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환계의 용사였습니다 2화
And(1)
요즘 고3은 성인과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교복을 입고 있지만 앳된 구석은 전혀 보이지 않은 세 명이 교실에 앉아 있다.
그중 한 명은 열심히 문제지를 풀고 있고, 한 명은 책상에 엎드려서 자고 있고, 한 명은 멍하니 손목시계를 보고 있다.
손목시계를 보고 있던 남학생이 책상에 엎드려서 자고 있는 학생, 선우를 툭 쳐서 깨우며 말한다.
“야, 마치고 시계 하러 가자.”
“으으…….”
선우는 신음소리를 내며 상체를 일으킨다. 그리고 피곤한 눈빛으로 자신을 깨운 학생, 인구를 바라보며 말한다.
“뭐……?”
“피씨 가자고.”
“하…….”
선우는 한숨을 쉬며 기지개를 켜고 말한다.
“넌 고3이 게임을 하고 싶냐?”
“고3이 게임을 하지, 누가 게임을 하냐?”
“그러게.”
현직 고3, 전직 환계의 용사인 선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한다. 모두가 말로는 고3이 되면 힘들고 공부만 하게 된다고 하지만 다들 그냥저냥 놀 거 다 놀고 할 거 다 하고 살더라. 공부를 하는 애들도 많지만.
고3인데도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에 아주 약간 죄책감이 들긴 하지만 어쩌겠나. 하기가 싫은데.
선우는 머리카락을 긁적이며 폰을 꺼낸다. 머릿결이 상당히 좋은 편이라 찰랑거린다. 인구는 그의 머리카락을 보며 말한다.
“엘라스틴 했니?”
“뭔 헛소리냐.”
선우는 혀를 쯧쯧 차며 톡을 확인한다. ‘미친년’이라는 이름의 누군가에게서 톡이 와 있다. ‘오늘 모이는 거 알지?’라고 적혀 있다. 선우는 ‘어……’라는 소리를 내며 인구에게 말한다.
“야, 나 오늘 못 놀겠는데.”
“왜?”
“선약 있었어.”
선우는 ‘어’라고 답장을 보냈고, 인구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아… 선약이 중요하냐, 시계가 중요하냐?”
선우는 아주 잠깐 고민하다가 말한다.
“내 목숨이 중요한데.”
“그럼 어쩔 수 없지. 야자나 하는 수밖에.”
인구는 쾌활한 어조로 답했고, 선우의 뒤에 있던 애가 해맑은 어조로 말한다.
“나랑 가면 되지!”
그에 인구는 의아한 표정으로 말한다.
“넌 야자 못 째잖아.”
그 친구의 이름은 경준. 선우의 또 다른 친구다. 경준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한다.
“하루쯤은 괜찮을 걸.”
“또 아빠한테 빠따 맞는 거 아니냐?”
“맞지, 뭐. 문제를 너무 많이 풀어서 머리 터질 것 같으니까 게임해야 해.”
“그렇다면 뭐…….”
또 다른 친구인 경준. 꽤 우등생인데 아버지가 무서워서 그렇다. 야자 째면 빠따로 맞는다. 그래도 저렇게 말하는데 안 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인구는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는 저렇게 놀면서도 성적이 높은, 말하자면 천재다. 그래도 성격이 좋아서 싫지 않다.
7교시는 자습이었고, 8교시 보충은 빠지기로 했다. 7교시가 끝나고 선우는 가방을 챙기며 말한다.
“나 먼저 간다.”
“바이∼”
인구는 책상에 누운 채로 인사를 하며 손을 흔들었고, 경준은 고민되는 듯한 표정으로 말한다.
“아… 나도 그냥 보충 쨀까?”
“게임하는 도중에 잡혀가는 건 보고 싶지 않으니까 참아. 대신 라면 사줌.”
“오케이.”
선우는 조용히 나간다. 예체능이나 그처럼 보충과 야자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시간에 나간다. 가끔 선생님이 안 계시면 7교시까지 째고 가는 사람도 있지만… 7교시는 정규 수업이라 째다가 들키면 출석부에 적히기 때문에 웬만하면 7교시까지는 하고 간다.
선우는 교문으로 간다. 7교시가 자습이라 교과교실제에 의해 반으로 돌아가야 했었다. 덕분에 더 걸어야 한다. 3학년은 교실이 별관에 있기 때문에 교문까지 1학년에 비해 훨씬 오래 걸린다. 교문에는 누가 기다리고 있다.
멀리서 봐도 훈훈함이 느껴질 정도로 잘생긴 남자다.
선우는 약간 인상을 찌푸린다. 너무 잘생겨서 기분 나쁘다. 약간 서글서글한 미소도, 깨끗한 피부도, 반곱슬의 머리카락도, 키도, 몸집까지. 모든 게 완벽하다. 그야말로 완벽한 외모의 남자라고 할 수 있겠다.
기원. 17세. 현직 고1. 전직 환계의 악당. 대악마 루즈의 수하였다. 또 다른 용사인 기훈의 동생이기도 하며, 선우와 기훈이 갱생시킨 녀석이다.
선우는 기원을 보고 주변을 둘러보며 말한다.
“기훈이는?”
“조퇴했어요.”
“꿀빨충 쒜리.”
“형도 예체능으로 빠지면 되잖아요.”
“귀찮아.”
“하하하.”
저렇게 웃는 것도 너무 잘 어울린다. 선우는 몸서리를 치며 말한다.
“버스 타러 가자.”
“예, 형.”
환계에서 내계로 돌아온 지 꽤 됐지만 아직 용사들 대부분 환력이 꽤 남아 있다. 그 덕에 다른 사람들보다는 편하게 살고 있다. 그간 고생한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하면 좋을까. 환력이 없더라도 기훈처럼 육체가 강한 사람들은 예체능 계열로 빠지면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선우는 맨 뒷좌석에 앉으며 말한다.
“교과교실제 만든 놈은 정말로 죽여야 한다.”
기원은 그의 옆자리에 앉으며 맞장구친다.
“그러게요.”
“미친 거 아니냐? 아니, 3학년 교실이 별관 3층인데 1교시에 국어면 본관 1층까지 가야하고, 2교시가 지리면 다시 별관 3층 가야하고, 3교시가 수학이면 다시 본관 2층까지 가야하는 게 말이 되냐?”
“그러게요.”
“고3한테 이게 뭐하는 짓인지… 수업 끝나고 쉬는 시간에 잘 수도 없다니까.”
“끔찍하네요.”
기원은 선우의 말을 잘 들어준다. 자신의 형인 기훈보다 선우를 더 따르는 편이다. 선우는 계속 불만을 토로하다가 말한다.
“기훈이는 요새 뭐 하는데?”
“그냥 뭐… 텔레비전 보고, 컴퓨터 하고, 운동하고, 폰 하고 그러죠.”
“어떻게 그렇게 하나같이 기분 나쁜 것만 하냐?”
딱히 기분 나쁜 행동을 하진 않은 것 같은데 말이다. 선우의 말에 기원은 그 멋진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하하하, 그러게요.”
“넌?”
“전…….”
기원은 대답하기 곤란한 표정을 지었고, 선우는 한숨을 쉬며 말한다.
“연애하겠지. 더러운 악당 녀석.”
“하하하.”
기원은 멋쩍게 웃는다. 선우는 하품을 한다. 일상은 지루하다. 하지만 좋다. 파란은 싫다. 겪어봐서 안다. 그런 게 일어나봤자 좋을 리 없다. 선우는 졸린 듯 눈을 반쯤 감으며 말한다.
“오늘은 모여서 뭘 할까?”
“또 뭐… 밥이나 먹고, 추억팔이나 하다가 가겠죠.”
“그놈의 추억팔이, 6년째 질리지도 않나.”
“저희들만 아는 거니까요.”
선우의 투덜거림에 기원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고, 선우는 눈을 완전히 감으며 말한다.
“도착하면 깨워.”
“예, 형.”
우우우웅!
“하…….”
그때, 갑자기 선우의 폰이 울린다. 선우는 한숨을 쉬며 폰을 꺼내 그녀에게 답장을 보낸다.
선우 : 아, 가고 있어. 옆에 기원이도 있어.
선이 : 빨리 좀 오라고. 뛰어오든가.
선우 : 미친년이 진짜. 훼북에 내 얼굴 나오는 거 보고 싶냐?
선이 : 나가든가 말든가. 남들 다 왔는데 왜 오빠만 늦게 와?
선우 : 난 바른 남자니까.
선이 : 하… 더러워.
선우 : 뭐만 하면 더럽대. 못생긴 게.
선우는 그대로 데이터를 끈다. 그리고 다시 한숨을 쉬며 말한다.
“이 미친년은 이런 성격으로 대체 누구한테 시집갈까?”
“전 어때요?”
“내가 누누이 말했지. 너 그러다가 가운데 다리 잘린다고.”
“형, 그 말 볼 때마다 하니까 요즘은 가위만 보면 저절로 몸이 움츠러든다고요.”
“단속 잘하든가, 미친놈아. 그리고 애초에 넌 선이한테 그렇게 맞고도 걔랑 사귀고 싶어?”
선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보았고, 기원은 허허 웃으며 말한다.
“예쁘잖아요.”
“눈에 뭐가 씌인 건지…….”
“형, 형은 선이랑 비슷하게 생겼으면서 그렇게 말해도 돼요?”
“비슷하기는. 눈 삐었냐?”
“형이 아무리 부정해도 형이랑 선이는 닮았다니까요.”
“말 같잖은 소리를 한다니까.”
선우는 쯧쯧 혀를 차며 다시 눈을 감는다. 그리고 퉁명스럽게 말한다.
“이제 진짜 잘 거니까 도착하면 깨워. 그전에 말 걸면 죽인다.”
“형.”
기원이 선우를 부른다. 선우는 한쪽 눈을 뜨며 말한다.
“남길 말은…….”
“도착했어요.”
“하…….”
이미 도착했다. 버스가 참 빠르기도 하지. 선우는 한숨을 쉬며 일어선다. 기원은 생글생글 웃으며 먼저 일어서서 버스에서 내린다. 선우는 계속 무어라고 투덜거리며 기원을 따라 버스에서 내렸고, 기원은 ‘형, 전 상관없는데 계속 투덜거리는 거 선이랑 너무 비슷한 것 같아요’라고 말하고 선우에게 명치를 맞았다.
버스에서 내린 둘은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간다. 우림 아파트 102동 304호. 그들이 항상 모이는 곳이다.
선우는 익숙하게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간다. 문을 열자마자 벽돌이 날아온다. 선우는 한 손으로 벽돌을 잡으며 말한다.
팍!
“이런 거 던지면 보통 사람은 죽는 거 알지?”
“오빠가 뭐 보통 사람이야?”
“그래도 그렇지, 폭력적인 돼지 년이.”
선우가 돼지라고 부르긴 하지만 전혀 돼지라고 부를 수 없는 여성이 벽돌을 들고 있다.
키는 167, 몸무게는 비밀. 딱히 군살은 보이지 않고 그나마 살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흉부에 있는 눈에 띄는 그것. 그곳만을 보면 돼지라고 불러도 괜찮을 것 같다.
놀랍게도 선우와 비슷한 얼굴. 하지만 여자다. 아니, 선우가 여자가 되면 저런 얼굴일까? 그런 생각이 드는 얼굴의 여자가 벽돌을 위로 던졌다가 받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선이. 17세. 현직 고1. 전직 환계의 용사. 선우의 여동생이다.
선이는 벽돌을 꽉 잡으며 말한다.
“오빠, 이쁜 동생 얼굴이 어떻다?”
“뭐래, 추하게 생긴 게.”
휙! 팍!
“윽!”
선이는 벽돌을 던진다. 선우는 고개를 옆으로 까딱여 그것을 피했지만, 벽돌은 허공에서 갑자기 방향을 꺾으며 선우의 머리에 꽂힌다. 선우는 머리를 잡으며 쓰러졌고, 선이는 뒤돌아서며 말한다.
“건수 오빠는 오늘도 못 온대. 리포트 써야 한다고.”
선우는 고개를 들며 항의하듯 말한다.
“끔찍한 년이. 이거 잘못 맞으면 죽는 거 몰라?”
“응, 많이 죽어.”
모임에 오지 못한 남자인 건수. 21세. 현직 대학교 2학년생. 전직 환계의 용사. 중학교 2학년 때 환계에 갔다. 공대생이라 죽을 고생을 하고 있다. 전문연을 노리고 대학원 진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과는 토목공학과다.
선우는 한숨을 쉬며 일어섰고, 기원은 그의 어깨를 잡으며 ‘괜찮아요?’ 하고 묻는다. 선우는 머리를 털며 ‘괜찮을 리가 있냐.’라고 하고 거실로 들어가면서 다시 말한다.
“더러운 꿀빨충은 조퇴해서 빨리 왔다 치고, 나머지는 어떻게 이렇게 빨리 왔어?”
그의 말에 반응하듯 한 남자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본다.
서로를 닮은 선우와 선이 남매와는 달리 훈훈한 외모의 기원과 형제라는 게 믿기지 않는 얼굴이다.
못생겼다고 할 수는 없지만, 잘생겼다고 할 수도 없는 밋밋한 얼굴. 하지만 놀랍게도 건장하게 생겼다. 무골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덩치도 성인 남성 평균을 훨씬 웃돌고 두꺼운 팔과 넓은 어깨가 어느 조직의 행동파 두목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기훈. 19세. 현직 고3. 선우와 마찬가지로 환계의 용사였다.
And(1)
요즘 고3은 성인과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교복을 입고 있지만 앳된 구석은 전혀 보이지 않은 세 명이 교실에 앉아 있다.
그중 한 명은 열심히 문제지를 풀고 있고, 한 명은 책상에 엎드려서 자고 있고, 한 명은 멍하니 손목시계를 보고 있다.
손목시계를 보고 있던 남학생이 책상에 엎드려서 자고 있는 학생, 선우를 툭 쳐서 깨우며 말한다.
“야, 마치고 시계 하러 가자.”
“으으…….”
선우는 신음소리를 내며 상체를 일으킨다. 그리고 피곤한 눈빛으로 자신을 깨운 학생, 인구를 바라보며 말한다.
“뭐……?”
“피씨 가자고.”
“하…….”
선우는 한숨을 쉬며 기지개를 켜고 말한다.
“넌 고3이 게임을 하고 싶냐?”
“고3이 게임을 하지, 누가 게임을 하냐?”
“그러게.”
현직 고3, 전직 환계의 용사인 선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한다. 모두가 말로는 고3이 되면 힘들고 공부만 하게 된다고 하지만 다들 그냥저냥 놀 거 다 놀고 할 거 다 하고 살더라. 공부를 하는 애들도 많지만.
고3인데도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에 아주 약간 죄책감이 들긴 하지만 어쩌겠나. 하기가 싫은데.
선우는 머리카락을 긁적이며 폰을 꺼낸다. 머릿결이 상당히 좋은 편이라 찰랑거린다. 인구는 그의 머리카락을 보며 말한다.
“엘라스틴 했니?”
“뭔 헛소리냐.”
선우는 혀를 쯧쯧 차며 톡을 확인한다. ‘미친년’이라는 이름의 누군가에게서 톡이 와 있다. ‘오늘 모이는 거 알지?’라고 적혀 있다. 선우는 ‘어……’라는 소리를 내며 인구에게 말한다.
“야, 나 오늘 못 놀겠는데.”
“왜?”
“선약 있었어.”
선우는 ‘어’라고 답장을 보냈고, 인구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아… 선약이 중요하냐, 시계가 중요하냐?”
선우는 아주 잠깐 고민하다가 말한다.
“내 목숨이 중요한데.”
“그럼 어쩔 수 없지. 야자나 하는 수밖에.”
인구는 쾌활한 어조로 답했고, 선우의 뒤에 있던 애가 해맑은 어조로 말한다.
“나랑 가면 되지!”
그에 인구는 의아한 표정으로 말한다.
“넌 야자 못 째잖아.”
그 친구의 이름은 경준. 선우의 또 다른 친구다. 경준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한다.
“하루쯤은 괜찮을 걸.”
“또 아빠한테 빠따 맞는 거 아니냐?”
“맞지, 뭐. 문제를 너무 많이 풀어서 머리 터질 것 같으니까 게임해야 해.”
“그렇다면 뭐…….”
또 다른 친구인 경준. 꽤 우등생인데 아버지가 무서워서 그렇다. 야자 째면 빠따로 맞는다. 그래도 저렇게 말하는데 안 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인구는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는 저렇게 놀면서도 성적이 높은, 말하자면 천재다. 그래도 성격이 좋아서 싫지 않다.
7교시는 자습이었고, 8교시 보충은 빠지기로 했다. 7교시가 끝나고 선우는 가방을 챙기며 말한다.
“나 먼저 간다.”
“바이∼”
인구는 책상에 누운 채로 인사를 하며 손을 흔들었고, 경준은 고민되는 듯한 표정으로 말한다.
“아… 나도 그냥 보충 쨀까?”
“게임하는 도중에 잡혀가는 건 보고 싶지 않으니까 참아. 대신 라면 사줌.”
“오케이.”
선우는 조용히 나간다. 예체능이나 그처럼 보충과 야자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시간에 나간다. 가끔 선생님이 안 계시면 7교시까지 째고 가는 사람도 있지만… 7교시는 정규 수업이라 째다가 들키면 출석부에 적히기 때문에 웬만하면 7교시까지는 하고 간다.
선우는 교문으로 간다. 7교시가 자습이라 교과교실제에 의해 반으로 돌아가야 했었다. 덕분에 더 걸어야 한다. 3학년은 교실이 별관에 있기 때문에 교문까지 1학년에 비해 훨씬 오래 걸린다. 교문에는 누가 기다리고 있다.
멀리서 봐도 훈훈함이 느껴질 정도로 잘생긴 남자다.
선우는 약간 인상을 찌푸린다. 너무 잘생겨서 기분 나쁘다. 약간 서글서글한 미소도, 깨끗한 피부도, 반곱슬의 머리카락도, 키도, 몸집까지. 모든 게 완벽하다. 그야말로 완벽한 외모의 남자라고 할 수 있겠다.
기원. 17세. 현직 고1. 전직 환계의 악당. 대악마 루즈의 수하였다. 또 다른 용사인 기훈의 동생이기도 하며, 선우와 기훈이 갱생시킨 녀석이다.
선우는 기원을 보고 주변을 둘러보며 말한다.
“기훈이는?”
“조퇴했어요.”
“꿀빨충 쒜리.”
“형도 예체능으로 빠지면 되잖아요.”
“귀찮아.”
“하하하.”
저렇게 웃는 것도 너무 잘 어울린다. 선우는 몸서리를 치며 말한다.
“버스 타러 가자.”
“예, 형.”
환계에서 내계로 돌아온 지 꽤 됐지만 아직 용사들 대부분 환력이 꽤 남아 있다. 그 덕에 다른 사람들보다는 편하게 살고 있다. 그간 고생한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하면 좋을까. 환력이 없더라도 기훈처럼 육체가 강한 사람들은 예체능 계열로 빠지면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선우는 맨 뒷좌석에 앉으며 말한다.
“교과교실제 만든 놈은 정말로 죽여야 한다.”
기원은 그의 옆자리에 앉으며 맞장구친다.
“그러게요.”
“미친 거 아니냐? 아니, 3학년 교실이 별관 3층인데 1교시에 국어면 본관 1층까지 가야하고, 2교시가 지리면 다시 별관 3층 가야하고, 3교시가 수학이면 다시 본관 2층까지 가야하는 게 말이 되냐?”
“그러게요.”
“고3한테 이게 뭐하는 짓인지… 수업 끝나고 쉬는 시간에 잘 수도 없다니까.”
“끔찍하네요.”
기원은 선우의 말을 잘 들어준다. 자신의 형인 기훈보다 선우를 더 따르는 편이다. 선우는 계속 불만을 토로하다가 말한다.
“기훈이는 요새 뭐 하는데?”
“그냥 뭐… 텔레비전 보고, 컴퓨터 하고, 운동하고, 폰 하고 그러죠.”
“어떻게 그렇게 하나같이 기분 나쁜 것만 하냐?”
딱히 기분 나쁜 행동을 하진 않은 것 같은데 말이다. 선우의 말에 기원은 그 멋진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하하하, 그러게요.”
“넌?”
“전…….”
기원은 대답하기 곤란한 표정을 지었고, 선우는 한숨을 쉬며 말한다.
“연애하겠지. 더러운 악당 녀석.”
“하하하.”
기원은 멋쩍게 웃는다. 선우는 하품을 한다. 일상은 지루하다. 하지만 좋다. 파란은 싫다. 겪어봐서 안다. 그런 게 일어나봤자 좋을 리 없다. 선우는 졸린 듯 눈을 반쯤 감으며 말한다.
“오늘은 모여서 뭘 할까?”
“또 뭐… 밥이나 먹고, 추억팔이나 하다가 가겠죠.”
“그놈의 추억팔이, 6년째 질리지도 않나.”
“저희들만 아는 거니까요.”
선우의 투덜거림에 기원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고, 선우는 눈을 완전히 감으며 말한다.
“도착하면 깨워.”
“예, 형.”
우우우웅!
“하…….”
그때, 갑자기 선우의 폰이 울린다. 선우는 한숨을 쉬며 폰을 꺼내 그녀에게 답장을 보낸다.
선우 : 아, 가고 있어. 옆에 기원이도 있어.
선이 : 빨리 좀 오라고. 뛰어오든가.
선우 : 미친년이 진짜. 훼북에 내 얼굴 나오는 거 보고 싶냐?
선이 : 나가든가 말든가. 남들 다 왔는데 왜 오빠만 늦게 와?
선우 : 난 바른 남자니까.
선이 : 하… 더러워.
선우 : 뭐만 하면 더럽대. 못생긴 게.
선우는 그대로 데이터를 끈다. 그리고 다시 한숨을 쉬며 말한다.
“이 미친년은 이런 성격으로 대체 누구한테 시집갈까?”
“전 어때요?”
“내가 누누이 말했지. 너 그러다가 가운데 다리 잘린다고.”
“형, 그 말 볼 때마다 하니까 요즘은 가위만 보면 저절로 몸이 움츠러든다고요.”
“단속 잘하든가, 미친놈아. 그리고 애초에 넌 선이한테 그렇게 맞고도 걔랑 사귀고 싶어?”
선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보았고, 기원은 허허 웃으며 말한다.
“예쁘잖아요.”
“눈에 뭐가 씌인 건지…….”
“형, 형은 선이랑 비슷하게 생겼으면서 그렇게 말해도 돼요?”
“비슷하기는. 눈 삐었냐?”
“형이 아무리 부정해도 형이랑 선이는 닮았다니까요.”
“말 같잖은 소리를 한다니까.”
선우는 쯧쯧 혀를 차며 다시 눈을 감는다. 그리고 퉁명스럽게 말한다.
“이제 진짜 잘 거니까 도착하면 깨워. 그전에 말 걸면 죽인다.”
“형.”
기원이 선우를 부른다. 선우는 한쪽 눈을 뜨며 말한다.
“남길 말은…….”
“도착했어요.”
“하…….”
이미 도착했다. 버스가 참 빠르기도 하지. 선우는 한숨을 쉬며 일어선다. 기원은 생글생글 웃으며 먼저 일어서서 버스에서 내린다. 선우는 계속 무어라고 투덜거리며 기원을 따라 버스에서 내렸고, 기원은 ‘형, 전 상관없는데 계속 투덜거리는 거 선이랑 너무 비슷한 것 같아요’라고 말하고 선우에게 명치를 맞았다.
버스에서 내린 둘은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간다. 우림 아파트 102동 304호. 그들이 항상 모이는 곳이다.
선우는 익숙하게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간다. 문을 열자마자 벽돌이 날아온다. 선우는 한 손으로 벽돌을 잡으며 말한다.
팍!
“이런 거 던지면 보통 사람은 죽는 거 알지?”
“오빠가 뭐 보통 사람이야?”
“그래도 그렇지, 폭력적인 돼지 년이.”
선우가 돼지라고 부르긴 하지만 전혀 돼지라고 부를 수 없는 여성이 벽돌을 들고 있다.
키는 167, 몸무게는 비밀. 딱히 군살은 보이지 않고 그나마 살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흉부에 있는 눈에 띄는 그것. 그곳만을 보면 돼지라고 불러도 괜찮을 것 같다.
놀랍게도 선우와 비슷한 얼굴. 하지만 여자다. 아니, 선우가 여자가 되면 저런 얼굴일까? 그런 생각이 드는 얼굴의 여자가 벽돌을 위로 던졌다가 받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선이. 17세. 현직 고1. 전직 환계의 용사. 선우의 여동생이다.
선이는 벽돌을 꽉 잡으며 말한다.
“오빠, 이쁜 동생 얼굴이 어떻다?”
“뭐래, 추하게 생긴 게.”
휙! 팍!
“윽!”
선이는 벽돌을 던진다. 선우는 고개를 옆으로 까딱여 그것을 피했지만, 벽돌은 허공에서 갑자기 방향을 꺾으며 선우의 머리에 꽂힌다. 선우는 머리를 잡으며 쓰러졌고, 선이는 뒤돌아서며 말한다.
“건수 오빠는 오늘도 못 온대. 리포트 써야 한다고.”
선우는 고개를 들며 항의하듯 말한다.
“끔찍한 년이. 이거 잘못 맞으면 죽는 거 몰라?”
“응, 많이 죽어.”
모임에 오지 못한 남자인 건수. 21세. 현직 대학교 2학년생. 전직 환계의 용사. 중학교 2학년 때 환계에 갔다. 공대생이라 죽을 고생을 하고 있다. 전문연을 노리고 대학원 진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과는 토목공학과다.
선우는 한숨을 쉬며 일어섰고, 기원은 그의 어깨를 잡으며 ‘괜찮아요?’ 하고 묻는다. 선우는 머리를 털며 ‘괜찮을 리가 있냐.’라고 하고 거실로 들어가면서 다시 말한다.
“더러운 꿀빨충은 조퇴해서 빨리 왔다 치고, 나머지는 어떻게 이렇게 빨리 왔어?”
그의 말에 반응하듯 한 남자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본다.
서로를 닮은 선우와 선이 남매와는 달리 훈훈한 외모의 기원과 형제라는 게 믿기지 않는 얼굴이다.
못생겼다고 할 수는 없지만, 잘생겼다고 할 수도 없는 밋밋한 얼굴. 하지만 놀랍게도 건장하게 생겼다. 무골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덩치도 성인 남성 평균을 훨씬 웃돌고 두꺼운 팔과 넓은 어깨가 어느 조직의 행동파 두목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기훈. 19세. 현직 고3. 선우와 마찬가지로 환계의 용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