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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선우는 당장 다음 날부터 인력 사무소로 출근하지 않았다. 보물을 얻음으로써 인생 계획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출근을 하지 않은 것이지 한 시간은 인력 사무소에 할애했다. 쌓인 정이 있는데 이대로 말없이 그만두는 건 아닌 것 같아서였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2년간 다녔던 인력사무소에 인사를 마치고 나온 선우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 PC방으로 향하다가 멈칫했다.
‘소장님께 사과하자.’
어제는 그렇게 대하셨지만, 그전에는 정말 잘 대해주셨다. 어제는 분명 화가 나셔서 그랬던 것일 거다.
사실 내 대처도 조금 그랬다. 그렇게 행동하고 말하는 게 아니었는데…….
선우는 그 길로 빌딩 공사장에 갔다. 일하고 계신 오현무 소장님께 다가갔다.
“소장님.”
오현무 소장은 어제보다 더 표정이 없었다. 어제 크게 정이 떨어지신 것 같다. 선우는 다짜고짜 허리를 숙이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선우가 갑자기 사과하자 오현무 소장은 물끄러미 선우를 보며 말했다.
“…뭐가?”
“호의를 베풀어주셨는데, 그 호의를 믿음으로 보답해 드리지 못한 것에 대해 정말 죄송합니다.”
“…10일, 도대체 왜 결근한 거야?”
“무단결근한 10일 동안 제 인생을 완전히 바꿀 만한 일이 있었습니다. 사정을 정확히 말씀드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소장님께서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이곳 일은 그만둘 거야?”
“그 길로 나아갈까 합니다.”
“…그럼 이게 마지막으로 보는 게 되는 건가?”
“예, 아마도 그리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우야.”
“예, 소장님.”
“그 길은 이쪽 일보다는 훨씬 돈이 되는 일이지?”
“예, 아마도 그럴 겁니다.”
“그럼 꼭 붙잡아라. 어떻게 해서든. 그리고 성공해. 다시는 이 바닥으로 오지 말고.”
“감사합니다.”
“그럼 가 봐. 수고했어. 어제 그 일은 미안하고.”
“아닙니다. 제가 잘못한 건데요. 수고하십시오, 소장님.”
선우는 정중히 인사하고 돌아섰다. 현장 소장은 다시 일에 집중했다.
선우는 공사장에서 벗어나 인근 PC방으로 갔다. 인사를 모두 끝냈으니 편의점 알바를 구할 차례였다.
인근 PC방에서 편의점 알바 자리를 쭉 검색한 다음 알바 면접을 보러 다녔다. 인근에 위치한 편의점을 시작으로 연이어 면접을 봤다.
“아르바이트 하고 싶다고?”
“예.”
“편의점 일해 본 적 있어?”
“하루만 시간 내 가르쳐 주시면 배워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가르쳐 주는 건 어렵지 않은데… 혼자 사나 봐?”
“예.”
아르바이트도 이력서가 필요했다. 선우의 이력서에는 당연히 선우가 중졸이라는 것과 고아라는 것이 적혀 있었다.
“음… 미안하네, 이선우 군.”
업주들은 선우의 인상은 매우 마음에 들어 했지만, 고아 출신에 중졸이라는 건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편의점 일에 그런 것은 필요 없는데도 불구하고.
덕분에 계속해서 면접에서 떨어졌다. 고아, 중졸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선입견이 그의 발목을 제대로 잡았다. 하지만 선우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 정도 고난으로 포기할 만큼 정신이 나약하지 않았다.
“다음 면접 볼 곳이…….”
선우는 계속해서 돌아다니며 편의점 아르바이트 면접을 봤다. 편의점에서 들어갈 땐 늘 웃는 낯으로, 편의점을 나올 때는 늘 시무룩한 얼굴을 했다.
그러다 결국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뽑히게 되었다. 집과는 거리가 조금 되는 곳에 위치한, 젊은 여사장님이 운영하는 편의점이었다.
“해봐.”
“정말요?”
“그래.”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선우는 면접 합격과 동시에 3시간 동안 교육을 받았다. 편의점 일은 처음이기에 정말 성심성의껏 교육을 받았다.
“아, 그렇게 하면 되는군요.”
“쉽지?”
여사장과 편의점 일을 하면서 다양한 얘기를 나눴다. 여사장의 이름은 나영희로 30대 초중반의 나이에 아직 미혼이었다.
나영희 사장은 전형적인 수다쟁이이었다. 오늘 처음 본 선우에게 별걸 다 말했다.
“나는 말이야, 이 나이 먹도록 제대로 연애를 못해봤어.”
“정말요?”
“그래. 우리 아빠가 여자는 집에 조신하게 있어야 한다는 주의였거든.”
“아…….”
“내가 이 편의점을 왜 운영하고 있는 줄 알아?”
“그, 글쎄요……?”
“편의점은 24시간 운영해야 하거든. 계약서를 쓸 때부터 나와 있는 조항이지. 난 그게 마음에 들어서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는 거야. 이 편의점을 운영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 지긋지긋한 10시 통금이 사라졌거든.”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영희 사장은 전형적인 금수저였다. 아버지가 금융업 종사자로 대단히 많은 돈을 벌고 있단다. 그녀가 편의점을 운영하는 이유는 적당한 명함이 필요해서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래서 선우를 뽑은 모양이다. 고아 출신에 중졸임에도 불구하고.
“그럼, 내일 저녁에 봐. 첫날이니까 1시간 전에 출근하는 것 잊지 말고.”
“예.”
선우는 그렇게 교육을 받고 편의점에서 나왔다. 내일 저녁부터 출근하기로 했기에 내일 저녁까지는 휴식이었다.
선우는 시간이 늦었기에 다른 걸 하는 대신 까치책방으로 갔다. 그리고 그곳 책방에서 책을 빌렸다.
그가 이번에 빌린 책들은 모두 무협 소설이었다.
‘판타지 200권 읽느니 무협 100권, 퓨전 100권을 먼저 읽어야지.’
판타지 세계에 한 번 갔다 왔다고 읽어야 할 판타지 소설의 개수가 두 배로 늘어났다. 그동안 책을 많이 읽어 책 읽는 속도가 다소 빨라졌지만 속독가가 된 건 아니었다.
몇 달 동안 200권의 책을 읽고 한 번 판타지 세상에 갔다 오는 것보단 100권짜리 두 번을 읽고 다른 세상에 두 번을 갔다 오는 게 나아보였다. 거기다 판타지 소설만 주구장창 읽다보니 그 내용이 다 그 내용 같았다. 같은 장르의 소설로부터 오는 피로감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래서 무협 소설을 빌렸다. 100권 다 채운 다음 바로 무협 세상에 갔다 오고 그 다음엔 퓨전 소설로 넘어갈 생각이었다.
선우는 3권의 책을 빌려 집으로 갔다. 저녁 내내 빌린 책을 읽었다.
다음날이 되었다. 선우는 아침 일찍부터 움직였다.
선우는 근처 PC방으로 갔다. 2시간 이용료를 내고 컴퓨터를 켰다.
‘길거리 마술.’
인터넷을 통해 길거리 마술 공연에 대한 자료를 찾았다. 편의점 일과는 별도로 마술 공연을 해볼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유투브에 길거리 마술 공연 영상이 몇 개 있었다. 그것들을 전부 시청했다.
[오늘 보여 드릴 마술은 트럼프 마술입니다.]
…….
[이번 마술은 동전 마술입니다.]
동영상 속 길거리 마술은 정말 별거 없었다. 고작 하는 게 카드 마술, 동전 마술, 간단한 도구를 이용한 마술이었다. 이들의 마술에 비하면 선우의 마술은 마법이었다. 애초에 마법으로 하는 마술이니 뭐…….
문제는 마술을 한 번 공연하면 1시간 정도 해야 한다는 거다. 똑같은 레퍼토리의 마술은 사람들이 금방 흥미를 잃는다는 것도 문제였다. 게다가 페이는 명성에 비례했다. 유명한 마술사는 돈을 긁어모으지만 유명하지 않은 마술사는 돈을 벌지 못했다.
명성을 올리려면 꾸준히 공연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선우는 꾸준히 공연할 수 없다. 거기다가 할 줄 아는 마법은 두 가지밖에 없고.
선우는 계속해서 고민하며 동영상을 보았다. 그러다 한 유투버가 올린 메시지를 보게 되었다.
[제가 다음 마술을 준비하는 10분 동안 바람잡이 겸 마술 공연을 해주실 분 구합니다. 010―XXXX―XXXX 최현우.]
그 유투버는 같이 공연을 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 10분, 딱 10분을 책임져 줄 마술사를 찾고 있었다.
10분짜리 공연. 보통의 마술사들은 꺼려하는 조건일 거다. 다들 메인이 되고 싶을 테니까. 그러나 선우는 다르다. 선우는 메인이 되고픈 생각 전혀 없다.
선우는 옳다구나 하는 표정으로 그 번호를 메모지에 적었다. PC방에 있는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델렐렐레 델렐렐레.
신호음이 몇 번 가고 한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그는 약간 지친 듯한 목소리였다. 선우는 입을 열었다.
“유투브에 마술 동영상 올리신 최현우 마술사이신가요?”
“예, 제가 마술 동영상을 올린 최현우입니다. 공연 문의 차 전화주신 겁니까?”
“공연 문의는 아니고, 10분 책임져 줄 마술사는 구하셨나 해서 전화 드렸습니다.”
“아, 마술사세요? 파트타임 마술사 분은 아직 구하지 못했습니다. 저와 같이 일해 보시게요?”
“정식 마술사는 아니지만 저만 할 수 있는 마술이 있는 사람입니다. 10분 정도는 확실히 책임져 드릴 수 있습니다.”
“음… 그래도 어느 정도의 마술을 하시는지 확인이 필요한데, 시간 언제쯤 되세요? 저는 되도록 빠를수록 좋은데요.”
“그럼 내일 어떠십니까?”
“내일이요? 내일은 오전만 가능합니다. 제가 오후에 공연이 있어서요. 오전에 가능하세요?”
오늘 저녁부터 하게 될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내일 오전 9시에 끝난다. 그가 말하는 오전이 이른 아침은 아닐 테니 가능할 것도 같다.
선우는 오전 중 가능한 시간을 말했다.
“서울에서 만나는 것이라면 오전 10시에서 12시 사이로 가능합니다.”
“당연히 서울에서 만나야죠. 그럼 오전 11시에 이대에서 만날까요?”
“이대면 이화여대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예, 이대 앞 XSA카페에서 내일 오전 11시에 만나도록 하죠. 가능하시죠?”
“예, 가능합니다. 그럼 11시에 뵙죠.”
약속을 잡은 선우는 전화를 끊으려 했다. 그때, 다급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만요!”
“예?”
“휴대 전화번호는 어떻게 되세요? 이 번호는 휴대전화 번호가 아닌 것 같은데.”
선우는 휴대전화가 없었다. 통화할 친구가 없고 기본료 내는 것도 아까워서 부서진 이후 다시 구매하지 않았다. 선우는 난감한 얼굴을 하며 말했다.
“아, 전화번호요. 꼭 말씀드려야 하나요? 제가 휴대폰이 없어서요.”
“음…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장난전화 거신 건 아니시죠?”
“장난전화 절대 아닙니다. 믿어주세요.”
“그럼 믿고 나가겠습니다. 내일 뵙지요.”
***
30대 초반, 둥글둥글한 안경을 쓴 평범한 외모의 김한석은 시나리오 작가다. 두 편의 영화를 연타석으로 흥행시킨 스타 작가다.
그는 한 달 전 문화체육부로부터 시나리오 의뢰를 받았다. 한 편의 시나리오를 써주는 대가로 받은 금액이 한화 1억이었다.
김한석은 그 의뢰를 곧장 수락했다. 정부 부처의 1억짜리 의뢰를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김한석은 그 의뢰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노트북을 보다 머리를 긁적였다.
“외계인의 침공이 소재면 스펙타클해야 하는데…….”
문화체육부는 외계인의 침공에 대한 이야기로 시나리오를 써 달라 했다. 그런데 그 주인공으로 특출 난 게 전혀 없는 평범한 시민을 써 달라 했다. 거기다 갖가지 추가 사항이 있었다. 이 추가 사항을 시나리오에 모두 다 넣다 보면 이건 숫제 외계인이 소재인 게 의심스러운 재난 영화다. 아니, 외계인으로부터 대피하는 영화라고나 할까?
김한석은 그 때문에 좀체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두 달 내로 써주겠다 약속하고 계약했는데 반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작업실로 한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끼익.
그는 멋들어지게 턱수염을 기르고 있고 파란색 옷을 입고 있었다. 김한석의 시나리오들 중 두 편을 영화화하여 스타 영화감독 자리에 오른 전직 드라마 감독 출신, 이영환 감독이다.
김한석은 시나리오를 쓰다 말고 이영환 감독을 반겼다.
“오셨어요?”
“문화체육부로부터 받은 시나리오 의뢰는 잘 되가?”
“그저 그래요. 문화체육부에서 원하는 대로 써주면 이건 숫제 망조 든 시나리오거든요. 뭔 재미로 볼까 싶은… 영화로 제작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그런 시나리오요.”
“그래도 최대한 재미있게 써 봐. 한석이 자네는 스타 작가잖아.”
“그러려고 하는데… 참,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세요? 충무로에서 가장 바쁘신 분이.”
“자네 도움을 좀 받으려 왔어.”
“제 도움이요?”
“오늘 KBS에 갔다 왔거든?”
“예, 그런데요?”
“KBS 드라마 국장이 나한테 프라임 시간대 드라마를 맡아 달래.”
채널이 100개 이상으로 늘어나면서 공영 방송의 입지가 많이 줄어들었다. 한때는 60%까지 나오던 드라마 시청률도 이제는 20%만 나와도 대박 드라마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런데도 공영 방송의 프라임 시간대 드라마 감독이라는 직위는 대단하다.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스타 감독에게도 충분히 축하할 만한 일이었다. 김한석은 그래서 이영환 감독에게 축하 인사를 했다.
“정말요? 와, 축하드립니다, 감독님.”
그런데 축하를 받아야 할 이영환의 표정이 썩어 있었다.
“그래… 고맙다.”
김한석은 그것을 즉시 캐치했다.
“그런데 무슨 일 있으세요? 프라임 시간대 편성 드라마 감독 제안을 받은 사람치곤 표정이 조금 그러신데…….”
“…KBS 드라마 국장이 제안한 드라마, 그 드라마의 주인공도 외계인이야.”
“예? 그쪽도 외계인이에요?
“그래, 이 새끼들이 단체로 외계인 뽕을 맞았나. 아주 환장하겠다.”
“드라마까지 외계인이라 그것 참…….”
선우는 당장 다음 날부터 인력 사무소로 출근하지 않았다. 보물을 얻음으로써 인생 계획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출근을 하지 않은 것이지 한 시간은 인력 사무소에 할애했다. 쌓인 정이 있는데 이대로 말없이 그만두는 건 아닌 것 같아서였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2년간 다녔던 인력사무소에 인사를 마치고 나온 선우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 PC방으로 향하다가 멈칫했다.
‘소장님께 사과하자.’
어제는 그렇게 대하셨지만, 그전에는 정말 잘 대해주셨다. 어제는 분명 화가 나셔서 그랬던 것일 거다.
사실 내 대처도 조금 그랬다. 그렇게 행동하고 말하는 게 아니었는데…….
선우는 그 길로 빌딩 공사장에 갔다. 일하고 계신 오현무 소장님께 다가갔다.
“소장님.”
오현무 소장은 어제보다 더 표정이 없었다. 어제 크게 정이 떨어지신 것 같다. 선우는 다짜고짜 허리를 숙이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선우가 갑자기 사과하자 오현무 소장은 물끄러미 선우를 보며 말했다.
“…뭐가?”
“호의를 베풀어주셨는데, 그 호의를 믿음으로 보답해 드리지 못한 것에 대해 정말 죄송합니다.”
“…10일, 도대체 왜 결근한 거야?”
“무단결근한 10일 동안 제 인생을 완전히 바꿀 만한 일이 있었습니다. 사정을 정확히 말씀드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소장님께서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이곳 일은 그만둘 거야?”
“그 길로 나아갈까 합니다.”
“…그럼 이게 마지막으로 보는 게 되는 건가?”
“예, 아마도 그리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우야.”
“예, 소장님.”
“그 길은 이쪽 일보다는 훨씬 돈이 되는 일이지?”
“예, 아마도 그럴 겁니다.”
“그럼 꼭 붙잡아라. 어떻게 해서든. 그리고 성공해. 다시는 이 바닥으로 오지 말고.”
“감사합니다.”
“그럼 가 봐. 수고했어. 어제 그 일은 미안하고.”
“아닙니다. 제가 잘못한 건데요. 수고하십시오, 소장님.”
선우는 정중히 인사하고 돌아섰다. 현장 소장은 다시 일에 집중했다.
선우는 공사장에서 벗어나 인근 PC방으로 갔다. 인사를 모두 끝냈으니 편의점 알바를 구할 차례였다.
인근 PC방에서 편의점 알바 자리를 쭉 검색한 다음 알바 면접을 보러 다녔다. 인근에 위치한 편의점을 시작으로 연이어 면접을 봤다.
“아르바이트 하고 싶다고?”
“예.”
“편의점 일해 본 적 있어?”
“하루만 시간 내 가르쳐 주시면 배워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가르쳐 주는 건 어렵지 않은데… 혼자 사나 봐?”
“예.”
아르바이트도 이력서가 필요했다. 선우의 이력서에는 당연히 선우가 중졸이라는 것과 고아라는 것이 적혀 있었다.
“음… 미안하네, 이선우 군.”
업주들은 선우의 인상은 매우 마음에 들어 했지만, 고아 출신에 중졸이라는 건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편의점 일에 그런 것은 필요 없는데도 불구하고.
덕분에 계속해서 면접에서 떨어졌다. 고아, 중졸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선입견이 그의 발목을 제대로 잡았다. 하지만 선우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 정도 고난으로 포기할 만큼 정신이 나약하지 않았다.
“다음 면접 볼 곳이…….”
선우는 계속해서 돌아다니며 편의점 아르바이트 면접을 봤다. 편의점에서 들어갈 땐 늘 웃는 낯으로, 편의점을 나올 때는 늘 시무룩한 얼굴을 했다.
그러다 결국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뽑히게 되었다. 집과는 거리가 조금 되는 곳에 위치한, 젊은 여사장님이 운영하는 편의점이었다.
“해봐.”
“정말요?”
“그래.”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선우는 면접 합격과 동시에 3시간 동안 교육을 받았다. 편의점 일은 처음이기에 정말 성심성의껏 교육을 받았다.
“아, 그렇게 하면 되는군요.”
“쉽지?”
여사장과 편의점 일을 하면서 다양한 얘기를 나눴다. 여사장의 이름은 나영희로 30대 초중반의 나이에 아직 미혼이었다.
나영희 사장은 전형적인 수다쟁이이었다. 오늘 처음 본 선우에게 별걸 다 말했다.
“나는 말이야, 이 나이 먹도록 제대로 연애를 못해봤어.”
“정말요?”
“그래. 우리 아빠가 여자는 집에 조신하게 있어야 한다는 주의였거든.”
“아…….”
“내가 이 편의점을 왜 운영하고 있는 줄 알아?”
“그, 글쎄요……?”
“편의점은 24시간 운영해야 하거든. 계약서를 쓸 때부터 나와 있는 조항이지. 난 그게 마음에 들어서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는 거야. 이 편의점을 운영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 지긋지긋한 10시 통금이 사라졌거든.”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영희 사장은 전형적인 금수저였다. 아버지가 금융업 종사자로 대단히 많은 돈을 벌고 있단다. 그녀가 편의점을 운영하는 이유는 적당한 명함이 필요해서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래서 선우를 뽑은 모양이다. 고아 출신에 중졸임에도 불구하고.
“그럼, 내일 저녁에 봐. 첫날이니까 1시간 전에 출근하는 것 잊지 말고.”
“예.”
선우는 그렇게 교육을 받고 편의점에서 나왔다. 내일 저녁부터 출근하기로 했기에 내일 저녁까지는 휴식이었다.
선우는 시간이 늦었기에 다른 걸 하는 대신 까치책방으로 갔다. 그리고 그곳 책방에서 책을 빌렸다.
그가 이번에 빌린 책들은 모두 무협 소설이었다.
‘판타지 200권 읽느니 무협 100권, 퓨전 100권을 먼저 읽어야지.’
판타지 세계에 한 번 갔다 왔다고 읽어야 할 판타지 소설의 개수가 두 배로 늘어났다. 그동안 책을 많이 읽어 책 읽는 속도가 다소 빨라졌지만 속독가가 된 건 아니었다.
몇 달 동안 200권의 책을 읽고 한 번 판타지 세상에 갔다 오는 것보단 100권짜리 두 번을 읽고 다른 세상에 두 번을 갔다 오는 게 나아보였다. 거기다 판타지 소설만 주구장창 읽다보니 그 내용이 다 그 내용 같았다. 같은 장르의 소설로부터 오는 피로감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래서 무협 소설을 빌렸다. 100권 다 채운 다음 바로 무협 세상에 갔다 오고 그 다음엔 퓨전 소설로 넘어갈 생각이었다.
선우는 3권의 책을 빌려 집으로 갔다. 저녁 내내 빌린 책을 읽었다.
다음날이 되었다. 선우는 아침 일찍부터 움직였다.
선우는 근처 PC방으로 갔다. 2시간 이용료를 내고 컴퓨터를 켰다.
‘길거리 마술.’
인터넷을 통해 길거리 마술 공연에 대한 자료를 찾았다. 편의점 일과는 별도로 마술 공연을 해볼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유투브에 길거리 마술 공연 영상이 몇 개 있었다. 그것들을 전부 시청했다.
[오늘 보여 드릴 마술은 트럼프 마술입니다.]
…….
[이번 마술은 동전 마술입니다.]
동영상 속 길거리 마술은 정말 별거 없었다. 고작 하는 게 카드 마술, 동전 마술, 간단한 도구를 이용한 마술이었다. 이들의 마술에 비하면 선우의 마술은 마법이었다. 애초에 마법으로 하는 마술이니 뭐…….
문제는 마술을 한 번 공연하면 1시간 정도 해야 한다는 거다. 똑같은 레퍼토리의 마술은 사람들이 금방 흥미를 잃는다는 것도 문제였다. 게다가 페이는 명성에 비례했다. 유명한 마술사는 돈을 긁어모으지만 유명하지 않은 마술사는 돈을 벌지 못했다.
명성을 올리려면 꾸준히 공연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선우는 꾸준히 공연할 수 없다. 거기다가 할 줄 아는 마법은 두 가지밖에 없고.
선우는 계속해서 고민하며 동영상을 보았다. 그러다 한 유투버가 올린 메시지를 보게 되었다.
[제가 다음 마술을 준비하는 10분 동안 바람잡이 겸 마술 공연을 해주실 분 구합니다. 010―XXXX―XXXX 최현우.]
그 유투버는 같이 공연을 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 10분, 딱 10분을 책임져 줄 마술사를 찾고 있었다.
10분짜리 공연. 보통의 마술사들은 꺼려하는 조건일 거다. 다들 메인이 되고 싶을 테니까. 그러나 선우는 다르다. 선우는 메인이 되고픈 생각 전혀 없다.
선우는 옳다구나 하는 표정으로 그 번호를 메모지에 적었다. PC방에 있는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델렐렐레 델렐렐레.
신호음이 몇 번 가고 한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그는 약간 지친 듯한 목소리였다. 선우는 입을 열었다.
“유투브에 마술 동영상 올리신 최현우 마술사이신가요?”
“예, 제가 마술 동영상을 올린 최현우입니다. 공연 문의 차 전화주신 겁니까?”
“공연 문의는 아니고, 10분 책임져 줄 마술사는 구하셨나 해서 전화 드렸습니다.”
“아, 마술사세요? 파트타임 마술사 분은 아직 구하지 못했습니다. 저와 같이 일해 보시게요?”
“정식 마술사는 아니지만 저만 할 수 있는 마술이 있는 사람입니다. 10분 정도는 확실히 책임져 드릴 수 있습니다.”
“음… 그래도 어느 정도의 마술을 하시는지 확인이 필요한데, 시간 언제쯤 되세요? 저는 되도록 빠를수록 좋은데요.”
“그럼 내일 어떠십니까?”
“내일이요? 내일은 오전만 가능합니다. 제가 오후에 공연이 있어서요. 오전에 가능하세요?”
오늘 저녁부터 하게 될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내일 오전 9시에 끝난다. 그가 말하는 오전이 이른 아침은 아닐 테니 가능할 것도 같다.
선우는 오전 중 가능한 시간을 말했다.
“서울에서 만나는 것이라면 오전 10시에서 12시 사이로 가능합니다.”
“당연히 서울에서 만나야죠. 그럼 오전 11시에 이대에서 만날까요?”
“이대면 이화여대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예, 이대 앞 XSA카페에서 내일 오전 11시에 만나도록 하죠. 가능하시죠?”
“예, 가능합니다. 그럼 11시에 뵙죠.”
약속을 잡은 선우는 전화를 끊으려 했다. 그때, 다급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만요!”
“예?”
“휴대 전화번호는 어떻게 되세요? 이 번호는 휴대전화 번호가 아닌 것 같은데.”
선우는 휴대전화가 없었다. 통화할 친구가 없고 기본료 내는 것도 아까워서 부서진 이후 다시 구매하지 않았다. 선우는 난감한 얼굴을 하며 말했다.
“아, 전화번호요. 꼭 말씀드려야 하나요? 제가 휴대폰이 없어서요.”
“음…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장난전화 거신 건 아니시죠?”
“장난전화 절대 아닙니다. 믿어주세요.”
“그럼 믿고 나가겠습니다. 내일 뵙지요.”
30대 초반, 둥글둥글한 안경을 쓴 평범한 외모의 김한석은 시나리오 작가다. 두 편의 영화를 연타석으로 흥행시킨 스타 작가다.
그는 한 달 전 문화체육부로부터 시나리오 의뢰를 받았다. 한 편의 시나리오를 써주는 대가로 받은 금액이 한화 1억이었다.
김한석은 그 의뢰를 곧장 수락했다. 정부 부처의 1억짜리 의뢰를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김한석은 그 의뢰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노트북을 보다 머리를 긁적였다.
“외계인의 침공이 소재면 스펙타클해야 하는데…….”
문화체육부는 외계인의 침공에 대한 이야기로 시나리오를 써 달라 했다. 그런데 그 주인공으로 특출 난 게 전혀 없는 평범한 시민을 써 달라 했다. 거기다 갖가지 추가 사항이 있었다. 이 추가 사항을 시나리오에 모두 다 넣다 보면 이건 숫제 외계인이 소재인 게 의심스러운 재난 영화다. 아니, 외계인으로부터 대피하는 영화라고나 할까?
김한석은 그 때문에 좀체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두 달 내로 써주겠다 약속하고 계약했는데 반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작업실로 한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끼익.
그는 멋들어지게 턱수염을 기르고 있고 파란색 옷을 입고 있었다. 김한석의 시나리오들 중 두 편을 영화화하여 스타 영화감독 자리에 오른 전직 드라마 감독 출신, 이영환 감독이다.
김한석은 시나리오를 쓰다 말고 이영환 감독을 반겼다.
“오셨어요?”
“문화체육부로부터 받은 시나리오 의뢰는 잘 되가?”
“그저 그래요. 문화체육부에서 원하는 대로 써주면 이건 숫제 망조 든 시나리오거든요. 뭔 재미로 볼까 싶은… 영화로 제작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그런 시나리오요.”
“그래도 최대한 재미있게 써 봐. 한석이 자네는 스타 작가잖아.”
“그러려고 하는데… 참,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세요? 충무로에서 가장 바쁘신 분이.”
“자네 도움을 좀 받으려 왔어.”
“제 도움이요?”
“오늘 KBS에 갔다 왔거든?”
“예, 그런데요?”
“KBS 드라마 국장이 나한테 프라임 시간대 드라마를 맡아 달래.”
채널이 100개 이상으로 늘어나면서 공영 방송의 입지가 많이 줄어들었다. 한때는 60%까지 나오던 드라마 시청률도 이제는 20%만 나와도 대박 드라마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런데도 공영 방송의 프라임 시간대 드라마 감독이라는 직위는 대단하다.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스타 감독에게도 충분히 축하할 만한 일이었다. 김한석은 그래서 이영환 감독에게 축하 인사를 했다.
“정말요? 와, 축하드립니다, 감독님.”
그런데 축하를 받아야 할 이영환의 표정이 썩어 있었다.
“그래… 고맙다.”
김한석은 그것을 즉시 캐치했다.
“그런데 무슨 일 있으세요? 프라임 시간대 편성 드라마 감독 제안을 받은 사람치곤 표정이 조금 그러신데…….”
“…KBS 드라마 국장이 제안한 드라마, 그 드라마의 주인공도 외계인이야.”
“예? 그쪽도 외계인이에요?
“그래, 이 새끼들이 단체로 외계인 뽕을 맞았나. 아주 환장하겠다.”
“드라마까지 외계인이라 그것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