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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게임 이즈 네버 오버 5화
“계속 이따위로 할 거면 관두고 나가! 네 잘난 얼굴로 배우 나부랭이나 하든지!”
“……죄송해요, 하워드. 다시 만들어 올게요.”
하워드는 악보를 거칠게 내팽개치곤 등을 돌려 버렸다. 더 이상 노아를 상대하기도 귀찮은 듯했다. 노아는 조용히 악보를 주워 작업실 밖으로 나와 비상계단에 자리 잡고 앉았다. 차갑고 딱딱한 감촉에 엉덩이 사이가 지끈 아팠지만 상관없었다. 이렇게 속상한데 똥구멍이 문제겠는가.
노아는 자신의 곡을 다시 확인했다. 오선지 위로 아무렇게나 휘갈겨진 음표들을 보니 자괴감이 훅 밀려들어 왔다. 시발, 시발, 시발……. 노아는 성질을 참지 못하고 악보를 와그작 구겨 버렸다.
“빌어먹을! 젠장! 그래!! 난 항상 대충한다! 존나 유치하고 존나 끔찍하다!!”
그는 구겨진 악보를 발로 질근질근 밟아 댔다.
“라스베이거스도 괜히 갔어……!! 돈만 버렸잖아!! 그냥 집에 처박혀 있을걸!!”
라스베이거스에 가느라 쓴 돈을 생각하니 울화통이 치밀어 올랐다. 처음에 끊은 왕복 비행기 표와 술값은 에드워드가 준 카드로 계산했지만, 그 뒤부터는 노아의 생돈이 들어갔다. 급하게 결제한 비행기 표 값과 깜빡하고 그냥 오는 바람에 루시가 계산한 호텔비를 주느라 주급을 다 써 버린 것이다. 이대로 가다간 이번 달 학자금 대출도 간당간당했다. 쥐꼬리만 한 주급으로 그걸 갚고 나면 콜라 한 캔도 마음껏 사 먹기 힘들 터였다.
“아, 내 카드…….”
네가 살아 있을 땐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는데― 노아는 죽어 버린(분실신고 되어 쓸모가 없어진) 카드를 그리며 글썽거렸다. 즐겨 먹던 미트볼과 피자, 타코벨의 나초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가난한 무명 작곡가인 노아에겐 그것들조차 사치였다. 우울했다.
“괜찮냐?”
비상구 안으로 케빈이 들어왔다. 케빈은 루시의 애인이다. 그리고 하워드 피셔의 조카이자 매니저이기도 했다.
“케빈……. 시발, 나 배고파.”
“오냐, 오냐. 좀 있다 핫도그 사 줄게.”
케빈이 노아의 어깨를 토닥거리면서 말했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우울증 환자 같던 노아의 얼굴이 확 폈다. 하워드한테 깨진 것도 모자라 배까지 고파서 더 우울했던 모양이다.
“핫도그 말고 타코벨. 칠리스도 괜찮고.”
순간 괜히 왔다는 생각이 케빈의 머릿속을 스쳤다. 노아는 몸이 늘씬한데도 먹는 양이 어마어마했다. 컨디션이 좋은 날은 혼자서 5인분까지 먹어 재꼈다. 하지만 낙담 중인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케빈은 텅 빌 지갑을 애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우울해하지 말고 기운 내, 인마. ……그래도 삼촌이 너 아낀단 말이야. 네 곡은 다른 놈들 거보다 더 자세히 보고 체크한다고. 기회도 여러 번 주시잖아.”
“웃기시네! 아까 나한테 끔찍하다고 한 거 못 들었냐? 엉? 관두고 배우나 하랬잖아! 너무한 거 아니야? ……내가 아무리 잘생겨도 그렇지!”
밥 사 준다고 했더니 그새 기가 살았다. 참 단순했다.
“……그래. 그러니까 한 방 먹이게 잘해 봐. 이번엔 대충 하지 말고.”
노아가 히죽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완전히 기운을 차린 그는 구겨진 악보를 주워 들고 다시 작업실로 돌아갔다. 이번에야말로 하워드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겠다는 의지로 노아는 불타올랐다. 밤을 새워서라도 이 곡을 완벽하게 고치고야 말겠노라고.
그러나 이날 밤에도 에드워드가 찾아와 노아의 작업을 방해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에도 계속…….
***
“노아, 나야.”
에드워드는 인터폰 카메라에 대고 방긋 웃었다. 오늘도 멋들어지게 빗어 넘긴 포마드 헤어스타일에 고급 맞춤 수트를 입고, 한 손엔 꽃다발을 든 모습이 눈이 부셨다. 과연 현대판 백마 탄 왕자님이라고 불리는 남자다웠다.
하지만 노아는 이렇게 멋진 남자를 현관문 앞에 세워 놓고도 문을 열지 않았다. 에드워드가 다시 초인종을 눌러도 마찬가지였다. 안에 있는 것을 빤히 아는데도 노아는 없는 척 문을 잠그고서 침묵했다.
“……이런, 또 나를 애 태우는 군.”
굳게 닫힌 현관문을 보면서 에드워드는 사악하게 웃었다. 사실 그는 노아가 문을 열지 않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며칠째 밤마다 찾아와 계속 좆을 입에 물렸으니 문을 열어 주기 두려울 수밖에. 아마도 노아는 지금쯤 위아래 구멍이 다 얼얼할 터였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그걸 알면서도 섹스를 생략하거나 이대로 돌아간다는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그건 시발,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노아 입에서 당신이 너무 잘해서 미치겠다는 말이 나오기 전까지는―
“노아, 문 안 열어 줄 거야……? 그럼 어쩔 수 없지. 나한테 열쇠가…….”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현관 안에서 작은 욕지거리와 함께 온갖 잠금장치가 풀리고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에드워드는 그 경쾌한 소리를 들으며 피식 웃었다. 사실 열쇠 따윈 없었다.
“에드워드! 기다리고 있었어요!”
노아가 현관문 밖으로 고개를 쏙 내밀었다. 얼굴엔 환한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부들거리는 한쪽 입꼬리 때문에 심기가 편치 못한 게 티가 났다. 에드워드는 그걸 못 본 척하며 들고 온 분홍색 꽃다발을 내밀었다. 오늘은 특별히 ‘영원한 사랑’이라는 꽃말이 있는 리시안셔스를 사 왔다.
“와아……. 또 꽃이네요. 기뻐요.”
대놓고 하나도 안 기쁜 얼굴로 노아가 말했다. 며칠째 꽃만 선물 받으니 이젠 표정 관리도 안 될 만큼 짜증이 왈칵왈칵 치솟아 올랐다. 노아에겐 이딴 꽃이 아닌 새카만 카드가 필요했다.
사실 에드워드도 노아가 꽃을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 일부러 사 온 것이었다.
“네가 기뻐하니까 나도 기쁘군. 내일은 더 예쁜 꽃을 사 줄게. ……물론 너보다 예쁜 꽃은 없겠지만 말이야.”
“아이참, 에드워드도……. 전 꽃 말고 당신만 있으면 되요♡ ……그런데 요즘 자주 오네요. 일이 한가한가 봐요, 에드워드? 하하하.”
“그럴 리가. 일은 항상 밀려 있지. 하지만 너를 만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어, 노아.”
하마터면 노아의 입에서 ‘지랄하네’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일보다 나를 만나는 게 더 중요하다니. 이건 노아가 아는 에드워드 웰스의 입에서 나올 법한 말이 아니었다. 이렇게 매일 밤마다 꽃다발을 들고 찾아오는 일도 말이다.
이제 노아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만났던 과거의 에드워드가 그리워졌다. 가끔씩 찾아와 자기 할 일만 하고 가던 그 깔끔함이 진짜 사무치게 간절했다. 밤마다 덤비는 에드워드 때문에 곡을 제대로 수정할 시간과 체력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그, 그럼 오늘은 그냥 일을 하는 게 어떨까요……? 난 괜찮으니까 좀 기다렸다가 주말에 만나요.”
“그럴 수는 없지. 또 내 일 때문에 너를 뒤로 미룰 순 없어. 나는 너를 사랑하니까.”
“아니, 이제 마음만으로도 충분해요. 당신을 믿거든요.”
“나는 마음만으론 충분치 않아.”
에드워드는 노아를 허리를 붙잡고 바짝 끌어당겼다. 그러곤 노아의 귀에 속삭였다.
“지금 당장 너를 안지 않으면 미칠 것 같거든.”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말을 들은 사람처럼 노아의 얼굴이 와작 구겨졌다. 물론 에드워드는 세상에서 가장 시원한 얼굴로 활짝 웃었다. 그는 노아의 뺨에 짧게 키스하며 음흉한 웃음소릴 흘렸다.
***
“흣, 흐윽, 아, 흐아아…….”
젖은 숨과 함께 신음이 노아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노아는 자신의 등허리를 빨아들이고 있는 혀와 입술을 피하기 위해 손을 앞으로 허우적거렸다.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시트를 붙잡아도 소용없었다. 시트가 너무 부드러운 데다 손에 힘이 똑바로 들어가질 않아 긁히기만 했다. 그러다 겨우 앞으로 움직이면 다시 뒤로 끌려가 거대한 흉기에 푹 찔렸다.
“가만히 좀 있어, 노아. ……엉덩이 똑바로 들고.”
골반을 붙잡은 에드워드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바들거리는 허리가 억지로 들리고 페니스가 더 깊이 밀려들어 왔다. 에드워드는 더 파고드는 것도 모자라 둥글게 허리를 돌리며 쿡 처박길 몇 번 더 반복했다.
노아는 핀에 꽂힌 나비처럼 파르르 떨었다. 에드워드가 안을 찌를 때마다 온몸이 통째로 욱신거렸다.
도대체 시간이 얼마나 지난 것일까. 시계를 찾기 위해 자꾸 침대 옆을 힐끔거렸지만 보이질 않았다.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침대 헤드와 스탠드 불빛이 다였다. 하지만 그러한 인식도 잠시뿐이었다.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있다가도 에드워드의 페니스에 한 번 찔리면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나 흩어져 버렸다.
그렇지만 절정은 아직 오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노아의 몸을 잔뜩 달궈 몰아가기만 할 뿐, 끝에 다다르게 해 주진 않았다. 그 근처로 거칠게 데리고 갔다가 느슨하게 풀어 주고, 도망가려고 하면 다시 붙잡아 와 아찔한 쾌감을 박아 넣었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노아의 앞섶은 정액과 멀건 액으로 흥건했다. 박히기 전에 이미 두 번이나 사정당한 데다가, 이후에 그가 보는 앞에서 자위까지 했다. 그 덕에 더 나올 것도 없건만 에드워드는 자꾸만 노아의 물건을 흔들며 놀았다. 엎드려 박힌 채로 그러고 있으니 노아는 자신이 짐승이 된 것만 같았다.
“흐아, 흣……! 아, 거기! 아, 아, 앗! 안 돼, 멈추지 마! 읏……. 제바알…….”
참다못한 노아가 애원했다. 뒤를 꽉 조이며 에드워드를 졸랐지만 소용없었다. 에드워드는 느릿하게 허리를 놀리기만 할 뿐이었다.
“시발…… 흑, 이 나쁜 새끼야아아…….”
“욕하면 안 되지.”
에드워드가 노아의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그것마저도 짜릿해 노아는 몸을 웅크리며 흐아아아 하고 울었다. 발정 난 고양이 같은 울음이었다. 에드워드는 노아의 머리채를 붙잡아 뒤를 돌아보게 했다. 그러자 아까 에드워드가 싸 놓은 정액과 눈물로 범벅된 얼굴이 보였다. 야하고 불쌍하고 엉망인 얼굴이었다.
“노아.”
이름이 불리자 노아의 얼굴에 초조함이 걸렸다.
“말해 봐. 어떻게 해 줄까? 응……?”
“……안에.”
“…….”
“안에 싸 줘. ……흔들어서, 읏, 가게 해 줘. 에드워드…….”
이 목소리를 색에 비유하면 지독하게 새빨간 색일 터였다. 찐득하고 빨간, 독 같은 목소리.
“한 번 더 말해 봐.”
“……시발놈아. 네 좆 좀 박아 달라고오.”
노아의 뺨 위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나 있는 걸까. 아니면 자각하지 못하고 그냥 내뱉는 걸까. 에드워드는 그것이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결국 하고자 하는 일은 같은 데다가, 이제 그도 슬슬 여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축 늘어진 노아의 몸을 잡아 똑바로 눕혔다. 자세를 바꾸면서 다리를 움직이느라 페니스가 빠질 뻔했지만, 노아가 필사적으로 샅을 붙여서 결합은 풀리지 않았다.
“에드워드, 에드워드…….”
쾌감과 고통으로 뒤범벅된 목소리가 에드워드를 재촉했다. 에드워드는 노아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이렇게까지 몰아붙인 것에 대한 나름의 사과였다. 하지만 아래는 무척이나 거칠고 난폭하여 침대가 다 삐걱거렸다.
“아, 앗, 흑, 흐앗, 앗……! 아…… 흐으읏, 아…….”
노아가 에드워드의 팔을 붙잡았다. 물에 빠진 사람이 구명줄을 붙잡듯 필사적인 힘이었다. 에드워드는 그 손을 떼어 내는 대신 노아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땀에 젖은 피부 위에 잔 키스를 퍼붓다가 혀로 길게 핥아 올렸다. 그리고 쪽 소리 나게 뺨을 빨아들이곤 다시 목덜미로 돌아와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벌어진 노아의 다리가 바르작거렸다. 그는 이제 신음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노아를 꽉 껴안았다. 맞닿은 피부에서 느껴지는 열기가 그를 달궜다. 숨소리조차 아찔하게 달아서 머릿속이 녹아내릴 것 같았다.
“크흣……!”
드디어 에드워드에게도 절정이 다가왔다. 그는 노아의 안에 자신을 파묻기라도 할 듯 깊숙이 아래를 박아 넣었다. 눈앞에 하얀 불꽃이 터지며 사정감이 밀려들어 왔다. 에드워드는 진득하게 들러붙는 노아의 아랫구멍 속에 정액을 토해 냈다.
짧고도 긴 시간이 지나갔다. 아쉬움과 만족감이 뒤엉켜 열기와 함께 가라앉았다. 에드워드는 숨을 몰아쉬며 노아의 이마 위에 베이비 키스를 했다. 아직 한창 느끼고 있는 것인지 노아의 얼굴이 몽롱했다. 허벅지도 아직 경련하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피식 웃으며 남은 정액을 털어 내듯 몇 번 더 추삽질을 했다. 그리고 페니스를 빼내자 노아가 작은 신음을 흘렸다.
“노아.”
흐린 눈동자 위로 잠시 총기가 돌아왔다가 다시 사라졌다. 에드워드는 노아의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 주면서 그가 정신을 차리길 기다렸다. 그러나 노아는 이대로 잠들기로 한 것인지, 몸을 웅크리고 눈을 감아 버렸다. 그러면서도 에드워드가 몸을 건드리면 움찔움찔 떠는 게 귀여웠다.
“이렇게 잠들면 안 될 텐데.”
에드워드는 그렇게 말하면서 느끼한 미소를 지었다. 노아를 지칠 정도로 몰아넣고 느끼게 만든 것이 내심 뿌듯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직 확인해야 할 것이 남아 있었다. 아주 중요한 사항이었다. 에드워드는 아직 완전히 잠들지 않은 노아의 귓가에 속삭이듯 물었다.
“노아, 이번엔 어땠어? 좋았어……?”
구차하지만 남자로서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특히나 오늘은 열심히 봉사해 줬으니 칭찬 받아야 마땅했다. 다행히 노아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에드워드는 기뻐하며 그의 뺨에 입을 맞췄다. 갑자기 노아가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동안 느낀 괘씸함도 모두 날아갈 것 같았다. 그러나 곧이어 들려온 작은 속삭임이 다시 에드워드의 얼굴을 싸늘하게 만들었다.
잠꼬대하듯 노아가 중얼거린 그 단어는 바로 ‘지루’였다.
***
에드워드의 투자회사 V&H 인베스트먼트는 로어 맨해튼(Lower Manhattan)의 배터리 공원 옆, 바다가 보이는 고층빌딩에 자리해 있었다. 이곳에서 에드워드는 기업을 사서 되파는 일을 했다. 헐값에 산 기업의 불필요한 부분을 정리한 후, 쪼개고 합병시켜 비싸게 팔아치우느라 하루에도 수십 건씩 치열한 계산과 비정한 계획들이 오고갔다. 가치와 이익, 효율성만이 그것들의 지표였다.
심장 없는 자들이나 할 법한 일이다 보니 냉정함은 필수였다. 지금까지 에드워드는 냉철함과 빠른 판단력, 타고난 감을 가지고 잘해 왔다. 일중독인 것이 흠이긴 했으나 이익을 추구하되 탐욕을 부리지는 않고, 수단방법을 가리진 않아도 최소한의 양심은 지켰다. 그 덕에 회사 이미지도 이 업계치고는 좋은 편이었다.
한데 오늘은 책상 앞에 앉은 에드워드가 좀 이상했다. 애널리스트들이 올린 보고서와 승인해야 할 문서들이 산더미인데 도통 집중을 못 하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라면 오전 중에 끝났어야 할 일들이 오후가 되어서도 그대로였다. 심지어 에드워드는 점심을 거르기까지 했다. 그를 걱정한 비서들이 휴식이나 식사를 권했지만 소용없었다. 에드워드는 신경 쓰지 말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젠장.”
보고서를 읽던 에드워드가 작게 욕설을 지껄였다. 그는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보고서를 책상 위에 던졌다. 보고서가 형편없어서가 아니었다. 거기에 적힌 단 한 글자도 집중해 읽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산만함과 짜증의 원인은 일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었다. 바로 어젯밤 자신의 연인에게서 들었던 ‘지루’라는 단어에 말이다.
“빌어먹을, 어떻게…….”
어떻게 이 나에게 지루라는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에드워드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평생 자신과는 인연 없을 줄 알았던 단어 때문에 괴로웠다. 열 받아 미칠 것 같았다. 시도 때도 없이 원통함이 왈칵왈칵 치밀어 올랐다. 그렇게 열심히 봉사해 주었건만 지루라니! 시발, 많고 많은 말들 중에 하필 지루라니!!
물론 좀 오래 세우고 있긴 했다. 하지만 그건 노아를 애태우느라 조금 시간을 끌었던 것뿐이었다. 자신이 욕을 하고 있다는 것도 모를 정도로 보채고, 엉엉 울어 댔으면 노아도 분명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루라니. 존나 못한다고 하기에, 혼자 싸고 튄다기에 정성 들여 해 줬는데 지루라니!
에드워드는 원통해 미칠 것 같았다. 그는 무턱대고 자기 자신에게 관대한 나르시스트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신이 잘난 건 알고 있었다. 재벌 3세라는 배경을 빼고도 그는 핸섬한 외모와 매너,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섹스도 잘했다. 이전에 사귀었던 애인들과 잠자리 파트너들의 반응으로 보건데 틀림없었다. 다들 침대 위에서 울고 자지러지며 어쩔 줄을 몰라 했으니까. 고로 자신은 그 짓을 잘하는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게 다 연기였다면? 에드워드는 자신을 슈가대디 취급하는 노아라는 인간 하나 때문에 지금까지 사귀었던 모든 연인들이 의심스러워졌다. 그녀들 역시 물질적인 이익 때문에 노아처럼 연기를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시발, 돌아 버리겠군.”
자존심이 다 무너졌다.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는 절망감이 에드워드를 덮쳐왔다. 가진 건 돈뿐인 호색한 변태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거지같았다.
에드워드는 다시 보고서를 펼쳤다. 변태든 뭐든 일단 일은 처리해야 했으므로 이렇게 씩씩대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러나 반 페이지도 읽기 전에 울화통이 터진 에드워드는 거칠게 휴대폰을 집어 들고야 말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는 이미 노아에게 전화를 건 상태였다.
-여보세요, 에드워드……?
피곤함이 흠뻑 배어 있는 갈라진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들려왔다. 에드워드는 내가 왜 지루냐고 따지려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는 화를 참느라 말도 못하고 거칠게 숨만 내쉬었다. 한데 그게 또 노아한텐 변태가 헐떡이는 것처럼 들렸다.
-에, 에, 에, 에드워드? 무슨 일이에요? 설마 지금 흥…분한 거 아니죠?
노아는 에드워드를 대낮부터 흥분해서 애인에게 전화한 변태 취급했다. 에드워드는 또 울컥했다. 이번만은 진짜 억울…… 아니, 모든 것이 다 억울했다.
“그런 거 아니니 오해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군.”
-네에……. 뭐, 그렇겠죠.
“진짜야, 노아. 날 못 믿어?”
-믿어요. 에드워드. 전 당신 말이라면 다 믿어요.
염병. 믿기는 뭘 믿는단 말인가. 말투 전체에 불신이 깔려 있는데. 에드워드는 노아가 가소롭고 기가 찼지만 그걸 트집 잡지는 않았다. 괜히 구차한 인간되긴 싫은 데다가, 여기서 이성을 잃으면 곤란했다. 그에겐 노아를 무릎 꿇려 차 버리겠다는 원대한 계획이 있었으므로. 에드워드는 다시 친절하고 다정한 연인인 척 연기하기 시작했다.
“계속 이따위로 할 거면 관두고 나가! 네 잘난 얼굴로 배우 나부랭이나 하든지!”
“……죄송해요, 하워드. 다시 만들어 올게요.”
하워드는 악보를 거칠게 내팽개치곤 등을 돌려 버렸다. 더 이상 노아를 상대하기도 귀찮은 듯했다. 노아는 조용히 악보를 주워 작업실 밖으로 나와 비상계단에 자리 잡고 앉았다. 차갑고 딱딱한 감촉에 엉덩이 사이가 지끈 아팠지만 상관없었다. 이렇게 속상한데 똥구멍이 문제겠는가.
노아는 자신의 곡을 다시 확인했다. 오선지 위로 아무렇게나 휘갈겨진 음표들을 보니 자괴감이 훅 밀려들어 왔다. 시발, 시발, 시발……. 노아는 성질을 참지 못하고 악보를 와그작 구겨 버렸다.
“빌어먹을! 젠장! 그래!! 난 항상 대충한다! 존나 유치하고 존나 끔찍하다!!”
그는 구겨진 악보를 발로 질근질근 밟아 댔다.
“라스베이거스도 괜히 갔어……!! 돈만 버렸잖아!! 그냥 집에 처박혀 있을걸!!”
라스베이거스에 가느라 쓴 돈을 생각하니 울화통이 치밀어 올랐다. 처음에 끊은 왕복 비행기 표와 술값은 에드워드가 준 카드로 계산했지만, 그 뒤부터는 노아의 생돈이 들어갔다. 급하게 결제한 비행기 표 값과 깜빡하고 그냥 오는 바람에 루시가 계산한 호텔비를 주느라 주급을 다 써 버린 것이다. 이대로 가다간 이번 달 학자금 대출도 간당간당했다. 쥐꼬리만 한 주급으로 그걸 갚고 나면 콜라 한 캔도 마음껏 사 먹기 힘들 터였다.
“아, 내 카드…….”
네가 살아 있을 땐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는데― 노아는 죽어 버린(분실신고 되어 쓸모가 없어진) 카드를 그리며 글썽거렸다. 즐겨 먹던 미트볼과 피자, 타코벨의 나초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가난한 무명 작곡가인 노아에겐 그것들조차 사치였다. 우울했다.
“괜찮냐?”
비상구 안으로 케빈이 들어왔다. 케빈은 루시의 애인이다. 그리고 하워드 피셔의 조카이자 매니저이기도 했다.
“케빈……. 시발, 나 배고파.”
“오냐, 오냐. 좀 있다 핫도그 사 줄게.”
케빈이 노아의 어깨를 토닥거리면서 말했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우울증 환자 같던 노아의 얼굴이 확 폈다. 하워드한테 깨진 것도 모자라 배까지 고파서 더 우울했던 모양이다.
“핫도그 말고 타코벨. 칠리스도 괜찮고.”
순간 괜히 왔다는 생각이 케빈의 머릿속을 스쳤다. 노아는 몸이 늘씬한데도 먹는 양이 어마어마했다. 컨디션이 좋은 날은 혼자서 5인분까지 먹어 재꼈다. 하지만 낙담 중인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케빈은 텅 빌 지갑을 애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우울해하지 말고 기운 내, 인마. ……그래도 삼촌이 너 아낀단 말이야. 네 곡은 다른 놈들 거보다 더 자세히 보고 체크한다고. 기회도 여러 번 주시잖아.”
“웃기시네! 아까 나한테 끔찍하다고 한 거 못 들었냐? 엉? 관두고 배우나 하랬잖아! 너무한 거 아니야? ……내가 아무리 잘생겨도 그렇지!”
밥 사 준다고 했더니 그새 기가 살았다. 참 단순했다.
“……그래. 그러니까 한 방 먹이게 잘해 봐. 이번엔 대충 하지 말고.”
노아가 히죽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완전히 기운을 차린 그는 구겨진 악보를 주워 들고 다시 작업실로 돌아갔다. 이번에야말로 하워드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겠다는 의지로 노아는 불타올랐다. 밤을 새워서라도 이 곡을 완벽하게 고치고야 말겠노라고.
그러나 이날 밤에도 에드워드가 찾아와 노아의 작업을 방해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에도 계속…….
***
“노아, 나야.”
에드워드는 인터폰 카메라에 대고 방긋 웃었다. 오늘도 멋들어지게 빗어 넘긴 포마드 헤어스타일에 고급 맞춤 수트를 입고, 한 손엔 꽃다발을 든 모습이 눈이 부셨다. 과연 현대판 백마 탄 왕자님이라고 불리는 남자다웠다.
하지만 노아는 이렇게 멋진 남자를 현관문 앞에 세워 놓고도 문을 열지 않았다. 에드워드가 다시 초인종을 눌러도 마찬가지였다. 안에 있는 것을 빤히 아는데도 노아는 없는 척 문을 잠그고서 침묵했다.
“……이런, 또 나를 애 태우는 군.”
굳게 닫힌 현관문을 보면서 에드워드는 사악하게 웃었다. 사실 그는 노아가 문을 열지 않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며칠째 밤마다 찾아와 계속 좆을 입에 물렸으니 문을 열어 주기 두려울 수밖에. 아마도 노아는 지금쯤 위아래 구멍이 다 얼얼할 터였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그걸 알면서도 섹스를 생략하거나 이대로 돌아간다는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그건 시발,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노아 입에서 당신이 너무 잘해서 미치겠다는 말이 나오기 전까지는―
“노아, 문 안 열어 줄 거야……? 그럼 어쩔 수 없지. 나한테 열쇠가…….”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현관 안에서 작은 욕지거리와 함께 온갖 잠금장치가 풀리고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에드워드는 그 경쾌한 소리를 들으며 피식 웃었다. 사실 열쇠 따윈 없었다.
“에드워드! 기다리고 있었어요!”
노아가 현관문 밖으로 고개를 쏙 내밀었다. 얼굴엔 환한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부들거리는 한쪽 입꼬리 때문에 심기가 편치 못한 게 티가 났다. 에드워드는 그걸 못 본 척하며 들고 온 분홍색 꽃다발을 내밀었다. 오늘은 특별히 ‘영원한 사랑’이라는 꽃말이 있는 리시안셔스를 사 왔다.
“와아……. 또 꽃이네요. 기뻐요.”
대놓고 하나도 안 기쁜 얼굴로 노아가 말했다. 며칠째 꽃만 선물 받으니 이젠 표정 관리도 안 될 만큼 짜증이 왈칵왈칵 치솟아 올랐다. 노아에겐 이딴 꽃이 아닌 새카만 카드가 필요했다.
사실 에드워드도 노아가 꽃을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 일부러 사 온 것이었다.
“네가 기뻐하니까 나도 기쁘군. 내일은 더 예쁜 꽃을 사 줄게. ……물론 너보다 예쁜 꽃은 없겠지만 말이야.”
“아이참, 에드워드도……. 전 꽃 말고 당신만 있으면 되요♡ ……그런데 요즘 자주 오네요. 일이 한가한가 봐요, 에드워드? 하하하.”
“그럴 리가. 일은 항상 밀려 있지. 하지만 너를 만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어, 노아.”
하마터면 노아의 입에서 ‘지랄하네’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일보다 나를 만나는 게 더 중요하다니. 이건 노아가 아는 에드워드 웰스의 입에서 나올 법한 말이 아니었다. 이렇게 매일 밤마다 꽃다발을 들고 찾아오는 일도 말이다.
이제 노아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만났던 과거의 에드워드가 그리워졌다. 가끔씩 찾아와 자기 할 일만 하고 가던 그 깔끔함이 진짜 사무치게 간절했다. 밤마다 덤비는 에드워드 때문에 곡을 제대로 수정할 시간과 체력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그, 그럼 오늘은 그냥 일을 하는 게 어떨까요……? 난 괜찮으니까 좀 기다렸다가 주말에 만나요.”
“그럴 수는 없지. 또 내 일 때문에 너를 뒤로 미룰 순 없어. 나는 너를 사랑하니까.”
“아니, 이제 마음만으로도 충분해요. 당신을 믿거든요.”
“나는 마음만으론 충분치 않아.”
에드워드는 노아를 허리를 붙잡고 바짝 끌어당겼다. 그러곤 노아의 귀에 속삭였다.
“지금 당장 너를 안지 않으면 미칠 것 같거든.”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말을 들은 사람처럼 노아의 얼굴이 와작 구겨졌다. 물론 에드워드는 세상에서 가장 시원한 얼굴로 활짝 웃었다. 그는 노아의 뺨에 짧게 키스하며 음흉한 웃음소릴 흘렸다.
***
“흣, 흐윽, 아, 흐아아…….”
젖은 숨과 함께 신음이 노아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노아는 자신의 등허리를 빨아들이고 있는 혀와 입술을 피하기 위해 손을 앞으로 허우적거렸다.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시트를 붙잡아도 소용없었다. 시트가 너무 부드러운 데다 손에 힘이 똑바로 들어가질 않아 긁히기만 했다. 그러다 겨우 앞으로 움직이면 다시 뒤로 끌려가 거대한 흉기에 푹 찔렸다.
“가만히 좀 있어, 노아. ……엉덩이 똑바로 들고.”
골반을 붙잡은 에드워드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바들거리는 허리가 억지로 들리고 페니스가 더 깊이 밀려들어 왔다. 에드워드는 더 파고드는 것도 모자라 둥글게 허리를 돌리며 쿡 처박길 몇 번 더 반복했다.
노아는 핀에 꽂힌 나비처럼 파르르 떨었다. 에드워드가 안을 찌를 때마다 온몸이 통째로 욱신거렸다.
도대체 시간이 얼마나 지난 것일까. 시계를 찾기 위해 자꾸 침대 옆을 힐끔거렸지만 보이질 않았다.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침대 헤드와 스탠드 불빛이 다였다. 하지만 그러한 인식도 잠시뿐이었다.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있다가도 에드워드의 페니스에 한 번 찔리면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나 흩어져 버렸다.
그렇지만 절정은 아직 오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노아의 몸을 잔뜩 달궈 몰아가기만 할 뿐, 끝에 다다르게 해 주진 않았다. 그 근처로 거칠게 데리고 갔다가 느슨하게 풀어 주고, 도망가려고 하면 다시 붙잡아 와 아찔한 쾌감을 박아 넣었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노아의 앞섶은 정액과 멀건 액으로 흥건했다. 박히기 전에 이미 두 번이나 사정당한 데다가, 이후에 그가 보는 앞에서 자위까지 했다. 그 덕에 더 나올 것도 없건만 에드워드는 자꾸만 노아의 물건을 흔들며 놀았다. 엎드려 박힌 채로 그러고 있으니 노아는 자신이 짐승이 된 것만 같았다.
“흐아, 흣……! 아, 거기! 아, 아, 앗! 안 돼, 멈추지 마! 읏……. 제바알…….”
참다못한 노아가 애원했다. 뒤를 꽉 조이며 에드워드를 졸랐지만 소용없었다. 에드워드는 느릿하게 허리를 놀리기만 할 뿐이었다.
“시발…… 흑, 이 나쁜 새끼야아아…….”
“욕하면 안 되지.”
에드워드가 노아의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그것마저도 짜릿해 노아는 몸을 웅크리며 흐아아아 하고 울었다. 발정 난 고양이 같은 울음이었다. 에드워드는 노아의 머리채를 붙잡아 뒤를 돌아보게 했다. 그러자 아까 에드워드가 싸 놓은 정액과 눈물로 범벅된 얼굴이 보였다. 야하고 불쌍하고 엉망인 얼굴이었다.
“노아.”
이름이 불리자 노아의 얼굴에 초조함이 걸렸다.
“말해 봐. 어떻게 해 줄까? 응……?”
“……안에.”
“…….”
“안에 싸 줘. ……흔들어서, 읏, 가게 해 줘. 에드워드…….”
이 목소리를 색에 비유하면 지독하게 새빨간 색일 터였다. 찐득하고 빨간, 독 같은 목소리.
“한 번 더 말해 봐.”
“……시발놈아. 네 좆 좀 박아 달라고오.”
노아의 뺨 위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나 있는 걸까. 아니면 자각하지 못하고 그냥 내뱉는 걸까. 에드워드는 그것이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결국 하고자 하는 일은 같은 데다가, 이제 그도 슬슬 여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축 늘어진 노아의 몸을 잡아 똑바로 눕혔다. 자세를 바꾸면서 다리를 움직이느라 페니스가 빠질 뻔했지만, 노아가 필사적으로 샅을 붙여서 결합은 풀리지 않았다.
“에드워드, 에드워드…….”
쾌감과 고통으로 뒤범벅된 목소리가 에드워드를 재촉했다. 에드워드는 노아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이렇게까지 몰아붙인 것에 대한 나름의 사과였다. 하지만 아래는 무척이나 거칠고 난폭하여 침대가 다 삐걱거렸다.
“아, 앗, 흑, 흐앗, 앗……! 아…… 흐으읏, 아…….”
노아가 에드워드의 팔을 붙잡았다. 물에 빠진 사람이 구명줄을 붙잡듯 필사적인 힘이었다. 에드워드는 그 손을 떼어 내는 대신 노아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땀에 젖은 피부 위에 잔 키스를 퍼붓다가 혀로 길게 핥아 올렸다. 그리고 쪽 소리 나게 뺨을 빨아들이곤 다시 목덜미로 돌아와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벌어진 노아의 다리가 바르작거렸다. 그는 이제 신음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노아를 꽉 껴안았다. 맞닿은 피부에서 느껴지는 열기가 그를 달궜다. 숨소리조차 아찔하게 달아서 머릿속이 녹아내릴 것 같았다.
“크흣……!”
드디어 에드워드에게도 절정이 다가왔다. 그는 노아의 안에 자신을 파묻기라도 할 듯 깊숙이 아래를 박아 넣었다. 눈앞에 하얀 불꽃이 터지며 사정감이 밀려들어 왔다. 에드워드는 진득하게 들러붙는 노아의 아랫구멍 속에 정액을 토해 냈다.
짧고도 긴 시간이 지나갔다. 아쉬움과 만족감이 뒤엉켜 열기와 함께 가라앉았다. 에드워드는 숨을 몰아쉬며 노아의 이마 위에 베이비 키스를 했다. 아직 한창 느끼고 있는 것인지 노아의 얼굴이 몽롱했다. 허벅지도 아직 경련하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피식 웃으며 남은 정액을 털어 내듯 몇 번 더 추삽질을 했다. 그리고 페니스를 빼내자 노아가 작은 신음을 흘렸다.
“노아.”
흐린 눈동자 위로 잠시 총기가 돌아왔다가 다시 사라졌다. 에드워드는 노아의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 주면서 그가 정신을 차리길 기다렸다. 그러나 노아는 이대로 잠들기로 한 것인지, 몸을 웅크리고 눈을 감아 버렸다. 그러면서도 에드워드가 몸을 건드리면 움찔움찔 떠는 게 귀여웠다.
“이렇게 잠들면 안 될 텐데.”
에드워드는 그렇게 말하면서 느끼한 미소를 지었다. 노아를 지칠 정도로 몰아넣고 느끼게 만든 것이 내심 뿌듯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직 확인해야 할 것이 남아 있었다. 아주 중요한 사항이었다. 에드워드는 아직 완전히 잠들지 않은 노아의 귓가에 속삭이듯 물었다.
“노아, 이번엔 어땠어? 좋았어……?”
구차하지만 남자로서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특히나 오늘은 열심히 봉사해 줬으니 칭찬 받아야 마땅했다. 다행히 노아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에드워드는 기뻐하며 그의 뺨에 입을 맞췄다. 갑자기 노아가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동안 느낀 괘씸함도 모두 날아갈 것 같았다. 그러나 곧이어 들려온 작은 속삭임이 다시 에드워드의 얼굴을 싸늘하게 만들었다.
잠꼬대하듯 노아가 중얼거린 그 단어는 바로 ‘지루’였다.
***
에드워드의 투자회사 V&H 인베스트먼트는 로어 맨해튼(Lower Manhattan)의 배터리 공원 옆, 바다가 보이는 고층빌딩에 자리해 있었다. 이곳에서 에드워드는 기업을 사서 되파는 일을 했다. 헐값에 산 기업의 불필요한 부분을 정리한 후, 쪼개고 합병시켜 비싸게 팔아치우느라 하루에도 수십 건씩 치열한 계산과 비정한 계획들이 오고갔다. 가치와 이익, 효율성만이 그것들의 지표였다.
심장 없는 자들이나 할 법한 일이다 보니 냉정함은 필수였다. 지금까지 에드워드는 냉철함과 빠른 판단력, 타고난 감을 가지고 잘해 왔다. 일중독인 것이 흠이긴 했으나 이익을 추구하되 탐욕을 부리지는 않고, 수단방법을 가리진 않아도 최소한의 양심은 지켰다. 그 덕에 회사 이미지도 이 업계치고는 좋은 편이었다.
한데 오늘은 책상 앞에 앉은 에드워드가 좀 이상했다. 애널리스트들이 올린 보고서와 승인해야 할 문서들이 산더미인데 도통 집중을 못 하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라면 오전 중에 끝났어야 할 일들이 오후가 되어서도 그대로였다. 심지어 에드워드는 점심을 거르기까지 했다. 그를 걱정한 비서들이 휴식이나 식사를 권했지만 소용없었다. 에드워드는 신경 쓰지 말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젠장.”
보고서를 읽던 에드워드가 작게 욕설을 지껄였다. 그는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보고서를 책상 위에 던졌다. 보고서가 형편없어서가 아니었다. 거기에 적힌 단 한 글자도 집중해 읽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산만함과 짜증의 원인은 일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었다. 바로 어젯밤 자신의 연인에게서 들었던 ‘지루’라는 단어에 말이다.
“빌어먹을, 어떻게…….”
어떻게 이 나에게 지루라는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에드워드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평생 자신과는 인연 없을 줄 알았던 단어 때문에 괴로웠다. 열 받아 미칠 것 같았다. 시도 때도 없이 원통함이 왈칵왈칵 치밀어 올랐다. 그렇게 열심히 봉사해 주었건만 지루라니! 시발, 많고 많은 말들 중에 하필 지루라니!!
물론 좀 오래 세우고 있긴 했다. 하지만 그건 노아를 애태우느라 조금 시간을 끌었던 것뿐이었다. 자신이 욕을 하고 있다는 것도 모를 정도로 보채고, 엉엉 울어 댔으면 노아도 분명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루라니. 존나 못한다고 하기에, 혼자 싸고 튄다기에 정성 들여 해 줬는데 지루라니!
에드워드는 원통해 미칠 것 같았다. 그는 무턱대고 자기 자신에게 관대한 나르시스트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신이 잘난 건 알고 있었다. 재벌 3세라는 배경을 빼고도 그는 핸섬한 외모와 매너,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섹스도 잘했다. 이전에 사귀었던 애인들과 잠자리 파트너들의 반응으로 보건데 틀림없었다. 다들 침대 위에서 울고 자지러지며 어쩔 줄을 몰라 했으니까. 고로 자신은 그 짓을 잘하는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게 다 연기였다면? 에드워드는 자신을 슈가대디 취급하는 노아라는 인간 하나 때문에 지금까지 사귀었던 모든 연인들이 의심스러워졌다. 그녀들 역시 물질적인 이익 때문에 노아처럼 연기를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시발, 돌아 버리겠군.”
자존심이 다 무너졌다.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는 절망감이 에드워드를 덮쳐왔다. 가진 건 돈뿐인 호색한 변태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거지같았다.
에드워드는 다시 보고서를 펼쳤다. 변태든 뭐든 일단 일은 처리해야 했으므로 이렇게 씩씩대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러나 반 페이지도 읽기 전에 울화통이 터진 에드워드는 거칠게 휴대폰을 집어 들고야 말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는 이미 노아에게 전화를 건 상태였다.
-여보세요, 에드워드……?
피곤함이 흠뻑 배어 있는 갈라진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들려왔다. 에드워드는 내가 왜 지루냐고 따지려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는 화를 참느라 말도 못하고 거칠게 숨만 내쉬었다. 한데 그게 또 노아한텐 변태가 헐떡이는 것처럼 들렸다.
-에, 에, 에, 에드워드? 무슨 일이에요? 설마 지금 흥…분한 거 아니죠?
노아는 에드워드를 대낮부터 흥분해서 애인에게 전화한 변태 취급했다. 에드워드는 또 울컥했다. 이번만은 진짜 억울…… 아니, 모든 것이 다 억울했다.
“그런 거 아니니 오해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군.”
-네에……. 뭐, 그렇겠죠.
“진짜야, 노아. 날 못 믿어?”
-믿어요. 에드워드. 전 당신 말이라면 다 믿어요.
염병. 믿기는 뭘 믿는단 말인가. 말투 전체에 불신이 깔려 있는데. 에드워드는 노아가 가소롭고 기가 찼지만 그걸 트집 잡지는 않았다. 괜히 구차한 인간되긴 싫은 데다가, 여기서 이성을 잃으면 곤란했다. 그에겐 노아를 무릎 꿇려 차 버리겠다는 원대한 계획이 있었으므로. 에드워드는 다시 친절하고 다정한 연인인 척 연기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