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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대신관 아초이는 이 결계를 해제하기 어려울 것으로 봤다. 그가 그렇게 말하자 수행비서처럼 대신관 아초이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존 하엘이 크게 놀랐다.
“대신관님도 해제하기 어려우십니까?”
대신관 아초이는 결계를 다시 만진다.
“예전에 본 결계보다 배 이상 많은 암흑 마나가 느껴지네. 겉으로 느껴지는 암흑 마나가 이 정도라면… 결계 중추를 지탱하고 있는 암흑 마나는 정말 어마어마할 거야.”
“그럼 또다시 지원요청을 해야 하는 겁니까?”
“아마도… 지원요청 해야겠지. 최소한 대신관 넷과 마흔 명의 신관들이 더 필요하네.”
“…….”
“뭐, 그렇다고 시도도 안 하고 포기할 순 없겠지? 포기라는 단어는 우리 태양신교의 교리에 적혀 있지 않은 단어니까. 유리아 대신관, 모르모프 대신관.”
대신관 유리아는 갈색 머리의 50대 중반 여인이다. 신성력으로 엄청 관리했는지 30대 초반으로 보인다.
대신관 모르모프는 대머리의 60대 초반의 남성이다. 그는 신관이라기 보단 산적같이 생겼다.
둘은 대신관 아초이 뒤에 나란히 서 있다가 앞으로 나선다.
“예, 아초이 대신관님.”
“해제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시도는 해보기로 하지.”
“예, 알겠습니다.”
대신관 셋은 결계 앞에 나란히 섰다. 세 명의 대신관을 따라 이곳에 온 따라온 20명의 신관들도 그 뒤에 나란히 선다.
22명의 신관들은 신성력을 일으켰다. 몸 안에 쌓여 있는 신성력들을 대신관 아초이에게 모두 보냈다.
“으… 합…….”
대신관 아초이는 손을 모았다. 22명의 신관들로부터 전해 받은 신성력에 자신의 신성력을 모두 더했다. 그러고는 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희망보다 더 밝은 자여, 하늘을 가르는 붉은색 불꽃이여, 그대와 내가 한 몸이 되어 짙은 어둠을 밝힐지니…….”
기도문을 외우는 듯한 주문, 그 주문이 완성되어 갈 때쯤 대신관 아초이는 결계에 손을 가져갔다. 힘껏 소리쳤다.
“해제!
대신관 아초이가 주문을 완성하자 손에서 금색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뿜어져 나온 금색의 빛은 검은색 결계를 빠르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금색의 빛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검은색 결계는 파르르 떨렸고, 색 또한 옅어져 갔다.
언뜻 보기엔 리치 킹의 결계를 해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존 하엘을 제외한 성기사 모두가 해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존 하엘은 결계를 빤히 보더니 고개를 젓는다. 대신관 아초이로부터 미리 들은 게 있어 냉정하게 상황을 볼 수 있었다.
‘무리야.’
존 하엘의 생각처럼 확실히 무리였다. 지금보다 다섯 배 이상의 정순한 신성력이 필요했다.
대신관 아초이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서서히 신성력을 거뒀다. 22명의 대신관과 신관들도 대신관 아초이에게 전달하던 신성력의 양을 서서히 줄여나갔다.
대신관 아초이는 전달되는 신성력이 더는 없자 완전히 힘을 거뒀다.
“하… 하… 하…….”
대신관 아초이는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그의 신관복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대신관 아초이를 위시한 신관들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신성력을 전력으로 쏟아낸 탓에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신관들은 한동안 쉬며 떨어진 체력과 신성력을 보충했다. 그때, 뒤쪽에 있던 한 성기사가 뭔가를 발견했다.
“어?”
그 성기사를 따라 다수의 성기사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대다수가 한곳을 보고 있자 덩달아 모두 그곳을 본다. 한쪽에서 휴식을 취하던 신관들도 그곳을 봤다. 비교적 젊은 한 신관이 소리친다.
“저기! 틈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결계 한쪽, 일정 구역이 조금씩 열리고 있었다. 내려갔던 셔터가 자동으로 오르듯 서서히 올라왔다.
신관들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결계 해제는 분명 실패했으니까.
모두들 멍하니 있던 중, 실전 경험이 많은 선임 성기사 중 하나가 사태를 파악하고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총원, 전투 준비!”
“태양신의 영광을!”
***
태양신교 교인이 아닌 사람이 느닷없이 태양신을 찾을 리 없다. 또 ‘태양신의 영광을!’이라는 구호는 태양신교 성기사들이 전투 전애 외치는 구호였다.
선우는 확인한 즉시 스위치를 반대로 돌렸다. 뒤늦게나마 올라간 벽을 다시 닫기 위해서였다.
끼이익… 끼이익… 쿵…….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벽은 다시 닫히지 않았다. 멀쩡했던 스위치가 오히려 산산이 부서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선우는 매우 당황한 얼굴을 했다. 계속해서 슬금슬금 올라가는 벽을 멍하니 바라봤다.
‘날 죽이겠지?’
태양신교와 리치는 상극 중의 상극이다. 태양신교 교인들은 결코 리치를 살려두지 않는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려해도 저들은 제대로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저들이 제대로 들어주었다 쳐도 리치라는 이유로 감옥으로 끌고 간 다음 온갖 고문을 행할 것이다.
소설 속 태양신교는 미치기 직전의 광신도 집단이었다. 아직은 미치지 않았으나 이번 성전에서 대패함과 동시에 와락 미치기 시작한다.
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저들이 아직 미치지 않았다고는 하나 곧 미칠 텐데? 붙잡혀 가면 결국 죽게 될 터인데?
선우는 수없이 생각하고 다시 돌이켜 보려 했지만 결국 돌이킬 수 없었다. 점점 열리고 있는 입구에 매달려 다시 닫아보려 했지만 결코 닫을 수 없었다.
계속해서 열리는 문을 보며 선우는 절망했다.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다고!!’
선우는 정말 죽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살고 싶었다.
문이 열리는 걸 막을 수 없다면 방법은 하나다. 도망치는 것.
‘악마가 되고 싶지 않았는데…….’
피하는 길은 오직 그 문뿐이다. 아서스의 다이아몬드가 들어있는 곳으로 향하는 문.
‘으득! 살아야 해! 어떻게든.’
선우는 결심과 동시에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저 문이 완전히 열리기 전에 초상화가 그려진 문까지 도달해야 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심전력으로 뛰었다.
다행히 문에 도착할 때까지 공격은 없었다. 성기사들의 달리는 속도를 이미 한 번 경험했기 때문에 내심 걱정했는데 천만다행이다.
선우는 다시 뒤를 돌아본 다음 문을 봤다. 문고리에 손을 가져갔다.
‘이기적으로 생각하자. 이기적으로.’
선우는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다. 금색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
리치 킹의 결계 일부가 완전히 올라가며 사람 10여 명이 드나들어도 될 만한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리치 킹의 결계 앞을 있던 신관과 성기사들은 한동안 전투태세를 취했다. 저 안에서 뭐가 튀어나올 지 알 수 없었다. 마물 다수가 튀어나올 수도 있었다.
뜬 태양이 지고, 진 태양이 다시 뜰 때까지 만반의 준비를 하였으나 입구에선 개미 한 마리 나오지 않았다.
전투태세를 취하고 있는 게 점점 허망하게 느껴진다.
성기사들 중 일부는 전투태세를 취하하고 휴식을 취했다. 어느새 교대로 식사도 하고 여태 하지 못했던 잠도 청했다.
“따로 말씀 좀 나누시지요.”
대신관들과 서열 5위 내 성기사들, 15뒤처리 팀의 팀장 존 하엘은 따로 모였다. 대신관 셋이 머물던 텐트에서 마주보고 앉았다.
대신관 모르모프가 대신관 아초이를 보며 말했다.
“아초이 대신관님, 입구가 뭐 때문에 열린 것 같으십니까?”
대신관 아초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나는 잘 모르겠네. 리치 킹의 결계 일부가 갑자기 열린 이유라니… 도저히 짐작할 수가 없어.”
“전에 리치 킹의 결계를 해제하신 경험이 있으시잖습니까? 그전에는 안 이랬습니까?”
“내가 해제한 리치 킹의 결계는 저 결계처럼 엄청난 암흑 마나를 가지고 있지 않았네. 또한 저런 기현상이 나타나지도 않았고.”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렇게 마냥 기다려야 하는 겁니까? 지원병이 올 때까지요?”
“아마도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듯싶네.”
“둘 중 하나요?”
결계 일부가 열리는 상황은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한 매뉴얼이 있을 리 없었다. 그 때문에 이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고작 두 가지에 불과했다. 대신관 아초이가 말을 이었다.
“하나는 일부의 인원을 열린 입구로 들여보내는 것이네. 또 다른 하나는 이곳에서 어떤 변화가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고.”
“음, 두 가지 방법 다 리스크가 있군요.”
“그렇지.”
대신관 모르모프의 말처럼 두 가지 모두 적지 않은 리스크가 존재했다. 첫 번째 방법은 들어간 이들의 목숨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리스크였고, 두 번째 방법은 삭초재근의 기회를 놓쳐 커다란 후환을 만들지도 모른다는 것이 리스크였다.
이곳에 있는 인원들이 만약 성직자와 성기사가 아닌 군 병력과 장교들이었다면 첫 번째 리스크는 전혀 고려치 않았을 것이다. 장교에게 있어 병사들의 목숨은 고려 대상이 되지 않으니까. 그러나 이들은 종교인들이다. 이들이 악을 저주하는 이들이라고는 하나 교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게다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전력이 군 병력 백과 맞먹는 소중한 자원들이다. 신관 한 명, 성기사 한 명 키우는 돈은 일반 병사 수백을 키우는 돈과 맞먹는다.
이곳에 모인 인원들은 두 가지 모두 선뜻 선택하지 못했다. 이도저도 못하고 한참을 망설였다.
그때, 15뒤처리 팀의 팀장 존 하엘이 앞으로 나선다. 그는 이곳에 모인 모든 인원이 생각하곤 있었지만 말하지 않던 것을 대표로 말했다.
“저 안에 들어갈 지원자를 따로 받는 게 어떻겠습니까?”
모르모프 대신관은 반색했다가 급히 표정을 수습했다.
“지원자?”
“예, 지원자를 모아 팀을 꾸리고 저 안에 들여보내는 겁니다. 나머지는 밖에서 대기하고요.”
“목숨이 걸린 일인데 지원하는 인원이 있겠나?”
“아마 있을 겁니다. 저도 지원할 생각이니까요. 제가 지원자들을 이끌고 저 안에 들어가 보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
무리는 존 하엘의 의견대로 하기로 했다. 이것보다 나은 대안이 끝내 나오지 않아서였다.
대신관과 성기사들은 무리가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서 각각 지원자를 뽑았다.
신관 측에선 총 3명의 지원자가 나왔다. 성기사 측에선 총 10명의 지원자가 나섰다.
그들 모두 젊은이들이다. 모두 살길이 구만리인 앞길이 창창한 이들이다.
존 하엘을 포함한 14명은 약 6시간 동안 휴식을 취했다. 그렇게 6시간 후, 결계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
문은 어떤 부스럭거림도 없이 스르르 열렸다. 선우는 그 문에 빨려 들어갔다.
“흡!”
선우는 그 문을 통과한 순간 어느 방에 도착했다. 선우를 이곳까지 데려온 문은 이곳에 도착한 순간 순식간에 사라졌다.
선우가 도착한 곳은 10평의 좁은 방이었다. 이곳은 그다지 어둡지 않았다.
선우는 급히 주위를 살폈다. 리치 킹의 방이기에 뭐가 더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둘러보니 이곳은 리치 킹의 무덤이라 믿겨지지 않을 만큼 초라했다. 정중앙에 위치한 다이아몬드 해골이 없었더라면 리치 킹의 무덤이라 대문짝만하게 쓰여 있어도 믿지 않았을 게다.
선우는 방 내부의 모습을 보곤 긴장을 풀었다. 그리고 터덜터덜 걸어 다이아몬드 해골 앞에 섰다.
“이야, 클럽에서 쓰면 딱이겠네.”
다이아몬드 해골은 매우 화려했다. 천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약간의 빛이 다이아몬드와 만나면서 오묘한 조화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선우의 시선과 정신을 완전히 뺏을 정도는 아니었다. 클럽을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 이 정도의 화려함은 예전에 적응되었다.
선우는 해골을 한동안 유심히 봤다. 보물을 감정하듯이.
“강제적으로 매만지는 게 아닌 모양이네?”
이 방에 들어온 사무엘은 이 방에 떨어짐과 동시에 해골을 매만졌다. 그리고 이 해골을 매만짐으로써 엄청난 양의 암흑 마나와 사기를 몸에 받았고, 곧 강해졌다.
소설에는 사무엘이 해골을 만진 이유가 어떤 이끌림 때문이라 써져 있었다. 후반부에 추가적으로 나온 사실은 다이아몬드 해골에 매혹 마법이 걸려 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선우는 전혀 끌리지 않았다. 인간이 아닌 리치라 그런 건지, 아니면 원래 소설 속 인물이 아니라서 그런 건지는 그도 알 수가 없었다.
선우는 한동안 다이아몬드 해골을 살피다 털썩 주저앉았다. 생사가 걸릴 만큼 위험한 상황이 다시 오지 않는다면 저 해골을 만지지 않을 생각이었다.
대신관 아초이는 이 결계를 해제하기 어려울 것으로 봤다. 그가 그렇게 말하자 수행비서처럼 대신관 아초이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존 하엘이 크게 놀랐다.
“대신관님도 해제하기 어려우십니까?”
대신관 아초이는 결계를 다시 만진다.
“예전에 본 결계보다 배 이상 많은 암흑 마나가 느껴지네. 겉으로 느껴지는 암흑 마나가 이 정도라면… 결계 중추를 지탱하고 있는 암흑 마나는 정말 어마어마할 거야.”
“그럼 또다시 지원요청을 해야 하는 겁니까?”
“아마도… 지원요청 해야겠지. 최소한 대신관 넷과 마흔 명의 신관들이 더 필요하네.”
“…….”
“뭐, 그렇다고 시도도 안 하고 포기할 순 없겠지? 포기라는 단어는 우리 태양신교의 교리에 적혀 있지 않은 단어니까. 유리아 대신관, 모르모프 대신관.”
대신관 유리아는 갈색 머리의 50대 중반 여인이다. 신성력으로 엄청 관리했는지 30대 초반으로 보인다.
대신관 모르모프는 대머리의 60대 초반의 남성이다. 그는 신관이라기 보단 산적같이 생겼다.
둘은 대신관 아초이 뒤에 나란히 서 있다가 앞으로 나선다.
“예, 아초이 대신관님.”
“해제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시도는 해보기로 하지.”
“예, 알겠습니다.”
대신관 셋은 결계 앞에 나란히 섰다. 세 명의 대신관을 따라 이곳에 온 따라온 20명의 신관들도 그 뒤에 나란히 선다.
22명의 신관들은 신성력을 일으켰다. 몸 안에 쌓여 있는 신성력들을 대신관 아초이에게 모두 보냈다.
“으… 합…….”
대신관 아초이는 손을 모았다. 22명의 신관들로부터 전해 받은 신성력에 자신의 신성력을 모두 더했다. 그러고는 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희망보다 더 밝은 자여, 하늘을 가르는 붉은색 불꽃이여, 그대와 내가 한 몸이 되어 짙은 어둠을 밝힐지니…….”
기도문을 외우는 듯한 주문, 그 주문이 완성되어 갈 때쯤 대신관 아초이는 결계에 손을 가져갔다. 힘껏 소리쳤다.
“해제!
대신관 아초이가 주문을 완성하자 손에서 금색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뿜어져 나온 금색의 빛은 검은색 결계를 빠르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금색의 빛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검은색 결계는 파르르 떨렸고, 색 또한 옅어져 갔다.
언뜻 보기엔 리치 킹의 결계를 해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존 하엘을 제외한 성기사 모두가 해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존 하엘은 결계를 빤히 보더니 고개를 젓는다. 대신관 아초이로부터 미리 들은 게 있어 냉정하게 상황을 볼 수 있었다.
‘무리야.’
존 하엘의 생각처럼 확실히 무리였다. 지금보다 다섯 배 이상의 정순한 신성력이 필요했다.
대신관 아초이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서서히 신성력을 거뒀다. 22명의 대신관과 신관들도 대신관 아초이에게 전달하던 신성력의 양을 서서히 줄여나갔다.
대신관 아초이는 전달되는 신성력이 더는 없자 완전히 힘을 거뒀다.
“하… 하… 하…….”
대신관 아초이는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그의 신관복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대신관 아초이를 위시한 신관들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신성력을 전력으로 쏟아낸 탓에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신관들은 한동안 쉬며 떨어진 체력과 신성력을 보충했다. 그때, 뒤쪽에 있던 한 성기사가 뭔가를 발견했다.
“어?”
그 성기사를 따라 다수의 성기사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대다수가 한곳을 보고 있자 덩달아 모두 그곳을 본다. 한쪽에서 휴식을 취하던 신관들도 그곳을 봤다. 비교적 젊은 한 신관이 소리친다.
“저기! 틈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결계 한쪽, 일정 구역이 조금씩 열리고 있었다. 내려갔던 셔터가 자동으로 오르듯 서서히 올라왔다.
신관들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결계 해제는 분명 실패했으니까.
모두들 멍하니 있던 중, 실전 경험이 많은 선임 성기사 중 하나가 사태를 파악하고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총원, 전투 준비!”
“태양신의 영광을!”
태양신교 교인이 아닌 사람이 느닷없이 태양신을 찾을 리 없다. 또 ‘태양신의 영광을!’이라는 구호는 태양신교 성기사들이 전투 전애 외치는 구호였다.
선우는 확인한 즉시 스위치를 반대로 돌렸다. 뒤늦게나마 올라간 벽을 다시 닫기 위해서였다.
끼이익… 끼이익… 쿵…….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벽은 다시 닫히지 않았다. 멀쩡했던 스위치가 오히려 산산이 부서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선우는 매우 당황한 얼굴을 했다. 계속해서 슬금슬금 올라가는 벽을 멍하니 바라봤다.
‘날 죽이겠지?’
태양신교와 리치는 상극 중의 상극이다. 태양신교 교인들은 결코 리치를 살려두지 않는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려해도 저들은 제대로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저들이 제대로 들어주었다 쳐도 리치라는 이유로 감옥으로 끌고 간 다음 온갖 고문을 행할 것이다.
소설 속 태양신교는 미치기 직전의 광신도 집단이었다. 아직은 미치지 않았으나 이번 성전에서 대패함과 동시에 와락 미치기 시작한다.
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저들이 아직 미치지 않았다고는 하나 곧 미칠 텐데? 붙잡혀 가면 결국 죽게 될 터인데?
선우는 수없이 생각하고 다시 돌이켜 보려 했지만 결국 돌이킬 수 없었다. 점점 열리고 있는 입구에 매달려 다시 닫아보려 했지만 결코 닫을 수 없었다.
계속해서 열리는 문을 보며 선우는 절망했다.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다고!!’
선우는 정말 죽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살고 싶었다.
문이 열리는 걸 막을 수 없다면 방법은 하나다. 도망치는 것.
‘악마가 되고 싶지 않았는데…….’
피하는 길은 오직 그 문뿐이다. 아서스의 다이아몬드가 들어있는 곳으로 향하는 문.
‘으득! 살아야 해! 어떻게든.’
선우는 결심과 동시에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저 문이 완전히 열리기 전에 초상화가 그려진 문까지 도달해야 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심전력으로 뛰었다.
다행히 문에 도착할 때까지 공격은 없었다. 성기사들의 달리는 속도를 이미 한 번 경험했기 때문에 내심 걱정했는데 천만다행이다.
선우는 다시 뒤를 돌아본 다음 문을 봤다. 문고리에 손을 가져갔다.
‘이기적으로 생각하자. 이기적으로.’
선우는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다. 금색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리치 킹의 결계 일부가 완전히 올라가며 사람 10여 명이 드나들어도 될 만한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리치 킹의 결계 앞을 있던 신관과 성기사들은 한동안 전투태세를 취했다. 저 안에서 뭐가 튀어나올 지 알 수 없었다. 마물 다수가 튀어나올 수도 있었다.
뜬 태양이 지고, 진 태양이 다시 뜰 때까지 만반의 준비를 하였으나 입구에선 개미 한 마리 나오지 않았다.
전투태세를 취하고 있는 게 점점 허망하게 느껴진다.
성기사들 중 일부는 전투태세를 취하하고 휴식을 취했다. 어느새 교대로 식사도 하고 여태 하지 못했던 잠도 청했다.
“따로 말씀 좀 나누시지요.”
대신관들과 서열 5위 내 성기사들, 15뒤처리 팀의 팀장 존 하엘은 따로 모였다. 대신관 셋이 머물던 텐트에서 마주보고 앉았다.
대신관 모르모프가 대신관 아초이를 보며 말했다.
“아초이 대신관님, 입구가 뭐 때문에 열린 것 같으십니까?”
대신관 아초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나는 잘 모르겠네. 리치 킹의 결계 일부가 갑자기 열린 이유라니… 도저히 짐작할 수가 없어.”
“전에 리치 킹의 결계를 해제하신 경험이 있으시잖습니까? 그전에는 안 이랬습니까?”
“내가 해제한 리치 킹의 결계는 저 결계처럼 엄청난 암흑 마나를 가지고 있지 않았네. 또한 저런 기현상이 나타나지도 않았고.”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렇게 마냥 기다려야 하는 겁니까? 지원병이 올 때까지요?”
“아마도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듯싶네.”
“둘 중 하나요?”
결계 일부가 열리는 상황은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한 매뉴얼이 있을 리 없었다. 그 때문에 이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고작 두 가지에 불과했다. 대신관 아초이가 말을 이었다.
“하나는 일부의 인원을 열린 입구로 들여보내는 것이네. 또 다른 하나는 이곳에서 어떤 변화가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고.”
“음, 두 가지 방법 다 리스크가 있군요.”
“그렇지.”
대신관 모르모프의 말처럼 두 가지 모두 적지 않은 리스크가 존재했다. 첫 번째 방법은 들어간 이들의 목숨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리스크였고, 두 번째 방법은 삭초재근의 기회를 놓쳐 커다란 후환을 만들지도 모른다는 것이 리스크였다.
이곳에 있는 인원들이 만약 성직자와 성기사가 아닌 군 병력과 장교들이었다면 첫 번째 리스크는 전혀 고려치 않았을 것이다. 장교에게 있어 병사들의 목숨은 고려 대상이 되지 않으니까. 그러나 이들은 종교인들이다. 이들이 악을 저주하는 이들이라고는 하나 교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게다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전력이 군 병력 백과 맞먹는 소중한 자원들이다. 신관 한 명, 성기사 한 명 키우는 돈은 일반 병사 수백을 키우는 돈과 맞먹는다.
이곳에 모인 인원들은 두 가지 모두 선뜻 선택하지 못했다. 이도저도 못하고 한참을 망설였다.
그때, 15뒤처리 팀의 팀장 존 하엘이 앞으로 나선다. 그는 이곳에 모인 모든 인원이 생각하곤 있었지만 말하지 않던 것을 대표로 말했다.
“저 안에 들어갈 지원자를 따로 받는 게 어떻겠습니까?”
모르모프 대신관은 반색했다가 급히 표정을 수습했다.
“지원자?”
“예, 지원자를 모아 팀을 꾸리고 저 안에 들여보내는 겁니다. 나머지는 밖에서 대기하고요.”
“목숨이 걸린 일인데 지원하는 인원이 있겠나?”
“아마 있을 겁니다. 저도 지원할 생각이니까요. 제가 지원자들을 이끌고 저 안에 들어가 보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
무리는 존 하엘의 의견대로 하기로 했다. 이것보다 나은 대안이 끝내 나오지 않아서였다.
대신관과 성기사들은 무리가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서 각각 지원자를 뽑았다.
신관 측에선 총 3명의 지원자가 나왔다. 성기사 측에선 총 10명의 지원자가 나섰다.
그들 모두 젊은이들이다. 모두 살길이 구만리인 앞길이 창창한 이들이다.
존 하엘을 포함한 14명은 약 6시간 동안 휴식을 취했다. 그렇게 6시간 후, 결계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문은 어떤 부스럭거림도 없이 스르르 열렸다. 선우는 그 문에 빨려 들어갔다.
“흡!”
선우는 그 문을 통과한 순간 어느 방에 도착했다. 선우를 이곳까지 데려온 문은 이곳에 도착한 순간 순식간에 사라졌다.
선우가 도착한 곳은 10평의 좁은 방이었다. 이곳은 그다지 어둡지 않았다.
선우는 급히 주위를 살폈다. 리치 킹의 방이기에 뭐가 더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둘러보니 이곳은 리치 킹의 무덤이라 믿겨지지 않을 만큼 초라했다. 정중앙에 위치한 다이아몬드 해골이 없었더라면 리치 킹의 무덤이라 대문짝만하게 쓰여 있어도 믿지 않았을 게다.
선우는 방 내부의 모습을 보곤 긴장을 풀었다. 그리고 터덜터덜 걸어 다이아몬드 해골 앞에 섰다.
“이야, 클럽에서 쓰면 딱이겠네.”
다이아몬드 해골은 매우 화려했다. 천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약간의 빛이 다이아몬드와 만나면서 오묘한 조화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선우의 시선과 정신을 완전히 뺏을 정도는 아니었다. 클럽을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 이 정도의 화려함은 예전에 적응되었다.
선우는 해골을 한동안 유심히 봤다. 보물을 감정하듯이.
“강제적으로 매만지는 게 아닌 모양이네?”
이 방에 들어온 사무엘은 이 방에 떨어짐과 동시에 해골을 매만졌다. 그리고 이 해골을 매만짐으로써 엄청난 양의 암흑 마나와 사기를 몸에 받았고, 곧 강해졌다.
소설에는 사무엘이 해골을 만진 이유가 어떤 이끌림 때문이라 써져 있었다. 후반부에 추가적으로 나온 사실은 다이아몬드 해골에 매혹 마법이 걸려 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선우는 전혀 끌리지 않았다. 인간이 아닌 리치라 그런 건지, 아니면 원래 소설 속 인물이 아니라서 그런 건지는 그도 알 수가 없었다.
선우는 한동안 다이아몬드 해골을 살피다 털썩 주저앉았다. 생사가 걸릴 만큼 위험한 상황이 다시 오지 않는다면 저 해골을 만지지 않을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