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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명가 1권(16화)
第四章 수련(5)


“사옥진 그 살인마는 어디 있느냐!”
서일평이 가장먼저 달려와 진명에게 물었다.
진명이 사옥진이 있던 곳을 바라봤는데,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젠장! 이놈의 영감탱이들!”
“뭐! 염감탱이?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 있나!”
진명의 영감탱이란 말에 북여학이 발길질을 해 왔다. 지난번 진명에게 발길질로 걷어차였던 터라 자신도 똑같이 발길질로 복수를 하려는 것이다.
한데 진명이 그런 북여학의 발길질을 너무도 쉽게 피해 버렸다.
“허!”
북여학은 진명이 자신의 발길질을 피할 것이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던 터라 깜짝 놀랐다.
“너……!”
그러고 보니 삼 년 전 봤던 진명의 모습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체격도 훨씬 좋아졌고 키도 조금 더 큰 것 같다.
한데 이런 외향적인 변화보다 더욱 많은 변화를 보인 것이 있었으니 진명의 눈빛이었다.
마차를 세울 때 보였던 순박하고 여리던 소년의 눈빛이 아니었다. 생사의 기로를 수십 번은 넘어선 듯한 무인의 눈빛이었다.
“그새… 많이 변한 것 같구나?”
서일평이 중간에 끼어들며 말했다.
“영감들 때문에 사옥진을 놓쳤지 않소! 다시 한 번 날 방해한다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오!”
진명이 내뱉듯 경고를 한 후 바로 몸을 날렸다.
“뭐! 가만두지 않겠다고! 이런 건방진 놈이 있나!”
북여학이 막아섰지만 진명은 그를 훌쩍 뛰어넘어 사옥진의 뒤를 쫓았다.
“야, 이 어린놈의 자식아! 가정교육을 어찌 배웠기에 어르신의 머리를 뛰어넘어 가느냐!”
북여학은 특유의 유치한 말투로 자신을 넘어가 버린 진명을 욕했다.
“사옥진이 이곳에 있다고? 감히 통하지도 않을 거짓말을! 뭐하고 섰냐? 빨리 저놈을 쫓지 않고?”
동방모강이 진명의 뒤를 쫓으며 소리쳤다.
동방모강은 이곳 협곡으로 들어선 후 사옥진의 기운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진명이 자신들을 떼어 놓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라 생각했다.
“이럴 게 아니라 우리도 가 보세!”
진명의 행동이 너무도 진지했기에, 서일평은 그가 자신들을 떼어 놓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라 생각했다.
남은 세 노인도 진명의 뒤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서일평은 진명을 쫓으며 생각했다.
‘이곳으로 들어온 후 사옥진의 기운은 느끼지 못했다. 한데 저놈은 사옥진이 지금 이곳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설마, 저 어린 녀석이 우리들 보다 무공이 높단 말인가?’
쉽게 수긍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의문을 가진 채 얼마나 쫓았을까.
진명이 계곡물을 향해 장력을 발출하는 모습이 보였다.
한데 장력이 향하는 곳에 한 인영의 상체가 보였다.
사옥진이었다.
“크하하하! 어리석은 놈! 그런 장력이 이곳까지 닿을 성 싶으냐!”
사옥진은 계곡물 중간에 위치한 생문으로 뛰어들어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놓치지 않는다!”
진명은 사옥진을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극성으로 신법을 전개해 생문으로 뛰어들었다.
“크하하하! 평생을 이곳에 갇혀 살아가거라!”
첨벙!
진명이 사옥진에게 달려들었지만, 물보라만 일어날 뿐 어느새 그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뿐 아니라 생문도 사라지고 없었다.
진명은 사옥진이 사라졌던 생문 주위로 연거푸 장력을 펼쳤지만 더 이상 그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젠장!”
노인들에게 잡혀 있는 동안 시간을 뺏기면서, 간발의 차이로 그를 놓쳐 버리고 말았다.
사옥진은 내공이 바닥난 상태라 제대로 신법도 펼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상대를 놓치고 보니 자신의 아둔함에 화가 났다.
‘나는 아직 멀었구나. 무공이 이만큼 강해지면 무얼 하는가? 아직도 이렇게 무른 부분이 있는 것을!’
진명은 아직도 자신이 배워야 할 것이 많은 걸 절감했다.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는 순간 허공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고 그곳으로 신경을 뺏기고 말았다.
무인으로서 실격이었다.
그뿐 아니라 사옥진이 사라진 걸 발견했을 때 바로 뒤를 쫓았어야 했는데 노인들에게 붙잡혀 있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말았다.
한편으론 자신을 붙잡은 노인들에게 화가 나기도 했지만 그들의 잘못이라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의 행동은 당연했고, 충분히 예측 가능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구나.’
진명은 자신이 무공은 강해졌지만, 경험이나 임기응변, 그리고 마음의 자세가 아직 부족함을 절감했다.
스승 없이 스스로 무공을 배우고 익혀 왔으니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었다. 이 부분은 이후 진명이 강호행을 통해 스스로 배워 나가야 할 부분이었다.
노인들은 계곡물에 몸을 담근 채 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진명을 보고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
자신들 스스로도 왜 그런지 알지 못했는데, 정신이 들고 보니 자신들이 진명의 기에 눌렸다는 걸 깨달았다.
“너, 너 이 자식 뭐하는 놈이야?”
자신이 진명의 기에 눌렸다는 게 믿기지 않았는지 북여학이 발끈해 소리쳤다.
진명은 사옥진을 놓친 분함을 속으로 삭인 후 북여학을 바라봤다. 따지고 보면 삼 년 전 이들이 사옥진을 죽일 수도 있었는데 자신이 방해한 것이다.
그뿐 아니라 흥분하면 자신의 성격이 거칠고 난폭해짐을 은연중에 깨달았다. 크게 심호흡을 해 흥분을 가라앉힌 후 말했다.
“예전 일은 오해로 벌어진 일이니… 사과하겠소.”
“뭐! 오해? 오해라고! 네놈은 사람 죽여 놓고 오해였다고 하면 용서해 줄래?”
북여학이 또다시 어린애만도 못한 유치한 말들을 퍼부었다.
“그만해라. 네놈은 어찌 나이가 들어도 그리 철이 안 드는 것이냐?”
북여학의 천적이라 할 수 있는 동방모강이 끼어들며 핀잔을 주었다.
“뭐 철이 안 들었다고? 지금 나한테 시비 거는 거지?”
북여학이 분노의 화살을 동방모강에게 돌린 사이 서일평이 다가와 물었다.
“방금 사옥진을 본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것인가?”
진명은 서일평에게 그동안 자신이 오해했던 일들과 사옥진이 생문을 통해 강호로 달아난 것을 간추려 들려줬다.
“음, 그렇게 된 것이었군.”
서일평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북여학이 끼어들었다.
“푸하하하! 대협객? 그런 미치광이 살인마가 대협객인 줄 알았다고?”
사옥진을 한때 강호의 대협객으로 오해했다는 말에 북여학이 웃음보를 터뜨렸다.
진명은 시시각각 감정에 기복을 보이는 북여학을 정말 특이한 노인이라 생각했다.
“단순한 놈.”
그런 북여학을 보며 동방모강이 혀를 찼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군. 놈이 강호로 나갔으니 서두르지 않으면 한바탕 소란이 일어날 것이야.”
서일평이 세 노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빨리 놈을 뒤쫓아야겠군. 이보게 소협. 우린 놈을 쫓아야 할 것 같으니 가져간 물건을 돌려주게.”
나침반과 선인명부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잖아도 노인들에게 돌려줄 생각으로 챙겨 두었다.
“따라오시죠.”
진명은 자신의 거처로 네 노인을 데려갔다.
거처에 도착한 후 나침반과 선인명부를 비롯한 서일평의 등짐에서 취한 모든 것을 돌려주었다.
“오해로 인한 일이었다니 더 이상 책임을 묻지 않겠네. 하지만 그로 인해 이런 사단이 났으니 자네에게도 일말의 책임은 있다 할 수 있네.”
진명이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그 같은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던 터라, 사옥진을 자신의 손으로 반드시 잡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만약 자네가 강호에 나온 후 우리와 다시 만났을 때, 그때 우리에게 자네의 힘이 필요하다면 한 번만 도와주게.”
서일평의 제안에 진명이 무슨 뜻이냐는 듯 지긋이 바라봤다.
“꼭 찾아와 빚을 갚으라는 이야기가 아닐세. 강호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그때 자네의 힘이 필요한 상황일 때 하는 말일세.”
“이런 어린놈의 힘이 뭐가 필요해서?”
북여학이 옆에서 투덜거렸다.
그런 북여학에게 눈총을 준 후 서일평이 진명을 바라봤다.
“어떤가?”
자신으로 인해 이들의 일에 많은 차질이 생겼으니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겠소.”
“젊어서 그런가? 시원해서 좋군. 그러고 보니 아직 서로의 이름도 모르고 있었구먼.”
“상주(商州) 용진관 출신 도진명이오.”
“아, 원래 도 소협이었구만. 나는 서일평이라 하고 여기 투덜쟁이 영감은…….”
진명의 이름을 듣고 나자 서일평은 세 노인을 한 명씩 소개하기 시작했다.
진명은 이전과 너무도 다른 노인들의 행동에 격세지감을 느꼈다.
역시 강호는 강자존의 세계라는 사실 또한 새삼 깨달았다.
이전에 마차 한 번 얻어 타려다 쌍욕을 들었는데, 지금 자신이 강한 무공을 익히게 되자 이들이 먼저 나서 자신들을 소개하려 하고 있지 않은가. 그뿐 아니라 처음 하대를 하던 것이 지금은 반 존대로 바뀌어 있었다. 이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말투에서부터 역력히 드러났다.
한편 서일평은 진명의 변화에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자신들도 느끼지 못했던 사옥진의 기운을 느낀 것만도 놀라운데, 생문을 향해 발출하던 장력의 위력은 입이 다물어 지지 않을 정도였다.
삼 년 전 태원으로 향하던 길에서 봤을 때, 제대로 무공도 익히지 않은 것 같던 소년이 어떻게 이런 무공을 지니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앞으로 육십여 명에 이르는 선인들을 잡아들여야 하는 상황에 이런 고수의 힘은 많을수록 좋았다.
서일평은 이런 작은 인연이라도 잡아 자신들의 힘에 보태고 싶었다.
“그럼 다음에 다시 만나길 고대하며 우린 이만 떠나 보겠네.”
서일평이 떠난다고 말하자 진명이 다급히 물었다.
“영감, 이곳을 빠져 나가는 방법을 알고 있소?”
“이곳에 들어왔는데 나가질 못하겠는가?”
서일평은 세상의 모든 지식에 해박했다. 기문진이라고 다를 것이 없었다. 어찌나 박학다식한지 황제가 친히 황궁으로 초대해 스승으로 모시려 했다는 소문이 강호에 떠돌 정도였다.
서일평이 간단히 대답한 후 세 노인과 떠나려 하자 진명은 마음속에 갈등이 일었다.
‘이곳에서 더 수련을 할까? 아니면 나가서 사옥진의 뒤를 쫓을까?’
진명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곳이 다른 곳보다 자연지기가 풍부해 수련엔 좋지만, 조금 전 느꼈듯 혼자만의 수련은 한계가 있었다.
무공의 성취도는 높아질 수는 있으나 경험을 쌓을 길이 없었다.
현재 자신에겐 홀로 무공 수련을 하는 것보다 진정한 강호를 경험하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경험을 쌓고, 현재 익히고 있는 무공을 더욱 날카롭게 다듬는 게 중요하다.’
무공의 수위만 높인다고 좋은 게 아니다. 현재 익히고 있는 무공들을 극한에 이르도록 갈고 닦는 게 더욱 중요했다.
그리고 그보다 경험이 더욱 절실하기도 했다.
“영감, 이곳을 나갈 거라면 나도 함께 가겠소.”
진명이 막 뒤돌아서 걷기 시작한 서일평에게 말했다.
“도 소협도 이곳을 떠날 것이란 말인가?
진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명의 대답에 세 노인을 잠시 돌아 본 서일평이 말했다.
“뭐, 함께 가는데 큰 힘이 드는 것도 아니니 그렇게 하세.”
“고맙소.”
그렇게 진명은 동서남북 네 노인을 따라 지난 삼 년간 수련을 해 왔던 지천곡을 떠나 강호로 돌아왔다.

“자네는 어디로 가려는가?”
지천곡을 빠져 나온 후 서일평이 물었다.
“일단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이오.”
진명은 아버지처럼 생각하는 용진관 관주를 만나러 갈 생각이었다. 오진문으로 향하던 진명이 행방불명이 되었으니 그동안 꽤나 속이 상해 있을 터였다.
“그래. 지난 삼 년간 저 협곡에 갇혀 있었다고 했지? 고향에 부모님들이 꽤나 맘고생이 심했겠어. 속히 돌아가 자네가 무사함을 알려드리게.”
“그럴 생각이오.”
진명이 네 노인에게 인사를 한 후 막 돌아서려는데 서일평이 지나가는 말투로 한마디 했다.
“고향에 들른 후 시간이 나면 합비에 있는 서가장을 찾아주게.”
서일평의 말은 고향을 들른 후 자신들을 도우러 합비로 오라는 말이었다.
진명은 대답하지 않고 그대로 용진관이 있는 상주로 향했다.
‘좋아 찾아가 주지. 대신 영감들은 그동안 사옥진의 위치를 찾아놓아야 할거야.’

***

상주로 향하는 진명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삼 년 만에 다시 찾은 강호.
진명은 예상치 못한 해방감을 느끼고 있었다.
지천곡에서 수련할 때 자신이 갇혀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마음 한구석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그곳에 있을 땐 느끼지 못했던 자유로움을 강호에 다시 나와 새삼 실감하고 있었다.
“좋구나!”
자유로운 해방감에, 날씨도 좋고 공기도 맑으니 절로 가슴에 호연지기가 이는 듯했다.
“관주님이 그동안 얼마나 걱정하셨을까? 빨리 찾아 뵈어야겠다!”
진명은 그리운 용진관과 그곳의 친구들이 생각났다.
한시라도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에 신법을 펼쳐 달리기 시작했다. 상주까지 쉬지 않고 달릴 생각이다.
마르지 않는 내공을 쓰지 않고 모아 두는 건 바보 같은 짓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