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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명가 1권(3화)
第一章 우화등선(3)
“원래가 자신이 뿌린 씨앗은 자신이 거둬들여야 하지 않겠소? 도우들로 인해 죄수들이 탈옥했으니, 그들을 잡아 오는 것 또한 도우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일 터, 혹 본인의 말이 틀렸소이까?”
“아, 아니 그건 아니온데…….”
‘젠장! 누가 알고 그들을 탈옥시켰나? 현 강호 무림인 중에도 넘어서지 못할 자들이 많아 서둘러 은퇴했는데, 전대의 천하제일인들을 우리가 무슨 용 빼는 재주로 잡아 오냐고!’
“음, 그들이 속세에선 천하제일인으로 통했었나 봅니다?”
“헙!”
북여학은 속으로 한 자신의 생각을 마치 옆에서 듣기라도 한 것 같은 태상노군의 말에 헛숨을 삼켰다.
“소, 송구합니다!”
놀란 북여학이 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그때 옆에 있던 서일평이 태상노군에게 말했다.
“송구하오나, 속세엔 저희들보다 더 강한 자들이 많습니다. 죄수들을 잡아들이는 일은 저희들보단 그들을 이용하는 게 더 현명하다 판단됩니다.”
속으론 선인들이 직접 나서면 될 것을 왜 능력도 없는 자신들에게 이 같은 일을 시키냐란 생각을 했지만, 차마 입 밖에 낼 수는 없는 말인지라, 대신 속세의 다른 고수들을 시키는 게 어떻겠냐고 둘러 말했다.
“도우의 생각처럼 우리 선인들이 직접 나서 해결하는 게 더 빠름을 알면서도 부탁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오. 도우의 말처럼 속세의 다른 고수들에게 부탁할 수도 있는 일이나, 속세와 선계가 관련되는 일은 최대한 자제하는 것이 좋기 때문이고, 우리가 직접 나서 그들을 잡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원시천존이 자리를 비운 지금, 이곳의 선인들이 도원을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라오. 그 이유는 도원 내부의 일이기에 일일이 설명치 못함을 양해 바라겠소.”
태상노군은 서일평의 생각을 읽어 자신들이 직접 나서지 못하는데 말 못할 이유가 있음을 말했다.
“도우들이 걱정하는 바를 모르는 게 아니오. 그들이 속세에서 얼마 간의 능력을 지녔던 인물들이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소. 하나 이곳 도원으로 올 때 육신을 버리고 왔기에 당장은 큰 힘을 발휘할 수가 없는 상태니, 그들이 힘을 각성하기 전에 찾아낸다면 도우들의 능력으로도 충분히 잡아들일 수 있을 것이오. 다행히 도우들은 육신을 벗지 않은 상태로 이곳에 왔으니 그대로 돌아간다면 속세에서 지니고 있던 힘을 잃지 않은 상태일 터. 그 정도면 충분히 가능치 않겠소?”
“그 말씀은……?”
“이곳에서 도우들이 우리를 볼 때 인간의 형상으로 보이는 것은 도우들이 인간이기에 그런 것이오. 짐승들이 우리를 본다면 우리의 모습은 그들과 같은 짐승일 것이고 식물이 본다면 식물로 보일 것이오. 이 말은 우리 선인들이 육신이 없는 혼백의 상태라는 말이외다. 이곳에서 탈출한 죄수들 또한 육신이 없는 상태에서 속세로 내려갔으니, 가장 먼저 육신을 찾으려 들 것이오. 육신이 없는 상태로 속세에서 견딜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소. 그러니 최대한 지근거리에 있는 육신을 찾아 나설 터인데 이게 또 쉽지가 않소. 건강한 혼백이 들어 있는 육신은 강제로 차지할 수가 없으니, 이제 막 혼이 떠났거나, 병들어 혼이 떠나기 직전인 육신들을 찾아다닐 것이오. 혹, 운이 좋아 그런 육신을 차지한다 해도 건강한 육신으로 돌려, 본신의 힘을 다시 찾기까진 꽤 긴 시간이 소요될 것이오. 그러니 그 이전에 그들을 찾아낸다면 이곳으로 다시 잡아 오는 일이 크게 어렵지 않다는 뜻이오.”
태상노군의 설명을 듣고 나니 자신들에게 죄수들을 잡아달라고 부탁한 이유를 알 수 있을 듯했다.
원래 무공이란 게 심신이 균형을 이루고 안정이 되어야 본연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데, 어느 한쪽이 균형을 잃게 되면 제아무리 지고한 무공을 익혔다 하더라도 그 위력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태상노군이시여, 두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서일평이 태상노군을 보며 말했다.
“물어보시게.”
“만에 하나 저희들이 그들을 찾아 제압했다 치면 그 다음 어떻게 이곳으로 돌려보내야 합니까? 또 저희들이 그들을 찾는 게 늦어 육신과 혼백의 균형을 찾아 본신의 힘을 되찾게 된다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건 걱정들 마시오. 뇌옥을 간수하지 못한 우리들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으니 그대들을 빈손으로 보내진 않을 것이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약소하나마 우리들이 준비한 선물이 있소. 그러니 그것들을 가지고 속세로 돌아가 그들을 모두 잡아 주시오. 물론 우리가 준비한 선물에 그들을 이곳으로 돌려보내는 방법들도 함께 있다오.”
여기까지 이야기가 진행되자 이제 다른 선택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상노군의 말대로 그들이 육신을 얻고, 본신의 힘을 되찾기 전에 얼른 찾아 이곳으로 돌려보내는 것만이 자신들이 살길이었다.
第二章 만남(1)
도진명(刀眞銘)이 그를 처음 만난 건 산서성(山西省) 대녕(大寧) 인근의 이름 모를 숲에서였다.
풍운의 꿈을 안고 정양(定襄)으로 향하던 중 산적들을 만나 목숨이 경각에 달해 있던 순간이었다.
‘젠장!’
강호에 나선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산적 무리에게 죽임을 당할 처지가 되자, 자신의 신세가 한심해 절로 욕설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속으로 욕설을 퍼붓고 있을 때 그가 나타났다.
수풀을 헤치며 나타난 그의 모습은 천계에서 내려온 신선이라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한 모습이었다.
한 마리 고고한 학과 같은 우아한 몸짓에 한줄기 벼락과도 같은 절정의 신법(身法).
진명이 오래 살진 않았지만 맹세코 이토록 빠르고 우아한 신법은 본 적이 없었다. 말로만 들었던 강호의 절정고수가 바로 이런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라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는 한줄기 바람처럼 날아와 벼락과도 같은 빠르기로 진명과 산적 무리 사이를 스치듯 지나갔다.
“…….”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는 진명과 산적 사이를 스치듯 지나가 버렸다.
“뭐, 뭐냐!”
산적들도 진명만큼 당황했는지 목소리가 기이하게 비틀어져 나왔다.
워낙 등장이 요란스러웠던지라 진명은 당연히 그가 자신을 산적들로부터 구해 줄 것이라 생각했고, 산적들 또한 그가 자신들을 공격할 것이라 생각했다.
사내의 복장이나 인상이 분명 정파의 인물로 보였기 때문이다.
정파의 인물들이 협행을 쌓기 가장 좋은 상대가 무공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산적들이다.
물론 녹림채(綠林寨) 같은 제대로 된 산적들을 만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지금 진명과 함께 있는 산적들은 다섯 명으로 구성된 작은 산적 집단이었다.
이런 작은 산적 집단을 만난다면 자신들의 명성을 올릴 절호의 기회이기에 절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한데 그냥 지나쳤으니 진명과 산적들은 순간 멍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잠시 진명과 산적들이 멍해 있는 사이 그가 나타났던 숲 쪽에서 여섯 명의 무리가 새로이 나타났다. 좀 전 사내보단 못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신법을 펼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흑색 무복을 한 자들이었는데, 복장에서부터 나쁜 놈들이란 분위기를 잔뜩 풍기고 있었다.
진명이야 나이도 어린 데다가 지닌 바 재주가 변변찮아 이런 허접한 산적들에게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처지지만, 좀 전 스쳐 지나간 사내와 지금 나타난 무인들은 산적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의 엄청난 고수들이었다.
“이런 시벌! 오늘 무슨 날이냐!”
산적들은 잇달아 고수들이 출현하자 당황해 몸을 피하려 했다.
그 순간 여섯 명의 무인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산적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처음 나타났던 사내가 자신을 구해 줄 것이란 진명의 기대와 달리 엉뚱하게도 악당이라고 온몸으로 표현하던 자들이 구해 주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진명은 ‘역시 사람은 겉모습만으로 판단해선 안 되는 것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그건 자신의 착각임을 깨닫게 되었다.
흑의인들이 산적과 진명을 구분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공격을 해댔기 때문이다.
“피, 피해라!”
“끄억!”
흑의인들의 갑작스런 공격에 산적들은 순식간에 바닥으로 쓰러져 갔다.
놀란 진명도 살기 위해 미친 듯이 숲 속을 뛰어다녔다.
그렇게 얼마나 뛰어다녔을까, 어느 순간 주위가 조용해졌다. 흑의인들이 공격을 멈춘 것이다.
진명은 흑의인들의 그 같은 무자비한 공격 속에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운이 좋은 것인지, 흑의인들이 의도한 것인지 가벼운 부상만 입은 채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다.
흑의인들 정도의 실력자들이라면 자신들이 공격하고자 했던 목표를 놓치는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의도적으로 진명을 피해 공격한 것이란 말인가?
다행히 목숨을 부지하고 있지만, 좀 전 그를 핍박했던 산적들은 모두 바닥에 쓰러져 시체가 되어 있었다.
왜 진명은 살려 두고 산적들은 죽였을까?
오래지 않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산적들 시체 앞에 한 사내가 서 있었던 것이다. 좀 전 진명과 산적 사이를 스쳐 지나갔던 그 사내였다.
흑의인들이 공격한 대상은 진명과 산적들이 아니었고 바로 이 사내였다.
산적들이 죽임을 당한 건 단지 운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내에게 가한 공격에 재수 없게 휘말려 든 것이다.
옛 말을 빌리자면 경전하사(鯨戰蝦死), 즉,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꼴이다.
애초에 처음 나타났던 사내나 흑의인들은 진명과 산적들에게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었다.
진명 또한 재수 없이 산적들과 같은 위치에 있었더라면 분명 그들과 같은 시체가 되었을 것이다.
놀란 진명이 정신을 채 수습하지도 못한 사이 사내와 흑의인들의 무시무시한 혈투가 펼쳐졌다.
너무도 놀라운 혈투에 진명은 달아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사내와 흑의인들의 경천동지할 전투는 채 일각이 지나지 않아 끝이 났다.
양팔과 옆구리에 상처를 입은 사내가 서 있고, 그 아래 여섯 구의 시체가 하나같이 목이 잘린 채 쓰러져 있었다.
사내의 잔인한 손속은 진명의 달아났던 정신을 돌아오게 만들었다.
‘달아나야 돼!’
이대로 있다간 죽는다는 생각에 진명이 달아나려는 찰나, 시체를 내려다보던 사내가 등을 돌려 진명을 바라봤다.
사내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몸이 굳은 듯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잔뜩 핏발이 돋아 있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내의 눈빛은 마치 지옥에서 뛰쳐나온 악귀를 연상케 했다.
사내의 핏발선 눈빛을 받게 된 진명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북해의 얼음판 위에 내팽개쳐진 그런 느낌을 받았다.
사내는 굳어 있는 진명을 잠시 바라보다, 처음 나타났던 것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분명 사내는 진명을 죽여야 할지 살려야 할지 한순간 망설였던 것 같다.
사내가 사라지고 잠시 공황 상태에 빠져 있던 진명은 불현듯 살았다는 생각에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앉았다.
털썩.
자리에 주저앉은 진명은 아직도 떨려 오는 몸을 진정시키느라 애를 써야 했다.
잠시 후 몸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자신이 시체 무더기 속에 앉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젠장, 빨리 떠나자!”
잠시도 이런 시체들과 함께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에 서둘러 자리를 벗어나 밤새도록 정양을 향해 달렸다.
물론 그전에 산적과 흑의인들의 시체를 뒤져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추리는 걸 잊지 않았다.
‘무서운 건 무서운 것이고 챙길 건 챙겨야지!’
아무리 무섭다지만 이런 불로소득을 무시한다는 건 진명 같은 가난뱅이에겐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어찌 됐든 그렇게 살 떨리는 경험을 하고 이 주가 지나갈 무렵 분주(汾酒)와 죽엽청주(竹葉靑酒)로 유명한 분양(汾陽)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진명의 목적지는 정양에 위치한 중소 문파인 오진문(悟眞門)이다.
진명이 아홉 살 때부터 신세를 졌던 용진관의 관주 추천으로 상승 무공을 배우기 위해 오진문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잠시 진명의 과거를 덧붙이자면 아홉 살 무렵 부모를 잃고, 평소 부친과 호형호제(呼兄呼弟)하던 용진관 관주의 손에 길러졌다. 물론 공짜로 무관에서 살았던 건 아니다.
낮엔 무공을 배우고, 밤엔 그곳의 잡일을 해 나름의 밥값은 하며 지냈다.
그렇게 지낸 세월이 팔 년.
한데 진명은 팔 년 동안 무공을 익혔음에도 변변한 내공조차 없었다.
용진관 관주가 내공심법(內功心法)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공심법은 강호에서 삼류 축에도 끼지 못한다며, 후에 더 큰 문파에 가서 제대로 된 심법을 익히라고 나름의 배려를 한 것이다.
진명의 꿈이 부친과 같은 표사임을 알고 있던 관주는 진명의 나이 십칠 세가 되자, 평소 친분이 두텁던 오진문에 추천했다.
오진문은 규모는 작지만 표국을 운영하고 있고, 무공 또한 강해 진명에게 안성맞춤인 문파였다.
그렇게 고향을 떠나 오진문이 있는 정양으로 향하던 중, 숲에서 산적과 사내 그리고 흑의인들을 만나 고욕을 치렀다.
진명이 용진관을 떠나 강호에 발을 들이고 달포 만에 벌어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