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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내 귀비에게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네. 하나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겠나, 아니면 모두를 위해 하나를 버리겠나?”
송 귀비가 갑작스러운 우의 질문에 당황하여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하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순진하고 어려, 우는 속이 뒤틀리는 듯하였다. 반짝반짝 빛나는 그 순수함이 저를 더 나락으로 몰아가는 거 같아 화가 나는 듯도 하였다. 그저 확인하고 싶었다. 귀비의 마음을. 모질게 버려진 제 마음보다 무엇이 더 특별하고 귀한 것인가 확인하고 싶었다.
송 귀비는 쉽사리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이해조차 할 수 없었으며, 어찌 대답하여야 옳은 것인지 알 수도 없었다. 그저 이 상황을 무사히 넘기고만 싶었다. 그에게 황후는 버거운 상대였다.
“다른 것을 물어보겠네. 폐하를 사랑하는가?”
“예. 사랑합니다. 한 치의 거짓된 마음 없이 사랑합니다.”
당당히 말하는 그 모습에 배알이 뒤틀렸다. 그렇구나. 그와 눈앞에 있는 이가 서로 사랑을 하고 있구나. 자신은 그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구나. 우는 또다시 깨닫고 상처받았다. 버려진 제 마음이 아파 우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러나 다시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와 송 귀비는 그 아픈 얼굴을 보지 못하였다. 송 귀비가 본 것은 그저 평소와 같이 무표정한 우의 얼굴이었다.
“그럼 내 다시 쉽게 물어보겠네. 이 나라 모든 이의 목숨인가, 아니면 그 사랑하는 폐하의 목숨인가? 어찌하시겠나? 수십, 수백만의 목숨인가, 단 하나의 목숨인가? 선택해 보시게.”
“아……. 소첩은.”
한참을 송 귀비는 말을 잇지 못하였다. 우는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어느 하나 버리질 못하는군. 과연 귀비답네. 모두가 귀한 생명이며 존귀한 것을 어찌 선택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은가, 귀비.”
“마마, 어찌하여 그런 무서운 이야기를 하십니까? 혹여 소첩이 마마의 기분을 언짢게 하였는지요?”
송 귀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겁이 나는 듯 조금씩 떨리는 목소리가 애달프고 여려 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저와는 단 한 곳도 같은 것이 없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가 택한 이는.
“그대가 언짢지 않다면 거짓이지. 나는 그대의 존재 자체가 언짢은 사람이라네. 폐하께서 귀비를 애지중지하는 것을 내가 기쁘게 여기리라 생각했는가? 그거야말로 어리석은 생각일세. 자, 그나저나 내 질문에 아직 답하지 아니하였네.”
우의 말에 귀비가 놀라 당황하였다. 이제껏 황후는 제게 이런 적대감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가 보아 온 황후는 항상 이성적이고 차분한 사람이었다. 분노를 보인 적도 없었다. 항상 한 걸음 뒤에서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듯하였다. 제가 무엇을 잘못했나 싶어 걱정되었지만 귀비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대답하였다.
“저는 어느 것도 선택하지 못하겠습니다, 마마. 모두가 소중한 목숨 아닙니까.”
“그런가? 귀비께서는 참으로 고운 마음씨를 가졌다더니 그게 다 참말이었군, 그래. 허나 나는 다르네, 나는 모두를 죽일 걸세. 단 하나를 위해 모두를 버릴 걸세. 단 하나인 이가 원한다면 전쟁이라도 일으킬 것이고, 살인이라도 하겠지. 내가 귀비를 그냥 놓아두는 것도 그 때문이지. 폐하께서 그대를 원하기 때문이야. 그 한 가지 이유가 귀비, 그대를 참는 이유일세. 우습지 않은가? 어찌 그대인가?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나를 두고 폐하를 위해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는 그대라니…….”
그제야 송 귀비는 우를 조금은 알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에게 우는 항상 먼 사람이었다. 속을 알 수 없는 어려운 사람. 꽃같이 고운 모습에, 우아하기 그지없는 그 행동거지가 마치 서책이나 그림 속에서나 보던 여인 같다고 생각했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너그러운, 이상적인 사람이라 여겼는데 아니었다. 제 착각이었다. 평온한 모습 속 격정적인 애정이 들어 있음을 알았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 아니었다. 단 한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버리는 것에는 자기 마음마저 포함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대단한 애정이 놀랍고, 한편으로 안타까웠다. 허나 그이가 바라는 애정이 저에게 있음에 안심하고 있는 자신이 무서웠다.
“……가 보게.”
송 귀비가 떠난 자리에 홀로 남은 우는 분한 마음에 주먹을 쥐었다. 화가 났다. 저와 이리 다를 수 있는가 싶었다. 꼿꼿이 앉은 우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소리도 내지 않고 눈물도 닦지 않았다. 꽉 쥔 주먹과 질끈 감은 두 눈이 파르르 떨려 왔다.
지켜보는 박 상궁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안절부절못하였다. 그네 주인은 너무 지쳐 있었다. 귀비를 불러올 적만 하여도 신이 났더랬다. 드디어 그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겠구나 하였는데 나가떨어진 것은 제 주인이었다.
“마마, 괜찮으셔요? 황후마마께서 어인 일로 부르셨답니까? 가마는 왜 아니 타고 가시어요?”
어린 궁녀가 걱정을 가득 담은 얼굴로 소화에게 물었다. 송 귀비는 가마를 타지 않고 걸어가고 있었다. 귀비가 타지 않은 가마를 든 가마꾼들과 상궁, 궁녀 하나가 귀비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가마는 이제 타지 않는 게 좋겠어. 궁 안이 내 가마로 어수선한 거 같아.”
그 말에 상궁이 움찔하였다. 조심스레 귀비를 부르며 황제의 명이 있었다 하였다. 또 저만 몰랐다. 황제는 저를 사랑한다는 미명하에 제 눈을 가리고, 제 귀를 막았다. 어째서인가. 제 마음을 모두 보여 주었건만 저를 믿지 못해서 그러는 것인지. 제 이목을 가리는 그 이유조차 알 수 없었다. 귀비에게서 한숨이 나오자 따르던 궁녀들이 움찔하였다. 송 귀비가 그런 연유로 큰소리를 낼 위인이 아님을 알지만 주인을 속인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내가 귀비이긴 해? 왜 나만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자조 섞인 목소리에 상궁이 화들짝 놀라 어찌 그러시냐며 그이를 다독였다. 송소화, 송 귀비는 확실히 그 지위에는 걸맞지 않은 사람이었다. 수많은 비빈들을 거느린 황제의 짝으로 어울리지 않으나, 그 황제의 마음을 사로잡은 고운 사람이었다. 그러니 어찌하랴, 그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감내해야만 했다.
* * *
“마마.”
“아무 말 말게.”
우의 처소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그 누구도 쉽게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견디다 못한 박 상궁이 우를 불렀으나 결국 그도 어쩔 수 없었다. 그도 결국 우가 만들어 낸 이 침묵을 깰 사람은 못 되었던 것이다. 박 상궁은 소왕야 생각이 간절하였다. 이럴 때야말로 그가 필요한 순간이 아니던가. 이런 침묵을 깰 수 있는 이는 소왕야와 황제, 그 둘뿐이었고 황제야 그럴 리 없으니 절로 소왕야가 떠오르는 것이다. 그러나 유랑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아마 내년 이맘때가 되어야 그 웃음 많은 얼굴을 볼 수 있을 터였다.
그때였다. 어린 궁녀 하나가 양심전 상궁이 찾아왔다고 고한 것은. 양심전 상궁은 황제가 우를 찾는다고 전했다. 이유는 이미 모두가 알고 있었다.
우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처소를 나섰다. 아까의 분노와 슬픔은 어디 갔는지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온 우를 보고 박 상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마음 한 자락 보여 줄 만도 하건만 어찌 저러시나. 분노든 슬픔이든 보여 그 애정을 조금이라도 더 보여 주시지 않고.
* * *
“황제폐하, 황후마마 드셨사옵니다.”
“들라 하라.”
우가 양심전에 들어서자 보인 것은 잔뜩 화가 난 황제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우의 발치에 찻잔이 던져졌다. 쨍그랑. 날카롭게 깨지는 그 소리가 우의 마음을 할퀴었다. 멈추어 섰던 우는 깨진 조각들을 피해 황제의 앞으로 나아가 인사를 올렸다.
황제가 손짓으로 앉으라고 명했다. 그 귀찮은 듯해 보이는 손짓, 눈길, 모두가 우를 밀어내 조금의 곁도 주지 않고 있었다.
“내가 우스운 게요?”
“그럴…….”
쾅. 황제가 제 분을 이기지 못하고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친 바람에 찻잔이 쓰러졌다. 엉망이 된 책상은 신경도 쓰지 않고 저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황제를 우가 바라보았다. 누구를 위해 준비된 것인지 알 수 없는 다과상은 황제로 인해 엉망이 되어 버렸다.
“그럴 리가요, 폐하가 아니십니까.”
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지, 내가 황제요! 귀비에게 가마를 타지 말라 명하였다고? 내가 허락했던가? 말해 보시오. 내가 그것을 허하였소?”
분노를 꽉꽉 눌러 담은 그 목소리가 우를 위협했다. 울고 싶었다, 우는. 왜 자신이 아닌지, 애타는 이 마음은 어찌할 수도 없이 커져 있건만 왜 그는 자신이 아닌지. 우는 그냥 목 놓아 울고 싶었다. 그러나 우의 입을 열고 나온 것은 울음이 아니라 사죄의 말이었다.
“제가 귀비의 가마로 폐하를 뵌 지 벌써 보름이 넘었습니다. 허하셨다 생각했습니다. 용서하세요.”
차분히 용서를 구하는 우의 태도는 오히려 황제의 화를 돋우었다. 그는 마치 소리치는 듯 말하였다.
“다시는, 다시는 귀비를 따로 보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그이에게 어떤 말도 하지 마시오. 내 다음번엔 그냥 넘기지 않겠소.”
황제, 희윤의 모든 것이 송 귀비의 것이었다. 그의 말, 생각, 애정, 행동. 그 모든 것에 송 귀비가 있었다. 우가 고개를 조아렸다. 고개를 숙이자 엉망이 된 치마가 보였다. 찻물로 얼룩진 치마가 마치 눈물에 젖은 듯하였다.
“폐하, 한 가지…… 단 한 가지 여쭈어 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우의 엉망인 행색을 그제야 알아차린 희윤은 내심 놀라 그 물음을 허했다. 본인의 행동을 자각한 것이다. 송 귀비의 일로 이성을 잃은 채 제가 벌인 일이 한심스러워 조금이나마 죄책감이 일었다.
“무엇이오?”
방금 전과는 달리 조금은 분노가 수그러든 목소리였다.
“귀비가 함께 죽어 달라 청한다면 어찌하실 겁니까?”
순간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으나 황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행색이 엉망인 황후를 보며 다시 화를 낼 마음이 일지 않았다. 다만 그런 물음을 하면서도 평온히 있는 황후가 그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찌 제 앞에서 그따위 물음을 하는지 이해할 수도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순한 그이가 그럴 리가. 설사 그렇다 하여도 가장 기꺼운 죽음이 아니겠는가? 사랑하는 이와 함께한다는 것은.”
우의 눈동자에 스스로의 죽음을 논하면서도 미소를 띠고 있는 황제의 얼굴이 담겼다. 사랑에 빠진 사내의 얼굴을 하고 있는 그이의 모습에 우는 치밀어 오르는 눈물을 참으며, 서둘러 인사를 올렸다. 더 이상 그곳에 서 있을 자신도, 그 얼굴을 보고 있을 자신도 없었다. 그렇게 우는 내쫓기듯 황제의 처소를 나섰다.
박 상궁이 처소 밖에서 기다리다 우를 보고 반가운 기색을 하였다. 걱정이 된 탓이었다. 황제가 부른 이유야 빤하니 우에게 날벼락이라도 떨어질라 발을 동동거리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그 얼굴이 반가울 수밖에.
다행히 평온한 우의 모습을 보고 큰일은 없었구나 하며 뒤를 따르는데 어린 궁녀가 박 상궁을 조심스럽게 부르더니 바닥을 가리켰다. 우가 걷는 자리마다 붉은 자국들이 남아 있었다.
“아이고, 마마. 마마.”
박 상궁이 깜짝 놀라 우를 붙들자 우가 휘청거렸다. 서둘러 가마를 부르고 우를 부축하고선 입술을 깨물었다. 그제야 엉망으로 얼룩진 우의 치마가 보였다. 황후마마 아니신가. 이 나라 국모 아니신가. 어찌 이리 대접하시나.
황제의 무도한 행동에 화가 났으며, 우를 보고는 슬퍼졌다. 이런 수모를 당하고도 저 평온한 얼굴을 하시고 계셨나. 황후 아니던가, 기나라에서 가장 귀한 여인이 아니던가. 어찌하여 이런 꼴을 당하시나. 억울한 마음이 일었다. 송 귀비에게 가마를 타지 말라 명한 것이 무엇이라고. 그러나 박 상궁은 알고 있었다. 결국 모든 것이 황제의 뜻대로 된다는 것을.
“그냥 가지. 어서 돌아가 쉬고 싶네.”
“못 가십니다. 이런 발로 어찌 걸어가십니까!”
박 상궁이 결국 참지 못해 큰 소리를 내었다. 우가 그런 박 상궁의 손을 꼭 잡았다. 그 손의 떨림과 차가움에 그이는 당황해 ‘마마…….’ 하였다.
“박 상궁, 내 더 이상 이곳에 있고 싶지 않네.”
평온을 가장한 그 애절한 말에 결국 박 상궁이 울상을 지었다. 가까이 모시는 주인이 이리될 동안 저는 뭘 하고 있었는지 자책감이 일었다. 박 상궁이 결심한 듯 잡고 있던 우의 팔을 놓고 그 앞에 가 쪼그려 앉았다.
“업히세요.”
우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등에 업혔다. 그리고 박 상궁은 황제의 처소에서 멀어지기 위해 서둘러 발을 놀렸다. 궁녀들은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박 상궁은 제 어깨가 젖어 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무어라 위로의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조금이라도 더 빨리 우의 처소로 돌아가기 위해 서둘렀다. 참으로 잔인한 날이었다.
“내 귀비에게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네. 하나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겠나, 아니면 모두를 위해 하나를 버리겠나?”
송 귀비가 갑작스러운 우의 질문에 당황하여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하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순진하고 어려, 우는 속이 뒤틀리는 듯하였다. 반짝반짝 빛나는 그 순수함이 저를 더 나락으로 몰아가는 거 같아 화가 나는 듯도 하였다. 그저 확인하고 싶었다. 귀비의 마음을. 모질게 버려진 제 마음보다 무엇이 더 특별하고 귀한 것인가 확인하고 싶었다.
송 귀비는 쉽사리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이해조차 할 수 없었으며, 어찌 대답하여야 옳은 것인지 알 수도 없었다. 그저 이 상황을 무사히 넘기고만 싶었다. 그에게 황후는 버거운 상대였다.
“다른 것을 물어보겠네. 폐하를 사랑하는가?”
“예. 사랑합니다. 한 치의 거짓된 마음 없이 사랑합니다.”
당당히 말하는 그 모습에 배알이 뒤틀렸다. 그렇구나. 그와 눈앞에 있는 이가 서로 사랑을 하고 있구나. 자신은 그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구나. 우는 또다시 깨닫고 상처받았다. 버려진 제 마음이 아파 우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러나 다시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와 송 귀비는 그 아픈 얼굴을 보지 못하였다. 송 귀비가 본 것은 그저 평소와 같이 무표정한 우의 얼굴이었다.
“그럼 내 다시 쉽게 물어보겠네. 이 나라 모든 이의 목숨인가, 아니면 그 사랑하는 폐하의 목숨인가? 어찌하시겠나? 수십, 수백만의 목숨인가, 단 하나의 목숨인가? 선택해 보시게.”
“아……. 소첩은.”
한참을 송 귀비는 말을 잇지 못하였다. 우는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어느 하나 버리질 못하는군. 과연 귀비답네. 모두가 귀한 생명이며 존귀한 것을 어찌 선택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은가, 귀비.”
“마마, 어찌하여 그런 무서운 이야기를 하십니까? 혹여 소첩이 마마의 기분을 언짢게 하였는지요?”
송 귀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겁이 나는 듯 조금씩 떨리는 목소리가 애달프고 여려 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저와는 단 한 곳도 같은 것이 없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가 택한 이는.
“그대가 언짢지 않다면 거짓이지. 나는 그대의 존재 자체가 언짢은 사람이라네. 폐하께서 귀비를 애지중지하는 것을 내가 기쁘게 여기리라 생각했는가? 그거야말로 어리석은 생각일세. 자, 그나저나 내 질문에 아직 답하지 아니하였네.”
우의 말에 귀비가 놀라 당황하였다. 이제껏 황후는 제게 이런 적대감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가 보아 온 황후는 항상 이성적이고 차분한 사람이었다. 분노를 보인 적도 없었다. 항상 한 걸음 뒤에서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듯하였다. 제가 무엇을 잘못했나 싶어 걱정되었지만 귀비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대답하였다.
“저는 어느 것도 선택하지 못하겠습니다, 마마. 모두가 소중한 목숨 아닙니까.”
“그런가? 귀비께서는 참으로 고운 마음씨를 가졌다더니 그게 다 참말이었군, 그래. 허나 나는 다르네, 나는 모두를 죽일 걸세. 단 하나를 위해 모두를 버릴 걸세. 단 하나인 이가 원한다면 전쟁이라도 일으킬 것이고, 살인이라도 하겠지. 내가 귀비를 그냥 놓아두는 것도 그 때문이지. 폐하께서 그대를 원하기 때문이야. 그 한 가지 이유가 귀비, 그대를 참는 이유일세. 우습지 않은가? 어찌 그대인가?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나를 두고 폐하를 위해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는 그대라니…….”
그제야 송 귀비는 우를 조금은 알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에게 우는 항상 먼 사람이었다. 속을 알 수 없는 어려운 사람. 꽃같이 고운 모습에, 우아하기 그지없는 그 행동거지가 마치 서책이나 그림 속에서나 보던 여인 같다고 생각했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너그러운, 이상적인 사람이라 여겼는데 아니었다. 제 착각이었다. 평온한 모습 속 격정적인 애정이 들어 있음을 알았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 아니었다. 단 한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버리는 것에는 자기 마음마저 포함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대단한 애정이 놀랍고, 한편으로 안타까웠다. 허나 그이가 바라는 애정이 저에게 있음에 안심하고 있는 자신이 무서웠다.
“……가 보게.”
송 귀비가 떠난 자리에 홀로 남은 우는 분한 마음에 주먹을 쥐었다. 화가 났다. 저와 이리 다를 수 있는가 싶었다. 꼿꼿이 앉은 우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소리도 내지 않고 눈물도 닦지 않았다. 꽉 쥔 주먹과 질끈 감은 두 눈이 파르르 떨려 왔다.
지켜보는 박 상궁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안절부절못하였다. 그네 주인은 너무 지쳐 있었다. 귀비를 불러올 적만 하여도 신이 났더랬다. 드디어 그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겠구나 하였는데 나가떨어진 것은 제 주인이었다.
“마마, 괜찮으셔요? 황후마마께서 어인 일로 부르셨답니까? 가마는 왜 아니 타고 가시어요?”
어린 궁녀가 걱정을 가득 담은 얼굴로 소화에게 물었다. 송 귀비는 가마를 타지 않고 걸어가고 있었다. 귀비가 타지 않은 가마를 든 가마꾼들과 상궁, 궁녀 하나가 귀비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가마는 이제 타지 않는 게 좋겠어. 궁 안이 내 가마로 어수선한 거 같아.”
그 말에 상궁이 움찔하였다. 조심스레 귀비를 부르며 황제의 명이 있었다 하였다. 또 저만 몰랐다. 황제는 저를 사랑한다는 미명하에 제 눈을 가리고, 제 귀를 막았다. 어째서인가. 제 마음을 모두 보여 주었건만 저를 믿지 못해서 그러는 것인지. 제 이목을 가리는 그 이유조차 알 수 없었다. 귀비에게서 한숨이 나오자 따르던 궁녀들이 움찔하였다. 송 귀비가 그런 연유로 큰소리를 낼 위인이 아님을 알지만 주인을 속인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내가 귀비이긴 해? 왜 나만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자조 섞인 목소리에 상궁이 화들짝 놀라 어찌 그러시냐며 그이를 다독였다. 송소화, 송 귀비는 확실히 그 지위에는 걸맞지 않은 사람이었다. 수많은 비빈들을 거느린 황제의 짝으로 어울리지 않으나, 그 황제의 마음을 사로잡은 고운 사람이었다. 그러니 어찌하랴, 그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감내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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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
“아무 말 말게.”
우의 처소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그 누구도 쉽게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견디다 못한 박 상궁이 우를 불렀으나 결국 그도 어쩔 수 없었다. 그도 결국 우가 만들어 낸 이 침묵을 깰 사람은 못 되었던 것이다. 박 상궁은 소왕야 생각이 간절하였다. 이럴 때야말로 그가 필요한 순간이 아니던가. 이런 침묵을 깰 수 있는 이는 소왕야와 황제, 그 둘뿐이었고 황제야 그럴 리 없으니 절로 소왕야가 떠오르는 것이다. 그러나 유랑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아마 내년 이맘때가 되어야 그 웃음 많은 얼굴을 볼 수 있을 터였다.
그때였다. 어린 궁녀 하나가 양심전 상궁이 찾아왔다고 고한 것은. 양심전 상궁은 황제가 우를 찾는다고 전했다. 이유는 이미 모두가 알고 있었다.
우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처소를 나섰다. 아까의 분노와 슬픔은 어디 갔는지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온 우를 보고 박 상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마음 한 자락 보여 줄 만도 하건만 어찌 저러시나. 분노든 슬픔이든 보여 그 애정을 조금이라도 더 보여 주시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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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폐하, 황후마마 드셨사옵니다.”
“들라 하라.”
우가 양심전에 들어서자 보인 것은 잔뜩 화가 난 황제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우의 발치에 찻잔이 던져졌다. 쨍그랑. 날카롭게 깨지는 그 소리가 우의 마음을 할퀴었다. 멈추어 섰던 우는 깨진 조각들을 피해 황제의 앞으로 나아가 인사를 올렸다.
황제가 손짓으로 앉으라고 명했다. 그 귀찮은 듯해 보이는 손짓, 눈길, 모두가 우를 밀어내 조금의 곁도 주지 않고 있었다.
“내가 우스운 게요?”
“그럴…….”
쾅. 황제가 제 분을 이기지 못하고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친 바람에 찻잔이 쓰러졌다. 엉망이 된 책상은 신경도 쓰지 않고 저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황제를 우가 바라보았다. 누구를 위해 준비된 것인지 알 수 없는 다과상은 황제로 인해 엉망이 되어 버렸다.
“그럴 리가요, 폐하가 아니십니까.”
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지, 내가 황제요! 귀비에게 가마를 타지 말라 명하였다고? 내가 허락했던가? 말해 보시오. 내가 그것을 허하였소?”
분노를 꽉꽉 눌러 담은 그 목소리가 우를 위협했다. 울고 싶었다, 우는. 왜 자신이 아닌지, 애타는 이 마음은 어찌할 수도 없이 커져 있건만 왜 그는 자신이 아닌지. 우는 그냥 목 놓아 울고 싶었다. 그러나 우의 입을 열고 나온 것은 울음이 아니라 사죄의 말이었다.
“제가 귀비의 가마로 폐하를 뵌 지 벌써 보름이 넘었습니다. 허하셨다 생각했습니다. 용서하세요.”
차분히 용서를 구하는 우의 태도는 오히려 황제의 화를 돋우었다. 그는 마치 소리치는 듯 말하였다.
“다시는, 다시는 귀비를 따로 보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그이에게 어떤 말도 하지 마시오. 내 다음번엔 그냥 넘기지 않겠소.”
황제, 희윤의 모든 것이 송 귀비의 것이었다. 그의 말, 생각, 애정, 행동. 그 모든 것에 송 귀비가 있었다. 우가 고개를 조아렸다. 고개를 숙이자 엉망이 된 치마가 보였다. 찻물로 얼룩진 치마가 마치 눈물에 젖은 듯하였다.
“폐하, 한 가지…… 단 한 가지 여쭈어 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우의 엉망인 행색을 그제야 알아차린 희윤은 내심 놀라 그 물음을 허했다. 본인의 행동을 자각한 것이다. 송 귀비의 일로 이성을 잃은 채 제가 벌인 일이 한심스러워 조금이나마 죄책감이 일었다.
“무엇이오?”
방금 전과는 달리 조금은 분노가 수그러든 목소리였다.
“귀비가 함께 죽어 달라 청한다면 어찌하실 겁니까?”
순간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으나 황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행색이 엉망인 황후를 보며 다시 화를 낼 마음이 일지 않았다. 다만 그런 물음을 하면서도 평온히 있는 황후가 그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찌 제 앞에서 그따위 물음을 하는지 이해할 수도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순한 그이가 그럴 리가. 설사 그렇다 하여도 가장 기꺼운 죽음이 아니겠는가? 사랑하는 이와 함께한다는 것은.”
우의 눈동자에 스스로의 죽음을 논하면서도 미소를 띠고 있는 황제의 얼굴이 담겼다. 사랑에 빠진 사내의 얼굴을 하고 있는 그이의 모습에 우는 치밀어 오르는 눈물을 참으며, 서둘러 인사를 올렸다. 더 이상 그곳에 서 있을 자신도, 그 얼굴을 보고 있을 자신도 없었다. 그렇게 우는 내쫓기듯 황제의 처소를 나섰다.
박 상궁이 처소 밖에서 기다리다 우를 보고 반가운 기색을 하였다. 걱정이 된 탓이었다. 황제가 부른 이유야 빤하니 우에게 날벼락이라도 떨어질라 발을 동동거리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그 얼굴이 반가울 수밖에.
다행히 평온한 우의 모습을 보고 큰일은 없었구나 하며 뒤를 따르는데 어린 궁녀가 박 상궁을 조심스럽게 부르더니 바닥을 가리켰다. 우가 걷는 자리마다 붉은 자국들이 남아 있었다.
“아이고, 마마. 마마.”
박 상궁이 깜짝 놀라 우를 붙들자 우가 휘청거렸다. 서둘러 가마를 부르고 우를 부축하고선 입술을 깨물었다. 그제야 엉망으로 얼룩진 우의 치마가 보였다. 황후마마 아니신가. 이 나라 국모 아니신가. 어찌 이리 대접하시나.
황제의 무도한 행동에 화가 났으며, 우를 보고는 슬퍼졌다. 이런 수모를 당하고도 저 평온한 얼굴을 하시고 계셨나. 황후 아니던가, 기나라에서 가장 귀한 여인이 아니던가. 어찌하여 이런 꼴을 당하시나. 억울한 마음이 일었다. 송 귀비에게 가마를 타지 말라 명한 것이 무엇이라고. 그러나 박 상궁은 알고 있었다. 결국 모든 것이 황제의 뜻대로 된다는 것을.
“그냥 가지. 어서 돌아가 쉬고 싶네.”
“못 가십니다. 이런 발로 어찌 걸어가십니까!”
박 상궁이 결국 참지 못해 큰 소리를 내었다. 우가 그런 박 상궁의 손을 꼭 잡았다. 그 손의 떨림과 차가움에 그이는 당황해 ‘마마…….’ 하였다.
“박 상궁, 내 더 이상 이곳에 있고 싶지 않네.”
평온을 가장한 그 애절한 말에 결국 박 상궁이 울상을 지었다. 가까이 모시는 주인이 이리될 동안 저는 뭘 하고 있었는지 자책감이 일었다. 박 상궁이 결심한 듯 잡고 있던 우의 팔을 놓고 그 앞에 가 쪼그려 앉았다.
“업히세요.”
우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등에 업혔다. 그리고 박 상궁은 황제의 처소에서 멀어지기 위해 서둘러 발을 놀렸다. 궁녀들은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박 상궁은 제 어깨가 젖어 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무어라 위로의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조금이라도 더 빨리 우의 처소로 돌아가기 위해 서둘렀다. 참으로 잔인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