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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명가 1권(5화)
第二章 만남(3)


“강호엔 노인과 여인 그리고 아이를 조심하라는 격언이 있다. 강호에 고수 아닌 자가 없으니 제 실력을 믿고 까불다간 횡액을 면치 못한다는 뜻이다. 물론 네가 어디 가서 남에게 욕먹을 짓을 하진 않겠지만, 무언가 행동을 할 때 한 번 더 생각하고, 사람을 대할 때도 예의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하란 뜻에서 해 주는 이야기다.”

강호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사람이란 말이다.
갑자기 관주가 해 줬던 이 이야기가 생각나면서, 마부석의 노인뿐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다른 노인들까지 예사 사람들이 아닌 듯 보였다.
마차에 태워 달라 매달리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그뿐 아니라 노인들의 반응을 보니 더 이상 청해 봐야 씨도 먹히지 않을 것 같았다.
“더 이상 태워 달라하지 않겠습니다. 속히 가시던 길 가십시오.”
진명은 마차 옆으로 멀거니 물러섰다.
“흥!”
마부석의 노인 동방모강은 자신의 협박이 먹힌 듯하자 콧방귀를 한 번 뀌곤 다시 마차를 몰아 나갔다.
진명의 모습이 관도 너머로 사라질 때 쯤 마차 안에 있던 서일평이 입을 열었다.
“놈이 아니라 다행이네. 난 또 우리 미행을 눈치채고 놈이 매복을 한 게 아닌가 걱정했지 뭔가.”
“무릉도원을 다녀온 후 내 간이 쪼그라들었나 보네. 나 또한 그리 생각했으니 말일세.”
남궁호가 서일평의 말을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제로라도 우화등선을 하겠다며 사선곡에 모여 진식을 발동시킨 지 딱 일 년이 지나 있었다.
일 년 동안 온 강호를 돌아다녔는데도 선인들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두 달 전 겨우 한 명의 선인을 찾아 뒤쫓을 수 있었다.
네 노인이 한 시절 강호를 풍미했다지만 강호를 대표할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 쫓고 있는 자는 한 시대 강호를 대표했던 천하제일인 중 일인이다. 그런 자를 뒤쫓는 입장이니 긴장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대상을 쫓고 있는 마당에 처음 보는 소년을 자신들의 마차에 태울 수는 없었다. 만에 하나 쫓고 있는 자가 추적을 눈치채고 기습 공격이라도 해 오면 애꿎은 소년이 제일 먼저 희생될 것이기 때문이다.
해서 마차 한 번 얻어 타겠다는 소년의 부탁을 매몰차게 뿌리친 것이다.
네 노인이 괴팍한 성격을 지니곤 있지만 악한 성격은 아니었다. 오히려 강호인답지 않게 마음이 여린 편이라 할 수 있었다.
“놈의 목적지가 태원인듯 한데 역시 강호대무전을 보기 위함일까?”
“죽산(竹山)에서 이곳까지 직선으로 달려왔고, 이 길 끝에 태원이 있으니 그럴 것이네.”
네 노인은 자신들이 쫓고 있는 선인을 호북성(湖北省) 죽산에서 찾아냈다.
한데 지난 두 달 간 뒤를 쫓으면서도 아직까지 그의 정확한 정체를 알아내지 못했다.
도원에서 내려올 때 태상노군으로 부터 달아난 선인들의 명부와 그들을 잡을 때 사용할 선물을 받아 왔다.
명부 안엔 선인들의 무공을 비롯한 잡다한 정보들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그 정보를 토대로 한명씩 확인해 가며 잡아들여야 하는데 이게 쉽지가 않았다.
정확한 신원 확인이 어려워서였다.
그가 누군지 알아야 명부의 정보를 토대로 제압할 계획을 세울 텐데, 신원이 확인되지 않으니 무공 수준이 어느 정도이고, 어떤 무공을 사용하는지 몰라 이제껏 뒤만 쫓고 있는 실정이었다.
도원에서 탈출한 후 새로운 육신을 얻은 터라 이전의 용모와 대조해 본들 소용이 없었다.
무공이라도 사용을 한다면 알아볼 방법이 있겠는데, 그간 경공으로 줄기차게 산길만을 내달렸던 터라 무공도 확인하지 못했다.
얼마 전 숲에서 여섯 명의 괴한들과 전투를 벌이긴 했지만, 들킬 것을 우려해 너무 떨어져 있었던 터라 무공을 확인할 수 없었고, 대녕에서 파락호들을 죽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뒤늦게 시체들의 상흔을 보고 사용한 무공을 짐작해 보려 했지만 그것도 소용없었다.
목만을 잘라 죽여 놓은 시체를 보고 무공을 가늠하기란 너무도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후… 정말 힘들군.”
누군가의 뒤를 밟는 일이 이렇게 힘든지 이전엔 몰랐다.
그나마 잠행과 은신 추적에 일가견이 있는 북여학이 있어 지금껏 들키지 않고 잘 따라올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 숲에서 죽은 놈들은 뭐하는 놈들이지?”
진명이 산적들에게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나타났던 여섯 명의 흑의인들을 말함이다.
“알게 뭔가. 육신을 얻은 후 누군가에게 원한이라도 샀나 보지. 강호란 곳이 한 발짝만 잘못 디뎌도 은원이 생기는 곳 아닌가. 우리야 놈의 신원을 확인한 후 도원으로 돌려보내면 그만이니 구태여 복잡하게 놈의 속사정까지 캐내진 말도록 하세.”
선인을 잡는 일이 하면 할수록 어려워지는 일이라, 남궁호는 더 이상 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놈의 목적지인 태원에서 강호대무전이 열리니 필시 그곳에서 신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네.”
무림 대회가 열리는 곳이니 만큼 강호의 수많은 고수들이 몰려들 것이다. 사람이 많으면 다툼도 생기는 법.
정 안 되면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수법으로 다툼을 만들어 내서라도 신원을 확인할 생각이었다.
서일평이 품에서 특이하게 생긴 나침반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 나침반은 태상노군이 선인들을 잡아달라며 건넨 선물 중 하나이다.
일반적인 나침반은 자침(磁針)으로 방위를 알아보기 위해 사용하지만, 이 나침반은 오로지 속세로 달아난 선인들의 위치를 알아보기 위해 사용한다.
선인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만들어진 나침반이다 보니, 일반적인 나침반과는 그 모양과 사용법이 조금 달랐다.
서로 다른 길이의 침이 세 개 붙어 있는데, 가장 긴 침은 대상의 방향을 가리키고, 중간 크기는 거리, 가장 작은 침은 대상의 동선을 보여 줬다.
태상노군의 선물답게 달아단 선인을 찾는데 매우 유용한 물건이나, 복수의 인물을 쫓는 데는 불편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수동으로 제어가 가능해 다른 선인의 위치를 확인하고자 할 때 조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나침반은 자신들이 쫓고 있는 선인이 십오 리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태원으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 줬다.

***

노인들이 떠난 후 더 이상 관도를 지나는 마차는 없었다.
마차를 얻어 타진 못했지만 크게 아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늦가을 경치를 구경하며 쉬엄쉬엄 걷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경치를 구경하며 느긋하게 걸어온 진명은 강호대무전이 열리기 하루 전 태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태원에 도착한 진명은 가장 먼저 대회 장소인 영조사로 향했다. 영조사 앞은 강호대무전을 구경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가무잡잡한 피부에 건강한 미소를 지닌 강남의 여인들부터 눈이 파랗고 온 얼굴이 수염으로 덮여 있는 서장의 인물들까지 보였다.
중원 곳곳에서 몰려든 사람들을 구경을 하며 비무대가 설치된 곳으로 향했다. 튼튼한 청석(靑石)으로 만들어진 여섯 개의 비무대가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내일이면 이곳에서 강호의 고수들이 펼치는 무공을 볼 수 있겠구나.”
진명은 다음날 펼쳐질 강호대무전을 기대하며 숙소를 찾아 나섰다. 한데 강호대무전을 구경 온 사람이 너무 많아 방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세 번째 객점에 들르고도 방을 구하지 못해 낭패한 심정으로 다음 객점으로 향하는데, 진명의 어깨를 툭 밀치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어린놈이 왜 길을 막고 서 있냐?”
어깨로 진명을 밀친 사람은 사과는 커녕 도리어 화를 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란 생각에 막 화를 내려는데, 어깨를 치고 지나간 사람이 왠지 눈에 익었다.
‘누구지? 상당히 눈에 익은데?’
방금 지나쳐 간 사람이 누군지 기억을 더듬을 때 또 한 사람이 지나갔다.
“아!”
그제야 기억이 났다.
‘성격 더러운 노인들이다.’
진명 앞으로 스쳐 지나간 사람들은 태원으로 향하던 중 관도에서 만났던 동서남북 네 노인이었다.
‘뭐야? 바쁜 일이 있어 못 태워 준다더니 목적지가 여기였어?’
급한 일이 있어 못 태워 준다며 사라졌던 노인들을 이곳 영조사 앞에서 다시 만나자 진명은 왠지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그저 마차를 세웠단 이유만으로 쌍욕까지 듣지 않았던가.
그런 괘씸함에 네 노인들을 노려보고 있는데 그들의 모습이 괴이했다.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처럼 분주해 보였던 것이다.
‘뭘 찾는 거지?’
진명이 네 노인의 모습에 궁금해하고 있는데 서일평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리 칠 장, 동북쪽으로 계속 움직이고 있네.”
서일평이 나침반으로 선인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자 도대체 어디를 가는 거지? 쉬지도 않고 계속 움직이고 있잖아.”
동선을 보여 주는 세 번째 침이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였다.
“어디 높은 곳 없나? 놈이 이 주위를 계속 돌고 있으니 높은 곳으로 간다면 찾는 게 좀 쉬워질 텐데.”
서일평의 말에 세 노인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높은 곳을 찾기 시작했다.
“저기 저 객점이 삼층이니 저길 가 보세.”
남궁호가 좀 전 진명이 나왔던 객점을 가리켰다.
‘누굴 찾고 있구나. 그때 급하다고 했던 일이 누군가를 찾는 일이었어.’
진명은 내심 노인들이 괘씸했던 터라 그들의 뒤를 밟아 보기로 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미행을 시작했다.
네 노인이 비록 선인들에 비해 무공이 약하다 하나 절대 하수가 아니었다.
평상시였다면 진명 같은 조심성 없는 미행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는데, 워낙 주변에 사람이 많이 몰려 있는 데다가, 모든 정신이 나침반에 쏠려 있어 미처 진명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네 노인이 객점으로 들어서자 진명은 따라 들어가지 않고 그 앞에서 기다렸다.
괜히 따라갔다가 자신의 존재를 들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네 노인이 서둘러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네 노인은 객점을 나오기 무섭게 영조사 반대 반향으로 급히 움직였다.
진명은 서둘지 않고 네 노인의 뒤를 밟았다.
이십여 장쯤 나아가던 노인들은 으슥한 골목길로 사라졌다. 진명은 그들이 골목길로 사라지자 잠시 멈춰 간격을 벌린 후 이내 따라 들어갔다.
한참 동안 골목길을 따라 가자 높지 않은 작은 언덕이 보였고, 그 너머로 소나무로 뒤덮인 숲이 보였다.
노인들은 그 소나무 숲 속으로 사라졌다.
“숲이네.”
노인들이 숲 속으로 사라지자 진명은 더 쫓을지 고민했다.
“이왕 내친 걸음 도대체 저 노인들이 무얼 찾는지 알아보자.”
네 노인이 대나무 숲에 들어서니 멀리서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거리 오 장, 놈이 누군가와 싸우고 있는 것 같네.”
서일평이 나침반을 보며 말했다.
“이번 기회를 놓쳐선 안 되네. 위험 부담이 크지만 일을 마치기 위해선 반드시 놈의 무공을 확인할 필요가 있어.”
남궁호의 말에 세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곤 흩어졌다.
아무래도 한데 뭉쳐 갔다간 선인의 주위를 끌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서 네 방향으로 흩어져 최대한 존재를 들키지 않고 선인의 무공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진명은 갑자기 네 노인이 흩어지자 누구를 따라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고민은 잠시, 이들을 이끌고 있는 것처럼 보이던 서일평의 뒤를 쫓았다.
“음?”
서일평의 뒤를 쫓던 진명은 그제야 근처 어딘가에서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는 걸 알았다.
‘누군가 싸우고 있다!’
근처에서 누군가 싸움을 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 달려가던 서일평이 멈춰 섰다.
서일평이 멈춰 서자 진명도 같이 멈춰 섰다.
‘어딜 보고 있는 거지?’
서일평이 온 신경을 집중해 어느 한곳을 응시하고 있자 진명도 조심스레 앞으로 나아가 그곳을 바라봤다.
숲 저편에서 한 무리의 인영이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다.
무림 대회로 시끄러운 이곳 태원에서 비무 대회를 비웃듯 실전을 벌이고 있는 자들이 있었다.
‘누구지?’
치열하게 싸우는 이들의 옷이 눈에 익었다.
‘숲에서 봤던 흑의인들이다!’
진명은 자신이 산적들에게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나타났던 흑의인들과 이곳의 흑의인들이 같은 옷을 입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럼… 상대는?’
설마하던 심정으로 흑의인들이 몰아치고 있는 중심에 선 자를 유심히 살폈다.
‘헛!’
진명의 마음에 큰 파도를 만들었던 그 사내가 열두 명의 흑의인과 난전을 펼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