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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명가 1권(6화)
第二章 만남(4)


진명과 사내의 세 번째 만남이었다.
지난번 대녕의 숲에서 만났던 흑의인들은 사내를 상대로 채 일각을 버텨 내지 못했다. 한데 이번에 나타난 흑의인들은 그들과 다른 듯 대등한 전투를 펼치고 있었다.
개개인의 무공 실력이 상대에 미치지 못한다 판단 후, 수적 우세를 바탕으로 진형을 구축해 연환 공격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게 주요했는지, 흑의인들에 비해 월등한 무공 실력을 지닌 사내임에도 불구하고 마땅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양쪽의 치열한 공방이 오고 갔다.
“놈! 흑옥주를 내놓거라!”
팽팽한 접전이 진행되는 가운데 흑의인 중 한 명이 소리쳤다.
“흥! 능력이 되거든 날 쓰러뜨리고 가져가 보거라!”
대답과 동시에 사내는 말을 걸었던 흑의인을 향해 쇄도해 나갔다. 그 순간 양쪽에서 네 개의 검이 상단과 하단을 노리고 동시에 찔러 들어왔다.
사내는 미리 예상한 듯 가볍게 몸을 띄워 네 개의 검을 일시에 무력화시켰다. 그와 동시에 정면에 선 흑의인의 명치를 향해 일권을 내질렀다.
놀란 흑의인이 급히 뒤로 물러서며 검을 들어 막았는데, 내지르던 권이 순식간에 장으로 변하더니 공간을 격하고 날아왔다.
펑!
“큭!”
다급히 검으로 급소를 막아 즉사는 면했으나, 장력을 모두 흘려보내지 못해 내상을 입고 말았다.
검으로 장법을 막았던 흑의인이 피를 토하며 주춤거리는 사이 사내의 손이 아래에서 위로 기이하게 꺽이며 뱀처럼 기어올라 왔다.
쉬이익!
뱀처럼 솟은 손이 한 바퀴 원을 그리며 스쳐 지나가자, 흑의인의 머리가 몸과 분리되며 아래로 떨어졌다.
흑의인의 몸은 검으로 가슴을 막은 상태 그대도 뒤로 넘어갔다.
사내가 권에서 시작해 장으로 또 수로 바꾸는 모습을 보고 있던 서일평은 급히 태상노군에게 받은 명부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방금 목도한 기이한 무공을 바탕으로 신원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명부를 뒤적이던 서일평의 얼굴빛이 밝아졌다.
“찾았다!”
드디어 자신들이 쫓던 자의 신원이 파악되었다.
“성명 사옥진. 별호 천살성(天殺星)… 천살성?”
명부에 기재된 선인의 명호가 천살성이라고 되어 있었다.
“명호가 천살성? 천살성이란 살인자의 운명을 안고 태어난 자를 이르는 말이 아닌가?”
천살성이란 명호 아래로 그의 신상이 짧게 적혀 있었다. 그 글을 읽어 내려가던 서일평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강호 최초의 천살성 사옥진. 그가 나타난 이후 강호에 천살성이란 말이 처음 사용되었다…….”
명부에 적힌 설명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약 천이백 년 전, 단 삼 년이란 짧은 강호행 동안 삼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죽여 강호무림을 공포로 물들인 대마두라 적혀 있었다.
당시 그가 죽인 삼천 명의 희생자들 중에 구파의 장문인을 비롯한 수많은 무림 고수들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인 현청 진인은 전진파의 당대 장문인으로 강호제일인이라 칭해지던 인물이었다.
그런 절정의 고수들도 천살성 사옥진 앞에선 그저 목 없는 시체와 다를 바 없었다.
삼 년간 홀로 독보천하하며 자행한 그의 살행은 급기야 강호무림 최초로 단 한 명의 인물을 무림공적으로 선포하도록 만들었다.
강호의 수많은 협사들이 분분히 일어나 그를 척살하려 했으나 끝내 그를 죽이지 못했다. 오히려 협사들이 그의 손에 목 없는 시체로 변해 갔다. 그렇게 지난 시간이 삼 년. 그는 삼 년간의 짧은 강호 활동을 끝으로 사라져 다시는 강호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가 비록 강호에서 사라졌지만 공포는 여전히 남아, 그가 태어났던 출생 연월일시 즉, 사주(四柱)가 같은 자를 강호에선 천살성의 기운을 타고 태어났다고 이른다.
독문심공으로 무이건천심공(乾坤無理心功)을 익혔으며, 화정도법(火情刀法)과 나천장(邏穿掌) 그리고 암전수(暗電手)를 사용한다.
나천장은 거리가 떨어진 상대의 급소를 노리는 격공장으로 다수와의 전투에서 특별한 위력를 발휘한다고 알려져 있는 반면, 암전수는 일대일의 대결에서 큰 힘을 발휘하는데 상대의 목만을 집요하게 노려 끝끝내 잘라 내고야마는 매우 악랄한 수법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잘린 목의 절단면이 너무도 말끔해 마치 칼로 두부를 자른 것처럼 보일 정도라고 한다.
“음…….”
서일평은 사옥진의 신상을 확인한 후 침음성을 삼켰다.
좀 전 흑의인을 상대로 펼친 무공과 지난 몇 달간 추적하며 확인한 시체들로 미루어 볼 때 눈앞의 사내가 천살성 사옥진이 확실했다.
그토록 알아내려 했던 추적 대상의 신원을 확인했는데, 왠지 상대를 확인하고 나니 그를 제압할 자신이 사라져 버렸다.
‘천이백 년 전 강호를 공포로 물들인 천살성이라……. 과연 우리 네 명의 힘으로 저자를 제압할 수 있을까?’
아직 다른 세 명의 노인은 사옥진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태상노군으로부터 받아 온 선물과 자신들의 무공이 합쳐지면 도망친 선인들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었다.
‘이게 과연 도움이 될까?’
서일평은 태상노군으로부터 받아 온 선물들 중 부적과 죽통 그리고 검은색으로 물든 죽검을 꺼내 내려놨다.
죽통과 죽검은 전체적으로 검은빛을 띠고 있어 얼핏 보면 오죽(烏竹)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자세히 보면 붉은 기운이 강해 상당히 독특해 보였다.
태상노군의 말에 의하면 선계에서도 귀한 적오대나무로 만든 죽통과 검이라 했다.
이 적오죽선검은 주로 악귀를 물리칠 때 사용하는 검인데, 속세로 달아난 선인들의 당문혈(當門穴)과 백회혈(百會穴)을 이 적오죽선검으로 연이어 찌르게 되면 혼과 육신이 분리된다고 했다. 그때 죽통을 열어 주문을 외우면 혼만을 분리해 가둘 수 있다고 했다.
죽통에 가둔 선인의 혼은 태상노군에게 받아 온 부적으로 봉인 후 불로 태우면 선계로 다시 돌려보낼 수 있다고 했다.
잠시 적오죽선검을 내려다보던 서일평이 세 명의 노인에게 전음을 보냈다.
“선인의 정체를 알아냈네. 그의 이름은 사옥진. 무공으로 화정도법과 나천장 그리고 암전수를 사용하네. 나천장은…….”
서일평은 명부에 적힌 사옥진의 무공과 그 무공의 특징을 세 노인에게 전했다. 하지만 그의 명호는 알리지 않았다. 친우들의 사기를 꺾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 노인은 서일평으로부터 전해 들은 정보를 토대로 흑의인들과 싸우고 있는 사옥진의 무공과 무공 수위를 확인해 나갔다.
만에 하나 흑의인들이 사옥진에게 치명상이라도 입힌다면 그를 제압할 절호의 기회가 오늘 찾아오는 것이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제대로 기습 공격을 가한다면 아직 심신의 조화를 이루지 못한 사옥진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사옥진은 진형의 중심에 서 있던 흑의인을 죽였던 터러 당장 진형이 파훼될 것이라 생각했다.
한데 한 명이 죽었음에도 진형은 와해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강한 압박을 가해 왔다.
사옥진은 갈 길이 바쁜데 가는 길목마다 막아서는 이 흑의인들이 도통 귀찮은 게 아니었다.
‘내가 내 물건을 찾아가는데 왜 이리도 귀찮은 놈들이 꼬인단 말인가?’
흑의인들이 앞서 물었던 흑옥주는 사실 사옥진이 등선 전 강호 활동할 당시 신물처럼 지니고 다녔던 물건이다.
그런 흑옥주가 천이백 년이 지나 어떻게 흑의인들에게로 흘러들어 갔는지 알 수 없지만, 사옥진은 자신의 힘을 완전히 되찾기 위해선 반드시 흑옥주가 필요했다.
그래서 속세로 내려온 후 수개월 간의 추적 끝에 흑옥주의 행방을 알아내 몰래 빼내 왔다.
한데 어떻게 놈들에게 꼬리가 잡혀 그때부터 지금까지 끊임없는 추격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등선 전의 사옥진이었다면 이런 추격 자체를 허용치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뒤를 쫓았단 이유만으로 그 문파 자체를 강호에서 지워 버렸을 터였다. 한데 지금은 새 육신을 얻은 지 일 년 남짓밖에 지나지 않아 아직 심신의 균형조차 제대로 맞추지 못한 상태였다. 해서 현재 그의 무공 수준은 등선 전 삼 할 수준을 겨우 회복한 상태였다.
‘내가 힘을 되찾는 날 네놈들의 문파는 이 강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겨우 열두 명의 무인들에게 둘러싸여 곤혹을 치르고 있는 자신의 상황이 답답해 사옥진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감히 문파의 신물을 훔치고도 살길 바란단 말이냐!”
기세 좋게 한 명의 흑의인을 죽였던 사옥진이 흑의인들의 강한 압박에 다시금 수세로 몰리자,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미친놈들이 있나? 흑옥주가 네놈들 문파의 신물이면 내가 네놈들의 개파조사라도 된단 말이냐!”
“무엄하다!”
사옥진의 대답에 분개한 흑의인들이 진형의 압박을 한층 더 가하며 공세를 올렸다.
그렇게 사옥진과 흑의인 그리고 네 명의 노인이 각자의 사정으로 바쁜 가운데, 진명만이 뒤쪽에서 그들의 모습을 조용히 관찰하고 있었다.
‘저 성질 고약한 노인네들이 왜 대협객을 몰래 쫓고 있는 거지?’
진명은 네 노인들이 혹 사옥진에게 무슨 해코지라도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물론 열두 명의 흑의인과도 대등히 싸우고 있는 사옥진이 백발이 성성한 노인네들에게 무슨 일을 당할 리는 없겠지만, 눈먼 검이 무섭다는 말도 있잖은가.
한창 흑의인들과 접전을 벌이고 있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나타나 암습이라도 한다면 낭패를 당할 수도 있었다.
‘대협객은 지금 흑의인들과 싸우느라 몰래 엿보고 있는 저 노인들의 존재를 모르고 있을 텐데… 내가 알려 줄까?’
진명은 노인들의 존재를 사옥진에게 알리려다 참았다.
한참 흑의인들과 집중해 싸우고 있는데, 자신이 잘못 소리라도 냈다간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노인들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으니 자신도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사옥진은 시간이 지날수록 답답함에 짜증이 일었다.
머리로는 자신의 무공을 마음껏 펼치고 있는데, 이놈의 몸이 물먹은 솜마냥 축 가라앉아 도무지 뜻대로 움직여지지가 않아서였다.
이전 대녕의 숲에서 만났던 여섯 명의 흑의인들은 자신을 얕보고 있어 어렵지 않게 처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나타난 흑의인들은 단단히 준비를 했는지 무리한 공격은 하지 않고 최대한 방어 태세를 유지한 채 압박만을 가해 왔다.
지구전을 펼쳐 체력을 소모시키려는 수작이었다.
육신의 체력이란 내공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다.
제아무리 단전에 내공이 충만하다 한들, 돌 하나 들 힘조차 남아 있지 않다면 말짱 도루묵이기 때문이다.
한때 천살성이라 불리며 삼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살육해 왔던 사옥진이 그런 속셈을 모를 리 없었다.
‘아직은 이르다 생각했는데… 어쩔 수 없지.’
아직 심신의 균형이 제대로 잡히지 않아 최대한 기운을 억제해 운용해 왔다. 한데 흑의인들의 수작에 놀아나지 않으려면 더 이상 억제할 수만은 없었다.
자신의 육신이 어디까지 견뎌 줄지 알 수 없지만, 현 상황을 타개하려면 자제해 왔던 내력을 모두 뽑아내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짧은 시간 마음의 결정을 내린 사옥진이 몸을 움직였다.
“헛!”
갑자기 달라진 사옥진의 움직임에 흑의인 중 한 명이 헛바람을 삼켰다. 사옥진이 동귀어진의 수법으로 자신에게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진형을 유지해라!”
놀란 흑의인이 몸을 빼내려 하자 우두머리가 소리쳤다.
하지만 본능은 이성을 앞서는 법.
사옥진이 펼친 동귀어진의 수법에 흑의인이 한순간 주춤거리자 완벽하던 진형에 작은 빈틈이 생겼다.
‘싸움에 이기려면 우두머리를 노려야 한다!’
직선으로 달려들던 사옥진이 그 틈을 노려 급격히 방향을 틀었다. 우두머리가 서 있는 곳이다.
“이놈!”
우두머리는 사옥진의 강맹한 장법에 맞서 자신도 검을 내질렀다.
펑!
사옥진의 장력과 우두머리의 검이 맞부딪치며 가죽 북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과연 흑의인들의 우두머리인지라 조금 비틀거리긴 했어도 나천장을 정면에서 받아 냈다.
사옥진이 우두머리와 맞붙은 그 짧은 순간 등 뒤로 세 개의 검이 날아들었다.
사옥진은 검과 부딪힌 반탄력을 이용해 신형을 거꾸로 뒤집으며 바닥으로 쓰러지듯 드러누웠다.
쉬쉬쉭!
흑의인들의 검이 종이 한 장 차이로 가슴을 스치며 지나갔다.
‘아직 좀 더 끌어낼 수 있다!’
바닥에 등을 붙이기 무섭게 최대한도로 내력을 끌어 올려 양손으로 장력을 펼쳐 냈다. 그와 동시에 다리 쪽으로도 내력을 보내 빗질을 하듯 바닥을 쓸었다.
파파팡!
“컥!”
빠각!
장력에 격중당한 흑의인의 외마디 비명 소리와 함께 아래쪽에서 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장법과 동시에 각법을 펼쳐 우두머리의 정강이뼈를 부러뜨린 것이다.
우두머리는 양쪽 정강이뼈가 모두 부러진 충격에 앞 쪽으로 쓰러졌다. 사옥진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의 얼굴 방향으로 무릎을 세워 올렸다.
빡!
사옥진의 무릎이 우두머리의 안면을 짓이기고 들어가 함몰시켰다. 비명도 없는 즉사였다.
비록 새로 얻은 신체가 균형을 잡지 못해 예전만 못하다고는 하나, 수천 번의 생사투를 넘어왔던 경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세 명의 검을 피함과 동시에 바닥으로 누워 장력을 발출하고, 정강이뼈를 부순 후 안면을 함몰시키기까지, 눈 한 번 깜빡일 정도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찰나의 공격으로 우두머리를 포함해 네 명의 흑의인이 죽음을 맞았다.
처음 열두 명에서 다섯이 죽고 이제 일곱이 남았다.
사람의 수가 줄고 진형을 조율해 왔던 우두머리가 죽자 연환진은 완전히 깨어지고 말았다.
그때부터 일방적인 살육이 시작됐다.
남은 일곱 명의 흑의인들이 협심해 나름의 선전을 펼쳤으나 역부족이었다.
마지막 열두 명째 흑의인의 목을 잘라 낸 사옥진이 휘청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