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14화


히든 피스는 말 그대로 숨겨진 조각을 의미한다. 창작자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창작물 내에 숨겨 놓은 것이다.
앞의 지팡이는 분명 히든 피스였다. 소설에선 실제로 등장하지 않지만 소설 내내 언급되는 물건이었다.
아마도 저 리치 킹의 지팡이는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무런 능력도 보유하지 않았다면 소설 속 악역 사무엘이 찾아 헤맬 리 없었다.
또 이곳에 보관되어 있지 않았을 게다. 쓸모없는 쓰레기를 이곳에 보관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겉으로는 아무리 살펴봐도 능력을 알 수가 없었다. 만져봐야 똥인지 된장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만지기는 두렵다. 만질 엄두가 나질 않았다.
한참 고민하고 있던 그때, 시야 한쪽의 글자가 보였다.

[1410 Clear]

어느새 고정되어 더는 변동 없는 ‘14’ 라는 붉은색 숫자와 ‘’ 라는 기호, 그리고 ‘10’이라는 검은색 숫자. 그 옆에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는 ‘Clear’ 라는 단어.
선우는 ‘Clear’가 혹시나 이곳에서 벗어나는 버튼인가 싶어 눌러봤다. 이곳 세상에서 탈출할 수 있다면 괜히 저걸 만질까, 말까 하는 쓸모없는 고민을 할 필요도 없으니까.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저 붉은색 숫자 ‘14’가 더 마음에 걸렸다. 주객이 전도되어 자꾸만 시선이 갔다.
만약 이곳에서 벗어나 집에 돌아갈 수 있다면 ‘14’라는 숫자는 결코 마음에 두지 않았을 거다. 누군지도 모르는 소설 속 인물 14인의 삶보다는 내 삶이 백배, 천배는 더 소중했으니까.
애초에 가설은 가설일 뿐이다. 가설 때문에 죄책감 가질 이유는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돌아가는 방법을 찾지 못한 상태라 그런지 14라는 숫자는 자꾸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하…….’
선우는 고민 끝에 지팡이를 만지기로 결심했다. 안 만지고 가만히 있으면 그 가설을 인정하는 꼴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선우는 아주 서서히 지팡이에 손을 가져갔다.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킨 다음 몇 시간 째, 허공에 떠 있는 마법 지팡이를 잡아챘다.
“흡!”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지팡이를 잡자 뭔가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다. 뭔가 모르게 정신이 산뜻해지고 파워 업된 기분이 들었다.
굳이 기분을 비유하자면 아이언X가 된 토니 스테크가 된 기분이었다.
아이언X의 토니 스테크는 슈트를 입지 않으면 일반인에 불과하다. 억만장자에 엄청 똑똑하지만 결국은 총 한 방에 죽는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선우는 지금 슈트를 입은 토니 스테크와 버금가는 기분을 느꼈다. 실제로는 토니 스테크와 달리 전혀 강해지지 않았을진 몰라도 기분만은 토니 스테크 부럽지 않았다.
그러다 어떤 불안감이 엄습한다. 뒤를 돌아봤다.
‘설마?’
리치 킹의 무덤에 있는 리치 킹의 다이아몬드 해골을 잡은 이는 강해진다. 사람이 악해진다는 부작용이 있지만 분명 대륙 최강의 힘을 얻는다. 사무엘이 그 때문에 강해진 대신 악해졌다. 사람을 죽이는 걸 장난처럼 생각하게 됐다. 혹시 이 지팡이도 잡으면 강해지는 대신 악해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 없이 결계를 열었던 것처럼 또다시 경거망동을 한 것은 아닌 걸까?
선우는 일순 초조해졌다. 순간의 실수로 정신에 이상이 생겼을까 봐 걱정도 되었다. 급히 한 아이를 생각했다. 인력 사무소 내 TV에서 본, 매우 불쌍한 삶을 산 아이.
‘불쌍하다.’
다행히 그 아이를 생각하자 불쌍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꼴좋다.’든지 ‘쌤통’이라는 둥의 쓰레기 같은 생각, ‘죽이고 싶다’ 같은 사이코패스적인 생각은 전혀 나지 않았다.
지팡이는 저 다이아몬드 두개골과는 조금 다른 모양이다. 천만다행이다.
선우는 깊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가 슬며시 든다. 그러다 멈칫했다.
‘어?’

[1410 Clear]
[11 Clear]

‘Clear’ 아래에 또다시 ‘Clear’라는 글자가 생겨나 있었다. 위의 ‘Clear’처럼 아래 ‘Clear’도 반짝반짝 빛이 났다. 또한 ‘01’이라 적혀 있던 것도 갑자기 ‘11’로 변해 있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 인걸까?
선우가 한 일이라고는 저 지팡이를 잡은 것 말곤 없었다. 1초에 한 번 꼴로 하는 평범한 숨쉬기가 저 숫자에 포함될 리는 만무하다.
‘아!’
그러고 보니 ‘01’은 이곳 리치 킹의 무덤 안에 들어오면서 생겨났다. 그전에는 나오지 않았었다.
그렇다면 혹시 ‘01’은 이곳에 들어오면서 생긴 히든 미션이 아니었을까? 히든 피스 찾기, 혹은 이 지팡이를 잡는 것이 그 히든 미션의 내용이었고.
위의 ‘Clear’를 눌러봤듯 아래의 ‘Clear’도 눌러봤다. 위 ‘Clear’를 누를 때 크게 실망했기에 아래 ‘Clear’를 누를 때는 큰 기대 하지 않았다.
‘아…….’
이번에도 역시 전혀 변화가 없다. 수 번 똑같은 자리를 눌렀지만 역시 마찬가지다.
기대 안 하길 정말 잘했다. 기대 안 하기를…….
선우는 벌러덩 누웠다.
‘제기랄…….’
사실 기대 안 한다고 했지만, 내심 기대했다. 어떻게 기대 안 할 수 있겠는가? 집에 가고 싶은데.
기대가 무너지니 기분이 매우 허망해졌다. 아이언X 슈트를 입었다고 토니 스테크의 정신력이 강해진 게 아니듯이 선우의 정신력도 리치 킹의 지팡이를 들었다고 그리 강해지지 않았다.
그렇게 또 시간이 지났다. 몇 시간을 그 자세로 보냈다.
“하…….”

3시간 정도 지났다. 3시간은 정말 허무하게 지나갔다. 이렇게 3시간 지나갔는데 전혀 아깝지 않았다. 길면 6개월도 이곳에 있어야 할지 모르는데 3시간의 허무한 소비? 아까울 턱이 없었다.
3시간이 막 지났다는 생각이 든 순간, 또다시 시야 한쪽에서 반짝반짝한 게 생겨났다.
‘대체 이번엔 또 왜 바뀐 거지?’

[77 Clear]
[1410 Clear]
[11 Clear]

제일 첫 번째 나타났던 ‘07’, 그게 어느새 ‘67’ 되더니 갑자기 ‘77’로 변했다. 이번에도 역시 ‘Clear’라는 문자가 나타났다.
선우는 그걸 본 순간, 피식 웃었다.
“장난하나…….”
선우는 피식피식 웃다 변덕으로 ‘Clear’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이번엔 정말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Clear’를 누른 순간, 어떤 느낌이 들기 시작했던 거다.
‘이 느낌은……?’
선우는 이 느낌을 한 번 경험한 적이 있다. 잊으라고 해도 잊을 수 없는 느낌이었다. 이 느낌은 집에서 이곳 세상에 왔을 때 처음 느꼈던 그것이었다. 그때 그 느낌과 똑같은 게 온몸에서 느껴졌다.
곧 주위가 어둠으로 물들었다. 천장이 시계 방향으로 돌고, 세상이 마구 흔들리기 시작한다.
선우는 구역질이 나와 더 이상 눈을 뜰 수 없었다. 슬며시 눈을 감고 이 느낌이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선우는 와락 눈을 떴다.
“……!!”

***


대한민국 청와대 지하에는 유사시 요인들의 안전을 지키는 벙커가 존재한다. 서울시 한복판에 핵이 터져도 무너지지 않는, 3년간 내부의 사람들을 방사능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지하벙커다.
그 지하벙커 안에는 수많은 회의실이 존재한다. 지금 한 회의실에 여덟 명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갈색의 직각 테이블, 가장 상석에 앉아 있는 한 사람은 이 나라 최고의 권력자인 이현상 대통령이다.
그를 중심으로 하여 한민석 국방부 장관, 윤태호 외교부 장관, 김지석 국토안보부 장관, 유호준 기획재정부 장관, 김종수 문화체육부 장관, 양지석 국가정보원 원장, 김학수 미래 전사 연구소 소장이 앉아 있었다.
하얗게 서리가 내린 백발머리 김학수 미래전사연구소 소장이 대통령에게 보고를 시작했다.
“27세 이형종 씨를 마지막으로 참가 인원 92명 모두 1단계에 진입했습니다. 92명의 인원 중 45명은 2단계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고, 13명은 3단계에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벌써 13명이나 3단계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계획보다 진행이 빠른 것 아닙니까?”
“예, 2주 정도 빨리 진행되고 있습니다. 참가한 인원 대부분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단련된 군인 출신들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3단계부터 능력을 실체화할 수 있다고 했지요? 3단계부터 실전 투입이 가능합니까?”
“말씀하신 대로 3단계부터 능력을 실체화시킬 수 있습니다. 3단계부터가 우리가 양성하길 원하는 전사들입니다. 그러나 3단계에 갓 진입한 이들은 등급으로 따지면 F등급에 불과합니다. 신형 무기를 든 F등급의 전사보단 화기를 든 군인 10명이 실전에선 훨씬 더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아, 전에 그랬죠? 5단계 이상 진행한 D등급 전사부터가 진짜 전사라고.”
“예, 그렇습니다. 최소 D등급은 되어야 실전에서 전사의 의용을 보일 수 있을 겁니다.”
“음, 어쨌든 매우 희망적인 소식이군요. 한 명의 전사라도 빨리 보유하는 게 국가 안보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일이니까요.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그럼, 반대로 문제되는 인원은 없습니까?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 아닙니까?”
“한 명도 없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리면 정말 좋겠습니다만… 이번 프로젝트에 참가한 인원들 중 5명의 인원이 현재 정신적인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파견된 의료진 소견으론 5명의 인원들 모두 PTSD 증세가 의심된다고 합니다.”
“PTSD요? 혹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말하는 겁니까?”
“예.”
“아니, 전쟁은 시작도 안 했는데 무슨 PTSD에 걸립니까? PTSD는 전쟁 후의 군인에게나 걸릴 법한 병명 아닙니까?”
“…….”
“도대체 원인이 뭡니까? 92명 중 5명이면 굉장히 많은 수가 아닙니까? 비율로 따지면 약 7프로 정도고요.”
“저희가 본격적인 전사 양성에 앞서 참가한 인원들에게 모든 정보를 공개했지 않습니까? 그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공포에 지배당한 거로군요. 그런데 고작 정보만으로 PTSD에 걸릴 정도라니, 허…….”
“예, 거기다 책임감에도 짓눌린 것 같습니다.”
“후, 이해는 갑니다. 인류 생존이 그들의 어깨에 달려 있으니. 하지만 확실히 우리 때와 달리 요즘 사람들은 정신력이 참 약한 것 같습니다. 군인 출신들이 이러면 민간인들은 어떨지…….”
“…….”
“뭐, 어쨌든 알겠습니다. 5명 모두 잘 치료해 주시고 전사 양성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추가적으로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든지 청와대로 요구해 주시고요. 정부 차원으로 나서서 최대한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감사는요. 행정부의 수반으로써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요.”
보고를 마친 김학수 소장은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대통령과 대면할 때마다 이렇듯 긴장을 했다.
김학수 소장에게 질문을 마친 이현상 대통령은 가지고 있던 수첩의 페이지를 한 장 넘겨 거기에 적힌 내용을 확인한다. 그리곤 좌중의 인원들을 두루 살펴보다 오른쪽에 앉아 있는 국토안보부 장관을 본다.
“그럼… 국토안보부 장관님.”
국토안보부 장관 김지석은 육군 대장 출신이다. 1군 사령관 출신으로 앞으로 있을 외계인과의 전쟁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할 이다. 그는 군인 출신답게 절도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대통령님.”
“2차 대상자 편성은 모두 마치셨습니까?”
“예, 마쳤습니다. 2차로 편성된 인원은 총 500명입니다.”
“어떤 기준으로 편성하셨습니까?”
“최우선으로 국가기관의 근로자들을 선발했습니다. 나머지 모자란 인원들은 체육계 종사자 위주로 채워 넣었습니다.”
“옆에서 보고 들으셨다시피 대부분이 군인 출신인 1차에서도 약 7프로나 정신적인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5단계까지 아직 갈 길이 먼 걸 감안하면 앞으로 더 정신적인 문제를 겪는 이들이 늘어날 겁니다. 이에 대한 대책은 있습니까?”
“완전히 정보를 개방했던 1차 때와는 달리 2차 대상자에겐 정보를 제한할까 합니다. 1차 대상자들은 대부분 군 소속이라 정보 통제가 원활하고 또 1차 대상자들 위주로 팀장을 임명할 계획이기에 정보를 제한하지 않았습니다만, 2차 대상자들은 대부분이 민간인이지 않습니까? 정보 유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일이고 또 육체적, 정신적으로 1차 대상자들보단 단련되지도 않았고요.”
“음, 확실히 정보를 제한할 필요성이 있겠군요.”
“예, 그렇습니다.”
“헌데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문제의 소지가 다분해 보이는데요?”
“후에 분명 문제가 될 겁니다. 문제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현재 미래 전략 연구소에서 연구 중에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정보를 공개하고 어느 정도의 정보를 숨길지.”
“음, 알겠습니다. 정보 공개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면 바로 보고해 주십시오.”
“예.”
“그럼 다음으로 국방부 장관님.”
현 국방부장관 한민석은 공군 출신이다. 육군의 전유물로 인식되는 국방부 장관 자리를 차지한 입지적 인물이다. 그는 매우 카리스마 있게 생겼다. 눈은 부리부리했고, 턱은 각이 져 있다. 그도 절도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대통령님.”
“작전 계획은 수립되고 있습니까?”
“예, 테라칸 족에게 받은 정보를 토대로 이상 없이 수립되고 있습니다.”
“무기 구매 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1차로 구매하기로 한 필수 무기는 구매가 완료되어 인도를 기다리거나 인도가 완료된 상태입니다. 2차로 구매를 생각중인 무기들은 현재 협상 중에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방산 비리가 있어선 절대 안 됩니다. 대한민국 국민 전체의 목숨이 달린 문제입니다.”
“절대 없도록 신경 쓰겠습니다.”
“어허, 신경 쓰는 걸론 부족합니다. 군 사정 기관을 총동원하세요. 어떤 시도조차 있어선 안 됩니다.”
“예, 알겠습니다. 절대 방산 비리가 없도록 만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