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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선우는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왔다. 귀신을 본 것 같이 창백한 표정으로 문을 열었다.
딸깍. 딱.
평소에는 훔쳐갈 게 없다는 이유로 하지 않던 잠금장치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했다. 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
선우는 그 길로 침대로 갔다. 고양이처럼 웅크린 채 이불을 덮었다.
그런데도 진정이 되지 않았다. 사시나무 떨리듯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선우는 그 와중에 생각했다.
‘정말 귀신의 장난이었을까?’
귀신의 장난이라면 뭐 하나 남는 게 없어야 했다. 귀신은 허무에서 찾아와 공포를 먹고사는 존재니까. 그런데 선우의 품에는 두 가지나 남아 있다. 붉은색 액체가 들어 있는 병과 금색의 시계처럼 생긴 물건.
선우는 여전히 들고 있던 두 가지 물건을 슬며시 이불 밖으로 내보냈다. 버리기 아깝다는 맹목적인 생각 때문에 이곳까지 들고 왔지만. 괜히 꺼림칙하고 무서웠다.
그리고 한동안 이불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한 마리의 두더지처럼 굴에 자신을 완전히 가뒀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 갔다.
똑딱. 똑딱. 똑딱.
영원히 진정되지 않을 줄 알았던 공포, 그런 공포도 시간이 지나자 차차 줄어들었다.
‘답답하다.’
3시간쯤 지났을 때는 내내 숨어 있었던 이불 안이 처음으로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4시간쯤 지난 순간에는
‘이만 나갈까?’
라는 생각이 머리에 들었다.
선우는 그렇게 약 4시간 30분 만에 이불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여전히 몸을 떨면서도 용기를 내어 집 안에 귀신이 있나 없나 확인했다.
‘없다.’
집 안에는 귀신이 없었다. 뭐 하나 달라진 것 없어 보였고, 실제로 뭐 하나 달라진 게 없었다. 애초에 선우는 귀신을 만난 게 아니었다. 그러니 귀신이 있을 턱이 없었다.
선우는 주변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이불 밖으로 서서히 나왔다.
꼬르륵.
이불 밖에 나선 순간 배에서 소리가 났다. 기상 후 6시간 넘게 지나 지금 시각은 오전 11시였다. 아침밥을 먹기엔 한참이나 늦은 시간이었고, 때 이른 점심시간이라 할 수 있었다.
선우는 그것을 깨닫자 곧바로 밥을 먹으려 했다.
‘밥부터… 먹자.’
선우는 귀신보다 배고픈 게 더 무서웠다. 거리를 정처없이 배회하며 시달렸던 배고픔에 대한 경험 때문이었다.
선우는 침대에서 벗어나 싱크대로 갔다. 허름한 양은 냄비에 곧장 라면을 끓였다.
선우는 라면으로 허기를 달랬다. 슬며시 찬밥도 말아먹었다.
꺽.
“으… 이제야 살 것 같다.”
배가 차자 피가 따뜻해졌다. 따뜻해진 피는 한순간에 사라졌던 용기를 다시 불러일으킨다. 용기는 아까에 일에 관해 묻고 있다. 아까의 일을 정확히 다시 생각해 보자는 마음이 든다.
선우는 바닥 중앙에 자리 잡고 앉았다. 아까의 일을 다시 떠올렸다.
‘그가 정말 귀신이었을까?’
돌이켜보니 정말 귀신에게 홀렸던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다시 생각해 보니 그는 결코 귀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는 분명 귀신이 아니었다. 귀신이 입버릇처럼 지구인, 지구인 거릴 리가 없다.
그러고 보니 그 동굴, SF영화에서 본 적 있는 것 같다. 차원 주머니, 즉 아공간이라고 했던가?
어투, 행동, 그가 행한 일 등을 모두 종합해서 생각해 봤다.
차분한 마음으로, 시간을 가지고.
어쩌면 귀신보다 더 희귀한 존재와 만난 걸지도 모른다.
선우는 사내 말고 그곳에 있던 또 다른 생명체에 대해 떠올렸다.
‘그러니까 그게…….’
다행히 괴생물체에 대한 기억이 뇌리에 정확히 남아 있었다. 5시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하나도 지워지지 않았다.
‘ET를 닮았지?’
또 다른 생명체의 머리는 영화 ET의 주인공 ET를 닮았다. 대부분 피곤죽이 된 탓에 뭐라고 설명하기 그랬지만, 머리는 분명 ET였다.
ET는 대표적인 외계인 캐릭터다. 외계인과 귀신? 뭔가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다. 그럼 그도 외계인일까? 역시 외계인이 맞는 건가?
잠깐! 그전에 뭔 상황이 있었지 않았나? 폭탄 소리 같은 소리도 들렸고 고함소리 같은 것도 들려고… 그럼, 설마?
추측하고 추측하니 톱니바퀴가 얼추 맞춰졌다. 불량일지언정 어쨌든 맞춰진 톱니바퀴는 조금씩 굴러가면서 한 가지 가설을 만들어냈다.
선우가 예상하는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지구에서 일어난 외계인과 외계인의 다툼.]

선우는 왜 외계인끼리 지구에서 다퉜는지는 알 수 없었다. 선우는 외계인이 아닐뿐더러 외계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선우가 새운 가설과 달리 다툼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인간인 선우는 모르는 그들만의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다. 거기까지 생각한 선우는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하, 그럼? 2개의 사례는 귀신이 준 게 아니라 외계인이 준 거란 말이잖아!’
그는 숨을 거두며 유언을 남겼다. 그 유언을 들어주는 대가로 선우에게 2가지 물품을 넘겼다.
하나는 붉은색 액체가 담긴 유리병이다. 또 다른 하나는 고급 예물 시계같이 생긴 황금색 물건이다. 그는 이 물건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환상족의 피, 환상족의 보물.’
귀신이 아닌 외계인이 건넨 물건이라 하니 뭔가 모르게 달라 보였다. 은혜를 베푼 이에게 주는 사례이기에 좋으면 좋았지 나쁘거나 해롭진 않을 것 같았다.
선우는 손을 뻗어 붉은색 액체가 들어 있는 병을 잡았다. 병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이것을 먹어야만 저 보물을 쓸 수 있다고 했지?’
사내는 이것을 먹어야만, 환상족의 보물을 쓸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모르는 일이다.
선우는 들고 있던 병을 내려놓고 황금색 물체를 손목에 올려봤다. 그러고는 시계처럼 손목에 착용해 봤다.
하지만 요지부동,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황금색 물체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걸 보면 사내의 말이 사실인 듯했다.
선우는 황금색 물체를 내려놓고 다시 붉은색 액체가 들어 있는 병을 들었다. 그러고는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았다.
퐁!
“읍!”
뚜껑을 열자 역겨운 냄새가 맡아졌다. 사람의 피 냄새보다도 더 비릿하고 퇴폐적인 냄새가 병에서 짙게 흘러나왔다.
선우는 그 냄새를 참지 못하고 곧장 유리병을 마개로 닫았다. 마개를 닫고 단단히 밀봉하자 외계인의 물건답게 냄새가 삽시간에 사라졌다.
허겁지겁, 유리병을 바닥에 내려놓은 선우는 창백한 안색이 되었다.
‘이걸 마셔야 한다고?’
냄새 때문에 도무지 마실 엄두가 나질 않았다. 거지처럼 살았어도 땅에 떨어진 걸 마구 주워 먹을 정도로 비위가 강한 건 아니었다. 물론 땅에 떨어진 과자 정도야 후후 불어서 먹을 수는 있다. 그런데 이건 아니다. 이건 정말 먹을 게 못 된다.
선우는 고심 끝에 다시 유리병을 들었다.
‘입에 쓴 약일수록 몸에 좋다고 하잖아. 좋게 생각하자. 좋게.’
마시고 싶지 않았지만 마셔야 한다. 이걸 마셔야만 환상족의 보물이라는 걸 쓸 수 있다.
수없이 스스로를 세뇌했다. 하지만 세뇌가 되질 않았다.
귀신 때와는 또 다른 의미의 공포가 몰려왔다. 먹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도 선우는 다시 닫아놓은 뚜껑을 열었다. 냄새가 올라오기 전에 유리병의 입구에 입을 가져갔고, 단숨에 들이켰다.
꿀꺽꿀꺽.
붉은색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위로 들어왔다. 위까지 들어온 붉은색 액체는 아주 작은 나노 단위로 제 스스로 분해되기 시작한다. 나노 단위보다 더 작게 한 번 더 분해된 붉은색 액체는 위막을 뚫고 혈관에 스며들었다. 정맥에 흐르고 있는 피와 함께 심장으로 들어갔다. 심장에 도착한 붉은색 액체는 다시 한 번 마구 섞였다. 이제는 어떤 피가 원래의 선우 피인지 구별되지 않았다.
“읍…….”
선우는 얼마 후 심장으로부터 엄청난 고통을 느꼈다. 심장에 마치 금이 가는 듯한 고통을 느꼈고, 심장 내에서 피가 질서 없이 마구 섞이는 듯한 느낌도 느꼈다.
선우는 그 고통에 뭔가 잘못되어 간다고 판단했다.
“살려줘….”
선우는 서둘러 집 밖으로 나가려 했다. 어떻게든 집밖으로 나가 구원을 요청할 생각이었다.
선우는 고통을 참으며 겨우겨우 한 걸음을 뗐다. 훨씬 더 심해진 고통을 참으며 두 번째 걸음을 뗐다. 세 번째 걸음을 떼려는 그 순간, 온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했다.
“흡……!”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을 만큼 삽시간에 의식이 멀어졌다. 고열로부터 의식을 어떻게든 지키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쿵!
선우는 큰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더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때, 바닥에 놓여 있던 금색의 물건이 슬금슬금 움직인다.
스스로 움직여 선우 손목에 도착한 금색의 물건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마구 쏟아냈다.

[시스템 락이 해제되었습니다. 사용자를 확인합니다.]
[사용자를 확인하였습니다. 사용자는 환상족이 아닌 휴먼족입니다.]
[사용자의 체내에서 환상족의 혈액이 발견되었습니다. 휴먼족의 혈액은 환상족의 혈액과 결합 가능합니다.]
[시스템 사용을 위해 사용자의 혈액과 체내의 환상족의 혈액을 결합합니다. 결합 완료까지 약 2시간 남았습니다.]
…….
…….
[결합 중 사용자의 혈액에서 특이 형질인 F형 인자를 발견하였습니다.]
[발견된 F형 인자는 본 시스템 100% 활용에 꼭 필요한 인자입니다.]
…….
…….
[사용자의 혈액과 환상족의 혈액이 완전히 결합하였습니다. F형 인자 결합 효과로 사용자의 신체 일부가 강화됩니다.]
[가동된 시스템의 이름은 ‘북 드림’입니다.]
[결합된 F형 인자의 성장과 100% 북 드림 시스템 사용을 위해 ‘테스트 버전 북 드림’을 실행합니다.]

이후, 더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선우의 낮은 코 고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


이형찬 씨는 평범한 공무원이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여 약 2년 만에 9급 공무원이 된, 야망보다는 가정의 안정을 택한 매우 평범한 남성이다.
그는 일반 행정직으로 시험을 봤다. 두 번의 낙방 끝에 임용되었고, 국토교통부 9급으로 약 1년간 일하다가 이번에 신설된 국토안보부로 배속되었다.
말단 공무원, 그가 현재 하는 일은 채혈이었다. 피를 뽑는 일.
지난달, 전 국민을 상대로 한 채혈 법안이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그 법안이 통과되면서 그 실무를 볼 부서가 배정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법안의 실무는 보건복지부가 아닌 국토안보부가 보게 되었다.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보건복지부가 실무를 맡아야 정상인데 실제 실무를 맡은 건 새로 신설된 국토안보부였다.
덕분에 이형찬 씨는 5일째 강제 채혈을 하러 다니고 있었다. 동료이자 선배 공무원인 채진호와 함께.
“전화 안 받아요?”
“어, 안 받아.”
“아, 없으면 골 때리는데…….”
오늘 여덟 번째로 방문할 집은 ‘이선우’라는 이름의 남자가 사는 집이다. 그는 무슨 이유인지 여태 채혈을 하지 않았다.
채진호와 이형찬은 이선우가 사는 것으로 추정되는 오피스텔에 도착한 후 벨을 눌렀다.
딩동!
“아무도 없습니까?”
대답이 없자 이형찬은 다시 벨을 눌렀다.
딩동! 딩동!
“아무도 없습니까?”
수차례 벨을 눌렀지만, 이번에도 역시 대답은 없었다. 안에선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집에 없는 것 같다. 어딘가로 나간 모양이다.
채혈해야 할 이가 부재중임을 알게 된 채진호는 후배 이형찬을 의미심장한 눈으로 바라본다.
“형찬아.”
“예, 선배.”
이형찬은 채진호가 왜 그런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채진호는 다정다감하게 이형찬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너 O형이지?”
“예, O형입니다. 갑자기 그건 왜 물으세요?”
“네 피 좀 조금만 쓰자.”
“예……?”
“네 피 좀 쓰자고. 오늘까지 담당 구역 내 미 채혈자들 모두 다 채혈해야 하잖아.”
“이선우 씨 피 대신 제 피를 채혈해서 내시게요?”
“어.”
“DNA가 다르게 판정 나면 어쩌려고요? 피가 이선우 씨 것이 아니라는 게 들통 나면요?”
“괜찮아. 이선우 이 사람 범죄 경력 없어. 듣기론 DNA 검사 안 한다고 하고. 무슨 이상한 검사만 하고 채혈한 피는 전부 폐기한대. 그래서 보건복지부가 아닌 우리 국토안보부에 이 일이 떨어진 거고.”
“정말 괜찮을까요? 나중에 문제되지 않을까요?”
“피에 이름 쓰여 있는 것도 아닌데 문제 될 게 뭐가 있어? 나중에 들통 나면 이동 중에 피가 섞였다고 대충 둘러대면 되지.”
“…….”
“왜? 승진하기 싫어? 9급에서 평생 살래? 오늘 다 못하면 고가 어떻게 되는지 알지? 과장님 말씀 너도 들었잖아.”
“그건 알지만…….”
오늘까지 채혈을 완료해야만 한다. 윗선이 그렇게 천명했다. 아랫사람은 본래 까라면 까야 하는 법이다. 인사권을 가진 윗선이 까라고 하면 바지라도 벗어서 줘야한다.
이형찬은 한동안 망설였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후… 뽑으세요.”
안정적인 직업을 선택했다 해서 아예 야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형찬도 나름의 야망이 있었다.
채진호는 결국 이형찬의 팔목에 바늘을 꽂았다. ‘이선우’라는 이름의 사내 대신 ‘이형찬’의 붉은 피가 주사기를 통해 쭉쭉 뽑혀 나갔다.
“이야, 잘도 나오네. 평소에 잘 먹고 다니나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