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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천호협 1권(10화)
제三장 독고무흔과의 대결(3)


<3>

영봉장.
독고검성의 양자 독고무흔이 무당파 장문진인 청허에게 가르침을 받은 사건은 강호에 퍼졌다. 비록 일격에 패하긴 했지만 천하 무림의 일대종사 반열에 오른 초절한 고수에게 대련을 시도할 정도로 독고무흔은 승승장구했다. 도손들이 찾아와 불만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태사부님. 사숙은 희망이 없습니다.”
남해파의 장문인 임호진(任鎬眞).
그는 태사부의 기행을 더는 눈 뜨고 봐 줄 수 없었다. 남해파의 좌하, 일동예가의 제자 오천을 망신시키는 일이었다. 또 영봉장과 이하 도관의 삼천을 망신시키고 있었다. 태사부의 사문에 속하는 무인 팔천 명이 터무니없는 자질을 가진 멍청한 사숙 때문에…….
우두미종, 천하우두라니!
“허허. 갑자기 찾아와 이게 무슨 짓이냐? 그래도 사숙인데 감히 사문의 예법을 어기고 반기를 들겠다는 것이냐?”
“어찌 태사부님께 항명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검신 선배의 양자를 사숙은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도저히 불가능한 대항마입니다. 지금까지 밥만 축내고 크게 성취를 본 것도 없지 않습니까?”
“쯧쯧. 그 아이의 진가를 이리도 모르다니. 지금은 몸도 많이 좋아지고, 정신도 차츰 나아지고 있어. 최소한 경공과 박투술 하나는 확실하게 익혀, 아주 제법이야. 가끔 안 좋을 때야 있지만…….”
“태사부님께서 공력을 전이하고, 수련을 도모하시니 일시적으로 그럴 수 있다 여깁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틀린 사람입니다. 오늘도 침이나 질질 흘리며, 청심보단을 먹고 잠이나 자고 있지 않습니까? 이래서야 칼이나 제대로 잡을 수 있겠습니까? 저런 분이 어찌 사숙입니까?”
“허허! 강호에서 싸우다 악인에게 다친 네 사부를 난 장문인으로서 일을 하도록 해 주었다.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는 사람인데도 문중을 얼마나 잘 영도했느냐?”
“태사부님. 그것은 강호에서 의협의 일을 하다 다친 것이고, 무림과 사문을 위해 공을 세워 그리된 것입니다. 이 일과 그 일은 결코 같은 범주가 아닙니다. 솔직히 바보 사숙이 사문을 위해 한 것이 무엇이며, 무림에 세운 공이 뭐가 있습니까?”
임호진의 불만은 장학선도 이해가 됐다. 영봉장의 사손들도 툭하면 태사부의 이런 어이없는 기행에 불만을 토로했다.
중원무림 정파의 최고 어른으로, 가장 지위와 명망이 높은 장학선. 그가 왜 이토록 노망이 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문이나 무림을 위해 세운 공적이 없다는 것은 나도 알아. 하나 내 적전제자이니 앞으로 그런 항명은 내가 살아 있는 한 다시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니 그리 알라!”
“태사부님의 뜻이 그러시니 소손이 무슨 말씀을 드리리까. 하지만 사문의 이름을 빛내고, 무림을 위해 확실한 공을 세우지 못한다면… 사숙으로서의 합당한 대우는 소손으로서도 해드릴 수 없습니다. 이 점만은 통촉하여 주십시오. 검신 선배의 양자는 벌써 청허 진인과 대련을 할 정도로 성장하였다고 합니다. 대체 사숙은 지금 그게 무슨 꼴입니까?”
“아무리 사숙이 못났더라도 그런 식으로 놀리는 것이 사문에 먹칠을 하는 것임을 모르는 것이냐? 어찌 이리도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고! 태사부도 다 생각해 둔 것이 있으니 앞으론 그런 소리는 꺼내지 말라.”
“소손은 태사부님의 위업과 대명을 잘 알고 있습니다. 부디 현명치 못한 판단으로 산천초목마저 떨게 했던 천지괴협의 존명을 허물지는 마십시오.”
임호진의 말소리에 울먹임이 있었다. 심히 떨렸다. 자신의 목숨과 모든 것을 걸만큼 태사부의 위명은 장대했다.
사숙의 일만 제외하곤, 다른 몇 가지의 기행들은 태사부의 성격상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사숙의 일에는 왜 이다지도 가슴이 쓰라리단 말인가. 사숙으로 인해 입방에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것이 매우 속상했다.
“너희들의 고충은 이해한다. 그러니 앞으로 삼 년 정도만 참도록 하여라.”
“삼 년 정도를 참으라 하심은?”
“그것까진 알 것 없고, 그만 물러가라.”
장학선도 제자와 도손들의 우려를 알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단청보는 그들에게서 사문의 어른의 대접을, 또한 사숙의 대접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 되고 말 것이다. 지금까지 갖고 있던 불만은 워낙에 위대한 태사부가 감싸니까, 어쩔 수 없이 참고 있는 것임도 잘 알고 있었다. 전에 검신의 말에서도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았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독고무흔이 벌써 청허 진인과 대련을 청할 정도로 성장했단 말이지? 흠, 청보가 확실히 너무 뒤쳐진다. 사문에서 팔 년간 수련한 열여덟 살 정도 되는 제자들도 강호를 휘젓고 다니는데……. 청보는 많이 좋아졌지만, 그 발전이 사람들의 눈에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으니 큰일은 큰일이야. 그래도 영봉장에 정이 들었을 것인데 당장 여기서 내보내기도 그렇고. 청보가 실력과 인품으로 자신의 진면목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면 영봉장과 난화곡, 남해파는 물론 어느 누구에게도 대우를 받지 못할 터. 사문의 배분으로 문외제자인 흑표를 제외하면, 청보가 지금 가장 높은 상태인데… 가장 높은 배분의 청보가 실력이 형편없고, 강호에선 놀림감이 되어 있으니 불만이 쏟아지는 것은 무리가 아닌 게야.’
이해심이 많은 다른 사형제들이 있으면 다행인데, 지금은 그렇지도 않았다.
자신의 나이는 벌써 팔십. 아무리 오래 산다고 한들 수십 년을 더 장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언제까지 청보를 잘 돌볼 수도 없었다. 도손들의 불만이 차츰 커져만 가고 있음을 느꼈다.
처음 데려왔을 때는 구명지은의 은덕이라 생각하고, 은혜를 베푼다는 마음으로 참았다.
하지만 진짜 제자로 거두고, 좋지 못한 모습을 수년 동안 적나라하게 보았다. 실망이 크다 못해 이젠 절망감이 가득해졌다.
청보가 저들에게 과연 인정받을 수 있을지 장학선은 불안했다.
‘굳이 저들에게 인정을 받을 필요는 없겠지. 청보의 상황으론 누구의 인정도 받기 힘든 상황이니까.’

영봉장의 대전에서 청보가 있는 별채로 돌아왔다.
오늘은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었다. 눈에선 눈물이 나고, 침도 질질 흘렸다. 동풍이 또 도진 것이다. 저렇게 동풍에 시달리고 나면, 머리가 전보다 퇴화하는 특징을 보였다. 청심보단과 우황청심환을 먹여 재우고 있었지만, 걱정이 산더미다.
‘휴우.’
마혈이 찍히듯 경혈이 굳어지지 않도록 연음지력으로 경혈을 풀어 주었다. 머리를 쓰다듬었다. 한없이 여리고 맑기만 한. 보면 볼수록 안타깝기만 하였다. 청보는 많이 아픈지 신열이 들끓었다.
“오늘 발작은 심한 편에 속하구나. 청보가 사문의 여사질들에게 욕을 듣고선, 정신력이 주체할 수 없이 약해진 것이야. 예쁜 누나, 예쁜 누나하며 좋아했는데 그렇게 욕을 했으니까. 독고무흔의 얼굴을 다시 그려서 갔다 놔야겠어.”
장학선은 단청보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려고 했다. 예쁜 누나에 대한 감정을 하루라도 빨리 정리하고, 독고무흔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게 만들어 무공에만 집중시키는 것이다.
삼 년이란 시간을 이야기한 것은, 기별 없는 시간 속에서 청보의 미진한 성장에 지쳐 있던 도손들을 위해 한 이야기였다. 시간을 제시했으니 그들도 더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단청보는 몸을 일으켰다. 눈앞에 독고무흔의 얼굴이 그려진 그림을 보자 갑자기 죽죽 찢었다. 자신을 비참하게 괴롭힌 독고무흔에게 맹렬한 투지를 느끼고 있었다. 얼굴에 화가 잔뜩 나 있고, 콧바람은 ‘씩씩댔다.’
“청보야. 이제 좀 괜찮으냐?”
“네, 사부님. 독고무흔을… 때려야 돼요!”
이번의 발작과 신열의 이유를 알았다. 정신적으로 크게 쇠약해지거나, 퇴보하진 않았다. 어느 정도 말도 잘했고 의사 표현도 했다. 장학선은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이야기했다.
“그래. 이제부터 열심히 수련해야 한다. 네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 줘야 해.”
“열심히 할게요.”
단청보 자신도 주변 상황을 다 인지하진 못했지만 예전처럼 백치는 아니었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별로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은 충분히 느꼈다. 사부님의 걱정스런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팔금육십사괘형진(八禁六十四卦形陣).
장학선은 동굴에 새로운 기관진식을 설치했다. 전에는 모래주머니와 흙 포대 위주로 진을 꾸렸다면, 이번엔 실질적인 무기를 갖췄다.
단청보가 다칠까 우려되어 금사갑옷을 입혔다.
팔금육십사괘형진은 단청보가 훈련하던 모래주머니, 흙 포대 위주의 진법과 모양은 같았다.
다른 점은 두 가지였다. 첫째, 밤에는 완전히 어둡고, 낮에는 환했다. 둘째는 실제적인 병기의 힘으로 조작되고, 거기에 풍화가 일어나도록 했다. 해서 격투를 벌이며 통과해야 했다.
삼 년 전부터 매일 만년옥침상에서 자게 했다. 진원일기의 내공 성취는 그렇게 해서 생겼다.
“청보야. 이제 낮과 밤으로 나눠 여기서 훈련할 것이란다. 모양은 네가 그동안 연습했던 곳과 똑같다. 너도 보면 알 것이야. 하도 지겹게 봤으니까. 다만, 상황이 다르다. 낮에는 저 모양이 훤히 다 보이지만… 밤에는 전혀 가늠하지 못한다. 또, 지금과는 다르게 저기엔 사람을 살상할 수 있는 무기가 장착되어 움직인다. 너에게 갑옷을 입힌 것은 무기에 맞더라도 다치지 않게 하려 함이다. 마지막으로 다른 점은 저 시설들이 움직이면서 바람을 상당히 많이 일으킨단다. 해서 방향을 가늠하기 많이 어려울 거야.”
단청보는 진을 보자마자 경기를 일으켰다. 무기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어느 날 갑자기 독고무흔이 자길 두들겨 패던 생각, 어느 날 피 흘리며 자기가 데굴데굴 구르던 상황이 기억났다.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욕을 먹는 상상까지 머리에서 일어났다. 정신을 차리려고 해도 주체할 수 없었다. 눈물이 났다.
“어… 어…….”
“네가 독고무흔을 한 대라도 때려서 복수하려면 저것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 무림은 살벌하게 싸우는 곳이야. 언제까지 흙 포대만 갖고 훈련을 하려고?”
털썩.
단청보는 옆으로 푹 쓰러졌다. 눈의 동공이 돌아가고 흰자위가 나타났다. 입에서 거품이 나왔다. 장학선은 그제야 알아차렸다.
“동풍의 풍의는 가끔 정신적으로 큰 혼란이나 충격이 생기면 발작 증세가 일어난다더니 그것이 사실이었군. 하긴 이 상황은 안정된 상황이 아니니까. 하나 이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이 아이는 정말 희망이 없어진다.”
독고검성은 진즉부터 희망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생각 이상으로 단청보는 놀랍게 발전했다. 자신이 그를 돌봐 주며 안정된 상황을 주고 다스렸기 때문이다. 아직까진 단청보에게 안정된 상황이 필요한 것이 분명했다.

<4>

모양이 같은데 상황이 달라지자 극도로 위축되는 단청보. 장학선은 만년옥침상에 단청보를 눕히고 우황청심환을 먹였다.
고심이 깊어졌다. 저 진에서 본격적으로 훈련하고 이겨 내야지만 비로소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다.
사문의 도손들이 쉽사리 단청보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문중의 내분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적당한 시기에 주유천하를 하는 제자의 형태로 내보내려 했다.
‘일이 틀어지려는 것인가?’
자신의 적전수제자라는 명목은 지키되, 문적은 주유천하하는 제자로 해서 문중의 일에 아무런 권한도 발언도 하지 않게 하려는 생각이다. 그래야 둘 사이에서 적당히 불가근불가원의 관계가 형성될 것이다.
‘조건은 달아야겠지. 무림에 큰 공을 세우고 사문에 큰 공헌을 할 경우 마땅히 가장 높은 배분으로서 단청보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그전까진 속가제자 문적에는 올리고, 명목은 내 적전제자로 하고 말이야. 그렇지 않으면 청보를 둘러싸고 불만이 증폭되어 나중엔 분규가 일어날 수 있어.’
다음 날 단청보가 일어났다.
“괜찮으냐?”
“괜찮아요.”
“네가 저 상황을 이기지 못하면 넌 독고무흔 앞에 설 수도 없다. 물론 지금까지 하던 것과 전혀 다른 상황에 직면하여 너에게 안정감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 세상에는 항상 너에게 안정감을 선사하진 않는단다. 지금 이대로는 네가 가진 능력마저도 활용하지 못하고 죽게 돼.”
“…….”
단청보는 할 말이 없었다. 이러는 자신이 싫기도 했지만, 몸이 마음처럼 따라 주지 않았다.
하기야 무조건 압박하고 밀어붙인다고 될 일인가. 장학선은 일단 평소와 같은 훈련을 시키면서 기회를 엿보았다.
‘그래! 저 녀석이 언제부터 저 진법을 했던가? 그 또한 나의 욕심이었어. 변화를 아주 조금씩 주는 거야. 변화를 충분히 터득한 박투술은 철장공(鐵掌功)을 수련하는 밑거름이다. 일단 저 수련을 유지하면서 못이나 소도를 살짝살짝 튀어나오게 하고, 적응이 되면 강도를 높이는 것이야. 그랬다가 충분히 적응되면 동굴의 진법을 하게 하면 될 터.’
장학선은 가뜩이나 정신도 올바르게 추스르지 못하는 여리기만 한 청보를 무턱대고 압박하면 발전할 수 없음을 알았다.
지금까지 상승에 근접할 만큼 제대로 터득한 박투술을 철장공으로 정련시켜야 했다. 독고검법과 소혼장법에 대항하려면 너무 무식한 박투술은 곤란했다.
우선 못을 진의 요소요소에 배치했다. 가끔씩 살짝살짝 튀어 나오게 했다. 단청보는 못 정도는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못에 적응하자, 소도를 살짝 튀어나오게 했다. 단청보는 상당히 많이 놀랐다. 장학선은 상황에 적응하지 못한 것임을 직감했다. 해서 소도를 자주 보여 주고, 또 느끼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