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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명가 1권(4화)
第二章 만남(2)
분양에 도착한 진명은 오랜 노숙으로 지친 몸의 피로를 풀기 위해 객점을 찾았다.
지닌 돈이 많지 않아 저렴한 곳을 찾아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그 사내와 두 번째 만남을 갔게 되었다.
사내와의 두 번째 만남은 첫 번째 만남과 너무도 판이한 인상을 가지게 했다.
사내는 객점에서 간단한 소면을 먹고 있었는데,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마을의 파락호들에게 봉변을 당하고 있었다.
그 사내를 핍박하고 있는 파락호들은 비록 무관에서 어쭙잖은 무공을 배운 진명이지만 충분히 상대할 만한 상태였다.
산에서 만났던 산적들처럼 흉악한 무기를 들고 있는 것도 아니고, 무공을 배운 기색도 없는 데다가 술에 잔뜩 취해 비틀거리고 있기까지 했던 것이다.
진명의 무공 실력이 강호에서 삼류라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었지만, 술에 취한데다 무공을 배우지 못한 파락호 세 명 정도는 너끈히 상대할 수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내는 절정고수 여섯 명을 단 일각 만에 목 없는 시체로 만들 정도의 고수임에도, 파락호들의 핍박에 전혀 반응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이 행하는 수모 또한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사내의 너무도 다른 모습에 순간 사람을 잘못 본 게 아닐까 생각을 했다. 하지만 다시 봐도 분명 이 주 전 숲에서 봤던 그 사내가 확실했다.
‘그런 고절한 무공을 지니고 있으면서 왜 저런 파락호들의 조롱을 감내하고 있는 거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진명이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사내는 파락호들의 놀림과 욕설을 한쪽 귀로 흘리며 묵묵히 소면을 다 먹고 천천히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파락호들은 자신들의 도발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고, 달아나듯 객점을 나서는 사내의 등 뒤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어댔다.
사내는 파락호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객점을 나와 골목 어귀로 사라졌다.
그 순간 진명은 자신도 모르게 사내를 쫓아 골목길로 따라 들어갔다.
한데 골목길로 접어든 사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갔지?”
사내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는데 무언가 눈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헉!”
놀라 흠칫거리는데 눈앞에 사내의 얼굴이 보였다.
사내의 얼굴이 나타났다 생각한 순간, 그의 손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목줄기를 잡아 왔다.
진명이 다급히 몸을 뒤로 날렸다.
하지만 사내의 손이 어찌나 빨랐던지 피하지 못했다.
“컥!”
“도원에서 온 놈이냐!”
다짜고짜 목줄기를 잡아채며 묻는 사내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이 주 전 흑의인들과 혈투를 벌인 후 보였던 악귀와도 같은 그 눈빛이었다.
좀 전 객점에서 본 모습과 너무도 다른 분위기였다.
진명은 도원이 무엇인지 몰랐기에 아니라고 대답하려 했지만 사내의 손아귀 힘이 어찌나 강했던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으… 으읍…….”
진명의 얼굴이 붉어지고 눈에 핏발이 서자 사내는 손아귀의 힘을 풀었다.
“아니군.”
사내는 자신의 손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진명의 모습에 무언가를 느꼈던지 이내 손을 풀곤 뒤돌아섰다.
“커, 커헉! 콜록! 콜록!”
목을 조여대던 손이 풀어지자 진명은 큰 숨을 몰아쉬며 잔기침을 토했다.
“저, 저기 잠깐만요!”
진명은 스스로도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방금 사내에게 봉변을 당했으면서도 그를 불러 세웠다.
사내는 진명의 부름에 걸음을 멈추고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나에게 볼일이 있나?”
사내의 물음에 진명은 정중히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달포 전 숲 속에서 산적들에게 죽임을 당할 처지에 놓였을 때 대협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늦었지만 은인의 구명지은에 감사드립니다.”
잠시 진명을 바라보던 사내는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대뜸 물었다.
“그런데?”
“그때 대협의 무공을 견식할 수 있었습니다. 그 정도의 무공 실력을 지닌 분이 어찌 저런 시장의 삼류 잡배들에게 모욕을 당하신 겁니까?”
진명의 물음에 사내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자네는 어린아이가 재롱을 피운다고 화를 내는가?”
대답을 마친 사내는 그 숲에서처럼 홀연히 사라졌다.
사내의 대답은 진명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린아이의 재롱이라…….”
분명 여섯 명의 흑의인을 일각 만에 목 없는 시체로 만들 정도로 고절한 무공을 지닌 고수의 입장에선, 시장통의 삼류 잡배들의 협박이 재롱으로밖에 안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과연 지금의 강호 무인들 중 자신보다 한참 처지는 삼류들의 주제 모르는 만용을 웃어넘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운이 좋구나! 강호에 나온 지 채 한 달이 못돼 강호의 대협객을 만나다니!”
진명은 방금 자신이 만난 사내를 강호의 대협객이라 생각했다.
잠시 사내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던 진명은 곧 골목길을 나와 그가 소면을 먹었던 객점에 짐을 풀었다.
그가 묵었던 객점에서 하루 묵어 갈 생각이었던 것이다.
“아쉽군. 존함이라도 여쭤 볼 걸 그랬어.”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침실로 들어선 진명은 미처 사내의 이름을 물어보지 못했단 생각에 아쉬워하며 잠이 들었다.
객점에서 하룻밤을 보낸 진명은 이튿날 새벽같이 일어나 오진문으로 향했다.
진명이 객점을 떠나고 얼마 후 마을에 난리가 났다.
지난 밤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던 마을 파락호 세 명이 목 없는 시체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오진문으로 향하는 진명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오진문에 도착하면 제대로 된 내공심법을 배워 전날 만났던 사내처럼 고수가 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용진관을 나설 때만 해도 자신의 꿈은 아버지처럼 표국의 표사가 돼 안정적인 삶을 사는 것이었다. 한데 전날 만난 사내로 인해 새로운 꿈을 품게 되었다.
지난 팔 년간 용진관에서 수련하며 수많은 강호고수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마치 꿈과도 같은 강호 영웅들의 무용담.
하지만 그런 무용담은 단지 이야기로만 존재할 뿐, 촌구석에 위치한 마을 무관에서 생활하던 진명에겐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당연한 것이 용진관의 관주만 보더라도 강호에 나서면 이류 소리도 제대로 듣지 못할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강호에서 고수라 불리는 이들의 진정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피부에 와 닿지 않았다.
한데 달포 전 숲에서 보았던 사내의 무공 실력은 이야기로 듣던 것 이상이었다.
허공을 가르는 신출귀몰한 신법, 상대를 몰아치던 그 호쾌한 장법. 그뿐인가 전날 시장통의 파락호들이 술 취해 부린 만용을 웃어넘길 수 있는 큰 배포까지. 그야말로 혈기방장한 소년들이 꿈꿀 수 있는 완벽한 영웅호걸의 모습이었다.
사내와의 만남은 어린 진명의 마음속에 큰 파도를 일게 만들었다.
“역시 사내라면 그 정도는 돼야지!”
진명은 자신도 언젠가는 사내처럼 절정의 고수가 될 것이라 다짐했다.
그렇게 부푼 기대를 가진 채 오진문으로 향하던 진명의 눈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무슨 일이지?”
자고로 사람이 많이 모여드는 곳엔 볼거리 구경거리가 넘쳐 나는 법이다.
서둘러 오느라 시간도 넉넉했기에 진명은 구경거리가 있으면 충분히 둘러본 후 가리라 마음먹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보니 큰 방문(榜文)이 붙어 있었다.
“강호… 대무전?”
어디선가 들어 본 기억이 있었다.
“아! 강호대무전!”
기억이 났다.
진명의 부친이 살아 있을 때, 젊은 시절 용진관 관주를 포함한 몇몇 친구들과 무림 대회를 구경 갔던 일을 무용담처럼 들려주곤 했었다.
너무 어린 시절 들었던 이야기인지라 잊고 있었는데, 십 년이 훨씬 지난 오늘 거리에 붙어 있는 방문을 보고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냈다.
당시 부친이 친구들과 구경 갔다던 무림 대회가 이 강호대무전이었다.
“삼 년에 한 번씩 열리는 대회라고 들었는데 그게 올해 열리는가 보구나.”
어린 시절 부친의 이야기를 들은 후 기회가 닿으면 꼭 구경하리라 생각 했던 무림 대회였기에 흥미를 끌었다.
“개최 일시가 십일월 초하루, 개최지는 산서성 태원(太原)에 있는 영조사(永祚寺).”
강호대무전의 개최 일시와 개최지를 확인한 진명의 표정이 밝아졌다.
태원은 자신의 목적지인 정양으로 가는 길목에 있었고, 십일월 초하루까지 십여 일 정도가 남아 있던 터라 기간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부친의 이야기를 들은 후 기회가 닿으면 꼭 구경하리라 마음먹었던 무림 대회인데다, 오진문에 입문하게 되면 한동안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처지가 될 것이니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당분간 기회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진문에 들기 전 이런 경험을 쌓아 놓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사내를 만나기 전이었다면, 부친과의 기억이 있었다 해도 무림 대회에 이 정도로 관심이 가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내를 만난 이후 진명의 내부에 큰 변화가 생겼고, 강호의 고수들이 펼치는 무공이 어떤 것인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진명은 결정을 내리기 무섭게 태원으로 향했다.
비록 진명의 나이가 어려 아직 세상 물정엔 어두웠으나, 한 번 정한 일은 여간해선 흔들리지 않고 추진해 가는 강단이 있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그런 성격으로 인해 계획성 없다는 꾸중을 듣기도 했지만 말이다.
진명이 강호대무전을 보기 위해 태원으로 향한 지 이틀이 지났다.
분양에서 하루 쉬며 피로를 풀었지만 고향 땅을 떠난 지 벌써 한 달이 지나 꽤나 몸이 고단했다.
처음 출발했을 땐 관도를 따라가다 보면 곧 마차를 얻어 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늦가을 한창 막바지 수확에 바쁜 이 시기에 신세 좋게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명처럼 이 시기에 팔자 좋게 여행하는 사람은 대부분이 무림인이나 관원들이라 마차가 아닌 말을 주로 이용했다.
비록 마차를 얻어 타진 못했지만 늦가을 붉게 물든 산천초목은 그런 피로를 잊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지금도 경치 구경에 정신을 뺏겨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배에서 꼬르륵 거리는 소리를 듣고서야 끼니를 거른 걸 알았다.
늦은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근처에 있던 큰 소나무 아래 자리를 잡았다.
분양에서 준비한 건량을 꺼내 막 한 입 물었을 때였다.
관도 한편에서 마차 굴러오는 소리가 들렸다.
마차 얻어 타는 걸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마침 마차가 다가오자 반가운 마음에 서둘러 관도로 뛰어 나갔다.
늙은 말 두 마리가 힘겹게 끄는 마차의 마부석엔 초췌한 모습의 노인 한 명이 앉아 있었다.
“저기요, 어르신! 잠시만 멈춰 주세요!”
진명은 마차를 놓칠 새라 급히 마차 앞으로 뛰쳐나갔다.
“이런 미친놈을 봤나!”
마차를 몰고 있던 노인은 갑자기 튀어나온 진명을 보고 깜짝 놀라 마차를 세웠다.
늙은 말이 천천히 끄는 마차라 하지만 갑자기 그 앞으로 뛰어드는 행동은 여간 위험한 게 아니다. 말이라는 동물은 늙었다 해도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어 사람이 잘못 치이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진명은 노인이 마차를 세우자 급히 다가가 말했다.
“잠시만요, 어르신!”
“이런 육시랄 놈을 봤나! 어린놈이 죽고 싶으면 물에 빠져 죽거나 지 혀를 깨물고 죽지, 감히 내 말에 치여 죽으려 들어!”
진명은 이틀 만에 발견한 마차라 기쁜 마음에 달려왔는데, 마차를 몰던 노인이 다짜고짜 육두문자를 날리자 황당한 기분을 느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제가 죽으려 든다니요?”
“이런 미친놈을 봤나? 지금 네놈이 마차에 뛰어든 게 죽으려 드는 것이지, 그게 아니면 왜 마차로 뛰어든 것이냐!”
급한 마음에 일단 몸으로 마차를 세우긴 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자신의 행동이 경솔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쌍욕을 들을 정도로 잘못을 한건 아닌 것 같았다.
“뭔데 밖이 이렇게 시끄러운 것이냐?”
목소리와 함께 마차의 문이 열렸는데 그 안에 초로의 노인 세 명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강제로 우화등선을 하겠다며 거대한 진식을 펼친 동서남북 네 노인이었다. 분명 거대한 백도를 만들어 우화등선을 하였을 터인데 왜 이곳에 그들이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 꼬맹인 뭐냐?”
마차 안에 있던 꾀죄죄한 몰골의 노인이 물었다.
“내가 어떻게 알아? 갑자기 튀어나와 자살하려는 놈인 줄 알았더니 마차를 얻어 탈 수 있냐고 묻잖아.”
“흥! 별놈이 다 있군.”
꾀죄죄한 노인 북여학은, 마차 밖이 시끄러운 이유가 자신이 우려 했던 일이 아님을 알고 나자, 관심 없다는 듯 마차 안으로 깊숙이 사라졌다.
진명은 눈으로 보면서도 신기하단 생각을 했다.
마차 안이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데, 꾀죄죄한 노인이 살짝 몸을 움직이자 깊은 동굴 속으로 쑥 빨려 들어가듯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얘야, 우리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만 갈 길이 바빠 그럴 수가 없구나. 좀 더 기다렸다가 뒤에 오는 마차를 얻어 타거라.”
꾀죄죄한 노인이 사라지자 청수한 인상을 지닌 노인이 고개를 내밀고 말했다. 약왕 남궁호였다.
“어르신, 이틀 동안 관도를 지나는 마차가 이 마차 한 대뿐이었습니다. 목적지까지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가는 길목까지 만이라도 함께 가게 해 주십시오.”
진명은 남궁호의 인상이 청수하고 점잖아 보이자 동행을 청했다.
“이놈아, 갈 길이 바쁘다지 않느냐! 냉큼 비켜서거라!”
진명이 들러붙으려 하자, 마부석에 앉아 있던 노인이 큰소리를 내며 들고 있던 말채찍을 휘둘렀다.
진명은 엉겁결에 말채찍을 피하고 보니 마차 옆으로 비켜서 있었다.
“태워 줄 수가 없다고 분명히 말했다! 다시 한 번 들러붙으면 그땐 용서치 않을 것이야!”
마부석에 있던 노인이 살벌하게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처음 마차를 발견했을 땐 마부석의 노인이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어서 미처 몰랐는데, 지금 보니 노인치곤 상당히 건장한 체구를 지니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실룩이는 얼굴에 붉은 혈색이 도는 것이 예사 사람이 아닌 걸로 보였다.
진명이 용진관을 나설 때 관주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