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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솔직히 남 10명, 100명이 잘되는 것보다 나 혼자 잘 되는 게 훨씬 낫다. 남 10명, 100명 살리면 뭐하나. 내가 죽으면 끝인데.
이기적이라 말해도 좋다. 비난하고 경멸해도 할 말 없다. 나란 놈은 태생부터 이기적인 놈이었다. 태생이 그렇지 않은가? 자식까지 버리는 이기적인 여자의 소생.
선우는 모두 인정하기로 했다. 현실이었어도 나 살기 위해 그들을 가차 없이 죽였을 거라는 것.
‘그래, 맞아. 내가 죽였어. 근데 날 죽이려는 놈 죽인 게 무슨 잘못이야? 안 죽이면 내가 죽는데. 그리고 내가 죽어주면 그들이 고마워하기라도 한데? 오히려 비웃을 걸? 병신이라고 욕 안 하면 다행이지.’
그걸 인정하자 죄책감이 싹 사그라들었다. 마음 한구석을 괴롭히고 헐뜯던 것들이 한 순간에 아지랑이처럼 허무하게 사라진다.
왜 고작 저런 것을 계속 고민하고 두려워하고 죄책감을 가졌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선우는 환하게 웃으면서 거절의 말을 했다.
“그 말은 안 해줘도 돼.
[정말입니까?]
“어, 인정하기로 했거든. 내가 그리 착한 놈이 아니라는 것.”
[성장하셨군요.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그 덕분에 주어야 했지만 줄 수 없던 보상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뭔 소리야?”
[사용자님, 리치 킹의 무덤에 들어가셨을 때 01이라는 숫자가 생긴 것, 기억하십니까?]
“그거? 어, 기억하고 있어. 그게 뭐? 설마……?”
[예, 맞습니다, 그 ‘히든 미션’의 보상입니다.]
“…….”
[히든 미션을 깨셨으니 보상을 드려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보상을 드릴 수 없었습니다. 몸에 있는 F형 인자가 북 드림 정식 버전을 이상 없이 돌릴 만큼 성장했지만 특별 미션 클리어 보상을 드릴 만큼은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건 정말 제 예상 밖의 일이었습니다. 사용자님이 그렇게 뭔가를 외면하는 방법을 잘 아실 줄 몰랐습니다.]
라라의 말대로 선우는 외면하는 게 특기였다. 아버지의 죽음, 그 여자의 배신, 잔혹했던 그들.
그 연속된 일상을 겪으면서 외면하는 게 일상이자 특기가 되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잘하는 것이 외면한 것을 즉시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독립했고, 굶어죽지 않기 위해 인력 사무소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나갔으며 죽자 살자 돈을 모았던 거다.
선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이기 때문이다.
“…….”
그러자 라라가 다시 말했다.
[그런데 지금의 사용자님은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만큼 정신이 성장했고, 그만큼 F형 인자가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추가로 보상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히든 미션의 성공 보상을.]
“그래서, 뭐 주는데?”
두구두구두구∼
갑자기 북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들을 인정했지만 그렇다고 막 기분까지 상쾌해진 건 아니었다. 선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상한 효과음 깔지 마라.”
[아쉽게도 보상이 발표되기 전까지 효과음을 들으셔야 합니다. 이 효과음은 대현자 나그나록스 님이 직접 넣으신 거니까요.]
이 북소리를 대현자 나그나룩스가 넣었다고? 선우는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을 지었다.
“그 양반 참… 할 짓 더럽게 없었나 보네. 알았으니까 빨리 말해. 보상이 뭔데?”
[보상은 총 세 가지입니다. 두 가지는 북 드림 시스템에 포함되어 있는, 원래부터 주려고 했던 보상이고 추가된 한 가지가 바로 히든 보상입니다.]
“…….”
[먼저 북 드림 시스템에 포함되어 있는 첫 번째 보상을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보상!]
두구두구두구∼
[사용자 정보창!]
“사용자 정보창?”
[사용자님, 사용자님은 혹시 게임을 해보신 적 있으십니까?]
“게임? 컴퓨터 게임?”
[예, 맞습니다.]
“…해봤어.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시기 전뿐이지만. 그때는 정말 게임을 많이 했지. 혼자 집에 있으면 할 게 없었거든. 아버지는 술 드시느라 나에 대해 터치를 일절 하지 않으셨고.”
[그건 불행 중 다행입니다. 평소 생활을 관찰한 바로는 게임을 전혀 안 하시기에 게임에 대해 전혀 모르실까봐 걱정했습니다. 그럼 게임에 대해 아신다 생각하고 설명 드리겠습니다. 사용자 정보창은 캐릭터 정보창과 일맥상통합니다. 캐릭터 대신, 사용자님의 정보를 볼 수 있다 생각하시면 됩니다.]
“내 정보를?”
[예]
“어떤 게 나와 있는데? 너가 나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안 다고?”
[말로써 설명 드리는 것보단 직접 보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정보창이라고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이번에도 버튼이 아니야?”
[예, 아닙니다. 혹시 불편하십니까? 불편하시다면 시야 한쪽 구석에 버튼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만들어 드립니까?]
“아니, 됐어. 그냥 말로 할게. 정보창!”
선우가 정보창이라 외친 순간, 오랜만에 선우의 손목이 빛이 나기 시작했다.
황금색 빛은 소설 장르를 나열 했을 때처럼 홀로그램으로 뭔가를 만들었다.
눈앞에 나타난 것은 정보창이다. RPG게임에서 흔희 볼 수 있는 캐릭터 정보창과 닮아 있다.
선우는 나타난 정보창을 봤다.
〈 사용자 정보( User Information ) 〉
1, 이름(Name) : 이선우
2, 나이(Age) : 20세
3, 성별(Sex) : 남자
4, 국적(Nationality) : 대한민국
5, 신장(Height)⁕체중(Weight) : 179cm. 72.5㎏
6, 종합 능력치( Comprehensive Ability )
[근력 : 16]
[내구 : 14]
[민첩 : 15]
[체력 : 20]
[마력 : 10]
[행운 : 07]
7, 보유 스킬( Possession Skill )
― 보유한 스킬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선우는 정보창에 어떤 정보들이 있는지 우선 살폈다. 환상족 대현자가 만든 정보창이기에 감추고 싶은 민낯까지 나오는 건 아닌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안 해도 될 걱정이었다. 두 가지 항목 빼곤 매우 평범한 내용이었다.
선우는 다소 안심을 하며 정보창을 다시 살폈다. 그리고 궁금한 것을 물었다,
“정보창에 나타난 내 정보는 이게 전부야?”
[더 나타낼 수 있지만,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사용자님이 원하시지 않는 듯하였기 때문입니다. 더 추가해 드립니까? 그럼 추가할 사용자님의 정보가 굉장히 많은데요?]
정보창의 정보가 적은 이유는 일종의 배려였다.
선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 배려를 거부하고픈 생각은 전혀 없었으니까.
“아니, 추가하지 마. 예쁜 여자의 쓰리 사이즈도 아니고 내 자세한 정보는 그다지 알고 싶지 않으니까. 고로 패스. 그럼 다음 질문할게.”
[예, 하십시오.]
“정보창을 첫 번째 보상으로 주는 이유는 아무래도 종합 능력치와 보유 스킬 때문인 것 같아. 내 말이 맞아?”
[예, 맞습니다.]
“그럼, 먼저 종합 능력치에서 궁금한 것을 물을게. 저기에 나와 있는 마력이 도대체 뭐야? 다른 건 다 이해가 가거든? 근데 저건 정말 뭔 말인지 모르겠어.”
[판타지 소설 100권을 읽지 않으셨습니까? 판타지 소설 100권쯤 읽으셨으면 마력이 뭔지 아실 텐데요?]
“그래! 판타지소설은 100권쯤 읽었어. 그래, 맞아. 사실 마력이 무슨 말인지 잘 알아. 마나 뭐 그런 거 거나 내공 뭐 그런 거랑 비슷한 거겠지. 아니면 통합된 개념이거나.”
[알면서 왜 물으시는 겁니까? 사용자님의 말씀이 정확히 맞는데요.]
“내가 진짜 궁금한 건! 난 마력을 일절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거야. F형? 여튼 뭔가 특별한 걸 가지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난 평범한 인간이라고! 뭐, 물론 이제는 평범하진 않게 되었지만 어쨌든! 그러니까 설명해 봐. 왜 마력이라는 게 내 능력치에 적혀 있는지? 10이라는 수치는 또 뭐고?”
[우주에 존재하는 지성체의 혈액에는 F형 말고도 다양한 특이 인자가 존재합니다. 이 다양한 특이 인자들 중 하나를 가지고 있는 이는 특정 조건을 충족할 시 특이 인자로부터 발현된 능력을 쓸 수가 있습니다. 발현된 능력을 쓰기 위해선 마력이 필요합니다. 능력 발현의 특정 조건 중 하나가 바로 마력을 손에 넣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용자님도 마력을 손에 넣으셨습니다. 체내에 마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본 시스템이 구동되고 있는 게 그 증거입니다.]
선우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북 드림 시스템을 가동하는 두 가지 축 중 하나가 바로 선우의 마력이었다.
선우는 그 말이 선뜻 이해가 가질 않았다. 판타지 소설을 보면 마나를 느끼고, 마나를 체험하는 과정이 꼭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나오는 데 자신은 그런 것을 전혀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선우는 다시 물었다.
“내가 마력을 손에 넣었다고? 언제?”
[환상족의 피, 그건 본 시스템을 구동시키는 중요한 열쇠이기도 하지만, 사용자님 마력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외계인에게 받은 붉은색 병, 그 안에 가득 들어 있던 역겨운 냄새의 환생족의 피. 그것은 보물을 가동시키는 열쇠임과 동시에 마력의 원천이었다. 선우의 체내에 들어와 선우의 혈액과 결합하면서 혈액 속 마력을 선우에게 모두 넘겨 준 것이다.
라라를 통해 그 사실을 깨닫게 된 선우는 죽은 외계인이 다시 한 번 고마워졌다. 일전에 원망하고 의심했던 게 괜히 미안해질 정도다.
선우는 속으로 그 외계인의 명복을 빌었고 다시 말했다.
“마력은 그럼 그때 얻은 거야?”
[예, 그렇습니다. 숫자 10은 사용자님이 가지고 계신 마력을 수치화한 겁니다.]
“그럼 다음 질문! 얻은 마력은 일회용이야?”
[아닙니다.]
“아니야?”
[마력은 우주가 탄생하는 순간부터 존재했습니다. 이 지구에도 마력이 존재합니다. 마력집을 가지고 있는 이는 그 마력을 스스로 흡수합니다. 그러니 비어 있던 마력집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가득 찹니다.]
“마력집? 내게 그 마력집이란 게 있어?”
[예, 있습니다. 보유하고 계신 마력이 어디에 보관되어 있을 것 같습니까?]
“그렇다면 마력집과 마력 느껴보고 싶어. 어떻게 해야 해?”
[없는 마력집을 만들고 마력을 스스로 느끼는 것은 극악이라 표현해도 부족할 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있는 마력집과 마력을 스스로 느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먼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주십시오.]
“가부좌?”
[예.]
가부좌는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자세다. 불가에서는 흔히 여래좌라고 하며 무협 소설에 주로 등장한다.
선우는 이 자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무협 소설뿐만 아니라 판타지 소설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자세이기 때문이다.
앉은 자세에서 한쪽 다리를 구부려 반대쪽 허벅지 깊숙이 올리고 반대쪽 다리를 그 위에 올려놓았다.
[그 다음 허리와 목을 곧게 펴십시오. 눈을 감고 심장에 온 신경을 집중해 주십시오.]
선우는 라라가 시킨 대로 허리와 목을 곧게 폈다. 그 다음 눈을 감고 심장에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온 신경이 심장에 집중되자 창문 밖에서 어렴풋이 들리던 차 소리와 사람의 목소리 등이 들리지 않기 시작했다.
조금씩 느껴졌던 추위도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선우는 조금 더 집중했다.
‘…느껴진다.’
심장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심장이 두근두근 약동하면서 혈관에 붉은색 혈액을 뿜어내는 게 느껴졌다. 그러다 뭔가 이질적인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좁쌀 정도의 아주 작은 크기였다.
선우는 저게 마력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혹이나 종양 같은 몸에 안 좋은 것들이라 생각하기엔 느낌이 달랐다. 그때 라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이 바로 마력집입니다. 다른 말로는 중단전이라 합니다. 그 안에 마력이 들어 있습니다. 마력집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 안에 들어가 있는 마력 또한 늘어날 겁니다. 다음은 마력을 느끼실 차례입니다.]
“어떻게 해?”
[마력집 안을 들여다본다고 생각하십시오.]
라라의 말대로 마력집 안을 들여다본다 생각했다. 잠시 깨진집중력을 다시 발휘해서 내부를 관조하고 마력집 안의 마력을 관찰했다.
뭔가가 느껴졌다. 꿈틀꿈틀, 꼬물꼬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느낌이었다.
마력을 느껴서 그런지 욕심이 생겼다. 이 마력을 움직여보고 싶다는 욕심.
“이 마력집 안에 들어가 있는 마력을 끌어서 쓸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무협 소설이나 판타지 소설을 보면 마력을 몸에 막 돌리잖아. 그렇게 해서 마력집을 성장시키고.”
[있습니다만 당장은 가르쳐드릴 수 없습니다.]
“왜?”
[마력을 통제하는 힘은 특이 인자입니다. 특이 인자가 통제할 수 있는 마력의 양은 극히 제한적입니다. 특이 인자가 통제할 수 없는 마력을 가지게 되는 순간 마력은 폭주할 겁니다.]
“폭주하면 어떻게 되는데?”
[폭주한 마력은 사용자님의 몸을 해칠 겁니다. 그리고 종래에는 사용자님을 사망하시게 만들 겁니다. 그러니 지금은 마력을 움직이고 성장시키는 방법을 가르쳐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럼 언제 가르쳐 줄 건데? 가르쳐 주기는 할 거야?”
[제가 적절할 때에 보상이라는 이름으로 마력을 움직이고 키우는 방법을 가르쳐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 기다리는 게 힘들다 판단된다면 스스로 연구하십시오. 스스로 연구하여 마력을 다루는 것은 말리지 않겠습니다. 물론 제가 적절하게 통제하겠지만요.]
“오케이, 마력에 대해선 대충 알겠어. 이건 더 질문하지 않을 게. 그럼 다음 질문! 근력, 내구, 민첩, 체력 등을 올리는 것도 먼저 특이 인자를 성장시켜야 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마력을 가지고 태어난 게 아닙니다. 마력은 원래 없던 것이 어떤 조건에 의해 생긴 것입니다. 다른 것들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원래의 것들입니다. 얼마든지 성장시키실 수 있습니다.]
마력과 달리 다른 능력치들은 얼마든지 성장이 가능했다. 마력처럼 다른 능력치들도 성장 못하게 막을 줄 알았는데 조금 의외였다.
그 말을 들은 선우는 눈을 빛냈다. 오랜만에 놀러 온 삼촌에게 선물을 바라는 조카의 눈을 했다.
“그래? 그럼, 가르쳐 줘. 무공 같은 거 말이야.”
솔직히 남 10명, 100명이 잘되는 것보다 나 혼자 잘 되는 게 훨씬 낫다. 남 10명, 100명 살리면 뭐하나. 내가 죽으면 끝인데.
이기적이라 말해도 좋다. 비난하고 경멸해도 할 말 없다. 나란 놈은 태생부터 이기적인 놈이었다. 태생이 그렇지 않은가? 자식까지 버리는 이기적인 여자의 소생.
선우는 모두 인정하기로 했다. 현실이었어도 나 살기 위해 그들을 가차 없이 죽였을 거라는 것.
‘그래, 맞아. 내가 죽였어. 근데 날 죽이려는 놈 죽인 게 무슨 잘못이야? 안 죽이면 내가 죽는데. 그리고 내가 죽어주면 그들이 고마워하기라도 한데? 오히려 비웃을 걸? 병신이라고 욕 안 하면 다행이지.’
그걸 인정하자 죄책감이 싹 사그라들었다. 마음 한구석을 괴롭히고 헐뜯던 것들이 한 순간에 아지랑이처럼 허무하게 사라진다.
왜 고작 저런 것을 계속 고민하고 두려워하고 죄책감을 가졌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선우는 환하게 웃으면서 거절의 말을 했다.
“그 말은 안 해줘도 돼.
[정말입니까?]
“어, 인정하기로 했거든. 내가 그리 착한 놈이 아니라는 것.”
[성장하셨군요.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그 덕분에 주어야 했지만 줄 수 없던 보상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뭔 소리야?”
[사용자님, 리치 킹의 무덤에 들어가셨을 때 01이라는 숫자가 생긴 것, 기억하십니까?]
“그거? 어, 기억하고 있어. 그게 뭐? 설마……?”
[예, 맞습니다, 그 ‘히든 미션’의 보상입니다.]
“…….”
[히든 미션을 깨셨으니 보상을 드려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보상을 드릴 수 없었습니다. 몸에 있는 F형 인자가 북 드림 정식 버전을 이상 없이 돌릴 만큼 성장했지만 특별 미션 클리어 보상을 드릴 만큼은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건 정말 제 예상 밖의 일이었습니다. 사용자님이 그렇게 뭔가를 외면하는 방법을 잘 아실 줄 몰랐습니다.]
라라의 말대로 선우는 외면하는 게 특기였다. 아버지의 죽음, 그 여자의 배신, 잔혹했던 그들.
그 연속된 일상을 겪으면서 외면하는 게 일상이자 특기가 되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잘하는 것이 외면한 것을 즉시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독립했고, 굶어죽지 않기 위해 인력 사무소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나갔으며 죽자 살자 돈을 모았던 거다.
선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이기 때문이다.
“…….”
그러자 라라가 다시 말했다.
[그런데 지금의 사용자님은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만큼 정신이 성장했고, 그만큼 F형 인자가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추가로 보상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히든 미션의 성공 보상을.]
“그래서, 뭐 주는데?”
두구두구두구∼
갑자기 북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들을 인정했지만 그렇다고 막 기분까지 상쾌해진 건 아니었다. 선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상한 효과음 깔지 마라.”
[아쉽게도 보상이 발표되기 전까지 효과음을 들으셔야 합니다. 이 효과음은 대현자 나그나록스 님이 직접 넣으신 거니까요.]
이 북소리를 대현자 나그나룩스가 넣었다고? 선우는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을 지었다.
“그 양반 참… 할 짓 더럽게 없었나 보네. 알았으니까 빨리 말해. 보상이 뭔데?”
[보상은 총 세 가지입니다. 두 가지는 북 드림 시스템에 포함되어 있는, 원래부터 주려고 했던 보상이고 추가된 한 가지가 바로 히든 보상입니다.]
“…….”
[먼저 북 드림 시스템에 포함되어 있는 첫 번째 보상을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보상!]
두구두구두구∼
[사용자 정보창!]
“사용자 정보창?”
[사용자님, 사용자님은 혹시 게임을 해보신 적 있으십니까?]
“게임? 컴퓨터 게임?”
[예, 맞습니다.]
“…해봤어.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시기 전뿐이지만. 그때는 정말 게임을 많이 했지. 혼자 집에 있으면 할 게 없었거든. 아버지는 술 드시느라 나에 대해 터치를 일절 하지 않으셨고.”
[그건 불행 중 다행입니다. 평소 생활을 관찰한 바로는 게임을 전혀 안 하시기에 게임에 대해 전혀 모르실까봐 걱정했습니다. 그럼 게임에 대해 아신다 생각하고 설명 드리겠습니다. 사용자 정보창은 캐릭터 정보창과 일맥상통합니다. 캐릭터 대신, 사용자님의 정보를 볼 수 있다 생각하시면 됩니다.]
“내 정보를?”
[예]
“어떤 게 나와 있는데? 너가 나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안 다고?”
[말로써 설명 드리는 것보단 직접 보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정보창이라고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이번에도 버튼이 아니야?”
[예, 아닙니다. 혹시 불편하십니까? 불편하시다면 시야 한쪽 구석에 버튼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만들어 드립니까?]
“아니, 됐어. 그냥 말로 할게. 정보창!”
선우가 정보창이라 외친 순간, 오랜만에 선우의 손목이 빛이 나기 시작했다.
황금색 빛은 소설 장르를 나열 했을 때처럼 홀로그램으로 뭔가를 만들었다.
눈앞에 나타난 것은 정보창이다. RPG게임에서 흔희 볼 수 있는 캐릭터 정보창과 닮아 있다.
선우는 나타난 정보창을 봤다.
〈 사용자 정보( User Information ) 〉
1, 이름(Name) : 이선우
2, 나이(Age) : 20세
3, 성별(Sex) : 남자
4, 국적(Nationality) : 대한민국
5, 신장(Height)⁕체중(Weight) : 179cm. 72.5㎏
6, 종합 능력치( Comprehensive Ability )
[근력 : 16]
[내구 : 14]
[민첩 : 15]
[체력 : 20]
[마력 : 10]
[행운 : 07]
7, 보유 스킬( Possession Skill )
― 보유한 스킬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선우는 정보창에 어떤 정보들이 있는지 우선 살폈다. 환상족 대현자가 만든 정보창이기에 감추고 싶은 민낯까지 나오는 건 아닌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안 해도 될 걱정이었다. 두 가지 항목 빼곤 매우 평범한 내용이었다.
선우는 다소 안심을 하며 정보창을 다시 살폈다. 그리고 궁금한 것을 물었다,
“정보창에 나타난 내 정보는 이게 전부야?”
[더 나타낼 수 있지만,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사용자님이 원하시지 않는 듯하였기 때문입니다. 더 추가해 드립니까? 그럼 추가할 사용자님의 정보가 굉장히 많은데요?]
정보창의 정보가 적은 이유는 일종의 배려였다.
선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 배려를 거부하고픈 생각은 전혀 없었으니까.
“아니, 추가하지 마. 예쁜 여자의 쓰리 사이즈도 아니고 내 자세한 정보는 그다지 알고 싶지 않으니까. 고로 패스. 그럼 다음 질문할게.”
[예, 하십시오.]
“정보창을 첫 번째 보상으로 주는 이유는 아무래도 종합 능력치와 보유 스킬 때문인 것 같아. 내 말이 맞아?”
[예, 맞습니다.]
“그럼, 먼저 종합 능력치에서 궁금한 것을 물을게. 저기에 나와 있는 마력이 도대체 뭐야? 다른 건 다 이해가 가거든? 근데 저건 정말 뭔 말인지 모르겠어.”
[판타지 소설 100권을 읽지 않으셨습니까? 판타지 소설 100권쯤 읽으셨으면 마력이 뭔지 아실 텐데요?]
“그래! 판타지소설은 100권쯤 읽었어. 그래, 맞아. 사실 마력이 무슨 말인지 잘 알아. 마나 뭐 그런 거 거나 내공 뭐 그런 거랑 비슷한 거겠지. 아니면 통합된 개념이거나.”
[알면서 왜 물으시는 겁니까? 사용자님의 말씀이 정확히 맞는데요.]
“내가 진짜 궁금한 건! 난 마력을 일절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거야. F형? 여튼 뭔가 특별한 걸 가지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난 평범한 인간이라고! 뭐, 물론 이제는 평범하진 않게 되었지만 어쨌든! 그러니까 설명해 봐. 왜 마력이라는 게 내 능력치에 적혀 있는지? 10이라는 수치는 또 뭐고?”
[우주에 존재하는 지성체의 혈액에는 F형 말고도 다양한 특이 인자가 존재합니다. 이 다양한 특이 인자들 중 하나를 가지고 있는 이는 특정 조건을 충족할 시 특이 인자로부터 발현된 능력을 쓸 수가 있습니다. 발현된 능력을 쓰기 위해선 마력이 필요합니다. 능력 발현의 특정 조건 중 하나가 바로 마력을 손에 넣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용자님도 마력을 손에 넣으셨습니다. 체내에 마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본 시스템이 구동되고 있는 게 그 증거입니다.]
선우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북 드림 시스템을 가동하는 두 가지 축 중 하나가 바로 선우의 마력이었다.
선우는 그 말이 선뜻 이해가 가질 않았다. 판타지 소설을 보면 마나를 느끼고, 마나를 체험하는 과정이 꼭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나오는 데 자신은 그런 것을 전혀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선우는 다시 물었다.
“내가 마력을 손에 넣었다고? 언제?”
[환상족의 피, 그건 본 시스템을 구동시키는 중요한 열쇠이기도 하지만, 사용자님 마력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외계인에게 받은 붉은색 병, 그 안에 가득 들어 있던 역겨운 냄새의 환생족의 피. 그것은 보물을 가동시키는 열쇠임과 동시에 마력의 원천이었다. 선우의 체내에 들어와 선우의 혈액과 결합하면서 혈액 속 마력을 선우에게 모두 넘겨 준 것이다.
라라를 통해 그 사실을 깨닫게 된 선우는 죽은 외계인이 다시 한 번 고마워졌다. 일전에 원망하고 의심했던 게 괜히 미안해질 정도다.
선우는 속으로 그 외계인의 명복을 빌었고 다시 말했다.
“마력은 그럼 그때 얻은 거야?”
[예, 그렇습니다. 숫자 10은 사용자님이 가지고 계신 마력을 수치화한 겁니다.]
“그럼 다음 질문! 얻은 마력은 일회용이야?”
[아닙니다.]
“아니야?”
[마력은 우주가 탄생하는 순간부터 존재했습니다. 이 지구에도 마력이 존재합니다. 마력집을 가지고 있는 이는 그 마력을 스스로 흡수합니다. 그러니 비어 있던 마력집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가득 찹니다.]
“마력집? 내게 그 마력집이란 게 있어?”
[예, 있습니다. 보유하고 계신 마력이 어디에 보관되어 있을 것 같습니까?]
“그렇다면 마력집과 마력 느껴보고 싶어. 어떻게 해야 해?”
[없는 마력집을 만들고 마력을 스스로 느끼는 것은 극악이라 표현해도 부족할 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있는 마력집과 마력을 스스로 느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먼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주십시오.]
“가부좌?”
[예.]
가부좌는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자세다. 불가에서는 흔히 여래좌라고 하며 무협 소설에 주로 등장한다.
선우는 이 자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무협 소설뿐만 아니라 판타지 소설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자세이기 때문이다.
앉은 자세에서 한쪽 다리를 구부려 반대쪽 허벅지 깊숙이 올리고 반대쪽 다리를 그 위에 올려놓았다.
[그 다음 허리와 목을 곧게 펴십시오. 눈을 감고 심장에 온 신경을 집중해 주십시오.]
선우는 라라가 시킨 대로 허리와 목을 곧게 폈다. 그 다음 눈을 감고 심장에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온 신경이 심장에 집중되자 창문 밖에서 어렴풋이 들리던 차 소리와 사람의 목소리 등이 들리지 않기 시작했다.
조금씩 느껴졌던 추위도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선우는 조금 더 집중했다.
‘…느껴진다.’
심장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심장이 두근두근 약동하면서 혈관에 붉은색 혈액을 뿜어내는 게 느껴졌다. 그러다 뭔가 이질적인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좁쌀 정도의 아주 작은 크기였다.
선우는 저게 마력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혹이나 종양 같은 몸에 안 좋은 것들이라 생각하기엔 느낌이 달랐다. 그때 라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이 바로 마력집입니다. 다른 말로는 중단전이라 합니다. 그 안에 마력이 들어 있습니다. 마력집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 안에 들어가 있는 마력 또한 늘어날 겁니다. 다음은 마력을 느끼실 차례입니다.]
“어떻게 해?”
[마력집 안을 들여다본다고 생각하십시오.]
라라의 말대로 마력집 안을 들여다본다 생각했다. 잠시 깨진집중력을 다시 발휘해서 내부를 관조하고 마력집 안의 마력을 관찰했다.
뭔가가 느껴졌다. 꿈틀꿈틀, 꼬물꼬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느낌이었다.
마력을 느껴서 그런지 욕심이 생겼다. 이 마력을 움직여보고 싶다는 욕심.
“이 마력집 안에 들어가 있는 마력을 끌어서 쓸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무협 소설이나 판타지 소설을 보면 마력을 몸에 막 돌리잖아. 그렇게 해서 마력집을 성장시키고.”
[있습니다만 당장은 가르쳐드릴 수 없습니다.]
“왜?”
[마력을 통제하는 힘은 특이 인자입니다. 특이 인자가 통제할 수 있는 마력의 양은 극히 제한적입니다. 특이 인자가 통제할 수 없는 마력을 가지게 되는 순간 마력은 폭주할 겁니다.]
“폭주하면 어떻게 되는데?”
[폭주한 마력은 사용자님의 몸을 해칠 겁니다. 그리고 종래에는 사용자님을 사망하시게 만들 겁니다. 그러니 지금은 마력을 움직이고 성장시키는 방법을 가르쳐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럼 언제 가르쳐 줄 건데? 가르쳐 주기는 할 거야?”
[제가 적절할 때에 보상이라는 이름으로 마력을 움직이고 키우는 방법을 가르쳐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 기다리는 게 힘들다 판단된다면 스스로 연구하십시오. 스스로 연구하여 마력을 다루는 것은 말리지 않겠습니다. 물론 제가 적절하게 통제하겠지만요.]
“오케이, 마력에 대해선 대충 알겠어. 이건 더 질문하지 않을 게. 그럼 다음 질문! 근력, 내구, 민첩, 체력 등을 올리는 것도 먼저 특이 인자를 성장시켜야 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마력을 가지고 태어난 게 아닙니다. 마력은 원래 없던 것이 어떤 조건에 의해 생긴 것입니다. 다른 것들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원래의 것들입니다. 얼마든지 성장시키실 수 있습니다.]
마력과 달리 다른 능력치들은 얼마든지 성장이 가능했다. 마력처럼 다른 능력치들도 성장 못하게 막을 줄 알았는데 조금 의외였다.
그 말을 들은 선우는 눈을 빛냈다. 오랜만에 놀러 온 삼촌에게 선물을 바라는 조카의 눈을 했다.
“그래? 그럼, 가르쳐 줘. 무공 같은 거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