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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명가 1권(18화)
第五章 황정문(2)


“귀관의 제자 이름이 다관이라 그랬소? 얘들아, 용진관의 다관이란 아이를 알 거나 본 사람이 있느냐?”
곽철기가 주변에 모여 있던 제자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한 아이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제가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 다관이란 아이를 오늘 본 적이 있느냐?”
“다관이 집과 저희 집이 이웃하고 있어 오늘 본 적이 있습니다. 평소 다관이는 일찍 무관에 가는 편인데, 오늘은 집에 남아 있기에 왜 무관에 가지 않았냐고 물으니 관비를 내지 못해 쫓겨났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한 치의 거짓도 없겠지?”
“다관이뿐 아니라 그의 부모님에게도 직접 들은 말이라 확실합니다. 증거가 필요하시다면 지금 당장 데려올 수도 있습니다.”
제자의 말을 모두 들은 곽철기가 사나운 눈빛으로 황정문을 바라봤다.
“들었소? 다관이란 아이는 그대가 쫓아냈다 하지 않소? 그런데 이곳에서 그 아이를 찾다니 도대체 내가 이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오?”
“그런 말도 안 되는!”
“말도 안 된다? 끝까지 날 의심한다는 것이오? 다관이란 아이를 직접 데려와 사실을 밝히면 되겠소?”
곽철기의 말을 듣고서야 자신이 함정에 빠진 걸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다관이란 아이는 용진관에 들어온 지 이제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신입 문도였다. 그뿐 아니라 그동안 송도관에서 아이들에게 협박은 가해도 폭력은 행사하지 않았다. 아무리 화산파의 비호를 받는다지만 일반 민초에게 함부로 폭행을 가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관이가 폭행을 당한 후 송도관에 끌려 갔다고 했다.
장이철이 거짓말을 했을 리는 없다. 그는 송도관이 문을 열기 이전부터 용진관의 제자였고, 그의 부친과는 오래전부터 친분이 깊은 사이였다. 그렇다면 다관이란 아이가 이번 일을 위해 한 달 전 용진관에 들어온 것이라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니 지금 다관이를 데려온다 한들 저들의 주장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황정문이 그 같은 생각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중앙 건물에서 두 명의 사내가 걸어 나오는 게 보였다.
한 명은 사십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냉막한 눈빛의 중년인이었고, 다른 한 명은 이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건장한 체격의 청년이었다.
“저자는 누구인가?”
청년이 곽철기에게 물었다.
“이웃 마을에서 용진관이란 무관을 운영 중인 황정문이란 자입니다.”
곽철기가 대답하자 그 청년이 싸늘한 눈빛으로 황정문을 보며 말했다.
“내 안에서 다 들었소. 지금 당신은 있지도 않은 사실로 본 파를 모독했소. 인정하시오?”
황정문은 청년이 본 파라 한 말에 그가 화산파의 제자임을 알 수 있었다.
“무얼 인정한단 말이오? 난 제자를 찾으러 왔지 화산파를 모독한 적이 없소!”
“모독한 적이 없다? 그럼 좀 전 들었던 이야기는 무엇이란 말이오? 관비를 내지 못해 쫓아냈던 제자를 본 파가 폭행 후 납치했다고 하지 않았소?”
“난 지금껏 단 한 번도 관비를 내지 못한다고 제자를 쫓아낸 적이 없소! 그건 모두가 저 곽철기가 꾸민 흉계일 뿐이오!”
“곽철기가 꾸민 흉계? 그 말을 증명할 수 있겠소?”
“그건…….”
황정문은 워낙 고지식한 성격을 지닌 터라 간계를 꾸밀 줄을 모른다. 그렇다 보니 이런 흉계에 빠지고도 자신을 변명할 줄을 몰랐다.
“증명도 할 수 없으면서 무조건 아니라 우기는데, 본 파가 그리도 우습게 보였단 말인가?”
청년의 말에 황정문은 가슴에서 천불이 일어나는 기분을 느꼈다. 황정문의 나이 올해로 쉰셋이다.
자신의 반밖에 살지 않은 애송이가 화산파란 뒷배를 믿고 저다지도 무례하니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 들었다.
“황 관주, 그대가 그토록 편협한 성격을 지녔음을 내 미처 몰랐소. 본 파 진산제자 분들께서 방문을 하신다 하여 같은 고장에서 무관을 운영하는 인연으로 서로 교우 관계를 넓히고 무공도 교류를 해 볼 요량으로 초대를 했더니, 이렇게 사람의 뒤통수를 칠 수가 있소? 내가 진정 사람을 잘못 봤소이다.”
이건 또 무슨 개수작이란 말인가?
곽철기의 또다시 시작된 괴이한 말에 황정문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한데 뒤쪽에서 웅성거리는 마을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이것이구나!’
인근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걸 보고 무슨 행사가 있나 했는데 아니었다.
모두가 곽철기가 꾸민 흉계였다.
자신은 알지 못하는 초대 운운할 때 알았어야 했다.
이미 인근 마을엔 소문이 났을 것이다. 화산파의 진산 제자들이 송도관을 방문하고 그들의 무공을 견식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주변 마을 사람들을 잔뜩 모아 둔 상태에서 거짓 납치극을 꾸며 자신을 끌어들인 후, 공개적으로 편협하고 파렴치한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대는 이번 일을 어떻게 책임질 것이오?”
황정문이 머릿속으로 사건을 정리하고 있는데 청년이 물었다.
“책임?”
“본 파를 모욕했으니 그에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소?”
“대관절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책임을 져야 한단 말이오?”
황정문이 답답함을 호소하는데,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던 곳에서 누군가 큰소리로 말했다.
“아직도 자신이 무얼 잘못했는지 모른단 말인가? 여기서 듣고 있는 나도 이해가 가는데, 하! 거참 앞뒤가 꽉 막힌 사람일세.”
황정문이 소리가 난 곳으로 돌아보니 처음 보는 사내가 마을 사람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있었다.
확인해 보지 않아도 곽철기가 고용한 바람잡이임에 틀림없다. 아니나 다를까 그자의 설명을 들은 마을 사람들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자신은 선의로 초대를 한 곽철기의 뒤통수를 치고 화산파를 모욕한 파렴치한이 되고 말았다.
화산파는 섬서성 사람들에겐 신선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생각될 정도로 경외시되는 곳이다. 그뿐 아니라 강호에 위명이 자자한 구대문파 중 수위를 차지하는 곳이니 고장을 빛내는 자랑스러운 곳이기도 했다.
그런 화산파를 일개 마을 무관의 관주 따위가 흑도라 모함했으니 마을 사람들의 표정이 싸늘해지는 게 당연했다.
황정문이 당황한 표정으로 서 있자 청년이 말했다.
“이제야 자신이 무얼 잘못했는지 깨달았소?”
“…….”
이미 자신은 이곳에서 파렴치한으로 낙인 찍혔으니 아무리 사실을 말해 본들 소용이 없었다.
“그렇다면 책임을 져야지. 그대가 본 파를 이렇게 우습게 아는 걸 보니 지닌 무공이 참으로 대단한가 보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본 파를 그렇게 무시할 수 있었겠소? 강호야 강자가 곧 법이자 진리이니 지닌 무공이 대단하다면 그대의 말이 사실이라 믿어 주겠소. 어떻소?”
“뭐가 말이오?”
“그대가 나와 겨뤄 이긴다면 내 그대의 말이 사실이라 믿어 주겠단 말이오.”
청년의 말을 듣고서야 이번 일을 꾸민 자가 곽철기가 아닌 이들임을 깨달았다.
청년이 황정문 앞으로 나서며 거만한 태도로 섰다.
“뭐하시오? 그대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망설이지 말고 덤비시오. 이곳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바라고 있지 않소?”
청년의 말에 황정문이 둘러보니, 과연 마을 사람들의 표정에 잔뜩 기대감이 배어 있었다.
그들의 뇌리엔 이미 황정문은 배은망덕하고 파렴치한 사람이다.
마을 사람들이 이곳을 찾은 목적이 화산파 진산 제자들의 무공을 견식하기 위함인데, 그 무공을 파렴치한 황정문을 상대로 펼치겠다 하니 당연히 기대감이 배이는 것이다.
황궁에서 죄인을 공개 처형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일 것이다.
황정문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청년과 싸우자니 스스로 파렴치함을 인정하는 꼴이 되고, 피하자니 파렴치한에 더해 비겁자까지 되기 때문이다.
“그대가 오지 않는다면 내가 가도록 하지!”
청년이 황정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황정문은 피하려 했지만 피할 수가 없었다.
화산파의 진산제자들만 익힌다는 구궁보(九宮步)는 시골 무관의 관주가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펑!
청년의 일 권이 황정문의 가슴팍을 후려쳤다.
“크헉!”
단 일 권에 황정문은 내장이 뒤틀리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한데 청년이 내력을 조절했는지 뒤로 주춤거렸을 뿐 쓰러지진 않았다.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니. 과연 본 파를 무시할 만한 배짱이 있었군!”
“그게 무슨…….”
무공을 알지 못하는 마을 사람들의 눈엔 구궁보의 현묘한 이치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저 빠른 걸음으로 황정문에게 다가가 팔을 쭉 뻗었을 뿐인 것이다.
그 같은 간단한 동작에도 수많은 이치가 숨겨져 있어, 황정문이 피하려 해도 피하지 못한 것인데, 청년이 저렇게 말하자 마을 사람들은 황정문이 일부러 피하지 않고 청년을 무시해 가슴을 내어 준 걸로 이해했다.
‘이놈이……!’
황정문은 이들이 자신을 쉽게 놓아 주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공력을 조절해 피하지도 쓰러지지도 못하게 한 채 병신이 될 때까지 공격을 하려는 것이다.
어쩌면 실수를 가장해 죽이려 들 수도 있었다.
황정문은 이 같은 사실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정신을 다잡지 않으면 오늘 이곳에서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황정문을 보며 청년이 묘한 미소를 베어 물었다.
마치 자신이 의도하는 대로 모든 것이 흘러간다는 듯.

화산파 청년 위지평과 황정문의 대결은 일각여 만에 싱겁게 끝이 났다.
위지평의 가벼운 공격을 견디지 못한 황정문이 피를 토하며 쓰러져 버린 것이다.
한데 구경하던 마을 사람들은 황정문이 쓰러진 이유를 알지 못했다.
위지평이 가볍게 몇 대 때리자 느닷없이 피를 토하며 쓰러져 버렸기 때문이다.
영문을 몰라 웅성거리고 있는데, 위지평이 쓰러진 황정문을 보고 말했다.
“가증스러운 자! 스스로 입술을 깨물어 피를 토한 척하면 없었던 일이 될 줄 아는가?”
이미 황정문은 정신을 잃은 후라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위지평의 말을 듣고서야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황정문이 이 순간을 모면하려 얕은 꾀를 쓴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한데 실상은 위지평이 내가중수법(內家重手法)으로 외상없이, 내부 장기만을 상하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각혈을 토하며 쓰러진 것인데, 무공을 모르는 마을 사람들은 그런 고절한 수법을 알아볼 눈이 없었다.
위지평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황정문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교묘히 자신의 손바닥을 황정문의 등에 대고 내기를 불어 넣었다. 딱 황정문이 정신을 차릴 수 있을 만큼의 내기였다.
등을 통해 들어오는 내기로 인해 황정문이 흠칫거리며 정신을 차렸다.
한데 그 모습이 마치 기절한 척했다가 자신의 술수가 들키자 다급히 일어나는 모습으로 보였다.
일련의 상황들을 지켜보고 있던 마을 사람들은, 기가 막혀 모두 황정문을 손가락질하며 욕하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이 황정문에게 갖는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저런 배은망덕하고 파렴치한 인간이 같은 고장 사람이란 사실이 창피할 정도였다. 그뿐 아니라 자신의 자식 또는 이웃의 아이들이 저런 인간 말종에게 지금껏 무공을 배우고 있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지금껏 저자의 교묘한 술책에 자신들이 놀아난 것이라 여긴 것이다.
반대로 화산파는 적에게조차 손속에 인정을 둘 줄 아는 명문 대파로 다시금 기억되기 시작했다.

“그 모두가 사전에 치밀히 짜여진 그들의 계획에 의한 것이었지…….”
“내상만 입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진명이 황정문의 온몸에 감겨 있는 붕대를 보며 물었다.
“그땐 그랬네. 한데 정신을 차린 황 관주가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그에게 다시 달려들었네. 그놈이 의도한 대로 된 것이지. 한 번은 손속에 인정을 둔 것처럼 꾸몄으니, 두 번째는 그럴 필요가 없어진 거지. 그냥 닥치는 대로 두들겨 팼다더군. 그때 생긴 상처가 자네도 지금 보고 있는 저 상처라네. 그 일로 인해 화산파는 적에게 관용을 베풀기도 하지만, 죄를 뉘우치지 못하는 자에겐 일벌백계를 내린다는 인식까지 심어 줬네. 그야말로 이 한 번의 일로 주변 마을 모든 사람들의 신망을 얻은 것이지. 그뿐인가 마을 사람들은 이번 일로 더욱 화산파를 경외시하게 되었네. 그들이 원한 모든 것을 얻어 낸 것이지. 그게 불과 사 일 전 일어난 일일세.”
“사 일 전이라면… 그 후 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관주님이 그자를 상대한 곳은 송도관인데, 왜 용진관이 폐허처럼 변한 것입니까?”
진명의 물음에 장소우는 큰 한숨을 쉬었다.
“용진관이 그리된 건 자네도 고림촌이 고향이라니 잘 알지 않는가? 이곳이 얼마나 좁은 지역인지. 송도관에서 있었던 일들이 삽시간에 주변 마을로 퍼져 나갔네. 그러자 용진관에 아이를 맡겼던 부모들이 단체로 몰려와 저 꼴로 만들어 놓고 갔네. 이제 이 고장에선 더 이상 무관을 운영할 수 없을 게야.”
장소우의 말을 듣고서야 용진관이 폐허처럼 변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장소우에게 모든 사실을 전해 들은 진명이 장이철을 바라봤다.
“한데 넌 아까 왜 거룡도를 가지고 있었던 거냐?”
“그건… 관주님이 송도관으로 가겠다며 거룡도를 찾아오라 하셔서…….”
“뭐, 이놈아! 황 관주 몸이 어떤지 뻔히 알면서 그런 심부름을 해!”
옆에서 듣고 있던 장소우는 장이철이 거룡도를 가지러 갔던 일을 이제야 알았는지 아들을 혼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