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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명가 1권(22화)
第七章 남궁세가(2)
맹이섭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종무상과 장로들의 얼굴이 굳어져 갔다. 그러다 맹이섭이 혼절에서 깨어 나 두 사제와 곽철기가 죽은 모습을 발견한 부분에 이르자 분기를 주체하지 못한 장로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기까지 했다.
“도대체 그놈이 어떤 놈이기에 제자 넷이 한꺼번에 당했단 말이냐?”
“송구합니다. 제자의 능력이 부족해 그자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자가 본 파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본 파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염 사제와 그자가 싸우고 있을 때 제자가 중재를 하려 했었습니다. 한데 그자는 본 파의 이름 앞에도 전혀 위축되는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본 파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자의 잔악한 손속이나 성정을 미루어 볼 때…….”
“미루어 볼 때?”
“마교의 인물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마교!”
마교란 이름이 나오자 주변에 앉아 있던 장로들이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대관절 송도관에 마교의 마인이 왜 나타났단 말인가.
마교는 십이 년 전 정마대전이 끝난 후 이제껏 단 한 번도 강호행을 한 적이 없었다.
한데 그런 마교가 십이 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곳이 대산촌 같은 산골마을이라니.
“마교가… 확실한 것이냐?”
“제자 또한 십 년 넘게 중원행을 하지 않았던 마교라 그자의 정체를 추측하는데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한데 본 파의 이름 앞에 그 정도로 당당할 수 있는 인물, 그것도 이십대 초반의 젊은 고수를 길러낼 수 있는 문파는 많지 않습니다. 현 사파의 종주라 할 수 있는 사화문(死火門)이나 아천회(亞天會) 정도가 가능한데, 그 두 문파는 현재 분쟁이 벌어져 있는 상황이라 본 파와 껄끄러운 상황을 일부러 만들려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니 남는 건 마교 한 곳뿐입니다.”
맹이섭의 말에 종무상과 장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파의 종주라 할 수 있는 사화문과 아천회라면 그 정도의 젊은 고수를 충분히 길러낼 능력이 있다. 하지만 현재 분쟁이 벌어진 상황이라 화산과 척을 질 일을 일부러 만들 리가 없었다.
그 두 문파를 제외한 사파 중 화산이란 이름 앞에 그처럼 당당할 수 있는 문파는 현 강호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현 강호 무림의 지존은 소림, 무당 그리고 화산 이 세 문파 중 한 곳이라 할 수 있었다.
마교라면 이 세 문파의 이름 앞에 주눅 들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당당할 수 있었다. 지난 십이 년 전 강호 구대문파와 육대세가가 연합해 만든 무림맹과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이고도 무너지지 않은 문파다.
마교는 단일 세력으론 명실상부한 현 강호 최대 무력 단체라 칭할 수 있는 곳이었다.
“마교의 중원행이라…….”
그런 마교의 중원행일지도 모를 일인지라 종무상과 장로들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현 강호는 십이 년 전 벌어졌던 정마대전의 상처가 아직 채 아물지 않은 상태다.
이런 상황에 마교가 중원행을 재개한다면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자의 이름이 도진명이라 했느냐?”
“그렇습니다.”
“놈의 뒤에 마교가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니 섣불리 처리할 문제가 아닌 듯하다. 잘못했다간 이차 정마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는 문제니 말이다. 그러니 너는 매화검수대로 복귀해 이번 일을 마무리 짓는데 힘을 보태 거라.”
종무상이 맹이섭에게 명한 후 모여 있는 장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유 장로가 이번 일을 맡아 주었으면 하네.”
“알겠습니다.”
종무상의 지시에 대답하며 나선 인물은 현 매화검수대의 대주인 유장명이었다.
유장명은 강호에서 매화취검(梅花醉劍)이란 별호로 알려진 인물인데, 그가 술을 매우 좋아해서 그리 불리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보다 이십사수매화검법을 펼칠 때 천지가 매화 향에 취한다 해서 그런 별호가 붙었다.
유장명은 이십사수매화검법에 한해선 화산파 제일의 고수였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 그자의 정확한 신원을 파악해 오게.”
그날 저녁 스물네 명의 고수가 화산파를 빠져나와 빠른 속도로 남하하기 시작했다.
***
안휘성(安徽省) 합비(合肥)에 위치한 남궁세가(南宮世家).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시간, 가주의 집무실에 불이 밝혀져 있었다.
“하…….”
현 남궁세가의 가주인 창천일검(蒼天一劍) 남궁무성이 긴 한숨을 토했다.
강호육대세가(江湖六大世家)에서 한자리 차지하고 있는 남궁세가의 가주가 이 늦은 밤, 홀로 긴 한숨을 토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유는 남궁무성의 아버지이자 남궁세가의 전대 가주인 남궁웅 때문이었다.
삼 년 전.
남궁웅은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한데 발인(發靷) 과정에서 관을 뚫고 되살아나는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그때는 돌아가신 줄 알았던 부친의 생환에 너무 기뻐 미처 알지 못했다. 되살아 온 부친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살아 돌아오기 무섭게 연무관에 입관해 남궁세가의 모든 무공들을 다시금 익히기 시작했다.
그때는 부친이 죽음을 경험하며 무언가 큰 깨달음을 얻어 세가에 심득을 남기려 한다고 생각했다.
한데 완전한 착각이었다.
한 번 돌아가셨던 부친이 생환하기 무섭게 연무관에 입관한 터라 남궁무성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지난 삼 년간 부친의 건강이 걱정돼 수시로 찾아갔지만 부친은 만나 주지 않았다.
그렇게 삼 년이 지나 석 달 전 폐관했다.
그때부터 남궁무성을 잠 못 이루게 만든 시름이 시작되었다. 그는 폐관하기 무섭게 남궁세가의 위계질서를 비틀기 시작했다.
스스로 문주의 지위에 오른 후 세가를 문파화하기 시작했다. 팔백 년이 넘게 지속되어 온 세가의 기둥이 뿌리째 흔들리는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세가의 사람들이 반발했지만 남궁웅에겐 들리지 않았다.
그는 현 가주인 남궁무성을 장로로 격하시키고 자신이 가주이자 문주라 주장하고 나섰다.
그리곤 외부의 인물들을 하나둘 끌어들여 세가의 요직에 앉혀 무공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세가의 반대 목소리는 무력으로 굴복시켰다.
남도 아니고, 세가의 가장 큰 어른을 상대로 남궁세가는 어떻게 손을 쓸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삼 개월이 지나자, 혈족으로만 이루어 졌던 남궁세가는 더 이상 혈족으로 뭉친 세가가 아니게 되었다.
세가의 장로들은 남궁무성을 찾아와 무너지는 세가를 다시 살려야 한다며 성토했다.
남궁무성도 그러고 싶었다.
한데 자신의 부친이자 전대 가주인 남궁웅을 자신의 손으로 어떻게 한단 말인가.
지금도 부친은 새로운 인재를 세가로들이겠다며 그를 맞이하러 출타한 상태였다.
부친으로 인해 급격히 무너지는 세가의 모습에 남궁무성은 밤이 깊은 시각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열린 창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은 너무도 밝은데 세가의 앞날은 어둡기만 했다. 그런 달을 보며 남궁무성은 저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남궁무성의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남궁호 숙부님!”
삼 년 전 숙부인 남궁호가 자신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던 것이다.
“만에 하나 세가의 식구들 중 죽거나 병을 앓은 후 성격에 큰 변화를 보인 자가 있다면 지체하지 말고 나에게 알리게. 그 대상은 가주인 자네를 비롯해, 세가의 하인까지 구별이 없네. 내 말 허투루 듣지 말고 명심해야 할 것이네.”
그때는 남궁호의 말이 무얼 뜻하는지 알지 못했다.
한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말이 심상치 않게 여겨졌다.
마치 현재의 세가 상황을 예견한 듯한 말이 아닌가.
남궁무성은 숙부인 남궁호를 찾아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데 문제가 있었다.
숙부인 남궁호의 행방을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평소에도 세상이 좁다며 온 강호를 떠돌아다니는데, 최근 이삼 년 사이엔 더 심해져 현재는 어디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였다.
남궁무성은 어디서 남궁호를 찾아야 할지 고민했다.
“서가장에 가면 행방을 알 수 있을까?”
숙부인 남궁호와 늘 함께 여행을 다니는 세 명의 친우가 있는데, 그중 한 명이 현 서가장주의 부친인 서일평이었다.
서가장을 찾아가면 만나진 못하더라도 행방 정돈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서가장은 남궁세가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남궁무성은 날이 밝기 무섭게 서가장으로 향했다.
운이 좋은 것일까.
남궁호의 행방이나마 알면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숙부인 남궁호가 여행에서 돌아와 현재 서가장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남궁무성은 바로 남궁호를 만나 뵙길 청했지만 만날 수가 없었다. 그들이 지난 새벽 늦게 도착해 여독을 푼다며 깨우지 말라 명했기 때문이다.
남궁무성은 초조한 마음으로 남궁호가 깨어나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초조함 속에 시간이 흘러 정오가 지나서야 숙부를 만날 수 있었다.
“가주, 도대체 무슨 일인데 이곳까지 날 찾아왔는가?”
남궁호는 남궁무성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에 서둘러 나오느라 세안도 하지 못한 상태였다.
“숙부님!”
막상 숙부인 남궁호를 만나자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막막했다.
남궁호는 남궁무성의 표정이 심상치 않자 일단 자신의 거처로 데려갔다.
“세가에 무슨 일이 있는가?”
조심스레 묻는 남궁호를 보며 남궁무성이 말했다.
“숙부님, 어찌 그리 무심하십니까?”
남궁무성의 예상치 못한 대답에 남궁호는 적잖이 당황했다. 이미 강호에서 은퇴한 자신에게 무심하다고 말하는 것은, 세가에 큰일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는가?”
당황해 묻는 남궁호를 잠시 바라보던 남궁무성이 큰 한숨을 쉰 후 말했다.
“숙부님, 아버님이 돌아가신 건 알고 계십니까?”
“뭐!”
남궁무성의 말에 남궁호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웅이가… 언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냐!”
남궁호는 어찌나 놀랐는지 평소 가주의 예로 존대를 하던 것도 잊을 정도였다.
“삼 년 됐습니다.”
남궁무성의 대답에 남궁호는 온몸에 힘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삼 년… 삼 년이나 지났단 말이냐…….”
의자에 주저앉은 남궁호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자신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내가 이렇게 무심한 인간이었다니.”
자신이 세가에 얼마나 무심했는지 동생이 죽고 삼 년이 지나서야 그 소식을 접했다.
평소에도 세가에 무심했지만 지난 삼 년간은 속세로 탈출한 선인들 뒤를 쫓느라 더욱 그랬다.
그렇다 해도 어찌 동생의 죽음을 삼 년이 지나서야 알게 된단 말인가.
“한데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어진 남궁무성의 말에 숙여져 있던 남궁호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무슨 소리냐?”
“삼 년 전, 숙부님이 친우분들과 여행을 떠나셨을 때, 그때 아버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숙부님의 행방을 알 수 없어 부고 소식도 전하지 못한 채 장례를 치르게 되었는데, 발인 과정에서 관을 뚫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남궁호는 선뜻 남궁무성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한데 그 순간 무언가가 자신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러자 심장이 격하게 뛰기 시작했다.
“숙부님, 삼 년 전 여행을 마치고 잠시 세가에 들르셨을 때 저에게 하신 말 기억하십니까?”
당연히 기억하고 있다. 세가에 대한 걱정으로 가주를 직접 찾아가 당부를 했을 정도니 어찌 기억하지 못하겠는가.
그뿐 아니라 지금 자신의 심장이 격하게 뛰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이 대답하는 순간 우려 했던 일이 현실이 될 것 같은 걱정 때문이었다.
무릉도원에서 속세로 돌아왔을 때 가장 큰 걱정은 선인들을 어떻게 잡느냐가 아니었다. 속세로 달아난 선인들이 세가나 지인들의 몸을 차지하진 않을까 하는 그것이 걱정이었다.
한데 지금 자신 앞에 앉아 있는 남궁무성은 그 일을 언급하고 있었다.
남궁호는 머리가 나쁜 사람이 아니다.
현 세가의 가주인 남궁무성이 직접 자신을 찾아와 삼 년 전 자신이 했던 말을 언급한다는 건 그만한 일이 세가에 있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대상은 다름 아닌 자신의 동생 남궁웅을 뜻함이다.
“제가 오늘 숙부님을 찾아뵌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날 이후로 아버님의 성정이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변해서입니다. 처음엔 그저 사후 세계를 경험하신 충격으로 인한 일시적인 변화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남궁무성은 부친이 다시 살아난 후 변화된 점을 하나씩 이야기했다.
그런 남궁무성의 이야기를 남궁호는 굳은 표정으로 조용히 듣고 있었다.
“당시 숙부님이 저에게 했던 말이 기억이 나, 혹 숙부님이라면 아버님의 성정이 그 같이 변한 이유를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찾아뵌 것입니다.”
남궁무성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남궁호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돌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일은 나 혼자 처리할 문제가 아니다. 아니, 이젠 너도 이 문제를 알아야 할 때가 왔구나. 잠시 기다리거라.”
잠시 기다리란 말과 함께 남궁호는 서둘러 방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세 명의 노인들과 함께 돌아왔다.
남궁호가 이미 이야기를 했는지 세 명의 노인들 표정도 눈에 띄게 어두웠다.
“지금부터 내 이야기를 잘 듣거라. 아무래도 네 부친의 몸속에…….”
남궁호는 세 명의 친우들과 함께 강제로 우화등선을 했던 일과 그 후 일어났던 일들을 천천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