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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천호협 1권(8화)
제三장 독고무흔과의 대결(1)
<1>
사부님 외에는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이 없었다. 아무도 자길 사람으로 생각해 주지 않는다. 눈물이 앞을 가려 견딜 수 없었다. 왜 살아 있는지, 부모는 왜 태어나게 했는지, 사부님은 자신를 왜 거뒀는지 극심하게 혼란스러웠다.
“마음에서 끌리는 대로 행하는 것은 좋으나, 그 뒤를 정리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닌 게야.”
“왜… 왜…….”
“청보야.”
장학선은 말없이 단청보를 끌어안았다. 오른쪽 팔밖에는 없었지만 푸근한 마음으로 끌어안았다.
단청보는 서럽기만 했다. 다른 사람이 그러는 것은 참을 만 했는데 예쁜 누나들까지 그러는 것은 참기가 힘들었다.
“사부를 보아라. 나도 한쪽 팔을 잃었지 않느냐? 다른 사람들은 그리 생각하지 않았었지만 나 역시 스스로에게 괴로웠지. 팔이 한쪽 없는 나는 누구와 싸워도 안 될 것이니까. 하나 그것을 극복하고 나니 그것이 오히려 날 더 강하게 만들었단다. 청보야, 다른 사람들이 헐뜯고 무시해도 네 스스로가 바르면 언젠가는 널 인정하게 되어 있단다.”
“사부님.”
장학선이 자질도 역량도 당장 뚜렷하게 발전하기 어려운, 소위 모자라는 사람을 고른 이유였다.
자신이 가장 어려웠을 때 그의 옆에는 친구 독고검성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일 년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면서 스스로에게 심한 괴로움을 가졌다. 지금까지의 무공이 허망하게만 느껴질 정도였다.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다.
냉정하게 따졌을 때, 잘나가는 사람에게 아부하긴 쉬워도, 어려운 사람을 안아 주긴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현실감을 뼈저리게 느낀 그는 자기도 모르게 세상과 담을 쌓고, 영봉장에 틀어박혔다. 칠 년 동안 틀어박혀 무림과의 교류를 끊었다. 그동안 새로운 무공을 창안했고, 그것으로 네 가지의 절기를 따로 만들었다.
그 이후 마음을 정돈하고는 삼 년 동안 무림에서 온갖 악인들을 처단하고, 독고검성을 기다렸다.
무림은 다시 살아난 천지괴협의 명성에 감히 어쩌지 못했다. 천지괴협의 호걸담은 아무리 늘어도 끝이 없으니, 무림인들은 그를 진정으로 존경했다.
진정한 영웅은 위기에 굴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줬다. 한쪽 팔이 없이도 갖은 악인들과 거마들을 처단했다.
독고검성도 그의 실력에 다시 한 번 탄복하고 인정했다.
사부의 격려와 위로에 단청보는 무한한 안정감을 누렸다.
“감사합니다!”
단청보는 꿋꿋하게 말했다.
장학선은 그런 단청보가 참으로 기특했다. 사람들은 이 아이의 진가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언젠가 너는 무림을 제패하는 무적의 호걸이 될 것이니 그때는 필히 경천동지하리라.’
확신을 넘어 반드시 그리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모자라다고 손가락질을 받는 사람이, 어느 순간에 천하무림의 최고가 되어 있다고 생각해 봤다. 현실은 아니지만, 상상만으로도 얼마나 좋을 일인가?
그때 사람들이 입을 충격은 기연을 얻어 무림을 휩쓰는 신예 고수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청보야, 지금은 너의 진가를 알아 주지 않는다고 해도 마음에 담아 두지 마라. 세상을 향해 당당하려무나. 사람들은 너의 모자람을 힐난하며 재미를 느끼고 있지. 바보는 때로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천재가 되기도 한단다. 세상은 언제나 한쪽 면만 있지 않아. 반드시 그 반대되는 면도 존재하는 법. 풀이 죽어 있을 필요는 하나도 없는 게야. 세상에 예쁜 누나가 영봉장에 있는 사질들뿐이더냐? 세상에 우뚝 서는 날 많은 여자들이 네 앞에 옷 벗겠다 줄을 설지도 모르는 일이지.”
“정말요?”
단청보는 눈이 초롱초롱 맑아졌다.
장학선은 죽 말을 해 놓고 보니 머리를 슬며시 긁었다. 많은 여자가 옷 벗겠다고 줄을 설 남자는 단청보가 아니었다. 사람에겐 그 사람에게 있는 특유의 기품이 존재한다. 풍류남아가 있다면, 의혈남아가 있는 법.
“하하! 마지막 말은 솔직히 취소다. 너에겐 그런 기품이 없으니까. 확실한 것 하나는 장담하마. 너에게 한 번 빠진 여자는 죽어서도 귀신이 되어 널 지켜 주려고 할걸? 흐흐흐, 무슨 말인지는 네가 살아 보면 결국 알게 될 터.”
풍류남아에게는 아름다운 절세미녀가 줄을 지어 따르고, 의혈남아에겐 곧은 절개와 애끓는 정을 가진 일세가인이 따르는 법이다.
단청보는 무슨 뜻인지는 몰랐지만, 기죽지 말고 당당해지라는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장학선도 제자의 등을 쓸어 주며 말했다.
“그래. 그렇게 기운을 내야 천지괴협 장학선의 제자지. 모자라도 비굴하지 말고, 자질은 없어도 비열하지 않으면 되는 거란다.”
“네, 사부님.”
잔잔한 웃음. 사람의 마음에는 명분과 실리라는 명제 속에 항상 갈등하는 모순이 있다. 청보가 그것을 이해하려면 아직도 멀었지만, 무학에 정진하며 자신의 의지를 다지고 노력하는 모습은 참으로 좋았다.
부족하고 모자랐지만 비열하거나 비겁하지 않았다. 부족한 것을 알았다면, 무엇이 부족한지를 생각해 채우려고 하는 마음. 장학선은 제자에게 흡족했다.
풍릉곡(風稜谷).
잔잔한 바람과 푸르른 숲이 울창하게 퍼져 있다. 지저귀는 새소리는 여름의 향취를 머금고, 싱그러운 햇살은 따뜻하게 뿌려졌다.
짹짹.
참새 소리가 귀를 울렸다. 듣기만 해도 마음을 푸근하게 하는 자연의 소리. 세상에서 가장 티 없이 맑은 소리였다.
“세상사 별별 녀석들과 씨름하는 것보다, 이렇게 조용한 산속에서 자연과 함께하는 것이 늙은이에겐 더없이 좋은 게지.”
독고검성은 풍릉곡에서 산 지 사십 년이나 됐다. 친구 장학선에게서 편지가 오자, 구월 이십오 일에 찾아가겠다고 약속했다.
천하의 천지괴협이 말년에 왜 그런 모자란 제자를 거둬 피곤하게 사는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속에 들어가 확인해 보고 싶다. 수염을 쓸어내렸다.
“아버님. 장학선 대선배님의 제자는 많이 발전했다고 하나요?”
“몸이 좋아졌다고 하더구나. 그만하면, 최소한 칼 잡는 척이야 하겠지.”
“솔직히 이 대결은 아버님의 승리로 끝난 것이 아닙니까?”
“허허. 너무 낙관하지 마라. 상대는 천지괴협이야. 제자가 아무리 모자라도, 사부의 진전을 어떤 식으로든지 받을 것이다. 속된 말로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하지 않더냐?”
“그야 속된 말이지, 솔직히 그 아이는 별로 재능이 없는 아이가 아닙니까? 둔재도 아닌 희망이 없는…….”
독고검성은 아들의 말에 수긍은 하였지만, 사람을 너무 무시하는 아들의 발언은 경계가 됐다.
자기보다 못하면, 무조건 낮게 보는 것은 무인의 바른 자세가 아니었다. 바르지 못한 행동을 했을 때는 하다못해 어린아이에게 꾸지람을 듣더라도, 그것을 달게 여겨야 비로소 큰 사람이 되는 것이다.
“무흔아, 너의 큰 문제는 너보다 못해 보이는 사람을 너무 깔보고 무시하는 것이다. 이 승부는 몇 년 치기로 끝날 일이 아니야. 장학선 그 친구의 말대로 적어도 사오십 년은 봐야 하는 승부다. 몸이 좋아져 칼을 잡기 시작했다면, 앞으로 수십 년 뒤에는 어찌 바뀔지 모르는 법. 물론 그 아이와 같이 둔재다 못해 갔다 버릴 정도로 못하다고 해도 경우는 지켜야 하는 것이야.”
“예, 아버님. 소자가 앞으로 새기고 명심하겠습니다. 하옵고…….”
“오라, 이제 많은 군웅들을 물리쳤으니 아주 뛰어난 고수와 대련을 하고 싶은 모양이구나.”
“그렇습니다.”
독고검성은 기분이 좋았다. 아들이자 수제자가 이렇게 성장하여, 이제 천하의 일대종사라는 무림의 명사들과 겨룰 만큼 성장했다.
아들의 무공은 내공이 쌓이는 일류고수의 단계인 진일원기(眞一元氣)를 거쳐, 고단의 내공을 쌓은 절정고수의 단계인 절용상기(絶踊常氣)의 경지에 도달했다. 조만간 상승 무공을 완성하고, 절세 무학을 터득할 차례가 오고 있었다. 이 속도라면, 반년만 지나도 내공이 상명화기(上冥化氣)의 상승 단계에 이를 것이다.
제자로 거둔 지 칠 년 동안 총명한 자질로 훌륭하게 성장했다.
“그러나…….”
독고검성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무림에서 한다 하는 고수들과 겨뤘다. 지금까지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적어도 지난 달까지 합치면 백 명은 넘게 이긴 것 같았다.
이제 시시하게 고수 소리 하는 것보다 정통무골이라 할 수 있는 일대종사들과 겨뤄보고 싶은 것이다.
“왜 그러십니까? 소자의 재능으론 아직 안 된다는 것입니까?”
“넌 아직 그들과 겨루고, 네 부족한 점을 찾아 익혀야 할 때야. 어찌 천하의 일대종사들과 겨룬단 말이냐? 아마도 넌 일 초 반 식도 못되어 패하고 말 것이야.”
“소자가 지금까지 절용상기의 공력을 쌓았는데 그리 쉽게 지겠습니까?”
“쯧쯧. 천하의 일대종사들은 내공은 순청극기(純淸極氣)의 깊은 경지에 있어. 그들은 오랫동안 많은 적수와 폭 넓게 상대하여 깊은 무공을 쌓은 정평 있는 고수들이야. 너 같은 신출내기가 도전할 상대가 아니란 말이지. 나도 그들을 이기려면 백 초식은 섞어야 이길 수 있거늘 네가 무슨 수로?”
“그래도 소자의 견문이 넓어지도록 그들에게 한 수 가르침을 얻고자 합니다.”
“그런 의도라면 괜찮겠구나. 시시한 상대와 싸우기 보단 무명이 높은 일대종사들과 싸우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새외까지 가는 것은 너무 머니까 그렇고, 아무래도 정, 사의 일대종사들과 겨루는 것이 좋겠구나.”
“중원무림에는 정파사현(政派四賢)과 사파삼절(邪派三絶)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의 실력이 아버님께서도 백 초식은 상대해야 할 초절한 고수라면, 제가 가르침을 받아 마땅한 고수라 생각됩니다. 아버님께선 현천기경(現天氣境)의 공력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네가 아주 잘 보았다. 정파사현과 사파삼절의 성취는 순청극기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무공을 정통으로 수련하여, 명문대파의 수장을 차지하고 있지.”
정파사현(政派四賢)과 사파삼절(邪派三絶).
새외를 제외한, 중원무림의 정사에 걸쳐 있는 가장 뛰어난 고수들이다.
그들이 정파사현, 사파삼절이라는 칭호로 불리게 된 것은 지금부터 칠 년 전의 일이었다.
천지괴협 장학선도 그들과 겨뤄 모두 완승했을 정도였다. 독고검성도 그들과 한 번 겨뤄 봤었다. 대략 백 초식 하고도 십여 초식은 더 겨뤄서야 쓰러뜨렸다. 무공의 독보적인 경지에 이른 것이 분명했다.
정파사현은 정파의 네 종사들을 이름 한다. 소림방장 불성무현(佛聖武賢) 문광(文光), 무당장문 도경진현(道經眞賢) 청허(靑虛), 개방방주 협사공현(俠士公賢) 오약종(吳葯宗), 공동장문 천수종현(天修宗賢) 장천종(張天宗)을 일컬어 정파의 사현으로 불렸다.
사파삼절은 녹림흑도를 일통한 흑월신교(黑月神敎)의 교주 창무신절(槍武神絶) 염황번(閻皇繁), 무림제일의 독과 암기에 정통한 독산장파(毒珊長派)의 장문인 독수사절(毒手邪絶) 만유광(萬幽廣), 실연을 당하거나 버려지게 된 한이 서린 여인들이 모인 참정신궁(斬情神宮)의 궁주 참정무절(斬情武絶) 연옥선(燕玉璿)을 일컬었다.
중원무림의 칠대종사(八代宗師)로 정파사현과 사파삼절로 나눠 불렀다. 이들의 인품과 무학은 장학선, 독고검성의 뒤를 따를 만했다. 순청극기에 달하는 압도적인 내공과 깊은 절세무학을 터득하여, 독보적인 경지에 이른 초절한 고수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이른 경지는 순청단화(純靑端華) 또는 극성도단(極盛道壇)이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