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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계의 용사였습니다 15화

Oh my friend(3)


선이는 손가락을 까딱인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의자가 날아와서 우림의 앞쪽에 놓인다. 선이는 의자에 앉으며 말한다.
“언니, 이 둘, 언제 온 거예요?”
“새벽에.”
“더 일찍 오려고 했는데 야누스가 자꾸 안 된다고 말려서 말이야. 판테온의 주인인 내가 가겠다는데 감히 거절을 하다니, 우습지도 않단 말이지.”
카일루스는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였고, 선이는 혀를 찼다가 손을 까딱인다. 선우가 잡고 있던 바알이 떠올라 선이에게 날아간다. 바알은 기겁하며 몸을 흔들었고, 선이는 바알의 뒷덜미를 잡으며 말한다.
“여와 님은 어디에 있니?”
“모, 몰라! 반고나 복희랑 있겠지!”
“반고랑 복희씨 둘 다 네가 죽인 거 알고 있는데 뭔 헛소리니? 취했어?”
“……!”
바알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카일루스는 혀를 차며 말한다.
“그거 들킨 지가 언젠데 아직도 그러는 거냐?”
“뭐, 뭐?”
“이래서 악신은 안 된다니까. 언니, 그냥 얘 죽이면 안 돼요? 카일이면 충분하잖아요.”
선이는 보채듯이 말했고, 우림은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네가 오늘 학교 안 가도 되는 게 걔 덕분이란 건 알고 말하는 거니?”
“차라리 학교 가고 말죠.”
선이는 그렇게 말하며 바알을 휙 던진다. 바알은 침대 위에 떨어졌고, 선이는 일어서며 말한다.
“쉬다 가세요.”
“응.”
슝.
선이는 사라졌고, 선우는 혀를 차며 말한다.
“6년이나 지났는데도 저러네.”
“이제 6년이지.”
우림은 그렇게 말하며 바알을 들어 어깨에 올리며 말한다.
“그러게 왜 그랬어?”
“나, 난 안 그랬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바알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고, 선우는 다시 침대에 누우며 말한다.
“그것보다 얼굴 보여주려고 온 거면 그만 가지 그러냐? 반갑긴 하고, 학교 문 닫게 해줘서 고맙긴 한데 좀 더 자고 싶거든.”
“새로운 악마가 나타났다는 걸 알려주려고 왔지.”
카일루스는 드디어 목적을 말한다. 선우는 큭큭 웃으며 말한다.
“청경이 말한 위험이 고작 새로운 악마였냐?”
“청경도 왔어?”
“몰랐구나.”
선우는 이불을 다시 덮으며 말한다.
“악마 뭐, 루즈라도 부활했니? 아니면 너희가 처리하지 그러냐?”
“이 악마로 인해 루즈가 부활한다는 예언이 있었어.”
“예언 그거 믿을 게 못 되잖아. ‘루즈에 의해 환계는 멸망하게 된다’라는 예언도 결국 우리들에 의해 저지됐고.”
“그건 그렇지만…….”
The Prophet, 노스트라다무스. 환계인이다. 모두가 아는 그분의 믿음으로 인해 만들어진 환계인이다. 예언을 하지만 자주 틀린다. 가끔 맞기도 하지만 소소한 것만 맞추고 정작 중요한 것은 맞추질 못한다.
선우는 하품을 한다. 빗소리가 생각보다 좋다. 시끄럽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피곤하고 어둡고 나긋한 이 상황이 강한 빗소리를 기분 좋은 자장가처럼 느끼게 해준다.
우림은 고개를 돌려 선우를 보며 말한다.
“나도 동조해 볼까?”
“잠 좀 자자. 넌 또 왜?”
선우는 한숨을 쉬었고, 우림은 그에게 몸을 기울이며 말한다.
“선이한테 들었어. 기훈이는 동조율 엄청 낮았다면서.”
“누구랑 동조할 건데. 둘 다는 지금 안 될 거 아니야.”
선우의 말에 우림은 그녀의 어깨에 있는 바알의 팔을 톡 치며 말한다.
“바알.”
“싫어. 너 바알이랑 동조하면 정신병 걸리잖아.”
“동조율 낮으면 괜찮을 거야.”
우림은 은근한 어조로 말했고, 선우는 한숨을 쉬며 그녀의 이마를 꾹 눌러 밀어내고 말한다.
“맞고 싶지?”
“동조도 못하면서 나랑 싸우게?”
우림의 놀리는 듯한 말에 선우는 허 하고 웃으며 말한다.
“바알이랑 카일 왔다고 설치네. 오랜만에 맞고 싶냐?”
“말하는 거 봐. 너무하네, 여자한테.”
우림은 한숨을 쉬며 몸을 다시 똑바로 했고, 선우는 그녀의 어깨에 있는 카일루스를 들며 말한다.
“카일이랑 동조하든가. 쟤랑은 동조해도 아무 변화 없잖아.”
“얘랑 동조하면 판테온의 모든 신들이 말을 걸어서 귀찮아.”
“근원으로서 마땅히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카일루스는 근엄한 표정으로 말했고, 우림은 카일루스의 이마를 툭! 치며 말한다.
“근원은 너니까 너만 감당해야지.”
“나의 힘을 받는다면 나의 의무도 받아야지!”
“싫은데.”
“싫다고 해도 어쩔 수 없지.”
카일루스는 이마를 매만지며 어깨를 으쓱인다. 우림은 한숨을 쉬며 무언가를 말하려고 한다.
“그러니…….”
번쩍! 쿠르릉!
그때, 창문이 번쩍인다. 선우의 눈이 자줏빛으로 물들어 있다. 선우는 어느새 상체를 일으킨 상태다. 우림은 선우를 보았고, 선우는 주먹을 쥐었다 편다.
“장난이 조금 과하네, 바알.”
“나 아니야!”
“알아.”
바알은 당황했고, 우림은 침대에서 일어선다. 그리고 카일루스를 잡으며 말한다.
“아무래도 너희들이 올 때 뭔가가 같이 넘어온 것 같은데.”
“그럴 리가. 문으로 우리들 외의 누군가가 지나가지 않았다고 야누스가 말하고 있어.”
“그럼 다른 곳으로 넘어왔겠지. 너희들이 넘어온 것 때문에 비틀린 이 세계의 구멍 같은 곳으로 말이야.”
“그런가.”
카일루스는 왼팔을 든다. 우림은 오른팔을 든다. 선우는 주먹을 쥐며 말한다.
“우리 집에서 이러는 건 좀 자제해 주지.”
―동조―
팟!
카일루스와 우림이 빛으로 물든다. 마치 카일루스가 스며들듯이 우림의 속으로 들어간다. 금세 빛은 사라지고 우림은 붉은빛의 아름다운 팔라를 두른 여성으로 변한다. 머리카락은 금빛으로 반짝이고 있다. 그야말로 여신과 같은 모습이다. 우림은 몸을 이리저리 살피며 말한다.
“오랜만이라 그런가, 조금 어색하네.”
“지금 그 상태로 밖에 나가면 그야말로 훼북 스타감이네.”
“후후, 그래?”
철컥.
우림의 손에 머스킷이 잡혀 있다. 선우는 항복한다는 듯이 양손을 들었고, 우림은 머스킷의 총구를 천장으로 향했다. 천장에는 눈동자 문양이 새겨져 있다. 우림은 선우를 보고 있는 채로 말한다.
“구름에 뭔가 섞여 있네.”
“빨리 찾네.”
“이런 기분 정말 오랜만이야. 모든 것이 보이는 위에 선 자의 기분. 정말로…….”
우림은 입꼬리를 올리며 방아쇠를 당긴다.
탕!
총알은 눈동자를 통과한다. 그리고 구름 속에 숨은 ‘번개 구름의 정령’을 꿰뚫는다. 번개 구름의 정령은 그 순간 소멸하고, 구름은 온전히 바알의 소유로 돌아간다. 우림은 후… 하고 숨을 내쉬고는 방긋 웃는다.
“오랜만이야.”
그녀도 힘을 되찾았다.


“판테온 문신 오케이. 증표 오케이. 눈 개수는?”
“이건 조금 부족하네.”
“눈 개수가 부족한 거랑 위엄 부족한 거 빼면 그대로네. 퍼센트로 따지면 70퍼?”
“아니, 50퍼야.”
“그럭저럭 괜찮네.”
우림은 알몸인 상태다. 선우는 무덤덤하게 그녀의 몸을 살펴본다. 그녀의 등에는 수많은 신들의 형상을 띤 문신이 그려져 있다. 팔에는 ‘증표’라고 불리는 카일루스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위엄’은 그녀의 몸에서 은은히 생겨나는 오라 같은 것이다.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확인이 끝난 우림은 동조를 해제한다. 동조가 해제되니 원래 옷으로 돌아온다. 우림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한다.
“난 그래도 동조율 높네.”
“기훈이 그 녀석이 너무 낮은 거야.”
“걘 왜 그래?”
선우는 투덜거리듯이 말한다.
“감정이 문제야. 넌 순수하게 이 녀석들이랑 동조하고 싶던 거고, 그 녀석은 동조는 둘째고 첫째로 다시 힘을 되찾아서 설치고 싶었던 거지. 멍청한 녀석.”
“진짜?”
우림은 조금 놀랍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선우는 손가락 세 개를 펴며 말한다.
“육체, 정신, 영혼 중 육체랑 영혼은 그때랑 지금이랑 다를 바 없잖아. 그럼 문제가 있는 건 정신뿐이지. 정신에 영향을 주는 것들 중에 지금 그 녀석이 겪을 만한 것은 감정의 변화뿐이야.”
선우는 손가락 두 개를 접고 하나 남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린다. 우림은 곰곰이 생각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선이는 다르게 말하던데. 네가 우리가 이제는 더 이상 환계의 힘을 받아들일 수 없는 몸이라고 했다고…….”
“당연히 구라지. 우리들의 몸은 이 상태로 고정된 거 잊었어? 환계의 힘을 받아들일 수 있는 몸이니, 아닌 몸이니 그거랑은 관계없어. 우린 그냥 환계인이랑 다를 바 없다고. 기훈이 그 녀석은 짊어진 게 너무 많아서 그래. 6년 동안 자기 혼자 그렇게 끙끙거렸으니 정신이 안 나가고 버티겠어?”
선우는 입술을 비쭉였고, 우림은 쿡 웃으며 말한다.
“난 모든 게 그대로일 텐데 왜 50퍼센트 정도밖에 안 되는 거야?”
“오랜만이니까. 몇 번 하다보면 다시 100퍼센트 돼.”
선우의 말에 우림은 신기하다는 듯이 말한다.
“그래? 그런데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딱 보면 알지. 이걸 왜 몰라?”
선우는 도리어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이다. 우림은 그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래, 그렇겠지. 난 이만 갈게. 비는 저녁에 그칠 거야.”
“응.”
“바이바이.”
“잘 있어라.”
선우는 다시 침대에 누웠고, 우림은 자신의 앞에 거대한 눈의 문장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안으로 카일루스와 바알과 함께 들어간다. 눈의 문장은 금방 사라졌고, 선우는 이불을 덮고 눈을 감는다. 좋은 빗소리다. 좋은 온도다. 좋은 시간이다. 자면 된다.
선우는 눈을 감고 누워 있다가 한숨을 쉬며 일어난다. 갑자기 잠이 깼다. 짜증난다.


저택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으리으리한 우림의 집. 우림 소유의 건물이다. 이 집은 작년에 우림의 부모님이 우림의 생일에 준 선물이다. 이곳에 우림 혼자서 살고 있다.
“네가 사는 곳도 제법 좋은 곳이네.”
“그러게, 내 신전이랑 비슷한 것 같은데.”
카일루스와 바알은 우림을 따라 우림의 집 안을 돌아다니며 감탄한다. 우림은 눈을 통해 자신의 방으로 갔다가 부엌으로 향한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치즈다.
카일루스와 바알의 눈이 반짝인다. 우림은 치즈를 꺼내놓고 잔을 가지고 오며 말한다.
“좋아하지? 이것들.”
“포도주도 있으면 금상첨화지.”
“알아. 여기서도 꽤 비싼 거야. 카일루스의 넥타르에 비할 바는 안 되지만.”
우림은 그렇게 말하며 눈을 만들어내고 그것에 손을 집어넣은 다음 와인 한 병을 꺼낸다. 당연한 말이지만 굉장히 고급인 녀석이다. 카일루스와 바알은 바로 침을 꿀꺽 삼킨다. 카일루스는 감탄하며 말한다.
“이야, 네가 재회를 기념해서 포도주와 치즈를 대접할 줄이야. 내일은 아폴론이 마차를 반대로 몰지도 모르겠는데?”
카일루스의 말에 바알은 한숨을 쉬며 말한다.
“몇 천 년 넘게 이어온 네놈의 멍청함은 역시 6년이란 세월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것 같아. 그렇게 겪고도 모르겠어? 이건 ‘제물’이잖아.”
“응?”
“그래, 물어볼 게 있어. 진실만을 답해야 해.”
우림은 카일루스와 바알의 앞에 와인과 치즈를 내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