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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또다시 하루가 가고 새로운 아침이 밝았다. 어제와 오늘, 크게 다르지 않은 하늘이었다.
그런 하늘이 어제완 달리 장밋빛으로 보였다. 하루아침에 세상이 달라졌다는 말이 무척 실감이 난다.
선우는 그 장밋빛 하늘 아래에서 일상으로 돌아왔다. 다시 인력 사무소에 출근했고, 예전처럼 막노동 일을 시작했다.
‘일은 해야지.’
마법을 두 가지나 얻었으면서 왜 막노동 하냐고 생각하는 사람 있을 거다. 능력을 키워도 모자랄 시간에 왜 굳이 막노동을 하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테다. 그런 사람에게 묻고 싶다. 능력은 땅 파면 나오는 돈으로 키우나.
거의 10일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관리비며 세금이며 낼 돈이 필요했다. 그런데 수중의 돈이 별로 없다.
남은 돈으로 근검절약하면 사실 근 한 달은 능력 키울 수 있지만 그 한 달 후에는? 또 그 이후에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인력 사무소 일을 다시 시작했다. 당장 일할 수 있는 곳이 그곳뿐이니까.
거의 10일을 무단으로 결근해서 그런 건지 오현무 소장은 매우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완 사뭇 달랐다.
“거의 10일만이네, 이선우 군.”
“죄송합니다. 소장님. 본의 아니게 결근하게 되었습니다.”
“죄송? 일용직 근로자가 10일 쉬는 게 뭐가 죄송할 일이야. 돈 벌기 싫으면 쉴 수도 있는 거지.”
“…….”
“그런데 왜 결근했어?”
선우는 오현무 소장의 물음을 듣고 어떻게 대답할까 고민했다.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어서였다. 그러나 변명할 만한 게 별로 떠오르지 않았다. 선우는 그리 거짓말이 능숙한 사람이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소장님. 소장님께 말씀드릴 수 없는 개인적인 일이 있었습니다.”
선우가 이유를 말하자 않자 오현무 소장의 목소리가 더욱 삐죽해졌다.
“그래? 알겠어. 개인적인 일이라면 묻지 않을게. 대신 현장으로 바로 나오지 말고 인력 사무소에 들렀다가 나와. 시간당 추가금액 2,000원은 없는 이야기니까 그런 줄 알고.”
“예, 알겠습니다.”
오현무 소장은 선우보다 앞서 어딘가로 걸었다. 선우는 묵묵히 오현무 소장을 따랐다.
오현무 소장이 안내한 곳은 벽돌이 산더미로 쌓여 있는 곳이었다. 몇 층에 날라야 하는지는 몰라도 혼자서는 절대 불가능해 보이는 양이었다.
“오늘 네가 할 일이야.”
선우는 그런데도 반발하거나 하지 않았다. 을이 갑인 그와 싸워서 뭐하겠는가? 쫓겨나거나 더 험한 일을 하게 하겠지.
선우는 불평하기 전에 물었다.
“몇 층으로 날라야 합니까?”
“10층.”
벽돌을 날라야 할 층은 10층이었다. 10층은 옥상에 해당하는 층이었다. 이 많은 벽돌을 혼자서 10층에 옮기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있다면 조금 낫겠지만, 이용할 수 없다면 이건 숫제 하다가 죽으라는 말이다.
선우는 내심 화가 났지만 참았다. 이번에도 묵묵히 말했다.
“엘리베이터 이용해도 됩니까?”
“아니, 안 돼.”
“왜 안 됩니까?”
“오늘 작업용 엘리베이터 쓸 일이 많아. 옮겨야 할 자재가 이것뿐만이 아니고.”
“지게에 벽돌 올리고 서서 탈 건데요? 제가 시간과 공간을 잡아먹으면 얼마나 잡아먹겠습니까?”
“그래도 안 돼. 그러니 계단으로 날라. 알아들었어?”
오현무 소장은 10일 무단결근했다고 선우를 죽이려 했다. 믿음을 배신했다고 생각하는지 일하다 뒤지라는 말을 순화해서 말했다.
선우는 순간 때려 치고 갈까 고민했다. 예전이라면 대안이 없기에 꾸역꾸역했을 테지만 지금은 다른 대안이 있었다.
‘이참에 그냥 마법 공연이나 할까?’
마법을 공연하면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다. 마법이라는 건 오직 선우만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블링크라는 마법은 공연하기 딱 좋은 마법이다.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가 뒤편에 나타나면 짠돌이 스크루지의 굳게 닫힌 지갑도 열릴 것이다.
선우는 잠시 그에 대해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신중히 해야 해.’
섣불리 힘을 보였다가는 국가 기관에 잡혀갈 수도 있다. 자신은 인맥도 없고 고아이기에 잡혀가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을 것이다. 잡혀가서 생체 실험 당하게 되면 어떻게 하나? 현대의 마법사, 생체 실험하기 딱 좋은 소재 아닌가? 어쩌면 북 드림 시스템을 몸에서 떼어내기 위해 팔을 절단해 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세상이 요즘 세상이지 않은가.
선우는 일단 생각난 대안을 머리에서 지웠다. 입술을 씹으며 대답했다.
“예.”
“그럼 수고.”
선우가 대답하자 오현무 소장은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떠나갔다. 득의에 찬 미소를 보여주기 위해서인지 연신 뒤돌아본다.
선우는 그를 외면한 채 산더미 같이 쌓인 벽돌을 본다. 그러다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빌어먹을…….’
일단 한 번 옮겨보기로 했다. 한쪽에 비치된 청록색 지게에 벽돌을 딱 정량만 실었다.
첫 번째 등반이었다. 무리해서 탈나면 큰일이다.
선우는 벽돌을 메고 계단으로 갔다. 콘크리트의 딱딱한 계단을 밟고 올랐다.
“헉… 헉… 헉…….”
10층까지 꾸역꾸역 올랐다. 보물을 얻고 난 후 급격히 높아진 체력, 그 체력만 믿었다. 그러나 그 체력으로도 10층까지 벽돌을 메고 오르는 일은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선우는 고군분투 끝에 10층에 도착했다. 10층까지 오르는데 약 20분 정도 걸린 것 같았다.
‘이걸 언제 다 해?’
선우는 절망한 채 가져온 벽돌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천천히 1층으로 다시 내려갔다.
“하…….”

선우는 계속해서 벽돌을 날랐다. 점심시간인 12시까지 지게에 벽돌을 가득 실고 10층을 오르내렸다. 그렇게 열심히 일했음에도 반의반도 못 옮겼다. 티도 안 날 지경이었다.
선우는 터덜터덜 걸어 급식소로 갔다. 줄을 서 기다리다가 급식소에서 밥을 먹었다.
꿀꺽.
밥은 먹을 만했다. 선우는 꾸역꾸역 입안에 밥을 집어넣었다. 그러면서 근본적인 대책을 생각했다. 그러다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두 가지 쓸 수 있는 마법 중 하나인 블링크.
‘그거라면?’
선우는 빠르게 식사를 마무리했다. 식후에 커피를 한 잔 하는 대신 벽돌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주위를 한 번 살핀 선우는 라라에게 물었다.
“라라, 들려?”
라라는 곧장 대답했다. 라라는 선우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있다.
[예, 들립니다. 말씀하십시오.]
“이 벽돌들 전부 들고 블링크할 수 있어?”
[예, 할 수 있습니다.]
“몇 층까지 올라갈 수 있어?”
[최대 2층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최대 2층? 내 전 마력을 쓰고도?”
[예, 그렇습니다.]
“너무 적은 것 아니야? 미터로 따지면 얼마 되지 않잖아. 겨우 제자리 점프하는 수준보다 조금 더 오르는 거라고.”
[이것도 벽돌이 무생물이기에 가능한 수치입니다. 벽돌이 아닌 생물, 예를 들면 동 무게의 사람일 경우 보유하신 마력으로는 1m도 채 올라갈 수 없을 겁니다. 어쩌면 1m도 올라가지 못 할 테고요.]
“아, 그래? 하… 알았어. 그런데 무생물이랑 생물이랑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거야? 무게는 같잖아?”
[무생물은 이동 후의 안전을 고려할 이유가 없지만, 생물은 이동 후의 안전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동한 공간 안에 이물질이 들어올 경우 무생물은 겹쳐지거나 튕겨나가도 큰 무리가 없지만 생물은 그게 아니잖습니까?]
공간이동 마법은 정말 위험한 마법이다. 마법 계열 중 가장 위험한 계열이 공간 계열 마법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성능에 비해 마력이 많이 소모된다. 과도한 마력을 사용함으로써 안전성을 높인 것이다.
선우는 본의 아니게 공간이동 마법의 위험성을 배웠다. 공간이동 마법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내 잊는다. 공간이동 마법에 대해 고찰하고자 라라에게 물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 벽돌의 양을 반으로 줄이면 4층까지 갈 수 있어?”
[3층까지 갈 수 있습니다.]
“3층? 왜? 무게가 반으로 줄었으면 그 두 배만큼 거리를 가야 하잖아?”
[3층이 그 두 배만큼 간 거리입니다. 1 곱하기 2는 2잖습니까. 3이 아니고.]
“아… 그렇지, 맞아. 그럼 반의반은 5층인가?”
[예.]
선우는 벽돌의 반의반을 들고 5층까지 블링크 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머지 5층은 마력이 다시 찰 때까지 수동으로 옮길 생각을 했다.
선우는 아직 휴식시간이 끝난 것이 아님에도 블링크를 사용할 준비를 했다. 주위에 사람이 있나 없나 확인한 다음 쌓여 있던 벽돌 14 분량과 함께 블링크했다.
“블링크!”
선우의 몸이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쌓여 있던 벽돌 중 14도 동시에 자취를 감췄다. 그 둘은 5층의 한 구역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창가 근처로 선우의 시야에 들어오던 곳이다.
뿅!
선우는 5층에서 한동안 쉬었다. 점심시간이 지나갈 때까지 소화도 시키고 체력도 보충했다.
선우는 점심시간이 지난 1시부터 일을 다시 시작했다. 마나가 가득 찰 때마다 블링크를 썼다.

‘…34 정도는 올린 건가?’
끝나는 시간인 오후 6시까지 일련의 과정을 반복했다. 그 결과 쌓인 벽돌의 34을 10층 옥상에 올리는 쾌거를 이룩했다. 마법의 도움이 없었다면 반도 못했을 것이다. 사람은 역시 머리를 써야 한다.
오후 6시가 지나자 선우가 있는 곳으로 오현무 소장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오현무 소장은 은근슬쩍 선우의 얼굴을 살핀다.
죽을상이라도 짓길 바라는 건가?
선우는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을 지었다. 오현무 소장은 짜증난다는 얼굴을 했다.
“다 했어?”
“아니요. 다는 못 했습니다.”
“반도 못한 건 아니겠지? 반도 못했으면 농땡이 피운 거야.”
“반 이상은 했습니다.”
“그래?”
오현무 소장은 곧장 벽돌의 개수를 확인했다. 그답지 않게 정석으로 수를 샜다.
“어?”
선우의 말대로 이곳 1층에는 벽돌이 12 이하로 남아 있었다. 정확하게 계산하면 14만큼 있다고 할 수 있다. 오현무 소장은 벽돌의 수를 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벽돌… 10층에 올리지 않고 어딘가에 짱박았어?”
오현무 소장은 공사 현장에서만 20년 넘게 일한 사람이다. 공사 현장의 일은 딱 보면 견적이 나올 정도였다.
오현무 소장은 선우가 할 수 있는 최대치가 12이라 생각했다. 12만 해도 잘했다 칭찬해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34를 옮겼다니… 이곳에 남아 있는 벽돌은 고작 14에 불과하다.
선우가 많이 옮겨도 너무 많이 옮겼다. 부자연스러울 정도다. 오현무 소장이 의심하자 선우는 순간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아니요, 10층에 모두 옮겨놨습니다.”
“나 몰래 엘리베이터를 사용했나? 내가 분명 엘리베이터 쓰지 말라고 했을 텐데.”
“아닙니다. 계단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럼 어떻게 34이나 옮겼지? 12만 옮겨도 많이 옮긴 건데…….”
“많이 옮겨도 문제가 됩니까?”
선우는 당당했다. 마법을 쓴 게 잘못은 아니지 않는가? 마법도 선우의 능력이다. 불법이 아니다.
선우의 이런 당당함에 오현무 소장은 도리어 움츠려 들었다.
“그냥 궁금해서.”
선우는 쐐기를 박았다. 강하게 말했다.
“쉬지 않고 옮겼습니다. 화장실 갈 시간도 아껴 옮기고 또 옮겼습니다. 이 정도로는 설명이 부족합니까? 더 설명 드려야 합니까?”
“설명은 됐네. 그걸로 충분하네. 정말 수고했어. 의심해서 미안하고.”
“……….”
“퇴근해야지? 가세.”

인력 사무소에서 하루치 급여를 받고 나왔다. 수수료 제외한 금액을 들고 집으로 향했다.
선우는 그러다 우연히 보게 되었다. 횡당보도 앞에 있던 편의점 안을.
‘책을 읽을 수 있네.’
편의점 안 아르바이트생은 현재 책을 읽고 있었다. 인상을 찌푸린 채 몰두하는 표정을 보니 아주 정독하는 것 같다.
선우는 오늘 자신과 저 아르바이트생을 비교했다.
‘돈은 인력 사무소 쪽이 더 많아. 그런데…….’
비교하면 비교할수록 이건 아니다. 돈이면 돈, 시간이면 시간. 뭐 하나 인력 사무소가 월등히 나은 게 없다. 유일하게 있다면 고된 노동으로 인한 체력 증진인데… 글쎄다, 효율을 따지면 거지일 것 같다.
보물을 얻기 전이었다면 몰라도 지금의 인력 사무소 일은 전혀 메리트 없었다. 보물을 얻기 전엔 인력 사무소 일을 하며 건축 기술자의 눈에 띄는 게 목표였지만 보물을 얻었기에 그 목표도 전부 백지화되었다.
선우는 책방에서 책을 빌린 다음 집에 돌아왔다. 씻고 책을 읽으면서 고민했다.
‘당장 내일부터 출근하지 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