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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천호협 1권(13화)
제三장 독고무흔과의 대결(6)
독고검성은 면목이 없었다.
“미안하네. 내 아들 놈을 잘못 가르쳤어. 오늘의 경합은 청보 저 아이가 이긴 것일세. 훌륭한 철장공과 경공술을 견식하여 내 눈이 즐거웠으이.”
“괜찮으이. 부상이 경미한 편이라 이 정도는 금방 회복될 걸세.”
“맥을 짚어 보니 경미한 부상보다도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입은 것 같구먼. 보아하니 이 아이는 오랫동안 동풍을 앓아 왔을 터, 무림인에게는 세 가지 저주스런 병이 있다고 하지. 하나는 구음절맥(九陰絶脈)이고, 두 번째는 심비혈허(心脾血虛)이며 세 번째는 이 아이가 앓고 있는 동풍일세. 구음절맥과 심비혈허보다 동풍이 더 저주스러운 것은 정신마저 흔들기 때문이네. 여러 가지 천험의 영약을 한꺼번에 복용하거나, 강력한 무공을 수련하여 스스로 경혈을 뚫지 않으면 정말 힘들겠어. 이런 형편없는 아이를 이만큼 바로 세웠으니, 자네가 참으로 대단하네.”
진심으로 감탄한 독고검성. 품에서 영단보희(靈團珤凞)를 꺼내었다.
장학선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영단보희, 그것은 무림인들 모두가 꿈꾸는 희대의 영약이다. 독고검성과 흑표가 말했듯 여러 영약을 얻는다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었다.
장학선은 오히려 단청보에게 전화위복이라 생각했다.
‘녀석, 운도 좋구나.’
독고검성은 장학선에게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한 말에 대해서는 책임을 질 것이네. 이 아이의 안전을 책임진다 했으니 그 약속은 유효한 것이야.”
“고맙네. 덕분에 청보에게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겠어.”
“너무 기대하지는 말게나. 구음절맥, 심비혈허, 동풍. 이것은 여러 가지의 좋은 영약을 잘 섞어야 약발을 받으니까. 기대한 만큼의 약발을 받지 못할 수도 있네.”
독고검성은 굳은 표정으로 단청보의 기경팔맥을 열어 천조신공(天祚神功)의 내공을 가했다. 단청보는 나쁜 피를 뿜어냈다.
독고무흔은 완전히 일그러진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괜히 성질을 부렸다가 영단보희라는 희대의 영약을 놓쳐 버린 셈이 되었다. 저 바보가 억세게 운이 좋아 저 영약을 얻은 꼴.
‘빌어먹을!’
그에 대한 적개심은 더욱 깊어졌다. 하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아버지와 천지괴협이 있었다. 반성하는 척 조용히 엎드려야 했다.
이윽고 단청보의 입이 벌어지고 영단보희가 들어갔다. 영단보희는 백묘곡사, 보살곡사, 천년하수오를 조제하여 단약으로 만든 영약이다.
보통의 여느 무인이 먹는다면 환골탈태는 물론 무공은 몇 배로 증강하고, 내력도 두 배 이상으로 증강시키는 희대의 영약이다. 죽을 목숨 한 번쯤 살려 주는 영약 중에 영약이기도 했다. 단청보는 그 영약을 먹었다.
장학선은 독고검성의 말을 들었지만, 그래도 이런 대단한 영약을 먹었으니 어쨌거나 환골탈태까지는 아니어도 눈에 확연히 드러나는 변화가 있겠지 싶었다. 그것이 기대하는 마음이든 아니든, 손자와 같은 청보에게 그런 마음이 쏠렸다.
‘그래도 이 아이가 큰 덕을 보았구나. 덕분에 영단보희를 다 먹고……. 이런 귀한 약을 무슨 수로 먹어 보겠는가. 단 한 번이라도 먹을 수 있다면 뭔가 큰 변화가 일겠지.’
기대와는 달리 단청보는 바로 일어나지 못했다. 기경팔맥의 맥과 심맥이 정상으로 돌아오는데도 오히려 거품을 물고, 부글부글 가래를 뱉어냈다.
독고검성은 단청보의 단전을 짚었다. 내공은 온전히 회복되어 가는 중이었다. 내상도, 외상도 거짓말과 같이 가라앉고 있었다. 그런데 공력이 생각처럼 증강되지 않았고, 각 혈도가 완전히 순통되지도 않았다. 기이한 일이었다.
“역시, 처음부터 예상한 그대로였어.”
“무슨 소린가? 아이가 영단보희라는 천혜의 영약을 먹고도 어째서?”
“처음부터 말했네만, 이 아이는 영단보희는 물론 천년혈삼이나 설삼, 게다가 귀룡담, 백년웅담 등 온갖 천혜의 영약을 일 년 정도는 규칙적으로 먹어야지만 비로소 눈에 띄는 발전이 있을 게야. 이 정도로는 메마른 땅에 가랑비 내리는 격이네. 그래서 무학의 자질로서는 단시일 내에 발전할 수 없고, 호쾌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게야. 혹시 모르지, 영단보희를 매일 조석으로 일 년쯤 계속 먹는다면 정말 달라질지도. 그러기 전엔 어렵네.”
“음… 이 아이를 아주 빠른 시간에 바꾸려면 영단보희가 최소한 칠백삼십 개는 필요하단 말이로군.”
“바로 봤네. 하지만 세상에 어떤 사람도 영단보희를 칠백삼십 개씩이나 먹을 수는 없네. 그거면 이 아이 하나를 바꾸는 것보단 평범한 사람 칠백삼십 명을 환골탈태시키는 것이 더욱 효율적일 게야. 보통의 경우 영단보희를 먹으면 일각 안에 일어나고 환골탈태를 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지. 하나 이 아이는 그런 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네. 동풍을 오랫동안 앓아 심잠(心潛)의 원기를 모두 소모시켜 그렇다네. 자네도 알다시피 심잠의 원기는 사람이 태어나면 누구나 갖는 것으로, 평범한 사람도 폭주를 하면 매우 당황스럽게 만드는 것처럼 사람의 몸에 잠재된 가장 원천적인 기운일세. 해서 진을 다 뺐다고 하는 말은 그 심잠의 원기가 손상될 때 하는 말이지. 이 아이는 근본적으로 심잠의 원기가 완전히 메말라서, 영단보희의 영약을 먹었어도 혜택이 충분히 나타나지 않는 것이야. 그동안 숱한 재활 훈련과 무공 수련이 없었다면 이렇게 마른 심잠의 원기로는 일찍 죽고 말았을 게야.”
“이 아이가 참으로 복이 없는 아이로세.”
“하하! 자네 말대로 실망하기는 일러. 내공이 진일원기의 정심한 단계에 이르러서, 심잠의 원기를 느리게나마 많이 회복시키고 있다네. 불과 몇 년 사이에 눈에 확 띄게 좋아지진 않겠지만 내공이 깊어질수록 심잠의 원기는 계속 회복되어 언젠가는 병을 이길 수도 있을 것이네. 진일원기의 정심한 단계의 내공을 성취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일세.”
“영단보희의 혜택이 전혀 없진 않겠지?”
“동풍에 의한 발작을 크게 감소시키고 그 병기를 많이 억누를 걸세. 어느 정도 회복이 되면 더 많은 말을 할 수 있고 머리를 맑게 할 것이네. 그러니까 자질은 평범한 편이나 어려운 글귀나 학문도 반복적으로 공부하고, 익히면 터득할 수 있다는 뜻이지. 자네는 제자에게 최대한 많이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그 속에 변화를 쉴 틈 없이 주면서 이끌었을 터. 그렇지 않고 이렇게까지 우둔하고, 정신줄도 오락가락하는 아이가 이렇게 성장하는 일은 없었겠지.”
“역시 검신의 눈치는 내가 못 당하겠어.”
“하나 그리하려면 자네 또한 사실상 제자의 사부가 아닌 하인이 되겠다는 각오로서 인내와 정성을 쏟았을 것이네. 진정으로 탄복했어. 천재가 기연을 얻어 고수가 됐다는 것보다도 더 큰 충격을 자네가 내게 준 거야. 하하!”
독고검성은 너털웃음을 크게 지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단청보의 복이 그것밖에 안 되니 누굴 탓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독고검성은 오늘의 일을 겪으며 단청보와 장학선에게 미안했다. 아이의 진가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 또 아들을 잘못 가르쳐 사고를 치게 만들었다.
단청보는 많이 회복이 됐지만 독고무흔이 저지른 사고에 하마터면 크게 잘못될 뻔했다. 독고무흔은 아무 말도 못한 채 영단보희를 빼앗기고 심한 꾸중만 들었다. 후회막급이었다.
장학선은 영단보희라는 희대의 영약을 단청보에게 준 독고검성에게 고마웠다. 기대한 만큼의 효과는 없었지만 이런 영약을 단 한 알이라도, 한 번이라도 먹어 보는 것은 그 혜택이 크든 작든 행운이었다.
단청보가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자 장학선은 그를 데려다가 만년옥침상에 눕혔다.
독고무흔과 단청보의 대결.
그것은 영봉장을 술렁이게 만들었다. 예상치 못한 단청보의 진일보에 영봉장은 뒤통수를 망치로 맞은 듯 멍하기만 했다.
그 바보 멍청이 사숙이 입신의 수준으로 경공과 보법을 펼치고 생각지도 못할 철장공의 권격을 전개할 줄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영봉장의 술렁임을 뒤로한 채 독고검성은 독고무흔을 데리고 풍릉곡으로 돌아갔다. 그들 부자가 돌아간 후 무림은 꽤나 술렁거렸다. 천하우두, 우두미종이라 불리던 바보의 대명사 단청보가 생각지도 못한 변화가 일어나자, 오히려 음모론까지 나돌았다.
장학선의 내공을 전이 받아서 일시적으로 진전을 보인 것이지, 결코 자기 실력으로 그랬을 리는 없다는 것이다.
대결 후에 쓰러져 일어나지도 못했다는 것은 그것을 상징한다는 여론이 아직까진 힘을 얻었다. 장학선은 그런 것을 뒤로했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는 법이다.
단청보를 만년옥침상에 눕힌 장학선은 연음지력으로 경혈을 풀어 주었다. 단청보의 호흡은 차츰차츰 안정되었다. 탁월한 영약을 먹었음에도 기대한 만큼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였으니 너무 박복했다. 자질이 없으면 약발이라도 잘 받지 이게 무슨 꼴인가.
“하늘도 참 너무하는구나. 자질도 머리도 없으면 약발이라도 잘 받게 할 것이지 약발도 못 받으면 어찌하누. 청보 네가 불쌍해도 너무도 불쌍하구나.”
한숨이 절로 나왔다. 팔 년 동안 옆에 붙어서 거의 떨어지지 않고 돌봤다. 자신의 나이로 보면 손자와 같았다. 자신이 지금까지 단청보에게 준 사랑만큼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이 있었을까? 아마도 다섯 손가락에 꼽아야 할 것이다. 아니, 단청보가 유일할 것이다. 그렇게까지 지겨운 반복을 감수하면서까지 사랑을 주었으니까.
제자에게 향한 마음은.
“그래도 넌 내 손자처럼 참으로 아끼었거늘 앞으로가 걱정이구나. 이래 갖고 어찌 살아갈꼬.”
엷은 신음을 뱉었다.
단청보는 동풍의 풍의 증상이 발작한 것과 같았다. 몇 시진을 사경을 허덕였다. 눈에선 눈물을 흘리고, 입에선 거품이 일어났다.
장학선은 열심히 연음지력으로 지압을 하여 경혈이 뭉치지 않게 했다. 독고검성과 난화곡주 흑표의 말이 스치고 지나갔다.
“네 가지 영약을 한꺼번에 만나는 기연을 만나야 한다고 했었지. 하나의 영약만으로는 이 아이의 병이 깊어 쉽게 낫지도 않을 것이고 눈에 확연히 드러나는 성취감도 얻지 못할 터, 그래서 그 네 가지를 언급했었던 것이야. 그 말이 정녕 사실이었어.”
단청보가 여기까지 온 것은 정말 기적과도 같았다.
여섯 시진이 지나서야 몸을 일으켰다. 단청보는 몸이 개운하고 시원한 느낌을 받았다. 머리에 들어 있던 안개가 많이 걷어진 느낌이다.
“사부님, 거정 마이 하서지요?”
“걱정은 무슨. 앞으로는 걱정 많이 하셨지요. 그렇게 말해야 한다. 알겠지?”
“네, 사부님.”
기대했던 효과는 역시 나타나지 않았다. 메마른 땅에 가랑비라는 말은 청보를 두고 하는 말임이 분명했다.
한 알의 영단보희가 보통 사람의 일생을 한꺼번에 바뀌게 하지만, 청보에겐 한 알의 영단보희로는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 너무나 미약한 존재에 불과했다.
독고검성의 말대로 병이나 많이 눌러 병세라도 많이 호전되면 다행일 것이다. 무공은 크게 향상된 것이 없었지만 정신이 계속 좋아지고 머리가 트이면 그것도 다행이다. 병만 없어지면 무공은 열심히 다듬고 수련하면 그만이 아닌가.
“괜찮은 것이냐?”
“괜찮아요.”
장학선은 무한한 미소를 지으며 단청보를 끌어안았다.
단청보는 너무나 따뜻하고 좋은 할아버지의 품처럼 장학선의 품이 푹신푹신하고 좋았다.
등을 쓸어내려 주며 오늘의 값진 통쾌함을 축하했다.
청보는 독고무흔과 싸우다가 의문이 스쳤다.
“사부님… 모, 몰라요.”
“아, 독고무흔에게 마지막에 왜 그렇게 됐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네.”
단청보도 솔직히 답답했다. 말문이 온전히 트이지 않아 더 많은 말을 하고 싶어도 그렇지 못했다. 답답하긴 했어도 사부님인 장학선의 말은 거의 다 알아들었다.
장학선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 이유를 말해 줬다.
“그것은 그 녀석이 너에게 취한 일격의 검세가 무서운 검기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내공이 뒤떨어지니 그것을 방어할 힘이 부족했던 게야.”
“…….”
“네가 모르는 말이 많은 것 안다. 이제부터 무공의 수련과 함께 말과 글을 차츰차츰 배우자꾸나.”
도손들에게 약속한 삼 년의 시간이 있었다. 영단보희를 먹었으니 병세가 차츰차츰 호전될 것이다. 그리되면 단청보가 더 많은 견문을 쌓는데 도움이 될 것이 자명했다. 장학선은 일단 그것만으로도 흡족했다.