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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명가 1권(8화)
第三章 원우진공(2)


‘이상하군. 이 정도의 부상이 아직 낫지 않고 있다니…….’
사옥진의 몸 중 가장 부상 정도가 심한 곳은 당문혈이 있는 가슴 부위였다.
북여학이 적오죽선검으로 당문혈을 찔렀기 때문이다. 가까스로 몸을 틀어 비껴 냈지만 완전치가 못했다.
일반적인 무인이라면 이 정도의 부상으로도 절명할 수 있었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무이건천심공 때문이다.
무이건천심공은 사옥진의 독문심공으로 발출한 내기를 회수해 몸을 보하고 내상을 치료하는데 탁월한 효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무이건천심공이 있었기에 천살성이란 별호를 얻은 후 수많은 강호인들의 합공을 받으면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비록 몸은 다른 이의 것을 빌린 것이지만, 내공만큼은 자신의 무이건천심공으로 쌓아 올린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치료 효능이 발휘되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사옥진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당문혈이 있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점검해 나갔다.
‘이런 빌어먹을 일이 있나!’
한참을 점검하고서야 치료되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됐다.
적오죽선검에 당문혈이 격중될 때 몸을 틀어 비껴 냈는데, 그 여파로 단전의 일부에 금이 가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마음이 다급해진 사옥진은 누운 상태 그대로 기운을 일으켜 운기해 보았다.
‘모이지가 않는다!’
운기를 했지만 단전에 내기가 모이지 않았다. 오히려 금이 간 곳을 통해 모아 놓은 내기마저 조금씩 빠져나가고 있는 실정이었다.
사옥진이 낭패함에 말을 잃고 있는데, 자신의 손목에 채워져 있던 흑옥주가 미세하게 진동을 일으켰다.
“……!”
낭패감으로 물들어 있던 사옥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사옥진은 운기를 할수록 내기가 빠져나감을 알면서도 다시 한 번 운기를 해 보았다.
지이잉.
분명히 흑옥주가 진동을 일으켰다.
“이곳과 멀지 않다!”
사옥진이 큰소리를 내며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가슴에서 극심한 통증이 일었지만 그마저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흥분해 있었다.
그런 사옥진의 갑작스런 행동에 옆에 있던 진명이 깜짝 놀랐다.
“지금 찾아야 한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했다간 몸의 기능을 잃을 수도 있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내뱉곤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단전에 금이 가면서 예전 같은 치료 효과를 보지 못한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크윽!”
가슴에서 울리는 격렬한 통증에 신음을 토하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진정하세요. 어딜 가시려고요?”
사옥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어딘가로 가려 하자 진명이 부축하며 물었다.
사옥진은 자신을 부축하는 진명을 바라봤다.
‘이 녀석… 그래 이 녀석이 있었지!’
금이 간 단전으로 잠시 잊고 있던 진명의 존재를 생각해 냈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에 진명이 놀라 있는데 사옥진이 진명의 어깨 위로 팔을 둘렀다.
“갈 곳이 있다. 나를 업어라.”
“그 몸으로 어디를 가시려 합니까? 그보다 의원을 불러야지요.”
“의원 따윈 필요 없다. 급히 갈 곳이 있으니 서두르거라.”
진명은 사옥진이 서두르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이분은 나의 목숨을 한 번 살려주신 분이다. 관주께선 늘 강호에 나가면 은원을 확실히 해야 된다고 했지.’
진명은 사옥진이 자신의 목숨을 한 번 살려준 적이 있었기에 은혜를 갚는다는 심정으로 그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사옥진의 계속된 재촉에 진명은 의원을 찾아가 환자와 함께 떠나겠다 말하고 그동안 치료했던 비용을 지불했다.
방으로 돌아온 진명은 짐을 챙긴 후 사옥진을 업고 방을 나섰다.
방을 나서니 흑옥주의 진동이 더욱 강해졌다.
사옥진은 단전에 미세하게 남아 있던 기운들을 천천히 풀어 진동이 이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전각 뒤쪽으로… 서두르거라!”
진명의 등에 업혀 있던 사옥진이 눈앞의 전각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때부터 사옥진의 지시를 받으며 한 시진 가까이 움직여 영조사 뒤쪽에 위치한 쓰러져 가는 사당 앞에 당도했다.
“이곳이다!”
사옥진은 사당을 발견하기 무섭게 안으로 들어가라 했다.
사당은 큰 절인 영조사 뒤쪽에 있는 데다가, 앞쪽에 큰 언덕이 가리고 있어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만큼 사람의 출입도 없었는지, 안으로 들어가 보니 사방에 거미줄이 쳐져 있고,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저 불상 앞으로 가거라.”
사당 안으로 들어선 사옥진이 먼지와 거미줄로 뒤덮여 있는 불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진명이 불상 앞으로 다가가자 사옥진은 자신의 왼팔을 앞으로 내밀며 무언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진명은 그의 행동이 의아했지만 구태여 묻지 않았다.
한 시진가량 사옥진을 업고 오면서 그가 무언가를 찾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동안 사당 안 곳곳을 살펴보던 사옥진이 가장 안쪽에 위치한 불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불상 뒤쪽으로 갈 수 있겠느냐?”
사옥진이 가리키기 전엔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불상 뒤쪽으로 어린아이 한 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조그만 틈이 있었다.
“가까이 가서 살펴봐야 알 수 있겠습니다.”
“날 이곳에 내려 두고 살펴보거라.”
사옥진의 말에 따라 그를 내려놓고 불상 뒤쪽으로 움직여 안쪽을 살펴봤다.
분명 틈이 있긴 하지만 진명이나 사옥진 같은 어른이 들어가기엔 무척 좁아 보였다.
“저나 대협객님이 들어가기엔 좀 좁아 보…….”
불상 뒤쪽을 살피며 말하던 진명이 말을 끊었다.
불상 아래쪽에 손잡이 같은 게 튀어나와 있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잡이를 잡고 아래로 내려 봤다.
쿠르르릉.
큰 바위가 굴러가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불상이 살짝 들려 한쪽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불상이 있던 자리 밑으로 입구가 보였다.
“여기 아래로 내려가는 입구를 찾았습니다.”
“제대로 찾았군. 어서 날 업거라.”
진명은 사옥진을 업고 입구 안으로 몸을 움직였다.
입구 아래로 긴 사다리가 이어져 있었다.
사다리를 타고 아래로 내려서는데 서늘한 한기가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입구가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진 알 수 없지만, 그곳에 사옥진이 찾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사다리는 십여 장에 걸쳐 이어져 있었다.
사다리를 모두 내려오자 긴 굴이 이어져 있었다.
기이한 건 분명 지하로 깊게 내려와 빛이 들어오지 않을 터인데도 길게 이어진 굴 안이 희미하게나마 보인다는 점이었다.
“뭐하느냐, 서두르거라.”
사옥진의 재촉에 진명은 그를 업은 상태로 앞으로 나아갔다. 이십여 장 쯤 지나자 거대한 석벽이 보였다.
“드디어 도착했구나!”
석벽 앞에 도착한 사옥진은 마치 예전에 이곳에 와 본 적이 있는 사람처럼 말했다.
“석벽 우측 아래 부분을 살펴보거라. 손가락 하나 정도 들어갈 홈이 있을 것이다.”
사옥진의 지시대로 석벽 아래쪽을 살펴보니 과연 조그만 홈이 있었다.
“그곳에 손가락을 넣어 보면 무언가 걸리는 게 있을 것이다. 그걸 밀어 보거라.”
진명이 시키는 대로 손가락을 넣어 보니 홈 안쪽으로 단추 같은 게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살짝 힘을 줘 밀자 안으로 쑥하고 밀려들어 갔다.
쿠르르릉!
단추가 안으로 밀려들어 가자 육중해 보이던 석벽이 저절로 열렸다.
진명은 석벽이 열리는 걸 보며 이것이 말로만 듣던 기관 장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잘 듣거라. 이곳부터는 연상연환진(聯想連環陣)이라는 무서운 기문진이 펼쳐져 있다. 한 발짝이라도 잘못 들이면 죽을 때까지 같은 자리를 헤매다 죽게 된다. 하니 지금부터 내가 지시하는 대로만 움직여야 한다.”
기관 장치에 기문진까지.
진명은 이 안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졌다.
기문진이 펼쳐져 있다니 살짝 겁이 나기도 했지만 그보단 호기심이 더 컸다.
그때부터 진명은 사옥진의 지시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 채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시간은 걸렸지만 사옥진의 지시대로만 움직이면 되었기에 기문진을 통과하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반 시진가량 움직이자 통로의 끝이 보였다.
통로의 끝엔 거대한 공동이 있고, 그 중앙에 조그만 연못이 하나 있었다.
“이제 기문진의 끝에 다다랐구나. 저곳이 생문이다.”
사옥진이 연못을 가리키며 말했다.
“연못 안으로 들어가라는 말입니까?”
진명의 물음에 사옥진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연못 앞으로 다가가 보니 상당히 깊은지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연못의 색이 잿빛인 것이 공연히 신경이 쓰여 진명은 선뜻 안으로 들어갈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사옥진은 석벽 안으로 들어 온 이후론 무슨 이유에선지 서두르지 않았다.
연못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서성이는 진명을 보면서도 재촉하지 않았다.
얼마간 연못 주변을 서성이던 진명이 결심을 한 듯 조심스럽게 연못 안으로 한쪽 발을 짚어 넣었다.
“헉!”
한쪽 발을 집어넣었던 진명이 화들짝 놀라 도로 발을 거둬들였다.
한쪽 발이 연못 안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지독한 한기가 온몸을 타고 올라왔던 것이다.
사옥진이 재촉하지 않았던 이유가 이 같은 한기 때문이었던 듯했다.
“도대체 어떤 연못이기에 이런 한기를 품고 있습니까?”
“연상연환진으로 인해 발생한 극음지기를 품게 된 연못이다. 한 번에 몸을 던져 넣지 않으면 절대 들어갈 수가 없다.”
경험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발끝을 타고 심장 어림까지 차오르던 극음지기를 느끼고 나자 다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잠시 마음을 진정시킨 후 온몸을 던져 넣거라. 극음지기의 고통은 일순간에 끝날 것이다.”
사옥진의 말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이 연못이 생문이라 했으니, 출구가 이곳밖에 없단 말이로구나.’
기문진에 대한 지식이 많진 않았지만 팔 년간 무공을 익히며 이곳저곳에서 주워들은 말은 많았다. 그로 인해 기문진에 갇힌 후 생문을 찾지 못하면 죽을 때까지 빠져나갈 수 없음도 잘 알고 있었다.
연못의 한기가 두려웠지만, 어차피 이곳을 빠져나가려면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잠시 마음을 진정시킨 진명은 이내 결심을 한 듯 사옥진에게 물었다.
“준비되셨죠?”
“두려워 말고 몸을 던지 거라.”
사옥진의 대답에 진명은 자신의 양쪽 뺨을 짝 소리 나게 친 후 연못 앞으로 다가갔다.
“그럼 갑니다!”
진명이 힘차게 소리치며 연못 안으로 몸을 던졌다.
연못으로 뛰어들기 무섭게 지독한 한기가 온몸을 헤집어 놓기 시작했다. 이전 한쪽 발만 담갔을 때 느꼈던 한기는 어린애 장난처럼 느껴질 정도의 극심한 한기였다.
한기로 인한 고통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몸이 연못 바닥으로 급속도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 양발을 잡고 끌어당기고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와 연못 바닥으로 빨려드는 압력으로 정신이 아득해졌다.
“정신 차리거라!”
전음을 통한 사옥진의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빠드득.
정신을 차리려 이를 악물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진명이 막 정신을 잃으려는 순간, 한줄기 따뜻한 기운이 등줄기를 파고들었다.
진명이 한기로 인해 정신을 잃어 가자 사옥진이 등을 통해 내기를 불어넣고 있었던 것이다.
진명에게 내기를 불어 넣느라 사옥진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극심한 고통을 맛보고 있었다.
금이 간 단전에서 억지로 기운을 뽑아내는 고통과 극음지기로 인한 지독한 한기가 뒤섞인 고통이었다.
진명에게 내기를 불어 넣던 사옥진이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느낄 무렵, 갑자기 아래쪽이 허전해지더니 몸이 허공에 붕 뜬 기분이 느껴졌다.
“어엇!”
진명이 억눌린 소리를 뱉어 냈다.
실제 자신들의 몸이 허공에 떠 있었기 때문이다.
진명은 허공중에 떠 있는 자신들의 모습에 놀랐지만 머리 위에 떠 있는 연못을 보고 느낀 충격은 더욱 컸다.
‘머리 위에 연못이……!’
기문진의 생문이라던 연못이 허공중에 떠 있었다.
자신들은 그런 연못을 통과해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었던 것이다.
“으아아악!”
자신의 몸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음을 느낀 진명이 비명을 질렀다.
그때 진명의 등 뒤에 업혀 있던 사옥진이 진명의 몸을 감싸 안았다. 그리곤 마지막 남은 내기를 쥐어짜 내 바닥을 향해 미친 듯이 펼쳐 냈다.
파파파팡!
연못 아래로 계곡물이 흐르고 있었다.
사옥진은 계곡물로 떨어지는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나천장을 펼쳤다. 다행히 그 같은 임기응변이 통했는지 추락하던 속도가 조금 줄어들었다.
하지만 완전히 속도를 줄일 수 없어 사옥진은 진명과 몸을 밀착시킨 후 공처럼 말았다.
그 사이 계곡의 물이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