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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천호협 1권(11화)
제三장 독고무흔과의 대결(4)
열흘 후.
같은 진에서 이번엔 무기가 튀어나오도록 했다. 무척이나 당황하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무기를 옆에다가 주고서는 온몸으로 만지게 했다.
단청보는 같은 진법에서 장검 한두 자루 나오는 것으로는 이제 두려움을 갖지 않았다. 이제는 못, 소도, 장검이 튀어나도록 했다.
상당히 당황하여 졸도했다. 이번엔 못, 소도, 장검을 온몸에 비벼 주고 깨어났을 때, 손으로 때리도록 했다. 그동안 외문무공을 열심히 수련했기에 상처를 입지 않았다.
한 달 동안 그런 행동을 계속 반복했다. 무기를 잘못 다스리거나 하면 크게 상할 수 있지만 잘만 다스리면,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끊임없이 각인시키는 것에 주안점을 뒀다.
하루에도 수십 번 이상을 반복시키느라 정말 애를 먹어야 했다.
“무기는 사람이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있단다. 생각한 것보다 무서운 존재는 아니란다. 이제는 그렇게까지 무섭지는 않지?”
“안 무서워요.”
같은 진에 창, 검, 화살, 표창, 비침을 설치했다. 청보로 하여금 그것을 모두 통과하도록 했다. 전에 수련하던 진에서 보름을 그 방법으로 수련했다. 이제는 무기의 예기를 느끼거나, 강한 기운을 느껴도 압도당하지 않았다.
장학선은 처음에는 직접 시범을 보여 주며 이끌다가 차츰 단청보가 혼자 할 수 있도록 했다.
다시 동굴로 들어왔다.
“이제는 안 무섭지?”
“하나도 안 무서워요!”
“그래, 잘했다.”
장학선은 자신이 참으로 나빴다고 생각했다.
제대로 적응할 수 있도록 끊임없는 반복과 훈련을 유도했어야 했다. 한꺼번에 급격히 달라지는 상황을 줘 버리니 단청보가 이겨 내질 못한 것이다.
“자! 이 기관에서 새로 훈련한다!”
단청보는 이제 무서움을 잊고 팔금육십사괘형진 안으로 들어갔다.
위이잉.
굉음과 바람이 몰아쳤다. 비침과 표창이 단청보의 몸을 향해 좌우의 괘에서 날아들었다. 단청보는 다리를 죽 벌려서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가 모아들였다.
탁. 탁!
발꿈치를 박차고 도약했다. 이번엔 창과 검이 몰려들었다. 검병을 잡아채고, 창의 뒤끝을 발로 밀었다. 벽에 창이 꽂히고, 검을 날려 날아드는 다른 침들을 걷어 냈다. 귀청을 울리는 강한 격음이 울렸다.
칭! 칭! 칭
장학선은 기분이 좋았다. 단청보는 무난하게 진의 위력과 싸웠다.
철장공의 철금수(鐵擒手), 탄강비(彈剛批), 철화유격(鐵花劉擊), 쌍장철산(雙掌鐵傘), 추운지철(秋雲指鐵), 회철무권(廻鐵撫拳), 철공장타(鐵攻長打), 철류회막(鐵瀏回幕)의 여덟 초식을 제대로 익혔다.
내공은 진일원기였지만, 변화정수의 깊이는 상승에 가까웠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돌과 화살도 피하고, 붙잡았다. 흙 포대나 벽돌이 날아들면 주먹을 질러 박살 냈다.
퍽! 퍽!
파직!
무엇보다 사부가 뒤에서 자신을 지켜봐 준다는 생각에 무한한 안정감을 단청보는 느꼈다.
바람을 타고 창검이 날아들었다. 밑에서는 날카로운 쇠줄과 못들이 칭칭 감아 돌면서 단청보를 압박했다. 양 옆에서는 벽면이 움직이며 단청보를 누르려고 했다.
화르르.
허공에서 몸을 회전시키고, 몸을 위로 도약해 움직이며 쇠줄과 못을 피했다. 벽은 양손을 뻗어서 힘으로 밀어치고, 날아드는 창검은 검병을 낚아채 손바닥으로 후렸다.
팡!
창과 검이 서로 부딪쳐 떨어졌다. 이런 식으로 진의 모든 공격을 무력화시켰다. 이와 똑같은 모양에서의 진법은 오랜 반복으로 익숙해져 모양을 다 외워 버릴 지경이었다.
나중엔 심심해져 같은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수백 번을 돌파하였다. 철장공의 모든 장권무예의 요결에 있는 변화정수는 완벽하게 터득했다.
장학선은 이제야 기분이 좋아졌다. 저만 하면 독고검법의 절정고수와 대결해도 손색이 없었다. 단청보가 이렇게 진보하자 자신이 노인이란 사실도 잊은 채, 엷은 눈물이 떨어졌다.
낮을 완벽히 적응했다고 판단한 그는 밤에도 보냈다. 적응이 잘된 단청보는 밤에도 무난히 뚫었다. 약간의 상처가 나긴 했지만…….
하지만 그것도 백 번을 또 반복하니 상처가 나지 않았다. 장학선은 생각이 달라졌다.
‘이제 진의 모양과 상황을 좀 더 다변화시켜야겠어. 항상 같은 상황에서만 반복하기만 하면 안 돼. 반복 속에 작은 변화!’
이번엔 진의 운용 방식과 힘의 방향, 세기를 달리 조절했다.
조절된 진법에서 단청보는 하루에도 백 번이나 씨름했다. 이젠 어떠한 변화라도 다 외워 버릴 정도였다.
내막을 아는 사람이 본다면 지겹다 못해,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반복과의 씨름이었다. 그럼에도 단청보는 멈추지 않았다. 스스로가 남들보다 모자라고, 놀림감이 되어 있다는 것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단청보는 철장공의 비결을 충분히 터득할 수 있었다.
구월 이십오 일.
약속대로 검신 독고검성은 아들 독고무흔을 데리고 찾아왔다.
장학선은 이제 자신이 있었다. 무공의 초식, 요결, 명칭, 구결은 단청보가 하나도 몰랐다. 자신이 연음신공과 잠영비공술, 철장공을 익혔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사부가 시키는 대로 죽자 살자 진법 속에서 반복했을 따름이다.
남해파 내에서도 극소수만이 뚫을 수 있는 절진(絶陣)에서 단청보를 훈련시켰다. 사전의 연습과 적응 훈련을 비롯한, 체계적인 훈련을 시켰다.
독고검성은 오 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 천지괴협의 진전을 아무리 우둔한 사람이라도 받았을 것이라 짐작했다. 천지괴협의 흐뭇한 표정을 보니 이번엔 지난번과 같은 황당한 상황이 생기지는 않을 것 같다.
독고검성도 뭔가 달라질 상황을 기대했다. 고요하게 웃으면서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장학선에게 물었다.
“하하. 자네 제자의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면서?”
“그렇다네. 최근에 자네 아들이 청허 진인과 한 수 섞은 것은 들었네. 대단한 발전이었어. 하하.”
“뭘 그런 것을 갖고. 내 아들놈은 절용상기의 내력을 쌓았지만 순청극기의 출중한 신공을 가진 청허 진인과 어찌 댈 수 있겠나.”
“끙!”
독고검성의 말에 장학선은 얼굴이 일그러졌다. 예상은 했던 일. 제자의 내공은 일류고수를 완벽히 성취한 진일원기의 정도였다.
대부분 절진을 뚫으면서 터득한 박투술과 외문무공, 경공술 위주였다.
최근에 그것을 정련시켜 철장공을 완벽하게 터득하도록 했다. 격투술에 있어선 일류고수의 내공을 무색하게 할 정도의 상승무학의 단계에 있었다.
다만 흠이 있다면 무공의 구결과 요결은 물론, 초식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글을 아직까지 숙지 못하니, 무턱대고 어려운 명칭을 외우게 하느라 씨름할 필요가 없었다. 아무튼 내력의 격차가 한 수의 단계나 난다면, 자칫 단청보가 내상을 크게 입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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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그러지는 장학선의 눈빛을 본 독고검성은 무슨 우려와 걱정이 있는지 훤히 다 보였다. 그는 여유자적 물었다.
“왜? 자네 제자가 너무 부실해서 심각한 내상을 입을까 염려되나?”
“솔직히 말함세. 내 제자도 무공은 어느 정도 익혔다네. 하나 내공이 자네 양자에 게 밀리니, 내상을 크게 입을 수 있어 걱정이네.”
“하하. 그 점은 염려 말게. 오늘의 자리는 생사결투도 아니고, 대련을 하여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보자고 하는 자리가 아닌가? 결코 자네 제자가 잘못되는 일은 없을 것이네. 만약에라도 예기치 않은 부상이 생겼을 때는 내가 책임지고 치료하겠네.”
“그러하면 모든 걱정의 요소는 사라졌으니 대련을 해 봄세. 내 제자도 자네 양자와 겨룰 날만 학수고대했으니까.”
“아주 기대되는군!”
독고검성은 경우가 뚜렷했다. 단청보가 무공을 익히는데 성공해, 몇 초식이라도 쓸 수 있게 된다면 아랫사람을 깔보는 아들이 의외의 상황에 당황하여 예기치 않게 강한 공격을 펼칠 수 있었다. 나이가 열여덟 살이니 깊은 내공을 쌓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당연히 내상을 입힐 수도 있었다.
장학선은 독고검성의 말을 듣자 고개를 끄덕였다. 독고검성은 양자에게 시선이 돌아갔다.
“무흔아.”
“말씀하십시오.”
“학선이의 제자가 어느 정도는 무공을 익힌 것이 확실해 보이는구나. 몸을 보아라. 근육이 대단히 우람하고, 신체의 골격이 튼튼한 것이 그때 봤을 때와 많이 다르지 않느냐?”
“아버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독고무흔의 눈에도 정말 예전의 그 뚱뚱하고 볼품없던 아이였는가 싶었다.
과연 보통의 몸이 아니었다. 자기보다 몇 배로 좋았다. 근육이 튼실하게 붙어 있었고, 헌헌장부가 되어 있었다.
육 척에 달하는 키와 팔다리에 걸쳐 무시무시하게 오른 근육은 몸으로만 봤을 때는 상당한 위압감이 왔다.
꿀꺽.
자신의 몸은 단청보와 같지 않았다. 경이로울 정도였다.
“완력은 정말 드세겠군요.”
“대단하군, 대단해.”
단청보의 모습을 본 독고검성은 표정이 달라졌다. 무시무시할 정도로 단련된 위압감이 물씬 풍기는 몸을 자랑했다. 하지만 외문무공 위주에다 내공이 제대로 쌓여 있지 않으면 독고무흔이 가하는 내공에 정말 크게 다칠 수도 있음을 느꼈다.
“허허. 저 아이가 정말 예전에 그 뚱뚱이가 맞는가?”
“그렇다네. 지난 오 년간 아주 단단히 준비했지.”
“적어도 몇 십 초식은 발휘할 것 같군.”
기대감을 머금은 독고검성은 독고무흔에게 시선을 돌렸다.
“외문무공을 한번 견식하는 것도 좋겠구나. 될 수 있으면 내공은 사용하지 말고 초식으로 상대해 보거라.”
“알겠습니다. 저 친구가 장권무예에 자신이 있는 것 같으니 저도 아버님께서 전수하신 소혼장법(消魂掌法)을 선보이겠습니다.”
독고무흔이 앞으로 나섰다.
단청보는 묵묵하게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 그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독고무흔은 맺고 끊음이 분명했다. 그것은 아버지 독고검성에게 배운 것이다. 적어도 상대방이 누구든 간에 인정할 것은 인정했다. 아무리 원수라고 해도 인정할 것은 인정했다. 물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만. 어쨌거나 단청보는 천하기 이를 데 없는 종자였다. 하지만 그가 노력한 것까지 깎아내릴 연유는 없었다.
“하하. 자네가 이렇게 성장할 줄은 미처 몰랐네. 함께 있었던 사람들의 반응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오 년 전과는 확연히 달라짐을 느낄 수 있어 보기가 좋군.”
“가르침을 주세요!”
단청보는 이글이글 불타는 눈빛을 쏘아 보내며, 장학선이 미리 가르쳐 준 말을 했다.
독고무흔은 단청보의 압박적인 기세를 보니 왠지 모르게 청허 진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청허 진인은 태산처럼 우두커니 서서 자신의 검초를 기다렸다가 제대로 일격을 가해 쓰러뜨렸다. 마치 그런 느낌이 들었다. 왜일까, 이런 얼뜨기에게 왜 그런 위압감이?
“이얍!”
독고무흔의 소혼장력이 뻗어지며 허공을 갈랐다. 단청보는 일말의 두려움도 없었다. 보법을 밟아 가며, 전후좌우로 알 수 없는 동선을 그렸다. 변화가 너무 심하여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휙! 휙! 휙!
이건 흡사 허공에 대고 손질을 하는 격이었다. 이것이 정녕 그때 그 돼지 같은 아이가 맞단 말인가?
단청보는 오랫동안 변화무쌍한 진법에서 훈련했기에 독고무흔의 예상에서 벗어난 심한 변화를 일으켰다.
휙! 휙! 휙!
장력을 아무리 가해도 들어오는 강기는 단청보가 삽시간에 피해 냈다. 맞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나같이 허공에 무조건 내지르는 느낌이다. 사람에게 장력을 가하는 것인지 허공에 장력을 가하는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보법과 경공술 하나는 입신의 수준이로다.’
독고무흔도 경탄을 금할 길이 없었다. 도저히 손발이 말을 듣지 않았다. 단청보는 사십 합이나 매섭게 가해 오는 독고무흔의 장력을 피했다. 점차 묘한 기분이 들고 있었다. 사십 합이나 되도록 이 얼뜨기를 이기지 못하다니, 오 년 동안 이렇게 변할 수 있단 말인가?
너무 변화무쌍하여 도저히 종잡을 수 없었다. 왼쪽에서 몸이 나타나서 장력으로 후려치면 금방 오른쪽에서 불쑥 나타났다.
균형이 깨지고 있었다. 발이 꼬이고 손이 흐트러지려고 했다. 점차 수세에 몰리는 형국이다. 이거야 원 흡사 청허 진인과 대결할 때와 같은 요상한 상황이 아니던가. 방법을 바꿨다.
허공으로 몸을 띄워 낙법을 가해 단청보의 몸을 매섭게 내려쳤다.
스르르륵.
타악!
자신의 칼날과 같은 손을 상당한 솜씨의 발차기로 후려 찼다. 위험했다. 한순간 자기 급소를 노출시킬 뻔했다.
단청보는 독고무흔의 공격이 진법보다는 훨씬 강했지만 변화는 진법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법은 이렇게까지는 허술하지 않았다. 그는 몸을 날려 독고무흔의 뒤로 와 있었다.
순간!
당황한 그는 몸을 날려 단청보를 피했다. 단청보는 손을 뻗어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내공이 그보다 부족하였으니 도약 능력은 독고무흔보다 뒤처졌다.
독고무흔은 점점 더 약이 올랐다. 얼뜨기를 상대로 이렇게 질질 끌다니. 무엇보다 단청보의 정교한 보법과 경신법을 흔들지 않으면 기회를 잡을 수 없었다.
‘그렇지!’
독고무흔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재빨리 소혼장법의 천력혼사(踐歷魂瀉)를 격출했다. 몸을 앞으로 밀었다가 뒤로 당기면서 양손으로 들이밀었다.
단청보는 예기치 않은 상황에 빠져들었다. 피할 사이도 없이 몸이 급격하게 끌려들어 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