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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명가 1권(15화)
第四章 수련(4)


“으하하하하!”
진명의 낭랑한 웃음소리가 협곡 안 가득히 울려 퍼졌다.
도저히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신체가 단전화한다는 게 이런 의미였을 줄이야!”
처음 단전이 사라졌을 때 얼마나 놀랐던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좋아 춤이라도 추고 싶은 기분이다.
신체의 단전화가 무얼 의미하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예전 단전이 있었을 땐, 천지자연에 퍼져 있던 기운들을 심법의 구결에 따라 끌어 모은 후, 운기행공을 통해 가장 순수한 기운으로 정제해 단전에 축기해 왔다.
그렇게 축기해도 자연의 기운은 인위적으로 가둬 둘 수가 없는 것이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흩어지곤 했다.
그래서 무인들이 밤낮없이 운기행공에 매달리는 것이다.
한데 원우진공은 그 같은 과정이 생략되어 있었다.
신체 자체가 하나의 단전이기에 기운을 정제하고 저장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천지자연 간에 퍼져 있는 기운들을 몸 전체로 받아들여 별도의 운기행공 없이 그대로 사용하면 되는 것이다.
아직 성취가 이성에밖에 이르지 못해 받아들인 기운을 외부로 발출할 수 없지만 삼성에 이르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 지긋지긋한 상황도 막을 내리게 될 것이다.
진명은 하루 속히 삼성에 이르기 위해 사옥진과의 대전도 마다하지 않고 수련에 박차를 가했다.
그렇게 일 년이 더 지나 진명의 나이 스무 살이 되던 해 드디어 원우진공 삼성에 이를 수 있었다.
사옥진을 따라 협곡에 들어오고 만 삼 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삼성에 오르기 위해 지난 일 년간 사옥진과 벌인 생사투만 백여 회가 넘어가고 있었다.
삼성에 올라 드디어 흡수한 자연지기를 외부로 발출할 수 있게 됐다. 곽영천의 말대로 진정 원우진경을 익혔다고 말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른 것이다.
무한에 가까운 공력을 지니게 된 진명은 지체하지 않고 바로 사옥진을 찾아 나섰다.
그와의 악연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다.
“나와라 사옥진!”
진명이 사옥진의 이름을 부르며 협곡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모습을 보여라, 이 인간 백정아!”
진명이 선인명부에서 보았던 사옥진의 또 다른 별호를 부르며 도발하기 시작했다.
사옥진은 갓 잡은 생선으로 허기를 달래려다 진명의 인간 백정이란 말에 사레가 들리고 말았다.
“켁! 콜록 콜록!”
잔기침을 토하던 사옥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늘 숨어 있기 바쁘던 진명이 느닷없이 자신을 찾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먹던 생선을 내동댕이친 사옥진이 바로 뛰쳐 나왔다.
“이런 망할 놈의 종자가 실성을 했나? 감히 어르신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
달려드는 사옥진에 맞서 진명도 지지 않고 마주 달려갔다.
“오냐, 실성했다! 실성한 놈한테 한 번 맞아 죽어 봐라!”
무한에 가까운 공력을 얻었으니 두려울 게 없었다.
진명은 몸 안에 가득 찬 자연지기를 거침없이 쏟아 냈다.
“이노옴!”
진명이 나천장을 발출하자 사옥진이 노성을 토하며 같은 나천장으로 응수했다.
콰아아앙!
나천장끼리 충돌하며 굉음이 일었다.
한데 이전과 달리 진명이 사옥진에게 전혀 밀리지 않았다.
원우진공이 삼성에 이르면서 공력만 늘어난 게 아니라 위력까지 함께 증가한 것이다.
사옥진은 자신의 손을 타고 은은히 밀려드는 진명의 장력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제까지 진명이 보여 왔던 어설픈 나천장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나천장을 훨씬 뛰어넘는 위력을 보였던 것이다.
‘이놈이 요 며칠 사이 큰 깨달음을 얻었구나!’
사옥진은 무공을 익히다 보면 어느 순간 큰 깨달음을 얻어 한순간에 무공이 일취월장할 때가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진명의 달라진 모습에 그가 최근 큰 깨달음을 얻어 무공이 급상승했음을 직감했다.
‘그렇게 도망만 다니던 놈이 어쩐 일로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했더니… 그만한 이유가 있었군!’
자신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인간 백정이란 말에 눈이 뒤집혀 뛰쳐 나왔다. 한데 진명과 손을 섞고 보니 이전처럼 만만히 상대할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이 밀린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네놈이 얼마의 성취를 이뤘다고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구나!”
“흥! 얼마의 성취? 과연 시간이 더 지난 후에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진명은 말과 함께 사옥진을 거칠게 몰아붙였다.
지난 삼 년 동안 단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게 만들었던 사옥진의 횡포를 모두 갚아 주겠다는 의도였다.
지난 삼 년간 사옥진과 목숨을 건 생사투를 벌이며 무공 실력만 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새 사옥진의 냉혹한 성격마저 닮아 가고 있었다.
진명과 사옥진은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공방을 주고받았다. 진명과 사옥진이 이곳 협곡에서 격전을 벌인 후 처음으로 대등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단하구나!’
겉으론 냉정한 척했지만 속으론 깜짝 놀라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깨달음을 얻었기에 단시일에 이리도 강해졌단 말인가?’
그 짧은 사이 진명은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 강해져 있었다. 자신도 신체가 균형을 되찾으며 예전 무공을 빠른 속도로 회복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진명의 발전 속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둘이 맞붙고 한 시진이 지나자 사옥진은 당혹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자신은 시간이 지날수록 지쳐 가는데 진명은 전혀 지친 기색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해지고 있다는 기분마저 들었다.
‘마치 공력이 무한대라도 되는 놈 같지 않은가…….’
초식 하나하나에 실린 위력이 예사롭지 않았다.
마치 단전의 모든 내공을 끌어내 한 번에 뿌려대는 듯한 위력이었다.
진명의 공격을 힘겹게 받아 내던 사옥진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서, 설마……!”
“설마 뭐?”
자신의 공격에 주춤거리는 사옥진을 몰아붙이며 진명이 물었다.
“설마, 원우진공 삼성에 이른 것이냐?”
사옥진은 물어보면서도 아니길 바랐다.
한데 진명의 대답은 너무도 간단히 그런 기대를 무너뜨렸다.
“잘 알고 있네!”
진명이 대답과 함께 나천장을 펼쳤다.
쿠콰콰쾅! 콰콰쾅!
진명은 거칠 게 없었다.
아직 성취가 삼성에 지나지 않아 한 번에 발출할 수 있는 자연지기에 한계가 있었지만 몸으로 끌어들이는 기운엔 한계가 없었다.
단전화로 인해 자연과 동화되다시피 한 터라 자연이 자신이고, 자신이 곧 자연이 된 상태였다.
체력만 뒷받침 된다면 몇날 며칠 동안이라도 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진명의 대답에 사옥진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자신이 그토록 우려 했던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천이백 년 전 그토록 사부에게서 원우진공을 뺏으려 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무한에 가까운 공력.
대부분의 무인들이 공력에 한계가 있어 전투 중에 내력 수위를 조정해야 된다. 하지만 원우진공을 익히게 되면 그런 상식이 여지없이 깨어진다.
받아들인 기운을 자신이 쏟아 낼 수 있는 최대 한계까지 끊임없이 펼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필살기? 숨겨 둔 한 수? 그딴 건 필요 없다. 일수 일수가 필살기이자 숨겨 둔 한 수가 되는 것이다.
천이백 년 전 곽영천이 병에 걸려 죽어 가면서도 자신을 이십 년 동안 이곳에 가둬둘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저 원우진공의 무한에 가까운 공력 때문이었다.
그런 원우진공을 진명이 익혀 삼성을 이뤄 냈으니 자신은 더 이상 진명의 상대가 아니었다.
등선 전 무공을 모두 되찾지 않는 한 진명과 일대일 승부로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생각했다.
‘젠장! 이런 애송이에게 당하다니!’
굴욕감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다.
진명이 원우진공 삼성에 든 것을 알았으니 더 이상의 격전은 불필요했다.
한순간의 굴욕을 견디지 못해 계속 싸운다면 끝내 내공이 고갈돼 말라 죽고 말 것이다.
‘이르다 생각되지만 어쩔 수 없지.’
사옥진은 이 기회에 이곳 지천곡을 빠져나가야겠다 생각했다.
더 이상 이곳 지천곡에서 진명과 공존할 수 없으니 강호로 몸을 피하려는 것이다.
사옥진은 달아날 틈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이곳 지천곡을 빠져나가는 방법을 알고 있지만 진명은 알지 못한다.
한순간의 틈만 만들 수 있다면, 방법을 모르는 진명은 이곳에 갇혀 죽을 때까지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이곳 지천곡을 빠져나가려면 연상연환진을 파훼하거나 생문을 찾아내야 한다.
한데 이 연상연환진이 보통 기문진이 아니라 기문진을 설치한 연사학이나 그에 준하는 지식을 지닌 자가 아니면 파훼할 수가 없다.
진명에게 그런 기문진에 대한 지식이 있다고는 절대 생각할 수가 없다.
진명이 연상연환진을 파훼할 능력이 없으니, 남은건 생문을 찾는 방법밖에 없는데 그 방법은 자신이 갖고 있다.
바로 흑옥주가 생문을 찾는 열쇠인 것이다.
생문을 찾는 열쇠인 흑옥주가 자신에게 있으니 진명을 따돌린 후 빠져나간다면 진명은 영영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을 잃게 될 것이다.
‘한순간의 틈만 만들면 된다!’
사옥진은 진명을 떨쳐 낼 한순간의 틈을 만들려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진명이 무언가를 느꼈는지 이전보다 더욱 강하게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내력은 고갈되고 틈은 만들어지지 않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함이 늘어났다. 그로인해 안 그래도 진명에게 밀리는 상황인데, 손발까지 어지러워져 사옥진의 모습은 처참함 그 자체였다.
“자, 잠깐! 잠깐 멈추거라!”
사옥진이 다급함에 진명을 멈춰 세웠다.
“내가 그 말을 들어야 될 까닭이 있나? 닥치고 죽어라.”
진명은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할 말이 있어서 그런다! 그러니 잠시만 멈춰 보거라!”
“난 네놈에게 들을 말이 없다.”
사옥진은 내력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하는 터라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이곳! 이곳 지천곡을 빠져나가는 방법을 알고 싶지 않느냐?”
사옥진의 말에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진명의 공격이 멈췄다.
“이곳을 빠져나가는 방법?”
“그래! 이곳 지천곡을 빠져나가는 방법 말이다! 내가 그 방법을 너에게 알려주겠다!”
사옥진이 망신창이가 된 채로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대신 목숨을 살려달라는 말이냐?”
진명의 물음에 사옥진은 끓어오르는 분기를 억누르며 대답했다.
“그, 그렇다…….”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듯한 굴욕감이 온몸을 휘어 감았다. 하지만 생명보다 중요한 것은 없으니 한순간의 굴욕은 참아 내야 했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진명은 딱히 이곳을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원우진공의 성취도 이제 삼성에 지나지 않고 앞으로 수련할 것이 많았다.
풍부한 자연지기가 넘치는 이곳에서 몇 년 정도 더 수련한 후 들어왔던 연못을 통해 다시 나갈 생각이었다.
이전엔 몰랐지만 삼성에 든 이후엔 자연지기의 흐름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기문진식엔 무지했지만 자연지기의 흐름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이곳 기문진의 흐름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가 있었다.
원우진공의 성취가 사성에 이르게 되면 자연지기의 흐름을 통해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진명의 대답이 예상 밖인지라 사옥진은 당황했다.
“잘 생각해 봐라. 너와 내가 원한을 맺은 적도 없는데 이렇게 목숨을 노릴 이유가 없지 않느냐?”
사옥진과 자신이 직접적인 원한을 맺은 적은 없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사부, 즉 진명이 사부로 여기는 곽영천을 죽였고, 지난 삼 년 동안 줄기차게 자신의 목숨을 노려 왔다.
그뿐 아니라 선인명부에 의하면 천살성이라 불릴 정도의 살인광이기도 했다.
이런 자를 이대로 강호로 내보내는 건 절대 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
진명의 표정이 전혀 나아지지 않자 사옥진이 다급히 말했다.
“너와 난 엄밀히 따져 보면 사형제지간이라 할 수 있다. 같이 동문수학 한 사이는 아니지만 지난 삼 년간 나와 대결하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니 사형제지간의 정을 생각해서라도 한 번만 나를 놓아다오!”
사옥진은 진명의 태도가 변하지 않자 억지로 사형제지간을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진명은 그런 사옥진의 말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지난 삼 년간 자신을 죽이려 밤낮 없이 암습을 가해 왔다. 그로 인해 늘 죽음이란 공포를 이기며 살아야 했다.
진명과 사옥진 본인들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둘의 성정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다.
인격이 완성되는 성장기를 사옥진과 생사투를 벌이며 지나 왔기 때문이다. 진명 스스로는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처음 이곳 지천곡에 들어왔을 때와 비교해 무척이나 메마르고, 비정한 심성을 지니게 되었다.
진명 자신은 자신의 손속이 얼마나 잔인한지 아직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철이 들고, 무공을 익히는 동안 접한 인물이 사옥진 단 한 명뿐이었기 때문이다.
“너와 내가 같은 무공을 익히고 있지만 사부님을 살해한 넌 절대 나와 사형제가 될 수 없다. 넌 사부님을 대신해 내가 그 죄를 물을 것이다.”
말을 마침과 동시에 진명이 사옥진의 앞으로 빠른 속도로 다가갔다.
“지금이라도 네가 죽였던 그 수많은 사람들과 사부님께 용서를 빌며 죽어라!”
다가오는 진명을 피하려 했지만 내공이 바닥난 상태라 피하지 못했다.
진명이 막 사옥진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 할 때였다.
“으아아악!”
허공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느닷없는 비명 소리에 진명과 사옥진이 깜짝 놀라 허공을 올려다봤다.
허공엔 네 명의 인영이 연못을 통과해 계곡물로 추락하는 모습이 보였다.
“뭐지?”
그들은 태상노군에게 새로운 선물을 받아, 사옥진을 추적해 온 동서남북 네 노인이었다.
“어푸푸푸!”
“푸하!”
“이게 도대체 뭐야!”
“이런 젠장! 연못 밑에 이런 협곡이 있다니!”
네 노인은 계곡물에서 빠져나오며 저마다 한마디씩을 내뱉었다.
“당신들은……!”
진명이 네 노인을 알아보고 깜짝 놀라 소리쳤다.
“네놈이구나! 이 소마두야!”
“사옥진은 어디 있느냐!”
“이 도둑놈아! 선인명부와 나침반을 내놓거라!”
“잘 만났다! 요 어린놈의 자식아! 네놈이 감히 이 어르신을 발로 차고 도망을 쳐!”
계곡물에서 나오기 무섭게 진명을 알아본 노인들이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