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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계의 용사였습니다 19화
Population(3)
인지는 덜덜 떨며 말한다.
“나, 나도 하고 싶어서 이러는 거 아니야! 본부장님이… 본부장님이 시키셔서 이러는 거라고!”
“우리 언니… 적당히 넘어간다는 말의 의미를 이해 못하시네∼”
아린은 호호호 웃으며 그녀에게 한 발자국 더 다가간다. 인지는 다시 한 걸음 물러나지만 뒤는 벽이다. 인지는 덜덜덜 눈에 보일 정도로 심하게 떨기 시작한다. 아린의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그게 더욱 두렵게 느껴진다.
“언니, 가서 내 이름 팔아요∼ 예? 뭐라고 안 할게요. 제가 적당히 하자고 했잖아요. 적당히, 적당히, 적당히. 예? 적당히가 뭔지 몰라요? 우리 융통성 있게 하자고요. 가서 제 이름 ‘아린’이 두 자 말하고도 뭐라고 하면 저한테 말하세요. 본부장인가 뭔가 조용하게 만들어 줄게요.”
“…….”
인지는 덜덜 떨며 천천히 고개를 숙인다. 아린은 한숨을 쉬고 삐딱한 자세로 오른손을 들며 말한다.
“언니, 내가 재주가 좀 많아서 온갖 나쁜 짓은 다 할 수 있거든요.”
아린은 손가락 하나를 살짝 위로 올린다. 그 손가락에 작은 벌레가 생겨난다. 아린은 그것을 바라보며 말한다.
“이게 뭐냐면, 사람 뇌에 파고들어서 신경을 마음대로 가지고 노는 기생충이에요. 이거 하나 꽂히면 어떻게 된다? 완전히 제 장난감이 된다, 이 말이에요.”
“…….”
“XX를 XX하고 XX한 XX를 XX할 수 있단 말이에요.”
“상스러운 년.”
뒤에서 듣던 우림이 혀를 찼고 아린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말한다.
“그런데 언니, 이게 생각보다 유지하기 힘든 거거든요. 저도 그다지 쓰고 싶지 않은 거예요. 그러니까 언니, 제가 이걸 쓰게 하지 말라고요. 예? 그냥 말로 할 때, 예? 예에?”
“그만해.”
그때, 갑자기 천장이 무언가의 입이 벌어지는 듯이 벌어지더니 그 안에서 우현이 내려온다. 우현은 바닥에 가볍게 착지했고, 아린은 픽 웃으며 말한다.
“뭘 그만해? 내가 뭘 하고 있는데?”
“요즘 조용해서 성격 좀 죽었다 싶었더니 또 이런 짓이냐.”
“성격 좀 죽었다니, 난 언제나 이랬어. 그리고 이게 뭐가 잘못됐는데? 귀찮게 구는 쓰레기는 치워야지. 아니야?”
아린은 주먹을 쥔다. 손에 있던 기생충은 어느새 사라졌다. 인지는 침을 꿀꺽 삼킨다. 쓰레기라니,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이쪽에서 갑자기 선우에게 접근하는 건 기훈이가 여기서 나갔기 때문이야.”
“기훈이?”
“그래. 기훈이가 힘을 되찾았으니 이쪽에 있을 이유가 없어졌다면서 그냥 나갔거든.”
우현의 말에 아린은 웃음을 흘린다.
“후후, 쓰레기가 하나 더 있었네.”
“기훈이가 빠져나갔기 때문에 연구에 필요한 사람이 부족해졌어. 그래서 보충을 하려고 선우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거야. 기훈이가 있을 때도 선우가 가끔 정보를 줘서 좋았다고 연구원장인가 뭔가 하는 사람이 선우를 캐스팅 해오라고 한 거지.”
“알고 있으면 좀 막지 그랬어?”
“막으러 왔잖아.”
우현도 이제야 사태 파악이 끝난 상태다. 사태 파악이 끝나자마자 본부장 세민을 만나서 그의 첫 계약 조건인 그가 환계 대책 본부에서 일하는 대신에 다른 사람들에게 어떠한 제재도, 어떠한 제의도 하지 않는다고 했던 것을 언급하며 선우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취소하라고 말했다.
세민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잘못했다고 말하며 선우를 회유하는 것을 멈추겠다고 말했고, 그 즉시 우현은 백경을 통해 이곳으로 온 것이다.
우현은 인지를 보며 말한다.
“본부장님한테는 말해뒀으니까 이제 이 일에서 손 떼셔도 됩니다.”
“지, 진짜?”
“예.”
“하…….”
인지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털썩 주저앉았고, 아린은 혀를 쯧 차고는 뒤돌아선다. 우림은 문을 열며 말한다.
“아쉬워 보이네.”
“아니야. 내가 뭐가 아쉬워.”
우림과 아린은 화장실 밖으로 나갔고, 우현은 눈치를 보다가 사라진다. 여자 화장실에 있는 거 들키면 큰일이지.
“너 생각보다 잘 먹네.”
“맛있으니까.”
“아니, 예의 있게 잘 먹는다고.”
선우는 매우 자연스럽게 나이프와 포크로 스테이크를 썰고 있다. 환계에서 한두 번 먹어본 것도 아니고, 우림이랑 같이 이런 곳에 가끔 오니까 당연한 일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인구는 신기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스테이크 써는 건 둘째 치고 그조차도 그의 누나가 비아냥거리면서 가르쳐 주면서 알게 된 어패류 먹는 법이라든가 샐러드나 파스타를 깔끔하게 먹는 법을 알고 있으니 놀라운 따름이다.
선우는 냅킨으로 입술을 살짝 닦으며 말한다.
“그냥 먹는 건데, 뭘.”
선우는 대답을 하고 물 컵에 입에 댔고, 인구는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말한다.
“혹시 우림이랑 이런 곳에 자주 온 거야?”
“콜록! 콜록!”
선우는 바로 입을 가리고 기침을 했고, 인구는 입술을 비쭉이며 말한다.
“진짜냐.”
“뭐, 뭔 헛소리냐. 여기서 왜 우림이가 나와.”
“남자로서의 직감이라고 해야 하나.”
인구의 나긋나긋한 말에 선우는 인구의 부모님의 눈치를 흘끔 본 다음 속삭이듯 말한다.
“부모님도 계신데 거친 소리 안 나오게 해라.”
“저 두 사람은 네가 나한테 무슨 소리를 해도 신경 안 써. 난 내놓은 자식이거든.”
“…….”
선우는 인구의 부모님들을 흘끔 본다. 과연, 인구의 말을 신경도 쓰지 않고 둘이서 할 이야기만 하고 있다. 너무 완벽하게 무시하고 있어서 오히려 놀라울 따름이다. 인구는 퍄퍄 하고 이상한 웃음을 흘리며 말한다.
“봐, 그냥 무시한다니까.”
“…….”
“하여간, 뭣 같은 부모님들이에요.”
인구는 그렇게 말하며 스테이크 조각을 입에 넣는다. 그리고 우물우물 씹은 다음 히히 하고 웃으며 말한다.
“그래도 여기 온 보람은 있네. 이거 맛있잖아.”
“응.”
‘방금 우현이의 힘이 느껴진 것 같은데.’
선우는 슬쩍 아린과 우림이 있는 자리를 본다. 아린은 흘끔 그를 보며 손을 살짝 흔들었고, 선우는 고개를 내려 스테이크를 본다. 그리고 다시 조금 썰어 입에 넣는다. 정말로 맛있다.
아, 그리고 식사가 끝날 때까지 결국 인지는 오지 않았다. 나중에 부모님의 폰에 일이 있어서 그냥 가보겠다는 문자가 왔다고 한다.
“잘 먹었어.”
“잘 먹었다고 하시니 다행입니다, 하핫.”
“너희 부모님께도 감사 인사 전해주고.”
“그건 장담 못하겠는데.”
인구의 부모님은 먼저 식사를 마치고 일이 있다고 하시며 가버리셨다. 인구와 선우는 느긋하게 식사를 마치고 레스토랑을 나온다. 인구는 폰으로 시계를 보며 말한다.
“뭔가 애매한데, 필요한 거라도 있음?”
“입이 조금 심심하긴 하네.”
“내 혓바닥을 넣어주지.”
퍽.
인구는 옆구리를 잡으며 말한다.
“한 판 더 하러 갈까? 게임.”
“폐인이냐.”
“내 첫사랑이 게임을 너무 잘해서 내가 한 게 없는 것 같아 아쉽거든.”
“인정.”
아린이 너무 잘해서 할 게 없긴 했다. 선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고민하다가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폰을 꺼내 톡을 본다.
선이 : 브라더, 아지트로 컴.
선우 : ?
선이 : 다른 사람들 다 오고 있음. 할 이야기가 있어서.
선우 : 꼭 가야함?
선이 : ㅇㅇ
선우 : 왜.
선이 : 걍 와. 말 더럽게 많네.
선우 : 미친년이. 난 뭐 일 없는 줄 아나.
선이 : 후.
선이 : 환계에 나타난 새로운 악마 폴에 관한 정보를 가지고 여와 님이 내려오셨어. 지금 환계의 존재들이 내계에 오는 이유, 그리고 그것에 관한 대부분의 정보를 알려주시겠대. 그리고 지금 기훈 오빠가 갑자기 행방불명됐고, 아무리 찾아봐도 안 보여.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서 모두들 모여야 해.
선이 : 손가락 아파서 더 못 치겠으니까 와서 들어.
선우 : 어.
“미안한데, 일이 생겨서 피씨는 못 가겠는데.”
“무슨 일?”
“개인적인 일.”
“울 자긔, 우리 사이에 비밀 있긔, 없긔?”
“있기.”
“나 상처받았긔…….”
인구는 슬픈 표정을 지었고, 선우는 택시를 잡으며 말한다.
“미안, 피씨는 내일 가자.”
“울 거야.”
“많이 울어.”
“수학여행 가서 밤에 네놈 허벅지에 하트 그려놓을 거야.”
“그거 또 하면 죽인다고 했을 텐데. 그리고 고3인데 무슨 수학여행이야?”
“우리 수학여행 가는데?”
“……?”
선우는 고개를 돌려 인구를 보았고, 인구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다음 주잖아. 25일부터 28일까지.”
“뭐 때문에 고3이 수학여행을 가는 건데?”
“우리 학교 전통. 우리 고1, 고2때 항상 고3이랑 있었는데, 기억 안 남?”
“……?”
“너도 조기 치매인 건가. 내가 책 좀 읽으라고 했지?”
인구는 혀를 찼고, 선우는 택시에 타며 말한다.
“일단 톡으로 얘기하자.”
“그러든가.”
선우는 택시 기사에게 우림 아파트로 가달라고 말한 다음 폰으로 인구에게 진짜 수학여행을 가냐고 물어본다.
인구 : 그럼 구라로 가겠냐.
선우 : ㄹㅇ로 감?
인구 : 속고만 사셨나.
선우 : 아니, 왜 고3이 수학여행을 가는 건데?
인구 : 싀바 방금 말한 거 또 말할까. 전통이라고.
선우 : 전통은 얼어 죽을 전통. 고3이면 고3답게 시험 공부나 하라고 해;
인구 : 인생은 즐겨야 하는 것임.
선우 : 미친 거 아니냐. 언제 말해줬는데?
인구 : 네가 꿈나라에서 시계 하고 있을 때.
선우는 한숨을 푹 쉰다.
선우 : 그… 가정통신문은?
인구 : 집으로 배달. 너희 부모님이 말하지 않던?
선우 : 잠만.
선우는 바로 아버지에게 톡을 한다.
선우 : 아버지. 혹시 수학여행 관련 가정통신문 받으셨어요?
아버지 : 어, 그거 입금했다.
선우 : 예?
아버지 : 입금하라고 해서 입금했다. 왜? 안 됐다고 하니?
선우는 이마를 탁 친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고 톡을 한다.
선우 : 아버지, 제가 고3인데 수학여행을 가도 괜찮을는지요.
아버지 : 난 네 성적보다 네가 좋은 추억을 쌓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단다. 잘 놀고 오렴^^
선우의 눈이 파르르 떨린다. 선우는 심호흡을 하고 어머니에게 톡을 하려다가 멈춘다. 어머니도 똑같은 말을 할 것 같다. 선우는 한숨을 내쉰다.
인구 : 어찌 됨?
선우 : …….
인구 : 아, 기대된다. 이번에도 거기서 술 샀다가 들키면 퇴학당하지 않을까?
선우 : 어디 가는데.
인구 : 1, 2학년 다 똑같은 데 갔는데 아직도 기억 못함?
선우 : 오사카…….
인구 : 빵빵한 장학 재단에게 갈채를!
그러고 보니 그 장학 재단, 지구 그룹이 운영하고 있었지. 오늘에야 비로소 왜 인구가 들어온 그의 기수부터 갑자기 수학여행으로 해외를 갔는지 알겠다. 인구 때문이었구나.
선우 : 경준이도 갈까?
인구 : 5만 원이면 해외여행 갈 수 있는데, 누가 안 가겠냐. 안 간다고 하면 억지로 끌고 갈 거임.
선우 : 다행이네.
“학생, 우림 아파트 단지 입군데, 더 들어갈까?”
“아뇨, 여기서 내릴게요.”
선우는 택시에서 내리고 102동의 3층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304호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연다. 자연스럽게 선이의 벽돌이 날아온다. 선우는 선이의 벽돌을 잡으며 말한다.
“포악한 년.”
“그냥 오라면 좀 쳐오지, 굳이 말을 길게 하게 만들어요.”
선우는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가며 말한다.
“기훈이 진짜 안 보이냐?”
“무, 무시야?”
“내계 안에는 없는 것 같은데.”
“눈으로 찾아본 거야?”
“일단 카이퍼 대까지는 전부 본 것 같은데, 없었어.”
아직도 드레스 차림의 우림이 소파에 앉아 있다. 마찬가지로 아직도 드레스 차림인 아린이 그 옆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다. 그녀는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선우는 바닥에 앉으며 말한다.
“오랜만입니다, 여와 님.”
Population(3)
인지는 덜덜 떨며 말한다.
“나, 나도 하고 싶어서 이러는 거 아니야! 본부장님이… 본부장님이 시키셔서 이러는 거라고!”
“우리 언니… 적당히 넘어간다는 말의 의미를 이해 못하시네∼”
아린은 호호호 웃으며 그녀에게 한 발자국 더 다가간다. 인지는 다시 한 걸음 물러나지만 뒤는 벽이다. 인지는 덜덜덜 눈에 보일 정도로 심하게 떨기 시작한다. 아린의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그게 더욱 두렵게 느껴진다.
“언니, 가서 내 이름 팔아요∼ 예? 뭐라고 안 할게요. 제가 적당히 하자고 했잖아요. 적당히, 적당히, 적당히. 예? 적당히가 뭔지 몰라요? 우리 융통성 있게 하자고요. 가서 제 이름 ‘아린’이 두 자 말하고도 뭐라고 하면 저한테 말하세요. 본부장인가 뭔가 조용하게 만들어 줄게요.”
“…….”
인지는 덜덜 떨며 천천히 고개를 숙인다. 아린은 한숨을 쉬고 삐딱한 자세로 오른손을 들며 말한다.
“언니, 내가 재주가 좀 많아서 온갖 나쁜 짓은 다 할 수 있거든요.”
아린은 손가락 하나를 살짝 위로 올린다. 그 손가락에 작은 벌레가 생겨난다. 아린은 그것을 바라보며 말한다.
“이게 뭐냐면, 사람 뇌에 파고들어서 신경을 마음대로 가지고 노는 기생충이에요. 이거 하나 꽂히면 어떻게 된다? 완전히 제 장난감이 된다, 이 말이에요.”
“…….”
“XX를 XX하고 XX한 XX를 XX할 수 있단 말이에요.”
“상스러운 년.”
뒤에서 듣던 우림이 혀를 찼고 아린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말한다.
“그런데 언니, 이게 생각보다 유지하기 힘든 거거든요. 저도 그다지 쓰고 싶지 않은 거예요. 그러니까 언니, 제가 이걸 쓰게 하지 말라고요. 예? 그냥 말로 할 때, 예? 예에?”
“그만해.”
그때, 갑자기 천장이 무언가의 입이 벌어지는 듯이 벌어지더니 그 안에서 우현이 내려온다. 우현은 바닥에 가볍게 착지했고, 아린은 픽 웃으며 말한다.
“뭘 그만해? 내가 뭘 하고 있는데?”
“요즘 조용해서 성격 좀 죽었다 싶었더니 또 이런 짓이냐.”
“성격 좀 죽었다니, 난 언제나 이랬어. 그리고 이게 뭐가 잘못됐는데? 귀찮게 구는 쓰레기는 치워야지. 아니야?”
아린은 주먹을 쥔다. 손에 있던 기생충은 어느새 사라졌다. 인지는 침을 꿀꺽 삼킨다. 쓰레기라니,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이쪽에서 갑자기 선우에게 접근하는 건 기훈이가 여기서 나갔기 때문이야.”
“기훈이?”
“그래. 기훈이가 힘을 되찾았으니 이쪽에 있을 이유가 없어졌다면서 그냥 나갔거든.”
우현의 말에 아린은 웃음을 흘린다.
“후후, 쓰레기가 하나 더 있었네.”
“기훈이가 빠져나갔기 때문에 연구에 필요한 사람이 부족해졌어. 그래서 보충을 하려고 선우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거야. 기훈이가 있을 때도 선우가 가끔 정보를 줘서 좋았다고 연구원장인가 뭔가 하는 사람이 선우를 캐스팅 해오라고 한 거지.”
“알고 있으면 좀 막지 그랬어?”
“막으러 왔잖아.”
우현도 이제야 사태 파악이 끝난 상태다. 사태 파악이 끝나자마자 본부장 세민을 만나서 그의 첫 계약 조건인 그가 환계 대책 본부에서 일하는 대신에 다른 사람들에게 어떠한 제재도, 어떠한 제의도 하지 않는다고 했던 것을 언급하며 선우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취소하라고 말했다.
세민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잘못했다고 말하며 선우를 회유하는 것을 멈추겠다고 말했고, 그 즉시 우현은 백경을 통해 이곳으로 온 것이다.
우현은 인지를 보며 말한다.
“본부장님한테는 말해뒀으니까 이제 이 일에서 손 떼셔도 됩니다.”
“지, 진짜?”
“예.”
“하…….”
인지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털썩 주저앉았고, 아린은 혀를 쯧 차고는 뒤돌아선다. 우림은 문을 열며 말한다.
“아쉬워 보이네.”
“아니야. 내가 뭐가 아쉬워.”
우림과 아린은 화장실 밖으로 나갔고, 우현은 눈치를 보다가 사라진다. 여자 화장실에 있는 거 들키면 큰일이지.
“너 생각보다 잘 먹네.”
“맛있으니까.”
“아니, 예의 있게 잘 먹는다고.”
선우는 매우 자연스럽게 나이프와 포크로 스테이크를 썰고 있다. 환계에서 한두 번 먹어본 것도 아니고, 우림이랑 같이 이런 곳에 가끔 오니까 당연한 일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인구는 신기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스테이크 써는 건 둘째 치고 그조차도 그의 누나가 비아냥거리면서 가르쳐 주면서 알게 된 어패류 먹는 법이라든가 샐러드나 파스타를 깔끔하게 먹는 법을 알고 있으니 놀라운 따름이다.
선우는 냅킨으로 입술을 살짝 닦으며 말한다.
“그냥 먹는 건데, 뭘.”
선우는 대답을 하고 물 컵에 입에 댔고, 인구는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말한다.
“혹시 우림이랑 이런 곳에 자주 온 거야?”
“콜록! 콜록!”
선우는 바로 입을 가리고 기침을 했고, 인구는 입술을 비쭉이며 말한다.
“진짜냐.”
“뭐, 뭔 헛소리냐. 여기서 왜 우림이가 나와.”
“남자로서의 직감이라고 해야 하나.”
인구의 나긋나긋한 말에 선우는 인구의 부모님의 눈치를 흘끔 본 다음 속삭이듯 말한다.
“부모님도 계신데 거친 소리 안 나오게 해라.”
“저 두 사람은 네가 나한테 무슨 소리를 해도 신경 안 써. 난 내놓은 자식이거든.”
“…….”
선우는 인구의 부모님들을 흘끔 본다. 과연, 인구의 말을 신경도 쓰지 않고 둘이서 할 이야기만 하고 있다. 너무 완벽하게 무시하고 있어서 오히려 놀라울 따름이다. 인구는 퍄퍄 하고 이상한 웃음을 흘리며 말한다.
“봐, 그냥 무시한다니까.”
“…….”
“하여간, 뭣 같은 부모님들이에요.”
인구는 그렇게 말하며 스테이크 조각을 입에 넣는다. 그리고 우물우물 씹은 다음 히히 하고 웃으며 말한다.
“그래도 여기 온 보람은 있네. 이거 맛있잖아.”
“응.”
‘방금 우현이의 힘이 느껴진 것 같은데.’
선우는 슬쩍 아린과 우림이 있는 자리를 본다. 아린은 흘끔 그를 보며 손을 살짝 흔들었고, 선우는 고개를 내려 스테이크를 본다. 그리고 다시 조금 썰어 입에 넣는다. 정말로 맛있다.
아, 그리고 식사가 끝날 때까지 결국 인지는 오지 않았다. 나중에 부모님의 폰에 일이 있어서 그냥 가보겠다는 문자가 왔다고 한다.
“잘 먹었어.”
“잘 먹었다고 하시니 다행입니다, 하핫.”
“너희 부모님께도 감사 인사 전해주고.”
“그건 장담 못하겠는데.”
인구의 부모님은 먼저 식사를 마치고 일이 있다고 하시며 가버리셨다. 인구와 선우는 느긋하게 식사를 마치고 레스토랑을 나온다. 인구는 폰으로 시계를 보며 말한다.
“뭔가 애매한데, 필요한 거라도 있음?”
“입이 조금 심심하긴 하네.”
“내 혓바닥을 넣어주지.”
퍽.
인구는 옆구리를 잡으며 말한다.
“한 판 더 하러 갈까? 게임.”
“폐인이냐.”
“내 첫사랑이 게임을 너무 잘해서 내가 한 게 없는 것 같아 아쉽거든.”
“인정.”
아린이 너무 잘해서 할 게 없긴 했다. 선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고민하다가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폰을 꺼내 톡을 본다.
선이 : 브라더, 아지트로 컴.
선우 : ?
선이 : 다른 사람들 다 오고 있음. 할 이야기가 있어서.
선우 : 꼭 가야함?
선이 : ㅇㅇ
선우 : 왜.
선이 : 걍 와. 말 더럽게 많네.
선우 : 미친년이. 난 뭐 일 없는 줄 아나.
선이 : 후.
선이 : 환계에 나타난 새로운 악마 폴에 관한 정보를 가지고 여와 님이 내려오셨어. 지금 환계의 존재들이 내계에 오는 이유, 그리고 그것에 관한 대부분의 정보를 알려주시겠대. 그리고 지금 기훈 오빠가 갑자기 행방불명됐고, 아무리 찾아봐도 안 보여.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서 모두들 모여야 해.
선이 : 손가락 아파서 더 못 치겠으니까 와서 들어.
선우 : 어.
“미안한데, 일이 생겨서 피씨는 못 가겠는데.”
“무슨 일?”
“개인적인 일.”
“울 자긔, 우리 사이에 비밀 있긔, 없긔?”
“있기.”
“나 상처받았긔…….”
인구는 슬픈 표정을 지었고, 선우는 택시를 잡으며 말한다.
“미안, 피씨는 내일 가자.”
“울 거야.”
“많이 울어.”
“수학여행 가서 밤에 네놈 허벅지에 하트 그려놓을 거야.”
“그거 또 하면 죽인다고 했을 텐데. 그리고 고3인데 무슨 수학여행이야?”
“우리 수학여행 가는데?”
“……?”
선우는 고개를 돌려 인구를 보았고, 인구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다음 주잖아. 25일부터 28일까지.”
“뭐 때문에 고3이 수학여행을 가는 건데?”
“우리 학교 전통. 우리 고1, 고2때 항상 고3이랑 있었는데, 기억 안 남?”
“……?”
“너도 조기 치매인 건가. 내가 책 좀 읽으라고 했지?”
인구는 혀를 찼고, 선우는 택시에 타며 말한다.
“일단 톡으로 얘기하자.”
“그러든가.”
선우는 택시 기사에게 우림 아파트로 가달라고 말한 다음 폰으로 인구에게 진짜 수학여행을 가냐고 물어본다.
인구 : 그럼 구라로 가겠냐.
선우 : ㄹㅇ로 감?
인구 : 속고만 사셨나.
선우 : 아니, 왜 고3이 수학여행을 가는 건데?
인구 : 싀바 방금 말한 거 또 말할까. 전통이라고.
선우 : 전통은 얼어 죽을 전통. 고3이면 고3답게 시험 공부나 하라고 해;
인구 : 인생은 즐겨야 하는 것임.
선우 : 미친 거 아니냐. 언제 말해줬는데?
인구 : 네가 꿈나라에서 시계 하고 있을 때.
선우는 한숨을 푹 쉰다.
선우 : 그… 가정통신문은?
인구 : 집으로 배달. 너희 부모님이 말하지 않던?
선우 : 잠만.
선우는 바로 아버지에게 톡을 한다.
선우 : 아버지. 혹시 수학여행 관련 가정통신문 받으셨어요?
아버지 : 어, 그거 입금했다.
선우 : 예?
아버지 : 입금하라고 해서 입금했다. 왜? 안 됐다고 하니?
선우는 이마를 탁 친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고 톡을 한다.
선우 : 아버지, 제가 고3인데 수학여행을 가도 괜찮을는지요.
아버지 : 난 네 성적보다 네가 좋은 추억을 쌓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단다. 잘 놀고 오렴^^
선우의 눈이 파르르 떨린다. 선우는 심호흡을 하고 어머니에게 톡을 하려다가 멈춘다. 어머니도 똑같은 말을 할 것 같다. 선우는 한숨을 내쉰다.
인구 : 어찌 됨?
선우 : …….
인구 : 아, 기대된다. 이번에도 거기서 술 샀다가 들키면 퇴학당하지 않을까?
선우 : 어디 가는데.
인구 : 1, 2학년 다 똑같은 데 갔는데 아직도 기억 못함?
선우 : 오사카…….
인구 : 빵빵한 장학 재단에게 갈채를!
그러고 보니 그 장학 재단, 지구 그룹이 운영하고 있었지. 오늘에야 비로소 왜 인구가 들어온 그의 기수부터 갑자기 수학여행으로 해외를 갔는지 알겠다. 인구 때문이었구나.
선우 : 경준이도 갈까?
인구 : 5만 원이면 해외여행 갈 수 있는데, 누가 안 가겠냐. 안 간다고 하면 억지로 끌고 갈 거임.
선우 : 다행이네.
“학생, 우림 아파트 단지 입군데, 더 들어갈까?”
“아뇨, 여기서 내릴게요.”
선우는 택시에서 내리고 102동의 3층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304호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연다. 자연스럽게 선이의 벽돌이 날아온다. 선우는 선이의 벽돌을 잡으며 말한다.
“포악한 년.”
“그냥 오라면 좀 쳐오지, 굳이 말을 길게 하게 만들어요.”
선우는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가며 말한다.
“기훈이 진짜 안 보이냐?”
“무, 무시야?”
“내계 안에는 없는 것 같은데.”
“눈으로 찾아본 거야?”
“일단 카이퍼 대까지는 전부 본 것 같은데, 없었어.”
아직도 드레스 차림의 우림이 소파에 앉아 있다. 마찬가지로 아직도 드레스 차림인 아린이 그 옆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다. 그녀는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선우는 바닥에 앉으며 말한다.
“오랜만입니다, 여와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