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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명가 1권(14화)
第四章 수련(3)


사옥진이 사라진 후 진명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의 짐을 챙기는 것이었다.
한정된 지역 한정된 공간.
서로가 서로를 노리는 상황에서 적에게 노출된 지역에 계속 머무는 건 정말 어리석은 짓이기 때문이다.
사옥진이 알지 못하는 곳으로 거처를 옮길 필요가 있었다.
“어디로 옮기지?”
옮길 거처를 고민하던 진명의 뇌리에 몇 달 전 사옥진을 찾아 나섰다가 발견한 절벽이 생각났다.
그때 발견한 절벽 아래 갈라진 틈이 하나 있었다.
크진 않지만 그늘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곳이라 사옥진의 눈을 피하기엔 안성맞춤인 곳이다.
거처가 정해지자 빠른 속도로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충분한 양의 벽곡단을 챙긴 후 남은 건 모두 계곡물에 버렸다. 사옥진이 취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다.
벽곡단이 없다고 그가 굶어 죽진 않겠지만, 음식을 구하러 다니는 시간만큼 자신에겐 수련할 시간이 더 생길 것이다.
사옥진이 남기고 간 약초와 약병도 모두 챙겼다.
어떤 것이 약이고 어떤 것이 독인지 알 수 없어서였다.
만에 하나 이 중에 독이 있어 그가 계곡물에 풀기라도 한다면 큰일이 아닐 수 없다.
계곡의 물이 유일한 식수니, 자신도 죽을 생각이 아니라면 독을 풀 리 없겠지만 혹 모를 사태를 방지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곽영천의 회상록과 원우진서를 챙겨들고 서고를 나섰다.
막 떠나려던 진명의 눈에 한쪽에 놓여 진 나침반과 선인명부가 들어왔다.
“이건 그 성질 더러운 노인네들 건데…….”
자신이 대마두로 오해했던 네 노인들의 물건인지라 챙겨가기로 했다.
막 나침반을 드는데, 나침반의 모든 침들이 한쪽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게 보였다.
처음 발견했을 당시에도 침이 세 개나 달려 있어 기이하다 생각했는데 모든 침이 한곳을 가리키고 있자 절로 시선이 갔다.
진명은 이곳을 빠져나갈 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단 생각에, 나침반을 든 상태로 이곳저곳 방향을 바꿔 봤다.
여러 곳으로 방향을 바꿔도 침은 줄곧 한 곳만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침반이 가리킨 방향은 기이하게도 사옥진이 달아난 방향과 일치했다.
“그러고 보니 처음 나침반을 발견했을 때도 침이 가리키던 곳에 사옥진과 노인들이 있었지.”
소나무 숲에서 처음 나침반을 발견했을 때를 생각해 냈다.
그뿐 아니라 영조사 앞에서 네 노인과 재회했을 때 그들이 나침반을 들고 누군가를 찾아다니던 기억도 났다.
“그때 찾아다녔던 사람이 사옥진이었으니…….”
모든 기억을 종합해 보니 한 가지 결과가 나왔다.
“이 나침반은 사옥진의 위치를 가리키고 있구나!”
어찌된 영문인진 알 수 없지만 나침반은 기이하게도 사옥진의 위치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영조사 앞에 모여 있던 그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노인들이 그토록 정확히 사옥진을 찾아갈 수는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뜻하지 않게 유용한 물건을 얻게 되었다.
나침반으로 인해 앞으로 사옥진의 위치와 움직임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게 됐다.
별것 아니라 생각했던 나침반에 이런 큰 능력이 있자, 잡서로 여겼던 선인명부에도 시선이 갔다.
선인명부를 펼쳐 보니 신선인지 사람인지 알 수 없는 자들의 명호와 이름 그리고 내력과 무공들이 잔뜩 적혀 있었다.
그 수가 약 육십여 명.
하나씩 읽어 나가던 진명의 눈에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사옥진?”
뜻밖에도 선인명부 안에 사옥진의 이름이 기록돼 있었다.
“성명 사옥진. 별호 천살성.”
진명은 명부에 적힌 그의 내력을 읽은 후 한동안 멍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명부에 그가 무려 천이백 년 전의 사람이라고 기록돼 있었기 때문이다.
“천이백 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어찌 사람이 천이백 년 동안 죽지 않고 살 수 있단 말인가? 사옥진의 외모는 아무리 많이 봐 줘야 마흔 살이 넘어 보이지 않았다.
외모를 젊게 바꿔 주는 무공이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건 외모를 젊게 바꾸는 것이지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살게 해 주는 무공은 아니다.
명부의 인물이 사옥진과 동명이인일 수도 있었기에 그의 무공을 살펴봤다.
“무이건천심공, 화정도법…….”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사옥진이 분명했다.
“하,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되나?”
사실로 믿자니 천이백 년이란 세월의 격차가 너무 크고, 거짓으로 생각하려니 그의 무공이 걸렸다.
기록된 무공을 자신도 익히고 있기 때문이다.
진명은 선인명부의 내용이 참으로 괴이하다 생각하며 새로운 거처로 짐을 옮겼다.

***

진명이 거처를 옮기고 이 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나침반을 지니고 있어 사옥진의 움직임을 미리 예측할 수 있었지만, 갇힌 공간에서 마주치지 않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이곳 협곡에 대해선 진명보다 사옥진이 훨씬 많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나침반이 없었다면 잠결에 암습을 당해 이미 수십 번은 죽었을 것이다.
나침반을 이용해 그를 피해 다녔던 터라 그동안 죽지 않고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다.
사옥진의 집요함은 상상을 초월해 한 번 찾아 나서면 진명을 발견할 때까지 온 협곡을 이 잡듯이 뒤지고 다녔다.
사옥진의 무공이 진명보다 높다 보니 한 번 꼬리가 잡히면 뿌리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꼬리가 잡히고 나면 어쩔 수 없는 생사투를 벌여야 했는데, 그 횟수가 지난 이 년간 백오십여 회에 달했다.
생사투가 벌어지면 언제나 사옥진이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 진명이 그 공격을 필사적으로 막는 양상을 보였다.
싸움은 둘 모두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이어졌는데, 어찌나 격렬했던지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고 최소 한 달은 자리보전을 해야 할 정도의 큰 부상을 입고서야 끝이 났다. 그런데 무이건천심공의 능력은 상상을 불허해 한 달이 걸릴 부상을 단 사 일이면 치유하는 믿기 어려운 능력을 보였다.
그렇게 치유되고 나면 진명은 무공 수준이 월등히 향상이 되었고, 사옥진은 몸의 균형을 찾아 예전의 무공을 빠르게 회복해 나갔다.
그렇게 끝이 없을 것만 같던 둘의 싸움은 진명의 커다란 변화와 함께 그 막을 내리게 됐다.
원우진공의 성취도가 이성에 오르게 된 것이다.
원우진공이 이성에 오르면 큰 변화를 겪게 된다.
바로 신체 자체가 하나의 단전으로 변하는 현상이다.
진명이 사옥진과 혈투를 벌인 후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운기행공에 빠져 있을 때였다.
눈앞에 피어 있던 이름 모를 잡초에서 투명한 연기 같은 것이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분명 연기가 투명한데 그 너울거리는 모습이 진명의 눈에 확연히 보였다.
느닷없이 벌어진 괴이한 현상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데, 너울거리며 날아오르던 그 연기가 갑자기 진명의 코와 입속으로 빨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 일어서려 하는데 몸이 굳은 듯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몸이 굳어 있는데, 협곡 중앙을 가르는 계곡물에서도 투명한 연기가 피어올라 진명의 양쪽 귀와 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계곡 주변의 수많은 자갈, 절벽, 나무, 풀, 흙 등에서도 연기가 피어올라 눈, 항문, 배꼽을 가리지 않고 신체의 모든 구멍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진명은 너무 놀라 몸을 움직여 보려 했지만 손끝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신체가 단전화하는 과정이라 외부의 충격을 받거나 움직이게 되면 바로 주화입마에 빠질 우려가 있어, 신공 자체가 진명의 몸을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몸 전체로 스며든 기운들은 혈도를 타기 무섭게 한쪽으로 거칠게 치달렸다.
바로 단전이 있는 곳이었다.
거침없이 혈도를 타고 달리던 기운들이 단전을 채워 가기 시작했다.
단전에 기운들이 채워지기 시작하자, 본능적으로 원우진공 이성에 올라 단전화가 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고 몸의 변화를 관찰하는데, 단전에 기운이 꽉 찼음에도 외부의 기운들은 멈추지 않고 계속 밀려들었다.
이대로 계속 기운을 받아들였다간 단전이 터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진명은 몸이 굳어 있어 자신의 몸을 제어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그렇게 한동안 기운들로 채워지던 단전이 어느새 꽉 찼다.
그런 단전을 바라보던 진명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단전에 한계치 이상의 기운들이 채워지자 마치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단전은 한계치가 넘어 부풀어 오르는데, 몸속으로 빨려드는 기운은 멈출 기미가 없었다. 그뿐 아니라 몸속으로 스며든 모든 기운들이 단전을 향해 내달리자 진명은 극심한 공포에 빠져들고 있었다.
배꼽 아래 위치해 있던 단전이 부풀어 올라 어느새 심장 어림까지 차올랐다.
진명은 이대로 부풀다간 단전이 터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사태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자 원우진공 이성에 든 게 아니라, 내상의 부작용으로 주화입마에 빠진 게 아닐까 걱정이 됐다.
‘설마, 이대로 죽는 건가?’
진명이 죽음을 생각하던 그 순간 어깨 어림까지 부풀었던 단전이 더 이상 부풀 곳이 없자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으아아아아!’
진명이 속으로 비명을 지르는 순간, 빨려 들어오던 기운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머, 멈췄다!’
더 이상 기운이 유입되지 않아 마음을 놓으려는 순간.
콰아아아아앙!
머릿속을 울리는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부풀어 오른 단전이 마침내 터져 버리고 말았다.
단전이 터지는 폭발력에 진명의 몸이 허공으로 튕겨지듯 떠올랐다. 진명은 단전이 터지는 충격에 반쯤 정신을 놓고 있었다. 현재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모른 채 몸이 떠올랐다는 것만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삼 장 높이로 떠올랐던 진명의 몸이 바닥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진명이 정신을 놓고 있으니 그대로 바닥으로 곤두박질칠 것만 같았다.
한데 떨어지는 진명의 몸이 마치 새털처럼 천천히 가라앉는 게 아닌가.
진명의 몸이 천천히 가라앉는 그동안 내부에선 수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구멍을 통해 들어왔던 모든 기운들이 신체의 모든 혈도 혈맥 구석구석까지 퍼져 나갔다. 그리곤 흡수되고 채워지기를 반복했다.
마치 전설로만 회자되는 환골탈태의 모습과 유사했다.
하지만 진명의 이런 변화는 결코 환골탈태가 아니었다.
마침내 진명의 몸이 바닥에 닿았다.
그 순간 진명의 신체 곳곳에 흡수되고 채워졌던 기운들이 거짓말처럼 일시에 사라졌다.
마치 이제까지 있었던 일들이 모두 환상이었다는 듯.
기운들은 모두 사라졌지만 진명은 자신의 신체에 찾아온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현재 진명은 협곡 전체가 마치 자신의 신체 일부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몸이 단전화하는 매우 독특한 변화를 몸으로 겪고 보니, 곽영천이 직접 겪지 않곤 이해할 수 없다고 했던 말이 이해가 갔다.
누군가 지금 자신이 겪은 일을 책으로 기록해 보였다면 절대 믿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변화가 끝이 나자 진명의 굳었던 몸이 절로 풀려 있었다.
깜빡.
진명이 눈을 감았다 떴다.
세상이 달라 보였다.
세포 하나하나가 세상 모두를 느끼는 듯 생생했다.
진명은 눈을 지그시 감고 협곡에 이는 아주 미세한 공기의 흐름을 느꼈다.
이전엔 결코 느낄 수 없던 미세한 흐름들이 지금은 손으로 만져 본 듯 생생했다.
진명은 그 자세 그대로 기운을 일으켜 대주천을 시도했다.
“헛!”
진명이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없다!”
단전화하는 현상 중 하나라 생각했는데, 정말 단전이 사라지고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