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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눈을 뜨고 정면을 봤다. 빛에 눈이 적응됨과 동시에 앞의 것들이 보였다.
‘여긴?’
앞에는 익숙한 침대가 있었다. 그 옆에는 친숙한 테이블이 보였다.
이곳은 소설 속 세상이 아닌 선우의 집이다. 그가 고생해서 구한 전셋집이다.
선우는 이곳이 어디인지 파악된 순간 홀리듯 화장실로 갔다. 그러고는 화장실 거울을 통해 본인의 얼굴을 확인했다.
“아…….”
거울은 선우의 얼굴을 비추고 있다. 코도 없고 눈도 없는 리치로서의 소설 속 얼굴이 아닌, 잘생긴 코와 영롱한 두 눈을 가진 사람으로서 선우의 얼굴.
원래대로 돌아왔음을 거울로 확인한 선우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한층 깊어진 두 눈으로 눈물을 뚝뚝 떨어트렸을 뿐이다.
“흑…….”
그러던 선우는 불현듯 소리치고 싶었다. 민폐든 어쨌든 소리치지 않으면 못 배길 것 같았다. 선우는 무릎을 꿇고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돌아왔다!!”
선우가 소리치자 화장실은 소리를 가득 머금었다. 벽을 뚫고 소리가 퍼져나갔고 화장실 환기구를 통해 소리가 퍼져나간다.
소리를 들은 일부의 사람들은 쌍욕을 퍼부었다. 분위기 깨는데 일가견 있는 사람들이다.
“너 혼자 살아? 시XX아!”
“야, 이 개X끼야! 조용히 해! 지금이 몇 시인 줄 알아?!”
선우는 그 소리를 들었지만 무시했다. 방해받지 않고 싶었으니까.
한참을 처절하게 소리치던 선우는 뒤늦게 일어섰다. 한바탕 소리치고 나니 마음이 진정되었다.
선우는 수도꼭지의 물을 틀었다.
“으, 차다.”
콸콸 쏟아지는 물로 얼굴을 닦고 몸을 씻었다. 보일러가 켜져 있지 않다보니 당연히 찬물이 나왔지만 그런데도 좋았다. 찬기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는 게 마냥 행복했다. 얼음보다 더 차가운 물이여도 행복했을 게다.
선우는 찬물로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은 다음 침대에 누웠다. 아직도 돌아온 게 믿겨지지가 않아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흰색의 벽지가 수 억, 수십 억 원 그림을 보는 듯 그리 좋을 수 없다. 세상이 마냥 장밋빛이다.
그런 선우의 눈앞에 불현듯 두 개의 박스가 나타났다.
‘어?’
나타난 두 박스의 이름은 보상이었다. ‘보상1’과 ‘보상2’라 적혀 있었다.
선우는 보상이라는 글자에 혹했다가 움츠려 들었다. 생고생에 대한 보답을 주는 건가 싶다가도 잘못 선택해서 다시 소설 속 세계로 가는 건 아닌지 걱정되었다.
선우는 괜히 손을 잘못 놀려 이상한 선택을 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두 손은 침대에 딱 붙인 채로 두 박스의 내용을 확인했다.
―――――――――
[보상 No.1]
랜덤 스킬 카드(마법 한정) X3
or
[보상 No.2]
북 드림, 정식 버전 활성화
―――――――――
두 박스의 내용은 서로 달랐다. 두 개의 보상 박스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 같았다. 선우는 고민했다.
‘상식적으론 보상 No.1인데… 저 북 드림은 또 뭐야?’
북 드림이 뭐인지 모르겠다보니 두 번째 보상 전체가 뭘 뜻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판타지 소설 100권을 읽은 효과가 있는지 첫 번째 보상은 대충 짐작이 갔다.
확실히 알고 또 좋아 보이는 첫 번째 보상, 당연히 그것을 선택하는 게 옳아 보였다. 그런데 선뜻 첫 번째 보상에 손이 가질 않았다. 왠지 낚시 같달까.
선우는 한참을 고민하다 선택했다.
꾹.
“도박이다.”
선우가 선택한 것은 보상 No.2였다. 그걸 선택한 이유는 좋은 게 좋은 것 일리 없다는 의심 때문이었다.
이 보물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을 엿 먹였다. 처음에는 막무가내로 암호 해독 같은 것을 시키더니 두 번째엔 뜬금없이 소설 속 세계로 보내 리치로 만들었다.
물론 이 보물을 얻음으로써 체력이 강해지고 키가 약간 커졌다. 남자의 상징도 흡족할 정도로 커졌고, 눈도 밝아졌다. 그러나 그건 그냥 병 준 다음 약 준 것이다. 큰 의미를 부여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런 보물이 갑자기 개과천선한다? 웃기는 소리다. 그렇다면 좋아 보이는 것도 좋은 게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정체를 알 수 없거나 확연히 나빠 보이는 게 진짜 좋은 걸 수도 있다.
이게 보상 No.2를 선택의 이유다. 아주 조금 북 드림이란 게 뭔지 궁금하기도 했다.
선우가 보상을 선택하자 두 개의 박스 모두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기계가 말하는 듯 차갑고 냉정한, 정 없어 보이는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북 드림, 정식 버전 설치를 시작합니다. 작업 완료까지 총 30분이 소요됩니다.]
목소리가 말을 끝낸 순간, 손목이 아파져 오기 시작했다. 처음 보물을 얻고 기절했을 때 느꼈던 고통, 그 무지막하고 지랄 같은 고통과 버금가는 고통이 전신에서 느껴졌다.
“으웁.”
선우는 이 악물고 고통을 참았다. 어떻게든 의식을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의식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면 할수록 고통은 배가 된다. 아무래도 조금이라도 빨리 의식을 놓는 게 현명한 판단 같다.
선우는 고통을 더는 참지 못하고 의식을 놓았다.
탁.
선우가 의식을 완전히 놓자 선우의 꽉 쥔 손도 힘이 빠졌다. 선우의 몸만 붉으락푸르락 변한다.
얼마 후, 예의 그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는 듣는 사람 없는 데도 혼자서 말했다.
[북 드림, 정식 버전 설치가 완료되었습니다.]
***
찬바람이 불어오는 산 중턱을 한 남자가 성난 황소처럼 달리고 있다. 그는 상의를 탈의한 상태로 상반신을 완전히 드러내고 있다.
그는 온몸이 근육으로 덮여 있었다. 대회에 나가는 보디빌더들처럼 쓸데없이 부푼 근육이 아니라 압축되고 압축된 실전 근육이었다.
그런 그가 뛰는 모습을 한 대의 헬리콥터가 촬영하고 있다. 그들이 촬영한 장면을 한 연구소 회의실에서 지켜보고 있다.
그 연구소는 미래 전사 연구소다. 그 회의실에는 현재 두 사람이 앉아 있다.
한 사람은 김학수 미래 전사 연구소 소장이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이연희 미래 전사 연구소 수석 연구원이다.
긴 생머리가 무척 잘 어울리는 여자, 이연희 연구원이 브리핑했다.
“46번 전사, 이름 최형우, 나이 27세입니다. 알파형이며 A형 이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키는 187cm 이고 몸무게 115㎏입니다. 어제부로 3단계 진입 완료하였고, 4단계 진입을 목표로 훈련 중입니다.”
“엄청 빠르군. 백두산 호랑이 저리 가라야. 100m 기록이 어떻게 되지?”
“현재 최형우 씨는 100m를 9초대로 주파하고 있습니다. 단계가 오를 때마다 기록이 단축되는 걸 보면 5단계에 접어들었을 때는 100m를 8초대에 돌파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취사병 출신이라고 했지?”
“예, 취사병 출신입니다. 듣기론 한때 꿈이 셰프였다고 합니다.”
“정말 보면 볼수록 1등 신랑감이야. 몸 좋고, 정신 건강하고, 능력 있고, 요리 잘하고. 이 연구원, 남친 없다고 하지 않았나? 저 친구 어때? 남자친구로 괜찮을 것 같은데.”
“생각 없습니다.”
“생각 없어? 왜? 이 연구원 로망이 밤낮없이 하는 거라면서? 저 친구 아주 짐승일 것 같은데? 물건도 실해보이고.”
“그 때 한 말은 술자리에서 한 농담이었습니다. 그걸 가지고 계속 성희롱 발언을 하시면 경찰에 성희롱으로 고발하겠습니다. 결콘 빈말이 아닙니다.”
“차갑긴.”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다음은 47번입니다.”
화면이 바뀌었다. 이번에는 실외가 아닌 실내 CCTV가 나온다. 화면 중심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오른손에 솜뭉치를 든 채 집중하고 있다.
집중의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순간, 솜에 불이 붙었다.
“47번 전사, 이름 나성범. 나이 23세입니다. 베타형이며 B형 이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키는 175cm, 몸무게 77㎏입니다. 3일 전 3단계 진입을 완료하였고, 4단계 진입을 목표로 훈련 중입니다.”
“저기 저거 솜 같은데, 맞나?”
“예, 맞습니다.”
“솜 없이 발화 능력을 쓸 순 없는 건가?”
“솜 없이도 발화 능력을 쓸 순 있지만 시간이 다소 오래 걸립니다. 효율 면에서 솜을 사용하는 게 나아 솜을 든 채 훈련시키고 있었습니다.”
“솜 빼. 솜 없이도 얼마든지 발화 능력을 쓸 수 있게 만들어. 그게 자네의 역할이야. 편법을 가르쳐 주는 게 아니라.”
“예, 소장님. 말씀대로 조치하겠습니다.”
“다음.”
이연희 연구원은 또다시 리모컨을 눌렀다. 이번에도 역시 화면이 바뀌었다.
이번에는 실외가 아닌 실내 어딘가에 비쳐진다. 출현진이 굉장히 많다.
한 남자와 다수의 동물들.
그 동물들은 어딘가가 하나씩 다쳐 있다. 팔에 피를 흘리는 고양이도 있고, 코에 상처 있는 강아지도 있다.
그중 코에 상처 입은 강아지를 향해 우락부락한 근육을 가진 남자가 다가갔다.
“멍멍아, 안 아프게 해줄게.”
그는 강아지의 코에 손을 올렸다. 발화능력을 선보였던 남자처럼 정신을 집중했다.
그의 손에서 하얀 빛이 세어 나왔다. 강아지 코에 난 상처가 서서히 아물어간다.
화면을 보던 이연희 연구원이 말했다.
“48번 전사, 이름 이은별, 나이 31세입니다. 알파형이며 D형 이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키는 184Cm, 몸무게는 102㎏입니다. 이틀 전 3단계에 진입 완료하였고, 현재는 4단계 진입을 목표로 훈련 중입니다.”
“48번? 설마 그 전사인가? PTSD를 겪고 있다는?”
“그렇습니다.”
“화면 상 별 이상 없어 보이는데?”
“다음을 보시면 아실 겁니다.”
남자는 강아지의 코를 완전히 치료했다. 강아지는 고맙다는 듯 남자의 코를 핥는다.
남자는 해맑은 아이처럼 웃었다. 강아지를 예뻐 죽겠다는 품으로 껴안았다. 그러다 돌연 냉정한 표정을 지었다.
“다 나았어? 괜찮아? 그러면 이만 죽자. 어차피 멸망할 지구, 더 살아서 뭐하겠니.”
남자는 말과 함께 강아지의 목을 꺾었다. 강아지는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다 축 늘어졌다. 그 모습을 본 김학수 소장은 탄식했다.
“하, 심각하군.”
“보셔서 아시다시피 집중적인 정신치료가 필요합니다. 정신치료를 위해 훈련 열외합니까?”
“아니, D형이잖아. 그냥 계속 진행시켜. 영영회복이 안 되면 블랙 요원으로라도 쓰지, 뭐. 코드네임 죽음의 천사. 어때? 저 친구한테 딱일 것 같은데.”
“…”
“별로야?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지.”
“다음 49번 전사입니다.”
***
쏴아∼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오전 9시, 해가 뜬 이후지만 차창 밖은 비구름 때문에 어둡기만 했다.
선우는 쥐 죽은 듯 자다가 그 시간쯤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음…….”
선우는 약 5분 후 정신을 차렸다. 슬며시 감았던 눈을 떴다.
“응?”
집 내부는 밖의 날씨 탓에 매우 어두웠다. 얼핏 빛 한 점 들어오지 않았던 그 세계의 동굴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선우의 눈이 동그래진다. 선우의 눈꺼풀이 바들바들 떨린다. 그러나 확실히 이곳은 동굴이 아니다. 이곳은 선우의 집이다.
선우는 발에 힘을 주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더듬고 더듬어 침대 옆에 붙어 있는 스위치를 찾았다.
딸깍
스위치를 누르니 불이 들어왔다. 천장의 백색 형광등 불빛이 이곳을 비춘다.
눈으로 다시 확인한 선우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
눈을 뜨고 정면을 봤다. 빛에 눈이 적응됨과 동시에 앞의 것들이 보였다.
‘여긴?’
앞에는 익숙한 침대가 있었다. 그 옆에는 친숙한 테이블이 보였다.
이곳은 소설 속 세상이 아닌 선우의 집이다. 그가 고생해서 구한 전셋집이다.
선우는 이곳이 어디인지 파악된 순간 홀리듯 화장실로 갔다. 그러고는 화장실 거울을 통해 본인의 얼굴을 확인했다.
“아…….”
거울은 선우의 얼굴을 비추고 있다. 코도 없고 눈도 없는 리치로서의 소설 속 얼굴이 아닌, 잘생긴 코와 영롱한 두 눈을 가진 사람으로서 선우의 얼굴.
원래대로 돌아왔음을 거울로 확인한 선우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한층 깊어진 두 눈으로 눈물을 뚝뚝 떨어트렸을 뿐이다.
“흑…….”
그러던 선우는 불현듯 소리치고 싶었다. 민폐든 어쨌든 소리치지 않으면 못 배길 것 같았다. 선우는 무릎을 꿇고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돌아왔다!!”
선우가 소리치자 화장실은 소리를 가득 머금었다. 벽을 뚫고 소리가 퍼져나갔고 화장실 환기구를 통해 소리가 퍼져나간다.
소리를 들은 일부의 사람들은 쌍욕을 퍼부었다. 분위기 깨는데 일가견 있는 사람들이다.
“너 혼자 살아? 시XX아!”
“야, 이 개X끼야! 조용히 해! 지금이 몇 시인 줄 알아?!”
선우는 그 소리를 들었지만 무시했다. 방해받지 않고 싶었으니까.
한참을 처절하게 소리치던 선우는 뒤늦게 일어섰다. 한바탕 소리치고 나니 마음이 진정되었다.
선우는 수도꼭지의 물을 틀었다.
“으, 차다.”
콸콸 쏟아지는 물로 얼굴을 닦고 몸을 씻었다. 보일러가 켜져 있지 않다보니 당연히 찬물이 나왔지만 그런데도 좋았다. 찬기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는 게 마냥 행복했다. 얼음보다 더 차가운 물이여도 행복했을 게다.
선우는 찬물로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은 다음 침대에 누웠다. 아직도 돌아온 게 믿겨지지가 않아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흰색의 벽지가 수 억, 수십 억 원 그림을 보는 듯 그리 좋을 수 없다. 세상이 마냥 장밋빛이다.
그런 선우의 눈앞에 불현듯 두 개의 박스가 나타났다.
‘어?’
나타난 두 박스의 이름은 보상이었다. ‘보상1’과 ‘보상2’라 적혀 있었다.
선우는 보상이라는 글자에 혹했다가 움츠려 들었다. 생고생에 대한 보답을 주는 건가 싶다가도 잘못 선택해서 다시 소설 속 세계로 가는 건 아닌지 걱정되었다.
선우는 괜히 손을 잘못 놀려 이상한 선택을 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두 손은 침대에 딱 붙인 채로 두 박스의 내용을 확인했다.
―――――――――
[보상 No.1]
랜덤 스킬 카드(마법 한정) X3
or
[보상 No.2]
북 드림, 정식 버전 활성화
―――――――――
두 박스의 내용은 서로 달랐다. 두 개의 보상 박스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 같았다. 선우는 고민했다.
‘상식적으론 보상 No.1인데… 저 북 드림은 또 뭐야?’
북 드림이 뭐인지 모르겠다보니 두 번째 보상 전체가 뭘 뜻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판타지 소설 100권을 읽은 효과가 있는지 첫 번째 보상은 대충 짐작이 갔다.
확실히 알고 또 좋아 보이는 첫 번째 보상, 당연히 그것을 선택하는 게 옳아 보였다. 그런데 선뜻 첫 번째 보상에 손이 가질 않았다. 왠지 낚시 같달까.
선우는 한참을 고민하다 선택했다.
꾹.
“도박이다.”
선우가 선택한 것은 보상 No.2였다. 그걸 선택한 이유는 좋은 게 좋은 것 일리 없다는 의심 때문이었다.
이 보물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을 엿 먹였다. 처음에는 막무가내로 암호 해독 같은 것을 시키더니 두 번째엔 뜬금없이 소설 속 세계로 보내 리치로 만들었다.
물론 이 보물을 얻음으로써 체력이 강해지고 키가 약간 커졌다. 남자의 상징도 흡족할 정도로 커졌고, 눈도 밝아졌다. 그러나 그건 그냥 병 준 다음 약 준 것이다. 큰 의미를 부여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런 보물이 갑자기 개과천선한다? 웃기는 소리다. 그렇다면 좋아 보이는 것도 좋은 게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정체를 알 수 없거나 확연히 나빠 보이는 게 진짜 좋은 걸 수도 있다.
이게 보상 No.2를 선택의 이유다. 아주 조금 북 드림이란 게 뭔지 궁금하기도 했다.
선우가 보상을 선택하자 두 개의 박스 모두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기계가 말하는 듯 차갑고 냉정한, 정 없어 보이는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북 드림, 정식 버전 설치를 시작합니다. 작업 완료까지 총 30분이 소요됩니다.]
목소리가 말을 끝낸 순간, 손목이 아파져 오기 시작했다. 처음 보물을 얻고 기절했을 때 느꼈던 고통, 그 무지막하고 지랄 같은 고통과 버금가는 고통이 전신에서 느껴졌다.
“으웁.”
선우는 이 악물고 고통을 참았다. 어떻게든 의식을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의식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면 할수록 고통은 배가 된다. 아무래도 조금이라도 빨리 의식을 놓는 게 현명한 판단 같다.
선우는 고통을 더는 참지 못하고 의식을 놓았다.
탁.
선우가 의식을 완전히 놓자 선우의 꽉 쥔 손도 힘이 빠졌다. 선우의 몸만 붉으락푸르락 변한다.
얼마 후, 예의 그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는 듣는 사람 없는 데도 혼자서 말했다.
[북 드림, 정식 버전 설치가 완료되었습니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산 중턱을 한 남자가 성난 황소처럼 달리고 있다. 그는 상의를 탈의한 상태로 상반신을 완전히 드러내고 있다.
그는 온몸이 근육으로 덮여 있었다. 대회에 나가는 보디빌더들처럼 쓸데없이 부푼 근육이 아니라 압축되고 압축된 실전 근육이었다.
그런 그가 뛰는 모습을 한 대의 헬리콥터가 촬영하고 있다. 그들이 촬영한 장면을 한 연구소 회의실에서 지켜보고 있다.
그 연구소는 미래 전사 연구소다. 그 회의실에는 현재 두 사람이 앉아 있다.
한 사람은 김학수 미래 전사 연구소 소장이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이연희 미래 전사 연구소 수석 연구원이다.
긴 생머리가 무척 잘 어울리는 여자, 이연희 연구원이 브리핑했다.
“46번 전사, 이름 최형우, 나이 27세입니다. 알파형이며 A형 이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키는 187cm 이고 몸무게 115㎏입니다. 어제부로 3단계 진입 완료하였고, 4단계 진입을 목표로 훈련 중입니다.”
“엄청 빠르군. 백두산 호랑이 저리 가라야. 100m 기록이 어떻게 되지?”
“현재 최형우 씨는 100m를 9초대로 주파하고 있습니다. 단계가 오를 때마다 기록이 단축되는 걸 보면 5단계에 접어들었을 때는 100m를 8초대에 돌파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취사병 출신이라고 했지?”
“예, 취사병 출신입니다. 듣기론 한때 꿈이 셰프였다고 합니다.”
“정말 보면 볼수록 1등 신랑감이야. 몸 좋고, 정신 건강하고, 능력 있고, 요리 잘하고. 이 연구원, 남친 없다고 하지 않았나? 저 친구 어때? 남자친구로 괜찮을 것 같은데.”
“생각 없습니다.”
“생각 없어? 왜? 이 연구원 로망이 밤낮없이 하는 거라면서? 저 친구 아주 짐승일 것 같은데? 물건도 실해보이고.”
“그 때 한 말은 술자리에서 한 농담이었습니다. 그걸 가지고 계속 성희롱 발언을 하시면 경찰에 성희롱으로 고발하겠습니다. 결콘 빈말이 아닙니다.”
“차갑긴.”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다음은 47번입니다.”
화면이 바뀌었다. 이번에는 실외가 아닌 실내 CCTV가 나온다. 화면 중심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오른손에 솜뭉치를 든 채 집중하고 있다.
집중의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순간, 솜에 불이 붙었다.
“47번 전사, 이름 나성범. 나이 23세입니다. 베타형이며 B형 이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키는 175cm, 몸무게 77㎏입니다. 3일 전 3단계 진입을 완료하였고, 4단계 진입을 목표로 훈련 중입니다.”
“저기 저거 솜 같은데, 맞나?”
“예, 맞습니다.”
“솜 없이 발화 능력을 쓸 순 없는 건가?”
“솜 없이도 발화 능력을 쓸 순 있지만 시간이 다소 오래 걸립니다. 효율 면에서 솜을 사용하는 게 나아 솜을 든 채 훈련시키고 있었습니다.”
“솜 빼. 솜 없이도 얼마든지 발화 능력을 쓸 수 있게 만들어. 그게 자네의 역할이야. 편법을 가르쳐 주는 게 아니라.”
“예, 소장님. 말씀대로 조치하겠습니다.”
“다음.”
이연희 연구원은 또다시 리모컨을 눌렀다. 이번에도 역시 화면이 바뀌었다.
이번에는 실외가 아닌 실내 어딘가에 비쳐진다. 출현진이 굉장히 많다.
한 남자와 다수의 동물들.
그 동물들은 어딘가가 하나씩 다쳐 있다. 팔에 피를 흘리는 고양이도 있고, 코에 상처 있는 강아지도 있다.
그중 코에 상처 입은 강아지를 향해 우락부락한 근육을 가진 남자가 다가갔다.
“멍멍아, 안 아프게 해줄게.”
그는 강아지의 코에 손을 올렸다. 발화능력을 선보였던 남자처럼 정신을 집중했다.
그의 손에서 하얀 빛이 세어 나왔다. 강아지 코에 난 상처가 서서히 아물어간다.
화면을 보던 이연희 연구원이 말했다.
“48번 전사, 이름 이은별, 나이 31세입니다. 알파형이며 D형 이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키는 184Cm, 몸무게는 102㎏입니다. 이틀 전 3단계에 진입 완료하였고, 현재는 4단계 진입을 목표로 훈련 중입니다.”
“48번? 설마 그 전사인가? PTSD를 겪고 있다는?”
“그렇습니다.”
“화면 상 별 이상 없어 보이는데?”
“다음을 보시면 아실 겁니다.”
남자는 강아지의 코를 완전히 치료했다. 강아지는 고맙다는 듯 남자의 코를 핥는다.
남자는 해맑은 아이처럼 웃었다. 강아지를 예뻐 죽겠다는 품으로 껴안았다. 그러다 돌연 냉정한 표정을 지었다.
“다 나았어? 괜찮아? 그러면 이만 죽자. 어차피 멸망할 지구, 더 살아서 뭐하겠니.”
남자는 말과 함께 강아지의 목을 꺾었다. 강아지는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다 축 늘어졌다. 그 모습을 본 김학수 소장은 탄식했다.
“하, 심각하군.”
“보셔서 아시다시피 집중적인 정신치료가 필요합니다. 정신치료를 위해 훈련 열외합니까?”
“아니, D형이잖아. 그냥 계속 진행시켜. 영영회복이 안 되면 블랙 요원으로라도 쓰지, 뭐. 코드네임 죽음의 천사. 어때? 저 친구한테 딱일 것 같은데.”
“…”
“별로야?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지.”
“다음 49번 전사입니다.”
쏴아∼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오전 9시, 해가 뜬 이후지만 차창 밖은 비구름 때문에 어둡기만 했다.
선우는 쥐 죽은 듯 자다가 그 시간쯤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음…….”
선우는 약 5분 후 정신을 차렸다. 슬며시 감았던 눈을 떴다.
“응?”
집 내부는 밖의 날씨 탓에 매우 어두웠다. 얼핏 빛 한 점 들어오지 않았던 그 세계의 동굴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선우의 눈이 동그래진다. 선우의 눈꺼풀이 바들바들 떨린다. 그러나 확실히 이곳은 동굴이 아니다. 이곳은 선우의 집이다.
선우는 발에 힘을 주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더듬고 더듬어 침대 옆에 붙어 있는 스위치를 찾았다.
딸깍
스위치를 누르니 불이 들어왔다. 천장의 백색 형광등 불빛이 이곳을 비춘다.
눈으로 다시 확인한 선우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