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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계의 용사였습니다 10화
해프닝(4)
“뭐 어떡해? 오늘은 여기서 그냥 헤어져? 할 이야기도 그럭저럭 다한 것 같은데.”
이야기가 대강 마무리된 것 같자 우림은 그들의 의중을 묻는다. 선이는 빨대를 쪽쪽 빨며 말한다.
“저야 뭐, 이대로 퇴근해도 되는데.”
웅.
그때, 선우의 폰이 울린다. 선우는 폰을 보고는 일어나면서 말한다.
“나, 다른 친구가 불러서 이만.”
“어디 가는데?”
“피씨.”
선우의 한 치 망설임도 없는 대답에 선이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한다.
“으, 극혐.”
“갓겜은 해보면 달라.”
선우는 다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게임을 즐기지 않는 자가 어찌 게임을 즐기는 자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선우 너도 시계 하는 거야?”
아린은 가방을 정리하며 묻고 선우는 인구에게 답장을 보내며 말한다.
“애들이 하니까.”
“나도 하러 갈까∼”
아린의 말에 선우는 침을 꿀꺽 삼킨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답한다.
“남자 셋이 모여서 노는 건데 네가 끼면 좀 그렇지.”
“농담이야, 농담.”
아린은 너스레를 떨듯 손을 흔들었고, 선우는 선이를 지나쳐 나가며 말한다.
“그럼 다음에 봐.”
“잘 가.”
“나중에 집에 올 때 전화해.”
“엉.”
선우는 손을 흔들며 사라졌고, 아린은 선우의 뒷모습을 보다가 말한다.
“그거 재밌나?”
“몰라.”
“그래픽은 좋던데요?”
“…해볼까.”
“진심이야?”
“고민하고 있어.”
우림은 아린을 보았고, 아린은 고민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우림은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폰을 보며 말한다.
“할 거면 같이 하고.”
“진심?”
“뭐… 괜찮지 않을까.”
선우가 하는 것에는 흥미가 생긴다.
인구와 경준, 그리고 선우는 피씨에서 나란히 앉아 게임을 하고 있다.
“위에 엉덩이, 위에 엉덩이.”
“네가 따, 미친놈아.”
“내가?”
“나 지금 송 여사 아니라고.”
“음… 노력해 볼… 아, 죽었엉.”
“쓸모없는 새끼.”
“정의충으로 다시 올게.”
“하… 너 정의충으로 엉덩이 딸 수 있냐?”
“엉덩이 내가 땄어.”
“굿.”
“그럼 다시 진진자라로.”
“벌레 새끼.”
인구는 트롤을 담당하고, 경준은 캐리를 담당하고, 선우는 욕설을 담당하고 있다. 선우는 한참 게임을 하다가 말한다.
“그러고 보니 너희 누나 만났는데…….”
“우리 누나?”
“응.”
선우의 말에 인구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한다.
“그 못생긴 년을 어디서 봤는데?”
“뭐… 어쩌다가.”
인구는 혀를 쯧쯧 차며 말한다.
“그런 년이랑 엮이지 마. 그년 대학 졸업하고 이상한 곳에 취직해서 집에 얼굴도 안 비침. 나야 좋지만.”
“엮이긴 뭘 엮여. 그냥 얼굴 한 번 봤다고.”
선우의 대답에 인구는 몸서리를 치며 말한다.
“언급도 하지 마, 그런 년. 못생기고 포악한 멧돼지 같은 년. 밀렵꾼한테 사냥당해야 한다니까.”
인구는 투덜거리다가 움찔한다. 죽었다. 인구는 한숨을 쉰다.
“하… 네가 괜히 끔찍한 년 이야기해서 부정 탔잖아. 그런 년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
“네가 뒤진 건 네놈 손가락 문제인 거고.”
“아냐. 그년 이야기만 나오면 부정 타는 거야.”
“점령지로 오기나 해.”
경준은 퉁명스럽게 말한다. 빨리 게임 끝내야지, 뭘 하고 있는 건지…….
뚜르르르. 삑.
“나 지금 들어가고 있어.”
선우는 버스에서 내려 선이에게 전화를 건다. 선이는 담담하게 말한다.
“오빠, 엄마랑 아빠 왔어.”
“웬일로 왔대?”
선우는 놀랍다는 듯이 물었고 선이는 귀찮다는 듯이 말한다.
“프로젝트 하나 끝났대.”
“하… 오늘은 누구 집에서 자지.”
“들어와. 같이 저녁 먹자고 하셔.”
한숨을 쉬며 말하는 그에게 선이는 무덤덤하게 명령했고, 선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한다.
“뭐? 왜?”
“같이 먹고 싶나 보지.”
“끔찍한 소리하네.”
선우는 몸을 부르르 떨었고, 선이는 퉁명스럽게 말한다.
“아무튼 빨리 와. 탕수육 시킬 거란 말이야. 지금 시킨다?”
“알았어.”
선우는 통화를 끊는다. 그리고 한숨을 쉬고 목을 긁다가 집으로 향한다. 들어가야지.
“이제 오니?”
“예.”
“선이가 탕수육 먹고 싶다고 해서 탕수육 시켰어.”
“예.”
“혹시 뭐 먹고 왔니? 먹기 싫으면 안 먹어도 돼.”
“아니에요. 아무것도 안 먹었어요. 먹을 거예요.”
“그래?”
“예.”
대화가 뭔가 어색하다. 언제부터였을까. 6년 전 다시 만났을 때부터 뭔가 조금씩 대화가 어긋나고 있었다.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하던 대화는 이제는 어색하다는 것이 짙게 느껴질 정도가 되어버렸다.
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제와 다시 친해지기엔 함께 하지 않은 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가 힘들 때 그의 부모님들은 곁에 없었다. 도와주지 않았다. 조금의 위안도 되어주지 않았다. 그냥… 그렇다.
선우의 눈은 다른 곳을 보고 있다. 그의 어머니의 시선도 그를 향하고 있지 않다. 선이는 입술을 비쭉 내민다. 선우가 선이를 보며 말한다.
“아빠는?”
“담배 피우러.”
“음…….”
선우는 선이의 옆에 앉는다. 그리고 텔레비전을 본다. 할 말이 없다. 선우의 어머니도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그때 선우의 아버지가 들어온다. 선우의 아버지는 선우를 본다. 선우는 고개를 돌려 그의 아버지를 보고 고개를 살짝 꾸벅이며 말한다.
“다녀왔습니다.”
“어, 응, 왔구나.”
“예.”
“…….”
선우의 아버지는 선우의 어머니 옆에 앉는다. 선이는 혀를 찬다. 잠시 후 초인종이 울리고 탕수육이 들어온다. 선우의 가족들은 식탁으로 향한다. 곧 탕수육이 세팅된다. 이들은 다행히 취향이 똑같았다. 찍먹이다.
“성적은… 어떠니?”
“그냥저냥 뭐… 똑같아요.”
“그렇구나.”
“…….”
대화가 끊긴다. 선우는 선이를 흘끔 본다. 선이는 아무 말도 않고 탕수육을 먹고 있다. 어색해서 그런 것인가. 남들이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선우는 안다.
‘아니, 저 돼지는 그냥 탕수육이 맛있어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 거야.’
선이는 지금 식사 모드다. 건드리면 맞는다. 선우는 부르르 떤 다음 탕수육을 한 입 먹으려고 한다. 그때 그의 아버지가 말한다.
“미안하다. 할 말이 이것뿐이라.”
“예? 아, 아니에요.”
선우는 당황하며 고개를 젓는다. 이 레퍼토리는 몇 번이고 겪어봤다. 이대로 가면 곤란하다.
선우의 아버지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한다.
“일이 바빠서 너희한테 신경을 써줄 수 없다는 거,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단다. 너희가 뭘 좋아하는지 확실하게 몰라서 뭔가 물어보기도 좀 그렇고, 애매하게 물어봤다가 괜히 신경 건드리면 어떻게 하나 걱정돼서 물어볼 게 성적뿐이구나.”
“…어쩔 수 없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바른 아이로 커줘서 고맙다. 아빠는… 아빠는…….”
괜히 그의 아버지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동시에 그의 어머니의 눈가도 촉촉해진다. 그러자 선우는 눈을 파르르 떤다.
이래서 싫었다. 올 때마다 저런다. 감동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이러면 놀리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 탕수육이 맛있긴 한데 안 넘어간다. 이런 분위기에 넘어가는 게 이상하긴 하다.
“우음… 우음…….”
“…….”
그런 그의 옆에 이상한 사람이 있다. 선이는 맛있는 걸 먹을 때면 항상 저런 소리를 낸다. 이런 상황에서 참 잘도 먹는다. 앞에서 부모님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어떻게 저렇게 잘 먹을 수 있는지 궁금하다.
“호, 혹시 용돈 부족하니?”
“아뇨, 안 부족해요. 충분해요.”
“요즘 애들은 돈 많이 쓴다는데,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렴. 이번 프로젝트도 괜찮게 끝나서 인센티브 들어온다고 하니까. 이참에 컴퓨터 바꿔줄까? 아니면 요새 애들 잘 쓴다는 그… 타블렛? 그거 사줄까?”
“아뇨, 진짜 괜찮아요. 지금 컴퓨터도 좋아요.”
선우는 곤란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고, 선이는 갑작스럽게 말한다.
“그러고 보니 엄마랑 아빠, 무슨 일해요?”
선이의 질문에 선우는 선이에게만 들릴 만한 목소리로 말한다.
“배에 고기 좀 들어가니까 주변이 보이냐? 돼지 같은 년.”
퍽!
갑자기 뭔가 둔탁한 소리가 들린다. 선우의 어머니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방금 무슨 소리 안 났니?”
“잘 모르겠는데요. 그것보다 무슨 일 하시냐니까요?”
선이는 태연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선우는 무표정한 얼굴을 최대한 고수한다. 그의 배에 벽돌이 박혀 있다. 대체 어디서 벽돌을 가지고 오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선이의 방을 한 번 뒤져봐야겠다. 분명히 어딘가에 벽돌을 쌓아놨을 것이다.
“예전에 말하지 않았나? 엄마랑 아빠는 시계 제조 회사에 근무하고 있어.”
“이번에는 새로운 디자인에 관해서 빅 데이터를 기반으로…….”
선우의 부모님들은 자신들의 일에 대해 설명하려고 했고 선우는 움찔한다.
“예? 시계요?”
그의 아버지는 환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혹시 시계에 관심 있니?”
“아, 아뇨, 아니요. 그다지, 잘은 몰라요.”
‘깜짝이야…….’
반사적으로 대답해 버렸다. 선이는 혀를 쯧쯧 차고는 탕수육을 우물우물 씹으며 말한다.
“오빠가 요즘 하는 게임이 그 비슷한 이름이라서 그래요. 어휴, 진짜. 그런 게임 뭐가 재미있다고.”
“너야 뭐 먹는 거 외에는 관심이 없을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은 꽤 관심이 많단다, 돼지야.”
“엄마∼ 오빠가 자꾸 나보고 돼지라고 놀려!”
“우리 선이가 얼마나 날씬한데! 돼지 아니야!”
“…….”
“…….”
선우는 선이를 지그시 바라본다. 선우의 아버지도 선이의 배를 지그시 바라본다. 선우는 자신의 아버지를 본다. 그의 아버지는 슬픈 표정을 짓고 있다. 선우는 고개를 젓는다. 그의 아버지도 같이 고개를 젓는다.
“선이야. 혹시 남편 생겼니?”
“여보! 그게 무슨 소리에요!”
“아, 아니. 벌써 손자 보게 생겼나 싶…….”
“뭐라고요? 지금 그게 애한테 할 소리에요?”
선우의 어머니는 소리를 버럭 질렀고, 선우의 아버지는 당황한다. 선이는 신기하다는 듯이 말한다.
“오빠, 오빠는 아빠 아들 맞나 봐. 생각하는 게 똑같아.”
“너도 엄마 딸 맞나 봐. 폭력적인 게 똑같아.”
“오빠.”
“왜?”
“나중에 봐.”
“…….”
나중에 선우는 쏟아지는 벽돌로 샤워를 했다고 한다.
“너랑 목욕탕 오는 것도 오랜만이네.”
“그러게요, 형.”
선우와 기원은 옷을 훌렁훌렁 벗고 있다. 선우네 동네 목욕탕이다. 선우와 기원의 집은 가까운 듯 조금 멀다. 걸어서 가기엔 멀고, 버스를 타기엔 가까운 정도. 둘의 신체 능력으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거리다.
선우와 기원은 샤워기에서 대강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한 다음 욕탕 안으로 들어간다.
“후…….”
“이런 몸이 되고 나니까 온도는 그다지 상관없네요.”
기원은 하하 웃는다. 욕탕의 온도는 꽤 뜨거운 편이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다. 온도는 느껴지지만 피부에 아무런 이상도 생기지 않는 것 정도. 찬 물에 들어가도 똑같다. 그래서 샤워를 할 때 찬물이 나와도 아무렇지도 않고, 뜨거운 물이 나와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다.
선우는 눈을 감은 채로 말한다.
“할 이야기가 뭔데?”
“그냥 저도 좀 돌아다녀 보고 인지 누나랑 연락하면서 몇 가지 더 알아봤는데요.”
“번호… 땄냐……?”
“아린 누나 덕분에 편하게 땄죠.”
선우는 슬쩍 기원을 본다. 기원은 예의 그 훈훈한 미소를 짓는다. 선우는 울컥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한숨을 쉬며 말한다.
“그래서, 뭐.”
“요새 환계와 내계의 경계가 조금 불안정하다고 해요.”
기원의 밑도 끝도 없는 말에 선우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그런 것도 알 수 있어?”
“환계의 에너지는 환력이잖아요. 그쪽에서 환력을 감지하는 장치를 만들었더라고요.”
“그래서.”
“원래 내계에는 환력이 존재하지 않잖아요. 하지만 환력이 갑자기 아무런 징조도 없이 나타난다면 두 세계의 경계가 조금 불안정하다는 거죠.”
“별걸 다 알아내네.”
선우는 순수하게 감탄한다. 요새 세상 참 좋아졌다. 그런 것들도 다 알 수 있고.
해프닝(4)
“뭐 어떡해? 오늘은 여기서 그냥 헤어져? 할 이야기도 그럭저럭 다한 것 같은데.”
이야기가 대강 마무리된 것 같자 우림은 그들의 의중을 묻는다. 선이는 빨대를 쪽쪽 빨며 말한다.
“저야 뭐, 이대로 퇴근해도 되는데.”
웅.
그때, 선우의 폰이 울린다. 선우는 폰을 보고는 일어나면서 말한다.
“나, 다른 친구가 불러서 이만.”
“어디 가는데?”
“피씨.”
선우의 한 치 망설임도 없는 대답에 선이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한다.
“으, 극혐.”
“갓겜은 해보면 달라.”
선우는 다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게임을 즐기지 않는 자가 어찌 게임을 즐기는 자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선우 너도 시계 하는 거야?”
아린은 가방을 정리하며 묻고 선우는 인구에게 답장을 보내며 말한다.
“애들이 하니까.”
“나도 하러 갈까∼”
아린의 말에 선우는 침을 꿀꺽 삼킨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답한다.
“남자 셋이 모여서 노는 건데 네가 끼면 좀 그렇지.”
“농담이야, 농담.”
아린은 너스레를 떨듯 손을 흔들었고, 선우는 선이를 지나쳐 나가며 말한다.
“그럼 다음에 봐.”
“잘 가.”
“나중에 집에 올 때 전화해.”
“엉.”
선우는 손을 흔들며 사라졌고, 아린은 선우의 뒷모습을 보다가 말한다.
“그거 재밌나?”
“몰라.”
“그래픽은 좋던데요?”
“…해볼까.”
“진심이야?”
“고민하고 있어.”
우림은 아린을 보았고, 아린은 고민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우림은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폰을 보며 말한다.
“할 거면 같이 하고.”
“진심?”
“뭐… 괜찮지 않을까.”
선우가 하는 것에는 흥미가 생긴다.
인구와 경준, 그리고 선우는 피씨에서 나란히 앉아 게임을 하고 있다.
“위에 엉덩이, 위에 엉덩이.”
“네가 따, 미친놈아.”
“내가?”
“나 지금 송 여사 아니라고.”
“음… 노력해 볼… 아, 죽었엉.”
“쓸모없는 새끼.”
“정의충으로 다시 올게.”
“하… 너 정의충으로 엉덩이 딸 수 있냐?”
“엉덩이 내가 땄어.”
“굿.”
“그럼 다시 진진자라로.”
“벌레 새끼.”
인구는 트롤을 담당하고, 경준은 캐리를 담당하고, 선우는 욕설을 담당하고 있다. 선우는 한참 게임을 하다가 말한다.
“그러고 보니 너희 누나 만났는데…….”
“우리 누나?”
“응.”
선우의 말에 인구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한다.
“그 못생긴 년을 어디서 봤는데?”
“뭐… 어쩌다가.”
인구는 혀를 쯧쯧 차며 말한다.
“그런 년이랑 엮이지 마. 그년 대학 졸업하고 이상한 곳에 취직해서 집에 얼굴도 안 비침. 나야 좋지만.”
“엮이긴 뭘 엮여. 그냥 얼굴 한 번 봤다고.”
선우의 대답에 인구는 몸서리를 치며 말한다.
“언급도 하지 마, 그런 년. 못생기고 포악한 멧돼지 같은 년. 밀렵꾼한테 사냥당해야 한다니까.”
인구는 투덜거리다가 움찔한다. 죽었다. 인구는 한숨을 쉰다.
“하… 네가 괜히 끔찍한 년 이야기해서 부정 탔잖아. 그런 년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
“네가 뒤진 건 네놈 손가락 문제인 거고.”
“아냐. 그년 이야기만 나오면 부정 타는 거야.”
“점령지로 오기나 해.”
경준은 퉁명스럽게 말한다. 빨리 게임 끝내야지, 뭘 하고 있는 건지…….
뚜르르르. 삑.
“나 지금 들어가고 있어.”
선우는 버스에서 내려 선이에게 전화를 건다. 선이는 담담하게 말한다.
“오빠, 엄마랑 아빠 왔어.”
“웬일로 왔대?”
선우는 놀랍다는 듯이 물었고 선이는 귀찮다는 듯이 말한다.
“프로젝트 하나 끝났대.”
“하… 오늘은 누구 집에서 자지.”
“들어와. 같이 저녁 먹자고 하셔.”
한숨을 쉬며 말하는 그에게 선이는 무덤덤하게 명령했고, 선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한다.
“뭐? 왜?”
“같이 먹고 싶나 보지.”
“끔찍한 소리하네.”
선우는 몸을 부르르 떨었고, 선이는 퉁명스럽게 말한다.
“아무튼 빨리 와. 탕수육 시킬 거란 말이야. 지금 시킨다?”
“알았어.”
선우는 통화를 끊는다. 그리고 한숨을 쉬고 목을 긁다가 집으로 향한다. 들어가야지.
“이제 오니?”
“예.”
“선이가 탕수육 먹고 싶다고 해서 탕수육 시켰어.”
“예.”
“혹시 뭐 먹고 왔니? 먹기 싫으면 안 먹어도 돼.”
“아니에요. 아무것도 안 먹었어요. 먹을 거예요.”
“그래?”
“예.”
대화가 뭔가 어색하다. 언제부터였을까. 6년 전 다시 만났을 때부터 뭔가 조금씩 대화가 어긋나고 있었다.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하던 대화는 이제는 어색하다는 것이 짙게 느껴질 정도가 되어버렸다.
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제와 다시 친해지기엔 함께 하지 않은 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가 힘들 때 그의 부모님들은 곁에 없었다. 도와주지 않았다. 조금의 위안도 되어주지 않았다. 그냥… 그렇다.
선우의 눈은 다른 곳을 보고 있다. 그의 어머니의 시선도 그를 향하고 있지 않다. 선이는 입술을 비쭉 내민다. 선우가 선이를 보며 말한다.
“아빠는?”
“담배 피우러.”
“음…….”
선우는 선이의 옆에 앉는다. 그리고 텔레비전을 본다. 할 말이 없다. 선우의 어머니도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그때 선우의 아버지가 들어온다. 선우의 아버지는 선우를 본다. 선우는 고개를 돌려 그의 아버지를 보고 고개를 살짝 꾸벅이며 말한다.
“다녀왔습니다.”
“어, 응, 왔구나.”
“예.”
“…….”
선우의 아버지는 선우의 어머니 옆에 앉는다. 선이는 혀를 찬다. 잠시 후 초인종이 울리고 탕수육이 들어온다. 선우의 가족들은 식탁으로 향한다. 곧 탕수육이 세팅된다. 이들은 다행히 취향이 똑같았다. 찍먹이다.
“성적은… 어떠니?”
“그냥저냥 뭐… 똑같아요.”
“그렇구나.”
“…….”
대화가 끊긴다. 선우는 선이를 흘끔 본다. 선이는 아무 말도 않고 탕수육을 먹고 있다. 어색해서 그런 것인가. 남들이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선우는 안다.
‘아니, 저 돼지는 그냥 탕수육이 맛있어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 거야.’
선이는 지금 식사 모드다. 건드리면 맞는다. 선우는 부르르 떤 다음 탕수육을 한 입 먹으려고 한다. 그때 그의 아버지가 말한다.
“미안하다. 할 말이 이것뿐이라.”
“예? 아, 아니에요.”
선우는 당황하며 고개를 젓는다. 이 레퍼토리는 몇 번이고 겪어봤다. 이대로 가면 곤란하다.
선우의 아버지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한다.
“일이 바빠서 너희한테 신경을 써줄 수 없다는 거,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단다. 너희가 뭘 좋아하는지 확실하게 몰라서 뭔가 물어보기도 좀 그렇고, 애매하게 물어봤다가 괜히 신경 건드리면 어떻게 하나 걱정돼서 물어볼 게 성적뿐이구나.”
“…어쩔 수 없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바른 아이로 커줘서 고맙다. 아빠는… 아빠는…….”
괜히 그의 아버지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동시에 그의 어머니의 눈가도 촉촉해진다. 그러자 선우는 눈을 파르르 떤다.
이래서 싫었다. 올 때마다 저런다. 감동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이러면 놀리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 탕수육이 맛있긴 한데 안 넘어간다. 이런 분위기에 넘어가는 게 이상하긴 하다.
“우음… 우음…….”
“…….”
그런 그의 옆에 이상한 사람이 있다. 선이는 맛있는 걸 먹을 때면 항상 저런 소리를 낸다. 이런 상황에서 참 잘도 먹는다. 앞에서 부모님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어떻게 저렇게 잘 먹을 수 있는지 궁금하다.
“호, 혹시 용돈 부족하니?”
“아뇨, 안 부족해요. 충분해요.”
“요즘 애들은 돈 많이 쓴다는데,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렴. 이번 프로젝트도 괜찮게 끝나서 인센티브 들어온다고 하니까. 이참에 컴퓨터 바꿔줄까? 아니면 요새 애들 잘 쓴다는 그… 타블렛? 그거 사줄까?”
“아뇨, 진짜 괜찮아요. 지금 컴퓨터도 좋아요.”
선우는 곤란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고, 선이는 갑작스럽게 말한다.
“그러고 보니 엄마랑 아빠, 무슨 일해요?”
선이의 질문에 선우는 선이에게만 들릴 만한 목소리로 말한다.
“배에 고기 좀 들어가니까 주변이 보이냐? 돼지 같은 년.”
퍽!
갑자기 뭔가 둔탁한 소리가 들린다. 선우의 어머니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방금 무슨 소리 안 났니?”
“잘 모르겠는데요. 그것보다 무슨 일 하시냐니까요?”
선이는 태연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선우는 무표정한 얼굴을 최대한 고수한다. 그의 배에 벽돌이 박혀 있다. 대체 어디서 벽돌을 가지고 오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선이의 방을 한 번 뒤져봐야겠다. 분명히 어딘가에 벽돌을 쌓아놨을 것이다.
“예전에 말하지 않았나? 엄마랑 아빠는 시계 제조 회사에 근무하고 있어.”
“이번에는 새로운 디자인에 관해서 빅 데이터를 기반으로…….”
선우의 부모님들은 자신들의 일에 대해 설명하려고 했고 선우는 움찔한다.
“예? 시계요?”
그의 아버지는 환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혹시 시계에 관심 있니?”
“아, 아뇨, 아니요. 그다지, 잘은 몰라요.”
‘깜짝이야…….’
반사적으로 대답해 버렸다. 선이는 혀를 쯧쯧 차고는 탕수육을 우물우물 씹으며 말한다.
“오빠가 요즘 하는 게임이 그 비슷한 이름이라서 그래요. 어휴, 진짜. 그런 게임 뭐가 재미있다고.”
“너야 뭐 먹는 거 외에는 관심이 없을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은 꽤 관심이 많단다, 돼지야.”
“엄마∼ 오빠가 자꾸 나보고 돼지라고 놀려!”
“우리 선이가 얼마나 날씬한데! 돼지 아니야!”
“…….”
“…….”
선우는 선이를 지그시 바라본다. 선우의 아버지도 선이의 배를 지그시 바라본다. 선우는 자신의 아버지를 본다. 그의 아버지는 슬픈 표정을 짓고 있다. 선우는 고개를 젓는다. 그의 아버지도 같이 고개를 젓는다.
“선이야. 혹시 남편 생겼니?”
“여보! 그게 무슨 소리에요!”
“아, 아니. 벌써 손자 보게 생겼나 싶…….”
“뭐라고요? 지금 그게 애한테 할 소리에요?”
선우의 어머니는 소리를 버럭 질렀고, 선우의 아버지는 당황한다. 선이는 신기하다는 듯이 말한다.
“오빠, 오빠는 아빠 아들 맞나 봐. 생각하는 게 똑같아.”
“너도 엄마 딸 맞나 봐. 폭력적인 게 똑같아.”
“오빠.”
“왜?”
“나중에 봐.”
“…….”
나중에 선우는 쏟아지는 벽돌로 샤워를 했다고 한다.
“너랑 목욕탕 오는 것도 오랜만이네.”
“그러게요, 형.”
선우와 기원은 옷을 훌렁훌렁 벗고 있다. 선우네 동네 목욕탕이다. 선우와 기원의 집은 가까운 듯 조금 멀다. 걸어서 가기엔 멀고, 버스를 타기엔 가까운 정도. 둘의 신체 능력으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거리다.
선우와 기원은 샤워기에서 대강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한 다음 욕탕 안으로 들어간다.
“후…….”
“이런 몸이 되고 나니까 온도는 그다지 상관없네요.”
기원은 하하 웃는다. 욕탕의 온도는 꽤 뜨거운 편이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다. 온도는 느껴지지만 피부에 아무런 이상도 생기지 않는 것 정도. 찬 물에 들어가도 똑같다. 그래서 샤워를 할 때 찬물이 나와도 아무렇지도 않고, 뜨거운 물이 나와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다.
선우는 눈을 감은 채로 말한다.
“할 이야기가 뭔데?”
“그냥 저도 좀 돌아다녀 보고 인지 누나랑 연락하면서 몇 가지 더 알아봤는데요.”
“번호… 땄냐……?”
“아린 누나 덕분에 편하게 땄죠.”
선우는 슬쩍 기원을 본다. 기원은 예의 그 훈훈한 미소를 짓는다. 선우는 울컥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한숨을 쉬며 말한다.
“그래서, 뭐.”
“요새 환계와 내계의 경계가 조금 불안정하다고 해요.”
기원의 밑도 끝도 없는 말에 선우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그런 것도 알 수 있어?”
“환계의 에너지는 환력이잖아요. 그쪽에서 환력을 감지하는 장치를 만들었더라고요.”
“그래서.”
“원래 내계에는 환력이 존재하지 않잖아요. 하지만 환력이 갑자기 아무런 징조도 없이 나타난다면 두 세계의 경계가 조금 불안정하다는 거죠.”
“별걸 다 알아내네.”
선우는 순수하게 감탄한다. 요새 세상 참 좋아졌다. 그런 것들도 다 알 수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