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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계의 용사였습니다 3화

And(2)


“더러운 꿀빨충이라니, 말이 심한 거 아니냐?”
선우는 혀를 차며 말한다.
“응, 꿀빨충.”
기훈은 울컥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선다.
“저게 진짜……!”
“왜? 이 중에선 네가 제일 능력을 안 숨기잖아. 또 100미터 신기록 세웠다며? 언론 통제하느라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
“…….”
기훈의 말에 끼어들며 그의 입을 다물게 한 여자의 이름은 우림. 19세. 현직 고3. 전직 환계의 용사. 선우와 다른 고등학교다.
성숙한 듯한 주변 사람들과는 달리 꽤나 어린 외견의 소유자다. 왠지 모르게 작은 느낌이다. 아니, 실제로 꽤 작은 편이기도 하다. 키도 작고 몸집도 작아 가녀린 느낌. 인형 같은 느낌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지만 이 우림 아파트 단지는 우림의 소유다. 우림의 아버지는 대기업인 서아 그룹의 회장이시다. 물론, 서아 그룹이 대기업이 된 것에 우림의 개입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우림의 말에 선우는 큭 웃으며 말한다.
“대단하시네, 네가 직접 막은 줄.”
“거의 내가 막았지. 안 그래?”
우림의 여유로운 대답에 선우는 어깨를 으쓱인다. 그래. 뭐, 서아 그룹 성장시키는데 그녀의 공헌이 없었던 건 아니니까.
기훈은 목을 긁으며 말한다.
“내가 내 힘을 쓰겠다는데 뭘…….”
“얼마 남지도 않은 힘, 아껴 쓰지 그러냐.”
“몸은 그대로야!”
선우의 빈정거림에 기훈은 버럭 소리를 질렀고, 그에 반응하듯 안쪽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팔짱을 낀 채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한 여자가 쿡쿡 웃으며 말한다.
“어머, 그래? 어디 한 번 시험해 볼래?”
아린. 19세. 전직 환계의 악당. 동양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몸매다. 선이도 엄청나지만 아린의 기세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다. 기훈과는 다른 의미로 몸의 형태가 옷 위로 드러난다.
그야말로 치명적일 정도의 관능미와 중독될 것 같은 요염함이 흐르는 여자다. 실제로 치명적인 힘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아린의 말에 기훈은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진심으로?”
“…….”
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해진다. 선우는 소파에 앉으며 말한다.
“새끼 또 용사병 도졌나. 야, 용사 그만둔 지 얼마나 됐는데 또 악당이랑 싸우게?”
“어머, 자기, 나 이제 악당도 아니야∼”
아린은 손을 살짝 흔들며 내숭을 떨었고 선우는 한숨을 쉬며 말한다.
“암튼 적당히 하자. 농담을 하면 농담으로 좀 받아들여.”
“…미안하게 됐네. 진지해서.”
“너…….”
기훈의 말에 선우는 순간 울컥한 표정을 지었고, 그때 누군가가 부엌에서 나오며 말한다.
“왜 싸워?”
우현. 19세. 현직 고3이며 전직 환계의 용사였고 지금은 파티쉐가 꿈이다. 이미 파티쉐 자격증도 있다. 그는 갓 구운 쿠키를 가지고 온다. 우현은 선우에게 접시를 내밀었고, 선우는 접시를 받으며 말한다.
“나도 몰라. 평소에도 있는 말싸움이지 뭐.”
“그만 좀 싸워.”
“애가 시비를…….”
“아, 오빠, 좀 닥쳐 봐.”
선우는 계속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고, 결국 선이가 막는다. 선우는 입술을 비쭉이며 접시를 가운데 두고 과자를 짚으며 말한다.
“그것보다 너희들, 질리지도 않냐? 6년째 매달 한 번씩 이렇게 모이는 것도 이제 슬슬 그만할 때 되지 않았냐?”
“딱히 문제없잖아. 고작 한 달에 한 번인데.”
“그렇게 말하면 할 말 없다만.”
바삭, 하고 입안에서 쿠키가 부서진다. 좋은 식감에 좋은 단맛이다. 너무 맛있다. 선우는 우물거리며 말한다.
“그런데 이거 먹을 수 있으면 매달 모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맛있어?”
선이의 눈이 반짝인다. 선우는 과자 하나를 더 집어 입에 넣으며 말한다.
“슬슬 환력 안 떨어져 가냐? 다이어트에 좀 더 열심히 시간을 투자하는 게 어떠냐?”
“…….”
선이는 급격하게 우울한 표정을 짓는다. 우현은 선이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맛있게 먹으면 살 안 쪄.”
선이의 눈에 순식간에 생기가 맴돈다. 선이는 선우에게 다가가며 말한다.
“…나, 나도 줘!”
“어휴, 돼지 년.”
선우는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을 핥았고, 다른 사람들도 접시에 다가가 과자를 집어먹는다. 선우는 휴지로 손가락을 닦으며 말한다.
“그래서 뭐, 할 얘기라도 있냐?”
“그냥 뭐, 모두들 어떻게 살아가나 이야기하는 거지.”
“지루하겠네. 이야기 끝나면 깨워.”
선우는 그렇게 말하며 침대에 눕는다. 그러자 기훈이 울컥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저놈 저거, 요즘 왜 저렇게 삐딱해?”
“저희 오빠가 뭐 그렇죠.”
선이는 어깨를 으쓱였고, 기원은 픽 웃으며 말한다.
“형이 할 말이야?”
“…….”
기훈은 할 말이 없는 듯 입을 다물었고, 우림은 갑자기 생각이 났다는 듯이 말한다.
“그러고 보니 기훈이 너, 이번 모의고사는 어땠어? 내신으로 건수 오빠 대학에 갈 수는 있겠어?”
기훈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런 이야기는 왜 해?”
“고3이 이런 이야기하지, 누가 해?”
“그건… 그렇지.”
기훈은 우울한 표정을 짓는다. 기원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난 올 1등급인데.”
“왜! 네가! 1등급인데!”
선이는 참담한 표정을 지었고, 기원은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뭐, 똑똑하니까.”
“와, 진짜 세상 말세다. 악당이 용사보다 등급 높고.”
선이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하자 기원은 비꼬듯이 말한다.
“나 이제 악당 아니거든. 그리고 너도 이제 용사 아니고.”
“…….”
기원의 말에 기훈은 순간 우울한 표정을 짓는다. 우림은 흘끔 그를 보고는 선이를 보며 말한다.
“괜찮아. 선이는 우리 집에 시집오면 내가 먹여 살릴게.”
“우와, 언니, 진짜요?”
“밥만 잘 차려주면 돼.”
그 말에 선우는 픽 웃으며 말한다.
“밥은 무슨, 너희 집 거덜 낼 걸? 저년 매끼 얼마나 처먹는지… 어흐억!”
선이는 씩씩거리는 표정으로 손을 내밀고 있다. 선우의 배에는 벽돌이 꽂혀 있다. 선우는 배를 움켜쥐며 몸을 움츠렸고, 기훈은 그녀를 보며 말한다.
“너, 이제 힘 어느 정도 쓸 수 있냐?”
“예? 뭐… 그럭저럭. 저랑 언니 몸무게가… 대, 대강 한 번에 100kg 정도는 들어 올리고 학교에서 여기까지 옮길 수 있어요.”
선이는 계산하는 표정을 짓다가 찔끔하는 표정을 지으며 대강 말한다. 선우는 벽돌을 옆으로 던지며 말한다.
“미친년아! 환력 남아 도냐?”
“아, 뭐! 내 환력 내가 쓰겠다는데, 뭐!”
“그러니까 살이 찌지! 커흐윽!”
선우의 배에 다시 벽돌이 꽂힌다. 선이의 얼굴은 붉어져 있다. 우림은 쿡쿡 웃다가 말한다.
“그런데 그건 왜?”
“…그냥. 넌 어느 정돈데?”
“너부터 말해.”
“…….”
우림의 말에 기훈은 입을 다문다. 우림은 고개를 기울이며 말한다.
“자랑스러운 ‘뇌제(雷’帝)’께서 이제는 번개 한 줌 못 만드는 건 아니겠지?”
“어느 정도는 쓸 수 있어. 다만… 벼락은 이제…….”
기훈은 울컥한 표정을 지었고, 선이는 흘끔흘끔 그의 눈치를 보다가 말한다.
“저, 저도 100㎏이면 이제 거의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예전에는 지형도 바꿨었는데… 이제는 뭐, 그냥… 저랑 언니 워프 시키는 것밖에 안 되고 그래요!”
“…….”
기훈은 분한 표정을 지었고, 선우는 다시 벽돌을 옆으로 던지며 말한다.
“뭐 어때? 넌 어차피 환력에만 의존하는 타입도 아니었고, 몸도 튼튼하잖아. 환력이 없을 때는 우리들 중에서 제일 강한 게 넌데 뭐가 문제야?”
“…다들 환력이 남아 있잖아.”
“아, 그것도 곧 사라지겠지.”
선우는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고, 기훈은 입술을 깨물며 말한다.
“난 이제 진짜 환력이 거의 남지 않았어.”
“…….”
선우는 눈썹을 살짝 긁었고, 기훈은 주먹을 꽉 쥐며 말한다.
“짜증나. 내 몸에 가득 차 있던 환력이 줄어드는 게 느껴져. 그 많던 환력이 이제는 양손에 쥘 수 있을 정도로 적어졌어.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아.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기면? 난 아무것도 못하고 가만히 있어야 해? 죽어야 해? 또 남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야 해? 너희들한테 모든 걸 맡기고 숨어야 해?”
“뭔 헛소리냐. 이제 또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일어나면 어쩔 거냐고!”
선우의 투덜거림에 기훈은 소리쳤고, 선우는 쯧 하고 혀를 차며 말한다.
“우린 이제 용사가 아니야. 용사였던 것도 다 옛날이야기지. 그 일이 끝나고 6년이나 지났어. 내계에서 6년이면 짧은 거 아니야. 애초에 무슨 일이 또 일어나면 어쩔 거냐고? 그땐 다른 용사들이 알아서 하겠지. 우린 그 고생을 했는데 또 용사로 살아야 해? 왜? 이제 다른 사람들한테 맡기면 돼! 뭐가 문제야? 용사로서의 우리 이야기는 이미 끝났어. 우린 이제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고.”
“넌!”
기훈이 갑자기 소리 지른다. 모두들 기훈을 본다. 기훈은 쓰라린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아쉽지도 않냐?”
“…지나간 시절을 그리워한다고 해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아쉬워할 게 뭐가 있어. 미련일 뿐이야.”
선우는 차갑게 말한다. 기훈은 고개를 숙인다. 그의 몸이 떨린다. 선우는 퉁명스럽게 말한다.
“꼬추 달린 놈이 뭘 그걸로 질질 짜냐? 네가 그러니까…….”
“오빠, 좀.”
선이가 그의 옆구리를 찌른다. 선우는 그녀를 본다. 선이는 야차와 같은 얼굴로 그를 보고 있다. 선우는 한숨을 쉬며 우림을 본다.
“우리 집, 비어 있어?”
“응, 비어 있어.”
“선이야. 나 집에 보내줘.”
“알았어.”
선이는 두 말 않고 선우를 집으로 보내준다. 그리고 기훈을 흘끔 보았다가 다른 사람들을 보며 말한다.
“집에 텔레포트로 가고 싶은 사람 있어요?”
“…아니, 그냥 갈게. 선이야, 나중에 톡할게. 먼저 가.”
우림은 그녀의 어깨를 매만져준 다음 손을 거두었고, 선이는 그녀를 보았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다.
“먼저 갈게요.”
슝.
선이도 사라진다. 우림은 우현과 아린을 보며 말한다.
“먼저 가.”
“응.”
“알았어.”
우현과 아린은 나갈 채비를 마치고 바로 나간다. 이제 기원과 기훈만 남았다. 우림은 한숨을 쉬며 말한다.
“기훈아, 선우 말 틀린 거 하나도 없는 거 알지?”
“…….”
“여기 내계야. 우리들이 힘을 가지고 있어봐야 하등 좋을 거 없는 곳이라고. 네 벼락으로 뭘 할 건데? 옆 동네 참교육이라도 시키러 갈까? 아니잖아. 우리 힘을 쓸 곳은 이제 어디도 없어. 써서도 안 되고 말이야.”
“…알아.”
“그런데 가져서 뭐하게? 애초에 우리는 환계에서 너무 힘들었잖아. 모두들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고, 다쳤고, 죽을 뻔했고 괴로웠어. 더 이상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을 게 빤하잖아. 모두들 최선을 다해 재앙을 막았고, 그 덕에 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찾았어. 우린 그걸로 충분하잖아. 이제 우리가 나설 필요는 없잖아. 다들 지쳤어. 굳이 싸울 필요 없잖아. 안 그래?”
“그래도…….”
기훈은 고개를 든다. 얼굴이 눈물로 얼룩져 있다.
“난 계속해서 싸우고 싶어.”
“…너도 진짜.”
우림은 질린 표정을 지으며 일어선다. 그리고 현관으로 향하며 말한다.
“먼저 갈게. 자고 가든가, 말든가 마음대로 해.”
우림은 나갔고, 기훈은 다시 고개를 숙인다. 기원은 팔짱을 끼고 그를 내려다보고 있다. 기훈은 고개를 숙인 채로 말한다.
“…원아.”
“왜, 형.”
“내가 틀린 거야……?”
“…….”
기원은 한숨을 쉬며 말한다.
“나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