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6화
정아는 벌떡 일어나 닭을 토막 내기 시작했다. 목이나 다리를 잘라 내는 일과는 달리 토막 일을 할 때면 살점과 선지가 얼굴로 튄다. 정아는 개의치 않으며 서둘렀다. 저녁에는 최 씨의 부인이 입원한 병원에 갈 터였다.
“도대체 정아 씨 정체는…….”
재웅이 뇌까리다가 스스로 말을 삼켰다.
오후에 어느 정도 일이 끝나가니, 재웅이 먼저 들어간다며 미안한 얼굴을 한다.
“약속이 있어서요.”
많이 피곤해 보인다면서 구 여사는 이미 허락을 한 상태이다.
정아 혼자 남아 마무리를 한 뒤 본채 주방으로 들어갔더니, 구 여사가 푹 삶은 닭을 솥에 담아 보자기에 싸 준다.
“최 씨한테 간다지? 가져가라.”
“홀 일은?”
“일찍 마칠 테니 그냥 가. 네년 입이 싼 것 같지 않아서 병원 가르쳐 주는 거다. 병원 다녀와서 행여 쓸데없는 소릴랑 하지 마라.”
솥과 함께 궁금증도 받아 들고 나왔다. 많이 아픈 줄 알았던 부인은 교통사고로 다리를 조금 다친 정도일 뿐이란다. 그런데도 종일 병실을 지킨다는 최 씨의 행동거지도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약속을 들먹이며 일찍 퇴근한 재웅은 병원까지 가는 동안 택시의 뒷좌석에서 모로 누웠다. 앉아 있는 것조차 힘겨웠다. 가볍게 먹은 점심은 정아의 눈을 피해 모두 게워 냈다. 어쩔 수 없이 링거 신세를 져야 했다. 여하튼 쓰러지지 않고 버텼다. 해냈다는 성취감과 고갈된 체력의 호소가 뒤엉킨다.
접수대에 비틀거리며 서 있는데, 안면이 있는 간호사 한 명이 재웅을 힐끔 보더니 전화기를 든다. 내과를 향해 허청허청 걷는데, 누군가 뒷덜미를 잡아챈다.
“살아 있어서 반갑다.”
병원장인 외삼촌이었다. 끌려간 곳은 특실이다.
“아침에 도망갔다지? 네 엄마가 날 죽인대. 맞아 죽지 않으려면 널 살려야겠다.”
아침에 도망간 일로 어머니는 당신의 오빠에게 애꿎은 닦달을 한 성싶다. 내과 전문의인 삼촌이 직접 진찰을 하고는 처방을 내린다.
“무조건 쉬어라. 안 그러면 드릴로 머릴 가르고 메스로 배를 가르는 처치를 내릴 테다.”
링거의 가장 큰 효능은 두세 시간 동안 누워 있어서 생기는 휴식이라고 재웅은 생각한다. 가만히 누워 있자니 문득 정아의 얼굴이 떠오른다.
‘독종.’
중얼거리다가 고개를 흔든다.
‘그냥 지독한 여자 정도?’
다시 고개를 흔든다.
‘묘한 여자.’
어지럼증으로 그녀에게 안겼던 일이 떠오른다. 순간적으로 스쳤던 그녀의 봉긋한 가슴의 촉감, 그리고 맞닿았던 뺨이 마음을 간질간질 건드린다. 허수한 차림새와 털모자 속에 감춰진 그녀의 갸름한 얼굴은 차를 마시면서 이미 확인했다. 하지만 이런 묘한 감정은 들지 않았다. 지극히 짧은 순간의 맞닿음이 예상치 못한 여운으로 발전하고 있다. 소모적인 경쟁과 허영심으로 인생을 낭비하는 여자들을 많이 보면서 자랐다. 그런 여자들만 겪어서인지 딱히 감흥을 느낀 여자는 만나지 못했다. 밴드보다 매력 있는 여자는 지금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자로 인하여 두근거리는 가슴이 자신에도 존재한다는 바를 확인하고 쓴웃음을 짓고 만다.
***
병원은 최 씨가 산다는 동네와도, 또 시장닭집과도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했다. 구 여사의 지인이 소개한 병원이라고 들었다.
최 씨의 아내는 의외로 젊었다. 최 씨보다 예닐곱 살 남짓 어려 보인다. 그녀는 반깁스붕대를 한 발목을 모로 걸치고 앉았다. 머리카락을 뒤로 질끈 묶고는 최 씨가 잘게 찢어 놓은 삶은 닭을 먹기 시작한다. 오동통한 얼굴이 순박한 그녀의 눈빛과 퍽이나 어울린다. 음식을 삼키다 말고 최 씨에게 구화와 손짓으로 의사를 전한다.
“먹기 좋게 적당히 따뜻하대. 고맙대.”
최 씨의 설명에 정아는 듣지 못해서 말도 못 하는 여자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청각장애 2급이다. 조만간 인공 와우 수술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첨단 장비로 만든 인공 달팽이관을 귀에 심는 일이다.
“저 양반이 싫다고 해서 보청기도 안 하고 살았어.”
최 씨가 스스로 입을 연다.
“보청기를 달면 들을 수는 있나요?”
“다급한 소리나, 큰 소리 정도는. 하지만 저 양반은 안 했어. 지독하게 침묵을 사랑하거든.”
“와우 수술은요?”
“아들이 두 살이야. 아들은 엄마와 말을 나누고 싶어 하더라.”
이제야 두 살이라니. 결혼이 늦었나 보다. 특히 최 씨가.
“수술만 잘되면 대화가 가능한 건가요?”
“연습을 많이 해야지. 생소한 기계음의 암호를 풀어내는 일이라니까.”
“잘 될 거예요.”
“저 양반이 고생이지. 끔찍이도 사랑하는 침묵을 포기해야 할 테니 말이다.”
구독술로 얼추 알아차렸는지, 여자가 최 씨를 향해 방긋 웃는다. 괜찮아요, 하고 말하는 성싶다.
“사모님이 참 고우세요.”
정아는 느낌 그대로를 내 흘렸다. 최 씨가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축복받은 여자였지. 신에게 가장 조용한 세상을 선물 받은.”
“그, 그렇군요.”
“참, 수술 날짜 잡으면 닷새쯤 내가 쉴 거야. 사장님 말씀으론 너희들끼리 곧잘 한다던데, 정말 할 수 있겠어?”
“걱정 마세요. 그보다 다리가 빨리 나으셔야 할 텐데요.”
“뼈는 괜찮아서 내일 퇴원해.”
가벼운 상처인데도 최 씨는 이틀 동안 꼬박 아내 곁을 지켰다. 인공 와우 수술 때도 곁을 지킬 터였다.
“사실은 사장님이 닭을 조금만 시키셔서 쉽게 끝냈어요. 수전노 사장님이 의외죠?”
“그분이 외손녀 일이라면 끔찍이 챙기시지.”
“외손녀라면?”
“몰랐구나. 사장님은 저 양반 외할머니쯤 되셔. 보조 주방에서 똥집이나 내장을 손질하는 전통도 아내 때문에 생겼지. 옛날부터 아내보고 거기서 혼자 조용히 일하라고 배려하신 거지.”
그리고 최 씨가 그곳으로 출근을 하면서 인연이 맺어진 것이다.
“아저씨가 하는 말씀 말이에요. 저한텐 죄다 아름다워요. 감미롭고도 인생이 담긴 노래 같아요.”
정아의 깊은 눈길에 최 씨는 짐짓 당혹감을 드러낸다.
“고마워요. 저를 믿어 줘서요. 저한테 속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정아의 진심 어린 말에 최 씨는 고개를 실긋거린다. 딱히 설명할 수 없는 모호한 이유로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정아는 화장실을 간다며 일어났다.
눈물을 훔치며 복도를 걷는데, 눈앞으로 누군가 우뚝 서서 길을 막는다. 고개를 숙인 채 피해 가려고 했다.
“정아 씨!”
환자복을 입은 채 링거 막대를 잡고 서 있던 재웅이 큰 소리로 불렀다. 정아는 소스라쳐 놀랐다. 병원 방문을 비밀로 하라는 구 여사의 매서운 당부가 떠올랐던 탓이다.
재웅은 걷는 데만 지장이 없다면야 당장 병원에서 도망갈 터였다. 컨디션을 점검하고자 링거 막대를 밀고 복도를 터벅터벅 걸었다. 그때 그녀가 눈앞에 나타났다. 반사적으로 피해 가려다가 우뚝 멈추었다. 고개를 숙인 채 다가오는 그녀는 울고 있었다. 천하의 독종인 여자이고 도무지 감정이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여자였기에 재웅은 당황하고 만다.
“정아 씨!”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큰 소리로 불렀다. 번쩍 고개를 든 그녀가 화들짝 놀란다.
“지금 울고 있는 건가요?”
“아, 아녜요.”
재빨리 눈물을 훔치더니 재웅의 환자복을 살핀다.
“어! 재웅 씨, 입원하신 거예요?”
그녀는 얄밉도록 신속하게 차분한 모습을 되찾았다.
“입원은 무슨. 내가 고기를 싫어해서 링거로 영양 보충을 좀 하느라고. 그보다 정아 씬 왜 여기에 있죠?”
“아, 아는 사람 병문안 왔어요.”
“누군데요?”
“그냥 아는 사람이에요.”
“누군지 나도 인사하면 안 될까요? 이래 봬도 내가 이 병원에 백이 좀 있는데.”
“됐어요. 어! 피가 역류하잖아요!”
주사기 호스 초입으로 묽은 피가 역류하는 바를 가리키며 정아가 황급히 튜브를 들어 올렸다.
“왜 이리 낮게 걸어 놓았어요?”
힐책하더니 등을 떠민다.
“빨리 재웅 씨 병실로 가요. 몇 호실이죠?”
“괜찮은데.”
“피가 호스로 나왔잖아요. 빨리 눕지 않으면 위험해요.”
“죽기라도 하나요?”
“그래요. 죽고 싶지 않으면 빨리 가요!”
이 여자는 왜 이리 호들갑을 떨까? 얼결에 병실까지 떠밀려 들어왔다. 침대에 눕자, 정아가 링거 호스의 링을 조절하면서 주입 상태를 확인한다. 익숙한 몸짓이다.
“거짓말에 협박도 할 줄 아시군.”
재웅은 또 다른 그녀의 모습을 발견한 소감을 내 흘렸다.
“여긴 호텔 같군요.”
특실 병동을 둘러보며 엉뚱한 대답을 한다.
“혹시 전염병 그런 거여서 격리된 건 아녜요?”
어라. 이 여자 제법 농담도 한다.
“그저 영양 보충 중이라니까.”
“환자복까지 입으시고요?”
“옷에 묻은 닭 냄새를 여기서 굳이 맡을 건 없잖아요.”
“그럴 수도 있겠군요.”
정아가 링거 팩을 다시금 쳐다보더니 쓸쓸히 웃으며 내려다본다.
“밥도 제대로 못 삼키던 분이 용케도 일을 견디셨네요.”
“감기 후유증이야 건강한 사람에게도 있는 법이죠.”
“아프면 아프다고 드러내세요. 인간은 스스로의 몸을 소중히 보호할 의무가 있거든요. 자신을 위해서, 주변 사람 모두를 위해서.”
“지금 내게…….”
감히 강골에게 훈계한다고 정색을 하려다가 재웅은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쓸쓸한 목소리에 웅숭깊은 슬픔과 간절한 호소가 가득히 출렁거린다. 재웅은 시계를 보았다. 홍대 앞 공연장 관람은 포기해야 할 것 같다. 그녀가 오래 머물렀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키운다. 허약하면 의지하고 싶은 바람이 커진다고 한다. 하지만 그 대상이 성냥팔이 소녀가 될 줄은 몰랐다.
그녀도 시계를 바라본다.
“열은 없어요?”
그녀가 불쑥 묻는다. 이마를 만져 보면 될 텐데, 하고 대꾸할 뻔했다.
“글쎄요. 뜨거운 것 같기도 하고.”
그녀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전자 체온계를 가지고 다니는 여자라니.
“영양사는 체온계도 필요한가?”
“아, 하고 입을 벌려 보세요.”
그녀가 재웅의 입으로 체온계를 밀어 넣으려 한다. 귀찮은 환자를 대하는 간호사의 사무적인 태도 같다.
“왜요? 체온계는 겨드랑이에 꽂는 게 아닌가?”
“항문에 넣으면 더 정확하죠. 그쪽에 넣어요?”
그녀가 태연히 바지춤을 겨냥한다.
“설마.”
“자, 아아!”
거부하면 바지라도 벗길 것 같아서 입을 벌렸다.
“입을 닫고 코로 숨을 쉬세요.”
시키는 대로 했다. 체온계를 꺼내 확인한 그녀가 싱긋 웃는다.
“열은 심각하진 않네요. 다행이네요. 갈게요.”
“아! 정아 씨.”
붙잡을 명분을 찾기 전에 그녀는 가 버렸다. 어안이 벙벙하다. 방금 있었던 모든 일이 비현실적으로 여겨진다. 그녀의 병원 방문 목적도 미처 묻지 못했다. 확 트인 창과 마주한 겨울나무 가지에서 새 한 마리가 포르르 날아간다. 정아 역시 새처럼 날아왔다가 이내 날아간 것 같은 기분이다. 입술을 만졌다. 체온계를 넣을 때 살짝 스쳤던 그녀의 손가락 감촉을 새김질해 본다.
‘정말 집에 간 건가?’
병실을 전부 뒤져 볼 생각을 하는데, 노크 소리에 반색했다. 하지만 정아가 돌아온 것이 아니다. 간호사가 배시시 웃으며 들어온다. 이 병원에서 소문난 미인이다.
“어지럽진 않으세요?”
나긋나긋한 그녀의 태도에 새삼 짜증이 난다.
“됐고요. 하나 물어봅시다. 체온계를 항문에 꽂으면 정말 정확합니까?”
“네? 뭐, 그렇긴 합니다만.”
간호사의 표정이 단박에 구겨진다. 이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재웅을 바라본다.
정아는 길을 가다가 병원을 바라보기만 해도 아프다. 환자복을 입을 사람을 마주치기만 해도 울컥했다. 많이 나아졌다. 처음에는 어머니 때문에 그랬다. 지금은 아버지 때문에 여전히 아프다. 아픈 사람이 떠나면 남아 있는 사람에게 아픔을 물려준다. 몸의 아픔이 마음의 아픔으로 진화해서. 그리고 밉다. 아프면서도 혼자 삼키는 모든 사람이 밉다. 어쩌면 아버지는 아픔을 즐기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영혼의 자해 행위라고 응수하고 싶다.
고단한 몸을 이끌고 영식의 식당인 ‘섬과 섬’을 들렀다.
“왔니?”
영식은 습관적으로 무심히 딸의 몰골을 훑어본다. ‘왜, 집에서 쉬지 않고.’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대신에 턱짓을 한다.
“가 봐라.”
아버지가 가리킨 테이블을 보니, 진구가 손을 든다. 내키지 않은 걸음으로 다가가 마주 앉았다.
“전체 소집령을 내렸는데도 너만 빠졌더라.”
동기들 모임에 정아는 가지 않았다. 과에서 남자의 존재는 특별하다. 진구가 입대하던 날은 모두가 울었다. 남자 한 명은 휴학했고, 유일한 남자로 남았던 그였기에 여학생들은 여인 천하로 전락했다면서 통곡했다. 그가 휴가를 나와 소집령을 내리면 모두 참석하겠다는 즉흥적인 맹세는 지켜져 왔다. 이번 소집에 정아는 참석하지 않았다.
“오늘도 수원에 볼일이 있었어?”
여기까지 찾아온 그에게 미안한 일인 줄 알면서도 무심한 말투로 대하고 만다.
“저녁 안 먹었지? 같이 먹자.”
접시에는 회가 수북이 쌓여 있다. 회를 좋아하는 동창 윤희가, 눈앞의 남자를 마음에 품었던 윤희가 떠오른다.
“윤희는 잘 있어?”
대놓고 묻고 만다. 그가 흠칫하더니 쓴웃음을 짓는다.
“너 궁금해하더라. 윤희하고도 연락을 안 한다면서?”
“개학 때까진 사정이 있어서.”
“정아야.”
낮고 간절한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고는 고요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주변을 모두 쳐내고 오로지 상대방에게 집중하는 눈빛. 그 눈빛에 한때 흔들릴 뻔했다.
“그놈의 사정이라는 것, 내가 알면 안 되니? 내가 너한테 얻어 낸 신뢰감이 그 정도 가치도 없는 거니?”
신입생 시절, 단짝 윤희가 진구를 병원으로 데려왔다. 잠깐 단둘이 병실에 머물게 되었고, 정아는 어색한 시선을 창밖 저편 은사시나무 군락으로 두었다.
‘은사시나무를 좋아하니?’
그가 뒤에 선 채 물었다.
‘아니. 싫어. 뿌리가 든든한 아름드리가 좋아. 기댈 수 있는.’
‘나한테 기대.’
‘응?’
멍한 얼굴로 고개를 돌린 정아에게 진구는 자신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툭 치며 말했다.
‘여기로 기대. 내가 아름드리나무가 되어 줄게.’
갑자기 욕심이 생겼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렸다. 그는 이미 윤희와 과 친구 이상의 관계였다.
비가 오는 날, 그 혼자 병원을 찾아왔다. 날씨가 안 좋다며 그는 한사코 태워 준다고 했다. 그의 차를 타고 ‘섬과 섬’에 도착했더니, 윤희가 가게 앞에 서 있었다.
‘그, 그런 거였구나.’
윤희는 충격에 빠져 휘청거렸다. 그 모습에서 아버지의 상처를 보았다.
‘그런 거 아냐. 정말이야.’
그날 윤희는 진구와 이미 깨졌다고 고백했다.
‘헤어진 게 아픈 게 아니라 이유를 몰라서 죽겠더라. 근데 오늘 이유를 알았으니 됐어. 난 괜찮아’.
‘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틀렸어. 정말이야!’
‘괜찮아. 난 괜찮다고!’
괜찮다던 윤희는 며칠을 앓았다. 그리고 여장부라는 말을 듣던 윤희는 웃음을 잃었다.
그날 이후 정아는 다시는 진구와 단둘이 만나지 않았다. 이내 그가 입대를 하면서 기회도 없었다.
“그놈의 사정이라는 것 좀 말해 보라고!”
진구가 다시금 채근한다. 한 번쯤 윤희의 이야기를, 이별과 만남의 예의에 관해 말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도리어 번거로운 일이 생길 것 같은 피로감이 지레 밀려와서 곧 머리를 비웠다.
“아빠가 팔이 안 좋으셔.”
그나마 먼 길을 달려온 그에게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고 싶다. 적어도 과 친구인 그에게 이쪽의 현실은 알려 주고 싶다.
“뇌경색에 당할 뻔하셨어. 이따금 한쪽 팔다리가 불편하셔서 가게를 포기하려고 하셔.”
마음의 병이 더 큰 이유라는 말은 굳이 꺼내지 않았다.
“수원 최고의 명물이라는 이 가게를? 직원을 더 쓰면 되잖니. 내가 일류 조리사 소개시켜 줄게.”
그의 어머니는 식자재를 공급하는 대형 유통업체의 대표이다. 선배 몇 명이 그를 통해 취업을 하기도 했다.
“아빠 가게는… 내가 물려받고 싶어.”
“정아 네가? 여긴 영양사가 필요한 가게가 아니잖아.”
“부지런히 요리를 배우고 있어.”
“그래서 허접한 닭집을 나가는 거니? 어울리지 않는다.”
“어! 닭집인 줄은 어떻게 알았어?”
“그냥.”
순간 정아는 그의 집요한 탐색 목록에 자신이 올라와 있다는 불안감에 젖어 들었다. 그래서 저절로 목소리가 서늘해진다.
“진구야, 미안하지만 나한테 신경 좀 꺼 주라.”
“싫다. 그런 말.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 적어도 나한텐 다신 하지 마라.”
“정말 미안한데, 개인적으로 더는 날 안 찾아 줬으면 싶어.”
“하지 말라니까!”
“피곤해서 쉬어야겠다.”
“정아야! 윤희와 난 오래전에 끝났어. 아니, 사귀는 사이도 아니었어. 너 때문에 윤희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단 말이야!”
뒤통수를 따갑게 찌르는 그의 외침을 무시한 채 가게를 나왔다.
***
그날 이후 아버지, 유영식은 웃음을 잃었다.
그날 정아는 가게에서 조리사 실기 시험 연습을 하고 있었다. 청년 시절에 영식의 제자였던 조용우 셰프가 가게를 잠시 맡고 있던 때였다. 병원의 간병 의자에서 살다시피 한 영식이 전화를 했다.
― 와 보는 게 좋겠다.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한달음에 병원으로 갔다. 2인실의 이웃 환자가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왔고, 문은 채 닫히지 않았다. 어머니의 말소리가 들린다. 조용히 안으로 들어섰다가 멈칫했다. 그리고 듣고 말았다.
“정아 아빠, 미안해. 난, 난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하지 못했어. 노력해도 안 됐어. 그게 정말 죄스러워.”
어머니의 고백 앞에 아버지의 얼굴이 갑자기 처참하게 늙어 버린다.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졌던 그 참혹한 얼굴을 정아는 똑똑히 보고 말았다. 그다음 말들은 한 귀로 흩어지고 만다. 잔인한 고백을 하는 환자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부모가 물려준 수상한 혈액형에 대해서는 고등학생 때 이미 알았다. 하지만 시치미를 떼고 살았다. 가족 모두가 그렇게 살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어머니 곁의 유영식은 정아에게 있어서 으뜸 아버지였다. 이보다 잘할 수 있는 아버지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남자에게 어머니는 끝내 사랑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정아는 벌떡 일어나 닭을 토막 내기 시작했다. 목이나 다리를 잘라 내는 일과는 달리 토막 일을 할 때면 살점과 선지가 얼굴로 튄다. 정아는 개의치 않으며 서둘렀다. 저녁에는 최 씨의 부인이 입원한 병원에 갈 터였다.
“도대체 정아 씨 정체는…….”
재웅이 뇌까리다가 스스로 말을 삼켰다.
오후에 어느 정도 일이 끝나가니, 재웅이 먼저 들어간다며 미안한 얼굴을 한다.
“약속이 있어서요.”
많이 피곤해 보인다면서 구 여사는 이미 허락을 한 상태이다.
정아 혼자 남아 마무리를 한 뒤 본채 주방으로 들어갔더니, 구 여사가 푹 삶은 닭을 솥에 담아 보자기에 싸 준다.
“최 씨한테 간다지? 가져가라.”
“홀 일은?”
“일찍 마칠 테니 그냥 가. 네년 입이 싼 것 같지 않아서 병원 가르쳐 주는 거다. 병원 다녀와서 행여 쓸데없는 소릴랑 하지 마라.”
솥과 함께 궁금증도 받아 들고 나왔다. 많이 아픈 줄 알았던 부인은 교통사고로 다리를 조금 다친 정도일 뿐이란다. 그런데도 종일 병실을 지킨다는 최 씨의 행동거지도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약속을 들먹이며 일찍 퇴근한 재웅은 병원까지 가는 동안 택시의 뒷좌석에서 모로 누웠다. 앉아 있는 것조차 힘겨웠다. 가볍게 먹은 점심은 정아의 눈을 피해 모두 게워 냈다. 어쩔 수 없이 링거 신세를 져야 했다. 여하튼 쓰러지지 않고 버텼다. 해냈다는 성취감과 고갈된 체력의 호소가 뒤엉킨다.
접수대에 비틀거리며 서 있는데, 안면이 있는 간호사 한 명이 재웅을 힐끔 보더니 전화기를 든다. 내과를 향해 허청허청 걷는데, 누군가 뒷덜미를 잡아챈다.
“살아 있어서 반갑다.”
병원장인 외삼촌이었다. 끌려간 곳은 특실이다.
“아침에 도망갔다지? 네 엄마가 날 죽인대. 맞아 죽지 않으려면 널 살려야겠다.”
아침에 도망간 일로 어머니는 당신의 오빠에게 애꿎은 닦달을 한 성싶다. 내과 전문의인 삼촌이 직접 진찰을 하고는 처방을 내린다.
“무조건 쉬어라. 안 그러면 드릴로 머릴 가르고 메스로 배를 가르는 처치를 내릴 테다.”
링거의 가장 큰 효능은 두세 시간 동안 누워 있어서 생기는 휴식이라고 재웅은 생각한다. 가만히 누워 있자니 문득 정아의 얼굴이 떠오른다.
‘독종.’
중얼거리다가 고개를 흔든다.
‘그냥 지독한 여자 정도?’
다시 고개를 흔든다.
‘묘한 여자.’
어지럼증으로 그녀에게 안겼던 일이 떠오른다. 순간적으로 스쳤던 그녀의 봉긋한 가슴의 촉감, 그리고 맞닿았던 뺨이 마음을 간질간질 건드린다. 허수한 차림새와 털모자 속에 감춰진 그녀의 갸름한 얼굴은 차를 마시면서 이미 확인했다. 하지만 이런 묘한 감정은 들지 않았다. 지극히 짧은 순간의 맞닿음이 예상치 못한 여운으로 발전하고 있다. 소모적인 경쟁과 허영심으로 인생을 낭비하는 여자들을 많이 보면서 자랐다. 그런 여자들만 겪어서인지 딱히 감흥을 느낀 여자는 만나지 못했다. 밴드보다 매력 있는 여자는 지금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자로 인하여 두근거리는 가슴이 자신에도 존재한다는 바를 확인하고 쓴웃음을 짓고 만다.
***
병원은 최 씨가 산다는 동네와도, 또 시장닭집과도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했다. 구 여사의 지인이 소개한 병원이라고 들었다.
최 씨의 아내는 의외로 젊었다. 최 씨보다 예닐곱 살 남짓 어려 보인다. 그녀는 반깁스붕대를 한 발목을 모로 걸치고 앉았다. 머리카락을 뒤로 질끈 묶고는 최 씨가 잘게 찢어 놓은 삶은 닭을 먹기 시작한다. 오동통한 얼굴이 순박한 그녀의 눈빛과 퍽이나 어울린다. 음식을 삼키다 말고 최 씨에게 구화와 손짓으로 의사를 전한다.
“먹기 좋게 적당히 따뜻하대. 고맙대.”
최 씨의 설명에 정아는 듣지 못해서 말도 못 하는 여자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청각장애 2급이다. 조만간 인공 와우 수술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첨단 장비로 만든 인공 달팽이관을 귀에 심는 일이다.
“저 양반이 싫다고 해서 보청기도 안 하고 살았어.”
최 씨가 스스로 입을 연다.
“보청기를 달면 들을 수는 있나요?”
“다급한 소리나, 큰 소리 정도는. 하지만 저 양반은 안 했어. 지독하게 침묵을 사랑하거든.”
“와우 수술은요?”
“아들이 두 살이야. 아들은 엄마와 말을 나누고 싶어 하더라.”
이제야 두 살이라니. 결혼이 늦었나 보다. 특히 최 씨가.
“수술만 잘되면 대화가 가능한 건가요?”
“연습을 많이 해야지. 생소한 기계음의 암호를 풀어내는 일이라니까.”
“잘 될 거예요.”
“저 양반이 고생이지. 끔찍이도 사랑하는 침묵을 포기해야 할 테니 말이다.”
구독술로 얼추 알아차렸는지, 여자가 최 씨를 향해 방긋 웃는다. 괜찮아요, 하고 말하는 성싶다.
“사모님이 참 고우세요.”
정아는 느낌 그대로를 내 흘렸다. 최 씨가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축복받은 여자였지. 신에게 가장 조용한 세상을 선물 받은.”
“그, 그렇군요.”
“참, 수술 날짜 잡으면 닷새쯤 내가 쉴 거야. 사장님 말씀으론 너희들끼리 곧잘 한다던데, 정말 할 수 있겠어?”
“걱정 마세요. 그보다 다리가 빨리 나으셔야 할 텐데요.”
“뼈는 괜찮아서 내일 퇴원해.”
가벼운 상처인데도 최 씨는 이틀 동안 꼬박 아내 곁을 지켰다. 인공 와우 수술 때도 곁을 지킬 터였다.
“사실은 사장님이 닭을 조금만 시키셔서 쉽게 끝냈어요. 수전노 사장님이 의외죠?”
“그분이 외손녀 일이라면 끔찍이 챙기시지.”
“외손녀라면?”
“몰랐구나. 사장님은 저 양반 외할머니쯤 되셔. 보조 주방에서 똥집이나 내장을 손질하는 전통도 아내 때문에 생겼지. 옛날부터 아내보고 거기서 혼자 조용히 일하라고 배려하신 거지.”
그리고 최 씨가 그곳으로 출근을 하면서 인연이 맺어진 것이다.
“아저씨가 하는 말씀 말이에요. 저한텐 죄다 아름다워요. 감미롭고도 인생이 담긴 노래 같아요.”
정아의 깊은 눈길에 최 씨는 짐짓 당혹감을 드러낸다.
“고마워요. 저를 믿어 줘서요. 저한테 속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정아의 진심 어린 말에 최 씨는 고개를 실긋거린다. 딱히 설명할 수 없는 모호한 이유로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정아는 화장실을 간다며 일어났다.
눈물을 훔치며 복도를 걷는데, 눈앞으로 누군가 우뚝 서서 길을 막는다. 고개를 숙인 채 피해 가려고 했다.
“정아 씨!”
환자복을 입은 채 링거 막대를 잡고 서 있던 재웅이 큰 소리로 불렀다. 정아는 소스라쳐 놀랐다. 병원 방문을 비밀로 하라는 구 여사의 매서운 당부가 떠올랐던 탓이다.
재웅은 걷는 데만 지장이 없다면야 당장 병원에서 도망갈 터였다. 컨디션을 점검하고자 링거 막대를 밀고 복도를 터벅터벅 걸었다. 그때 그녀가 눈앞에 나타났다. 반사적으로 피해 가려다가 우뚝 멈추었다. 고개를 숙인 채 다가오는 그녀는 울고 있었다. 천하의 독종인 여자이고 도무지 감정이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여자였기에 재웅은 당황하고 만다.
“정아 씨!”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큰 소리로 불렀다. 번쩍 고개를 든 그녀가 화들짝 놀란다.
“지금 울고 있는 건가요?”
“아, 아녜요.”
재빨리 눈물을 훔치더니 재웅의 환자복을 살핀다.
“어! 재웅 씨, 입원하신 거예요?”
그녀는 얄밉도록 신속하게 차분한 모습을 되찾았다.
“입원은 무슨. 내가 고기를 싫어해서 링거로 영양 보충을 좀 하느라고. 그보다 정아 씬 왜 여기에 있죠?”
“아, 아는 사람 병문안 왔어요.”
“누군데요?”
“그냥 아는 사람이에요.”
“누군지 나도 인사하면 안 될까요? 이래 봬도 내가 이 병원에 백이 좀 있는데.”
“됐어요. 어! 피가 역류하잖아요!”
주사기 호스 초입으로 묽은 피가 역류하는 바를 가리키며 정아가 황급히 튜브를 들어 올렸다.
“왜 이리 낮게 걸어 놓았어요?”
힐책하더니 등을 떠민다.
“빨리 재웅 씨 병실로 가요. 몇 호실이죠?”
“괜찮은데.”
“피가 호스로 나왔잖아요. 빨리 눕지 않으면 위험해요.”
“죽기라도 하나요?”
“그래요. 죽고 싶지 않으면 빨리 가요!”
이 여자는 왜 이리 호들갑을 떨까? 얼결에 병실까지 떠밀려 들어왔다. 침대에 눕자, 정아가 링거 호스의 링을 조절하면서 주입 상태를 확인한다. 익숙한 몸짓이다.
“거짓말에 협박도 할 줄 아시군.”
재웅은 또 다른 그녀의 모습을 발견한 소감을 내 흘렸다.
“여긴 호텔 같군요.”
특실 병동을 둘러보며 엉뚱한 대답을 한다.
“혹시 전염병 그런 거여서 격리된 건 아녜요?”
어라. 이 여자 제법 농담도 한다.
“그저 영양 보충 중이라니까.”
“환자복까지 입으시고요?”
“옷에 묻은 닭 냄새를 여기서 굳이 맡을 건 없잖아요.”
“그럴 수도 있겠군요.”
정아가 링거 팩을 다시금 쳐다보더니 쓸쓸히 웃으며 내려다본다.
“밥도 제대로 못 삼키던 분이 용케도 일을 견디셨네요.”
“감기 후유증이야 건강한 사람에게도 있는 법이죠.”
“아프면 아프다고 드러내세요. 인간은 스스로의 몸을 소중히 보호할 의무가 있거든요. 자신을 위해서, 주변 사람 모두를 위해서.”
“지금 내게…….”
감히 강골에게 훈계한다고 정색을 하려다가 재웅은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쓸쓸한 목소리에 웅숭깊은 슬픔과 간절한 호소가 가득히 출렁거린다. 재웅은 시계를 보았다. 홍대 앞 공연장 관람은 포기해야 할 것 같다. 그녀가 오래 머물렀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키운다. 허약하면 의지하고 싶은 바람이 커진다고 한다. 하지만 그 대상이 성냥팔이 소녀가 될 줄은 몰랐다.
그녀도 시계를 바라본다.
“열은 없어요?”
그녀가 불쑥 묻는다. 이마를 만져 보면 될 텐데, 하고 대꾸할 뻔했다.
“글쎄요. 뜨거운 것 같기도 하고.”
그녀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전자 체온계를 가지고 다니는 여자라니.
“영양사는 체온계도 필요한가?”
“아, 하고 입을 벌려 보세요.”
그녀가 재웅의 입으로 체온계를 밀어 넣으려 한다. 귀찮은 환자를 대하는 간호사의 사무적인 태도 같다.
“왜요? 체온계는 겨드랑이에 꽂는 게 아닌가?”
“항문에 넣으면 더 정확하죠. 그쪽에 넣어요?”
그녀가 태연히 바지춤을 겨냥한다.
“설마.”
“자, 아아!”
거부하면 바지라도 벗길 것 같아서 입을 벌렸다.
“입을 닫고 코로 숨을 쉬세요.”
시키는 대로 했다. 체온계를 꺼내 확인한 그녀가 싱긋 웃는다.
“열은 심각하진 않네요. 다행이네요. 갈게요.”
“아! 정아 씨.”
붙잡을 명분을 찾기 전에 그녀는 가 버렸다. 어안이 벙벙하다. 방금 있었던 모든 일이 비현실적으로 여겨진다. 그녀의 병원 방문 목적도 미처 묻지 못했다. 확 트인 창과 마주한 겨울나무 가지에서 새 한 마리가 포르르 날아간다. 정아 역시 새처럼 날아왔다가 이내 날아간 것 같은 기분이다. 입술을 만졌다. 체온계를 넣을 때 살짝 스쳤던 그녀의 손가락 감촉을 새김질해 본다.
‘정말 집에 간 건가?’
병실을 전부 뒤져 볼 생각을 하는데, 노크 소리에 반색했다. 하지만 정아가 돌아온 것이 아니다. 간호사가 배시시 웃으며 들어온다. 이 병원에서 소문난 미인이다.
“어지럽진 않으세요?”
나긋나긋한 그녀의 태도에 새삼 짜증이 난다.
“됐고요. 하나 물어봅시다. 체온계를 항문에 꽂으면 정말 정확합니까?”
“네? 뭐, 그렇긴 합니다만.”
간호사의 표정이 단박에 구겨진다. 이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재웅을 바라본다.
정아는 길을 가다가 병원을 바라보기만 해도 아프다. 환자복을 입을 사람을 마주치기만 해도 울컥했다. 많이 나아졌다. 처음에는 어머니 때문에 그랬다. 지금은 아버지 때문에 여전히 아프다. 아픈 사람이 떠나면 남아 있는 사람에게 아픔을 물려준다. 몸의 아픔이 마음의 아픔으로 진화해서. 그리고 밉다. 아프면서도 혼자 삼키는 모든 사람이 밉다. 어쩌면 아버지는 아픔을 즐기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영혼의 자해 행위라고 응수하고 싶다.
고단한 몸을 이끌고 영식의 식당인 ‘섬과 섬’을 들렀다.
“왔니?”
영식은 습관적으로 무심히 딸의 몰골을 훑어본다. ‘왜, 집에서 쉬지 않고.’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대신에 턱짓을 한다.
“가 봐라.”
아버지가 가리킨 테이블을 보니, 진구가 손을 든다. 내키지 않은 걸음으로 다가가 마주 앉았다.
“전체 소집령을 내렸는데도 너만 빠졌더라.”
동기들 모임에 정아는 가지 않았다. 과에서 남자의 존재는 특별하다. 진구가 입대하던 날은 모두가 울었다. 남자 한 명은 휴학했고, 유일한 남자로 남았던 그였기에 여학생들은 여인 천하로 전락했다면서 통곡했다. 그가 휴가를 나와 소집령을 내리면 모두 참석하겠다는 즉흥적인 맹세는 지켜져 왔다. 이번 소집에 정아는 참석하지 않았다.
“오늘도 수원에 볼일이 있었어?”
여기까지 찾아온 그에게 미안한 일인 줄 알면서도 무심한 말투로 대하고 만다.
“저녁 안 먹었지? 같이 먹자.”
접시에는 회가 수북이 쌓여 있다. 회를 좋아하는 동창 윤희가, 눈앞의 남자를 마음에 품었던 윤희가 떠오른다.
“윤희는 잘 있어?”
대놓고 묻고 만다. 그가 흠칫하더니 쓴웃음을 짓는다.
“너 궁금해하더라. 윤희하고도 연락을 안 한다면서?”
“개학 때까진 사정이 있어서.”
“정아야.”
낮고 간절한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고는 고요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주변을 모두 쳐내고 오로지 상대방에게 집중하는 눈빛. 그 눈빛에 한때 흔들릴 뻔했다.
“그놈의 사정이라는 것, 내가 알면 안 되니? 내가 너한테 얻어 낸 신뢰감이 그 정도 가치도 없는 거니?”
신입생 시절, 단짝 윤희가 진구를 병원으로 데려왔다. 잠깐 단둘이 병실에 머물게 되었고, 정아는 어색한 시선을 창밖 저편 은사시나무 군락으로 두었다.
‘은사시나무를 좋아하니?’
그가 뒤에 선 채 물었다.
‘아니. 싫어. 뿌리가 든든한 아름드리가 좋아. 기댈 수 있는.’
‘나한테 기대.’
‘응?’
멍한 얼굴로 고개를 돌린 정아에게 진구는 자신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툭 치며 말했다.
‘여기로 기대. 내가 아름드리나무가 되어 줄게.’
갑자기 욕심이 생겼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렸다. 그는 이미 윤희와 과 친구 이상의 관계였다.
비가 오는 날, 그 혼자 병원을 찾아왔다. 날씨가 안 좋다며 그는 한사코 태워 준다고 했다. 그의 차를 타고 ‘섬과 섬’에 도착했더니, 윤희가 가게 앞에 서 있었다.
‘그, 그런 거였구나.’
윤희는 충격에 빠져 휘청거렸다. 그 모습에서 아버지의 상처를 보았다.
‘그런 거 아냐. 정말이야.’
그날 윤희는 진구와 이미 깨졌다고 고백했다.
‘헤어진 게 아픈 게 아니라 이유를 몰라서 죽겠더라. 근데 오늘 이유를 알았으니 됐어. 난 괜찮아’.
‘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틀렸어. 정말이야!’
‘괜찮아. 난 괜찮다고!’
괜찮다던 윤희는 며칠을 앓았다. 그리고 여장부라는 말을 듣던 윤희는 웃음을 잃었다.
그날 이후 정아는 다시는 진구와 단둘이 만나지 않았다. 이내 그가 입대를 하면서 기회도 없었다.
“그놈의 사정이라는 것 좀 말해 보라고!”
진구가 다시금 채근한다. 한 번쯤 윤희의 이야기를, 이별과 만남의 예의에 관해 말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도리어 번거로운 일이 생길 것 같은 피로감이 지레 밀려와서 곧 머리를 비웠다.
“아빠가 팔이 안 좋으셔.”
그나마 먼 길을 달려온 그에게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고 싶다. 적어도 과 친구인 그에게 이쪽의 현실은 알려 주고 싶다.
“뇌경색에 당할 뻔하셨어. 이따금 한쪽 팔다리가 불편하셔서 가게를 포기하려고 하셔.”
마음의 병이 더 큰 이유라는 말은 굳이 꺼내지 않았다.
“수원 최고의 명물이라는 이 가게를? 직원을 더 쓰면 되잖니. 내가 일류 조리사 소개시켜 줄게.”
그의 어머니는 식자재를 공급하는 대형 유통업체의 대표이다. 선배 몇 명이 그를 통해 취업을 하기도 했다.
“아빠 가게는… 내가 물려받고 싶어.”
“정아 네가? 여긴 영양사가 필요한 가게가 아니잖아.”
“부지런히 요리를 배우고 있어.”
“그래서 허접한 닭집을 나가는 거니? 어울리지 않는다.”
“어! 닭집인 줄은 어떻게 알았어?”
“그냥.”
순간 정아는 그의 집요한 탐색 목록에 자신이 올라와 있다는 불안감에 젖어 들었다. 그래서 저절로 목소리가 서늘해진다.
“진구야, 미안하지만 나한테 신경 좀 꺼 주라.”
“싫다. 그런 말.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 적어도 나한텐 다신 하지 마라.”
“정말 미안한데, 개인적으로 더는 날 안 찾아 줬으면 싶어.”
“하지 말라니까!”
“피곤해서 쉬어야겠다.”
“정아야! 윤희와 난 오래전에 끝났어. 아니, 사귀는 사이도 아니었어. 너 때문에 윤희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단 말이야!”
뒤통수를 따갑게 찌르는 그의 외침을 무시한 채 가게를 나왔다.
***
그날 이후 아버지, 유영식은 웃음을 잃었다.
그날 정아는 가게에서 조리사 실기 시험 연습을 하고 있었다. 청년 시절에 영식의 제자였던 조용우 셰프가 가게를 잠시 맡고 있던 때였다. 병원의 간병 의자에서 살다시피 한 영식이 전화를 했다.
― 와 보는 게 좋겠다.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한달음에 병원으로 갔다. 2인실의 이웃 환자가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왔고, 문은 채 닫히지 않았다. 어머니의 말소리가 들린다. 조용히 안으로 들어섰다가 멈칫했다. 그리고 듣고 말았다.
“정아 아빠, 미안해. 난, 난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하지 못했어. 노력해도 안 됐어. 그게 정말 죄스러워.”
어머니의 고백 앞에 아버지의 얼굴이 갑자기 처참하게 늙어 버린다.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졌던 그 참혹한 얼굴을 정아는 똑똑히 보고 말았다. 그다음 말들은 한 귀로 흩어지고 만다. 잔인한 고백을 하는 환자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부모가 물려준 수상한 혈액형에 대해서는 고등학생 때 이미 알았다. 하지만 시치미를 떼고 살았다. 가족 모두가 그렇게 살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어머니 곁의 유영식은 정아에게 있어서 으뜸 아버지였다. 이보다 잘할 수 있는 아버지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남자에게 어머니는 끝내 사랑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