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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천호협 1권(2화)
제一장 사부님과의 인연(2)
삼 년 동안 아이는 먹고 자고 싸기만 했다.
자기가 직접 목욕시키고 옷도 갈아 입혔다.
될 수 있는 대로 고기를 듬뿍 먹였다. 새고기, 말고기,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등등 온갖 고기를 잔뜩 퍼 먹였다. 채소도 먹이고 약도 먹였다.
아이의 정신은 온전치 않았다. 삼 년 동안 눈에 띄게 나아진 것이 없었다. 좋아진 것이 있다면 ‘바저’를 ‘사부님, 밥 주세요.’ 했다. 알아듣는 말에는 ‘네, 아니오.’를 답했다.
삼 년 동안, ‘사부님. 밥 주세요.’라고 계속 가르쳤다. 삼 년이 되자 아이는 그렇게 대답했다.
꾸준히 이 말, 저 말을 붙여서 가르쳤다. 어찌 됐든지 자신이 가르친 한 가지는 배운 셈이다.
“사부님, 밥 주세요.”
“그래, 이제 좀 발전을 했구나. 자, 먹거라.”
고기를 뜯었다. 아이는 고기를 정말 좋아했다.
덕분에 부작용으로 살이 너무 찌다 못해 돼지가 돼 버렸다.
토실토실 아기 돼지 한 마리가 허구한 날 밥 달라고 꿀꿀이다. 같은 또래의 아이보다 무게가 두 배는 넘게 나갔다. 배는 불룩하게 나왔다. 이거 뭔가 조치를 취하기는 해야겠다.
이대로는 칼 잡기는 고사하고, 허구한 날 토실토실 아기 돼지……. 밥만 주다 인생 종치게 생겼다. 이건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 되어 버릴 판이다.
“이거 안 되겠어. 이러다가 칼은 고사하고 걷지도 못하게 생겼어. 내가 너무 퍼먹였는가.”
삼 년이 지났다. 지금쯤 독고검성이 제자를 거두어 키울 때도 됐을 것이다.
그 친구는 필경, 무학의 자질이 신출한 기재를 제자로 거뒀을 것이다.
삼 년이면 이 아이와는 실력 차가 천양지차가 될 것, 고개가 흔들어졌다. 그 삼 년 동안 배운 거라곤 오직 한마디.
‘사부님, 밥 주세요.’
느림보 거북이라도 이보다는 더 빠를 것이다. 삼 년이면 느림보 거북이도 남해에서 하북까지 세 번은 왔다 갔다 했을 것이다.
다른 말을 가르쳤지만 답보 상태였다.
돌을 ‘덜’이라고 하고, 나무를 ‘나마’라고 했다.
삼 년 동안 가르친 보람이 아주 없진 않았다. 단 한 마디라도 제대로 할 수 있는 말이 생겼으니까. 그리고 알아듣는 말에는 ‘네, 아니오.’를 하니까.
아이에게 처음 데려온 길에서 수습한 옥패를 보았다. 그것을 토대로 이름을 알려 주고 말하게 해 봤다. 영 별무신통이다. 역시 무리는 무리였는가 싶다.
“그려. 넌 밥 많이 먹고 건강해야지. 건강하게 자라는 것으로도 기쁜 일이지.”
사람 구실하려면 거쳐야 할 난관이 아이에게는 참으로 많았다.
그저 생긋생긋 웃으며, 아무것도 모르는 이 아이가 참으로 부러울 때가 있었다. 아이에겐 늙은 사부라도 있으니 말이다. 그는 늙어서 고생하는 것 같지만, 아이로 인해 기쁨을 얻고 있었다.
<2>
‘톡톡’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장학선은 밖으로 나가 보았다. 반가운 손님이 눈앞에 와 있었다. 독고검성이다.
그는 코를 ‘킁킁’거리며 말했다.
“이보게. 이게 무슨 냄새인가? 완전 돼지우리 같은데…….”
“내 수제자인 아기 돼지 토실이가 고기를 뜯고 있는 중이라서. 하하.”
“뭐라고?”
독고검성은 방문을 ‘홱’하니 열어젖혔다.
코를 찌르는 악취와 배는 산만 한 살이 뒤룩뒤룩 찐 돼지 같은 아이가 있었다.
복장이 뒤집어질 지경이다.
“저게… 천지괴협 장학선의 제자인가?”
눈이 의심스럽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일생을 온갖 기행으로 살은 장학선, 그의 세계관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삼 년이 지나 영봉장에 찾아왔더니 저런 황당한 꼴이라니. 그때 한 말이 과연 농담이 아니었다.
장학선은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맞네. 저 아이는 내 수제자네.”
“뭐라고? 저런 돼지 같은 아이가? 아이고, 이 냄새는 뭐야? 저 녀석 목욕은 언제 시켜?”
“물을 안 좋아하고, 울어대서 일 년에 네 번만 시킨다네. 그러니까 석달에 한 번 꼴이지. 아주 전쟁이야, 전쟁. 흐흐.”
“와! 정말 존경스럽군. 이건 스승과 제자가 완전히 바뀐 것이 아닌가? 아이의 친부모도 그리는 못할 거네. 자네가 정말 존경스러워.”
독고검성은 입이 벌어졌다. 삼 년 만에 찾아왔더니 친구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어디서 주워 온 이상한 돼지 같은 아이의 하인이 되어 있었다.
저래가지고 언제 칼을 쥘 수 있을까? 답답할 노릇이다.
“저 아이의 이름은 대체 뭔가?”
“이름이라… 자신은 모르는데 난 알지. 하하.”
“뭐라고? 그러니까 저 녀석은 자기 이름도 모른다?”
“단청보(端淸寶)라는 이름도 모르는 아이지.”
“정말 한심하군. 이름도 모를 정도로 바보란 말인가? 대체 삼 년 동안 배운 게 뭐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 사부님, 밥 주세요. 이 한마디는 똑 부러지게 한다네. 아, 그리고 알아듣는 말이 있으면 네와 아니에요. 요거는 할 줄 알지.”
“윽!”
비명이 날 지경이다. ‘윽’이 아니고, ‘악’을 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삼 년 동안 배운 게 그거 달랑 하나?”
“그렇지. 그거 하나는 그래도 확실히 배웠어. 하하!”
갈수록 가관이 아니다. 그걸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하는 이 친구, 가히 머리를 뜯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참, 자네가 찾아온 용건이 있겠지?”
“물론이지. 나는 삼 년 동안 양자로 거둔 독고무흔(獨孤武欣)이 있네. 올해 스무 살로 검술이 아주 출중한 일류고수일세.”
“허허, 벌써 수제자를 양자로 삼으셨는가?”
“그럼. 머리가 비상하고 뛰어난 자질의 소유자야.”
독고검성은 자신 있게 말했다.
양자 독고무흔을 소개했다. 장학선의 눈빛이 좀 일그러졌다. 고개를 슬며시 흔들었다. 어쨌거나 친구가 자질이 이토록 우수한 양자를 얻었으니 기분이 좋지 않겠는가.
“자네가 이 친구의 양자라고?”
“그렇습니다. 무림의 양대 거두 중 한 분을 만나 뵈오니 소생이 영광입니다. 많은 지도 편달 부탁드리겠습니다.”
“기품으로 보아 여러 일류고수들과 대결했겠구먼.”
“과찬이십니다.”
독고검성은 그것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자네 말이 맞네. 벌써 이십여 명의 일류고수들과 겨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네. 무림에선 소검신(小劍神), 왕림검신(枉臨劍神)이라 부르지. 한데 자네 제자는 저게 뭔가?”
“허허, 너무 앞서 가시는군. 내가 그러지 않았는가? 자네 아들이 올해 약관이니 우리 같은 늙은이처럼 오래 산다면, 늦게라도 대성하지 않겠는가. 너무 당장만 갖고 이야기하지 말게나.”
“자네 말은 이해가 가네. 하나 솔직히 말하지. 저런 자질이라면 결코 십 년이 지나도 칼을 들지 못할 것이네. 결국 저 아이는 밥만 축내다 죽고 말 것이야. 난 또 무슨 제자를 거뒀는가 싶었더니 식충이를 제자로 거뒀군. 천하의 천지괴협이 늙어 이 무슨 망신살인가. 자네가 참으로 안타까워 보이기만 하네. 저런 녀석이 언제 내 양자와 일 초식이라도 겨룰 수 있겠는가? 또, 지금이야 자네 사손들과 영봉장 사손들이 참고 넘어가겠지만… 저런 모습이 길어지면,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은 견디기가 참으로 힘든 법이야. 상태가 저 지경이면, 친부모도 버리게 될 텐데 황차 자네 사손들과 영봉장 사손들이 언제까지 참을 수 있을지 그것도 문제가 아니겠나.”
장학선은 독고검성이 너무 앞선다고 봤다. 하지만 그의 말에 일리는 있었다. 친구의 말처럼 단청보의 모습이 이렇다 보니 여기저기서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아이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까지 나돌았다. 그렇다고 해도 친구의 성격은 급했다. 이십오 년 전의 사고도 독고검성의 급한 성격이 문제였다.
“염려는 고맙네. 하긴 삼 년이 지나 배운 것이라곤 일천하니, 자네 양자와 겨룬다는 것은 말도 안 되겠지. 하나 백 초식만 겨뤄 주게.”
“뭐라고? 이보게, 어떻게 저런 녀석과 백 초식을 겨루나? 저 녀석 저거 일어날 수는 있나?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하하, 무조건 백 초식이야.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도 좋아.”
“하하! 좋아. 자네 제자가 실컷 두들겨 맞는 것이 소원이라면 평생의 친구와의 신의를 생각해 들어주지.”
독고검성은 고개를 돌렸다.
독고무흔은 실실 웃었다. 천지괴협의 기행적인 행동은 참으로 많이 들어왔다. 실제 보니 웃음이 나와 배꼽을 잡고 굴러야 할 지경이다. 저런 돼지를… 일류고수의 체면을 무참하게 짓밟고 있었다.
“아버님, 어찌 저런…….”
“허허. 이것은 나에게는 평생을 두고도 버릴 수 없는 친구와의 의리에 관한 문제니라. 이래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느냐?”
“송구합니다. 소자가 잠시 상황을 분별하지 못하였습니다. 아버님께 이토록 깊은 신의를 갖고 계신 친구라면, 제게는 의부와도 같습니다. 이는 신의의 문제이지 체면의 문제가 아니오니, 백 초식을 겨뤄 드리겠습니다.”
그는 정중한 자세로 장학선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저희 아버님께서 이토록 대선배님께 신의를 갖고 계신지는 몰랐습니다. 앞으로 의부님으로 여기고, 의부님의 제자와 부득이 백 초식의 가르침을 청합니다.”
“좋네. 자네의 신기에 가까운 솜씨를 보도록 하지.”
장학선은 입을 ‘헤’ 벌리고 침을 질질 흘리며 비틀거리는 아이를 일으켰다.
독고무흔은 신의의 문제가 아니라면 저런 버러지와 겨뤄야 할 하등의 가치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정말이지 체면의 손상이다.
하지만 천지괴협이라는 너무나 대단한 무인의 제자.
‘실리는 없으나 명분은 있는 일. 더욱이 양부와 의부의 대결이니, 어찌 됐든 못할 이유야 없지.’
속으로 생각한 그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질질거리는 아이를 있는 힘껏 두들겨 팼다. 아이는 순식간에 엉엉 울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퍽! 퍽! 퍽!
무공이랄 것도 없었고 초식도 없었다. 무조건 때리는 것이었다.
이런 상대에게 무슨 초식이 필요하고, 무공이 필요한가? 죽지 않을 만큼 백 대 후려 패고 적당히 끝내는 것이 상책이다.
괜히 죽여 버리면 양부와 의부의 질책만 받고, 아무튼 좋을 것이 없지 않은가.
한 삼십 대쯤 때리자 흥미가 나지 않았다.
“이건 전혀 제 상대가 아니 되니…….”
“허허, 칠십 대를 마저 때려야지.”
독고무흔은 어쩔 수 없이 적당히 칠십 대를 두들겨 팼다. 발로 살살 차기도 하고, 주먹으로 슬슬 때리고, 손날로 여기저기 후렸다. 아이의 살은 출렁이고, 멍이 퍼렇게 일어났다.
“엉엉!”
아이는 자기가 왜 맞는지도 몰랐다. 반항할 힘도 없었고, 반항할 수도 없었다.
아프기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무진장 아팠다. 죽을 것만 같았다.
애처로운 눈빛으로 장학선을 바라봤다. 장학선은 마음이 약해질까 두려워 애써서 시선을 돌렸다.
아이는 우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엉엉!”
아이의 울음소리가 귀에 울렸다. 천하에 둘도 없을 울보였다.
독고무흔은 이런 저질을 상대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하지만 양부와 의부의 신의와 자존심이 걸린 명분의 문제가 있었다.
천지괴협이란 이름으로도 무림인을 고개 숙이게 할 수 있다. 이것은 순전히 두 사람의 신의와 체신 때문에 하는 것이지,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다.
갈수록 소태 씹은 얼굴이 되었다.
‘이거야 원…….’
왜 이런 한심한 자를 제자로 거뒀을까? 장학선이란 희대의 무신고수가 왜 이처럼 황당한 짓을 하고 있을까. 정말이지 잘 돌아가는 머리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기행이란 말밖에 할 말이 없다.
장학선은 아이가 백 대를 다 맞을 때까지 어떠한 안전도 책임져 주지 않았다. 이전과는 사뭇 다른 태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