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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명가 1권(24화)
第八章 양적산(2)


“어딜 감히!”
동방모강은 날아오는 지풍을 검으로 쳐냄과 동시에 지풍이 쏘아진 곳으로 몸을 날리려 했다.
한데 검을 타고 한줄기 극음지기가 파고들었다.
대경한 동방모강은 단전의 기운을 오른손으로 모아 극음지기를 떨쳐 냈다.
조금만 늦었어도 극음지기가 심장으로 파고들 뻔했다.
동방모강이 극음지기를 떨쳐 내느라 주춤하는 사이 남궁정이 허공으로 뛰어올라 지풍이 쏘아진 곳을 공격했다.
콰콰콰콱!
남궁정의 검이 천장을 긁었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어느새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극음지기를 머금은 지풍과 은신술! 놈의 정체는 사행잔마(死行殘魔)일세!”
동방모강은 자신의 검을 타고 들어오던 극음지기를 머금은 지풍과 절정에 이른 은신술을 토대로 그의 신원을 파악해 냈다.
사행잔마는 사백여 년 전의 인물로, 선인명부에 올라 있는 인물들 중 가장 무공이 떨어지는 측에 속하는 자였다. 하지만 극성에 이른 은신술과 극음지기를 머금은 지풍으로 상대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인물이 아니었다.
‘이놈의 은신술이 까다로워 밖으로 유인하려다 자칫 놓칠 수도 있겠구나!’
서일평은 사행잔마를 연무장으로 유인하기보단 이곳에서 처치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했다.
“계획을 수정하겠네! 놈의 은신술이 뛰어나니 이곳에서 치도록 하세!”
서일평은 북여학을 믿었다.
사행잔마의 은신술이 제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북여학의 은신술을 능가하진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서일평의 외침에 북여학이 전면에 나섰다.
일일이 얘기하지 않아도 이곳에선 자신이 나서야 함을 잘 알고 있었다.
북여학이 독문무공인 북명신공(北冥神功)을 전개해 은신해 있는 사행잔마를 추적했다.
사행잔마는 바닥에 납작 엎드려 달아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순간 북여학의 손이 비호와도 같은 빠르기로 움직였다.
쉬쉬쉿!
북여학의 손에서 무언가가 발출돼 사행잔마에게로 날아갔다.
“흥!”
북여학이 쏘아 낸 무언가를 사행잔마가 지풍으로 쳐냈다.
북여학이 사행잔마에게 쏘아 보낸 것은 명광토(明光土)란 것으로 은신해 있는 자의 위치를 노출시킬 때 쓰는 진흙이었다.
스스로 빛을 내는 진흙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한 번 붙으면 물로 씻어 내기 전엔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격전이 치러지는 상황에 물을 가지고 있을 리 만무하니 한 번 붙으면 여간 성가신 물건이 아니다.
은신술을 주 무공으로 하는 자들은 반드시 지니고 다니는 물건 중 하나였다.
자신이 던진 명광토를 사행잔마가 너무도 쉽게 쳐 내자 북여학은 바로 은신술을 펼쳤다.
이제부터 은신술끼리의 대결이 펼쳐지게 된 것이다.
둘 중 먼저 명광토를 붙이는 자가 이 대결의 승자다.
“모두 준비하게!”
북여학이 일행에게 전음으로 외쳤다.
자신이 명광토를 붙이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명광토를 날리는 주변으로 일행이 한꺼번에 공격을 한다면 놈에게 충분한 타격을 입힐 수 있을 것이다.
쉬익!
명광토가 날아갔다.
이미 북여학의 의도를 파악하고 있던 일행은 동시에 장풍과 검풍 그리고 지닌 암기들을 날려 사행잔마를 공격했다.
파팡! 콰쾅! 채챙!
여러 소리가 울리며 사행잔마를 공격했지만 그를 맞추지 못했다.
쉬쉿!
또다시 명광토가 날아갔다.
사행잔마가 쉴 틈을 주지 말아야 한다.
은신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체를 숨기는 것이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기척과 호흡을 조절하는 것이다.
제아무리 모습을 감춰도 기척과 호흡을 감추지 못하면, 절정에 이른 고수들에게 바로 잡히고 만다.
그렇기에 북여학은 쉴 틈을 주지 않고 명광토를 날렸다. 그의 호흡과 기척을 일행이 파악할 수 있게 만들려는 것이다.
쉬쉬쉬쉬쉿!
‘이놈이!’
사행잔마는 머리털이 곤두설 만큼 화가 났다.
감히 자신에게 은신술로 싸움을 걸어오는 작자가 있는 것도 화가 났지만, 그자의 은신술이 결코 자신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더욱 화가 났다.
등선하기 전 강호에 자신의 은신술을 파악해 내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붙은 별호가 사행잔마다. 한데 사백 년이 지나고 보니 자신의 은신술을 간파하는 자가 있었다.
사행잔마는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북여학을 먼저 제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은신술이라면 수백 명의 고수들이 달려들어도 몸을 빼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자신과 비슷한 실력의 은신술자가 있다면 달라진다.
피핏!
사행잔마도 북여학에게 명광토를 날리기 시작했다.
이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자신과 북여학을 구별해 낼 능력이 없다. 둘 중 명광토가 먼저 붙은 인물에게 모든 공격이 쏠릴 것이다.
쉬쉬쉬! 피피피핏!
두 은신술자의 대결이 시작되자 일행은 더 이상 공격을 감행할 수가 없었다.
둘 다 은신한 상태로 사방을 헤집고 다니며 서로에게 명광토를 날려대니 누가 사행잔마고, 누가 북여학인지 알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둘 모두 은신술을 극한에 이르도록 연마한 자들인지라 빠른 속도로 접전을 벌이는데도 미세한 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바람을 가르는 명광토의 소리만이 방 안을 울렸다.
“이런……!”
서일평이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일 갑자가 넘는 시간 동안 북여학과 함께 강호의 수많은 고수들을 상대해 왔다.
그런 싸움 속에 살수들의 집단인 살문(殺門)과의 전투도 있었지만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었다.
북여학이 순식간에 그들을 해치웠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이번 전투에 나서는 북여학을 믿었던 것이다.
한데 그런 북여학이 사행잔마 단 한 명을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집중들 하게!”
둘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해 손을 놓고 있는 일행에게 북여학의 다급한 전음이 전해져 왔다.
‘집중하라고?’
서일평은 북여학이 집중하라 한 것에 무언가 까닭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최대한의 기력을 짜내 집중하기 시작했다.
후― 후―
‘……!’
매우 미약한 숨소리가 들렸다.
너무도 익숙한 북여학의 숨소리였다.
그는 은신을 한 채 사행잔마와 맞붙는 상황임에도 미세한 숨소리를 흘려 일행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려오고 있었다.
북여학의 위치가 파악되자 사행잔마의 위치가 쉽게 파악됐다.
서일평이 몸을 날려 사행잔마에게 쇄도해 갔다.
사행잔마는 북여학이 날린 명광토를 피해 냄과 동시에 서일평에게 지풍을 쏘아 냈다.
서일평은 신법으로 지풍을 피한 후 사행잔마에게 검을 날렸다.
쉬쉿!
사행잔마의 신형이 어느새 사라졌다.
한데 그 순간 바로 동방모강이 몸을 날려 사행잔마를 공격했다.
‘헛!’
사행잔마는 깜짝 놀랐다.
서일평과 동방모강이 거의 동시에 몸을 날려 시간 차를 두고 연이어 공격을 한 터라 피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파파파팟!
다급함에 연이어 지풍을 날리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기다리고 있었다! 이놈!”
그 순간 자신의 머리 위에서 불같은 호통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날아오른 남궁호가 구벽신권(九劈神拳)으로 사행잔마의 머리를 노렸다.
“큭!”
순식간에 벌어진 연환공격에 사행잔마의 은신술이 깨어졌다.
그 순간 남궁호의 아래쪽으로 달려오던 남궁정과 남궁영의 검이 날아들었다.
콰콰쾅!
“크악!”
사방에서 동시에 행해진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사행잔마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어느새 다가온 서일평이 적오죽선검으로 그의 당문혈과 백회혈을 연이어 찔렀다.
파팟!
“끄아아아악!”
혼이 빠져나가는 고통에 사행잔마가 비명을 질렀다.
스스스슷!
사행잔마의 백회혈을 통해 혼이 빠져나왔다.
남궁호가 재빨리 주문을 외며 죽통을 열어 사행잔마의 혼을 가뒀다.
탁! 척!
혼이 죽통 속으로 빨려들기 무섭게 마개를 닫고 부적을 붙였다.
“휴!”
모든 일이 눈 한 번 깜빡일 정도로 빠른 시간에 끝났다.
일 갑자 가까운 시간 동안 함께 강호를 누볐던 친우들끼리나 보여 줄 수 있는 절묘한 연수합격이었다.
네 노인은 사옥진과 양패구상한 이력이 있었던 터라 이번 선인을 잡는 일에 상당히 긴장을 하고 있었다. 한데 생각보다 쉽게 일을 처리해 냈다.
당시엔 자신들 네 사람뿐이었지만 지금은 남궁정과 남궁영이란 절정의 고수 둘이 합류해 보다 강한 무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네 노인들은 이 정도면 선인들을 상대할 만하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서두르세, 성아가 연무장으로 놈을 유인해 놓았을 것이네.”
남궁호의 말에 따라 일행은 급히 연무장으로 향했다.
챙! 챙! 캉!
“하압!”
“죽어라!”
일행이 연무장으로 달려가는데 곳곳에서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와 기합소리가 들려왔다.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남궁웅이 끌어들인 세력들과 싸우고 있는 소리였다.
이윽고 연무장에 당도해 보니 과연 남궁무성과 정이단이 화정각에 머물고 있던 선인을 연무장으로 유인해 놓았다.
한데 자신들의 생각과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져 있었다.
선인을 대창궁무애검진 속에 가둬두긴 했는데, 그 선인 한 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선인은 오십 명의 고수들이 펼치고 있는 대창궁무애검진 속에 갇혔음에도 전혀 행동에 제약을 받는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대창궁무애검진을 밀어붙이기까지 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남궁호는 대창궁무애검진이 어떤 위력을 지녔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정마대전 당시 마교 최강의 전투 부대라 일컬어지던 수라혈마대(修羅血魔隊)와의 전투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았던 남궁세가의 대창궁무애검진이었다. 물론 당시엔 백 명이 넘는 엄청난 인원이 펼친 검진이었지만 현재의 검진도 그에 못지않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런 대창궁무애검진이 단 한 명의 선인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남궁호가 그들을 돕기 위해 달려가려는데 서일평이 가로막았다.
“잠시만 기다려 보게.”
힘겨워하는 남궁세가 사람들을 돕고 싶었지만 그보다 선인의 신원을 파악하는 게 먼저였다.
단 한 명이 대창궁무애검진을 밀어붙일 정도이니 선인의 정체가 보통 선인은 아닐 것이다.
선인명부에 기재된 인물 중 최상위 무력을 지닌 자임이 분명했다.
“남궁세가의 무공이 이리도 나약해졌다니! 네놈들 조상이 땅을 치며 통곡을 하겠구나!”
선인이 대창궁무애검진을 비웃으며 들고 있던 거대한 도끼를 거칠게 휘둘렀다.
‘대부!’
선인은 거대한 도끼를 들고 있었다.
도끼를 독문무기로 삼는 선인은 많지 않았다. 선인명부에 기재되어 있는 선인은 단 세 명뿐이었다.
‘대부를 무기로 하는 자 중 저 정도의 무공을 지닌 자는…….’
서일평은 미리 외워 뒀던 선인명부의 인물들을 한 명씩 되짚어 갔다.
“철혈거신(鐵血巨神) 양적산!”
서일평은 대창궁무애검진에 전혀 밀리지 않고 있는 선인의 정체를 알아냈다.
“양적산이 누구입니까?”
옆에 서 있던 남궁정이 물었다.
“양적산은…….”
철혈거신 양적산은 칠백 년 전의 인물로, 녹림 칠십이채와 장강수로 십팔채, 동정 십팔채를 최초로 통일한 총표파자이자, 녹림 출신의 무사로선 유일무이하게 당대 천하제일인이라 불린 인물이었다.
그가 활동하던 당시 어찌나 그 성정이 난폭하고 무공이 강했는지, 당시에 그는 인간이 아닌 무신이라 불렸을 정도였다.
그런 인물이 현재 남궁세가에 들어와 세가인들과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서일평은 양적산에 대해 남궁정과 남궁영에게 간단히 설명했다.
서일평의 설명을 들은 남궁정과 남궁영의 표정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와 함께 대창궁무애검진에 갇히고도 전혀 힘겨워하지 않는 이유도 알게 되었다.
“양적산이라…….”
서일평은 대창궁무애검진 안에서 마치 어린아이와 놀듯 대부를 휘두르고 있는 양적산을 보며 이마를 찌푸렸다.
그가 이마를 찌푸린 건 대창궁무애검진을 우습게 보는 양적산의 무위 때문이 아니다.
선인명부에 기재된 다른 선인들 때문이었다.
양적산은 선인명부상에 기록된 인물들 중 중간 정도의 무위를 가졌다고 평가되는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이 정도이니 상위나 최상위로 평가되는 인물들은 얼마나 강할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양적산이 생전의 무공을 어느 정도나 회복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현재의 모습만으로도 생전의 무공이 얼마나 강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욱 강한 선인이 최소 스무 명 이상이 존재하고 있었다.
서일평은 그런 선인들을 생각하자 두통이 이는 듯했다. 하지만 바로 머리를 흔든 후 현재의 상황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들과는 언제 만날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은 양적산을 상대해야 할 때였다.
대창궁무애검진이 통하지 않는 현재의 상황이 일반적인 전투 상황이라면 지체하지 않고 후퇴를 권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절대 후퇴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선인들의 무공은 강해진다.
그러니 지금 양적산을 피하면 다음에 양적산을 만날 땐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고 만다. 그뿐 아니라 남궁웅이 또 다른 선인을 데리고 이곳으로 향하고 있다.
그 선인이 어떤 선인일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다.
최악의 경우 최상위 무공을 지닌 선인일 수도 있었다.
양적산 한 명만으로도 부담스러운데, 이 상황에 두 명이 더 늘어나면 승산 자체가 없어진다.
지금 후퇴를 한다는 건 더욱 강한 적을 만드는 것이나 진배없는 일이었다.
여기서 양적산과 끝을 보아야만 다음을 기약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