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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명가 1권(10화)
第三章 원우진공(4)


책을 읽던 진명이 고개를 들었다.
처음엔 이야기책인가 싶어 흥미롭게 읽었는데 자세히 보니 누군가의 일기 또는 회상록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부분이 물에 젖어 얼룩이 져 있는 걸로 보아 이야기책은 아님이 확실했다.
이런 책이 왜 책장 아래 틈 속에 숨겨져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내용이 심상치 않았기에 진지한 표정으로 다음 구절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죽고 다음은 내 차례였다.
흥분한 놈은 어린아이를 상대로 무공까지 사용했다. 하지만 나는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무림인이 시장 통에서 양민을 상대로 행패를 부린다는 신고를 받고 포두들이 달려왔던 것이다.
놈을 막으려다 두 명의 포두가 크게 다쳤다.
미친 말처럼 날뛰는 놈을 옆에 있던 놈의 수하들이 겨우 말렸다.
관의 사람을 죽인다면 아무리 그가 무림인이라도 죗값을 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놈은 포두들에게 끌려갔지만 아무런 죗값도 받지 않고 풀려났다. 어이없게도 놈은 내 아버지가 무공의 고수이고, 자신을 죽이기 위해 암습을 가한 것이라 주장했던 것이다. 후에 아버지의 신분이 일개 농민이고 무공을 배운 적이 없음이 밝혀졌지만, 가해자가 술에 잔뜩 취해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가 없는 상태에서 서로 시비가 오가다 일어난 사고로 처리됐다.
그로 인해 얼마의 벌금을 무는 것으로 모든 죄를 사면받았다.
평소 지부대인과 친분이 깊던 놈의 부친 입김이 작용한 탓이다. 부상당한 포두들도 일 년치 녹봉에 입을 닫았다.
세상에 어찌 이런 법이 있단 말인가!
술에 취해 맨 정신이 아닌 상태였기에 의도한 살인이 아니라니!
나의 공허한 외침을 들어줄 이는 세상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날 저녁 지니고 있던 모든 것을 팔아 대장간에서 제일 잘 드는 칼을 하나 샀다. 그리고 복수를 위해 놈의 집으로 몰래 숨어들었다.
부모님의 원수를 갚지 않곤 도저히 숨을 쉬며 살 수가 없어서였다. 하지만 칼 한 번 휘둘러 보지 못하고 놈의 수하들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놈은 내가 팔뚝을 물었던 일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렇잖아도 죽여 버리리라 마음먹고 있던 참인데, 마침 수하들이 나를 잡아 오자 게거품을 문 채 달려들었다.
그날 밤이 새도록 구타를 하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나를 지하에 가둔 채 고문을 가하기 시작했다.
놈은 인간이라 믿기 힘들 정도로 잔인한 성정을 지녔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타고난 잔인한 성정으로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로 인해 가문의 후계자 자리에서도 내쳐지고 말았다.
한데 놈은 자신이 후계자 자리에서 내쳐진 일이 나와 내 부모님 때문이라 믿는 듯했다.
그래서일까? 놈은 밀려난 후계자 자리를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나에게 가하는 고문에 흥분을 넘어 광란에 빠져들었다.
손과 발의 모든 근맥을 끊고 단전을 파괴했다.
머리 가죽을 벗기고 혀를 잘라 냈다.
손톱과 발톱은 물론, 치아까지 모두 뽑아냈다.
한데 두 눈만은 뽑지 않았다.
내 살이 갈리고 뼈가 부서지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라는 의미였다.
그런 고문을 가했음에도 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있자, 그때부터 자신의 무공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검법으로 살을 베고, 암기로 뼈를 부쉈다.
점혈법으로 사혈을 찔렀고, 독공으로 중독시켰다.
고문에 의한 고통은 당장이라도 죽여 달라고 놈에게 매달리고 싶을 정도였지만 나는 절대 놈에게 빌지도 매달리지도 않았다.
고문에 의한 고통보다 비명에 돌아가신 부모님의 원한이 더욱 컸기 때문이다.
내 끈질긴 생명력은 놈의 모진 고문을 일 년 가까이 버티게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런 고문을 받으면서 죽지 않고 버텼는지 신기할 정도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노인이 찾아왔다.
그는 지하에 갇혀 있는 나를 아주 묘한 눈으로 바라봤다.
두 눈을 제외한 신체 어느 부위도 멀쩡하지 않은 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게 신기하다는 표정이었다.
“네놈은 뭔데 그런 몰골을 하고도 아직 살아 있는 것이냐?”
처음 보는 노인의 물음에 답할 수가 없었다.
이미 내 혀는 모두 잘려 나갔기 때문이다.
잠시 나를 바라보던 노인은 내 몸 곳곳을 주물러대기 시작했다.
“허! 하늘이 내려준 천골이건만 도대체 왜 이런 꼴을 당하고 있는 것이냐?”
대답 대신 힘겹게 입을 벌려 잘린 혀를 보여 줬다.
그저 잘린 혀를 보여 주려 했을 뿐이데, 본의 아니게 치아가 모두 뽑혀 나간 내 입안까지 보여 주게 됐다.
노인은 나의 잘린 혀와 처참한 입안을 보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렇게 노인이 말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문 뒤쪽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리곤 한 무리의 무인들이 나타났다.
양친을 죽이고 나를 이 꼴로 만든 그놈이 수하들과 함께 나타난 것이다.
나의 양 눈에 광기에 가까운 살기가 어리자 노인은 매우 흥미로운 눈빛을 보였다.
“네놈도 이 가문에 원한이 있단 말이렸다? 잘되었구나. 쌀을 훔치러 왔다가 황금을 얻어 가게 됐어. 끌끌끌.”
노인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내뱉더니 갑자기 몸을 움직였다. 순식간에 내 몸을 속박하고 있던 갈고리들을 모두 분지른 후 나를 어깨에 들쳐 메고 달리기 시작했다.
놈과 놈의 수하들이 막아섰지만 노인은 무공의 고수인지 순식간에 놈들의 포위망을 뚫고 지하를 빠져나왔다.
노인의 어깨에 메어진 채 지하를 빠져나와 일 년 만에 하늘을 봤다.
비록 밤이라 푸른 하늘을 볼 수 없었지만 수많은 별이 떠 있는 그날의 하늘은 내 평생 결코 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시원한 바람과 습기 없는 공기가 나의 몸을 자유롭게 만들었다.
노인이 지하를 빠져나오자, 놈의 아비와 수백 명의 무인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노인은 그들을 피해 지붕 위로 뛰어오르더니 마치 날개라도 달린 것처럼 허공을 날아 그곳을 빠져나왔다.
어찌나 노인의 몸이 빨랐는지 놈들은 뒤쫓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게 놈들에게서 풀려난 나는 또 하나의 생을 얻게 되었다.
노인의 이름은 연사학.
나의 사부님이시자 생명의 은인이시다.
사부님은 나를 기이한 협곡으로 데려오셨다.
하늘의 달처럼 연못이 떠 있는 매우 괴이한 곳이다.

책을 읽던 진명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책에 적혀 있는 협곡이 바로 이곳이었기 때문이다.

사부님은 근맥이 잘린 내 몸을 치료하기 위해 온 강호를 돌아다니셨다. 듣도 보도 못한 짐승들을 잡아와 먹이고, 온몸에 삼백육십네 개의 대침을 박고 밤낮으로 내기를 불어 넣어 주셨다.
한때 의원이셨던 사부님은 육 년간의 치료로 완전하진 않지만 일어서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시켜 주셨다.
내가 어느 정도 걸음이라도 하게 되자, 사부님은 나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시겠다고 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정말 얼토당토 않는 말이라 생각했다. 내가 무공엔 문외한이지만 단전이 없는 몸으론 무공을 익힐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사부님은 평생 강호를 뒤져 구해 온 무공서 이천 권을 보여 주셨다.
“보이느냐? 내가 평생에 걸쳐 수집한 무공서들이다. 지난 육 년간 네 몸을 치료하면서 이 무공서들도 함께 연구했으니 나를 믿고 따라 오거라.”
사부님은 자신의 풍부한 의학 지식과 이천 권이 넘는 무공서들을 바탕으로 단전을 대체할 방법을 찾아내셨다고 했다. 그리곤 하나의 돌을 나에게 내밀었다.
돌의 이름은 적명석.
세상에 존재하는 돌 중 유일하게 천지간의 기운을 저장할 수 있는 돌이라고 했다.
사부님은 내 파괴된 단전에 적명석을 이식시켰다.
적명석을 단전 대용으로 사용하려는 이유에서였다.
적명석을 이식시킨 후 적응기를 가지는 동안 늘 사부님은 말씀하셨다.
“이건 임시방편일 뿐이니 반드시 무공을 대성해 전설이라 불리는 환골탈태(換骨脫胎)를 이뤄 내거라!”

진명은 적명석이란 이름이 왠지 낯설지 않다고 생각했다.
책은 그 후 저자가 사부의 무공을 익히는 부분으로 이어져 있었다.
무공을 익히는 부분이 상당히 섬세하게 묘사가 돼 있어, 앞으로 무공을 배워 가야 할 진명에게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사부님께선 임종 전 한 가지 부탁을 하셨다. 자신을 대신해 복수를 해달라는 것이다.
모용세가(慕容世家).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피가 거꾸로 솟아오를 것 같은 증오스러운 이름이다.
사부님 또한 나처럼 모용세가에 원한이 깊으셨다.
모용가주의 동생이 강호행 중 큰 부상을 입게 됐다.
당시 사부님은 의계에서 촉망받던 의원으로 상당한 명성을 쌓고 계셨다. 늦은 나이였지만 장가도 들어 어여쁜 색시와 토끼 같은 자식을 셋이나 낳고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계셨다.
그런 사부님의 의원에 모용가주가 동생의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방문했다.
모용가주의 동생이 입은 부상은 큰 부상이 아니었다.
약간의 내상과 오른쪽 허리에 긴 검상이 난 정도였다.
내상보단 옆구리의 검상이 심해 본가로 가지 못하고 인근에 소문난 사부님의 의원을 급히 찾은 것이었다. 한데 모용가주의 동생이 사부님께 치료를 받다 그만 반신불수가 되고 마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부님의 말씀에 의하면 치료는 완벽했다고 한다.
비록 자신이 신의라 불릴 정도는 아니지만, 장기가 상하지 않은 검상 정도는 눈 감고도 치료할 정도의 실력은 충분하다고 자부하셨다.
오히려 모용가주의 동생이 치료가 끝난 후,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은 상태로 여자를 탐하다 내상이 악화돼 반신불수가 된 것이라 했다.
분명 모용가주도 동생이 여자를 탐하다 내상이 악화돼 반신불수가 된 걸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동생의 그 같은 실수를 인정하게 되면 강호의 웃음거리가 됨은 물론 세가의 명성도 땅으로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의 사부님은 강호의 무림인들이 문파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어디까지 더러운 짓을 할 수 있는지 모르고 계셨다.
모용가주는 동생의 실수를 인정하긴 커녕 가문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사부님과 부인 그리고 세 자녀 모두를 죽여 입막음을 시도했다.
다행히 사부님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으셨지만, 부인과 세 자녀는 의원과 함께 불타 시체도 건사하지 못했다.
사부님은 그때의 충격으로 그만 정신을 놓고 말았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부님은 정처 없이 강호를 떠돌아 다니셨다. 목적도 없이 강호를 떠돈지 사 년.
거지꼴을 하고 돌아다니는 사부님을 눈여겨본 분이 있었다. 과거 한때 인연이 닿았던 고승이었다.
사부님은 그 고승의 도움으로 잃어 버린 정신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때 사부님의 나이 서른여섯이었다.
사부님은 정신을 수습한 후 그 고승에게 간청해 몇 가지 무공을 배우게 됐다. 고승은 사부님께 모든 걸 비우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 하셨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밤마다 꿈에서 아내와 아이들이 나타나는데 어찌 잊는단 말인가.
어느 정도 무공을 익힌 후 고승의 곁을 떠나 강호를 주유하며 무공을 훔쳐 익히기 시작하셨다.
오성이 뛰어났던 사부님은 남들보다 배는 빠른 성취를 이루셨지만, 너무 늦게 무공에 입문하신 터라 일정 이상의 경지를 넘어서지 못하셨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사부님의 세수 백 세가 훌쩍 넘은 어느 날, 모용세가에 정보를 캐러 왔다가 지하에 갇혀 있던 나를 발견하고 구해 주신 것이다.
물론 나의 신체가 무공을 익히는데 더 없이 뛰어난 것도 있었지만, 동병상련의 정을 느꼈던 것이 더 컸다.
사부님은 평생을 연구해 완성한 무이건천심공을 남기고 떠나셨다.
난 이곳 협곡에서 삼십 년간 수련에 매진해 마침내 무이건천심공 십이성을 이뤄냈다.
비록 사부님이 바라신 환골탈태는 이루지 못했지만, 사부님의 인생과 깨달음이 오롯이 담긴 무이건천심공을 대성했으니, 모용세가를 쓰러뜨리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 자부할 수 있다.
드디어 복수의 시간이 왔다.
나는 오늘 이곳을 떠나 모용세가에 혈채를 받으러 갈 것이다.

책의 저자가 복수를 하러 가면서 이야기는 끝이 나 있었다. 이야기는 끝이 났는데 책은 반 권 분량이 더 남아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뒷부분을 더 살펴봤다.

복수는 실패했다.
모용세가의 무공과 세력은 나와 사부님의 예상을 훨씬 넘어서고 있었다. 그래도 모용세가 전력의 칠 할이 무너졌으니 다시 일어서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아쉽지만 나의 대에선 더 이상 복수를 할 여력이 없다. 놈들의 합공으로 내 몸이 정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시 사부님의 말대로 환골탈태를 이룬 후 떠났어야 했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내 부모님의 원수 모용지를 죽였고, 나와 사부님의 유지를 이을 제자를 구했으니 말이다.
진아는 나를 넘어서는 천골의 신체와 사부님 못지않은 오성을 지니고 있다. 분명 무이건천심공을 익힌 후 나의 모든 깨달음을 담은 원우진공을 익힌다면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는 고수로 거듭날 것이다.

그 후 또다시 몇 장의 여백이 이어지다 새로운 기록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