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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천호협 1권(3화)
제一장 사부님과의 인연(3)


가슴은 솔직히 아팠다.
‘삼 년 동안 그래도 너에게 많은 정이 들었는데 어찌 마음이 아프지 않겠느냐? 하나 이러지 않으면 넌 영원히 돼지에서 벗어나지 못할 터.’
정말 부모가 된다는 심정으로 이 아이를 바라봤다.
백 대가 끝났다. 아이는 두려움과 분노, 공포와 절망, 온갖 감정을 비참하게 느꼈다.
연약하기 짝이 없고, 모자라기 짝이 없는 몸으로 일류고수를 상대하기엔 아이로선 불가능한 상황일 따름이다.
“쯧쯧. 보나 마나 한 결과를.”
“하하, 그래도 자네의 가르침을 잘 받았네.”
“다음에 또 보세나. 언제쯤 오면 되겠는가?”
“음… 석 달 후에 오면 될 것 같으이.”
“그땐 좀 달라지려나?”
“나도 모르겠네. 두고 보면 알겠지.”
독고검성과 독고무흔이 돌아갔다.
아이는 심한 상처를 입었다. 좋아하는 밥도 먹지 않으려고 했다.
느닷없이 감당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무조건 두들겨 맞았다. 온 사지가 찢어지는 듯이 아팠다.
“얘야, 네가 좋아하는 밥이란다. 밥은 먹어야지.”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얼굴을 푹 숙이며 엉엉 울기만 했다.
눈의 흰자위가 적나라하게 드러날 정도로 휙하니 돌아가고, 며칠 뒤에는 말소리까지 잊었다.
장학선은 자기가 아는 상식에서 침을 놓고 보약을 먹였다. 아이는 진정이 되지 않았다.
‘정말 이 아이가 희망이 있긴 한 걸까? 내가 너무 무리수를 두었는가.’
아이에게는 이 상황을 극복할 의지력이 없었다.
갑자기 당한 공포에 더더욱 극심한 정신이상을 보였다. 이 아이로선 처절한 나락의 지옥을 오갔던 것이다.
장학선은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무능력하기만 한 아이에게 너무 가혹한 상처를 입힌 것 같았다. 하나 모질게 할 때는 모질게 해야 했다.

그에게도 생각은 있었다.
아이가 진정이 되지 않았다. 몇 날 며칠이고 울고 불다가 벌써 삼 개월이 지났다.
삼 개월이 지난 후, 아이는 또 독고무흔에게 무참하게 백 대를 두들겨 맞았다.
독고검성은 그런 자신을 또 조롱했다. 저 아이는 결코 희망이 없다는 말만……. 삼 개월이 또 지났다.
장학선은 대뜸 이백 초식을 제안했다.
독고검성은 가면 갈수록 진흙탕인 아이에게 대체 이 친구가 무슨 희망을 거는가 싶었다.
아무리 봐도 가망도, 희망도 뭣도 없었다. 아이는 결국 이백 대를 또 두들겨 맞아야 했다.
아이의 상처와 절망은 점점 더 깊어졌다. 이젠 식욕도 사라지고, 삶에 대한 의욕도 사라졌다. 그러자 장학선은 주기를 더 짧게 했다.

삼 개월을 한 달로 줄였다. 그렇게 세 번을 또 찾아왔다.
아이는 이백 대, 삼백 대, 사백 대를 맞았다.
대항은 고사하고 찍소리도 못할 판이었다. 독고검성은 아이에게 아무런 가망을 느끼지 못했다.
“이보게. 당장 내다 버리게. 저건 도저히 가망이란 것이 보이질 않는 아이야. 이만큼 시간이 지났다면 최소한 칼을 잡는 척이라도 해야지. 저게 뭔가? 자네의 부탁을 차마 거절하지 못해 이러는 것이네만. 정말이지 눈 뜨고 못 봐 줄 정도야. 저 아이는 내가 볼 때는 틀린 것 같네!”
사형선고.
아이는 전혀 가망이 없어 보였다. 독고검성은 당장 내다 버리라고 한마디로 일축했다. 저건 진흙탕 중에서도 최악의 진흙탕이다. 사부를 도리어 하인으로 부려먹는.
배움을 받는 자가 배움을 주는 자에게 이러는 것인가? 볼 것도 없었다.

<3>

그 후로도 수십 번을 더 찾아왔다. 결과는 하나마나였다.
독고검성은 점점 더 싫증을 냈다. 대결의 의미가 없었다. 단청보는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다.
계속 맞다 보니 아이가 달라지긴 했다. 씩씩거리며 성질을 부리고, 신경질을 부렸다. 눈이 불탔다. 독고무흔을 향해 헛방으로 내지르는 주먹질도 하고, 몸부림을 치기도 했다. 형편없이 의미 없는 짓이긴 했지만…….

영봉장, 후원의 작은 방.
장학선은 아이를 바라봤다. 처음엔 밥을 먹지 않고 울며불며 계속 시간을 죽였다. 계속 맞자 차츰 신경질을 내며, 부수고 뜯고 그랬다. 독고무흔을 물어뜯으려고까지 했다.
장학선은 독고검성에게 편지를 보내, 대결을 오 년 뒤로 미뤘다. 독고검성은 고개를 흔들며, 가망 없는 아이에게 허튼 희망을 갖는 장학선이 불가사의했다.
“하하, 이 녀석이 성질을 부릴 줄도 아네.”
아이는 씩씩거렸다. 손에 잡히는 것은 죄다 뜯고 찢었다. 얼굴에 노기가 가득했다. 밥을 먹는 즐거움도 잊은 채, 주먹을 쥐고 눈을 부라렸다. 양손으로 오른팔을 잡아당겼다.
“아바아바.”
장학선은 온화한 웃음을 지었다. 아이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해, 답답한 눈치였다.
“답답할 만도 하지. 정신줄도 놓고 뭔가를 말하고 싶은데 할 수는 없고 말이야. 하하!”
“아바! 아바!”
아이가 심한 분노를 느끼고 씩씩거렸다.
재미 삼아 독고무흔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주자 당장 찢어 버렸다. 종이가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벅벅 찢었다.
“오라, 네가 이 녀석에게 단단히 화가 났구나. 하하!”
아무리 바보라도 자길 계속 두들겨 패고 못살게 구는데 성질을 아니 부린다면 뭔가 이상할 일.
주기를 계속 짧게 하면서 아이는 분노를 느꼈다. 또 괴롭힘을 당하지 말아야겠다는 어떤 의지가 생겼던 것이다.
“아바! 아바!”
목소리가 더 커졌다. 장학선은 아이의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아파. 나빠.’를 표현하지 못하여, ‘아바아바’라고 했다. 아버지를 표현하는 말이 아닌 것은 아이의 표정을 봐도 능히 짐작됐다. 지능이 낮고 사리분별이 명확하지 못한데다 정신줄을 자주 놓았다.
“그래, 그 녀석을 때리고 싶지?”
“네!”
아이는 대답을 했다. 삼 년의 정성과 독고무흔과의 대결로 계속 치료를 해 주고 돌봐 줬다.
의사 표현은 충분히 못해도 알아듣는 말에 대해선 곧잘 대답했다. ‘네. 아뇨.’ 정도는. 처음 왔을 때보단 상당히 나아진 발전이다.
“얘야. 독고무흔은 너하곤 비교할 수 없는 유능한 자질의 무학기재다. 네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기긴 어려울 거 같은데?”
“아바. 아바.”
자기가 하는 말을 아이가 못 알아듣고 있었다. 자기가 너무 어려운 말을 썼다. 아이가 알아듣도록 쉽게 풀어줬다.
“그 녀석은 너보다 무척 드세. 한 대라도 때리려면 싸움을 할 줄 알아야 해.”
“사움. 사움.”
아이는 ‘사움사움’이란 말을 했다. 된 발음을 잘 못하는 아이였다.
사부님이 말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았다. 때리려면, 때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장학선도 아이가 독고무흔에게 일방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면서 뭔가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
“싸움을 배우고 싶니?”
“네.”
아이는 짧고 명료하게 답했다. 장학선은 아이에게 목표가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 이마를 긁었다. 아이의 자질도 형편없고, 정신도 온전치가 않았다. 독고무흔을 이기려면 난관이 너무 많다.
“싸움. 어려워.”
“아바아바.”
이대로는 아니 되었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자신도 기본적인 의술은 알고 있었지만 아이의 병증을 구체적으로 알 순 없었다. 고심 끝에 결정을 내렸다.
“네 몸이 안 좋아서 그러니 몸을 좀 좋게 해야겠구나. 그래야 싸움을 하지. 그 녀석을 때리고 싶다면 날 따라야 한다. 그럴 수 있겠어?”
“네.”
아이의 눈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그는 아이를 수레에 태웠다. 아이에게 붙어 있느라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었다.
모처럼 밖에 나갔다. 아이는 처음 보는 밖이 신기하기만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흰 종이나 다를 것이 없으니 재미가 쏠쏠하기도 했다. 때려 죽여도 모르는 건 모르니 아이의 수준에 맞춰 줄 수밖에 없었다.
일흔 여덟의 할아버지가 열세 살 꼬마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난화곡(蘭花谷).
꽃이 만발하여 꽃가루가 날린다. 나비가 하늘을 향해 활짝 날갯짓을 했다.
아이는 그저 좋아 죽었다. ‘히히’ 웃으며 꽃가루를 잡으려고 하고 나비를 잡으려고 했다. 몸이 너무 뚱뚱해 움직이지 못해 더 성질을 부리기도 했다. 아이의 이런 천진난만함은 거친 강호의 풍파를 거쳤던 장학선에게 신선했다.
“그럴 때가 좋을 때지. 세상만사 고민하기 시작하면 지금보다 더 정신줄을 놓을지 어찌 알고.”
천지괴협 장학선의 행차에 난화곡은 뒤집어졌다.
무림의 최고 고수, 강호에서 검신 독고검성을 빼면 그와 겨뤄 모두 패했다. 불패신화에 가까운 절대고수였다.
그의 위용을 본 난화곡의 아랫것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무림에는 독고검성과 제자 양성을 놓고 대결에 임했다는 소문이 자자하게 퍼졌다. 무림을 경천동지(驚天動地)로 몰은 희대의 사건이었다.

난화곡의 제자들은 수레에 타 세상물정 모르고 침만 질질 흘려대는 어수룩한 아이를 보자 웃음을 지었다.
“저분이 어떻게 되신 거 아냐?”
“듣자 하니 소검신 독고무흔에게 수십 번이나 일방적으로 맞았다던데.”
“일생을 괴이한 일만 하시더니 그예 망령이 드셨는지 저런 절대고수가 왜 그런 어이없는 짓을 했을까?”
장학선의 기행에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독고무흔에게 단청보가 수십 번이나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은 일은 불과 몇 달도 아니 되어서 무림에 좍 퍼졌다.
그의 형편없음과 볼품없음까지 적나라하게 소문으로 퍼졌다. 천지괴협의 제자는 무림최고의 바보로 정평이 났을 정도다. 천하무적 절대고수의 제자는 천하제일 바보 멍청이.
별칭은 천하우두(天下羽頭).
천하제일의 새 머리. 아이도 모르고 있는 자신에 대한 명성이다. 수십만 무림인들에게 이 아이는 천하우두로 통했다.
독고무흔에게 수십 번이나 두들겨 맞을 때도 찍소리 못하고 질질 짜기만 했다. 재밌는 별호가 하나 더 붙었다.
우두미종(羽頭黴種).
머리는 새머리요, 곰팡이 같은 종자라는 뜻이다.
사부의 대명을 다 갉아먹고 제대로 망신을 주고 있었다. 무림의 소문이 이토록 빠르다지만, 불과 일 년도 되지 않아 천하우두네 우두미종이네 하니 장학선도 신기할 따름이다.
수십만 무림인이 아는 것을 단 한 사람, 단청보 자신만 모르고 있었다.
모르니 뭐라 욕해도 그게 뭔지 모르고, 때려 죽여도 모르니 오히려 좋을 일이다.
아는 게 병이라는 말도 있듯, 차라리 모르는 것이 아이에게는 더 없이 좋을 약이다.
“너희들은 사람이 그리도 우스워 보이는 것이냐? 무림인이라면 넓은 마음씨를 갖고 있어야 하거늘! 천하우두는 뭐고, 우두미종은 뭐란 말이냐?”
“대선배님, 솔직히 말씀 드려 지금 저 아이가 저 상태로 칼이나 제대로 쥐어 보겠습니까? 소검신 독고무흔에게 수십 번이나 두들겨 맞았다고 들었습니다. 후배들은 도저히 대선배의 명성에 누를 끼치는 저 아이가 참으로 황당하기만 합니다. 스승의 위명에 먹칠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천지괴협 장학선을 동경하고, 존경하는 수많은 무림인들은 그의 괴이한 처사를 이해하지 못했다.
천하우두, 우두미종이란 별호다운 모습을 아이는 보여 주고 있었다.
어느새 이 아이는 독고무흔과 함께 무림의 유명 인사가 됐다.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가 무림제일의 유명 인사가 된 것은 순전히 사부 장학선의 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