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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계의 용사였습니다 8화
해프닝(2)
선우의 비장한 말에 선이는 폰을 톡톡 두드린다. 잠시 후 폰이 울리고 선이는 호호 웃으며 말한다.
“우림 언니가 오빠 안 오면 오빠 학교에 찾아갈 거래. 그것도 빨간 드레스 입고. 빨간. 드레스. 가슴 파인 거.”
“…….”
“나도 옆에 있을게. 난 분홍색이 좋겠는데.”
“미친년들이 사람 하나 병신으로 만들려고 하네.”
선우는 현기증이 난다는 듯이 이마를 잡고 눈을 감았다가 한숨을 쉬며 말한다.
“그래, 알았어. 가면 되잖아.”
선우는 손을 닦는다. 꽤 많이 먹었다. 선우는 일어서며 말한다.
“난 일찍 잔다.”
“잠은 무슨, 게임하러 가는 거 아니야?”
선이의 말에 선우는 움찔했다가 슬쩍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본 다음 다시 갈 길을 가며 말한다.
“인구가 불러서…….”
“쯧쯧, 내일도 늦잠 자면 명치빵 때릴 거야.”
“끔찍한 소리하네.”
선우는 혀를 차며 양치를 하러 욕실로 갔다가 자신의 방으로 간다. 선이는 마저 치킨을 먹고 청소를 한다. 그러다가 선우의 방을 향해 소리친다.
“치우는 것 좀 도와!”
물론 선우는 대답하지 않는다.
선우는 세면대 앞에서 머리를 말리고 있다. 대강 말려도 예쁘게 정리가 되는 축복받은 머리카락이다. 이거 하나는 정말 마음에 드는 것 같다. 선우는 슬쩍 에센스를 본다. 선이의 것인데 써도 괜찮겠지?
“오빠! 빨리 안 나와?”
움찔!
그때 밖에서 선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선우는 슬쩍 뒤를 보았다가 에센스를 짜며 말한다.
“옷 입고 갈게.”
“무슨 샤워를 한 시간이나 해? 우리 집 수도세의 반은 오빠 샤워 때문에 나오는 거 알아?”
“거 시끄럽게 자꾸 떽떽거리네.”
선우는 에센스를 바른 머리카락을 털고 옷을 입으며 나간다. 선이는 그의 머리를 흘끔 보고는 문을 열며 말한다.
“에센스 새 걸로 사둬.”
“뭐?”
“처맞고 싶어?”
“아니…….”
그냥 안 바를 걸 하고 후회한다. 그런데 에센스 바른 게 티가 나나? 잘 모르겠는데 말이다.
진한 청바지에 세로 줄무늬 옅은 청셔츠. 셔츠 끝은 바지 안에 넣고 소매는 접어서 팔꿈치를 보이게 한다. 깔끔하게 예쁘다. 단 하나 흠이라면 굽이 조금 높아 보이는 신발이랄까, 그런데 그게 왠지 좀 더 귀여워 보인다. 우림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배에 있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던 후드를 입은 선이는 한손을 주머니에서 빼고 흔들며 말한다.
“언니, 헬로. 오래 기다렸어요?”
“아냐, 나도 방금 왔어.”
“오빠가 샤워를 한 시간이나 했다니까요?”
“샤워하면서 뭐 했다니?”
“뭐 하긴. 잡생각 했지.”
선우는 그녀에게 다가가며 퉁명스럽게 말한다. 선우는 호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 있다. 우림은 그를 올려다보며 픽 웃는다.
“에센스 발랐네.”
“…그걸 어떻게 알았냐?”
“딱 보면 알지.”
“…….”
떡졌나? 라고 생각하며 선우는 폰을 꺼내 카메라를 켜고 자신의 머리를 살폈고, 우림은 고개를 돌리며 말한다.
“그럼 갈까?”
“아, 잠깐만요. 아직 한 사람 안 왔잖아요.”
“……?”
우림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선우는 기겁하며 말한다.
“또 누구 오냐? 기원이는 아니지?”
“혹시 정말로 몰라서 물어보는 거야?”
선이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선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한숨을 쉬며 말한다.
“그래. 안 오면 이상하긴 하지.”
“자기, 나 안 기다렸어?”
그때 누군가가 선우의 목을 콕 찌르며 말을 건다. 선우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본다. 순간 움찔한다.
아린이다. 흰색 배경의 작은 꽃들이 그려진 짧은 원피스에 베이지색 재킷을 입었다. 검은 스타킹 때문에 다리에 더 눈이 간다.
선우는 침을 꿀꺽 삼켰고, 아린은 그와 팔짱을 끼며 말한다.
“나 빼고 이러기 있기, 없기?”
“저기요? 놓아주시면 안 될까요?”
선우는 무언가 굉장한 것이 닿는 감촉을 애써 무시하여 태연함을 유지하며 팔을 흔든다. 아린은 쿡쿡 웃으며 그의 팔을 놓고 말한다.
“자기, 내 생각 안 났어?”
“아니, 그냥 선이가 같이 가자고 한 거라서…….”
선우는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아린은 다시 쿡쿡 웃는다. 그러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게 더 무섭다. 선우는 침을 꿀꺽 삼켰고, 선이는 호홍 하고 웃으며 말한다.
“그것보다 오빠, 고맙다고 말하는 게 우선 아니야? 우림 언니 또 목 졸릴 뻔한 거 내가 막아줬잖아.”
“고맙다, 그래.”
선우는 한숨을 쉬었고, 우림은 우물쭈물하다가 아린에게 다가가서 속삭인다.
“오전에만 잠깐 놀 생각이었어.”
“아, 뭐, 그러시겠지.”
“이렇게 된 거 너도 같이 놀면 되잖아.”
“놀 거야. 알아서 잘.”
아린의 퉁명스러운 대꾸에 우림은 순간 울컥한 표정을 지었고, 선우는 혀를 차며 말한다.
“일단 가자. 옷 사야 할 거 아니야. 나 오래 서 있기 싫어.”
“…알았어.”
우림은 그렇게 말하며 앞장을 섰고, 세 명은 그런 우림의 뒤를 따른다.
우림의 뒤를 따르던 셋은 우림이 들어가려고 하는 곳을 보고는 멈춘다. 우림은 셋이 따라오지 않는 것을 느끼고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려 그들을 보았고, 선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한다.
“네년이 금수저라고 우리들까지 이런 곳에 들어가도 되는 건 아닌 것 같지 않냐?”
고급 브랜드만 취급하는 백화점이다. 서아 그룹 계열사다. 우림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한다.
“왜? 내가 사줄게. 아린이 너도 골라.”
“필요 없거든. 나 돈 많거든.”
아린은 퉁명스럽게 말했고, 우림은 픽 웃으며 말한다.
“네가? 왜 돈이 많아?”
우림의 말에 아린은 방긋 웃으며 말한다.
“너, 희귀한 곤충이 얼마나 비싼지 모르는구나?”
“벌레 팔아서 돈 벌었어?”
“역시 사람은 돈이 많다고 다가 아니야. 경박하게 말하는 걸 보니 걸치고 있는 건 비싸도 입은 싼가 봐?”
“벌레 팔아서 돈 버는 걸 벌레 팔아서 돈 벌었다고 하지, 다른 말 있어?”
“내가 말한 곤충이란 단어는 사전에 없는 단어구나?”
부들부들.
선이는 부들부들 떨고 있다. 웃음을 참기 위해서인지 입술까지 깨물고 있다. 선우는 그런 선이를 내려다보고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가 우림과 아린을 보며 말한다.
“자꾸 그러면 나 그냥 돌아간다. 그냥 적당히 괜찮은 곳 가면 되지, 이런 비싼 곳에서 옷 얻어 입을 정도로 염치가 없진 않아.”
“밥은 잘 먹잖아.”
“밥은 먹으면 끝인데 옷은 계속 입는 거잖아. 그리고 비싼 브랜드 옷 입으면 뭔가 안심이 안 되거든. 난 저렴한 게 좋아.”
선우의 단호한 말에 우림은 입술을 우물거렸고, 선우는 선이를 툭 치며 말한다.
“야, 네가 앞장 서. 빨리 옷 고르고 퇴근하고 싶다고.”
“왜? 우림 언니랑 아린 언니 싸우게 내버려두자. 재밌는데.”
“바닥에 꽂히고 싶냐?”
“호홍, 뭐, 어차피 싸울 것 같으니까 상관없지만.”
선이는 그렇게 말하며 앞장을 선다. 선우는 그런 선이를 뒤따랐고, 우림과 아린은 무언가를 주제로 그의 뒤에서 뭔가 언쟁을 벌이고 있다. 시끄럽다.
선이의 진행으로 어느 정도 쇼핑이 끝날 것 같은 상황까지 왔지만 선우는 울컥울컥 폭발할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고, 우림과 아린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선이는 계속 움찔움찔하고 있다. 꿀잼이다.
우림과 아린은 사사건건 본능적으로 싸우고 있다. 선우는 그것을 말리고, 말릴 때마다 분노 게이지가 올라가고 있었다.
별것도 아닌 일로 싸운다. 예를 들면 고른 옷의 색, 사이즈, 심지어는 종류, 그리고 시선, 단어, 주제 등 온갖 것으로 싸운다. 결국 우림과 아린의 복부에 선우의 주먹이 꽂혔다.
우림과 아린 모두 신체 능력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지라 그다지 힘을 주지 않은 선우의 주먹에 아파하지는 않았지만 선우의 분노가 어디까지 쌓였는지는 알게 되었다.
“호홍홍, 오빠, 여자한테 가차 없네?”
선이는 이상한 웃음을 흘렸고 선우는 혀를 차며 말한다.
“뭐, 문제 있냐?”
“없어. 그냥 웃겨서. 악당이랑 용사가 싸우는 게 왜? 재밌지 않아?”
“재미없는데.”
선우의 답에 선이는 호홍 웃으며 우림과 아린을 본다. 우림과 아린은 여전히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고 선이는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말한다.
“난 저 둘이 계속 싸웠으면 좋겠는데.”
“넌 또 왜 그런 거지같은 성격이 되어선…….”
“난 원래 이랬는데?”
“음…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선이의 답에 선우는 납득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고, 선이는 호홍 웃으며 말한다.
“그나저나 오빠 성격에 꽤 오래 버티네? 한참 전에 돌아갈 거라고 말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네 말마따나 옷은 사야 하니까.”
선우는 투덜거리듯이 결국 제일 마지막에 산 그의 옷을 흔든다. 선이는 쿡쿡 웃다가 순간 기분이 나쁜 표정을 짓는다. 선우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그런 그들에게 누군가가 말을 걸어온다.
“역시 선우 형이었네. 형! 여긴 웬일이에요?”
선우는 고개를 돌려 그에게 말을 건 사람을 바라본다. 기원이다. 기원은 누군가와 팔짱을 끼고 있다. 예쁘다. 선우는 순간 울컥하는 표정을 지었고, 기원은 우림과 아린을 번갈아가며 본 다음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
“데이트에요?”
“뭔 헛소리냐?”
선우는 바로 부정했고, 기원은 하하 웃었다가 팔짱을 낀 사람을 보며 말한다.
“친한 형이야. 선우 형이라고, 형, 이쪽은 소연이에요. 제 여자친구.”
“그러냐.”
선우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고, 기원은 슬쩍 선이를 본다. 선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다. 기원은 방긋 웃으며 말한다.
“안녕, 선이야? 이쪽은…….”
퉁!
“커헉!”
선이의 주먹이 기원의 배에 정통으로 꽂힌다. 크게 울리는 소리가 주변에 들릴 정도였다. 선이는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소연은 비명을 지르려고 했고, 기원은 그녀의 입을 막으며 말한다.
“괘, 괜찮아. 자주 있는 일이야.”
“자, 자주 있는 일?”
소연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선이는 옆에 침을 퉤 하고 뱉으며 말한다.
“친한 척하지 마라. 기분 나쁘니까.”
“응, 미안.”
기원은 하하 웃었고, 선이는 혀를 차며 돌아선다.
“저 먼저 가볼게요.”
“아, 아니, 야, 그냥 가면 어떡해? 커피라도 한잔하고 가자.”
선우는 당황하며 말했고, 선이는 그를 노려본다. 선우는 움찔했고, 우림이 조심스럽게 말한다.
“점심은 먹고 헤어지자. 오늘 점심 먹고 싶은 거 생각해뒀어. 규카츠, 규카츠.”
“…규카츠요?”
선이는 반색하며 우림을 보았고, 선우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쉰다. 아린은 마른침을 삼켰고, 기원은 방긋 웃으며 그들에게 손을 흔든다.
“그럼 전 먼저 가볼게요.”
“어, 다음에 보자.”
“예, 형.”
그들에게서 조금 떨어진 기원은 한숨을 쉬며 배를 쓰다듬는다. 내장이 파열된 것 같다. 회복시키려면 시간이 조금 걸리려나. 수연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한다.
“누구야? 방금 뭐야? 무슨 일이야?”
“별거 아니야. 그냥 평소에도 있는…….”
기원은 허허 웃는다.
“해프닝이야.”
악당이었을 때 기원은 선이에게 꽤 지독한 짓을 했었다.
해프닝(2)
선우의 비장한 말에 선이는 폰을 톡톡 두드린다. 잠시 후 폰이 울리고 선이는 호호 웃으며 말한다.
“우림 언니가 오빠 안 오면 오빠 학교에 찾아갈 거래. 그것도 빨간 드레스 입고. 빨간. 드레스. 가슴 파인 거.”
“…….”
“나도 옆에 있을게. 난 분홍색이 좋겠는데.”
“미친년들이 사람 하나 병신으로 만들려고 하네.”
선우는 현기증이 난다는 듯이 이마를 잡고 눈을 감았다가 한숨을 쉬며 말한다.
“그래, 알았어. 가면 되잖아.”
선우는 손을 닦는다. 꽤 많이 먹었다. 선우는 일어서며 말한다.
“난 일찍 잔다.”
“잠은 무슨, 게임하러 가는 거 아니야?”
선이의 말에 선우는 움찔했다가 슬쩍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본 다음 다시 갈 길을 가며 말한다.
“인구가 불러서…….”
“쯧쯧, 내일도 늦잠 자면 명치빵 때릴 거야.”
“끔찍한 소리하네.”
선우는 혀를 차며 양치를 하러 욕실로 갔다가 자신의 방으로 간다. 선이는 마저 치킨을 먹고 청소를 한다. 그러다가 선우의 방을 향해 소리친다.
“치우는 것 좀 도와!”
물론 선우는 대답하지 않는다.
선우는 세면대 앞에서 머리를 말리고 있다. 대강 말려도 예쁘게 정리가 되는 축복받은 머리카락이다. 이거 하나는 정말 마음에 드는 것 같다. 선우는 슬쩍 에센스를 본다. 선이의 것인데 써도 괜찮겠지?
“오빠! 빨리 안 나와?”
움찔!
그때 밖에서 선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선우는 슬쩍 뒤를 보았다가 에센스를 짜며 말한다.
“옷 입고 갈게.”
“무슨 샤워를 한 시간이나 해? 우리 집 수도세의 반은 오빠 샤워 때문에 나오는 거 알아?”
“거 시끄럽게 자꾸 떽떽거리네.”
선우는 에센스를 바른 머리카락을 털고 옷을 입으며 나간다. 선이는 그의 머리를 흘끔 보고는 문을 열며 말한다.
“에센스 새 걸로 사둬.”
“뭐?”
“처맞고 싶어?”
“아니…….”
그냥 안 바를 걸 하고 후회한다. 그런데 에센스 바른 게 티가 나나? 잘 모르겠는데 말이다.
진한 청바지에 세로 줄무늬 옅은 청셔츠. 셔츠 끝은 바지 안에 넣고 소매는 접어서 팔꿈치를 보이게 한다. 깔끔하게 예쁘다. 단 하나 흠이라면 굽이 조금 높아 보이는 신발이랄까, 그런데 그게 왠지 좀 더 귀여워 보인다. 우림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배에 있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던 후드를 입은 선이는 한손을 주머니에서 빼고 흔들며 말한다.
“언니, 헬로. 오래 기다렸어요?”
“아냐, 나도 방금 왔어.”
“오빠가 샤워를 한 시간이나 했다니까요?”
“샤워하면서 뭐 했다니?”
“뭐 하긴. 잡생각 했지.”
선우는 그녀에게 다가가며 퉁명스럽게 말한다. 선우는 호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 있다. 우림은 그를 올려다보며 픽 웃는다.
“에센스 발랐네.”
“…그걸 어떻게 알았냐?”
“딱 보면 알지.”
“…….”
떡졌나? 라고 생각하며 선우는 폰을 꺼내 카메라를 켜고 자신의 머리를 살폈고, 우림은 고개를 돌리며 말한다.
“그럼 갈까?”
“아, 잠깐만요. 아직 한 사람 안 왔잖아요.”
“……?”
우림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선우는 기겁하며 말한다.
“또 누구 오냐? 기원이는 아니지?”
“혹시 정말로 몰라서 물어보는 거야?”
선이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선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한숨을 쉬며 말한다.
“그래. 안 오면 이상하긴 하지.”
“자기, 나 안 기다렸어?”
그때 누군가가 선우의 목을 콕 찌르며 말을 건다. 선우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본다. 순간 움찔한다.
아린이다. 흰색 배경의 작은 꽃들이 그려진 짧은 원피스에 베이지색 재킷을 입었다. 검은 스타킹 때문에 다리에 더 눈이 간다.
선우는 침을 꿀꺽 삼켰고, 아린은 그와 팔짱을 끼며 말한다.
“나 빼고 이러기 있기, 없기?”
“저기요? 놓아주시면 안 될까요?”
선우는 무언가 굉장한 것이 닿는 감촉을 애써 무시하여 태연함을 유지하며 팔을 흔든다. 아린은 쿡쿡 웃으며 그의 팔을 놓고 말한다.
“자기, 내 생각 안 났어?”
“아니, 그냥 선이가 같이 가자고 한 거라서…….”
선우는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아린은 다시 쿡쿡 웃는다. 그러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게 더 무섭다. 선우는 침을 꿀꺽 삼켰고, 선이는 호홍 하고 웃으며 말한다.
“그것보다 오빠, 고맙다고 말하는 게 우선 아니야? 우림 언니 또 목 졸릴 뻔한 거 내가 막아줬잖아.”
“고맙다, 그래.”
선우는 한숨을 쉬었고, 우림은 우물쭈물하다가 아린에게 다가가서 속삭인다.
“오전에만 잠깐 놀 생각이었어.”
“아, 뭐, 그러시겠지.”
“이렇게 된 거 너도 같이 놀면 되잖아.”
“놀 거야. 알아서 잘.”
아린의 퉁명스러운 대꾸에 우림은 순간 울컥한 표정을 지었고, 선우는 혀를 차며 말한다.
“일단 가자. 옷 사야 할 거 아니야. 나 오래 서 있기 싫어.”
“…알았어.”
우림은 그렇게 말하며 앞장을 섰고, 세 명은 그런 우림의 뒤를 따른다.
우림의 뒤를 따르던 셋은 우림이 들어가려고 하는 곳을 보고는 멈춘다. 우림은 셋이 따라오지 않는 것을 느끼고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려 그들을 보았고, 선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한다.
“네년이 금수저라고 우리들까지 이런 곳에 들어가도 되는 건 아닌 것 같지 않냐?”
고급 브랜드만 취급하는 백화점이다. 서아 그룹 계열사다. 우림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한다.
“왜? 내가 사줄게. 아린이 너도 골라.”
“필요 없거든. 나 돈 많거든.”
아린은 퉁명스럽게 말했고, 우림은 픽 웃으며 말한다.
“네가? 왜 돈이 많아?”
우림의 말에 아린은 방긋 웃으며 말한다.
“너, 희귀한 곤충이 얼마나 비싼지 모르는구나?”
“벌레 팔아서 돈 벌었어?”
“역시 사람은 돈이 많다고 다가 아니야. 경박하게 말하는 걸 보니 걸치고 있는 건 비싸도 입은 싼가 봐?”
“벌레 팔아서 돈 버는 걸 벌레 팔아서 돈 벌었다고 하지, 다른 말 있어?”
“내가 말한 곤충이란 단어는 사전에 없는 단어구나?”
부들부들.
선이는 부들부들 떨고 있다. 웃음을 참기 위해서인지 입술까지 깨물고 있다. 선우는 그런 선이를 내려다보고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가 우림과 아린을 보며 말한다.
“자꾸 그러면 나 그냥 돌아간다. 그냥 적당히 괜찮은 곳 가면 되지, 이런 비싼 곳에서 옷 얻어 입을 정도로 염치가 없진 않아.”
“밥은 잘 먹잖아.”
“밥은 먹으면 끝인데 옷은 계속 입는 거잖아. 그리고 비싼 브랜드 옷 입으면 뭔가 안심이 안 되거든. 난 저렴한 게 좋아.”
선우의 단호한 말에 우림은 입술을 우물거렸고, 선우는 선이를 툭 치며 말한다.
“야, 네가 앞장 서. 빨리 옷 고르고 퇴근하고 싶다고.”
“왜? 우림 언니랑 아린 언니 싸우게 내버려두자. 재밌는데.”
“바닥에 꽂히고 싶냐?”
“호홍, 뭐, 어차피 싸울 것 같으니까 상관없지만.”
선이는 그렇게 말하며 앞장을 선다. 선우는 그런 선이를 뒤따랐고, 우림과 아린은 무언가를 주제로 그의 뒤에서 뭔가 언쟁을 벌이고 있다. 시끄럽다.
선이의 진행으로 어느 정도 쇼핑이 끝날 것 같은 상황까지 왔지만 선우는 울컥울컥 폭발할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고, 우림과 아린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선이는 계속 움찔움찔하고 있다. 꿀잼이다.
우림과 아린은 사사건건 본능적으로 싸우고 있다. 선우는 그것을 말리고, 말릴 때마다 분노 게이지가 올라가고 있었다.
별것도 아닌 일로 싸운다. 예를 들면 고른 옷의 색, 사이즈, 심지어는 종류, 그리고 시선, 단어, 주제 등 온갖 것으로 싸운다. 결국 우림과 아린의 복부에 선우의 주먹이 꽂혔다.
우림과 아린 모두 신체 능력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지라 그다지 힘을 주지 않은 선우의 주먹에 아파하지는 않았지만 선우의 분노가 어디까지 쌓였는지는 알게 되었다.
“호홍홍, 오빠, 여자한테 가차 없네?”
선이는 이상한 웃음을 흘렸고 선우는 혀를 차며 말한다.
“뭐, 문제 있냐?”
“없어. 그냥 웃겨서. 악당이랑 용사가 싸우는 게 왜? 재밌지 않아?”
“재미없는데.”
선우의 답에 선이는 호홍 웃으며 우림과 아린을 본다. 우림과 아린은 여전히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고 선이는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말한다.
“난 저 둘이 계속 싸웠으면 좋겠는데.”
“넌 또 왜 그런 거지같은 성격이 되어선…….”
“난 원래 이랬는데?”
“음…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선이의 답에 선우는 납득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고, 선이는 호홍 웃으며 말한다.
“그나저나 오빠 성격에 꽤 오래 버티네? 한참 전에 돌아갈 거라고 말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네 말마따나 옷은 사야 하니까.”
선우는 투덜거리듯이 결국 제일 마지막에 산 그의 옷을 흔든다. 선이는 쿡쿡 웃다가 순간 기분이 나쁜 표정을 짓는다. 선우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그런 그들에게 누군가가 말을 걸어온다.
“역시 선우 형이었네. 형! 여긴 웬일이에요?”
선우는 고개를 돌려 그에게 말을 건 사람을 바라본다. 기원이다. 기원은 누군가와 팔짱을 끼고 있다. 예쁘다. 선우는 순간 울컥하는 표정을 지었고, 기원은 우림과 아린을 번갈아가며 본 다음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
“데이트에요?”
“뭔 헛소리냐?”
선우는 바로 부정했고, 기원은 하하 웃었다가 팔짱을 낀 사람을 보며 말한다.
“친한 형이야. 선우 형이라고, 형, 이쪽은 소연이에요. 제 여자친구.”
“그러냐.”
선우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고, 기원은 슬쩍 선이를 본다. 선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다. 기원은 방긋 웃으며 말한다.
“안녕, 선이야? 이쪽은…….”
퉁!
“커헉!”
선이의 주먹이 기원의 배에 정통으로 꽂힌다. 크게 울리는 소리가 주변에 들릴 정도였다. 선이는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소연은 비명을 지르려고 했고, 기원은 그녀의 입을 막으며 말한다.
“괘, 괜찮아. 자주 있는 일이야.”
“자, 자주 있는 일?”
소연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선이는 옆에 침을 퉤 하고 뱉으며 말한다.
“친한 척하지 마라. 기분 나쁘니까.”
“응, 미안.”
기원은 하하 웃었고, 선이는 혀를 차며 돌아선다.
“저 먼저 가볼게요.”
“아, 아니, 야, 그냥 가면 어떡해? 커피라도 한잔하고 가자.”
선우는 당황하며 말했고, 선이는 그를 노려본다. 선우는 움찔했고, 우림이 조심스럽게 말한다.
“점심은 먹고 헤어지자. 오늘 점심 먹고 싶은 거 생각해뒀어. 규카츠, 규카츠.”
“…규카츠요?”
선이는 반색하며 우림을 보았고, 선우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쉰다. 아린은 마른침을 삼켰고, 기원은 방긋 웃으며 그들에게 손을 흔든다.
“그럼 전 먼저 가볼게요.”
“어, 다음에 보자.”
“예, 형.”
그들에게서 조금 떨어진 기원은 한숨을 쉬며 배를 쓰다듬는다. 내장이 파열된 것 같다. 회복시키려면 시간이 조금 걸리려나. 수연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한다.
“누구야? 방금 뭐야? 무슨 일이야?”
“별거 아니야. 그냥 평소에도 있는…….”
기원은 허허 웃는다.
“해프닝이야.”
악당이었을 때 기원은 선이에게 꽤 지독한 짓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