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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계의 용사였습니다 21화

속마음(2)


선우도 폰을 꺼내며 말한다.
“집에 부모님 계시냐?”
“아니.”
“그럼 슬슬 갈까.”
“오라버닝, 소녀가 지금 환력이 매우 빵빵해서 텔레포트 하고 싶은 마음을 주체할 수 없는데, 같이 텔레포트로 집에 가실래영?”
선이의 목소리에 비음이 많이 섞였지만, 그녀의 기분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선우는 그녀에게 맞춰주듯이 말한다.
“음, 그러도록 할까.”
“그럼 저 오늘 형 집에서 자도 돼요?”
그때 기원이 끼어든다. 선우는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말한다.
“오든가 말든가.”
“그럼 난?”
“나도.”
그에 아린과 우림도 끼어든다. 선우의 눈가가 꿈틀거린다.
“다 뒤지고 싶냐. 어지간히 해라.”
“아니, 너희 집에서 오랜만에 다 같이 자는 게 왜?”
“민감하게 반응하네. 너 우리한테 관심 있니?”
“관심 없거든? 오든가 말든가 딱히 신경 안 쓰거든?”
“그럼 갈게.”
“오든가.”
역습당했다. 선우는 속으로 욕지기를 내뱉었고, 선이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어서 오세요, 오늘 여러분을 저희 집으로 텔레포트 시켜드릴 텔레포터, 선이입니다. 지금의 저는 환력이 빵빵해서 여러분들 모두 편안하게 텔레포트 시켜드릴 수 있습니다. 히얼 위 고!”
“난 그럼 먼저 갈게. 내일도 바쁘거든.”
우현은 그렇게 말하며 백경의 입을 만들어냈고, 선이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우현 오빠, 환력 안 부족해요?”
“…미모스 왔어.”
“어머나∼ 좋겠네요.”
“선우 닮아서 성격 나쁜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에엑.”
“에엑.”
우현의 말에 선우와 선이는 동시에 똑같은 소리를 냈고, 우현은 하하 웃으며 백경의 입 안으로 사라진다. 우현이 사라지자 선우는 한숨을 쉬며 폰을 호주머니에 넣는다.
“가자.”
“응.”
기분이 다운됐다. 저런 거랑 비교가 되다니, 라고 선우와 선이는 동시에 생각한다. 역시 매우 닮은 남매다.


“형.”
“왜.”
선우와 기원은 같은 방에서 잔다. 꽤 넓은 집이긴 하지만 방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라서 어쩔 수 없다. 부모님들이 자는 방에 기원이나 아린이나 우림이를 넣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선이의 방에는 아린과 우림이, 그리고 선우의 방에는 기원이 끼여서 잔다. 선우는 침대에 누워 있고, 기원은 바닥에 이불을 펴고 누워 있다.
선우는 눈을 감고 있고, 기원은 눈이 말똥말똥하다.
“진짜 아린 누나나 우림 누나랑 아무 일도 없었어요?”
“없었다니까.”
“들어보니까 우림 누나랑은 수학여행 항상 같이 갔다면서요.”
“누가 말하든.”
“비밀이에요.”
“몸은 무거우면서 입은 가볍네, 돼지 년.”
선우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선이가 그랬을 거라 확신하며 말했고, 기원은 허허 웃으며 말한다.
“아무튼요. 아무 일도 없었어요?”
“없었다니까.”
“왜 없었는데요.”
“일이 꼭 있어야 하냐?”
“남녀 사이에 친구가 어디 있어요?”
“잠이나 자. 내일 학교 가야 하잖아.”
선우는 그렇게 말하며 옆으로 몸을 돌려서 누웠고, 기원은 몸을 일으켜서 침대에 기대며 말한다.
“아니, 좀 이야기하자니까요. 저 옆에 형이 한마디만 하면 뭐든 해줄 사람이 세 명이나 있잖아요.”
“……?”
빡!
“아야…….”
선우는 주먹을 휘둘러 기원의 이마를 후려쳤고, 기원은 과장된 몸짓으로 뒤로 넘어간다. 그리고 바닥에 누운 채로 말한다.
“왜 아무것도 없는 건데요.”
“아∼ 안 들린다∼”
“형.”
“…….”
“제가 지금까지 몇 백 명에 가까운 여자랑 사귈 동안 형은 뭐 했어요?”
“2D랑 연애했다. 됐냐?”
선우는 울컥하며 몸을 돌려 기원을 보고 말했고, 기원은 다시 몸을 일으키며 말한다.
“형, 이건 심각한 문제에요. 정신병원 가서 상담이라도 한 번 받아야 할 사항이라고요. 아니, 손을 뻗으면… 아니, 손을 안 뻗어도 품 안에 있는 여자를 왜 안 가지는 건데요?”
“네가 아린이랑 우림이 대변인이냐? 둘이 직접 오라고 그래.”
“직접 오면 어떻게 할 건데요?”
“정중히 아직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해야지.”
“네아 때문이에요?”
선우는 아주 잠깐 멈췄다가 답한다.
“아니거든.”
“하… 형.”
“남의 연애사에 왜 이리 관심이 많으세요? 적당히 하고 자자.”
“…안타까워서 이러는 거잖아요.”
선우는 다시 똑바로 누우며 말한다.
“헛소리는. 때 되면 사귀겠지.”
“저 죽기 전에는 사귈 거예요?”
“돼봐야 알지.”
“형.”
“왜.”
“X병신.”
“…….”
“줘도 못 먹는 개찐따.”
“…….”
“만날 저보고 가운데 다리 자른다고 하지 말고 형부터 자르는 게 어때요?”
“…….”
선우는 반박을 할 수가 없어서 그저 입을 다물었다고 한다.


“언니들.”
“왜?”
“진짜 오빠랑 아무 일도 없었어요?”
조금 좁지만 선이와 우림과 아린은 침대에 셋이 나란히 누워서 자고 있다. 선이는 가운데에 있다. 우림과 아린은 나란히 자고 싶지 않다고 한다. 선이의 물음에 우림은 픽 웃으며 말한다.
“왜? 뭐가 궁금한데?”
“그냥… 오빠랑 언니들이 같이 지낸 시간이 꽤 오래됐잖아요. 환계에서나, 이곳에서나 진짜로 아무 일도 없기에는 너무 오래 같이 있었지 않아요?”
선이는 조심스럽게 말한다. 아무래도 민감한 사항이니 말이다. 아린은 눈을 감은 채로 말한다.
“아무 일도 없었어. 진짜로. 뭔 일 생기려고 하면 둘이 서로 방해해서 그런 것도 있는데, 선우가 그냥 엄청 철벽 치고 있어.”
“왜 그런데요?”
“나야 모르지.”
아린의 답에 선이는 한숨을 쉬었고, 우림은 눈을 살짝 뜨며 말한다.
“선우는 이런 관계가 마음에 드는 것일 수도 있어.”
“이런 관계요?”
“둘 중 한 명 선택하기도 애매하고, 둘 다 사귀기도 애매하잖아. 우리 둘은 싸우기만 하고, 만약에 둘 다 사귄다고 해도 머리만 아프겠지. 한 명이랑 사귀어도 다른 한 명이 시끄러울 거고, 그냥 둘 다에게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게 편한 것일 수도 있어. 재미도 있을 거고.”
선이는 ‘음……’ 하고 앓는 소리를 내다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말한다.
“그럴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맞아. 그럴 애는 아니지. 그냥 이렇게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해서 그래.”
“엑.”
아린은 납득한다는 듯이 말한다.
“그래, 둘 다 매력이 있으니까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 힘들다, 그러면 차라리 낫지. 그게 아니라면 우리 둘 다 매력이 부족하다는 거잖아.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는 게 좋은 거야.”
“음…….”
선이는 복잡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우림은 다시 눈을 꼭 감으며 말한다.
“됐어. 반한 사람이 진 거지, 뭐. 언젠가 우리를 봐줄 때까지 기다릴 거야. 언젠가는 봐주겠지.”
“그, 그걸로 충분해요?”
아린은 쿡 웃으며 말한다.
“사실 우리도 이런 관계 그다지 싫지 않아. 꽤 재밌어. 선우가 어디까지 쉴드를 치나 궁금하기도 하고.”
“천생연분이네요.”
“그러게.”
우림과 아린은 동시에 쓰게 웃는다. 말했다시피, 반한 사람이 진 거다. 선이는 하품을 하고 말한다.
“오빠 거 꽤 크던데. 안 쓰면 아깝지 않나.”
“…….”
“…….”
“농담이에요, 농담. 조∼크.”
우림과 아린의 광대가 동시에 파르르 떨린다. 못 하는 말이 없는 애라고 생각한다.

***


시리 공항 2층 게이트 앞. 원래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이지만 오늘은 사람이 훨씬 많다. 수학여행 날이기 때문이다.
“3학년들은 이제 익숙할 거라고 생각하니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출국 절차 알지? 알아서 줄 서서 등록해라.”
“쌤, 직무 유기 아니에요?”
“내가 통솔하는 게 더 귀찮지 않니?”
“반박 불가.”
3학년들은 이제 줄 서고 짐 맡기는 것을 하는데 통솔이 필요 없다. 그냥 알아서 잘 한다.
“너희 형은?”
“뒤졌겠죠.”
“말은 했냐?”
“했는데 안 온데요.”
“쯧쯧.”
선우는 혀를 찬다. 선우는 이미 수속을 마치고 지금 기원과 함께 있다. 인구와 경준은 조금 늦게 와서 줄을 섰다. 현명한 3학년은 일찍 와서 미리 줄을 섰다. 3학년 학생만 몇 명인데 그걸 다 기다린단 말인가.
“기내식 먹을 만해요?”
“기내식 있었나?”
“없어요?”
“오사카까지 가는데 얼마나 걸린다고. 한 시간 반 정도밖에 안 걸려서 난 항상 그냥 잤어.”
“그래요……?”
“오사카 가도 별거 없어. 그냥… 응, 음식이 맛있었어. 진짜로.”
선우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려다가 갑자기 고개를 끄덕인다. 맛있게 잘 먹었었다.
“……?”
“덮밥이 진짜 맛있었어. 인구 녀석이 데리고 가준 덮밥 집에서 먹은 덮밥에 세 가지 고기가 들어 있었는데, 진짜 맛있었어.”
매년 먹었는데, 매년 맛있었다. 선우는 그때를 회상하며 말한다.
“마트에서 회랑 초밥도 팔더라. 그럭저럭 맛있었어. 그런데 인구가 사주겠다면서 데려간 초밥 집은 진짜 기가 막혔어. 말이 안 나오더라. 그런데 라멘은 그저 그랬어. 그냥 집에서 대파 라면 끓여먹는 게 더 괜찮을 것 같다는 느낌 정도? 아, 술 사는 거 단속 별로 안 하드라. 마트랑 편의점에서 술을 사는데 뭐 이상한 거 터치 한 번 하면 그냥 사게 해주던데, 선생님한테 걸려서 큰일 났었지.”
“우림 누나랑 어디 갔었어요?”
“우림이랑은 고베규 먹으러 고베 항까지 갔었지. 야경이 괜찮았어. 그날은 숙소에서 안 자고 온천에서 잤거든. 온천 좋더라.”
“…온천에서 우림 누나랑 같이 잤어요?”
“각방 썼지.”
“왜요.”
“…….”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기원의 시선을 선우는 애써 무시한다. 그때, 우림과 선이가 다가오며 말한다.
“선우가 각방 안 쓰면 그냥 돌아간다고 했거든. 어쩔 수 없었지.”
“오빠 개병신이네?”
이런 일에 한해서는 아무런 할 말이 없어서 선우는 입을 다문다.
“그때 혼자 어디서 잤냐면서 경준이랑 인구한테 추궁 엄청 당했지.”
선우는 아련한 표정을 짓는다. 추억이 계속 샘솟는다. 우림도 추억이 샘솟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한다.
“선우 술주정 진짜 재밌었는데.”
“……?”
“선우 진짜 많이 마시면 옷 벗거든. 그때 진짜… 읍읍.”
선우는 손으로 우림의 입을 막는다. 표정이 매우 살벌하다. 선우는 속삭이듯이 말한다.
“적당히 하자.”
“읍읍.”
“말 안 할 거면 고개 끄덕여.”
끄덕.
우림이 고개를 끄덕이자 선우는 그녀의 입을 막은 손을 뗐고, 우림은 숨을 헐떡이다가 후후 웃으며 말한다.
“부끄러운 건 아나 보네.”
“셧업.”
“와, X발, 매년 하는 건데 줄 서는 거 왜 이렇게 극혐이냐? 비행기 들어갈 때처럼 그냥 삑삑, 하면 들어가는 거 여기도 도입하면 안 되냐?”
“난 귀국할 때 삑삑, 하게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때, 인구와 경준이 다가온다. 인구는 우림과 선이를 보며 말한다.
“안녕, 서아 그룹 장녀랑 선이야.”
“오랜만. 인구 오빠, 경준 오빠.”
선이는 반갑다는 듯이 손을 흔들었고, 경준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혹시 서아 그룹이 내가 아는 그 서아 그룹이냐?”
“맞음.”
“……?!”
경준은 경악하고, 우림은 고개를 아주 살짝 까딱여 준 다음 뒤돌아서며 말한다.
“그럼 나중에 봐.”
“오빠들, 나중에 봐용∼”
선이도 우림을 따라간다. 경준은 선이를 바라보다가 선우를 보며 말한다.
“진짜 네 여동생 예쁘네. 서아 여고 공포의 수문장이라고는 상상이 안 되네.”
“저게 예쁘다고?”
“연예인 급인데.”
“미쳤다, 미쳤어.”
선우는 끔찍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인구는 이해한다는 듯이 말한다.
“나도 우리 누나 더럽고 추악한 돼지로 보이는데 남들은 예쁘다고 하더라. 괜찮아. 내면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기면 알게 될 거야.”
달관한 사람이 할 법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