 차가 돌진했다.
늦은 밤에다가 갑자기 길가에 뻗어버린 아버지를 운전자는 제때 발견하지 못했다. 뒤늦게 알아채고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아버지를 딱딱한 바퀴로 짓누른 채 10m 이상 끌고 간 이후였다.
선우의 아버지는 결국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유언 한마디도 제대로 남기지 못했다.
아버지의 돌연한 사망에 선우는 졸지에 고아가 되었다.
“아, 아빠…….”
선우가 깊은 실의에 빠져 있던 그때, 한 여인이 불현듯 나타났다. 그 여인은 일곱 살 때 낯선 남자와 함께 야반도주했던 선우의 어머니였다.
“선우야.”
“엄…마?”
나타난 선우의 어머니는 검은색 상복을 가지런히 입고 있었다. 매일같이 아버지에게 욕설과 저주를 퍼붓던 예전의 어머니가 아니었다.
“괜찮아, 선우야. 엄마가 있잖아.”
갑작스레 나타난 어머니는 아버지의 장례식을 제법 잘 치러주었다. 장례식 중 아주 가끔 양아치처럼 생긴 어떤 남자와 속닥거리는 것만 빼면 여느 어머니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런 어머니가 돌변한 것은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나고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다.
“엄마?”
“내가 왜 네 엄마야!”
“엄마, 갑자기 왜 그래요? 제가 뭐 잘못한 것 있어요?”
“내가 왜 네 엄마냐니까!”
나중에 알고 보니 어머니는 집 보증금, 아버지의 사망 보험금, 사고자 위로금, 각종 예금 등을 노리고 되돌아온 것이었다.
돈을 외부로 다 빼돌리기 전에 선우가 주위에 도움을 요청할까 봐 애써 엄마인 척 역겨운 연기를 했던 것이다.
어머니, 아니 그 여자는 선우에게 단 한 푼의 돈도 주지 않았다. 아버지의 유산, 그 돈을 모두 챙겨 장례식 내내 속닥거리던 그 남자와 함께 달아났다.
덕분에 선우는 열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길거리에 나앉았다. 거리를 정처 없이 헤매었다. 그러다 한 독지가와 만나게 되었다.
“너 왜 그러고 있니?”
그 독지가는 40대 중반의 여인이었다. 얼굴에서 삶의 환희와 기쁨이 느껴진다. 절망으로 물든 선우와 참으로 대비되는 얼굴이다. 10살밖에 살지 않은 선우가 저런 얼굴을 하고 있어야 하는데. 선우는 그녀에게 솔직히 대답했다.
“갈 곳이 없어요.”
“엄마랑 아빠는 어디 계시는데?”
“아빠는 돌아가셨고, 엄마는 저 두고 도망갔어요.”
“…….”
선우는 그날 만난 독지가 덕분에 서울의 한 보육원에 가게 되었다. 그녀가 직접 후원하고 있는 소규모 보육원이었다. 하지만 선우는 그 보육원에서조차 마음 편히 있을 수 없었다.
“야, 너희 엄마, 새 남자 만나서 도망갔다며?”
“…….”
“킥킥, 돈도 다 들고 날랐다며?”
단지 부모 있는 고아라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했다. 어떤 때는 정말 아무 이유 없이 집단으로부터 폭행도 당했다.
“왜 사냐? 이 새끼야. 그냥 죽지.”
그런데도 선우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이곳에서마저 나가게 되면 정말로 갈 데가 없었다.
‘버텨야 해… 버텨야 해.’
하루하루를 이 악물고 버티다 보니 선우의 나이도 어느새 열여덟이 되었다. 독립의 최소한의 조건이 충족된 것이었다.
선우는 그 길로 보육원 원장에게 찾아갔다.
“독립할게요.”
“선우야. 정부로부터 독립 자금 받으려면 만 18세까지 이곳에 있어야 해. 그러니까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참자, 응?”
“그깟 독립 자금 받자고 일 년을 더 있기 싫어요. 차라리 나가서 굶어 죽겠어요.”
“선우야.”
“원장님은 걔들 다 못 내쫓으시잖아요. 그럴 마음도 없고요. 그러니까 제가 나갈게요. 제가 나간다고요!”
“선우야, 제발. 응?”
그 해, 선우는 무단으로 학교를 자퇴했다. 지긋지긋했던 보육원에서도 완전히 독립했다.
그때 선우 수중에 있던 돈은 고작 10만 원이었다. 그것도 보육원 원장님이 따로 챙겨주신 돈이었다.
선우는 곧장 일을 시작했다. 하루라도 놀 처지가 되지 못했다.
부모의 뒷받침 없이 들어선 사회는 냉혹했다.
“성인 맞아?”
“예, 맞아요.”
“네가 성인이든 아니든 솔직히 상관은 없는데, 농땡이만 피우지 마. 농땡이 피우다 걸리면 배 째버릴 테니까. 알겠어?”
“예.”
사회는 미성년자라고 봐주지 않았다. 아니, 미성년자라서 더 구박하고 일자리조차 구하기 힘들었다.
선우는 이 냉혹한 사회 속에서 이 악물고 하루하루를 견뎠다. 잠은 찜질방에서 자고, 일은 뭐든 가리지 않고 했다. 어떨 때는 불법적인 일도 했다. 도박장 일이었다.
“경찰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알았어.”
그렇게 한 달여를 모은 돈으로 고시원 방 한 칸을 구했다. 수많은 고시원 중에서도 가장 싼 값이던, 정말 열악한 고시원이었다.
그때부터 선우는 불법적인 일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지금 다니는 인력 사무소에 본격적으로 다녔다. 고시원이라지만 명확한 주소지가 있으니 인력 사무소에서도 받아주었다.
선우는 그 인력 사무소를 꾸준히 다녔다. 길다면 긴 시간, 2년을 다닌 결과 2,000만 원이라는 목돈을 모았다.
“집부터, 집부터 바꾸자.”
선우는 모은 목돈으로 전셋집을 구했다. 인력 사무소 근처 부동산 여기저기를 돌아다닌 끝에 정말 천운으로 15평짜리 작은 오피스텔을 2,000만 원의 전세보증금만 주고 구할 수 있었다.
“그래도 고시원보단 낫다.”
2,000만 원으로 구한 오피스텔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신축 건물도 아니었고, 시설이 좋은 편도 아니었다.
서울의 2,000만 원 오피스텔 전셋집이 좋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땅값 비싸기로 소문난 지역이 바로 서울인데.
구한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부동산 사장님과 건물주의 배려가 없었다면 이런 집조차 구하지 못했을 거다.
그런데도 고시원보다 10배는 더 나았다. 구타와 욕설, 눈칫밥을 먹어야 했던 보육원보다 1,000배는 더 나은 것 같다. 마침내 선우는 오피스텔에 입성했다.
“내 집이다!!”
오피스텔로 이사한 선우는 한동안 인력 사무소에 나가지 않았다. 이사한 지 3일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집에 있었다.
인력 사무소에 나가기 시작한 이후 한 번도 빠진 적 없던 인력 사무소 일을 이렇듯 연속으로 빠진 이유는 이삿짐이 많아서도, 또 몸이 아파서도 아니었다.
이사한다고 어쩔 수 없이 쉬는 김에 이번 주 내내 쉬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수고했다. 선우야, 수고했어.’
독립 후 선우는 정말 개미처럼 일해 왔다. 길거리 거지보다 더 못난 행색으로 살며 돈을 악착같이 모았다.
겨우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집을 구했으니 1주일, 단 1주일쯤은 베짱이 같은 호사를 느껴보고 싶었다.
선우는 이틀을 집에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바닥을 보인 체력을 다시 충전했다.
‘아, 살 것 같아.’

선우는 이틀을 쉬면서 쉬지 못해 비명을 지르는 근육들은 모두 진정시켰다. 혹사당해 아프다 소리 지르는 관절들도 겨우 안정시켰다. 삼 일째 되던 날, 드디어 움직였다. 겨울잠 자던 곰이 동굴 밖으로 나오듯 집에서 나왔다.
“도서관이나 가볼까?”
선우는 어딜 갈까 하다가 난생처음으로 도서관에 가 보기로 했다. 방 안에 틀어박혀 거창한 계획을 꽤 많이 세웠지만 그 모든 계획엔 꼭 돈이 필요했고, 현재 선우에겐 그럴 돈이 없었다.
그래서 결국 가게 된 곳이 집 근처 3층 규모의 대형 도서관이었다. 딱히 책을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용이 무료라서였다.
선우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소설책에 흥미를 느꼈다. 내친김에 바로 회원증도 만들고, 책도 빌렸다.
“대여 기간은 총 3일입니다.”
“예.”
선우는 책 3권을 들고 도서관을 걸어 나왔다. 하필이면 도서관 열람실에 빈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선우는 곧장 집에 돌아왔다. 편한 자세로 앉아 아무 생각하지 않고 책을 읽었다.
“으, 졸리다.”
읽다 보니 잠이 왔다. 분명 책은 눈은 뗄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는데 눈은 무척 졸렸다. 아무래도 책 읽는 습관이 들지 않아서 같다.
하긴, 책을 진짜 안 읽긴 했다. 고등학교 다닐 때조차 책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었으니까.
선우는 애써 졸음을 쫓지 않았다. 며칠을 더 쉴 생각이었기에 가만히 있었다.
선우는 그대로 잠들었다. 책을 베개 삼아 코까지 골면서.

어느새 아침이 왔다. 먼저 일어난 참새가 짹짹! 소리를 내며 날아다닌다.
이른 아침부터 청소부 아저씨들은 쓰레기를 치우기 여념이 없다. 쓰레기차도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움직인다.
오늘따라 선우도 일찍 일어났다. 해가 뜨는 순간 눈이 저절로 떠졌다.
“아, 왜 이러지?”
선우는 갑자기 몸이 근질근질했다. 2년 쉬지 않고 일하다가 갑자기 며칠간 일을 안 하니 몸이 다 찌뿌둥했다.
선우는 오늘부터라도 다시 인력 시장에 나갈까 하다가 그만뒀다. 돈이 없는 탓에 하고 싶었던 일들을 그대로 할 순 없어도 쉬자고 생각한 기간은 어떻게든 다 채우고 싶었다.
선우는 대충 씻고 옷을 입은 다음 산책하러 나갔다. 밥은 개운하게 운동하고 먹을 생각이었기에 먹지 않았다. 인근 공원으로 무작정 걸었다.
“괜히 나왔나.”
이른 봄이라 그런지 아직 쌀쌀했다. 찬바람 때문에 옷깃이 절로 여며졌다. 공원엔 제대로 핀 꽃 하나 보이지 않았다. 나무들은 잎 하나 없이 모두 헐벗었다. 초록색 봄옷을 입으려면 아직 먼 것 같다. 도리어 흰색 겨울옷을 안 입는 게 다행이다.
괜히 산책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집에 있을 걸, 잠이나 더 잘걸.
그런 생각을 하던 그때, 생각지도 못했던 소리가 들려왔다.
꽝! 꽈―광! 꽝!
‘뭐, 뭐야?’
도심 한가운데에 위치한 공원 중심부에서 폭발음이 연이어 들려왔다. 폭발음 사이로 알 수 없는 내용의 고성도 들려오고 있었고, 언뜻언뜻 총기 소리마저 들려왔다.
빛이 번쩍번쩍 쏟아지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쏟아지는 빛의 색은 참으로 다양했다. 아무래도 공원 중심부에서 누군가가 화기를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잠깐, 화기?
선우는 폭발음에 놀라 본능적으로 엎드렸다. 여전히 쉴 새 없이 폭발음이 들려오는 공원 중심부를 갈등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신고할까?’
순간 경찰에 신고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 소리가 정말 폭탄이 폭발하며 나는 소리라면 어디든 우선 신고하는 게 맞았다. 그러나 선우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으니까.
‘아니야. 에이, 설마…….’
대한민국은 총기 사용이 금지된 나라다. 미국에서 흔히 일어나는 총기 사고도 대한민국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나라에서 총도 아니고 폭탄? 말도 안 된다. 조직 간의 화기를 이용한 전쟁? 있을 수 없다.
아무래도 공연 같다. 그게 가장 타당하고 합리적인 추측이다. 공연이 맞다면 괜히 경찰을 불러 초를 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선의로 행한 일로 욕을 얻어먹을 수도 있다.
그렇게 결론 내린 선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옷에 묻은 흙과 먼지를 모두 털어낸 다음 발길을 돌렸다.
한 발자국 내디디고, 두 발자국 내디뎠다. 그러다 문득 공연의 내용이 궁금해졌다.
‘무슨 공연이기에?’
대체 무슨 공연을 하기에 저런 폭발음이 연속해서 나는 걸까? 어떤 역동적인 연출을 선보이고 있길래 이런 특수 효과를 다량으로 쓰고 있는 걸까?
갑자기 두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산책 나와 본 거라곤 앙상한 나무들과 썩은 낙엽뿐이다 보니 더 그랬다.
선우는 고민 끝에 발을 움직였다.
“재미없는 공연이기만 해봐라. 소음 공해로 경찰에 확 신고해 버릴 테니까.”
결국 선우의 발이 움직인 쪽은 공원 안쪽으로 들어가는 방향이었다. 하지만 선우는 몰랐다. 저 정도로 화려한 연출의 공연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관객들의 환호성 소리가 없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