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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명가 1권(9화)
第三章 원우진공(3)


첨벙! 촤아아악!
거친 물보라를 일으키며 계곡의 물이 수면 위로 튀어 올랐다.
계곡물과 부딪힌 충격이 컸지만 나천장으로 속도를 줄인 후, 몸을 둥글게 말아 내부 장기를 보호했던 터라 큰 부상은 입지 않았다.
“푸학! 콜록! 콜록!”
물 밖으로 고개를 내민 진명은 코와 입으로 들어간 물을 뱉어 내며 잔기침을 토했다.
그렇게 얼마간 기침을 토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정신을 차린 진명이 계곡을 바라봤다. 계곡의 물은 생각보다 깊지 않아 일어서면 겨우 자신의 어깨어림까지 오는 깊이였다.
사옥진이 마지막에 나천장을 발출하지 않았다면, 물 또는 바닥과 충돌해 내장이 파열되거나 팔다리가 떨어져 나갔을 수도 있었다.
사옥진에게 은혜를 갚으려 했는데, 다시 한 번 목숨을 구명받게 되었다.
“대협객님, 생문을 통과했어요. 이제 어디로 가면 되지요?”
진명이 사옥진에게 물었다. 한데 대답이 없었다.
진명이 고개를 돌려보니 사옥진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숨소리가 거칠고 안색이 창백했다.
눈은 붉게 충혈됐고, 입술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대협객님!”
놀란 진명이 업혀 있던 사옥진을 바닥에 눕혔다.
“저곳으로…….”
진명이 바닥으로 눕히기 무섭게 사옥진이 한쪽을 가리켰다.
거대한 협곡 한쪽에 기이하게 생긴 바위가 마치 제단처럼 서 있었다.
진명은 사옥진을 다시 업고 서둘러 바위 앞으로 뛰어갔다.
“날… 이곳에 눕히거라. 그리고 저곳을 살펴보면… 여러 개의 옥병이 있을 것이다. 그중… 황색 옥병을 가져 오거라.”
사옥진이 가리킨 곳으로 가 보니 누군가 이전에 이곳에서 살았던 듯 협곡의 벽을 뚫어 여러 개의 방을 만들어 놓은 게 보였다. 그뿐 아니라 그 방 안에는 돌로 만든 탁자와 의자를 비롯한 여러 생필품들도 마련되어 있었다.
그중 사옥진이 가리킨 방으로 들어가 보니 과연 여러 개의 옥병이 보였다. 그중 황색 옥병은 모두 세 개였는데, 어떤 것을 가져가야 할지 몰라 그 모두를 들고 사옥진에게 달려갔다.
“황색 옥병이 세 개 있어서 모두 가져왔어요.”
진명이 말과 함께 옥병들을 내밀자 사옥진은 그중 하나를 가리켰다.
“그걸… 나에게 먹여다오…….”
사옥진은 말할 힘도 없는지 마지막 말은 잘 들리지도 않았다. 진명은 서둘러 옥병의 마개를 열었다.
옥병의 마개를 열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청아한 향이 협곡 안을 가득 채웠다. 마셔 보지 않았음에도 옥병 안의 액체가 엄청난 영약임을 알 수 있었다.
진명은 서둘러 옥병안의 약을 사옥진에게 먹였다.
약을 모두 마신 사옥진은 잠들듯 정신을 잃었다.
다행히 옥병 안의 약이 제대로 효과를 발했는지 사옥진의 안색이 조금씩 나아졌다.
사옥진의 상태가 나아지는 듯하자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진명은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대협객님은 분명 이전에 이곳에 와 본 적이 있는 게 틀림없어.”
기문진을 통과할 때부터 느꼈던 것이었다.
“도대체 이곳은 어디일까?”
눈앞에 펼쳐진 협곡은 참으로 괴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방을 깎아지른 듯한 협곡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그 중간에 계곡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하늘은 검은 천막으로 덮어 놓은 듯 별 조차 보이지 않았다.
더욱 괴이한 건 그 하늘 중앙에 연못이 마치 환상처럼 떠 있다는 것이다.
해도 달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협곡인데 허공에 떠 있는 연못의 빛으로 인해 주변이 충분히 밝았다.
마치 떠 있는 연못이 해나 달처럼 느껴졌다.
직접 몸으로 경험하고, 지금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이와 같은 상황이 믿기지가 않았다.
분명 누군가가 이곳의 광경을 이야기로 들려 주었다면 잠꼬대를 한다며 욕을 했을 것이다.
잠시 서서 주변을 둘러보던 진명은 협곡의 내부를 살펴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옥병을 찾았던 방으로 향했다.
분명 그곳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있었으니, 좀 더 살펴보면 이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옥병을 찾았던 곳을 살펴봤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수많은 약병과 환약들만이 어지러이 늘어져 있을 뿐, 이곳이 어디인지 알아볼 만한 단서는 없었다.
옥병을 찾았던 방에서 아무런 단서를 찾지 못한 진명은 그 옆에 있던 방으로 가 봤다. 그곳에서도 이렇다 할 단서는 찾지 못했지만 대신 몇 년을 먹어도 다 먹지 못할 정도로 엄청나게 쌓여 있는 벽곡단과 이름 모를 약초 뿌리들을 찾아냈다.
“이곳이 어딘진 모르겠지만 굶어 죽진 않겠구나.”
벽곡단 하나를 입에 물고 다음 방으로 향했다.
그곳엔 수많은 서책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무슨 책이 이렇게 많지?”
진명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책을 하나 집어 들었다.
겉장이 다 낡아 세월의 흔적이 잔뜩 묻어 있는 책이었다.
“백보신권(百步神拳).”
서책의 표지에 적힌 이름이었다.
“백보신권이라…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름인데?”
백보신권이란 이름을 분명 처음 듣는 게 아닌데, 연못을 통과한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았는지 머릿속에서 가물거릴 뿐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책을 펼쳐 보니 주먹을 내지르고 있는 사람의 그림과 함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잔뜩 적혀 있었다.
너무도 어려운 말이라 정확한 뜻은 알 수 없지만 이 책이 권법서임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아, 백보신권!”
그제야 생각이 났다.
분명 소림사(少林寺)의 권법 중 하나가 이런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왜 소림사의 무공서가 이곳에 있는 거지?”
자신이 들고 있는 백보신권이 소림사의 그 백보신권이 맞는지는 알 수 없지만, 소림사의 백보신권과 같은 이름을 가진 무공서가 이곳에 있다는게 황당했다.
진명은 바로 옆에 있는 책을 하나 더 꺼내 보았다.
“양의신공(兩儀神功).”
양의신공은 워낙 유명한 신공인지라 제목만 보고도 어느 문파의 것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이번엔 무당파의 신공인가?”
책을 펼쳐 보니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이 잔뜩 적혀 있었다.
진명은 그 외의 책들도 몇 권 꺼내 살펴봤는데, 처음 들어 보는 무공서도 있었고, 양의신공처럼 너무 유명해 강호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 본 적이 있는 무공서도 있었다.
그렇게 몇 권을 빼내 보던 진명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이곳에 있는 책들이 모두 엉터리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곳에 보관된 무공서가 모두 진본 또는 진본을 필사한 책이라면, 이 무공서의 주인들이 그동안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공서의 출처가 현 강호를 지탱하고 있는 구파일방을 비롯한 수많은 명문대파들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던 진명이 멈칫거렸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 경험했던 석벽과 연상연환진, 그리고 허공에 떠 있는 연못에 생각이 미쳤던 것이다.
이런 가짜 무공서들을 지키기 위해 그런 거대한 기관진식과 들어 본 적도 없는 괴이한 기문진 그리고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운 연못을 설치해 둘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침입자를 막기 위해 단단히 대비한 흔적이 역력하지 않은가.
게다가 사옥진은 거동조차 어려운 큰 부상을 입은 상태로 기를 쓰고 이곳까지 왔다.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진명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진명은 다시 무공서들을 꺼내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무공서가 진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일까?
그 안에 적혀 있는 글자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게 여겨졌다. 하지만 그뿐, 아무리 들여다봐도 도통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부분의 명문대파들이 그러하듯 분실할 경우를 대비해 온갖 비유와 은유로 적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권의 무공서를 더 꺼내 보았지만 역시나 그 뜻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거참, 쓸데없이 어려운 말로 적어 놨네.”
진명은 전면의 책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책들을 보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야말로 풍유 속의 빈곤이란 말이 딱 맞았다.
책을 도로 책장에 꽂아 넣은 후 바위에 누워 있는 사옥진을 바라봤다.
깊은 잠에 빠졌는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가슴에 미미한 기복을 보이지 않았다면 죽은 시체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대협객님이 깨어나시면 물어보기라도 할 텐데.”
사옥진이 있는 곳을 한 번 바라본 후 다음 책을 뽑아 들었다. 한데 다른 곳에 정신을 팔았던 터라 세권의 책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이크!”
놀란 진명이 떨어지는 책을 받아내려 했지만 한 발 늦고 말았다.
세 권의 책이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는 바닥으로 떨어져 순식간에 더러워졌다.
“젠장! 어째 되는 일이 하나도 없냐.”
바닥에 떨어진 책을 얼른 주워 들어 먼지를 털어 냈다.
책의 먼지를 털던 진명이 멈칫거렸다.
좀 전 책을 주워들 때 책장 아래로 미세한 틈이 있는 걸 보았던 것이다.
책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먼지를 털어 내지 않았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미세한 틈이었다.
허리를 숙여 책장 아래의 틈을 살폈다. 자세히 보니 세월의 흔적으로 만들어진 틈이 아니었다. 분명 무언가를 보관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틈이었다.
진명은 호기심에 틈 안으로 손을 넣어 보았다.
틈 안으로 손을 넣은 채 살펴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얼마간 틈 안을 더듬던 진명의 손끝에 무언가 살짝 닿는 게 있었다.
한데 너무 안쪽에 있어 잘 잡히지가 않았다.
진명은 틈에서 손을 뺀 후 주위를 살폈다.
안의 내용물을 꺼낼 만한 도구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얼마간 두리번거리는데, 벽곡단을 모아 두었던 방에 서 얇은 대나무를 봤던 기억이 났다.
서둘러 대나무를 찾아와 틈 안으로 밀어 넣었다. 틈이 너무 좁아 안의 물건을 빼내는 게 쉽지가 않았다.
일각의 시간이 지나서야 틈 안에서 내용물을 꺼낼 수 있었다.
진명이 찾아낸 내용물은 붉은 표지가 섬뜩한 한 권의 서책이었다.
책은 꽤나 오래전에 만들어졌는지 군데군데 삭아 있고 먼지가 잔뜩 덮여 있었다. 먼지를 털어 낸 후 제목을 확인하려 했는데 책 표지에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책장 아래 미세한 틈 속에서 찾아낸 제목이 없는 책.
진명은 왠지 모를 호기심에 서둘러 책을 펼쳐 봤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그 개 같은 새끼에게 맞아 죽었다.

잔뜩 기대하며 펼쳐든 책의 첫 구절이었다.
“뭐지?”
혹, 대단한 무공서가 아닐까 기대했는데, 무공서는 아닌 듯했다.
하지만 이전의 책들과 달리 진명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문장들로 적혀 있어 다음 구절을 읽어 나갔다.

그저 길을 지나다 어깨가 부딪혔단 이유만으로 아버지는 그 개자식에게 맞아 죽었다.
주변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 개자식이 두려워 아무도 나서지 못했다.
놈은 성내에서 가장 유명한 무가의 후계자였고, 아버진 일개 농부에 지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난 제발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손이 부르트도록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놈은 마치 어린아이가 노리개를 가지고 놀듯, 아버지를 때리고 또 때렸다.
흥분을 한 것일까?
처음엔 조소가 매달려 있던 얼굴이 어느새 붉게 물들었다.
아버지를 때리던 주먹에 한층 강한 힘이 더해졌다.
놈의 주먹질을 견디지 못한 아버지가 바닥에 쓰러졌다.
놈은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다, 괴이한 미소를 머금은 채 머리를 밟았다.
아버지의 머리가 마치 수박처럼 터져 나갔다.
시간이 정지하는 기분이 들었다.
머리가 터진 채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진 아버지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분함, 원통함 그리고 나에 대한 걱정으로 버무려진 듯한 눈빛이었다.
그 눈빛과 마주한 순간 내 머릿속의 무언가가 끊어졌다.
무공은 고사하고 또래에 비해 체격도 작은 내가 무공의 고수라 불리는 그놈에게 달려들었다.
겨우 열다섯밖에 되지 않는 소년이 강호의 고수를 상대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나 또한 아버지처럼 그놈에게 죽을 정도로 맞았지만 죽진 않았다. 그때 시장을 봐 오시던 어머니가 그 광경을 목격하시고 달려왔기 때문이다.
어머니…….
왜 그때 어머니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일까?
지금 생각해도 원통하고 원통할 뿐이다.
어머니는 아들을 살려달라고 놈에게 빌었다.
이성을 잃고 있던 난, 어머니가 놈의 바짓단을 붙든 그 한순간의 짧은 틈을 놓치지 않았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최대의 빠르기로 놈에게 달려가 힘껏 팔을 물었다.
분개한 놈의 주먹이 내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내 머리통도 아버지처럼 부서질 위기에 놓였다.
그때 어머니가 나를 감싸 안았다.
아들을 살려달라고 빌던 어머니께선 나 대신 그놈에게 맞아 돌아가셨다.
단지 길을 걷다 어깨가 부딪쳤단 이유만으로 내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렇게 길바닥의 개보다 못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