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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계의 용사였습니다 5화

And(4)


왠지 더 긴 것 같은 7교시를 마치고 선우는 가방을 챙긴다. 그리고 인구를 보며 말한다.
“가자.”
“먼저 가. 난 누가 마중 온다고 했어.”
“그래?”
“어차피 기원이가 기다리고 있을 거잖아.”
“넌 기원이 왠지 싫어하더라.”
“그렇게 잘생긴 애는 좀 싫어.”
“그건… 그렇지.”
선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방을 메고 교실을 나선다. 교실의 앞문 앞에 기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선우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기원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이상한 것들이 따라오래요.”
“……?”
그때, 양복을 입고 검은 선글라스를 낀 남자 세 명이 그들에게 다가온다. 선우는 그들을 보았고, 그들 중 한 명이 명함을 내밀며 말한다.
“저희는 이런 사람들입니다.”
“…….”
환계관련재앙대책본부. 이름 한번 길다. 선우가 그것을 본 순간 양복의 남자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며 선우에게 달려들려 하다가 멈춘다. 허공에 나타난 손이 그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
옆에 선 다른 사람들도 누군가가 손목을 잡는 것을 느낀다. 선우의 왼쪽 눈동자가 자줏빛으로 물들어 있다. 선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래서요?”
양복을 입은 남자는 침을 꿀꺽 삼킨다.
“…따라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우는 즉답한다. 마음에 안 든다.
“싫다면요?”
“…….”
선우의 반응을 예상하고 바로 제압하려고 했는데, 반대로 제압당해 버렸다. 손목이 잡혔는데 온몸이 안 움직인다. 이게 환계의 힘인가. 선우는 뒤를 흘끔 본다. 학생들이 몰려오고 있다. 검은 양복을 입은 그들을 보며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듯하다.
“선우야?”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인구가 나온다. 선우는 인구를 보고는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의 손목을 놓으며 말한다.
“걸어가면서 얘기하죠.”
“…예.”
선우는 고개를 돌려 인구를 보며 말한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조금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해서.”
인구는 슬쩍 양복을 입은 남자를 보았다가 선우를 보며 방긋 웃는다.
“문제 있으면 말해. 도와줄게.”
“문제없어. 걱정하지 마.”
“오케이, 문제 있으면 바로 말해. 진짜로.”
“문제없다니까.”
인구의 걱정스러운 말에 선우는 묘하게 웃으며 앞장서서 가는 검은 양복의 남자들을 따라간다. 그리고 조용히 속삭인다.
“일단 말할 거 하나, 반말해도 되지?”
“…….”
검은 양복의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선우는 조용히 말한다.
“둘, 다른 애들한테도 이딴 식으로 했으면 전부 죽을 각오하고 있어라.”
“…….”
검은 양복의 남자는 침을 꿀꺽 삼킨다. 선우는 마지막으로 말한다.
“셋, 지금 전화한다. 긴장해라.”
선우는 폰을 꺼낸다. 그리고 우림에게 전화한다.
뚜르르. 삑.
― 왜?
“옆에 선이 있냐?”
― 응.
“양복 입은 놈들은?”
― 선이가 처리했어.
“잠깐만.”
선우는 폰을 내리고 살벌하게 말한다.
“너희들 다 죽을 준비해 둬라.”
검은 양복의 남자는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고, 선우는 다시 폰을 귀에 대고 말한다.
“다친 곳은?”
― 없어.
“다른 애들한테 연락 좀 해줘. 그리고 10분 있다가 다시 전화할게.”
― 응.
삑.
선우는 통화를 끊고 깊은 한숨을 쉰 다음 폰을 호주머니에 넣으며 말한다.
“우리들이 누군지 알아?”
검은 양복의 남자는 슬쩍 그를 보았다가 다시 앞을 본다. 교문이 가까워진다.
“…환계와 관련이 있다고 들었다.”
선우는 무덤덤하게 말한다.
“그런데 어떻게 하려고 했어? 평범한 인간이?”
“우린 특수부대원들이다. 평범한 인간이 아니야.”
“내 눈엔 거기서 거기 같은데, 목숨 부지할 기회를 줄게. 윗대가리 번호 불러.”
“…….”
검은 양복의 남자의 눈동자가 떨린다. 선우는 천천히 숫자를 센다.
“3.”
“…….”
“2.”
“…….”
“1.”
“여기…….”
검은 양복의 남자는 폰을 내민다. 선우는 폰을 받아서 전화번호부를 본다. ‘본부장님’이라고 적혀 있는 번호를 누른다. 그리고 폰을 귀에 댄다.
뚜르르. 뚜르르르. 삑.
― 어, 그래. 붙잡았나?
“뒤질래?”
― …뭐?
선우는 차갑게 말한다.
“나랑 내 친구들, 네가 그렇게 가볍게 볼 사람들이 아니거든. 험한 말은 하기 싫은데 뒤지기 싫으면 네가 직접 찾아와라. 또 따까리들 보내면 목 따인다.”
띡.
선우는 통화를 끊고 앞에 있는 남자에게 폰을 넘기며 말한다.
“이제 가.”
“아, 아니. 이러면 우리가 본부장님한테…….”
“죽는 게 나아, 깨지는 게 나아?”
남자는 당황했고, 선우는 궁금하다는 듯이 묻는다. 남자는 침을 꿀꺽 삼켰다가 옆에 선 사람들을 데리고 사라진다. 선우는 불쾌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기원은 눈을 반짝이며 말한다.
“형, 형, 형은 악당도 어울릴 거 같은데요?”
“시끄러. 기분 안 좋으니까 건들지 마.”
기원은 허허 웃다가 약간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음… 그럼 저희 형도 저 사람들이 데리고 간 걸까요?”
“아마도.”
선우는 10분이 지나자 다시 우림에게 전화를 건다.
뚜르… 삑.
“우리 빼고 다 잡힌 것 같은데? 전화 안 받아.”
“하… X발.”
선우는 고민하다가 말한다.
“카페 밀라였나, 그 사람 거의 없는 카페.”
“너랑 자주 가는 곳?”
“응, 거기. 거기서 기다려.”
“알았어.”
선우는 통화를 종료하고 그 본부장이라는 사람의 전화번호를 누른다. 기원은 신기하다는 듯이 말한다.
“번호 한 번 보고 외운 거예요?”
“오늘 본 거 내일까지는 안 잊어.”
“쩐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삑.
― 여보세요.
“나다. 카페 밀라에서 다섯 시까지 기다린다. 안 오면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을 거라고 판단한다.”
― 자, 잠깐. 이름만 말해주면…….
“서아 여고 근처에 있다.”
삑.
선우는 통화를 종료하고 폰을 아예 꺼버린다. 그리고 고갯짓을 하며 말한다.
“가자.”
“예, 형!”
기원은 환한 표정으로 선우를 따른다.

***


우림과 선이가 다니는 서아 여자 고등학교의 뒤쪽 골목에는 작은 카페가 하나 있다. 우림의 지인이 운영하는 곳이다.
우림의 말에 따르면 굉장히 맛 좋은 커피를 사오는 곳이라고 하는데, 선우는 그 맛을 잘 모른다. 그래서 그냥 카페모카에 휘핑크림 올려서 먹는다. 달아서 맛있다.
“‘환계관련재앙대책본부’라니, 이름도 기네.”
우림은 혀를 찼고, 선이는 아이스 캐러멜 마키아토를 쪽쪽 마시며 말한다.
“큰일 날 뻔했어. 우림 언니가 눈치 못 챘으면 나도 당할 뻔했다니까?”
“그거 칼로리…….”
“꺄아아아아!”
“쉿, 쉿, 쉿.”
“내가 조용히 하길 바라면 좀 닥쳐, 오빠.”
선우가 칼로리를 말하려는 순간 선이는 비명을 질렀고, 선우는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손가락으로 가린다. 선이는 사나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선우는 ‘그럴 거면 다이어트 한다는 말이나 하지 말지, 돼지 년이’라고 중얼거렸고, 선이는 입술을 비쭉 내밀며 말한다.
“아무리 처먹어도 안 찌는 오빠랑 달리 난 살이 잘 붙는 걸 어떻게 해?”
“근육을 키우던가.”
“이 여린 몸에 근육이 붙으면 얼마나 흉하겠어?”
“지방보다는 덜 흉하지 않을까.”
“…….”
선이는 입을 다문다. 우림은 폰을 보며 말한다.
“한 시간도 안 남았는데, 올까?”
“안 오면 그쪽이 후회할 거야. 아니, 후회하게 될 거야.”
선우가 나직하게 말했다. 그는 그럴 수 있다. 우림은 웃으며 말한다.
“그거 참 믿음직하네.”
“허세부리는 거 진짜 더러워.”
“그 더럽다는 말 좀 그만하면 안 되냐?”
“더러운 걸 더럽다고 하지, 깨끗한 걸 더럽다고 할까?”
“안 되겠다. 내일 목욕탕 가야겠어.”
“목욕탕에 가면 몸의 때는 떨어져도 마음의 때는 떨어지지 않을 걸.”
“마치 네 지방처럼?”
“…습, 습, 하아… 라마즈 호흡법. 마음을 다스리고…….”
“임신했냐? 웬 라마즈 호흡법? 배를 보니 임신한 것 같긴 한데…….”
“오빠, 옥상으로 올라와.”
“여기 옥상 없는데.”
선우는 계속해서 선이를 놀렸고, 선이는 주먹을 휘두를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때, 누가 카페 안으로 들어온다. 선우는 고개를 돌려 그 사람을 본다.
아까 찾아왔던 사람들과 똑같은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이다. 꽤 젊은 남자다. 머리를 멋지게 세웠다. 남자는 그들에게 다가오더니 그들의 얼굴을 슥 살피고 말한다.
“너희가 날 불렀나?”
“앉아.”
선우는 명령한다. 본부장이라는 사람은 그를 쏘아보며 말한다.
“길게 얘기할 시간 없다. 본론만 간단하게…….”
“앉아.”
“…….”
선우는 그저 앞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말한다.
“앉아.”
“…싸가지 없는 놈.”
본부장은 의자에 앉는다. 선우는 그를 보지 않고 말한다.
“이름.”
“…세민.”
“내 친구들은?”
“안전하게 보호 중이다.”
“어째서?”
선우의 질문에 세민은 담담하게 말한다.
“현재 이곳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세민의 답에 선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한다.
“그럼 너희의 보호는 안전하다는 거야?”
“물론.”
“증명해 봐.”
선우의 말에 세민은 얼굴을 찌푸리며 말한다.
“새끼, 학생이 말 X나 짧네. 내가 네 친구냐?”
스륵.
“……?”
그때 세민의 목에 무언가 닿는 감촉이 느껴진다. 세민은 고개를 살짝 내렸다. 턱에도 무언가 닿는다. 손이다. 선우는 계속 앞을 본 채로 말한다.
“질문에만 대답해. 네놈들의 보호가 안전하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거냐?”
“…뭘로 날… 켁! 케헥!”
세민이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 손이 그의 목을 조른다. 세민은 고통스럽게 기침했고, 선우는 무덤덤하게 말한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허억… 허억… 허억…….”
세민은 힘겹게 숨을 골랐고, 선우는 숫자를 센다.
“3.”
“허억… 헉…….”
“2.”
“후… 후우…….”
“1.”
“너, 너희들도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잖아!”
세민은 한마디를 내뱉었고, 선우는 픽 웃으며 말한다.
“능일동에 있는 스칼라 빌딩 5층?”
“……!”
세민의 눈동자가 순간 떨린다. 선우는 무덤덤하게 말한다.
“지겹도록 봐온 애들이야. 걔들 기운을 이 도시 안에서 찾는 것 정도는 간단하다고. 기운 차단도 못하잖아. 그러면서 무슨 ‘안전하게’라는 거야?”
“이게 무슨 무협지도 아니고…….”
세민은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선우는 그를 바라본다. 눈동자가 차갑게 식어 있다.
“왜 환수가 이곳에 나타난 거지?”
“우리도 모른다. 갑작스런 이상 현상이라 급히 해결책을 찾고 있는 중이다.”
“우리들에 대해선 어떻게 알았지?”
“6년 전 기사에서 너희들에 대해 알아냈다. 이 조직은 벌써 10년도 더 전에 만들어진 조직이다. 6년 전 그 사건이 환계와 연관되었다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었다. 그때 우리들은 너희들을 주목하고 있었지만 너희들은 뚜렷한 특이 행동을 하지 않았고, 우선은 너희들에 대한 경계를 풀었지.”
그 말에 우림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그런데 왜 갑자기 또 신경을 쓰는 거죠?”
“너희들이 특별한 힘을 쓰는 것을 목격했으니까.”
‘능력도 좋다, 미친놈들.’
어떻게든 감시카메라를 전부 부수든가 했어야 했다. 선우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말한다.
“우리들을 모아서 무엇을 할 생각이었지?”
“몇 가지 질문. 그리고 허락해 준다면 몇 가지 실험도.”
“재미있네. 우리가 몸을 대줄 거라고 생각하냐?”
“대의를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는 희생은 필요한 법이지.”
그의 말에 선우는 딱하다는 표정을 지었다가 이번에는 진짜로 한숨을 쉬며 말한다.
“하… 그럼 마지막 질문. 이딴 짓을 하고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선우는 주먹을 쥔다. 세민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한다.
“환계와 내계의 질서를 위한 일이다. 너희들의 협력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된다.”
“협력을 원한다면 좀 더 부드러운 방법이 있었을 텐데, 왜 그런 걸 안 썼을까?”
“설득에 시간이 걸린다면 안 된다. 언제 환수가 나타날지 모르는 이런 상황에선 1분 1초가 아쉽다.”
“그러다가 이렇게 몇 시간을 날려먹었잖아.”
“너희가 순순히 잡혀줬으면 이럴 일도 없었을 거다.”
“아, 그래서 너희는 잘못이 없고, 우리가 잘못이 있는 거다?”
선우의 주먹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간다. 세민은 조소를 지으며 말한다.
“어리군. 생각이 짧아. 꼭 필요한 일에는 어쩔 수 없다, 라고 납득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는 법이야.”
“넌 뭐 얼마나 늙었다고.”
선우는 투덜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