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2화
혜비가 분에 못 이겨 말을 이었다. 꺼내지 않아도 좋을 말이었으나 성이 나 참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속내가 너무 빤히 드러나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 사람을 그리 생각해 주다니 고맙습니다. 허나 괜한 걱정일 뿐입니다. 송 귀비는 예를 아는 사람이라 나를 만나면 가마를 멈추고 내릴 것이고 내가 지나가면 다시 가마에 오를 것입니다. 내 이미 그리 언질을 해 두었습니다. 그저 아직 이곳의 풍습에 익숙하지 않을 뿐입니다. 게다가 황제폐하께서 하사하신 것을 그냥 두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지요.”
우는 해사하게 미소 지었다. 그 꽃 같은 미소에 혜비는 쓰게 웃었다. 혜비는 매번 우에게 졌다. 하지만 그것은 분하지 않았다. 그녀가 진정으로 분했던 것은 우 옆에 있는 송 귀비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저 멍청한 계집에게 가장 화가 났다. 대놓고 저를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모르고, 왜 다들 가마를 타고 있는지도 모르는, 아니 진정으로 제가 아프다고 생각하고 있는 저 멍청한 계집이 싫었다.
그러나 황후는 모든 것을 참아 넘기고 있었다. 황제가 용인한 것에 대해서 황후는 어떠한 것도 되묻지 않고, 그대로 인정해 주었다. 송 귀비, 아니 송소화가 귀비가 된 것도, 가마를 타고 다니는 것도 말이다. 결국 황후는 송 귀비의 특혜에 대해선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황제의 뜻이 그러하다면 말이다.
그녀는 송 귀비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해맑은 얼굴에 배알이 뒤틀려 저 자리에서 내팽개쳐 밖으로 쫓아내고 싶었다. 그이는 모를 것이다. 황후가 얼마나 그를 감싸 안아 주고 있는지, 황후의 품 안에 자신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을 게 분명한 저 멍청한 계집에게 그녀는 분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폐하의 성심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폐하를 편안히 모시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것을 항상 염두에 두세요.”
우가 조용히 말했다. 그러나 그 조용한 목소리에는 무시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비빈들이 고개를 조아렸다. 아마 다음 문안 인사부터는 다들 멀쩡히 두 다리로 걸어올 것이 분명했다. 송 귀비를 제외한 모두가.
* * *
조용히 찻잔을 들었다. 교태전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않고 이 침묵을 유지했다. 오전 비빈들의 문안 인사를 받은 후에 우는 그저 창밖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고 있었다. 한참 열어 놓은 창문으로 인해 이미 처소 안 공기가 싸늘해져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우의 시간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처소의 궁녀들은 그네들의 주인이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이런 시간이야말로 주인이 마음을 풀어 놓고 있는, 하루 중 몇 안 되는 시간이었다.
“박 상궁, 폐하를 뵈어야겠네.”
우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박 상궁은 교태전을 나서 황제의 처소로 향했다. 그런 와중에도 우는 그대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꽃 하나 피지 않은 메마른 정원이 자꾸만 시선을 빼앗았다. 분명 여름 동안은 화사했을 정원이었다. 여름의 화려하고 생명력 넘치는 모습은 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고, 우는 그것에서 눈을 떼기가 힘들었다.
그녀에게도 좋은 시절이 있었다. 좋은 집안과 좋은 부모, 그리고 좋은 형제가 있었고,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다. 모든 일에 빈틈없는 이 재상은 그 딸에게만큼은 다정다감한 아비였고, 그 내자는 워낙 성품이 여리고 선했다. 그 아들은 어떠한가. 손아래 누이를 따돌리고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바쁠 텐데 그는 늘 제 누이를 보살피며 함께 있으려 노력했다. 모든 이가 꽃과 같이 어여쁘다 하였고, 넘어질세라 발이 땅에 닿지도 않게 항상 품 안에 안고, 가마를 태웠다. 그때의 우는 자주 웃었더랬다.
“마마, 폐하께옵서는 국사로 시간을 낼 수 없으니 후에 다시 연통하겠다 하셨습니다.”
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 상궁이 어찌할 줄 몰라 하며 허리를 굽혔다. 보통의 주인이라면 아마 제가 못난 탓이라며 매질을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나 제 주인이 그런 소인배가 아닌 것은 알고 있었다. 다만 소임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것이 송구스러워 박 상궁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러신가? 나랏일로 바쁘신 분이니 내 직접 찾아뵈어야겠네. 설마 얼굴도 보지 않으시고 나를 내치시겠는가.”
매무새를 단정히 한 우가 처소를 나섰다. 그런 와중에도 박 상궁과 궁녀들은 초조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허하지 않은 방문을 황제가 기꺼워하지 않을 것이 빤하기 때문이었다. 방문하는 이가 송 귀비라면 모를까.
“고해 주시게.”
황제의 집무실 앞에서 우가 양심전 상궁에게 말했다. 양심전 상궁이 난처한 얼굴을 숨기지 못했다. 이미 박 상궁이 다녀간 것을 직접 보지 않았던가. 황제의 거절에도 직접 찾아온 황후의 방문이 거절당할 것은 빤한 일이었고 그것은 저에게도 편치 않은 일이었다. 양심전 상궁은 숨을 한 번 들이쉬고는 크게 아뢰었다.
“폐하, 황후마마 드셨사옵니다.”
그러나 안에서 아무런 답이 없었다. 양심전 상궁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당황스러운 것이다.
“다시 한 번 고해 주시겠는가?”
“폐하, 황후마마 드셨사옵니다.”
더 큰 목소리로 외쳤으나 황제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이때, 우가 움직였다.
“폐하, 들겠습니다.”
그러고는 직접 문을 열었다. 예에 어긋나는 행동임에도 그 몸짓이 워낙 자연스럽고 우아해 모두들 넋을 놓고 있었다. 우가 처소로 들어서자 양심전 상궁이 화들짝 놀라며 다시 문을 닫았다.
혜비가 분에 못 이겨 말을 이었다. 꺼내지 않아도 좋을 말이었으나 성이 나 참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속내가 너무 빤히 드러나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 사람을 그리 생각해 주다니 고맙습니다. 허나 괜한 걱정일 뿐입니다. 송 귀비는 예를 아는 사람이라 나를 만나면 가마를 멈추고 내릴 것이고 내가 지나가면 다시 가마에 오를 것입니다. 내 이미 그리 언질을 해 두었습니다. 그저 아직 이곳의 풍습에 익숙하지 않을 뿐입니다. 게다가 황제폐하께서 하사하신 것을 그냥 두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지요.”
우는 해사하게 미소 지었다. 그 꽃 같은 미소에 혜비는 쓰게 웃었다. 혜비는 매번 우에게 졌다. 하지만 그것은 분하지 않았다. 그녀가 진정으로 분했던 것은 우 옆에 있는 송 귀비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저 멍청한 계집에게 가장 화가 났다. 대놓고 저를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모르고, 왜 다들 가마를 타고 있는지도 모르는, 아니 진정으로 제가 아프다고 생각하고 있는 저 멍청한 계집이 싫었다.
그러나 황후는 모든 것을 참아 넘기고 있었다. 황제가 용인한 것에 대해서 황후는 어떠한 것도 되묻지 않고, 그대로 인정해 주었다. 송 귀비, 아니 송소화가 귀비가 된 것도, 가마를 타고 다니는 것도 말이다. 결국 황후는 송 귀비의 특혜에 대해선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황제의 뜻이 그러하다면 말이다.
그녀는 송 귀비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해맑은 얼굴에 배알이 뒤틀려 저 자리에서 내팽개쳐 밖으로 쫓아내고 싶었다. 그이는 모를 것이다. 황후가 얼마나 그를 감싸 안아 주고 있는지, 황후의 품 안에 자신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을 게 분명한 저 멍청한 계집에게 그녀는 분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폐하의 성심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폐하를 편안히 모시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것을 항상 염두에 두세요.”
우가 조용히 말했다. 그러나 그 조용한 목소리에는 무시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비빈들이 고개를 조아렸다. 아마 다음 문안 인사부터는 다들 멀쩡히 두 다리로 걸어올 것이 분명했다. 송 귀비를 제외한 모두가.
* * *
조용히 찻잔을 들었다. 교태전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않고 이 침묵을 유지했다. 오전 비빈들의 문안 인사를 받은 후에 우는 그저 창밖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고 있었다. 한참 열어 놓은 창문으로 인해 이미 처소 안 공기가 싸늘해져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우의 시간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처소의 궁녀들은 그네들의 주인이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이런 시간이야말로 주인이 마음을 풀어 놓고 있는, 하루 중 몇 안 되는 시간이었다.
“박 상궁, 폐하를 뵈어야겠네.”
우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박 상궁은 교태전을 나서 황제의 처소로 향했다. 그런 와중에도 우는 그대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꽃 하나 피지 않은 메마른 정원이 자꾸만 시선을 빼앗았다. 분명 여름 동안은 화사했을 정원이었다. 여름의 화려하고 생명력 넘치는 모습은 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고, 우는 그것에서 눈을 떼기가 힘들었다.
그녀에게도 좋은 시절이 있었다. 좋은 집안과 좋은 부모, 그리고 좋은 형제가 있었고,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다. 모든 일에 빈틈없는 이 재상은 그 딸에게만큼은 다정다감한 아비였고, 그 내자는 워낙 성품이 여리고 선했다. 그 아들은 어떠한가. 손아래 누이를 따돌리고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바쁠 텐데 그는 늘 제 누이를 보살피며 함께 있으려 노력했다. 모든 이가 꽃과 같이 어여쁘다 하였고, 넘어질세라 발이 땅에 닿지도 않게 항상 품 안에 안고, 가마를 태웠다. 그때의 우는 자주 웃었더랬다.
“마마, 폐하께옵서는 국사로 시간을 낼 수 없으니 후에 다시 연통하겠다 하셨습니다.”
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 상궁이 어찌할 줄 몰라 하며 허리를 굽혔다. 보통의 주인이라면 아마 제가 못난 탓이라며 매질을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나 제 주인이 그런 소인배가 아닌 것은 알고 있었다. 다만 소임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것이 송구스러워 박 상궁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러신가? 나랏일로 바쁘신 분이니 내 직접 찾아뵈어야겠네. 설마 얼굴도 보지 않으시고 나를 내치시겠는가.”
매무새를 단정히 한 우가 처소를 나섰다. 그런 와중에도 박 상궁과 궁녀들은 초조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허하지 않은 방문을 황제가 기꺼워하지 않을 것이 빤하기 때문이었다. 방문하는 이가 송 귀비라면 모를까.
“고해 주시게.”
황제의 집무실 앞에서 우가 양심전 상궁에게 말했다. 양심전 상궁이 난처한 얼굴을 숨기지 못했다. 이미 박 상궁이 다녀간 것을 직접 보지 않았던가. 황제의 거절에도 직접 찾아온 황후의 방문이 거절당할 것은 빤한 일이었고 그것은 저에게도 편치 않은 일이었다. 양심전 상궁은 숨을 한 번 들이쉬고는 크게 아뢰었다.
“폐하, 황후마마 드셨사옵니다.”
그러나 안에서 아무런 답이 없었다. 양심전 상궁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당황스러운 것이다.
“다시 한 번 고해 주시겠는가?”
“폐하, 황후마마 드셨사옵니다.”
더 큰 목소리로 외쳤으나 황제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이때, 우가 움직였다.
“폐하, 들겠습니다.”
그러고는 직접 문을 열었다. 예에 어긋나는 행동임에도 그 몸짓이 워낙 자연스럽고 우아해 모두들 넋을 놓고 있었다. 우가 처소로 들어서자 양심전 상궁이 화들짝 놀라며 다시 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