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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계의 용사였습니다 14화

Oh my friend(2)


“걱정이네, 기훈이 녀석.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니, 됐어.”
선우는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지. 선이는 입맛을 다시다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말한다.
“아, 오빠, 닭강정 더 사와. 맛있네.”
“돼지 새끼.”
“아, 진짜, 그냥 곱게 사와주면 안 돼? 가족한테 말하는 꼬라지가 진짜…….”
선이의 말에 선우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접혀진 박스를 들고 선이의 머리를 내리치며 말한다.
“우리가, 먹으려고, 사온, 거를, 홀라당, 처먹은 게, 누구?”
팍! 팍! 팍! 팍! 팍! 팍! 팍!
“아, 좀! 때리지 마!”
선이는 소리를 질렀고, 선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한다.
“벽돌 던지는 미친년이 때리지 말기는 뭘 때리지 마?”
“오빠는 튼튼하잖아!”
“몸은 네가 더 튼튼하잖아!”
선우는 더 기가 막힌다는 듯이 소리친다.
“우씨…….”
선이는 입술을 비쭉 내밀었다가 뒤돌아서며 말한다.
“내가 가서 사올 거야!”
“네가 처먹은 우리 것도 새로 사와.”
“싫어!”
쾅!
선이는 문을 쾅 닫고 나갔고, 선우는 혀를 찬다.
“못돼 처먹어 가지고. 쯧쯧.”
“그래도 저랑 형보다는 나은 것 같네요.”
“너희 형제는 동생인 너도 정신병자고 형인 기훈이 그 녀석도 정신병자지만 우리 남매는 내가 정상이잖아. 그러니까 낫지.”
“하하하.”
기원은 그저 웃는다. 선우는 그런 그를 보다가 한숨을 쉬며 말한다.
“네가 그러니까 너희 형제가 그런 거야.”
“어쩌겠어요. 선우 형 덕분에 제 안에 있는 어두운 정신이 거의 사라지기도 했고, 제가 그런 말을 하면 저희 형은 삐져서 한동안 말 안 한다고요.”
“그 새끼, 쫌팽이라니까.”
“알아요.”
기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에 앉는다. 선우도 의자에 앉는다. 둘은 다시 모니터를 본다. 아까 보다가 정지시켰던 영화를 다시 재생한다. 기원은 지나가는 듯한 어투로 말한다.
“그냥 형의 동생이 되고 싶어요.”
“안 돼. 내 정조가 위험해.”
선우는 단호하게 대답했고, 기원은 하하 웃으며 말한다.
“안 노린다니까요. 제가 언제 형 먹고 싶다고 말이나 했어요?”
“대부분의 암살자는 예고장을 날리지 않아.”
“암살자라뇨.”
기원은 웃는다. 역시 집보다는 여기가 좋다.

***


“청경.”
“…….”
기훈은 집으로 가는 길이다. 천천히 걷고 있다.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기훈은 조심스럽게 말한다. 청경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기훈을 보았고, 기운은 조금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나… 이젠 필요 없는 거야?”
“내 파트너는 너뿐이다. 걱정하지 마라.”
“하지만…….”
“나는 용왕이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걱정하지 마라.”
“…청경.”
“오랜만에 동조를 하니 피곤하군. 자겠다. 깨어날 때까지 건드리지 마라.”
청경은 그렇게 말하며 기훈의 어깨에 누워 잠들었고, 기훈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고마워.”


“뭐? 청경이 나타났다고?”
― 기훈이랑 같이 있어. 내 생각엔 전부 다 넘어올 것 같아. 너도 마음의 준비를 해둬.
“…응.”
덜덜덜.
폰을 잡고 있는 손이 떨리고 있다. 우현은 침을 삼키며 폰을 호주머니에 넣는다. 그리고 한 손으로 눈을 가리며 의자에 앉아 등을 기울인다. 지난 6년간 행복했다. 그녀 없이 살았던 6년. 다시는 없을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미모스. 이미지를 구현하는 그의 파트너. 매우 아름다운 여성이다. 능력은 ‘각성(覺醒)’. 정신이 멀쩡한 상태여야 최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그에게 딱 맞는 파트너다. 다만…….
“하…….”
‘아니, 아니다. 생각하지를 말자. 걔가 없는 이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게 만끽하자.’
우현은 고개를 저으며 손을 내린다. 그리고 옆을 본다. 사람들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다.
“그 번개가 환력에 의한 거라고?”
“이 정도 출력의 환력은 처음이야.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실장님! 데이터 뽑아왔습니다! 갑자기 발생한 환력은 ‘위험 등급 SSS’인 ‘선우’와 ‘선이’의 집으로 추정됩니다.”
“힘 잃었다고 하지 않았어?”
“모르겠습니다.”
“역시 직접 물어보는 게…….”
사람들은 그의 눈치를 본다. 우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한다.
“환계 용들의 주인이자 ‘뇌신’이라고 불리는 용왕, 청경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뭣……!”
“적은 아닙니다. 저희들의 동료이고, ‘기훈’의 파트너입니다. 아마 갑자기 발생한 강한 환력이란 건 동조로 인한 환력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동조를 하면 환력이 발생합니까?”
누군가가 묻는다. 우현은 고민하는 표정을 짓다가 양손을 든다. 그의 손 위에 이미지가 생성된다.
“우선, 저희는 원래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거기에 이전 최강의 환수나 환인의 껍질이 씌어졌습니다. 하지만 껍질이 씌어졌다고 해서 저희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껍질은 그저 껍질에 불과하니 말입니다.”
사람 형태로 보이는 흰색 이미지의 외각선 부분이 검은색으로 변한다. 흰색 사람의 이미지 옆에 검은색 덩어리의 형상이 생겨난다.
“이 검은색 덩어리가 환수와 환인이라고 보면 됩니다. 동조를 하면 이들이 이렇게…….”
검은색 덩어리가 흰색 사람의 안으로 들어간다. 흰색 사람은 완전히 검게 변한다.
“완전한 환계의 존재와 같이 될 수 있어요.”
“꼭 그렇게 해야 할 이유라도 있습니까? 환계의 존재가 인간에게 들어가면 무언가 어드밴티지라도 생기는 겁니까?”
“일단 저희들이 입은 ‘껍질’이 굉장히 특별한 존재들의 껍질입니다. 환계에서도 드문 존재들, ‘황제’에 버금가는 절대적인 존재들이 남긴 껍질을 입은 것이기 때문에 그 힘을 사용한다는 의미가 있죠.”
그의 생각을 그대로 구현한다는 ‘이미지’도 ‘조화신(造化神)’의 일부를 받아서 사용하는 것이다. 선우의 ‘불멸자’나 선이의 ‘권능’, 우림의 ‘오쿨루스’와, 건수의 ‘플라토닉 러브’도. 모두 환계의 고대 신들에게서 받은 힘이다.
“그 껍데기를 당신들의 파트너라는 존재가 입으면 안 되는 겁니까?”
“그들은 고대 신과는 다른 형태로 이미 신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껍질을 입히는 것은 어른에게 억지로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히는 것과 같습니다. 안 들어갑니다.”
“그래서 힘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인간에게 입히고…….”
“그 인간의 몸에 자신들의 힘을 불어넣는 겁니다.”
우현은 그렇게 말하고 목을 살짝 긁었다가 시계를 보며 말한다.
“저 그럼 퇴근해도 됩니까?”
“아… 예, 퇴, 퇴근해도 됩니다.”
갑작스런 그의 말에 실장이란 사람은 조금 당황한 표정이었으나 우현은 아랑곳 않고 뒤돌아서며 말한다.
“그럼 수고하십쇼.”
얼마 남지 않은 행복을 만끽하러 가야겠다. 케이크 만들어야지.

***


여울시 우리 공원 광장. 번화가인 우리 거리 근처에 있는 공원이라 사람들이 많은 곳이다. 늦은 밤인 지금도 몇몇 사람들이 있다. 연인이거나 취객인 사람이 말이다.
파지지직!
“……?”
그때, 환계의 구멍이 생성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구름이 흘러나온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면서 당황하고, 구름은 순식간에 흩어져 사라지고 환계의 구멍은 닫힌다.


월요일. 너무나도 끔찍한 단어다. 선우는 토할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분명히 어제 저녁 열 시에 잤으니 피곤할 리가 없는데 피곤해서 죽을 것 같다. 진짜 죽을 것 같다.
‘…오, 하느님. 오늘 쉬게 해주시면 뽀뽀라도 해드릴게요.’
선우는 비틀비틀 일어난다. 눈물이 흐를 것 같다. 선우는 한숨을 쉬며 침대에서 내려가려다가 멈춘다. 옆에 누가 앉아 있다. 우림이다. 선우는 움찔했다가 눈을 비비고는 한숨을 쉬며 말한다.
“환각으로 보일 정도로 좋아하진 않는데.”
“날 좋아하긴 하는 거야?”
우림은 쿡쿡 웃으며 질문했고, 선우는 기지개를 켜며 대답한다.
“뭐, 선이를 좋아하는 정도는.”
“후후, 선이는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남들이 자기 여동생 좋아하는 것보다는 좋아하고 있어. 아무리 그래도 동료잖아. 못 볼 거 다 본 사이기도 하고.”
선우는 폰을 흘끔 본다. 아직 안 늦었다. 버스 안에서 빵 하나만 먹을 거라면 좀 더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은 학교 빠지는 게 어때?”
“뭔 헛소리냐. 교과 우수상은 못 받더라도 개근상은 받겠다고 다짐했어.”
“그럼 휴교령이라도 내리면 되겠네.”
“어떻게?”
선우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우림은 고개를 기울이며 말한다.
“도저히 등교를 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비가 내린다든가?”
쏴아아아아아!
갑자기 빗살이 창문을 내리친다. 창문이 깨지지 않나 걱정이 될 정도로 강한 빗살이다. 선우는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본다. 어스레한 새벽이던 배경이 비가 내리는 날로 바뀐다. 선우는 다시 우림을 보며 말한다.
“뭐야, 온 거야?”
“이제 눈치챘냐?”
“오랜만.”
우림의 양쪽 어깨 위에 무언가가 나타난다. 갑옷과 천을 두른 작은 남자와 뿔이 달린 투구를 쓰고 털로 된 망토를 두른 남자다. 카일루스와 바알이다. 선우는 창문을 보며 말한다.
“저렇게 비를 내리게 하면 사람들이 위험하잖아.”
그의 말에 갑옷과 천을 두른 작은 남자, 카일루스는 가슴을 내밀며 말한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아무도 죽지 않도록 명령했다.”
“쓸데없는 데 힘쓰기는.”
선우는 혀를 찬다. 하지만 카일루스의 능력은 확실하다. ‘명령’했다면 죽음의 신은 아무도 죽이지 않을 것이다. 선우는 한숨을 쉬며 말한다.
“그래. 오랜만. 너무 오랜만이다, 그래. 무슨 일로 왔는데? 어떻게 왔고?”
“야누스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했지.”
“괜한 걸 물어봤네. 왜 왔는데?”
선우가 다시 묻자 바알은 큭큭 웃으며 말한다.
“우림이와 네가 아이를 만들었나, 안 만들었나 확인하러 왔지. 풍요의 신으로서 말이야.”
“안 만들었으면 어쩌게?”
“발정 나게 만들 생각인데.”
“우림아, 저렇게 말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선우는 우림을 보았고, 우림은 쿡쿡 웃으며 말한다.
“선우는 안 서.”
“서거든?”
선우는 즉각 반박한다. 우림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한다.
“그래? 둘만 있어도 아무 짓도 안 해서 안 서는 줄 알았지.”
“이거 19세였어?”
“우린 성인이지. 19세는 넘겼어.”
“아니, 그게 아니라…….”
선우는 한숨을 쉬었고, 바알은 크하하하 하고 크게 웃으며 말한다.
“아! 그래! 이게 그리웠어! 너희 둘이 한심한 소리들을 하며 싸우는 것!”
“너, 그렇게 큰 목소리로 말하면…….”
빡!
“억!”
바알은 갑자기 날아온 벽돌에 맞고 우림의 어깨에서 침대로 떨어진다. 선우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못생긴 돼지가 공격하러 올 건데.”
“못생긴 뭐?”
“사랑하는 동생.”
선이가 나타난다. 선이는 벽돌을 살짝 던졌다가 받으며 말한다.
“더러워.”
“인정.”
선이의 비난에 바로 수긍하며 선우는 바알을 들고 살짝 흔들며 말한다.
“여신님 오셨어.”
“으으, 끔찍한 년. 오랜만이다.”
빡!
선이는 들고 있던 벽돌을 던진다. 바알은 벽돌에 직격으로 맞았고, 벽돌은 산산조각이 나서 사라진다.
“악!”
바알은 비명을 질렀고, 선이는 손을 흔들며 말한다.
“그래, 오랜만. 보고 싶진 않았는데. 카일도 오랜만.”
“그래, 오랜만이군.”
카일루스는 또다시 벽돌에 맞는 바알을 보며 침을 꿀꺽 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