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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천호협 1권(5화)
제一장 사부님과의 인연(5)


<5>

영봉장의 야산에 운동장을 만들었다.
흑표의 말처럼 사부의 필사적인 노력과 아이의 재활 의지에 달렸기 때문이다.
운동장의 거리는 십오 장에 이르렀다. 마음을 단단히 먹은 장학선은 단청보를 데리고 나왔다.
“오늘부터 여길 돌 거란다. 할 수 있겠느냐?”
“네.”
“다시 말하마. 그 녀석을 이기는 것은 정말 힘들다. 이기려면 필사적인 노력뿐이 없다. 그래도 하겠느냐?”
“네!”
단청보는 살아 있는 눈빛으로 대답했다. 몸이 여전히 뚱뚱했으나 마혈이 많이 풀려 조금씩은 거동을 했다. 난화곡에 갔다 온 이후로 몸이 정말 많이 좋아졌다. 침을 흘리거나, 멍해 있는 때에는 우황청심환을 먹였다. 증상이 한결 덜했다. 땀을 많이 흘릴 수 있도록 화로를 놓고 내력을 가했다. 지난 보름간 살을 빼기 위한 사투를 벌였다.
장학선이 아이의 두 손을 잡으며 슬슬 뛰었다. 아이의 걸음은 느려 터진 거북이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마음은 가는데, 몸이 안 움직여 ‘낑낑’댔다. 장학선은 아이를 차분히 달랬다.
“천천히 가자, 천천히.”
첫날은 겨우 수십 걸음밖에 못 나갔다. 둘째 날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며칠이 지나도 눈에 확연히 드러나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계속 땀을 흘리게 하고 불필요한 육식을 줄였다. 보해탕과 우황청심환을 먹이고, 머리의 경혈과 전신혈도를 내공으로 부드럽게 짚어서 지압했다. 연음지력(演陰指力)의 무공절기를 이용했다.
정성이 통했나 보다. 한 달이 지나자 이 장 정도를 걸어 나갔다. 조금 나아질 것 같이 보였지만 그 후로 그저 그랬다. 두 달이 지나서야 겨우 운동장 한 바퀴를 돌 수 있게 됐다.
장학선은 직접 뛰었다. 아이를 위해 한 번에 운동장을 뛰게 하진 않았다. 끊임없이 쉬었다가 다시 뛰어가게 했다.
석 달이 지나자 쉬지 않고 한 바퀴를 뛰었다. 살도 부쩍 빠졌다. 다리에는 근육이 차츰차츰 올랐다. 정신줄을 놓고, 오락가락하는 횟수도 점차 줄었다.
발음도 개선되고,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많아졌다. 곧잘 말문을 열기도 했다.
“자! 오늘부터 열 바퀴 돈다. 실시!”
“돈다. 실시!”
“네 이름은 뭐라고?”
“단청보입니다!”
“그래, 아주 잘했어. 그럼 열 바퀴 돈다. 실시.”
“돈다. 실시!”
장학선의 말에 따라 단청보는 열 바퀴를 돌았다. 속도도 차츰차츰 빨라졌다.
느림보 거북이였다가 보통의 여느 사람만큼 빨라졌다. 자기 이름도 모르던 단청보는 어느새 물으면 이름을 대답할 줄 알았다. 진즉 치료를 받게 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너를 통해 배우고 있었구나.’
단청보가 쉽게 지치는 것을 막기 위해 자기도 단청보의 속도에 맞춰 뛰었다. 경공술로는 천하절현이라 뛰기 시작하면, 수백 리도 순식간이다.
단청보는 그렇지 않았다. 함께 뛰니 단청보도 열심히 뛰었다. 옆에서 함께 뛰어 주니 더욱 열심히 뛰었다. 몇 달 동안 열 바퀴만 내내 뛰었다.

쉬었다가 뛰고, 쉬었다가 또 뛰었다. 채소와 나물을 많이 먹이고, 보해탕과 우황청심환을 꼬박꼬박 챙겨 먹였다. 지압을 하여 경혈을 풀어 줬다.
가끔씩 오락가락하면 다리를 오므렸다가 펴 주고, 팔을 오므렸다 펴 주었다. 끊임없이 내공을 불어넣었다. 단청보는 차츰 장학선을 부모와 같이 의지했다.
“이제부턴 오십 바퀴 돈다!”
“돈다. 실시!”
단청보는 오십 바퀴를 쉬지 않고 뛰었다. 뛰고, 또 뛰었다. 속도도 점점 더 빨라졌다. 장학선도 함께 뛰었다. 회초리를 들고 지휘하듯이 뛰었다.
단청보는 정말 열심히 뛰었다. 사부가 하자는 대로 했다. 사람들은 천하우두, 우두미종 단청보를 포기했다. 오히려 언제 명줄이 끊어질까가 관심사였다.
장학선은 그 모든 시선을 무시하고 아이와 함께 계속 뛰었다.
몇 달이 지나가 백 바퀴는 쉬지도 않고 계속 뛰었다.
백 바퀴는 차츰 두 배씩 늘었다.
이 년이 지나 단청보가 열다섯 살이 되었다. 하루에 발백 바퀴를 뛰었다.
단청보에게 힘이 붙자 장학선은 방법을 바꾸었다. 무조건 뛰던 것을 물구나무서서 뛰고, 뒤로도 뛰었다.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매달고 뛰었고, 양 어깨에 흙 포대를 얹어서 뛰어가게 했다.
“천 바퀴 돈다. 실시!”
“돈다. 실시!”
이젠 천 바퀴를 돌았다. 뛰고, 또 뛰었다. 지루하면 물구나무서기로 뛰었다. 싫증 나면 앞으로 구르며 돌았다. 지겨워지면 뒤로 구르며 돌았다. 다리를 죽 찢고 앞으로 나갔다.
단청보는 여전히 어눌하고 미숙했지만 이 년 동안 많은 말을 알아듣고 할 줄 알게 됐다. 장학선은 제자와 무척이나 뛰며 숱한 말을 하고 가르쳤다.
끊임없는 반복이었지만, 반복 속에 변화를 줬다. 팔굽혀펴기를 하루에 삼천 번을 시켰고, 앉았다가 일어나기를 삼천 번을 시켰다. 아주 빠른 속도로 하도록 끊임없이 시켰다. 지치면 쉬었다가 다시 했다. 마비가 되거나 쥐가 나면 경혈을 풀어 주고 다시 했다. 몸이 날렵해지고 온몸이 근육질로 변화했다.
수십 근이 넘는 흙 포대와 모래주머니를 들고 다녔다. 네다섯 개씩 붙였으니 이백 근이 넘는 육중한 흙 포대와 모래주머니가 단청보의 몸을 눌렀다. 단청보는 쓰러질 것 같았지만 필사적으로 참고 견뎠다.
옆에서는 응원하는 사부님이 계셨다. 땀이 나고, 쓰러지고, 자빠져도 입술을 깨물며 견뎌냈다. 자길 때린 사람의 이름이 독고무흔이라는 것을 어느덧 알았다. 그를 꼭 이겨야 했다.
‘웁!’
단청보의 의지력은 불굴에 가까웠다. 쓰러져도 포기를 모르고, 자빠져도 포기를 몰랐다. 땀이 나고, 정신줄을 놓을 때에도 포기를 몰랐다. 장학선은 그의 끈질긴 의지력에 탄복했다. 더욱 열심히 함께 뛰어 줬다.
변화도 더 많이 줬다. 재주넘기를 가르쳐 앞으로 돌고, 뒤로 돌고, 옆으로 돌게 시켰다.
‘우둑.’
뼈가 삐끗했다. 금이 가기도 했다. 장학선은 소뼈와 호랑이 뼈를 푹 삶고, 고았다.
우려낸 물을 단청보에게 꾸준히 먹였다. 허리뼈가 삐끗하고, 금이 가서 수개월을 고생한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단청보의 인내력은 대단하여 고통을 묵묵히 견뎌 냈다.
단청보의 곁에는 자신의 어떤 모습에도 타박하지 않는 강인한 사부가 있었다. 단청보는 차츰 사리 분별이 되기 시작했다. 사리 분별이 시작되면서 더욱 열심히 했다. 죽을 만큼 열심히 했다.
앞으로 돌고, 뒤로 돌고, 옆으로 돌기를 열 번에서 백 번으로, 다시 천 번으로 올렸다.
넘어지고 쓰러져 살이 까지고 피가 났다. 혼절하여 여러 날 꿈속에서 살기도 했다.
장학선은 동굴 속에서 박쥐를 잡게 시켰다. 단청보의 몸이 차츰차츰 날렵해졌다.
장학선 자신도 단청보를 격려하기 위해 직접 모래주머니와 흙 포대를 들쳐 매고 함께 뛰었다. 단청보는 열심히 따라했다.

한 해가 또 흘러갔다. 단청보는 몸이 정말 날렵하고 민첩했다. 힘도 무척이나 강해졌다.
수백 근이 넘는 바윗돌도 거뜬하게 들었다. 생각지도 못한 변화였다.
보해탕과 우황청심환 말고도 체력과 내공을 다지는 보약을 먹였다. 연음지력으로 경혈을 열심히 풀어 줬다. 말도 곧잘 했다. 말문이 전보다 많이 트였다.
“사부님, 힘드죠?”
“안 힘들구나. 너로 인해 힘이 난다. 앞으로는 사부님 힘들죠, 그렇게 말하거라, 알겠느냐?”
“네.”
장학선은 더는 말하지 않았다. 지금 이만큼 온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단청보가 그만큼 의지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나저나 글을 가르치긴 해야겠는데 단청보가 글을 배우는 것은 운동을 시키는 것보다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일자무식(一字無識)이다.
가로로 선을 하나 그으면 하나 일인데 가르쳐 줘도 며칠이 지나면 까마귀 고기를 구워 먹은 듯 까먹었다.
“글은 역시 무리구나.”
말도 제대로 다 트이질 않았는데 글을 바라는 것은 욕심이 지나쳤다.
보해탕과 우황청심환은 자기가 꼭 먹어야 하는 약인 것을 알았다. 먹고 나면 몸이 편하고 마음도 편했다. 삼 년 동안 바뀐 것이 많았다. 단청보가 스스로 밥을 챙겨 먹었고 약도 스스로 먹을 수 있게 됐다.
“청보야.”
“네, 사부님.”
“이만하면 네가 다져야 할 기초는 충분히 익힌 것 같다. 이제부턴 절세무공을 배워야 해.”
“저서무긍이 무하는 거여요?”
“저서무긍이 아니고 절세무공.”
“저서무긍…….”
이런 일이 하루 이틀이 아니니 가볍게 넘겼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니 아주 쉽게 요약하는 것이 좋았다.
“절세무공은 싸움을 배우는 거란다. 일단 그리 알아 둬라.”
절세무공이 어찌 싸움을 배우는 것이란 말인가. 심신을 단련하고 수양할 뿐만 아니라 나를 지키고, 상대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을 무(武)를 통해 배우는 고차원 적인 철학이다.
단청보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지금으로선 시기상조였다. 머리가 나빠 제대로 받아들이질 못할 것이다.
“네, 사부님.”
싸움을 배운다고 하니 설레었다. 독고무흔에게 무자비하게 맞아 너무 아프고 괴로웠다. 한두 번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끝이 없이 맞은 것 같다.
사부의 말로는 수십 번을 그리 당했다고 했으니 억울해도 너무 억울했다. 자기가 왜 맞아야 하는지도 몰랐다. 서럽고, 분하고 원통했다.
“너에게 전수할 절세무학은 일단 네 가지로 가닥을 잡았다. 경공술과 보법, 신법을 위주로 하는 잠영비공술(潛影飛空術)과 권장 무예 연음신도장(演陰神刀掌)이다. 마지막으로 무림 최고의 상승 내공인 연음신공(演陰神功)과 도법인 낙영일섬도(落影壹閃刀). 하지만 네 수준으로 그런 절세무학을 연마할 수는 없는 노릇. 차차 단계를 밟아 그 단계에 이르게 할 것이야.”
“…….”
눈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장학선은 순간 아차했다. 적지 않은 말을 알아듣고, 말문이 많이 트이긴 했지만… 단청보의 수준은 여전히 열다섯 다른 또래와 비교하면 많이 떨어졌다.
체력이나 완력은 처음과는 비교할 수 없이 좋아졌지만, 머리는 아직까지 잘 돌아가지 못했다.
“하하, 사부가 미안하구나. 더 잘 뛰고, 더 잘 싸울 수 있는 것을 가르칠 거란다.”
자신이 가르쳐 줄 잠영비공술, 연음신도장, 연음신공, 낙영일섬도는 그 자체만으로도 무림의 최고 상승 무학이었다.
단청보는 아무것도 몰랐다. 자기가 천하우두네 우두미종으로 불리는 것을 알 리가 없었다. 그가 아는 것은 사부의 존재와 자신의 존재 정도였다.
사부님과 함께하면서 사부님의 말을 어느 정도는 알아듣고 곧잘 답할 수 있는 것이 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