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환계의 용사였습니다 4화

And(3)


한편 집에 돌아간 선우는 선이와 싸우고 있다.
“아, 진짜! 사람이 왜 그래! 진짜 정신세계가 글러먹었다니까! 더러워, 진짜!”
“더럽긴 뭐가 더러워? 잘한 건데.”
“좀 그냥 스무스하게 넘어가면 안 돼? 굳이 그걸 콕 집어서 말해야 성이 차겠어?”
선이는 소리를 지르고 선우는 이불을 두르며 말한다.
“기훈이 그 새끼 정신병 고쳐야 한다니까. 애새끼도 아니고, 뭔 소리야? 뭐? 아쉬워? 개소리하고 있네. 다들 힘들었는데 뭘 또 싸우고 싶어 안달이야?”
“그럴 수도 있지, 좀!”
그들이 내계에 돌아온 시점에서 이미 그들의 외형은 지금의 외형과 똑같았다. 그때 우현이 이미지라는 기술로 그들의 모습을 어렸을 때처럼 보이게 했다. 그래서 혼란이 덜했다. 그게 없었으면 몇 년간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을 것이다.
선우는 한숨을 쉬며 말한다.
“우리들 지금 고3이야. 내일 모레면 사회에 나간다고. 거기서 저 새끼 저 용사병 도지면 어떡하려고 그래? 저거 아무리 그래도 몸은 괴물이잖아.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고. 저 몸으로 군대 같은 곳에 가서 전쟁 난 곳에 던져지면 어떡하려고? 뭐 한 수백 명 맨손으로 때려잡을 일 있나…….”
“어쩌겠어? 자기가 못 견디겠다는데. 기훈 오빠도 많은 일 있었잖아. 솔직히 말해서 우리들 모두가 평범하게 잘 살겠다는 건 욕심이지.”
선이는 투덜거리듯이 손을 모으며 말한다.
“다른 언니 오빠들 전부 나나 오빠처럼 평범하게 잘 사는 것도 아니잖아. 다들 혼자서 놀고, 혼자서 하고 싶은 거 하고 그러지. 다 뭐 조금씩 능력 사용하면서 살고 있는데 능력 줄어든다고 서글퍼하는 게 뭐 그리 잘못됐어?”
“그래도 기훈이 저거는 말도 안 되지. 아까 아린이한테 정색하는 거 봤냐?”
“그건 뭐… 좀 그렇긴 했는데.”
선우의 말에 선이는 입술을 우물거린다. 선우는 목을 풀며 말한다.
“아무튼 난 그 녀석 정신병자처럼 행동하는 거 마음에 안 들어. 예전에는 괜찮은 녀석이었는데 지금은 왜 그런지 몰라.”
“난 예전도 지금도 그저 그런데.”
선이는 단호하게 말했고, 선우는 끌끌 웃은 다음 손을 휘휘 저으며 말한다.
“가서 볼일 봅시다. 난 피곤해서 좀 더 자고 싶으니까.”
“밤에 뭐 한다고 그렇게 피곤해?”
“갓겜.”
“쯧쯧, 폐인 같은 게.”
선이는 혀를 차며 방을 나갔고, 선우는 퉁명스럽게 중얼거린다.
“게임이 얼마나 좋은데.”
환계의 용사였던 그는 지금 좋은 게임 폐인이 되었다.

***


“난 간다.”
“응.”
기원은 기훈을 두고 나온다. 그리고 문 앞에서 한숨을 쉰 다음 차가운 표정으로 돌아선다.
‘마음에 안 드는 인간이야. 뭐, 예전 뇌제일 때보다는 낫지만.’
기원은 기훈을 존경하지 않는다. 그가 존경하는 것은 선우뿐이다. 다른 사람들도 인정하지 않는다. 진정한 용사는 선우뿐이라고 그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선우 형의 불멸자는 아직도 잊어지지가 않는다니까.’
기원은 선우의 과거를 떠올리며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하다가 멈춘다. 이질감이 느껴진다. 그는 고개를 돌려 아파트 단지 아래를 바라본다. 무언가 익숙한 거대한 동체가 보인다.
‘뭐였더라…….’
기원은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깊게 생각하다가 순간 떠올린다.
‘아, 그래. 환수 블랙 코이즈. 악마 군단의 졸병 중 하나…였…지?’
사고가 정지된다. 기원은 눈을 비비고 다시 아래를 내려다본다. 둥근 구체인 머리, 송곳처럼 길고 뾰족한 팔, 마네킹 같은 몸체에 조각들이 모여 있는 것 같은 발. 확실하다. 블랙 코이즈다.
‘저, 저게 왜……?!’
기원은 고개를 돌려 304호 문을 본다. 그러다 곧 멈춘다. 그리고 폰을 꺼낸다. 그의 형은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다.
톡! 톡! 톡! 톡!

기원 : 형! 지금 집이죠? 옆에 선이 있어요?
기원 : 형! 여기 지금 304호 앞인데 빨리 오세요!
기원 : 블ㄹ랙코이제으요
기원 : 블랙 코이즈에요!

“…….”
약간 잠이 들었던 선우는 눈을 비비며 폰을 본다. 그리고 잠시 톡의 내용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짓다가 눈을 부릅뜬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서 방문을 발로 차서 열고 옆에 있는 선이의 방문을 두들긴다.
“야! 돼지! 방 안에 있지! 문 열어!”
“아, 뭔데! 시끄럽게!”
벌컥!
선이는 문을 열고 나온다. 얼굴에 경멸의 감정이 떠오른다. 선우는 화내는 건 나중이라고 생각하며 말한다.
“빨리 304호 앞으로 옮겨줘.”
“하! 언제는 공간이동 쓰지 말라며? 걸어서 가지 그래?”
꾹! 꾹!
선우는 선이의 얼굴에 폰을 내밀고 꾹꾹 누르며 말한다.
“시간 없어, 돼지 년아. 빨리 공간이동 시키라고!”
“아, 뭐, 뭔데……?!”
선이는 얼굴에서 폰을 떼고 톡의 내용을 보며 투덜거리듯이 말하다가 경직한다. 그러다 고개를 들어 선우를 보고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오빠, 이거 진짜야……?”
“모르니까 빨리 공간이동 시키라고!”
슝! 착.
원래 위치보다 조금 높게 이동되었다. 선우는 가볍게 착지하고 옆을 본다. 난간 아래에 숨어 있는 기원이 보인다. 선우는 고개를 돌려 아파트 단지 안쪽을 본다. 과연, 그곳에 블랙 코이즈가 있다. 선우는 한숨을 쉰다.
“진짜네.”
슝!
“지, 진짜 나타났어?”
선이도 나타난다. 선이는 선우가 보고 있는 곳을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하는 표정을 짓는다. 선우는 주변을 흘끔흘끔 보며 말한다.
“선이야, 저거 워프 가능하냐?”
“무, 무리야. 저 크기는 지금의 나로선 워프 못 시켜.”
선이의 부정에 선우는 한숨을 쉬머 이마를 짚는다.
“하… 그럼 여기서 처리해야 하는데…….”
CCTV라든가, 혹시나 모를 사람들 때문에 힘을 쓰기도 좀 그렇다. 그때, 블랙 코이즈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자 선우의 왼쪽 눈이 자줏빛으로 물든다.
“그런 거 생각할 시간은 없는 것 같네.”
선우는 허리를 펴며 호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갑자기 블랙 코이즈의 머리 위에 자주색 구멍이 생기더니 거기서 새하얀 손이 튀어나와 블랙 코이즈를 내리찍는다.
뿌직!
이상한 소리를 내며 블랙 코이즈가 찌그러진다. 블랙 코이즈는 입자가 되며 사라지고, 선우의 왼쪽 눈은 원래대로 돌아간다. 선우는 한숨을 쉬며 말한다.
“안 들켰겠지.”
“우와아! 와아! 와아!”
기원은 환호한다. 그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선우는 한숨을 쉬고 선이를 보며 말한다.
“저거 왜 저러냐?”
“6년이 지나도 똥폼은 안 고쳐지네, 오빠. 그래도 뭐,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이번에는 꽤 멋졌어.”
선이는 왠지 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런 더러운 오빠가 멋지다고 생각하다니, 치욕이다.
선우는 끔찍한 소리를 다 들었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뒤돌아선다. 그리고 움찔한다. 문이 열려 있다. 기훈이 보고 있었다.
기훈은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선우는 그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퉁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뭐, 인마.”
“너… 힘을…….”
“뭐, 그냥 손 하나 소환한 건데, 왜?”
“…….”
기훈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쓰라린 표정을 지은 다음 집 안으로 들어가더니 가방을 챙겨서 나온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로 향하며 말한다.
“나 집에 간다.”
“그러든가 말든가.”
선우는 퉁명스럽게 말했고, 기훈은 어기적어기적 사라진다. 기훈이 사라지든가 말든가 기원은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선우를 보며 눈을 반짝이고 있다.
“형, 형! 불멸자도 보여주세요!”
“뭘 보여줘, 미친놈아.”
“보여주세요!”
“습격을 받아야 발동시키지.”
“죄악 쓸게요!”
기원의 말에 선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한다.
“너도 압사당하고 싶지?”
기원은 짜릿함이 가시지 않는다는 듯이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아, 진짜 형 왜 이렇게 멋져요?”
“야, 이 새끼 어떻게 좀 해봐.”
선우는 질겁하는 표정을 지으며 선이를 본다. 선이는 한숨을 쉬며 말한다.
“어떻게 해줄까? 게이 바에 떨어뜨려 줄까?”
“아니, 진짜, 다른 남자들 말고 형이 진짜, 와… 진짜 형이 진정한 용사라니까요!”
기원은 벅찬 감동을 견딜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6년 만에 보는 것이다. 그 감동은 그에게 있어 남다르다. 선우는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그보다 저 녀석, 자살할 것 같은 표정이던데. 어떻게 해봐.”
“몰라요, 저런 형. 자살하든가 말든가.”
“그래도 되냐? 네 형인데.”
“상관없어요. 그것보다 형! 제가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할 테니까 저랑 같이 살아요!”
“이 새끼도 정신병 도졌네. 야, 이거 바다에 좀 빠뜨려.”
“그런데 우리 여기에 계속 있어도 되는 거야? 빨리 사라져야 하는 거 아니야?”
선이는 갑자기 불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선우는 아, 하고 깨달았다는 듯한 소리를 냈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어차피 능력 쓴 거 난 손으로 돌아갈게. 먼저 가.”
“알았어.”
슝.
선이는 곧바로 사라졌고, 선우는 손을 뻗는다. 기원은 환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형! 나중에 봐요!”
“넌 물에 몸 담그고 머리나 식혀.”
선우는 허공을 잡는다. 그대로 선우의 몸이 사라진다.

선우는 선이의 팔을 잡고 있다. 지금 선우와 선이 둘 모두 그들의 집에 있다. 선우는 무엇이든 잡을 수 있고, 무언가를 잡으면 그 무언가를 자신의 앞에 가지고 오거나 그 무언가가 있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선우는 선이의 팔을 놓으며 말한다.
“땡큐.”
“오빠, 블랙 코이즈가 왜 나타났을까?”
“난들 알겠냐.”
“환계에 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몰라.”
“그럼…….”
“모른다고.”
“…….”
선이는 복잡한 얼굴이다. 선우는 뒤돌아서며 말한다.
“나도 모른다고.”
“…알았어.”
선우는 선이의 방을 나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옷장을 본다. 꽤나 불편한 표정이다.
선우는 옷장을 연다. 그리고 옷장 가장 안쪽에 넣어둔 것을 꺼낸다. 반지다. 선우는 그것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옷장 안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옷장을 닫고 침대로 가서 눕는다. 그리고 눈을 감는다.
오랜만에 힘을 써서 그런가. 잠이 온다. 자고 싶다.

***


― 블랙 코이즈가 나타났다고?
“그래. 일단 처리하긴 했어.”
― 환수가… 왜……?
선우는 통화를 하고 있다. 상대는 우림. 우림은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한다.
“눈, 몇 개 남았어?”
― …열 개 정도.
예전에는 만 개의 눈을 동시에 발동시킬 수도 있었는데 이젠 정말 많이 줄었다. 선우는 아주 약간 씁쓸함을 느끼며 말한다.
“최대한 사람들이 많은 곳에 하나씩 붙여놔. 그게 그나마 나을 테니까.”
― 감지는 안 쓸 거야?
“환계랑 여긴 달라. 감지는 오래 못 써. 이 도시에 하루 교통량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자동차 움직이는 거 다 감지하고 그러면 머리 터진다고.”
― 그건 그렇겠네.
선우는 한숨을 쉬고 다시 말한다.
“아무튼 부탁할게. 뭐 보이면 바로 연락하고.”
― 알았어.
“우리 자기, 여자랑 통화 중이야?”
그때, 인구가 그를 껴안고 폰에 대고 신음 소리를 낸다.
“하아앙∼ 자, 자기∼ 누구랑 전화해∼?”
“아, 미친, 또라이 새끼야! 야, 끊어!”
띡.
선우는 질겁하며 전화를 끊고 인구를 밀쳐내며 말한다.
“뭔 미친 짓을 하는 건데!”
“네가 감히 여자랑 전화를 하겠다는 거냐. 그것도 우리들 앞에서?”
당당한 인구의 말에 선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한다.
“혼자 통화하고 오겠다고 했는데 따라온 게 누군데 헛소리냐. 뒤질래?”
인구는 헤헤 웃으며 말한다.
“아무튼 간에 무슨 게임 이야긴데? 눈? 감지? 교통량? 뭔데? 신게임이야?”
인구의 질문에 선우는 폰을 호주머니에 집어넣으며 말한다.
“몰라.”
“네가 이야기하고 네가 모르면 어떻게 해?”
“남의 이야기 멋대로 엿듣고 당당하네.”
“그럴 수도 있지.”
인구는 당당하게 가슴을 폈고, 선우는 그의 가슴을 툭 치며 말한다.
“오늘 피씨 갈 거냐?”
“오늘은 좀…….”
“그러냐.”
선우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고, 인구는 그의 등을 탁탁 치며 말한다.
“괜찮아. 내일 가면 되지!”
“응.”
“아, 7반에 네 친구 있잖아. 기훈이랬나. 오늘 학교 안 왔다며. 무슨 일이냐고 묻던데?”
“안 왔다고?”
“너도 몰랐냐?”
“…….”
선우는 폰을 꺼내 기원에게 톡한다.

선우 : 야. 너희 형은?
기원 : 형이 왜요?
선우 : 학교 안 왔다는데.
기원 : 예?

얘도 모르는 건가, 라고 중얼거리며 선우는 톡을 계속한다.

선우 : 모르면 됐고.
기원 : 잠깐만요. 톡 해볼게요.

그대로 잠깐 톡이 끊겼다가 다시 온다.

기원 : 형이 톡을 안 봐요.
선우 : 나중에 다시 연락할게.
기원 : 예.

선우는 폰을 넣으며 말한다.
“몰랐어.”
“방금 누구랑 톡했어?”
“그걸 내가 왜 말해줘야 하냐?”
“또 여자냐?”
“남자야.”
“보여줘.”
“왜 보여줘? 자꾸 시비 걸래?”
“하하하.”
선우가 울컥하는 표정을 짓자 인구는 웃음을 터뜨렸고, 선우는 잠시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말한다.
“오늘 점심 뭔데?”
“함박 스테이크.”
“아, 나 그거 싫어하는데.”
“나 줘!”
“빵 사주면.”
“콜.”
“금수저 새끼.”
“하하하하.”
인구는 함박웃음을 터뜨렸고, 선우는 옅게 웃으며 그를 보았다가 반으로 들어간다. 수업 받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