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도천호협 1권(6화)
제二장 무공 수련(武功修鍊)(1)
<1>
내가 무공을 수련하기 시작한 것은 열다섯 살 때부터였다. 내 나이와 세월 가는 흐름. 사부님의 의중을 많이 알아가며 몸이 많이 좋아진 것이 그때였다.
사부님의 제자가 된 지 오 년만의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난 한심한 놈이었다. 지금처럼 머리가 트이고 세상 물정을 알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장학선은 어려운 것을 피하고 단청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부터 차분하게 시작했다.
시험도 해 볼 겸 깊은 산골로 데려왔다. 이름 모를 이상한 산골로 들어온 단청보는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장학선은 단청보에게 새로운 가르침을 주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실전적인 면부터 터득하게 하고선 이론을 가르쳐야겠어. 이건 무슨 초식 저건 무슨 초식 이랬다간, 이 녀석이 전혀 알아먹지 못하고 혼란에 빠질 것이 분명해. 되도록 쉽게 가르쳐야지. 지난번에도 그랬으니 이번엔 그러면 안 되겠지.’
단청보는 삼 년 동안 운동으로 다져졌지만 낯선 환경에 극심한 두려움을 가졌다.
땀이 줄줄 흘렀다. 동풍의 풍의증은 정신적으로 심한 긴장이 일어나거나, 환경이 심하게 바뀌면 불안한 증세가 일어났다. 삼 년 동안 옆에서 그 병을 지켜봐 왔으니 흑표만큼 의술에 밝지는 못해도 그 병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생겼다.
‘쏘옥.’
우황청심환과 청심보단을 먹였다.
“청보야, 네가 항상 집에만 있을 수는 없단다. 앞으로 어디에서 무엇이 나타나거나 생길지 모른다. 변화가 생기더라도 차분해져야 한다.”
“네, 사부님.”
단청보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대답했다. 사부님과 함께 있으면 그곳이 어디든 무섭지 않았다. 장학선은 숲에서 무공을 가르쳤다.
휙.
탁!
허공을 차고 올라가 나무 위에 방울을 세 개 매달았다.
“네가 할 것은 바로 저 방울을 따오는 것이다. 나처럼 해 봐.”
장학선은 몸소 시범을 보여 줬다.
장학선의 시범을 본 단청보는 위로 몸을 띄웠다. 하지만 자기 키 만큼도 올라가지 못했다. 기껏해야 오 척도 안 되는 높이를 오를 뿐이었다.
내공의 심법과 이론도 모르고, 경공술의 요결을 알지 못하니 당연한 현상이다. 이 일을 어찌해야 할까. 장학선은 이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다른 방법을 모색했다.
“안 되겠다. 밧줄을 걸어 줄 것이니 밧줄을 타고 올라가서 방울을 가져오도록.”
“네.”
장학선은 삼 장 높이에 있는 나무 꼭대기에 방울을 매달고 밧줄을 걸었다. 밧줄을 걸고는 자신이 직접 올라가서 방울을 가져오는 시범을 보여 줬다.
단청보는 사부의 시범을 보고 밧줄을 타고 올라갔다. 지난 삼 년 동안 열심히 체력을 다지고 운동을 시켰다. 올라가는 것은 단청보에게 쉬웠다. 시범까지 봤으니 여유롭게 올라갔다.
장학선은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는 것을 계속 훈련시켰다. 훈련이 계속되면서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시각을 차츰차츰 줄여 갔다.
단청보는 열심히 올라가 방울을 따 오게 하는 훈련을 반복했다. 같은 훈련을 팔백 회 이상 반복했다.
며칠이 지나자 조금 나아지는 것 같더니만 제자리였다.
한 달이 지나서야 시간이 많이 단축됐다. 운동과 별도로 매일 나무 꼭대기 방울을 따는 훈련을 시켰다.
허공으로 몸을 띄운 후, 발로 차서 오르는 유장공(維掌空)의 수법을 가르쳤다. 잠영비공술을 익히려면 유장공의 수법은 필수였다.
단청보는 그게 유장공인지 무엇인지 모른다. 그저 허공으로 몸을 띄운 후엔 발을 서로 짚고서는 더 위로 올라갔다.
두 달이 지나자 밧줄 없이도 삼 장 높이에 있는 나무에 매달린 방울을 따 왔다.
그동안에 연음신공의 내공 수련법을 가르쳤다. 구결은 가르치지 않았다. 호흡법과 혈도와 경락으로 기를 순통시키는 방법을 직접 행동으로 보여 줬다. 수련하는 것을 직접 시범으로 보여 주고, 그 행동을 자세하게 나타냈다.
행동으로 보여 주니 어느 정도는 그대로 따라했다. 처음에는 수백 번을 반복해도, 제대로 된 호흡법과 혈도와 경락의 기를 순통하는 법을 몰랐다.
경공술보다도 두 달은 더 지나서야 구결은 몰라도 하는 것은 그대로 따라했다.
단전에 내공이 쌓이기 시작했다. 수련의 효율을 높여 주기 위해 장학선은 영봉장의 지하 석실에 있는 만년옥침상(萬年玉枕牀)에 올렸다. 만년옥침상은 영약은 아니지만, 일 년을 수련해도 이십 년의 수련과 같은 역할을 했다.
단청보가 내공으로 혈도를 뚫고 기를 순통하면 정신이 더욱 맑아지고, 받아들이는 것을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다는 흑표의 말도 있었다.
아직까지 보통의 여느 사람과 같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는 잘 따라왔다.
만년옥침상은 다른 제자들에겐 맛보기로만 보여 줬다. 직접 수련시키는 것은 단청보에게 준 혜택이기도 했다.
영약도 없는데 이보다 더 좋은 혜택이 어디에 있을까?
“여기서 자면 편할 게야.”
“네.”
장학선은 연음신공을 수련시키면서 만년옥침상에서 자게 했다. 운동, 경공, 내공을 끊임없이 반복해서 가르쳤다. 앵무새보다 더 반복해야 함에도, 반복을 감수했다.
한 번 해서 쏙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반복보다 좋은 것이 없었다. 다른 이를 이 정도 가르쳤다면 무림에 나가 절정고수 소리 들었을 것이다.
머리만 좀 돌아가고 맨 정신이라면 질질거리는 시정잡배도 일류고수로 만들 수 있었다.
단청보는 머리 자체가 돌아가지 않았다. 정신줄도 가끔 놓았다. 대신 좋은 점도 있었다. 의지력과 인내력 하나는 최고였다. 어떤 반복과 훈련에도 끝까지 따라왔다. 포기라는 것을 몰랐다. 그 반복과 훈련 속에서 때로는 지나쳤던 변화를 찾아냈다. 질리기 시작할 때면 변화를 많이 줬다.
머리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서 변화를 시키다 보니 하나를 해도 제대로 했다. 그 속에 숨은 변화까지 모두 터득했다.
모래와 흙을 퍼다 놓고선 때리는 것을 연습시켰다. 수준을 조금 높여 모래주머니와 흙 포대가 막 날아다니면서 공격하는 곳에서 훈련시켰다. 처음엔 무척이나 두들겨 맞았다. 피할 줄을 몰랐다. 하나부터 열까지 쉬운 것이 없었다.
“피하고 방어하고 공격하는 것을 가르치려면 머리를 더 잘 굴려야겠는데.”
바보에 가까운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최소한의 평범함을 갖고 있는 자를 가르치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참신하게 머리를 굴리지 못하면 제자가 받아들이지 못하고 맞기만 할 것이다.
좋은 점도 있었다. 워낙 맞고 살아서 그런지 어지간히 맞아서는 아픔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전에는 무척이나 질질 짜더니 이젠 그렇지 않다.
비명 소리는 고사하고 울음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대단한 의지력과 인내력이다.
단청보의 장점이 무엇인지 장학선은 깨달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의지력과 인내력이었다.
“청보야.”
“네, 사부님.”
“무조건 들이받으려고 하면 안 돼는 거야.”
장학선은 직접 시범을 보였다.
위에서 떨어지는 흙 포대, 아래에서 굴러오는 모래주머니, 좌우에서 날아드는 흙 포대와 모래주머니, 상하좌우에서 협공할 때, 기관 시설을 만든 것은 그런 이유였다.
스르르륵.
잠영비공술의 보법과 경신술을 밟아 가며 유유히 피했다. 단청보도 따라 했다.
스르르륵.
퍽!
바로 날아드는 흙 포대에 맞았다. 위에서 떨어지는 흙 포대는 피했는데, 옆에서 날아드는 흙 포대에 맞은 것이다. 완력이 드셌지만 힘에 밀렸다.
장학선은 단청보의 완력으로 부수기 어렵게 해 놓았기 때문이다.
“다시 돈다, 실시!”
“돈다. 실시!”
장학선은 몸을 날렸다.
스르르륵.
전부 피했다. 단 한 개의 주머니도 장학선을 때리지 못했다. 단청보도 사부를 따라 했지만 정통으로 옆구리를 맞았다. 워낙 운동으로 단련되어 이젠 아무것도 아니었다. 거듭 시도했다. 삼십 번을 시도해도 계속 맞았다. 단청보는 더욱 열을 올리며 뛰어들었다.
퍽!
또 밀려 나왔다. 이제 백 번을 넘어갔다.
장학선은 계속 시범을 보여 줬다. 그 시범이 백 번, 천 번이라고 해도 그는 보여 줬다. 단청보는 그 시범에 따라 계속 시도했다.
첫날은 역시 무리였다. 덕분에 경공, 무공, 운동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고안했다.
‘바로 이거야. 따로따로 훈련을 시키기보다 이걸 더 복잡하고, 나도 피하기가 참으로 까다로울 정도로 해야겠어.’
자기가 쥐어짤 수 있는 모든 머리를 쥐어짰다. 상하좌우, 전후의 여섯 방향에 육십사괘에 걸쳐 배치했다.
자기가 생각해도 경이로웠다. 단청보 몰래 도전했다. 자기가 만들어 놓고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얏!”
후루루룩.
오직 피하기만 하고자 한다면 자신조차도 이걸 다 피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울 정도로 기관을 다채롭게 만들었다.
퍽!
자신도 이 진을 통과하는데 네 번을 맞았다.
“하하. 내가 만들어 놓고도 당해 버렸군. 흐흐. 오직 경공술로만 피하며 통과할 것 같으면 나 같은 고수도 한 번엔 안 되겠는데.”
다섯 번째를 시도하면서 그 주변을 파악했다. 이제는 한 대도 맞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었다.
단청보에게 복잡한 말과 글을 설명하는 것보다 복잡한 기관에서 경공술과 박투술(搏鬪術)을 연마하게 하고, 내공을 계속 연마하게 하는 것, 구결과 요체, 초식은 전부 무시하고 무조건 이 기관을 뚫게 만드는 것이다.
해서 진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장학선 자신도 경공술로만은 열 번을 시도하고서 그 다음부터는 한 대도 맞지 않을 기관을 만들었다.
오행육십사괘토진(五行六十四卦土陣).
기관진식은 참신한 것은 아니었다. 참신하진 않았지만 단청보에게 무공을 연마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시설이기도 했다.
때로 참신하지 않은 속에서 변화를 많이 주면 의외로 참신한 것이 나올 수도 있었다.
“청보야. 사부가 먼저 할 테니까 네가 이 사부를 보고 그대로 따라 하거라.”
“네.”
장학선은 먼저 들어가서 요리조리 피하면서 진을 빠져나왔다.
단청보는 사부가 하는 것을 한 번 보고 그대로 따라 했다.
퍽!
바로 맞고, 힘에 밀려 나왔다.
“다시!”
장학선은 또 시범을 보였다.
단청보는 그대로 시도했다. 역시 힘에 밀려 나왔다. 그러기를 하루 종일, 수백 번이나 반복해서 시도했다. 끝없는 실패의 연속이다.
며칠 동안 했지만 크게 진전은 없었다. 한 달이 지나자 진의 반을 통과했다. 두 달이 지나자 진의 삼분의 이 정도를 통과했다. 석 달이 지나자 거의 통과를 앞뒀다. 사 개월이 지나자 진을 통과했다.
장학선은 그 사 개월 동안 하루에도 수백 번이나 같은 행동을 반복해서 시도했다. 질리면 다른 변화를 줬다. 이렇게도 바꿔 보고 저렇게도 바꿔 봤다. 단청보는 그것조차도 따라 했다.
사 개월이 되자 그 진에서는 장학선이 어떻게 움직여도 단청보는 그대로 따라 했다.
“청보야, 이제 사부가 먼저 들어가지 않을 것이니 네가 먼저 해 보거라.”
“네.”
단청보는 진에 들어갔다. 사방팔방에서 흙 포대와 모래주머니가 마구잡이로 윙윙거리며 날아들었다.
스르르륵.
한 대도 맞지 않고 무난하게 통과했다.
장학선은 기분이 좋았다. 비로소 이 아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차츰 해법이 서고 있었다.
“그럼 네가 생각나는 대로 들어가.”
단청보는 사부가 시키는 그대로 그 진을 수십 번이나 들어갔다가 나왔다. 수십 번 모두 같은 방법은 확실히 아니었다. 변화가 무척이나 심했다. 다리를 살짝 틀고 몸을 뒤로 뺐다가 앞으로 밀었다. 잠영비공술의 요체를 온몸으로 소화시키고 있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
넉 달 동안 지겹도록 진과 씨름했다.
단청보는 이제 진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훤히 알았다. 심심했는지 직접 만들어 보기까지 했다. 심지어는 사부가 만든 것보다 더 요상하게 만들었다. 더 복잡하고 더 변화무쌍했다. 흙 포대 속에 또 다른 흙 포대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올 정도였다.
“와! 네가 이걸 만들었어?”
“심심해서요. 사부님 해 보세요.”
“그려. 나도 해 보자.”
그동안 온갖 변화를 다 익힌 장학선은 단 한 대만 맞았다. 단청보는 사부가 맞는 것은 보지 못했다. 내공이 아직 뒤떨어졌기 때문이다.
“대단하다.”
그는 다시 시도했다. 그제야 한 대도 맞지 않고 나왔다. 장학선은 이토록 무서운 아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청보… 너에게 이런 무서움이 있었단 말이냐?’
끊임없는 반복이란 틀 속에서 갖게 되는 작은 변화. 그거 하나하나까지 끝없이 반복하니 단청보는 그것을 자기 것으로 소화시키고 있었다.
장학선은 참으로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단청보는 가망이 없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리 모자라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효과적으로 가르치면…….’
단청보를 가르치면서 스스로가 깨우치지 못했던 것을 깨우쳤다. 멍청한 제자 덕에 이 멍청이를 바꾸기 위해 연구했다. 연구를 하다 보니 자신에게 부족했던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