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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명가 1권(17화)
第五章 황정문(1)
“관주님, 큰일 났어요!”
장이철이 우당탕거리며 뛰어들어 왔다.
“무슨 일인데 그렇게 소란이냐?”
십여 세 남짓한 아이들에게 기초 무공을 가르치던 용진관 관주 황정문이 근엄한 표정으로 나무랐다.
“다학이가 다학이가 맞아 죽어요!”
“그게 무슨 말이냐? 다학이가 맞아 죽다니? 어디서 누구에게? 알아듣게 말해야 할 것 아니냐?”
“송도관 애들과 시비가 붙었는데 그곳의 무공 사부란 자가 나타나서 다학이를 끌고 갔어요!”
“뭐, 송도관!”
장이철의 입에서 송도관이란 이름이 나오자 황정문의 표정이 굳어졌다.
송도관은 이 년 전 옆 마을인 대산촌에 문을 연 신생 무관이다.
송도관의 관주가 화산파의 속가제자 출신이라 처음 무관을 열 땐 꽤나 자신만만했다. 한데 송도관을 열고 이 년이 지났는데도 관원의 수가 생각보다 모이지 않았다.
이유는 옆 마을 고림촌의 용진관 평판이 워낙 좋아서였다. 용진관의 관주인 황정문은 그 인품이 어질고, 어린아이들의 기초를 다듬는데 탁월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마을 무관에 다니는 아이들 대부분이 표국의 표사나 군의 무관이 되는 것을 꿈으로 생각한다.
그렇다 보니 기초를 다듬는데 탁월한 용진관으로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송도관 입장에선 그런 용진관이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다. 용진관 관주의 실력이 자신보다 못한데, 이 지역에 오래 있었단 이유만으로 신입관도들을 모두 빼앗아 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송도관은 틈만 나면 용진관에 시비를 걸어 왔다.
자신들의 힘을 주변 마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송도관은 주로 유언비어를 퍼뜨리거나, 용진관으로 향하는 아이들을 길에서 협박해 용진관에 나가지 못하게 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다학이란 아이가 그들의 표적이 되었던 듯하다.
“너는 다학이가 잡혀가는데 그걸 옆에서 보고만 있었단 말이냐!”
황정문은 동료가 잡혀가는데, 그걸 막지 못한 장이철을 꾸짖었다.
“죄송해요. 갑자기 열 놈이 넘게 나타나서 다짜고짜 주먹을 휘두르니 너무 겁이 나서…….”
열 명이 넘게 나타나 폭력을 행사했다는 말에 더 이상 장이철을 나무랄 수가 없었다.
이제야 기초를 떼고 무공을 배우는 단계인 장이철이 혼자 열 명을 상대하긴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황정문은 마을 사이에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송도관이 그동안 시비를 걸어와도 애써 참아 왔다.
한데 더 이상은 참아선 안 될 것 같았다.
용진관에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것쯤은 얼마든지 참아 넘길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만큼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잠시 아이들을 보고 있거라.”
“네? 설마 송도관으로 가시게요?”
장이철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다학이가 그곳에 있으니 가서 데려와야지.”
황정문은 장이철의 어깨를 한 번 두드려 준 후 송도관으로 향했다.
***
지천곡을 빠져 나온 진명은 보름 만에 상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경공에 투자한 결과였다.
진명은 멀리 고향 마을인 고림촌이 보이자 가슴이 뭉클해졌다.
삼 년 만에 찾은 고향은 전혀 변함이 없는 모습으로 자신을 맞아 줬던 것이다.
“돌아왔다!”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수십 그루의 고목들이 마치 자신을 마중을 나온 듯 길게 늘어 서 있었다.
어린 시절 이 나무 밑에서 친구들과 해가 질 때까지 놀곤 했었다. 잠시 고목아래서 옛 추억에 잠겼다가 이내 용진관으로 향했다.
“음?”
한데 용진관의 모습이 이상했다.
이시간이면 한창 아이들이 무공을 익힐 시간이라 멀리서도 기합 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너무도 조용했던 것이다.
“오늘 쉬는 날인가?”
용진관은 일 년 내내 쉬는 날이 없지만 마을에 일이 있을 땐 어쩔 수 없이 쉬는 경우가 있었다.
진명은 너무도 조용한 용진관의 모습에 마을에 일이 있어 아이들이 나오지 않은 것이라 생각했다.
한데 용진관에 가까워질수록 그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왠지 모를 적막감이 용진관 주위를 감싸고 있었던 것이다. 용진관 정문으로 향하던 진명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용진관의 현판이 두 동강 난 채 바닥을 굴러다니고, 문도 반쯤 부서져 덜렁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삼 년 만에 돌아온 용진관은 폐허가 되어 있었다.
놀란 진명이 서둘러 용진관 안으로 들어섰다.
용진관 내부의 모습은 바깥보다 더욱 심했다.
건물 곳곳이 파손되고, 연무장도 파헤쳐져 있었다.
진명은 바로 관주의 거처로 향했다.
“관주님!”
진명이 관주를 불렀지만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후다다닥!
그때 관주 거처 옆쪽으로 누군가 달려가는 게 보였다.
진명은 신법을 펼쳐 달아나는 자를 쫓아갔다.
“누구냐!”
진명이 달아나던 자의 뒷덜미를 잡으며 소리쳤다.
“히익! 사, 살려주세요!”
진명이 잡은 이는 열대여섯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었는데, 그는 도 한 자루를 품에 안고 있었다.
한데 그 도가 눈에 익었다.
황정문의 애도인 거룡도(巨龍刀)였다.
“넌 누구냐? 누군데 거룡도를 훔쳐 가는 것이냐?”
“후, 훔치다니요? 아닙니다. 아니에요! 전 이곳의 관도입니다.”
진명에게 붙잡힌 소년은 장이철이었다.
“이곳의 관도라고?”
진명은 장이철을 이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바들바들 떨고 있는 것이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품에 안고 있는 거룡도가 신경 쓰였다.
“네가 이곳의 관도라고 치자. 네가 품에 안고 있는 그 거룡도는 무엇이냐? 지금 그걸 훔쳐 가는 게 아니란 말이냐?”
“아, 아니에요! 전 그냥 관주님이 이 도를… 헙!”
엉겁결에 사실을 털어놓으려다 급히 입을 닫았다.
“관주님이 계신 곳을 알고 있냐? 어디냐? 관주님은 어디에 계시냐?”
진명이 다그쳤지만 장이철은 대답하지 않았다.
진명은 장이철이 무언가를 두려워해 말하지 못함을 깨달았다.
관주를 찾으려면 먼저 장이철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이곳에서 무공을 배운 사람으로 관주님은 나에게 아버지와 같은 분이시다.”
“네에?”
장이철은 진명이 자신을 잡으려 할 때 펼쳤던 신법을 보았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런 엄청난 신법이었다. 한데 그런 신법을 펼친 자가 한때 자신처럼 이곳에서 무공을 배웠다니 쉽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내 이름은 도진명이다. 혹 들어 본 적 있느냐?”
진명의 말에 장이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도, 도진명이시라고요?”
“그래, 표정을 보니 들어 본 적이 있구나.”
“그럼요. 관주님이 시내에 나가시면 늘 외지 사람들에게 도진명이란 제자의 행방을 묻곤 하셨거든요. 삼 년 전 오진문으로 가던 길에 사라져 행방을 알지 못한다고…….”
장이철의 말에 진명은 코끝이 시큰해졌다.
자신은 지난 삼 년간 원우진공을 수련하느라 관주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는데, 관주는 자신이 사라진 후 이제껏 찾고 있었나 보다.
“그랬구나. 이제 내가 수상한 사람이 아닌 걸 알았겠지? 삼 년 만에 돌아온 고향이다. 관주님은 어디 계시냐?”
장이철은 자신을 잡은 대단한 무인이 관주가 찾던 제자라 하자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제가 관주님이 계신 곳으로 안내할게요! 저를 따라오세요!”
장이철은 진명을 데리고 아랫마을로 향했다.
장이철이 향한 곳은 마을에 있는 누군가의 집이었다.
“관주님이 이곳에 계시냐?”
“네, 이곳은 저희 집인데, 관주님의 몸이 편찮으셔서 부모님이 돌봐 드리고 있어요.”
“관주님이 편찮으시다고?”
“네, 조금 많이 편찮으세요. 아버지가 젊은 시절 의술을 익힌 적이 있어서 관주님을 돌봐드리고 있어요.”
진명은 용진관의 모습을 본 후 무언가 큰일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관주까지 아프다 하자 걱정이 되었다.
서둘러 장이철을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가는데, 안쪽에서 누군가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안 됩니다, 안 되요! 그 몸으로 어딜 가신다고 그러십니까?”
“놓아 주십시오! 지금 가지 않으면 안 된단 말입니다!”
“지금 움직이면 상처가 터져 죽을지도 모릅니다!”
두 사람이 무언가로 다투고 있는데, 한 사람의 목소리는 진명도 익히 아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관주님!”
진명에게 익숙한 목소리는 관주 황정문의 목소리였다.
황정문은 자신을 막아서는 장이철의 부친을 뿌리치고 막 방을 나서다 진명을 발견했다.
“지, 진명아!”
황정문은 자신의 눈앞에 진명이 서 있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 진명이 맞느냐?”
“맞아요. 저 진명이에요. 진명이가 삼 년 만에 돌아왔어요!”
진명이 달려가 황정문을 와락 끌어안았다.
“끄윽!”
한데 진명이 끌어안기 무섭게 황정문이 신음을 흘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관주님!”
“그러게 뭐라 했습니까? 지금 움직이면 안 된다지 않았습니까?”
반가운 마음에 미처 살피지 못했는데, 관주 황정문의 몸은 만신창이였다. 온몸을 붕대로 칭칭 감고 있었는데, 곳곳에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관주님. 지금은 이분의 말대로 움직이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진명이 비틀거리는 관주를 안아들고 방 안으로 들어가 눕혔다.
“으음… 아니다. 지금 그들을 찾아가야 한다.”
“찾아가다니요? 누구를요? 아니, 그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진명이 물었지만 황정문은 대답하지 않았다.
진명은 더 묻고 싶었지만 황정문의 성격을 아는지라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는 한 번 말하지 않기로 결정하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말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뿐 아니라 부상도 심각해 더 이상 묻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황정문은 장이철의 부친으로부터 벌어진 상처를 재치료받고 잠이 들었다.
“저는 황 관주님의 제자인 도진명이라 합니다. 관주님을 이렇게 돌봐 주셔 정말 감사합니다.”
진명이 장이철의 부친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자네가 황 관주가 그토록 찾던 제자였구만. 반갑네, 난 이 녀석의 아비인 장소우라 하네.”
옆에 앉아 있던 장이철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혹, 용진관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계십니까?”
황정문이 말하지 않으려 하니 주위 사람에게라도 물어야 했다.
“그게…….”
“황 관주님을 걱정하시는 거라면 괜찮습니다. 말해 주십시오.”
“아버지, 이 형 엄청난 고수예요!”
옆에 있던 장이철이 끼어들었다.
그런 장이철의 말에 장소우가 진명을 위아래로 한번 훑었다.
머리는 봉두난발에 옷은 곳곳이 찢어지고 헤어져 남루하기 짝이 없었다. 그뿐 아니라 땀과 먼지가 뒤섞여 묘한 악취까지 풍기고 있었다.
장이철이 고수라 했는데 전혀 그래 보이지 않았다.
진명이 지천곡에서 사옥진과 수백 차례 혈투를 벌이며 옷은 누더기가 되어 있었고, 지천곡을 빠져 나온 후 바로 용진관으로 오느라 옷도 갈아입지 못한 상태였다.
진명은 삼 년 동안 줄곧 이런 상태로 지내 왔기에 별다름을 느끼지 못했는데, 다른 사람이 보기엔 거지 중에서도 상거지로 보이는 행색이었다.
그런 진명의 모습에 잠시 망설이던 장소우는 이내 말문을 열었다.
“어차피 이곳에서 며칠 지내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될 터이니 내 말해 주겠네. 그러니 자네가 재주가 있다면 저 사람 좀 말려 주게.”
황정문은 제자를 찾기 위해 송도관으로 향했다.
제자를 찾는 과정에서 한바탕 설전을 벌일 수도 있었기에 마음을 단단히 굳히고 안으로 들어갔다.
한데 안으로 들어가 보니 주위가 상당히 어수선했다.
무슨 행사라도 있는지 연무장 곳곳에 주변 마을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었던 것이다.
송도관의 행사에 자신이 나설 일은 아닌지라 서둘러 중앙 건물로 향했다.
“용진관의 관주 황정문이오! 귀관에서 본관의 제자를 데리고 있단 말을 듣고 찾으러 왔소이다!”
황정문이 송도관 관주가 머무는 건물 앞에서 큰소리로 말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화산파 속가제자이자 이곳 송도관의 관주인 곽철기였다.
“어서 오시오, 황 관주!”
곽철기는 마치 황정문을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처럼 매우 반기며 맞았다.
“이렇게 본관의 초대에 응해주셔서 뭐라 감사할지 모르겠소이다.”
“초대? 초대라니 그게 무슨 말이요?”
곽철기의 초대라는 말에 황정문이 반문했다.
“그럼 이곳엔 무슨 일로 오신 것이오? 본인의 초대에 응한다는 뜻이 아니었소?”
“본인은 곽 관주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아듣지 못하겠소. 그저 본관의 제자인 다관이를 데리러 온 것뿐이니 어서 제자를 내어 주시오.”
“제자? 용진관의 제자 말이요? 용진관의 제자를 왜 이곳에서 찾는단 말이오?”
곽철기가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을 지었다.
황정문은 곽철기가 자신을 놀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 장난치는 것이오? 본관의 제자를 귀관의 제자 여럿이 달려들어 폭행한 후 끌고 가지 않았소!”
황정문이 분기탱천해 소리쳤다.
한데 곽철기는 오히려 황당하단 표정을 지었다.
“귀관의 제자를 우리 아이들이 집단 폭행한 후 끌고 갔다? 이곳 송도관으로 말이오? 허! 지금 황 관주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계시오? 화산파의 분파라 할 수 있는 이곳 송도관이 납치나 일삼는 흑도 무리라 말하고 있는 것이오! 지금 당신이 한 그 말에 책임을 질 수 있겠소?”
“무슨……!”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했을 뿐인데, 자신이 송도관을 흑도로 몬다며 화산파까지 들먹이자 황정문은 기가 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