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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계의 용사였습니다 18화

Population(2)


아린은 귀엽게 눈웃음을 지었고, 선우는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며 말한다.
“그냥 어릴 때부터 친한 친구야. 기훈이랑 비슷해.”
“아린이라고 해∼”
아린은 생긋 웃었고, 인구는 가슴을 부여잡고 심장을 폭행당했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선우는 혀를 차고는 프라페를 쪽쪽 빨다가 인구의 옆에 앉는 인지를 보며 말한다.
“하실 말씀 없으시면 저희 그냥 다른 곳에 있다가 와도 괜찮을까요?”
“…….”
인지는 갈등하는 표정이었고, 인구는 자신이 시킨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가 토할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거의 두 시간 정도 남았는데, 뭐 할 건데?”
“피씨라든가.”
“가자.”
인구는 거의 자동 반사로 대답했고, 인지는 당황하며 말한다.
“아, 아니. 본부장님이 어떻게든……!”
순간 인지는 입을 막았고, 선우와 아린의 눈이 날카로워진다. 인지는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지었고, 인구는 일어서며 아직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인지의 자바칩 프라페를 잡으며 말한다.
“이 석회수 같은 건 누나가 대신 마셔줘. 이건 내가 마실게.”
“아린이 넌 돌아갈 거지?”
선우는 인구를 따라 일어서며 말했고, 아린은 고개를 기울이며 말한다.
“피씨 가서 그거, 항상 말하던 게임할 거야?”
“응, 그러니까…….”
“나도 같이 해도 돼?”
“……?”
순간 띠용, 이라는 효과음이 난 것 같다. 선우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떴고, 인구의 머리 위에는 느낌표가 떴다.
“너, 너도 시계 해?”
“응.”
‘미쳤다, 미쳤어. 완전 천사 아니냐?’
인구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선우는 불안한 표정으로 말한다.
“뭐 하는데.”
“어머니의 나라 출신 강한 여성.”
“…….”
“해보니까 재밌더라.”
‘일단… 탱커니까…….’
탱커도 못하면 말짱 꽝이지만… 선우는 고개를 끄덕인다.
“같이 가자.”
“아… 어…….”
인지는 어떻게든 그들이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을 막고 싶었지만 아린이 있으니 아무 말도 못했다. 무언가 또 한마디 하려고 하다가 아린의 얼굴을 봤는데, 심장이 멈추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린은 입을 살짝 벌리고 있었고, 입 안에선 벌레가 꿈틀대고 있었다. 아린은 입을 다물고 생긋 웃었고, 인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3,900원입니다.”
“…….”
인구는 4,000원을 내고 100원을 거슬러 받는다. 충격에 빠진 얼굴이다. 옆에 서 있던 선우도 마찬가지다. 아린은 생글생글 웃으며 말한다.
“둘 다 잘하네.”
그녀의 말에 인구와 선우는 그녀를 슥 보았다가 고개를 숙인다.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게임 출시부터 했던 그들보다 그녀가 훨씬 더 잘했다.
‘뭐지, 내 상상에서 나온 여잔가.’
‘이상한데, 왜 나보다 잘하는 거지.’
인구는 참을 수 없을 만큼 설레는 마음에 도저히 고개를 들 수 없었고, 선우는 패배감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나름 탱커 유저로서의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잘한다.
아린은 시계를 보며 말한다.
“아, 그럼 나도 약속이 있어서 이만.”
“응.”
“나중에 봐.”
‘지키느니 뭐니 하더니 그냥 가네.’
선우는 아주 약간 의아함을 느꼈으나 일단 뭔가 홀가분해졌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아린에게 인사한다. 아린은 생긋 웃으며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진다. 저 웃음이 뭔가 마음에 걸리지만 상관없겠지.
아린이 사라지자마자 인구는 그의 팔을 껴안으며 말한다.
“소개시켜 줘.”
“아린이?”
“응, 제발. 네 여자라면 미안하게 된 일이지만 양보해라.”
“헛소리는 삼키고.”
선우는 그의 몸을 밀어내고는 어깨를 풀며 말한다.
“소개시켜 줄 처지도 안 되고, 사귀어서 좋을 애도 아니야.”
“아까워서 그렇지? 알아… 하지만 그거 알면서도 이러는 거야. 진짜 살면서 이렇게 설렌 적은 처음이라고. 걸 그룹과 직접 만났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직접 만나본 적 있어?”
“몇 번.”
사는 세계가 다른 녀석이었다. 하긴, 정말로 사는 세계가 다르기도 하네. 선우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한다.
“그런데 우리 어디로 가야 하냐?”
“택시 타야지. 그것보다 일단 번호라도 좀 가르쳐 주라.”
“끈질긴 새끼.”
선우는 한숨을 쉬며 폰을 꺼낸다. 인구는 손을 들어 택시를 잡아 둘은 택시에 탄다.

선우 : 야.
아린 : 와∼ 백만 년 만에 선우한테 받는 선톡이다∼
선우 : 인구한테 번호 줘도 되냐?
아린 : 응.
아린 : 괜찮아
선우 : 미안
아린 : 갠찬태두.
아린 : 대신에 나중에 나랑 둘이서 달달한 거 먹으러 가기…♥
선우 : ㅇㅇ

선우는 픽 미소를 지으며 인구의 톡에 아린의 연락처를 보낸다. 인구는 폰을 보고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오, 유얼 마 보이, 땡큐.”
“이제 아린이 이야기는 꺼내지 않기다.”
“하나만 물어봐도 돼?”
“뭐.”
“선톡 어떻게 하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미친놈아.”
“음…….”
인구는 굉장히 고민하며 무언가를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한다. 선우는 지루한 표정으로 폰을 만지작거리며 도착할 때까지 기다린다. 잠시 후 택시는 멈췄고, 인구는 문을 열며 선우에게 카드를 내민다. 선우는 카드를 택시 기사에게 넘겼고, 택시 기사는 계산을 한 다음 그에게 카드를 다시 돌려준다.
선우는 카드로 인구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한다.
“말 걸었냐?”
“살면서 내 첫 캐릭의 닉네임을 지을 때보다 더 고민되는 순간이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어.”
인구는 카드를 받으며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그들에게 인지가 다가온다.
“아린이는 갔어?”
“예, 뭐.”
“다행이다… 그럼 식사 끝나고 나랑 잠시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인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선우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아니요, 죄송하지만 안 될 것 같은데요.”
“잠깐이면 돼. 이야기 조금만 들어주면 돼. 진짜로.”
“음…….”
선우는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인구는 퉁명스럽게 말한다.
“아, 좀, 작작 좀 해. 내 친구한테 자꾸 왜 그러는데?”
“진짜 미안한데, 네 도움이 필요해서 그래.”
인지는 인구를 무시하며 말한다. 인구는 ‘아니, 이년이 이제 무시를 해?’라고 뒤에서 말하고, 선우는 속으로 한숨을 쉰다. 여자한테 강압적으로 행동하는 건 힘든데.
“어머, 우연이네, 선우야. 네가 여기엔 웬일이야?”
“……?!”
인지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파랗게 질린다. 선우는 고개를 돌려서 그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말한다.
“내가 할 말을 왜 네가 하는데?”
“우림이가 저녁을 사주겠다고 해서 말이야.”
아린과 우림이 나란히 서 있다. 둘 다 굉장히 예쁜 드레스를 입고 있다. 아린은 우아한 보라색 드레스, 우림은 꽤 화려한 빨간색 드레스다. 선우는 우림을 위아래로 슥 훑어보며 말한다.
“그게 저번에 말했던 그 빨간 드레스냐?”
“어때? 너희 학교에서 반응 끝내줄 것 같지 않아?”
“끔찍한 년.”
“‘깜찍한’이겠지.”
우림은 방긋 웃는다. 인구는 아린을 보며 헤벌쭉한 표정을 지었다가 우림을 보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우림이 아니야?”
“……?”
“……?”
인구의 반응에 우림과 선우는 순간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우림은 인구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말한다.
“지구 그룹 회장 아들?”
“그룹 이름 좀 바꿨으면 좋겠다니까… 하다못해 어스라든가, 좋은 거 많은데 왜 하필 지구인 건지.”
인구는 한숨을 쉬었고 선우는 ‘응?’하고 당황하며 말한다.
“너 지구 그룹 후계자였어?!”
“후계자는 아니거든. 요즘도 세습 경영할 거 같냐?”
우림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서아 그룹과 인구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지구 그룹은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그들이 1년에 벌어오는 돈이 거의 이 나라 수입의 절반에 필적한다고 한다.
선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한다.
“너 왜 우리 학교 다니냐?”
“하하하, 서민들의 삶을 체험하고 싶어서 말이야.”
“와, 너 방금 되게 재수 없었어.”
“그게 내 매력이야.”
인구는 하하 웃었고 우림은 고개를 기울인다.
‘인구 맞나?’
그녀가 아는 인구는 조금 더 무거운 사람인데.
인구는 폰을 꺼내 시간을 보고 말한다.
“들어가자. 예약 시간이야.”
“우리도 가자.”
우림은 아린에게 말했고, 아린은 우아한 걸음걸이로 레스토랑을 향해 걸어간다. 우림은 혀를 차며 중얼거린다.
“끔찍한 년.”
“다 들리지 않을까.”
“들으라고 한 거야.”
우림은 아린을 뒤따르고, 선우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인구를 따라간다.


“오랜만이네.”
“예.”
“학교는 잘 다니고 있고?”
“예, 뭐… 평소랑 똑같아요.”
“웬일로 나랑 선우를 부르나 했더니, 누나 때문이었어? 진짜 정 떨어지는 가족이라니까.”
선우와 인구의 부모님이 약간의 안부 인사를 나누는데 인구가 퉁명스럽게 말한다. 인구의 아버지는 허허 웃으며 말한다.
“아빠한테 부탁 같은 건 하나도 안 하던 딸이 갑자기 부탁을 하니 어쩔 수 있겠어.”
“예, 예, 그러시겠죠, 아버지.”
인구는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출하고 있다. 선우는 인구의 부모님의 눈치를 슬슬 보면서 인구에게 속삭인다.
“너무 그러는 거 아니냐.”
“닥쳐. 한 달 만에 얼굴 비춰서 하는 게 이런 건데 내가 가만히 있어야 하냐?”
“…….”
선우는 이 집안도 꽤 가관이라고 생각했고, 인구는 팔짱을 끼며 말한다.
“거기다가 정작 볼일이 있는 누나는 왜 화장실 가서 안 오는 거야? 빨리 와야 욕을 하는데.”
“누나 너무 미워하지 마라. 그래도 널 얼마나 아끼는데.”
아버지의 말에 인구는 놀랍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아버지, 일이 너무 바쁘셔서 정신이라도 나가셨수?”
“난 외동이라 형제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지. 그래서 자식은 적어도 두 명은 낳자고 생각했지. 사실 셋째도 가지고 싶었는데…….”
“너 낳는데 죽을 것 같아서 더 이상은 못 가지겠더라.”
인구의 어머니가 아버지의 말을 잇는다. 인구는 혀를 차며 말한다.
“아, 예, 몇 백 번은 들은 레퍼토리, 잘 들었습니다.”
“음식 나온다.”
“아, 예.”
그때, 웨이터가 음식이 담긴 카트를 들고 온다. 선우는 슬쩍 우림과 아린의 자리를 본다. 역시 자리가 비어 있다. 선우는 한숨을 쉰다. 적당히 해주면 좋을 텐데.


“아니, 본부장님, 그게 그러니까… 예, 일단 좀 더 이야기해 보려고 하는데 자꾸 방해가 있어서… 예, 예… 예? 하, 하지만… 예, 예, 알겠습니다…….”
인지는 한숨을 쉬며 전화를 끊는다. 그리고 벽에 이마를 댄다. 짜증난다. 자신이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 여자… 아린. 그 여자 때문에 뭘 할 수가 없다. 그 여자를 보면 또 다리가 근질근질하다. 벌레가 다리를 타고 기어오르는 것만 같은 끔찍한 감각이 떠오른다.
인지는 몸을 부르르 떤다. 그리고 한숨을 쉬며 고개를 든다.
찰깍.
“……?”
“어∼머 언니∼ 혼자 여기서 뭐해요∼?”
“……!”
갑자기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린다. 인지는 이어서 들려오는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움찔한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문 앞에는 우림과 아린이 서 있다.
우림은 팔짱을 끼고 문에 등을 기대고 있고, 아린은 한 걸음, 한 걸음 우아하게 엉덩이를 아주 살짝 흔들며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다. 인지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났고, 아린은 멈춰서고 허리에 왼손을 올리며 말한다.
“언니, 우리 있잖아요, 말로 할 때 좀 적당히 들어주면 안 돼요? 나 자꾸 이러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안 좋아하기는, 즐기고 있으면서.’
우림은 속으로 혀를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