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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명가 1권(7화)
第二章 만남(5)
“쿨럭!”
짧은 기침과 함께 검게 죽은피를 토했다.
우려한 대로 몸이 버텨 내지 못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각혈을 했으나, 며칠 운기하면 치유될 정도의 크지 않은 내상이라는 것이다.
“이 정도로 끝난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경미한 내상만으로 끝낼 수 있었던 것은 빠른 결정 덕분이었다. 내상을 우려해 시간을 지체했더라면 오히려 자신이 당했을 수도 있었다.
사옥진과 흑의인의 혈투를 지켜보던 서일평은 조급증이 일었다.
그가 뇌옥을 탈출하고 일 년 남짓의 시간밖에 흐르지 않았으니, 분명 심신의 균형이 완전치 않은 상태일 것이 분명했다. 한데 그런 몸 상태로 흑의인들이 펼치는 연환진식을 파훼하고 모두를 죽일 정도로 강하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명부에 적혀 있던 사옥진의 짧은 내력도 섣불리 움직일 수 없는 큰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그렇다고 이대로 그의 뒤만 쫓을 수도 없으니 절로 조급증이 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은 균형을 찾아갈 것이고, 그럴수록 그를 잡아들이기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그렇게 가부의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지켜보고 있는데, 갑자기 사옥진이 휘청거리더니 각혈을 하는 게 아닌가.
‘내상이다!’
누가 봐도 내상을 입은 모습이 확연했다.
서일평은 그를 잡으려면 오늘밖에 기회가 없음을 알았다.
세 노인도 사옥진이 각혈하는 모습을 봤던 터라 신호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일평은 지체하지 않고 신호를 보냈다.
“지금이다!”
세 노인은 서일평의 신호와 함께 먹이를 노리는 범처럼 뛰어올라 사옥진에게로 쇄도해 갔다.
사옥진이 내상을 치료하기 위해 신형을 돌리려는데, 숲 바깥쪽 언덕 위에서 네 명의 노인이 득달같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자신이 흑의인들과 싸우는 동안 숨어 있다가 각혈을 하자 기회다 싶어 나서는 게 눈에 선했다.
“예나 지금이나 강호는 변한 게 하나도 없군…….”
사옥진은 지금과 같은 상황이 그리 낯설지가 않았다. 이전 생에선 이 보다 더한 일도 자주 겪었기 때문이다.
사옥진이 흑의인을 모두 쓰러트리는 모습을 보고 안심하던 진명은 깜짝 놀랐다.
그동안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네 노인이 사옥진이 각혈하는 모습을 보기 무섭게 개 떼처럼 달려 나갔기 때문이다.
놀란 진명이 소리쳐 알리려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사옥진이 진명보다 먼저 노인들의 존재를 알아챘기 때문이다.
‘역시! 저 노인들은 무림인이었구나!’
마차를 세웠을 때 느꼈던 기운으로, 노인들이 평범한 촌부는 아닐 거라 짐작은 했다. 한데 펼치는 신법들을 보니 흑의인들보다 더한 고수들로 보였다.
그런 고수 네 명이 부상당한 사옥진 한 명을 공격하니 진명은 걱정이 되었다.
지금껏 몰래 숨어 지켜보고만 있던 네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건 그만큼 승부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내가 조금만 더 무공이 강했더라도 대협객을 도와 저들을 처치할 수 있을 텐데…….’
진명은 자신의 목숨을 살려 준 사옥진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자 안타까웠다.
‘내가 조금이라도 도울 일이 없을까?’
진명은 안 되면 돌팔매질이라도 해서 사옥진을 도울 생각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런 진명의 눈에 서일평이 숨어 있던 곳에 허연 보퉁이 같은 게 놓여 있는 게 보였다.
‘뭐지?’
진명이 조심스레 가 보니 서일평이 메고 다니던 등짐이었다.
진명의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서일평은 싸움에 필요한 물건만을 지니고 나간 상태였다.
등짐에 태상노군의 선물이 모두 들어 있으니 만에 하나 자신들이 패한다 하더라도, 선인의 손엔 들어가지 않게 하려는 방책이었다.
‘뭐가 이렇게 잔뜩 들어 있어?’
진명은 노인들을 사파나 마교의 고수들이라 생각했다.
용진관의 관주가 사파나 마교의 고수들은 암기나 독공을 즐겨 사용한다고 했던 말도 생각이 났다.
‘그래, 이 짐 속에 쓸 만한 암기나 독 주머니가 들어 있을 수도 있어!’
진명은 서일평의 등짐을 훔쳐 조심스럽게 자신이 숨었던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잠시 주변을 살핀 후 암기를 찾기 위해 등짐을 뒤지기 시작했다.
등짐을 열자 가장 먼저 보인 건 얇은 실로 엮어 놓은 수십 개의 죽통이었다.
“왠 죽통이 이리 많아?”
등짐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던 죽통을 빼내 한쪽으로 밀어 놓았다.
“이건 나침반인가?”
죽통을 들어내니 그 아래 깔려 있던 나침반이 보였다.
일반적인 나침반과 달리 침이 세 개나 달려 있었는데 모두 한쪽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침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네 노인과 사옥진이 한창 싸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진명은 나침반이 사옥진을 가리키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밀어 놓았다.
“이럴 시간이 없어. 빨리 암기를 찾아야 되는데…….”
대협객을 도와야 된다는 생각에 다시 등짐으로 시선을 돌려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번에 손에 잡힌 건 두 권의 서책이었다.
“원우진서(原遇眞書)?”
괴이한 이름의 서책이었다.
혹, 노인들의 마공이 담긴 무공서일지도 모른단 생각에 안의 내용을 살펴봤다. 한데 자신의 기대와 달리 말도 안 되는 내용들만 잔뜩 적혀 있는 잡서였다.
진명은 서책의 내용이 너무도 허무맹랑해 잡서라 생각했지만, 사실 원우진서는 서일평이 운남의 비처에서 얻은 책으로 우화등선을 이루게 해준 바로 그 책이었다.
서일평도 처음 원우진서를 발견했을 때 그 안에 적혀 있는 내용들이 너무도 괴이해 진명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여행 중 우연히 서책의 내용들이 사실임을 깨닫고, 끝내 하늘로 통하는 백도까지 만들어 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진명에겐 그저 잡서일 뿐이었다.
또 다른 책을 펼쳤다.
선인명부(仙人名簿).
“선인명부? 신선들의 이름을 적어 놓은 책이라고?”
책을 펼쳐 살펴보니 처음 듣는 이름과 명호, 각종 무공들이 나열돼 있었다.
“무공서는 아니구나.”
이름과 무공들만 나열되어 있을 뿐 구결로 보이는 건 전혀 없었다. 선인명부도 원우진서와 함께 한쪽으로 밀쳐놓았다.
안쪽을 더 뒤지자 작은 목곽이 하나 보였다. 목곽을 열어 보니 그 안에 옥병 네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약인가? 아니, 독일 수도 있어.”
내용물을 확인해 보려 뚜껑을 여는데 아무리 힘을 줘 봐도 열리지가 않았다.
옥병을 여는 걸 포기하고 다른 걸 찾아봤지만 역시나 쓸모 있는 암기나 무기 같은 건 나오지 않았다.
서일평이 여분으로 지니고 다니던 옷가지 몇 벌과 얼마간의 건량 그리고 독한 화주 한 병이 다였다.
“이거라도 써야 되나?”
진명은 당장 쓸 만한 게 보이지 않자 여차하면 죽통이라도 던져야겠단 생각에, 죽통을 제외한 다른 물건들은 모두 등짐 속에 구겨 넣고, 대충 여며 등에 짊어졌다. 그 후 네 노인과 사옥진이 싸우는 곳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
사옥진을 돕기 위해 다가가던 진명이 깜짝 놀라 멈춰 섰다. 여차하면 죽통이라도 던져 사옥진을 도와야겠단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전투는 이미 끝난 상태고, 네 노인과 사옥진 모두 처참한 모습으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던 것이다.
“어, 어떻게 된 거지?”
눈앞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 한동안 멍하니 서 있던 진명은, 곧 자신이 옥병과 씨름하던 그 짧은 시간 동안 노인들과 사옥진이 양패구상 했음을 깨달았다.
“설마… 죽진 않았겠지?”
진명이 다급히 사옥진에게로 뛰어갔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사옥진의 처참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온몸 곳곳에 상처 아닌 곳이 없었고, 입고 있던 옷은 누더기로 변해 있었다. 그중 가슴의 상처가 가장 심각했는데, 무언가에 탔는지 검게 그을린 그곳에서 쉼 없이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상처가 워낙 많고 그 정도도 심해 죽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가슴 부위에서 미미한 움직임이 보였다.
“살아 있다!”
죽었을 것이라 생각했던 사옥진이 살아 있자 진명의 행동이 다급해졌다.
“빨리 의원에게 모셔 가야 해!”
급한 마음에 사옥진을 일으켜 세우기 시작했다.
“안… 돼……!”
진명이 막 사옥진을 일으켜 세우려는데 누군가 자신의 발목을 덥석 잡아왔다. 화들짝 놀라 돌아보니 북여학이 진명의 발목을 잡아끌고 있었다.
“이, 이… 걸 놈의 백회혈에…….”
북여학이 손에 쥐고 있던 적오죽선검으로 사옥진을 가리키며 힘겹게 무언가 말하려 했다.
“놔라! 이 천하에 악독한 마두야!”
진명은 자신이 대협객이라 믿고 있는 사옥진을 이런 처참한 모습으로 만든 대마두가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자 화가 나 발로 차 버렸다.
퍽!
“컥!”
진명의 발길질에 북여학이 피를 토하며 바닥을 굴렀다.
“이… 노옴……!”
북여학은 진명을 바라보며 무언가 말을 하려다 끝내 정신을 잃고 말았다.
북여학이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진명은 사옥진을 업고 숲을 빠져나갔다.
第三章 원우진공(1)
사옥진이 눈을 뜬 건 의원으로 옮겨지고 사 일이 지나서였다.
“으음…….”
복부에서부터 올라오는 지독한 통증에 신음을 토하며 정신을 차렸다.
“정신이 드세요?”
사옥진이 정신을 잃고 있던 동안 한시도 떨어지지 않은 채 간호를 하고 있었던 진명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여긴… 어디지……?”
“이곳은 태원에 있는 의원이에요.”
“의원……?”
사옥진은 정신을 잃기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해 내려는 듯 진명이 한 말을 되뇌였다.
“대협객님께선 사 일 전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숲에서 대마두 네 명과 싸우시다 큰 부상을 입고 정신을 잃으셨어요. 기억나세요?”
“대… 마두……?”
진명의 물음에 사옥진이 기억을 더듬는지 이마를 찌푸렸다.
대마두가 누구일까 생각하던 사옥진은 네 명이란 말에 눈앞의 소년이 네 노인을 대마두로 생각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기억나는군… 그들은 어떻게 되었지?”
“대협객님의 상세가 워낙 위중하셔서 이곳으로 옮기느라 확인하지 못했어요. 이틀 전 그곳에 다시 가 봤는데 싸움의 흔적만 남아 있고 시체들은 없었으니 죽진 않은 듯해요.”
“아직… 살아 있단 말이군…….”
사옥진의 뇌리에 그날 있었던 혈투가 스쳐 지나갔다.
그들 네 노인이 태상노군의 명을 받고 자신을 잡으러 왔다고 했을 때 얼마나 놀랐던가.
은신해 있던 북여학이 혼백을 떨쳐 낸다는 적오죽선검을 들고 달려드는데, 당문혈에 적오죽선검을 맞고 나니 온몸의 기혈이 뒤틀리는 듯했다. 더 이상 몸의 상태를 걱정하며 상대할 여유가 없었다.
내상을 각오하고 일시에 모든 내력을 쥐어짜 내 나천장을 퍼부었다. 한데 그들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고 한다.
‘서둘러야겠다! 그토록 정확히 나를 찾아왔다는 건 언제든 다시 나를 찾아올 수 있다는 말이니…….’
사옥진은 서둘러 몸을 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대협객님, 괜찮으세요?”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는 사옥진을 진명이 불렀다.
“대협객님……?”
그제서야 눈앞의 소년이 자신을 대협객이라 부른다는 사실과 이 같은 호칭이 낯설지 않음을 깨달았다.
“너는… 대녕에서 만났던…….”
“기억하시는군요. 대녕의 숲에서 대협객님께 구명을 받았던 도진명이라 합니다.”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천살성이나 인간 백정이라며 손가락질하고 욕했다. 한데 눈앞의 이 소년은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자신을 대협객이라 불렀다.
사옥진 평생에 대협객이란 말을 처음 들어 봤으니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의원을 불러올게요.”
진명은 사옥진이 정신을 차리고 안정이 된 듯하자 의원을 부르려 했다.
“멈추거라!”
의원을 부르려는 진명을 사옥진이 멈춰 세웠다.
사옥진의 멈추란 말에 진명이 돌아봤다.
“이곳에 온 지 사 일째라 했지?”
“네, 오늘로 사 일째입니다.”
“시간이 없다. 당장 이곳을 떠나야 한다.”
사옥진의 말에 진명은 그런 상처를 입고 어딜 가려 하느냐는 듯 바라봤다.
사옥진은 그런 진명의 반응에 상관없이 자신의 몸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네 노인들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니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떠나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