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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명가 1권(2화)
第一章 우화등선(2)


파삭!
진식으로 인해 증폭된 기운을 견디지 못한 적명석이 순간 깨지는 소리와 함께 가루로 변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와 함께 뭉쳐 있던 기운이 일시에 터져 나왔다.
터져 나온 기운으로 온 세상이 순백색으로 물든 듯한 착각이 일었다.
세 노인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서일평 만이 끊어지려는 정신을 간신히 붙들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 남은 기운을 짜내 진식 안에 퍼져 있는 기운과 천지간의 기운을 합쳐 허공으로 쏘아 보냈다.
파아아앗!
눈이 멀 정도의 밝은 빛이 허공으로 쏘아져 가는가 싶더니, 일순간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거대한 길이 만들어졌다.
진정 하늘과 땅이 연결된 길이 열린 것이다.
정신을 잃기 직전이던 세 노인은 한순간 몸을 짓누르던 기운들이 사라지자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자신들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눈부신 백도(白道)를 보고 감격에 빠져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으하하하! 이제 세상과 이별이로구나! 나는 오늘부터 신선이다!’
네 노인의 머릿속엔 감격과 함께 이러한 생각들이 넘쳐 났다.

진식은 성공했다.
적명석과 서책을 통해 알게 된 진식의 힘을 빌려 하늘과 땅을 연결 짓는 거대한 백도를 만들어 냈다.
진식이 성공했기에 이제 신선이 되어 무릉도원에서 떵떵거리며 살 줄 알았다. 하지만 웬걸 무릉도원이라고 생각한 곳에 올라가 보니 난리가 나 있었다.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백도에 수백 명의 신선이 몰려들어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지 않은가.
처음엔 스스로의 힘으로 무릉도원을 밟게 된 자신들을 축하해 주러 나온 자들인 줄 알았다. 한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그들 중 눈에 익은 사람이 있어 다가가 보니 십오 년 전 자신들을 두고 백학을 타고 등선했던 무당파 친우였다.
반가운 마음에 아는 체를 했다.
그제서야 자신들을 알아본 친우가 깜짝 놀라 물었다.
“자, 자네들이 이곳에 어쩐 일인가?”
어찌나 놀랐는지 묻는 친우의 말이 떨려 나왔다.
놀라 묻는 친우에게 북여학이 신이 나서 대답했다.
“자네 혼자 신선이 된 게 못마땅해 우리 스스로 길을 열어 이렇게 신선이 되었네!”
그 말을 듣는 순간 친우의 얼굴은 사색이 되다 못해 퍼렇게 질리고 말았다.
네 노인들도 눈치가 없진 않았기에 무언가 잘못되었단 걸 느꼈다.
주변에 모여 있는 신선들의 시선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가?”
서일평이 넌지시 물었다.
“지금 자네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는가!”
사색이 된 친우가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모르니 묻는 게 아닌가?”
무언가 잘못된 건 확실한데,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에 서일평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때였다.
“무슨 일인데 이리도 소란스러운 것이냐!”
서일평이 무당파 친우에게 묻기 무섭게 등 뒤에서 천둥이 치는 듯한 고함 소리가 들렸다.
네 노인이 놀라 돌아보니 웬 원숭이처럼 생긴 자가 웃통을 벗고, 양손에 북채 같은 걸 들고 성난 얼굴로 날아오고 있었다.
“뇌신(雷神)을 뵙습니다!”
주변에 모여 있던 모든 신선들이 원숭이처럼 생긴 자를 보고 부복했다.
네 노인도 엉겁결에 덩달아 부복하고 말았다.
‘뇌, 뇌신!’
네 노인은 그제야 자신들의 눈앞에 있는 자가 천둥을 관장하는 뇌신임을 알았다.
양손에 들고 있는 저 북채 같은 걸로 자신의 배를 두드려 천둥과 번개를 내리게 하는 것이다.
“이곳의 책임자는 앞으로 나서 무슨 일로 이리 소란스러운지 말하라!”
뇌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쪽에 서 있던 신선이 앞으로 나가 무언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신선의 보고를 받고 있던 뇌신의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이더냐!”
뇌신이 말도 안 된다는 듯 소리치자 주변에 천둥이 몰아치고 뇌전이 일었다.
“저들이 그들이옵니다.”
신선이 네 명의 노인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신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뇌신의 신형이 네 노인 앞으로 미끄러지듯 날아왔다.
“육신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진정 이들이 하늘에 구멍을 뚫고 올라왔단 말이냐?”
“그렇사옵니다.”
뇌신의 눈빛이 당장이라도 자신들을 요절낼 것만 같아, 네 노인은 찍 소리도 내지 못하고 고개를 조아렸다.
“이 일은 내 선에서 처리할 문제가 아니다. 당장 이놈들을 천이관(天理館)에 가두거라. 내 위에 보고를 해야겠다.”
뇌신은 네 노인을 가두라 명한 후 순식간에 사라졌다.
뇌신에게 보고한 신선이 주위에 있던 신선들에게 명해 네 노인을 포박하라 명했다.
네 노인은 무언가 자신들로 인해 잘못된 것이 있는 듯하여 함부로 반항하지 못하고 오랏줄을 받았다.
“이보게 도대체 이곳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자신들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 알 수 없는 답답함에 옆에 있던 친우에게 물었다.
“이 사람들아! 어쩌자고 이런 짓을 했는가? 자네들이 하늘에 구멍을 뚫는 바람에 수천 년 동안 가둬 뒀던 죄인들이 모두 탈옥했지 않은가?”
“그 말은……?”
“하필이면 죄수들을 가둬 놓은 뇌옥에 길을 뚫을 게 뭔가?”
무당파 친우는 안쓰럽다는 얼굴로 네 노인을 바라봤다.
네 노인은 그제야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무릉도원에 죄수를 가두는 뇌옥이 있단 말인가?’
노인들은 무릉도원에 죄수를 가둬 두는 뇌옥이 있다는 말이 도통 믿기지 않았다.

신선들은 네 노인을 포박해 천이관이란 곳으로 끌고 갔다.
천이관은 뇌신이 머무는 곳으로 신선계의 기후를 관장하는 곳이다.
신선들은 네 노인을 천이관 한쪽의 조그만 방에 가둬 두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신선들이 사라지고 네 노인만 방에 남게 되었지만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자신들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필 길이 뚫린 곳이 죄수들을 가둬 둔 뇌옥이라니.”
한참 만에 동방모강이 입을 열었다.
이번 등선을 지휘했던 서일평은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비록 자신이 의도했던 바는 아니나 자신이 지휘해 이 같은 사단이 났으니 일말의 책임을 느꼈던 것이다.
“젠장! 생각을 잘못했어.”
느닷없는 북여학의 말에 세 명의 노인들이 고개를 들어 바라봤다.
“무슨 말인가?”
“이곳으로 끌려오기 전에 백도로 다시 뛰어들었어야 했다는 말일세.”
“…….”
다시 속세로 달아났어야 했다는 말이 아닌가? 신선들의 눈을 피해 속세로 달아나는 일이 가능키나 한 일인가? 한데, 북여학이 워낙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라 그라면 혹 가능할지도 모르겠다고 남은 세 노인은 생각했다.
“잘들 생각해 보게. 수천 년 동안 가둬 뒀던 죄인들이 모두 탈옥했다지 않은가? 그 죄가 결코 가볍지 않을 걸세. 길게 생각해 보지 않아도 우리 처지가 어찌될지 뻔하지. 최하가 죽음이요, 심하면… 연옥으로 끌려갈 수도 있다는 말일세.”
북여학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이들은 평소 우화등선을 꿈꿔 왔으면서도 연옥이란 존재를 믿지 않는 모순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한데 이렇듯 등선을 하고 보니 연옥이란 존재가 없다고 치부할 수만은 없었다.
가뜩이나 초조해 죽겠는데 북여학의 그러한 말로 머릿속이 더욱 복잡해졌다.
그렇게 초조함 속에 시간이 더디게 흘러갔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일각이 여삼추란 말을 실감하고 있을 즈음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초조함에 굳어 있던 네 노인의 정신이 번쩍 뜨였다.
이제 자신들의 운명이 결정될 시간이 온 것이다.
열린 문 사이로 자신들을 가두라 명했던 뇌신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뒤로 선풍도골(仙風道骨)의 풍채를 지닌 정체불명의 노인이 함께 들어왔다.
“고개를 조아려라. 태상노군(太上老君)이시다.”
‘태, 태상노군!’
네 노인은 뇌신의 말에 깜짝 놀라 포박된 상태로 바닥에 엎드려 고개를 조아렸다.
태상노군이 누구던가?
도교에서 가장 존귀한 세 명의 신 중 일인이자 도교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는 노자(老子)가 아닌가.
전설로만 전해 듣던 태상노군을 직접 만나게 되니, 놀라움보단 은근한 두려움이 앞섰다.
네 노인이 고개를 조아린 채 얼어붙어 있는데 태상노군이 다가와 말했다.
“도우들은 고개를 들게.”
태상노군의 부드러운 말에 네 노인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도관으로 머리를 단정히 묶고, 하얗게 센 수염을 배꼽 어림까지 기른 모습은 그야말로 그림에서나 보던 도인의 풍모였다.
강호에 존재하는 모든 도인들의 그림은 이 태상노군을 그린 게 아닐까란 생각마저 들었다.
“도우들이 행한 일로 인해 이곳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계신가?”
물론 잘 알고 있었다.
“그저 송구할 따름이옵니다. 저희들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네 노인이 바닥에 머리를 찍으며 말했다.
“알고 있다니 말하기가 한결 수월하겠구려. 원래 이 같은 중대사는 원시천존께 알려 그분께서 처리해야 될 일이나, 현재 원시천존께서 자리에 계시지 않아 부득불 본인이 일을 맡게 되었소.”
‘워, 원시천존!’
도교의 최고 신인 원시천존까지 나오자 네 노인은 더욱더 황망했다.
“원래 이곳 도원은 선인들의 세상으로 인간이 함부로 드나들 수가 없는 곳이라오. 한데 도우들이 인간의 육신을 지닌 채 들어온 데다가, 이곳으로 오기 위해 뚫어 놓은 길로 인해 뇌옥에 가둬 두었던 죄수들이 모두 속세로 달아났으니 참으로 큰일이 아닐 수 없소.”
네 노인은 할 말이 없어 더욱 고개를 조아릴 뿐이었다.
“인간의 몸을 지닌 채 이곳에 온 이가 도우들 뿐만은 아닌지라 그 부분은 큰 문제랄 것이 없소. 그저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면 해결될 일이니 말이오. 한데 뇌옥의 죄수들이 속세로 탈출한 문제는 원시천존이 자리를 비운 지금, 도원의 누구도 처리할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라오. 그들이 비록 죄를 지어 뇌옥에 갇힌 죄수지만 엄연히 그들도 우리와 같은 선인. 그런 이들이 속세로 나갔으니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조차 할 수가 없소.”
네 노인은 도대체 뇌옥에 가둬뒀던 죄수들이 어떤 인물들 이길래 태상노군이 저다지도 걱정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대들이 속세에 있을 때 무림인이라 들었는데, 혹 이 이름들을 알고 계시오?”
태상노군의 말에 네 노인이 고개를 들었다.
“뇌옥을 탈출한 죄수들의 이름은…….”
태상노군이 십여 명의 이름을 불러주었으나, 네 노인이 아는 이름은 단 하나도 없었다.
“저희들이 무림인인 건 맞사오나, 태상노군께서 불러주신 이름들은 모두 처음 들어 보는 이름들입니다. 속세에서 나름 오래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견문이 좁아 송구합니다.”
“태상노군, 속세의 무림인들은 본명보단 명호로 서로를 칭한다고 하더이다.”
태상노군 뒤쪽에 서 있던 뇌신이 나서 말했다.
“명호라, 속세에서의 그들 명호를 알고 있는가?”
“제가 알고 있습니다. 속세로 탈출한 선인들은 제천혈마 진마청, 태극선인 호목상, 천마 장휘소…….”
뇌신이 죄수들의 명호를 하나하나 읊기 시작했다.
그들의 명호를 들을 때마다 네 노인들의 눈이 커지고 입이 벌어졌다.
북여학은 벌어진 자신의 입에서 침이 흐르는 것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모두들 강호에서 전설로만 전해지던 인물들이 아닌가.
뇌신의 입에서 나온 인물들은 하나같이 한 시대를 풍미한 천하제일인들의 명호였다.
현재까지도 강호에서 공포의 대명사로 자리 잡고 있는 마교의 대마두에서부터 무당파의 도사까지, 그들의 출신은 정사마를 가리지 않고 골고루 분포되어 있었다.
‘도대체 제천혈마나, 천마 같은 대마두들이 어떻게 우화등선을 해 이곳에 왔단 말인가?’
뇌신의 입에서 명호가 흘러나오는 동안 네 노인은 충격과 함께 이러한 생각들로 정신이 없었다.
“탈출한 선인들 중 대표적인 인물 십여 명의 명호가 이렇습니다. 그들 외에도 오십여 명이 더 있는데 이들에게 알려줄까요?”
“어차피 명부를 만들어 줘야 할 터이니 그만하시게.”
네 노인이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동안 태상노군과 뇌신은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네 노인이 충격 받은 모습을 보니 도망친 죄수들이 속세에서도 어지간히 사고를 쳤었던 모양이다라고 생각했다.
“표정들을 보아하니 그들의 명호는 들어 본 듯하군요. 본인이 도우들을 찾아온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들을 다시 잡아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요.”
“네에?”
죄수들의 명호를 듣고 가시지 않은 충격에 태상노군은 점잖은 얼굴로 더한 충격을 선사했다.
“자, 잡아달라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